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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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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 ||
'''70
손시헌 · 71
이숭용 [[틀:SSG 랜더스 감독| ★ ]] · 72
강병식 · 73
오준혁· 83 스즈키 · 84 조동화 · 86 윤재국 · 88 송신영 · 91 이승호 · # 세리자와 · # 경헌호 <컨디셔닝> 121 곽현희 · 122 고윤형 · 123 길강남 · 124 송재환 · 125 김상용 <스트렝스> 홍순범 · 유재민 · 신동훈''' |
|||
2군 | |||
82
윤요섭 · 89
류택현 · 98
배영수 · #
이명기 · # 이영욱 · # 나경민 <컨디셔닝> 이형삼 |
|||
잔류군 | |||
78
이윤재 · 87
정진식 <컨디셔닝> 김기태 |
|||
프런트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
다른 KBO 리그 구단 명단 보기 | }}}}}}}}} |
강병식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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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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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홈런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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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2561> 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김홍기 태평양 / 8개 |
길홍규 OB / 5개 |
김원근 외 4명(A) 5개 |
이전진 외 1명(B) 5개 |
이보형 OB / 8개 |
|
<rowcolor=#002561>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
공의식 현대 / 14개 |
임노병 LG / 16개 |
안재만 LG / 12개 |
추성건 두산 / 12개 |
문희성 두산 / 14개 |
|
<rowcolor=#002561>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
강병식 상무 / 9개 |
정원석 외 1명(C) 9개 |
장익현 상무 / 10개 |
김재구 상무 / 13개 |
최길성 LG / 13개 |
|
<rowcolor=#002561>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
김상현 상무 / 23개 |
최형우 외 2명(D) 22개 |
박병호 외 1명(E) 24개 |
조영훈 경찰 / 24개 |
최주환 상무 / 24개 |
|
<rowcolor=#002561>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
문선재 상무 / 21개 |
김회성 경찰 / 18개 |
최승준 LG / 19개 |
김사연 KT / 23개 |
한동민 상무 / 21개 |
|
<rowcolor=#002561>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
이성곤 경찰 / 19개 |
윤대영 경찰 / 24개 |
이성규 경찰 / 31개 |
허정협 외 1명(F) 10개 |
이재원 LG / 13개 |
|
<rowcolor=#002561> 2021년 | 2022년 | 2023년 | 2024년 | 2025년 | |
이재원 LG / 16개 |
김민혁 외 2명(G) 10개 |
홍성호 두산 / 15개 |
전의산 SSG / 15개 |
||
A: 김원근,
황대연(
빙그레), 소상영(
OB), 김성기(
LG) B: 이전진, 곽연수( OB) C: 정원석( 상무), 윤형국( SK) D: 최형우, 곽용섭( 경찰), 박석민( 상무) E: 박병호( 상무), 조영훈( 경찰) F: 허정협( 고양), 국해성( 두산) G: 김민혁, 홍성호( 두산), 주성원( 고양)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570514> |
키움 히어로즈 역대 주장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2008~2009 | 2010 | 2011 | 2012 | 2013~2015 |
송지만 | 이숭용 | 강병식 | 강병식 → 이택근 |
이택근 ☆ |
|
<rowcolor=#fff> 2016~2017 | 2018 | 2019~2020 | 2021 | 2022 | |
서건창 | 서건창 → 김민성 |
김상수 ☆ |
박병호 → 김혜성 |
이용규 ☆ |
|
<rowcolor=#fff> 2023 | 2024 | ||||
이정후 → 이용규 | 김혜성 → 송성문 | }}}}}}}}}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5번 | ||||
필립스 (2001) |
→ |
<colbgcolor=#000F24> 강병식 (2002~2004) |
→ |
이정호 (2005)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6번 | ||||
피어리 (2004) |
→ |
강병식 (2005~2007) |
→ | 팀 해체 |
우리 / 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36번 | ||||
팀 창단 | → |
<colcolor=#FFFFFF> 강병식 (2008~2009) |
→ |
문성현 (2010~2012)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33번 | ||||
클락 (2009) |
→ |
강병식 (2010~2012) |
→ |
조용훈 (2013) |
넥센 /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7번 | ||||
정민태 (2009~2012) |
→ |
강병식 (2013~2023) |
→ |
이병규 (2024~) |
SSG 랜더스 등번호 72번 | ||||
정경배 (2022~2023) |
→ |
강병식 (2024~) |
→ | 현역 |
|
|
<colbgcolor=#ce0e2d><colcolor=#FFFFFF> SSG 랜더스 No.72 | |
강병식 姜炳植 | Kang Byeongsik |
|
출생 | 1977년 4월 23일 ([age(1977-04-23)]세) |
서울특별시 광진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성동초등학교 (졸업) 신일중학교 (졸업) 신일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
신체 | 182cm | 85kg, O형 |
포지션 | 1루수, 좌익수, 우익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 입단 | 1996년 2차 8라운드 (전체 59번, 현대) |
소속팀 |
현대 유니콘스 (2002~2007) 우리- 서울- 넥센 히어로즈 (2008~2012) |
지도자 |
넥센 히어로즈 2군 플레잉코치 (2012) 넥센 히어로즈 2군-화성 히어로즈 타격코치 (2013~2014) 넥센 히어로즈 1군 타격보조코치 (2015) 넥센 히어로즈 1군 주루·타격보조코치 (2016) 넥센- 키움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2017~2023)[1] 고양 히어로즈 수석코치 (2023)[2] SSG 랜더스 1군 타격코치 (2024~) |
병역 |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0~2001)[3] |
응원가 |
현대 시절 Red River Valley (홍하의 골짜기)[4][5] 히어로즈 시절 동요 《괜찮아요》[가사][7] |
종교 | 불교 |
[clearfix]
1. 개요
KBO 리그 SSG 랜더스 타격코치.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선수 시절
신일고를 졸업하고 1996년 신인 지명에서 현대 유니콘스의 2차 8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사실 신일고가 3관왕을 차지하면서 고교야구계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997년의 일이니, 그는 그 시절의 바로 직전에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셈이다. 그래도 고려대학교로 간 것을 보면, 고교 시절 활약은 괜찮았다. 대학 시절에는 주로 외야수로 활약했다.2000년 고려대 졸업 후 지명권을 갖고 있던 현대 유니콘스 입단 대신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하던 2001년에는 2군 홈런왕을 차지했다. 비록 2군이지만 프로 경험이 없는 타자가 2군 홈런왕이 되었던 것을 볼 때,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은 확실했다. 그리고 아마추어 시절 각종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한 경력까지 있다 보니 강병식의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현대 유니콘스는 미래의 중심 타자감으로 보고 그에게 큰 기대를 가졌고, 강병식이 상무에서 전역한 2002년, 구단 재정이 좋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금 1억 6,000만원을 주고 입단시켰다.[8]
2.2. 현대 유니콘스
|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2002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아마추어 시절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국가대표로도 몇 번 차출된 데다 프로 데뷔 전 병역 문제까지 해결했다 보니 당연히 기대를 많이 받았고, 실제로 현대의 중심 타자로 자리잡을 걸로 보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하면서 백업에 머물렀다. 결국 프로 데뷔 첫 해인 2002년 성적은 89경기에 출장해 타율 0.208, 6홈런, 20타점으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박재홍이 KIA로 트레이드되며 외야수로 기회를 받을 걸로 보였지만 43경기 타율 0.138이라는 전년도보다 더욱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더군다나 2000년대 초중반의 현대 유니콘스는 사기급 라인업을 자랑하는 강팀이었는데, 클리프 브룸바라는 거물 외국인 선수가 있었고, 1루 자리에는 이숭용도 건재[9]하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외야수로 쓰자니, 여기에도 심정수, 전준호, 송지만, 래리 서튼 등 이름만 들어도 걸출한 선수들이 즐비했다.[10] 결국 계속해서 2군에만 머물면서 실력이 정체되었다. 아주 가끔가다 1군 선발출장 기회를 잡아 뜬금포 있는 영양가 있는 경기도 했지만, 1군에서 살아남기에는 수비가 너무 수준 이하[11]였다. 그래도 대타로는 꽤나 괜찮은 성과를 보여줬기 때문에 꾸준하게 프로 엔트리에 남을 수 있었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대타 홈런 3위로 9개를 기록했다.[12]
그나마 현대의 마지막 우승인 200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백업 멤버로 승선하면서 우승 반지는 하나 챙겼다.
2.3.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
과거 영광의 멤버들이 대부분 흩어지고, 팀도 넥센 히어로즈로 바뀐 후인 2010년에야 비로소 기회를 많이 부여받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1군에서 100경기 이상 출장. 1군 107경기 300타석에 출전해 9홈런 30타점에 0.287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 공헌을 인정받아 전년 대비 2,700만원이 오른 8,000만원의 연봉도 받았다.
특히 2010년의 넥센은 이택근 이후 발빠른 야수가 없었는데 장기영이 프로 10년차에 접어들어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면서 진가를 보여줬다. 최하위를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 중심에는 강병식과 장기영이 있었으므로 2010년 타자들중 최고의 수확이었다.
2010 시즌을 끝으로 고령의 이숭용이 주장직에서 사임하자 코칭스탭의 결정으로 주장직에 올랐다. 이숭용 외에도 송지만[13]이라는 훌륭한 베테랑이 있었지만, 역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였기 때문에 그보다 더 젊은 강병식이 주장으로 선임[14] 되었다.
2011 시즌에는 허벅지 근육통 때문에 일단 2군으로 내려간 상황이었다. 첫 주전을 차지한 전년도에도 좋은 활약을 해 11시즌도 기대를 받았지만 4월까지의 기록이 2할 타율도 안 되는 처참한 성적을 찍어 버렸다. 그나마 출루율은 꾸준히 3할을 유지했던 게 다행이다. 그래도 5월 3일 아킬리노 로페즈를 상대로 3:3 상황에서 투런 홈런을 작렬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5월 들어서 타율은 2할까지 끌어올렸긴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이후 다시 2할도 안되는 타격감을 보이면서, 타율 0.174로 2011 시즌을 마감했다.
당시 개인과 팀성적이 워낙 처참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1군에 잘 나오지도 못하다 보니 '왜 강병식이 주장이 됐지?' 하고 의문을 가지는 넥센 팬들도 많았다.
2011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게 될 예정이었지만 팬들은 강귀태와 강병식보다 다른 선수를 데려오는 걸 희망하고 있었다. 송신영이라든가[15].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결국 2011 시즌에 거하게 삽질을 했기 때문인지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건 강귀태도 마찬가지. 송지만, 김수경도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에 이택근이 돌아오면서 그의 존재는 다시 잊혀갔다.
2012년에도 주장이었지만 2군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잠시 1군에 올라왔다가 결국 7월에 주장을 아예 이택근에게 물려주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구단과 합의하여 8월 11일 이후로는 남은 시즌을 2군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었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인성 그리고 성실함으로 선수들과 코칭스탭으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팀 특성상 선수 이동이 대단히 잦아 팀 케미 유지가 힘든데 강병식은 성적은 부족했을지언정 선수단을 하나로 뭉치도록 해 주었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 넥센에 온 심수창, 박병호와 자주 대화하면서 무리 없이 팀 분위기에 융화시켰다. 성적으로는 뛰어난 족적을 남긴 야구선수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야구인이라는 평가에는 부족함이 없다.
3. 지도자 경력
3.1. 넥센- 키움 히어로즈 코치 시절
3.1.1. 2012 ~ 2016년
2011 시즌 종료 후 김시진 감독을 위시한 코칭스태프가 꾸준히 코치직을 제의했다고 한다. 성공하지 못한 선수 생활에 강한 미련을 갖던 강병식은 2012 시즌까지 선수생활을 이어 갔지만, 같은 포지션의 1루수 박병호가 대단히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지명타자로 나온 오윤과 오재일이 시즌 초까지만 해도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다. 결국 1군에서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2군에서 전전하자 주장직을 이택근에게 넘긴 뒤, 얼마 후 구단과 합의하여 잔여 시즌 동안은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게 됐다. 커리어는 부족했지만, 주장과 코치직을 구단에서 먼저 제안받은 걸 보면 노력과 인품은 인정받은 셈.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곧바로 2군 타격코치로 선임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2군 코치 시절에는 평가가 매우 좋았다. 2군 선수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서 지도를 잘 한다는 증언이 2군 경기를 직관한 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으며, 선수들의 성향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있는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또 2군 수위 타자들이 1군으로 승격 및 트레이드된 상태에서도 2군의 타격 성적이 최상위권을 랭크하고 있자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
사고를 치거나 부상과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고자 2군에서 1군으로 올라간
2014 시즌 후 2군 타격코치 자리에 은퇴한 송지만[18]이 선임되면서 1군 타격보조코치로 보직을 이동했다.
2016 시즌 후 심재학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되자, 1군 메인 타격코치가 됐다.
3.1.2. 2017년
2017 시즌 신인왕 이정후를 배출하고, 개인이나 팀이나 타격 스탯 상으로는 중상위권을 꾸준히 마크하고 있지만, 찬스에서 심각하게 물타선이 되는 점으로 인해 선수 개개인을 지도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으나, 팀 전체의 타격흐름을 조율하는 1군 타격코치로서의 면모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이 부분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인 게, 강병식이 1군 메인타격코치가 된 2017년 이후 넥센타선이 개개인의 성적은 그럴 듯하나 찬스상황에서 효율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당장 목동보다 넓다는 고척 스카이돔으로 옮기고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팀 장타력도 크게 줄었다는 2016년에도 팀 타율 2할 9푼, 팀 득점권 타율 3할 7리[19]를 기록했는데, 2017년에는 팀 타율과 팀 득점권 타율이 모두 2할 9푼[20]이다. 거기에 잔루가 심각하게 증가했는데, 2016년과 17년 사이 팀 총 타석 수는 10여개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잔루가 200개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출루시킨 주자들을 불러들이는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2016년 같이 50홈런 치는 4번 타자 박병호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21], 오프시즌 중 선수단에 그 외에 다른 심각한 전력누수가 일어난 것이 아닌데도 이렇다.
3.1.3. 2018년
박병호가 돌아왔음에도[22] 찬스상황에서의 타격 부진[23]은 여전하며, 4월 초 넥센이 KIA와 롯데[24]를 상대로 졸전[25]을 펼치며 5연패를 하자, 그 원인이 된 타선 부진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장정석 감독과 함께 비판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타선이 다시 맹타를 휘두르자 욕이 줄어들었다. 이해 최고의 수확은 입단 6년차 김규민, 4년차 송성문, 2년차 김혜성이 1군에서 잘 통한다는걸 보여주기도 했다.3.1.4. 2019년
공인구 반발력으로 인해 10개구단 타자 전원이 이전보다 더 못한 성적을 보여주면서 드디어 공인구 빨이 였냐 라는 드립을 당하는 와중에 박병호가 다시 홈런왕에 복귀[26]를 하면서 타자들 몇몇 또한 2군에서 재정비를 하면서 포텐이 만개하나 싶었다.하지만, 가을야구에서는 완전 투수조 타자조 엇박자로 놀아나면서 코치 커리어 첫 준우승을 겪었다.
3.1.5. 2020년
9월 이후 타자들이 단체로 삽질을 거듭하다 보니 엄청나게 까이고 있다. 지난 19시즌의 좋은 타격 성적은 히어로즈 역대 최고의 타자 용병인 제리 샌즈 빨이라고 폄하당하는 중. 용병인 테일러 모터를 데려왔지만, 성적은 숀 헤어 급으로 못하면서 케미스트리만 해치다가 결국 퇴출하고, 자가격리로 2주간 출장을 못한 에디슨 러셀은 그나마 좀 모터보다는 낫다 싶었지만 신통치 않았다. 결국 5위로 시즌 마감을 했다. 와일드카드에 직행했으나 1경기만에 연장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다.3.1.6. 2021년
팀 타선이 4월 15일 기준으로 2할 2푼 2리로 물타선이 되는 바람에 2020 시즌 보다 더 신나게 까이고 있다. 투수 코치진이 여러 번 물갈이되는 동안 단 한번의 보직 변경도 없어 타코판 홍원기 소리를 듣고 있다.[27] 후반기 팀이 이정후의 이탈로 인해 15경기 36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키움 팬덤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즌 팀 타격 WAR가 8위이고, 그 밑의 팀은 꼴지 다툼을 하고 있는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인 것을 고려하면 가을야구 경쟁팀 중 타격이 가장 부진하다. 물론 그 분의 마구잡이식 야수 운용도 영향을 미쳤지만, 기본적인 타격 지도 면에서의 강 코치의 책임이 있음이 분명하다.지난해와 다를 바 없이 두산 베어스에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대패를 당하면서 5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3.1.7. 2022년
시즌 초반에는 키움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강 코치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모습도 종종 나왔다. 하지만 그 뒤로 팀 타율 10위, 팀 타점 및 득점 8위, 팀 OPS 9위 등 주요 지표에서 최하위를 달리고 있어 타격 멸망의 주범으로 찍혔고, 온갖 해괴한 훈련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팀의 타자 유망주들이 죽을 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으며, 결정적으로 kt로 이적한 박병호가 전성기 시절의 몸통 스윙으로 시즌 초반부터 홈런 1위를[28] 달리는 모습에 반해 점점 정신 못 차리는 야시엘 푸이그를 보며 팬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타선 내에서 이정후가 엄청난 하드캐리를 하고 있는데다 최상위권을 자랑하는 투수진, 특히 불펜 투수들 덕분에 팀 자체는 SSG, LG와 함께 엄청 선전하고 있어 강병식이 어느 정도 묻히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다. 6월 이후로는 키움 팬들 사이에서 강병식을 투수코치라고 부르는 등 아예 타격코치 취급조차 하지 않는 웃긴 밈까지 생겨버렸다. 그리고 불펜진이 지치면서 후반기 불펜 평자가 최하위를 기록하며 팀이 내리막을 걷자 2군으로 내리라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8월 25일 홍원기 감독이 분위기 쇄신차 송신영 투수코치를 1군 엔트리에서 말소하자 팬들 사이에서 차라리 강병식을 말소하지 그랬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8월에 부진했던 키움 타선이 9월에 다시 반등하였는데 특히 9월 29일 문학 SSG 랜더스 전에서 9번 타자 송성문이 멀티 홈런 포함 6타점을 쓸어담았다.
2022 시즌 팀 최종 타격 성적은 타율 .236(리그 8위), 장타율 .302(리그 9위), wRC+ 75.9(리그 9위)로 대부분의 타격 지표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 2019년 두산의 1군 타격코치인 이도형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29]로 평가가 매우 좋지 않았다.
3.1.8. 2023년
벌써 6년차지만 올 시즌에도 보직 교체 없이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답답한 팀 타격으로 키움 팬들에게 철밥통이라고 욕을 먹고 있다.[30] 7시즌 동안 1군 타격코치를 역임하고 있는데, 여태껏 한 것 없이 팀 타선만 홀라당 말아먹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마찬가지로 막장 타코로 욕먹는 이도형도 저 정도는 아닐 정도로 심각하다.결국 타격 부진의 책임을 지고 4월 11일 팬들의 바람대로 1군에서 말소되면서 고양(2군) 수석코치로 내려갔다. 공석이 된 1군 타격코치 자리는 기존의 보조코치를 맡던 오윤이 맡는다.
강병식 코치가 2군으로 내려간 이후에 키움 타격이 잠시 살아나는 듯 했으나, 얼마 안 가 다시 죽어버리면서 키움 팬들은 이제 강병식 탓조차 못하게 됐다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2군에서 박주홍이나 주성원, 박찬혁[31]의 2군 타격 성적은 유의미하게 상승한 것을 보고 몇몇 키움 팬들은 그나마 2군에서 유망주 육성이 어울리는 체질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 와중에 탱킹한답시고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최원태를 내주고 반대급부로 넘어온 이주형이 오자마자 호성적을 내면서 내년을 기대하게끔[32] 만들었다.
시즌이 종료된 후 10월 15일 발표된 2024 시즌 코칭스태프 명단에서 잔류군 야수코치로 보직을 옮긴 게 확인됐다. 하지만 키움 팬들 사이에서는 당장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도 모자란데 어찌어찌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며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33] 다만 잔류군으로 옮겨서 키움에서
3.2. SSG 랜더스 코치
3.2.1. 2024년
그런데, 2024년부터 SSG 랜더스의 1군 타격코치로 이적한다는 단독 보도가 나왔다. SSG 1군 타격코치로 이적하면 정들었던 키움 히어로즈를 16년만에 떠나게 된다.[34]누가 봐도 과거 현대-히어로즈 시절 선배였던 이숭용 SSG 감독의 부탁으로 부임한 걸로 보이는데, SSG 랜더스 팬들은 기껏 이진영과 재계약 포기하고 새로운 타격코치를 데려온다고 했는데 정작 영입해온 게 키움에서 타격코치로 평이 무척 나빴던 강병식이라 그야말로 경악하는 중이다.[35] 반면 키움 팬들은 강복절을 외치면서 대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시즌 내내 끔찍하고 답답한 모습만을 보여주며 SSG가 팀 OPS 9위[36]를 달성하게 하는 주역이 되며 여기서도 평가를 뒤집지 못했다. 즉 이진영이 1군 타격코치를 맡던 시절보다 팀 타격 성적이 대폭 떨어졌으며 차라리 이진영이 타격코치를 하던 시절이 훨씬 나았다고 평가하는 팬들도 많아졌다. 송신영 투수코치에 가려져서 그렇지 SSG 팬들 내에서도 김무관과 함께 SK-SSG 구단 역사상 최악의 타격코치로 취급하는 중. 그냥 이숭용, 송신영, 오준혁이랑 같이 손잡고 나가라는 여론이 많을 정도로 험악해졌다.
한편 SSG와 헤어진 이진영을 1군 타격코치로 데려간 삼성 라이온즈는 정규시즌에 이진영 특유의 풀스윙 주문으로 낮은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했으나, 홈런 갯수 1위와 장타율 3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또한 포스트시즌에 김헌곤, 르윈 디아즈 등이 홈런공장장으로 활약하게끔 했다.
시즌 종료 후 당연히 타격코치가 교체될 걸로 보였지만, 잔류 명단에 들었고 2025년에도 1군 타격코치를 맡는 게 확정. 이에 많은 팬들이 경악하는 중이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성적 | ||||||||||||||||
<rowcolor=#FAB93D>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00 | 현대 | 군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 ||||||||||||||
2001 | ||||||||||||||||
2002 | 89 | .208 | 27 | 3 | 1 | 6 | 20 | 16 | 0 | 11 | 3 | 35 | .281 | .385 | .665 | |
2003 | 43 | .138 | 9 | 0 | 1 | 2 | 11 | 6 | 0 | 12 | 1 | 17 | .282 | .262 | .544 | |
2004 | 16 | .176 | 3 | 1 | 0 | 0 | 1 | 0 | 1 | 3 | 0 | 5 | .286 | .235 | .521 | |
2005 | 94 | .247 | 45 | 10 | 0 | 6 | 20 | 25 | 2 | 27 | 4 | 44 | .357 | .401 | .758 | |
2006 | 93 | .218 | 29 | 7 | 1 | 4 | 25 | 16 | 1 | 19 | 4 | 28 | .333 | .376 | .709 | |
2007 | 91 | .274 | 37 | 4 | 0 | 4 | 17 | 11 | 0 | 13 | 0 | 24 | .333 | .393 | .726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08 | 우리-서울-넥센 | 71 | .269 | 32 | 8 | 0 | 4 | 17 | 12 | 0 | 14 | 3 | 18 | .355 | .437 | .792 |
2009 | 54 | .250 | 19 | 4 | 0 | 2 | 14 | 9 | 2 | 13 | 3 | 21 | .376 | .382 | .758 | |
2010 | 107 | .287 | 72 | 9 | 1 | 9 | 30 | 32 | 2 | 34 | 11 | 51 | .391 | .438 | .830 | |
2011 | 77 | .174 | 29 | 8 | 1 | 2 | 17 | 16 | 2 | 15 | 2 | 53 | .249 | .269 | .518 | |
2012 | 26 | .200 | 6 | 2 | 0 | 0 | 2 | 4 | 1 | 5 | 1 | 9 | .333 | .267 | .600 | |
KBO 통산 (11시즌) |
<rowcolor=#191919> 761 | .236 | 308 | 56 | 5 | 39 | 174 | 147 | 11 | 166 | 32 | 305 | .334 | .376 | .710 |
5. 기타
- 별명은 뵹식씨, 강캢 등이 있다. 뵹식씨는 '봉식씨~' 하는 사채 광고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 한정으로 주자분쇄기, 주자살인마 라는 별명도 2010 시즌 자주 쓰였다. 루상에 주자가 없으면 타격이 김현수급이지만 만일 주자가 나가있으면... 또 못할 때는 강병신이 된다. 하필 초성도 같고, 그가 주장직을 맡았을 때는 '강캡 + ㅄ'이 되어 강캢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2군 타격코치가 된 후 넥센 히어로즈 2군이 불빠따를 앞세워 2군을 평정하자 갓병식이란 별명도 자주 쓰인다.
- 강병식의 현역 시절 응원가 '괜찮아요'는 안태영이 이름만 바꿔서 물려받았는데, 안태영이 2군에서 있던 시절 강병식이 아껴줬다고 한다. 둘이 수비 포지션도 비슷하다. 우투좌타라는 점도 같고.
- 강병식이 현역 시절 사용한 25(현대), 36(현대, 넥센), 33번(넥센)과 지도자 시절 사용하는 77번은 마치 이승엽 감독의 등번호를 연상케 한다. 이승엽 감독은 현역 시절 36번(삼성, 지바 롯데), 33, 25번(요미우리), 3번(오릭스)과 감독 데뷔 후 77번(두산)을 사용했다.[37] 우연히도 두 명의 포지션 역시 1루수이며 좌타자이다.[38] 하지만 이승엽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두산은 초반 승승장구하고 있지만[39] 강병식 코치가 지도하는 키움의 타격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 키움 히어로즈 타격코치 시절 특이한 훈련 방법으로 화제가 됐었다. 입에 웨하스를 물고 타격하기, 등에 물탱크를 메고 스윙 연습하기, 집게발로 뒷다리를 잡고 스윙하기, 배트 윗면를 잘라 수건을 붙인 배트로 스윙하기, 수박만한 공 치기, 밴드로 하체를 묶고 타격하기,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 리본으로 연결하고 타석 서기, 공을 던져 공을 맞추는 훈련 등 여러 기상천외한 타격 훈련들을 시도했다. #
6. 관련 문서
[1]
~4월 10일
[2]
4월 11일~
[3]
마해영의 경우처럼 프로 지명을 받은 뒤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먼저 수행한 뒤 팀에 입단했다.
[4]
우리가 원하는건~ 홈!런! 힘차게 홈런을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홈런 날려~ 힘차게 홈런을 날려라~ 홈런!
[5]
이 응원가는 추후 현대에서 승계받는 히어로즈 구단의 팀 응원가가 된다.
[가사]
넥센 히어로즈 안타 강병식~ (HEY!) 안타 강병식~ (HEY!) 안타 강병식~ (HEY!) 넥센 히어로즈 안타 강병식! (HEY!)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강병식!
[7]
후에
안태영이 물려 받는다
[8]
2002년 현대는 모기업의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신인 계약금으로 꽤나 많은 돈을 썼는데,
조용준에게 5억 4,000만원,
김민우에게 3억 4,000만원,
이대환에게 3억 1,000만원을 썼다. 심지어 2차 1라운드로 뽑은 고졸 신인
배힘찬에게도 계약금 1억원을 줬다.
[9]
실제로 이숭용은 2003년까지 외야수로도 꽤나 많이 뛰었다.
[10]
실제로 현대의 외야진은 리그 전반적으로도 꽤나 튼튼한 편에 속했고, 덕분에 심정수나 전준호도 안배 차원에서 지명타자로 출장하는 케이스도 꽤 있었다. 더군다나
이택근이 중견수로 자리잡으면서 강병식이 외야에 설 자리는 더더욱 없어졌다.
[11]
이와 비슷하게 보면 팀내 선배이자 동료인
정수성,
김일경이 이런 방식으로 프로생활을 길게 했다.
[12]
1위는
이재주의 20개.
[13]
이숭용과 나이는 2살차이다. 물론 이숭용이 형
[14]
당시 넥센 멤버들 중 강귀태, 김일경, 정수성, 장기영 등등 많았지만 다들 개인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누가 누굴 가르칠만한 성적도 아니었다. 그나마 가장 젊은층에 속한 강정호가 있었지만 짬밥이 고작 4년차여서 제외였다. 거기다가 강정호에게 집중되는 견제가 심해지면서 있던 멤버들도 사라진채 타선에는 홀로서기를 한 것 같은 강정호의 2011년은 진짜로 커리어로우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15]
송신영이 거짓말 같이 7월 31일 새벽에 급작스럽게 LG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16]
이날 벤자민 주키치 vs 김병현이는데 염경엽이 1+1 전략을 쓰면서 중간에 강윤구를 등판시키면서 LG타선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보냈다. 그리고
불과 이틀전에는 양팀 대환장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17]
이때까지만 해도 사고치기 전에 현역 때는 근성이 있었을 때다.
[18]
하지만, 강병식과는 다르게 메끄럽지 못한 은퇴식이었다. 자세한 건
일반개인팬 항목에서 참조.
[19]
팀 타율은 2위, 팀 득점권 타율은 1위이다. 팀 장타력이 떨어졌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넥센이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한 원동력 중 하나. 그러나 넥센의 전임 1군 타격코치가
박흥식과
허문회 였다 라는걸 잊지말자.
[20]
팀 타율은 4위, 팀 득점권 타율은 7위이다. 다만 1위팀인 KIA를 제외하고는 2위부터 7위까지 차이가 6리 정도고 2할 9푼이 그렇게까지 낮은 수치는 아니긴 하지만, 작년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 특히 9월 이후 이기고 있던 경기를 추가점을 못내서 뒤집힌 사례가 폭증함에 따라 이 부분이 훨씬 뼈아프게 다가온 것이 사실.
[21]
물론 이 부분은 현재진행형이었으므로 참작의 여지는 있다.
[22]
박병호에게 고척 돔구장은 KBO 리턴 이후 첫 시즌을 가졌다. 그가 메이저에 진출하기전 본래 사용하던 구장은 목동구장이다, 목동 보다 고척은 투수 친화구장이었다.
[23]
팀 득점권 타율이
4월 12일 현재까지 2할 2푼 4리밖에 안된다. 당연히 꼴찌
[24]
4월 11일 전까지 2승 11패로 그야말로 최악인 상태였다.
[25]
4월 12일 경기에서는 선발투수
송승준이 허벅지 통증으로 2회 1사 후 급작스레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7회 2사
김하성의 안타가 나올 때까지 퍼펙트로 꽁꽁 묶였다. 경기는 결국 12:0 완패.
[26]
키움 시절 마지막 홈런왕을 기록
[27]
홍원기는 팀의 대표적인 철밥통 코치였다가, 감독까지 승진했다. 이 때문에 차기 감독까지 예정된 게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
[28]
5월 12일 기준 벌써 12개의 홈런을 쳤다.
[29]
근데 강병식도 그해에 1군 메인 타격코치 였다. 두팀 모두 물빠따 타선이며 답이 없었다.아니 이도형은 기복이란게 있기라도 했다.
[30]
특히 4월 7일 경기까지 무홈런이다.
[31]
이미 데뷔 1년차에 대단한 파워툴을 보여줬으나 갈수록 답답한 선구안 개선을 보여주지 못한것에 아직까지 문제가 있긴하나보다.
[32]
거기다가 LG 시절 못쳤던 홈런을 트레이드된지 얼마 안되어 6개나 쳤다. 즉 이전까지 보여주지 못한 성적을 단 반년만에 해냈다는 그 자체가 대단할 지경이다.
[33]
다만 2023년 키움이 최하위로 시즌을 마쳐 대대적인 팀 개편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나게 된 코치는
박재상 작전코치,
김지수 주루코치밖에 없고, 나머지는 기존 코치들의 보직을 조정하거나 은퇴한
박준태를 신규 코치로 선임하는 것에서 그치는 등 코칭스태프 개편에서 큰 차이가 없는 편이었다.
[34]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됐기 때문에 엄밀히 법적 전신은 아니지만, 현대 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22년 만에 새로운 팀으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35]
사실
이숭용 감독 부임하기 전부터 1군 코칭스태프 대부분이
김성용 단장에 의해 대폭 물갈이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이숭용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송신영이 오면서 SSG 팬덤은 패닉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36]
이진영이 1군 타격코치를 맡았던 지난 시즌에는 4위였다.
[37]
3번만 제외하면 순서 상관없이 거의 비슷하다.
[38]
강병식은 우투, 이승엽은 좌투.
[39]
5월 이승엽 감독의 두산은 4월에 비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