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4:29

오윤(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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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2 김창현 · 73 오윤 · 74 문찬종 · 78 홍원기 [[틀:키움 히어로즈 감독|
]]
· 88 이승호 · 89 박도현 · 90 박정음 · # 정찬헌
· # 김준완'''
2군
'''70 김동우 · 71 박준태 · 81 설종진 [[틀:고양 히어로즈 감독|
]] · 82 김태완
· 86 오주원 · # 장영석'''
잔류군
77 이병규 · 83 노병오
프런트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군 입대 선수 등록 선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오윤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2번
스코트쿨바
(1998)
오윤
(2000~2001)
강귀태
(2002~2007)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2번
바워스
(2003)
오윤
(2004)
우원식
(2005)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2번
심정수
(2002~2004)
오윤
(2005~2007)
팀 해체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32번}}}
팀 창단 오윤
(2008~2009)
손승현
(2010~2010.4.27.)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6번
최현종
(2008)
오윤
(2010)
김수화
(2011)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62번
장민석
(2008~2010)
오윤
(2011~2014)
송우현
(2015~2017)
한화 이글스 등번호 68번
조영우
(2014)
오윤
(2015)
신성현
(2016)
{{{#fff [[넥센 히어로즈|넥센]] / [[키움 히어로즈|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3번}}}
채종국
(2012~2016)
오윤
(2017~)
현역
}}} ||
파일:24 키움 프로필_오윤.png
<colbgcolor=#570514><colcolor=#FFFFFF> 키움 히어로즈 No.73
오윤
吳潤 | Oh Yun
출생 1981년 9월 8일 ([age(1981-09-08)]세)
충청남도 당진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합덕초등학교 (졸업)
온양중학교 (돌업)
북일고등학교 (졸업)
신체 185cm | 105kg
포지션 외야수, 포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0년 2차 2라운드 (전체 12번,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2000~2007)
우리- 서울- 넥센 히어로즈 (2008~2014)
한화 이글스 (2015)
지도자 넥센 히어로즈 육성군 수비·주루코치 (2017~2018)
키움 히어로즈 1군 수비·주루코치 (2019~2020)
키움 히어로즈 1군 타격보조코치 (2021~2023)[2]
키움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2023~)[3]
응원가 팬텀 - 《 ICE[4][가사1]
대성 - 《날 봐, 귀순》[가사2]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3~2004)
파일:키움 히어로즈 심볼.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넥센 히어로즈, 한화 이글스 소속의 외야수이자 좌완 대타 스페셜리스트. 現 키움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2. 선수 경력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2차 2라운드에 전체 12번으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고교 시절에는 제법 괜찮은 타격 실력을 자랑하던 유망주 포수였다. 당시 에이스였던 조규수 배터리를 이뤄 천안북일고의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었고, 그 때문에 제법 높은 순번을 받아 프로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 현대 유니콘스는 사상 초유의 강팀이었고, 이 팀의 주전포수는 박경완이었다. 그리고 박경완이 FA로 나가니까 들어와서 회춘해버리는 김동수...[7]

결국 포수로는 2군에서만 뛴 채 외야수로 전향[8] 했다가 2003년 초 상무 야구단에 입대했고,[9]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전역하며 복귀했다. 그리고 2005년에 이르러 감격적인 1군 데뷔. 하지만,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아직도 험난했다. 정수성처럼 발이 빠른 것도 아니[10]었고, 유한준처럼 수비가 특출난 것도 아니라서[11] 자리를 잡기가 정말 애매했다. 나름대로 퓨처스리그에서 장타력을 인정받고, 2007년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도 나갔지만, 1군에서는 영 기량 발휘가 되지 않았다. 주로 대타로 출전했는데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파일:/image/109/2012/07/09/20120709061808_201207090237775777_1_0.jpg
{{{#white [[넥센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시절}}}
그래서 야구 선수로서 이름을 알렸다기 보다는 애먼 걸로 자주 이름을 알렸다. 2010년 말에 오윤을 두고 누구를 닮았냐고 MBC 스포츠 플러스의 정우영 캐스터와 한만정 해설위원 말싸움한 거라든가[12], 2011년 경기 도중 애먼 여자를 오윤의 여친으로 잡아서 곤혹스럽게 한다던가….

그래도 2011년에는 기회를 조금씩 얻고 있다. 어떻게든 1군에 악착같이 붙어 남는 것이 가장 큰 과제. 그리고 대타로 나올 때마다 타점을 올려야 한다. 드디어 5월 6일 한화와의 원정 경기에서 7회초 대타로 나와서 찬스를 이어가는 안타, 호수비, 그리고 8회초 동점 투런 홈런을 치면서 1군 생존의 가능성을 높였다. 5월 10일까지 대타 성공률이 무려 7할 5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찍으면서, 생애 첫 두 자리수 타점까지 올렸다. 언론에서도 슬슬 그를 주목하고 있다. 프로 데뷔 11년만에 처음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것.

5월 14일 엘넥라시코의 막장경기중 11회말 끝내기 안타를 쳤다!! 주자가 2루에 나가있는 상황에서 임찬규 코리 알드리지를 거르고 오윤을 상대했다. 혹시 안타가 터질 경우를 대비하여 엘지의 외야수는 전진수비를 한 상태였는데 하필 오윤의 타구가 중견수 쪽으로 멀리 뻗어나갔고 이대형이 잡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놓치고 말았다. 2루에 있던 주자가 여유있게 홈으로 들어오면서 막장경기 종료.

주전으로 몇 차례 기회를 얻었지만, 대타로 나설 때만큼의 활약은 보이지 못하면서 결국 6월 들어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조중근이 주전으로 잘 하면서 기회가 줄어든 탓도 있는 듯. 하지만, 대타로 0.429라는 놀라운 타율을 기록했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대타요원으로 1군 합류는 가능할 듯.

1군으로 돌아와 6월 24일 삼성과의 대구 원정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승부의 쐐기를 박는 3타점 2루타를 터뜨렸다. 확실히 대타로는 성적이 정말 좋다.

2011년 12월 17일 결혼식을 올렸다.

2012시즌에는 개막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들었다. 오른손 대타로 주로 나오면서 왼손 투수 상대로는 선발로 들어가고 있다. 4월 18일 KIA와의 경기에서 3안타 2타점을 기록하면서 경기 MVP에 선정되었다. 그런데 MVP 소감이 좀 서글프다. 1군에 남는게 목표라고... 4타수 3안타 2타점, 오윤 결승타 쐐기타 모두 해결

5월 9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6:7으로 쫓긴 8회말 1사 1, 2루에서[13] 대타로 나와 한희를 상대로 승부의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치면서 팀의 6:11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이 날 첫 딸도 얻었기 때문에 본인으로서는 정말 최고의 하루였을 듯. 그런데 이런 날 KBSN에서는 인터뷰 대상으로 5타수 2안타 4타점의 박병호를 골랐다. 오윤으로서는 좋은 날 기념 인터뷰를 하지 못해서 조금은 억울할지도.[14] 뭐 대신 박병호가 인터뷰에서 오윤 선수의 득녀소식을 전했으니 잘 됐다.

2012시즌을 정리하면 백업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다만 주전이 되기에는 다소 아쉬운 성적. 그래도 시즌 내내 1군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2013시즌을 시작하며 염경엽 감독이 중요한 상황에서 대타 역할을 맡길 것을 천명했으나 팔꿈치 통증으로 개막 이후 2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딸의 돌잔치를 하던 중 1군에 콜업되고, 5월 7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7회초 1사 1,2루 찬스에서 박동원의 대타로 2타점 역전 적시타를 쳐 팀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다. 기사 이후에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대타로 활용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대타 타율도 3할을 넘고 있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6월 이후에는 유한준, 장기영, 이성열 등의 외야 자원들이 부진할 때 스타팅라인업에도 들고 있다.

10월 14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3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8:3으로 지던 13회말 5점 차 무사 1, 2루에서 2번타자 박동원의 대타로 나와 1루수 직선타 더블플레이로 2사 1루를 만들고 말아 많은 넥센팬들이 슬퍼하게 만들었는데, 다음 타석의 이택근이 투런 홈런을 쳐서 그 슬픔이 가중되었다. 그리고 이날 팀은 스코어 8:5로 패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오윤은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은 결장하고 4, 5차전을 대타로 나와 2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그래도 시즌 후 대타 타율 3할을 넘기며 그런대로 활약한 점이 인정되어 연봉 5,800만원에서 25.9%(1,500만원)가 인상된 7,3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2014 시즌에 들어서는 타선이 전체적으로 각성한 데다가 가끔씩 하던 역할인 우타 대타 역할도 비니 로티노가 대체하면서 1군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9월 확대 엔트리 이후에야 가끔 출장했지만 기록은 7타석 6타수 무안타 1볼넷(...) 당연히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2.3.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image/109/2015/01/21/201501211622773742_54bf5439520f2_99_20150121162517.jpg
{{{#white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시절}}}
2014년 시즌 후 넥센에게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줄 것을 요청하고 구단도 흔쾌히 들어줘서 방출, 이후 한화 이글스 계약하게 됐다. 원래는 KIA와 연봉 협상까지 진행되고 있었는데 김성근 감독의 러브콜로 진로를 틀었다고. 마침 한화는 오윤의 고향 팀이기도 하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고향에서 뛰어보게 되었다.

한화에는 주장 김태균(고교 1년 후배) 등 북일고 출신 선수들도 많고, 마침 한화의 우타 외야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어서( 최진행, 이양기, 정현석 등) 기회를 상당히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2월 22일 오키나와 킨베이스볼 스타디움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에서 7회 말 대타로 나와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냈고, 이 볼넷으로 동점이 되었다. 이후 8-5로 승리하였다. 이 볼넷은 오윤이 대타로 나와 단순히 타격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개인 성적에 대한 욕심보다 팀배팅을 할 줄 아는 타자라는 것을 보여줌과 함께, 수만은 한화팬들로 하여금 2015년 한화의 대타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오윤의 모습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들었다.

2015년부터 새로 적용된 스피드업 룰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구삼진만 두 번 당했다(...). 배터박스에서 벗어날 시 스트라이크 선언에서 벌금 20만원으로 바뀐 후에도 여전히 타석을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하며 정규시즌이 개막하고 나서는 존재감이 완전히 잊혀졌다. 퓨처스리그 출전도 4월 10일부터 18일까지 5경기 출전하고 기록이 없는데 부상이란 소리가 있다.

결국 시즌 내내 1군에 올라오지 못한 채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도 제외되면서 방출되었다. 이럴거면 왜 데려왔냐는 반응이 대다수. 이후 프런트에선 오윤이 은퇴를 선언해서 방출했다고 한다.

3. 지도자 경력

2017년부터 친정 팀 넥센의 2군인 화성 히어로즈 주루코치로 영입되면서 지도자로써의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9년 시즌부터는 1군 주루코치 겸 외야수비코치로 보직이 변경되며 1군으로 올라왔다. 2019년 8월 20일 기존 3루 작전코치인 조재영 코치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으며 임시로 3루 코치로 옮겼다가, 조재영 코치가 복귀하며 다시 1루 주루코치로 복귀했다.

2020년 11월 2일 LG와의 와일드카드 1차전 도중 이정후가 친 파울타구에 팔 부분을 맞으며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2021년 시즌부터는 김지수가 1루 주루코치가 되며, 1군 타격보조코치로 승격되었다.[15]

2023 시즌 개막 이후에도 지난해부터 이어져 오던 팀 타선의 부진이 계속 이어지자 4월 11일 강병식 타격코치가 2군으로 내려갔고, 이에 따라 1군 메인 타격코치를 맡게 됐다. 근데 바꾸자마자 김휘집의 올 시즌 첫 안타를 홈런으로 신고했다. 팬들은 어차피 강병식의 보조코치였기 때문에 기대도 안 하지만, 메인타코라도 제발 잘해서 강병식 안 보게 해달라는 반응이 대부분.

그러나 4~5월 동안 전임 타격코치 시절과 딱히 별 다를 것 없는 3구 이내 노 피어 스윙을 가장한 생각없는 타격, 클러치 상황에서의 병살타 등의 모습이 좀 나오고 있으며 그 결과 간헐적인 대량 득점 경기, 중요 상황마다 1~2점이 필요한 경기에서는 이를 놓치는 전형적인 하위권 팀의 답답한 타격 사이클을 보여주고 있다.

SSG 감독으로 부임한 이숭용과 함께 강병식이 SSG로 떠났으며, 2024년 1군 타자들을 제대로 이끄는 것이 중요해졌다.

일단 2024년 3, 4월에는 타자들의 타격감이 미쳐 날뛰고 있다. 덕분에 ' 강정호의 킹캉스쿨이 있으면 키움엔 오윤스쿨이 있다' 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중.

그러나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작년과 같은 타격 사이클을 보여주며 평가가 급락하였다. 신인 투수들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타선에서 도움주지 못하는 모습은 덤. 키움팬들은 제발 경질하라고 하고 있다 김태완과 사이좋게 나가라

4. 연도별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오윤의 역대 KBO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00 현대 1군 기록 없음
2001
2002
2003 군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4
2005 9 10 .100 1 0 0 0 1 0 0 0 .100 .100
2006 1군 기록 없음
2007 30 41 .195 8 2 0 1 6 5 0 3 .250 .31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8 우리 31 30 .200 6 1 1 0 3 5 2 4 .294 .300
2009 히어로즈 19 24 .125 3 1 0 1 2 2 0 0 .214 .292
2010 넥센 37 61 .180 11 3 0 1 4 6 0 8 .275 .279
2011 57 130 .246 32 7 1 2 18 12 1 15 .333 .362
2012 94 173 .231 40 3 1 3 20 16 5 29 .351 .312
2013 67 117 .291 34 5 0 0 17 14 0 20 .401 .333
2014 6 6 .000 0 0 0 0 0 1 0 1 .143 .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5 한화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0시즌)
<rowcolor=#191919> 350 592 .228 135 22 3 8 71 61 8 91 .329 .316

5. 여담

  • LG 상대로 매우 강했다. 대타 오윤 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치에 떨 정도.

6. 관련 문서



[1] 신인지명 당시에는 포수였다. [2] ~4월 10일 [3] 4월 11일~ [4] 원곡 Boney M의 Gotta Go Home을 클럽튠으로 리메이크한 곡으로, 김연아의 맥주 광고에 삽입된 곡으로 유명하다. [가사1] 우후우 우 우우 우 우우 오윤! ×2 [가사2] 날려버려 오윤 날려버려 오윤 날려버려 히어로즈 오~윤 ×2 [7] 사실 이 서술에는 어폐가 있는데, 김동수가 SK에서 방출된 뒤 현대에 입단했을 때는 이미 오윤이 외야수로 전향한 뒤 군 복무 중이었던 상황이었다. [8] 정수성이 출연했던 인간극장에서 SK와 2군경기를 하는날 수비 연습하다가 정강이를 다친 후배가 나오는데 그가 바로 오윤 이다. 옛된 얼굴의 모습이 보이고 그날 경기 보드판에는 2군 멤버인 최만호, 장정석, 안희봉, 황윤성 등 1군에서 나름 활동하던 선수들도 있다. [9] 박재상, 조동화, 이성우, 박종윤 등이 입대 동기이다. [10] 그와중에 1년 선배이자 상무에서 같이 활동하던 맞후임인 이종욱이 방출 당했다. [11] 유한준의 빠따 포텐이 터진건 2008~09년 상무 시절에 잠재력이 터졌고 제대후에는 점점 성적도 좋아졌다. 잠시나마 2012에는 수술 때문에 안식년을 가지면서 2014년 또 한번의 포텐이 발동했다. [12] 심정수를 닮았느냐, 정수빈을 닮았느냐를 두고 싸웠다(…). 자세한 사항은 정우영 항목 참고. [13] 장기영 히 드랍 더 볼이 작렬하고 LG타자들이 있는 힘껏 추격하면서 4점차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14] 아내한테 가기 위해서 급하게 경기장을 나가서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5] 보통 야수들이 은퇴하고 코치직을 수락하게 되면, 1군에서는 1루 코치 -> 타격보조코치 -> 타격코치 -> 수석코치 -> 감독 같은 지도자 루트를 탄다고 보면 된다. 도루 별로 없던 박재상이 3루 주루코치인게 이상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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