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10-17 14:16:23

9.11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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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납치된 비행편 AA11 · UA175 · AA77 · UA93
납치 의심 비행편 KE085 · DL1989
충돌 지점 세계무역센터 · 펜타곤
관여 인물/단체 알 카에다 · 오사마 빈 라덴 ·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 모하메드 아타
반응 테러와의 전쟁 · 애국자법 · 9.11 메모리얼 파크 · 신세계무역센터


파일:attachment/cherney911terrorism.jpg

1. 개요2. 전개
2.1. 9월 11일 뉴욕
2.1.1. 테러리스트 명단
2.2. 관제소2.3. 첫 번째 테러 - 세계무역센터 1번 건물에 충돌2.4. 두 번째 테러 - 세계무역센터 2번 건물에 충돌2.5. 붕괴 상세/이후
2.5.1. 2번 건물 붕괴2.5.2. 1번 건물 붕괴2.5.3. 7번 건물 붕괴2.5.4. 이후
2.5.4.1. 2001년 9월 11일 당시 입주기업2.5.4.2. 기타
2.6.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2.7.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2.8. 하이재킹당한 항공기들2.9. 테러 직후
2.9.1. 정부 마비
3. 원인4. 반응과 여파
4.1. 정치4.2. 경제4.3. 국제사회4.4. 건축4.5. 항공4.6. 대중매체
5. 현재
5.1. 끝나지 않은 피해5.2. 후속 테러
6. 음모론7. 9.11 테러를 다룬 대중매체
7.1. 게임7.2. 서적7.3. 영화7.4. 드라마7.5. 음악

1. 개요

Never Forget.
절대로 잊지 말라.
[1]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이전의 미국과 그 이후의 미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이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동시다발적 항공기 하이재킹 자폭 테러로 인해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붕괴되고 펜타곤 건물까지 공격받은 사건. 주동자는 오사마 빈 라덴 알 카에다였다. 사망자는 2996명, 부상자는 최소 6261명 으로 전세계 근 현대 역사상 유래없는 대참사이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영상.

2. 전개

2.1. 9월 11일 뉴욕

2.1.1. 테러리스트 명단


사실, 이들 19명 중 15명은 '메카와 메디나, 두 성지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으로, 이들 중 법학대 재학생이나, 재벌 집안의 자녀 등 부유한 가정의 도련님들이 많았다. 자세한 내용은 영어 위키백과 해당 항목으로.

당시 미국의 큰 공항들은 CAPPS I[4]이라는, 공항에 들어온 모든 개개인을 프로파일링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었는데 논문마다 숫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 논문에 의하면[5] 19명의 테러리스트들 중 6명이 CAPPS I 시스템에 걸렸고 2차 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공항에서 걸린 테러리스트들의 숫자는 19명 중 10명이었는데 이 중 6명이 CAPPS I 시스템에 걸려들었고 나머지 4명은 가방 속 내용물과 같은 이유로 인해 2차 수색을 받았다 한다. 문제는 수색을 했음에도 이들이 실질적으로 걸리지는 않았다는 것. 게다가 해당 테러리스트들은 9/11 테러를 벌이기 전, 사전 답사로 보이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CAPPS I에 걸리는 행동들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공항을 사전답사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로인해 CAPPS I과 같은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실용성에 대해 의문들이 쏟아져나왔으며 미국이 곧 CAPPS II를 개발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 CAPPS II는 얼마 가지 않아 SecureFlight 라는 시스템으로 대체되는데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TSA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많은 업계 전문가들조차 그저 CAPPS II를 조금 업그레이드한 시스템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잦다. CAPPS II 라는 뭔가 무시무시한 이름 대신 대중에게 친숙해질 수 있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거부감을 줄이려 했다는 의견도 있긴 하다.

9/11 테러 이후 항공 보안에 관한 문단은 본 항목 하단에 위치한 항공 항목으로.

2.2. 관제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light_paths_of_hijacked_planes-September_11_attacks.jpg

9월 11일, 보스턴의 관제소에서는 이륙한 지 15분이 지난 아메리칸 항공 11편[6]과 교신을 시도하지만, 11편은 10분이 넘도록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제사는 잠시 후 "우리는 비행기을 납치했다. 가만히 있으면 무사할 것이다. 공항으로 회항하고 있다"는 교신을 듣는다. 당시 녹취록. 그런데 사실 이 말은 테러리스트들이 승객들에게만 들으라고 한 말이었지만, 무전기 조작 실수로 관제사가 듣게 된 것이다. 이는 연방 항공국과 공군에게 보고되었지만, 납치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인 데다 당시까지는 미국 내에서 공중납치가 대형사고로 연결되는 일이 없었기에 큰 위협이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AA11편의 사무장이었던 베티 옹이 기내 전화로 비행기의 납치와 그 과정에서 승객이 에 찔렸다는 것을 알렸다. 잠시 후 AA11편은 뉴욕 상공에서 레이더에서 사라졌고, 동시에 베티 옹의 전화도 끊겼다. 녹취록 스크립트, 녹취록 듣기

당시 베티 옹의 녹취록. 사족이지만 내용이 '빈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행기 납치 테러라는 미국 사상 초유의 사태 앞에서,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파악하고 얼마나 자세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겠는가.
BETTY ONG: I think the guys are up there. They might have gone there -- jammed the way up there, or something. Nobody can call the cockpit. We can’t even get inside. Is anybody still there?
아무래도 그들이 그곳에 있는 거 같아요. 그곳에 가있는 것 같은데, 그 통로를 뭔가로 막고 있어요. 조종석은 아무 연락도 없어요. 심지어 우린 들어가지도 못해요. 거기 누구 있나요?

MALE VOICE: Yes, we’re still here.
네 우린 여기 있어요

FEMALE VOICE: Okay.
네.

BETTY ONG: I’m staying on the line as well.
그리고 전화를 끊지 않겠습니다.

MALE VOICE: Okay.
좋아요.

NYDIA GONZALEZ: Hi, who is calling reservations? Is this one of the flight attendants, or who? Who are you, hun?
저, 전화 거신 분 성함이? 승무원 중 한 분인가요, 아니면 누구시죠?

MALE VOICE: She gave her name as Betty Ong.
그녀 이름이 베티 옹 이라는군요.

BETTY ONG: Yeah, I’m number 3. I’m number 3 on this flight – And we’re the first...
예, 내가 사무장이에요..

NYDIA GONZALEZ: You’re number 3 on this flight?
당신이 사무장 입니까?

BETTY ONG: Yes and I have...
예, 그리고...

NYDIA GONZALEZ: And this is Flight 11? From where to where?
그리고 그건 아메리칸 항공 11편이죠? 어디에서 어디로 갑니까?

BETTY ONG: Flight 11.
네 11편입니다.

NYDIA GONZALEZ: Have you guys called anyone else?
다른 곳에 연락을 하셨나요?

BETTY ONG: No. Somebody’s calling medical and we can’t get a doctor -
아니요. 누군가가 치료를 요청했지만 의사를 부를 수 없습니다-

(Beep)
삐소리

MALE VOICE: American Airlines emergency line, please state your emergency.
아메리칸 항공 긴급회선, 긴급상황을 말해주세요.

NYDIA GONZALEZ: Hey, this is Nydia at American Airlines calling. I am monitoring a call in which Flight 11 -- the flight attendant is advising our reps that the pilot, everyone’s been stabbed.
네, 여긴 AA의 니디아입니다. 11편에서 걸려온 전화를 모니터링하는 중이었는데, 거기 승무원이 우리한테 알린 바로는, 조종사들이 칼에 찔린 거 같다고 하네요.

MALE VOICE: Flight 11?
11편 말인가요?

NYDIA GONZALEZ: Yep. They can’t get into the cockpit is what I’m hearing.
네. 제가 들은 바로는 그들이 조종석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네요.

2.3. 첫 번째 테러 - 세계무역센터 1번 건물에 충돌




세계무역센터에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는 순간의 영상. 이 영상은 뉴욕시의 신참 소방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던 프랑스 출신 영화 제작자 쥘 노데가 찍은 것으로, 북쪽 타워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모습이 담긴 유일한 영상이다. 현장의 영상을 상당히 생생히 볼 수 있다.

1번 타워에 충돌한 항공기는 아메리칸 항공 11편[7]으로, 그 중 2명의 하이재커를 포함한 40명의 승객과 승무원 3명을 태우고 비행 중이었다. 초유의 사태에 연방 항공국은 긴장했고, 공군은 사라져 버린 AA11편을 찾기 위해 전투기를 내보냈지만 전투기가 출격했을 때에는 이미 충돌한 지 한참 지난 후인 데다 첫 충돌 비행기가 AA11편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해 근처에서 사라진 AA11을 찾는 헛수고를 벌였다.

러시아워 타임인 아침 8시 46분 뉴욕, 갑자기 한 대의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충돌했다. 사람들은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이 안 되어 혼란스러워했다. 단지 조종사의 조종 실수로 충돌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당장 언론들은 이 '사고'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무역센터에 비상대피가 시작되었으나, 충돌이 일어난 건물은 북쪽 건물이라는 것 때문에, 남쪽 건물의 피난을 중단시키고, 다시 안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최대의 실수였다.

2.4. 두 번째 테러 - 세계무역센터 2번 건물에 충돌


파일:wtc12.jpg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에 부딪히기 직전

한편,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의 교신이 끊어지고, 불규칙하게 비행하고 있는 것이 뉴욕 관제소에서 포착되었다. 비행기는 원래 항로를 벗어나 뉴욕 상공으로 들어왔고,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이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 건물이 불타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서 전 세계에 거의 생방송으로 중계되던 중인 9시 3분,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방송 카메라가 전부 건물을 향해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비행기 테러가 일어났다. 각 뉴스들이 1번 타워가 불타고 있는 모습을 중계하던 도중, 바로 2번 타워로 충돌하는 항공기 테러가 일어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목격한 시민들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2번 타워에 충돌한 항공기는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8]으로, 하이재커 2명을 포함한 승객 26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우고 비행 중이었다.

이제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이것이 단순 사고가 아닌 미국에 대한 테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9] 당시 방송 자료와 뉴욕에 있었던 사람들이 찍은 영상을 보면, 두 민항기의 충돌과 그 과정에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까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담겨있다. 당시 뉴스 생중계를 보면, 세계무역센터 인근 고등학교에서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든가, 주변 건물이나 차에서 폭탄이 폭발했다거나[10], 워싱턴 몰에 불이 난다거나 하는 등 온갖 루머와 사고로 인해 방송사부터 뉴욕시 경찰, 구조대원까지 모두가 완전히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CNN에서는 세계무역센터 바로 아래에서 터진 폭탄이 1번 빌딩이 무너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도해 이후 음모론의 중요한 떡밥으로 작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자 열기와 유독 가스에 견디지 못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WTC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어가는 광경이 뉴스로 생중계되었다.

파일:external/iconicphotos.files.wordpress.com/andrew-card-george-bush.jpg

같은 시각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 수업을 참관하며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부시 대통령은 보좌관으로부터 위에 나왔듯 미국이 공격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11] 이 때 부시는 보고를 받은 뒤에도 아이들에게 계속 책을 읽어주다가 약 7분 뒤에 교실을 떠났다. 이후 조사위원회에게 왜 7분 동안 교실에 머물렀냐는 지적을 받자, 부시는 '학생들과 이후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시간을 약간 지체했다.'라고 해명했다. 사건 당시 백악관 측에서 '부시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즉시 교실을 떠났다'라고 과장해서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

북쪽 타워의 충돌 이전 보인 심상찮은 징후에 긴장하던 연방 항공국은 사안의 심각성에 크게 경악해 본격적으로 미 공군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담당 인력이 매우 부족한 마당에 휴가까지 간 인원도 있어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편 미 공군도 여러 제보와 항공국이 제공한 정보 등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으나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진 데다 그나마도 제대로 된 정보들이 아닌 헛소문들이 많아서 사태 파악이 늦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상정 외의 상황이라 공군도 처음 겪는 일이었고 하필 테러 몇시간 전 훈련까지 겹쳐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전투기를 다시 띄우는 것도 매우 늦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 미 공군과 연방 항공국을 비롯한 수많은 관제 요원들은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수만 대의 비행기들에서 납치된 항공기를 찾아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2.5. 붕괴 상세/이후

2.5.1. 2번 건물 붕괴

두 번째 충돌이 일어나고 56분 뒤인 오전 9시 59분, 남쪽 타워가 무너졌다.


2.5.2. 1번 건물 붕괴

오전 10시 28분, 먼저 항공기가 충돌한 북쪽 타워도 무너졌다.


2.5.3. 7번 건물 붕괴

1번과 2번 건물이 붕괴된 이후, 붕괴된 쌍둥이 빌딩의 파편에 맞은 7번 세계무역센터에도 거대 화재가 발생했다. 이후 오후 5시 21분 길 건너편의 7번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었다.

2.5.4. 이후

파일:stnicholaschurch1.gif
9.11 테러 당시, 성 니콜라스 그리스 정교회 성당. 남쪽 타워가 붕괴되면서 잔해에 깔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파일:Bill Biggart last.jpg
남쪽 타워의 붕괴 직후 3번 세계무역센터[12]. 북쪽 타워가 붕괴되면서 나머지 잔해도 모두 붕괴되었다. 이 사진을 촬영한 사진작가인 Bill Biggart는 이 사진을 촬영한 직후[13] 북쪽 타워가 붕괴되면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파일:wtc4_cleanup1.jpg
붕괴 직후의 4번 세계무역센터.

파일:wtc5_fire_floors.jpg
5번 세계무역센터에 거대 화재가 일어난 모습.

파일:800px-Six_WTC_SW_Corner.jpg
붕괴 직후의 6번 세계무역센터.

파일:external/www.foreignpolicyjournal.com/wtc-collapse.jpg
7번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는 모습.

파일:wfc.jpg
붕괴 이후 피해를 입은 세계 금융 센터.

파일:Verizon_building_damage3.jpg
붕괴 이후 피해를 입은 버라이즌 빌딩.

파일:90west5-large.jpg
붕괴 이후 피해를 입은 90 웨스트 스트리트 빌딩.

파일:Fiterman_hall_damage.jpg
붕괴 이후 건물 일부가 붕괴된 피트먼 빌딩.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7동의 건물이 있었다.

1번 노스 타워[14] 쌍둥이 건물
2번 사우스 타워[15] 쌍둥이 건물
3번 매리어트 호텔[16]
4번 ~ 6번 건물 3동[17]
7번 건물[18]
2.5.4.1. 2001년 9월 11일 당시 입주기업
세계무역센터 문서의 입주 기업 항목으로.
2.5.4.2. 기타
사건 당시 비행기가 충돌한 1번, 2번 빌딩이 무너진 것 말고도 길 건너 있는 7번 빌딩도 1번과 2번 건물에서 떨어지는 잔해에 맞아 화재가 발생하였고, 결국 무너졌다. 7번 빌딩이 무너지기 전인 오후 3시 30분, FDNY 최고지휘관인 Daniel A. Nigro가 붕괴를 우려하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하라는 명령을 내린 덕에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고 한다.[19] 북쪽 타워가 남쪽 타워보다 좀 더 오래 버티기는 했으나 충돌로 인해 충돌부의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전부 끊어져 버렸다. 일부 계단이 무사해 충돌층 위층에서 소수라도 탈출할 수 있었던 남쪽 타워와는 달리 북쪽 타워의 충돌층 위에 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살아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세계무역센터의 테러로 인해 1번, 2번, 3번, 4번, 6번, 7번 건물, 성 니콜라스 그리스 정교회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5번 건물은 대형 화재 및 일부 붕괴, 세계 금융 센터, 90 웨스트 스트리트, 130 케더 스트리트는 화재가 일어났다. 도이치뱅크 빌딩, 버라이즌 빌딩, 세계 금융 센터 3동은 빌딩 붕괴의 잔해에 맞아 구조적 피해를 입고 일부 파괴되었다. 원 리버티 플라자는 붕괴는 면했으나, 겉면이 잔해에 맞아 전부 파괴되었다. 30 웨스트 보행도로는 7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면서 같이 붕괴되었다.

이미 주변 지역은 전쟁터나 다름없는 아수라장이었고, 건물이 붕괴되면서 생긴 충격파는 매우 무시무시했다. 엄청난 양의 먼지와 잔해들이 바람을 타고 시가지 전역을 순식간에 덮어버렸다. 이때 세계무역센터 근처에 있다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이 먼지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질식사하거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음에도 폐암 등 기관지에 관련된 질병에 걸려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건물이 붕괴된 충격으로 생긴 여진이 주변 건물들에게도 엄청난 부담을 줬다는 게 알려지면서 고층 빌딩들의 연속 붕괴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퍼지기도 했다.

2.6.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

그러나 사건은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교신이 안 되는 비행기들도 있었으며 항공국은 모든 비행기의 이륙을 금지함과 동시에 고층 건물이나 대도시 인근을 지나는 비행기들을 감시해야 했다. 공군은 만일을 대비해 전투기의 추가 출격을 준비하였고, 여객기 격추 명령을 허가받으려 했으나 절차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로 인해 지연되는 상황이었다. 동부 지역이 사실상 비행기 테러 공격에 무방비인 상황이 드러나자 미국 정부는 곧바로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워싱턴 DC와 뉴욕 일대의 모든 주요 시설과 공공기관 건물에 대피 명령을 내렸고 추가적인 납치 비행기 수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메리칸 항공 77편[20]의 교신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결국 미국의 국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펜타곤도 오전 9시 37분 46초[21] 서쪽 편에 항공기 테러 공격을 받고 만다. 안 그래도 정신이 나가있던 미국 정부의 지휘 체계는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져 수습이 늦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테러 수준을 넘어서 미국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었다.

펜타곤 서쪽 편[22]
5층: 피해 없음. 전원 생존.
4층: 피해 없음. 전원 생존.
3층: 항공기 파편 피격. 2명 사망.
2층: 항공기 본체 피격. 31명 사망.
1층: 항공기 본체 피격. 92명 사망.

세계무역센터 테러[23] 때에는 범인들이 최대한 건물에 피해를 주기 위해 항공기의 기수를 30 ~ 45도 정도 꺾은 반면에, 저층 건물인 펜타곤에서는 기수를 꺾지 않았다.

파일:external/pentagon.spacelist.org/arielshot-after.jpg

결국 연방 항공국에서 당시 가장 권한이 높았던 벤 슬라이니의 지시[24]로 미국의 모든 영공이 폐쇄되었으며 국내선 항공기는 무조건 착륙, 국제선 비행기는 회항해야만 했다.

2.7.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

한편, 유나이티드 항공 93편[25]도 납치되었다. 이 비행기의 목표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불분명하나, 정황상 워싱턴 DC의 미국 국회의사당이나 백악관을 목표로 한 것만은 분명했다. 영화 《플라이트 93》에선 미국 국회의사당을 목표로 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93편의 승객들은 테러리스트들 몰래 가족들과 전화를 해서 이 비행기가 자살 테러를 목적으로 납치된 것을 알아차렸고[26], 저항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테러리스트들과 싸웠다. 결국 비행기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였다. 이들의 저항으로 미국은 추가 테러로 인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가 있었고, UA93편의 승객들은 미국인들에게 조국을 구한 영웅으로서 존경받았다. 이 UA93편을 중심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플라이트 93》이다. 아래에 기재되어 있다.

2.8. 하이재킹당한 항공기들

  • 파일:attachment/9.11 테러/UA93.jpg [34]
    UA93 -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항공기. 기종은 B757-200이며, 1996년에 첫 비행 후 유나이티드 항공에 인도되었으며 #, 등록번호는 N591UA이다. 승객 37명[35]과 승무원은 7명 총 44명이 탑승했다.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을 출발한 이 항공기의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이다. 예정보다 늦게 출발해서 다른 항공기들과 비슷한 시점에 목표에 도착하기 힘든 상황에 납치당한다. 승객들은 기내 전화로 테러범들 몰래 가족들과 통화하다가 테러범들이 여객기를 납치해서 테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승객들은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며 테러범들을 제압해서 객실을 탈환했다. 하지만 조종석을 공략하던 와중에 이미 조종간을 잡고 있던 테러범이 여객기를 펜실베니아 주의 평야에 추락시키고 만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 플라이트 93[38] 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에는 2006년 9월 8일 개봉되었다.[39] 그리고 여객기가 추락한 장소에는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이 비행기가 워싱턴으로 향하자, 미 공군은 F-16전투기 2대를 긴급 발진시켰으나, 이 사건 당시 훈련 비행을 막 끝낸 상태였기에 공격할 무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무장을 새로 장착할 시간도 없어서 그냥 출동한 것. 이 때문에 조종사들이 전투기 동체로라도 막으려고[40] 했단다. 하지만 당시 정황으로 보면 그 전에 이미 UA93편이 테러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고 한다.

하필 이 4대의 비행기가 선택이 된 이유는 이들이 캘리포니아 같이 보스턴에서 먼 곳으로 가는 비행기였기 때문이다. 멀리 비행해야 하는 만큼 기름이 많이 채워져 있어 그만큼 폭발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종으로 보면 B767-200 1대, B767-200ER 1대, B757-200 2대이다. 항공사는 AA UA이고, 양사의 비행기가 각각 2대 납치되었다. 9.11 테러 이후 조종석 문은 무조건 잠근다는 법[41]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기장과 부기장의 독극물 음식 테러로 모두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도 철저하게 반입을 제한하고 기장과 부기장의 식사 시간도 서로 다르게 설정하며 음식 메뉴도 서로 다른 것으로 제공하게 된다. 또한 독극물 음식 테러 대책도 더욱 강화되어 일시적으로 액체류 반입금지를 시행했고 소지품 반입제한도 더욱 엄격하게 강화되어 손톱깎이마저도 소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2.9. 테러 직후

파일:attachment/136_505.jpg 파일:attachment/AMERICA-UNDER-ATTACK.jpg
뉴스위크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즈
파일:attachment/cnn_911_t323_c.jpg
CNN

당시 미국의 언론들이 뽑은 헤드라인은 "AMERICA UNDER ATTACK". 미 언론들은 '제 2의 진주만'이라고 칭했다. 대부분의 학교도 일제히 임시휴교를 선언하고 학생들을 귀가시켰다.


당시 사건 전후의 미 영공 상황을 다룬 영상. 역사상 첫 SCATANA가 FAA로부터 발령되자 개미가 개미집 찾아들어가듯 순식간에 비행기들이 사라진다.

사건 직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전체 영공이 봉쇄되었다. 이는 SCATANA[42]라는 통제 조치로 미 본토가 적국에게 침략당하거나 공습을 당하는 등의 응급상황을 대비해 미 영공상의 모든 비행기를 강제로 착륙시키고 Navaid 비콘도 전부 꺼버리는 조치인데, 1960년대에 처음 제정되었지만 실제로 사용된 적은 9.11 테러 당시가 유일하다. 이 조치로 인해 영공에 떠있던 약 4,200대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의 비행기에는 강제 착륙 지시가 내려졌으며 모든 비행기의 이륙이 금지되었고 미국으로 접근 중이던 모든 민항기도 회항시켰다. 뉴욕항이 봉쇄되고, 모든 여객선, 화물선들이 정박하거나 회항하고 부두에는 항모전단이 입항했다.

미국은 독립 이래로 미국 영토가 전쟁터가 된 일은 1812년 미영전쟁, 1861년 벌어진 남북전쟁, 1913년부터 1917년 사이 멕시코 혁명 중에 판초 비야가 이끈 멕시코 혁명군이 뉴멕시코주에 침공한 것, 그리고 진주만 공습 이후 다섯 번째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43]

미국의 본토 침공은 독립 이래로 네 번째인데다 그것도 미국의 심장부에 민항기를 때려 박는다는 전무후무한 테러 전략으로 인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정말 제대로 선사했다.[44]

2.9.1. 정부 마비

이 충격은 또 다른 부분으로 미국을 강타했다. 테러와 거의 동시에, 테러 충격으로 미국 지도부가 일시적으로 마비 수준에 처했던 것이다. 국무부에도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감행되었다느니 국회의사당 및 연방대법원 건물에서도 폭탄이 터졌다느니 등등 일어나지도 않은 테러 소식들이 항공기 충돌을 전후로 대대적으로 퍼지며 주요 정부기관이 일제히 마비되었다. 미 상하원 양당 지도부는 테러 직후 급히 전용 방탄차량을 타고 엄중한 호위와 함께 교외의 핵전쟁 대비 시설로 이동했다. 뉴욕항에 항모 2척이 입항했으며 준계엄령과 동시에 모든 항공기들은 착륙해 통제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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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PD[45]에서는 근처에 있던 버거킹을 임시 본부로 사용했다.

공중 납치한 민항기를 사용해서 자폭 테러를 한다는 발상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기상천외한 작전이지만 불과 911 테러 6개월 전에 《 폭스 뉴스》에서 방영한 엑스파일의 스핀오프 시리즈 《론 건맨》[46] 1시즌 1화에서, 미 정부가 민항기를 납치하여 세계무역센터에 충돌시키려 한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한편으로 톰 클랜시의 《Debt of Honor》라는 소설[47]의 마지막 부분에, 일본인 기장이 여객기를 몰고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 중인 미국 국회의사당에 돌진해서, 미 정부 요인 중 반수 이상이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문에 톰 클랜시는 9.11 직후 한층 더 유명해졌고, 실제로 CNN는 사건 초기 방송에서 톰 클랜시와의 생방송 중 인터뷰를 하루에도 수차례 했다. 그리고 펜타곤은 할리우드의 유명 시나리오 작가들을 불러 모아 '가능한 모든 미 본토 침공 시나리오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게다가 공중 납치는 아니지만, 비행기를 납치해 자폭 테러를 한 시도는 이미 예전에도 있었다. 《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도 다룬 사건으로 알제리에서 반정부 테러리스트들이 공항에서 프랑스 여객기를 납치해 파리에 날아가 에펠탑에 자폭테러를 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조종사와 프랑스 정부의 대응으로 마르세이유에 중간기착을 한 후 프랑스 국가 헌병대 소속 GIGN를 투입시켜 막아냈다. 생존자들 중에는 9.11 테러를 보고, '만약 저들이 성공했다면 우리가 저런 꼴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을 정도였다. 결국, 여러모로 테러가 일어날 징후가 있었지만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걸 무시한 결과 역사상 최악의 대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의 목표는 세계무역센터 빌딩[48], 미 국방부의 펜타곤, 그리고 백악관이었다. 쌍둥이 빌딩이 아닌 백악관으로 날아가던 또 다른 하나의 비행기는 승객들의 강력한 저항에 결국 목적지와는 다른 펜실베이니아 주 생스빌 벌판으로 추락했다.[49] 이 사건 전에 전투기로 3분 거리에 있던 가장 가까운 공군기지에도 발령이 났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한편 재난 대책 업무를 맡은 뉴욕 시 경찰 및 소방당국에서는 일시적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라는 희대의 재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여기에 더해서 당시 경찰과 소방, 기타 행정부서들이 모여서 합동으로 사건을 수습하는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즉 한국의 삼풍백화점 사고를 보고서도 깨달은 것이 전혀 없던 것이다. 그나마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사건이후 경찰과 소방 인원들을 통합 지휘하는 기관인 커맨드 센터는 제대로 설치되어 있어 제 역할을 해야했는데 하필이면 이 기관이 세계무역센터 로비에 있었다. 붕괴 직전까지 역할을 다했으나 결국 붕괴 직전 인원들이 급히 철수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 것.

3. 원인

위에서도 계속 언급이 되었지만 당시 미국의 항공 보안은 구멍투성이었다. 조종실 문을 열고 침입하는 게 쉬웠던 건 물론이고 탑승객의 신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소지품까지 허용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 9.11 테러의 전조를 감지한 정보기관들에는 90년대부터 테러를 큰 위협으로 여겨 우려하고 있었다. 실제 93년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사건을 비롯해 연이은 대사관 테러와 USS 콜 테러사건 등으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알 카에다와의 전쟁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정보기관 일선의 판단과 우려에 비해 미국은 소련 붕괴 후 찾아온 90년대의 대호황에 국가도 아닌 일개 테러조직 따위가 미국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 클린턴 행정부 전반기는 셧다운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인해 중동의 테러조직 따위에는 관심도 가질 여력이 없었다.
  • 대사관이 공격당하는 등 테러에 대한 위협이 점점 현실화되자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3번이나 암살 작전이 취소되었다.
  • 오사마 빈 라덴이 수단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국제법 위반 등의 이유로 두 눈 뜨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이 미리 화근을 제거할 기회를 놓쳤다는 정황들이 발견되면서 클린턴 정권에도 9.11 테러의 책임이 일정 정도 존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 미국의 항공보안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는 것이 지적되어 개선을 요구하는 의회, 정부 보고서가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 내에서 여러 차례 올라왔으나 무시되었다.
  • 이러한 보안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조사위에서는 CIA FBI를 비롯한 정보당국이 항공국에게 위험인물의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줘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정보당국은 이를 무시했다.
  • CIA와 FBI를 비롯한 정보당국끼리도 정보 공유를 꺼려했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으로 밀입국한 사실이 확인되어 FBI가 정보를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CIA는 정보제공에 비협조적이었다. 이는 반대도 마찬가지. 결국 테러리스트들을 찾는 수사관은 단 1명밖에 없는 개막장스런 상황이 일어났고 이는 테러가 일어날 때까지 개선되지 않았다.
  • 부시 행정부의 안보 담당들은 취임한 지 1년도 안 되다보니 알 카에다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알 카에다가 네임드로 올라온 게 워낙 최근이어서 아랍 쪽 첩보 담당자들을 제외하면 미국 수뇌부들 중 그 누구도 알 카에다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다. 클린턴 정권의 안보 담당자들이 업무를 인계하면서 '알 카에다를 경계하라'라고 이야기하자 부시의 안보 담당자들이 "알 카에다가 도대체 뭐요?"라고 되물어 볼 정도였다. 게다가 하이난도 충돌사고로 중국과의 사이가 냉각되면서 알 카에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 이런 상황에서 FBI가 용케도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로 건물에 테러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 2001년 8월에 보고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때쯤 테러리스트들은 사실상 모든 준비를 다 끝마쳤을 시기였다.
  • 방공체계를 오로지 공군의 강력한 제공권 장악력에 의존하던 당시 미국의 방공체계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방공부대가 전혀 없었다.
  • 민간항공과 공군이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 테러 초기에 정보전달이 잘 되지 않아 혼동이 발생해 이미 추락한 비행기를 찾는 등의 혼선이 벌어졌다. 게다가 공군에서는 적국의 침공만 상정하고 있던 상태라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내륙에서 날아와 공격을 가했는데도 공군의 전투기들은 대서양 방향으로 출격했다.

아랍권에서 커져가는 반미 정서로 인해 발생한 테러 조직들이 점점 조직적이고 강력해지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를 과소평가해 전혀 손을 쓰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정보기관들 간의 상호 삽질과 그동안 계속 방치되어온 미흡한 보안 규정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4. 반응과 여파

"9월 11일(한국시각) 밤늦게 벌어진 '미국 여객기 자살테러'는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일이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의 주가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태평양 건너 서울 시내까지 마치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삼엄한 분위기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힘을 실감나게 하지만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계 역사의 흐름이 뒤바뀔지도 모를 사태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걸프전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걸프전보다는 차라리 진주만 공격에 비유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1941년 12월 7일 이전과 이후의 미국은 전혀 다르고 심하게 말하면 진주만 공습 이전의 미국은 그날로 사라졌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9시 이후의 미국도 그 이전의 미국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강대국이다.
바뀐 미국은 결국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월간 플래툰 2001년 10월호. 특집기사 "테러의 뒷모습" 기자 김진영

4.1. 정치

9.11 테러의 여파로 미국은 " PATRIOT Act"[50]등을 통과시키며, '국가위기사태'라는 명목 하에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였고, 연방정부의 관료주의의 벽으로 인해 정보 공유가 안 된 점이 사태를 막지 못한 원인이라 보고 국토안보부와 같은 최고 국가기관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기 드문 제약이 가해졌다.

또한, 팔레스타인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테러단체 회원들과 주민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축제를 열어 환호했다고 한다. 이는 얼마 안가 공포 분위기로 돌변하게 되는데 이스라엘 아리엘 샤론 총리가 계획적으로 PLO를 도발해서 화해무드를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고 언론이 잠잠한 틈을 타서 사방팔방 폭격을 해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한 방 먹이고자 했던 알 카에다의 작전이 오히려 미국 역린을 건드리는 바람에, 팔레스타인 무슬림 동족들을 역으로 죽여 버리는 꼴이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리엘 샤론은 테러단체와의 협상은 무효라며 오슬로 협정조차 씹고 PLO의 수장 야세르 아라파트의 집무실을 공격해 파괴하고 아라파트가 촛불에 의존하여 집무를 보게 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연출해버림으로써 분노한 팔레스타인 대중들이 이스라엘과의 대화의 길을 버리고 하마스 류의 극렬 무장 투쟁단체를 지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되어 가자지구에서 또 다시 피를 흘리는 유혈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다.

한편 2004년 10월, 오사마 빈 라덴은 인터넷을 통해 "왜 9.11 테러를 계획하게 되었는가?"를 비로소 밝혔다. 1982년 6월 이스라엘 공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붕괴되는 베이루트 고층 빌딩과 무고한 희생자들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이를 갈았던 오사마 빈 라덴은 이스라엘의 후원자인 미국의 건물을 공격해서 그대로 되갚아줄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20년 뒤, 빈 라덴과 휘하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미국인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안겨주었고, 그것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다시 피와 증오의 악순환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미국 내와 전 세계의 모든 무슬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인식되게 만들었고, 사건 이후 미국에서만 1년 동안 400여 명의 무슬림들이 증오범죄를 당했다고 한다. 알카에다의 테러 때문에 애꿎은 무슬림들까지 피해를 본 셈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9.11 테러 이후 '테러리스트'라는 아랍인들을 칭하는 인종차별 표현이 하나 더 생겼다.

이때부터 그 유명한 슬로건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테러와의 전쟁은 끝이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4.2. 경제

사건이 일어난 것이 미국 주식시장 개장 전이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긴급히 1주일동안 주식 시장을 열지 않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51] 그러나 테러 장면이 여과 없이 생중계로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ㅡ세계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폭삭 무너져버렸다.

안 그래도 IT버블 붕괴로 인해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코스피 시장과 버블 붕괴로 인해 이미 아작나버린 코스닥 시장은 "종목 89.7%[52] 하한가, 종목 98%[53]가 하락"이라는 진기록[54]을 세우며 폭락했다.[55]

어쨌거나 한국증시와 일본증시가 폭락하자, 인도증시, 중동증시 등이 싹쓸이로 폭락하고, 결국 유럽증시까지 싸그리 폭락하는 등 도미노 폭락 사태가 1주일 간 지속되었다.

일주일 후, 미국 증시가 다시 열리자마자 이렇게 되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월드컵이라든가 이라크 전쟁[56]이 터지면서 세계 증시는 상승 추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결국 이런 사건이….

4.3. 국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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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싸워라. 아니면 우리에게 맞서 싸워라.[57]

세계 각국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전반적으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을 위해서 추모하고 애도하는 분위기가 짙었으며, 일제히 테러에 대한 비판 성명과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천명하고 나섰고 꼭지가 돌아버린 미국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 북아메리카
    • 미국: 미국의 분노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9.11 테러는 미국에 심각하게 대립각을 세웠던 나라들도, 당장 국가 하나, 심지어는 이번 사건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국가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릴 듯한 미국의 반응에 대부분 바짝 엎드리게 만들었다. 이전에도 아랍 국가들에 대해 그리 감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로 인해 미국 국민들은 아랍 국가들에 대해서 매우 큰 반감을 갖게 되었으며 미국 정부 역시 알 카에다를 완전히 멸망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였다. 말 그대로 빡쳤다
      그러나 정작 알카에다는 멸망시키지 못하고, 엉뚱한 이라크를 잡다가 힘을 소진해 버렸다. 그 뒤 오사마 빈 라덴을 처단하여 복수를 어느 정도 끝낸 뒤에는 이슬람권에 한해서 개입을 줄여나가고 있다.
공식 희생자 1명(이라는 말이 있으나 기록에 의하면 28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58]을 낸 한국은 9월 13일 전국적으로 추모일로 정하고 5분간 묵념 시간을 가졌으며, 비인도적인 테러에 대해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하는 성명서를 냈다. 알 카에다가 한국에서도 미국 국적 여객기를 납치해서 주한미군 기지에도 테러하려고 했었다고 한 사실에 한국 정부는 알 카에다에 격분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정원은 그해 11월에 이를 계기로 기존의 테러대응방침으로는 역부족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를 강화한 테러방지법을 국회에 발의했지만 국정원의 권한이 강화된다는 점을 들어 제 2의 국가보안법이 아니냐는 진보적 시민단체 및 언론 등의 반발 및 동년 설립된 독립국가기관 국가인권위원회의 반대에 부딛쳐 좌초되었다. 2003년 참여정부 시기에 여러 수정안을 거쳐 다시 발의되었으나 마찬가지로 시민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제동으로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명칭대로 참여민주주의를 표방하였던 당시 정부로서는 이러한 단체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세월이 한참 흐른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야 반대를 무릅쓰고 발의, 통과되기에 이른다.
  • 중국: 중국에서는 당시, 1999년 코소보 전쟁 중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과 테러 몇 달 전 하이난 섬 정찰기 충돌 사건,[59] 대만으로 이지스함 판매 논란 등으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지만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위한 영공통과를 강요받고 있던 파키스탄의 후견국다운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영공통과 허가를 권유해야만 했다.
일단 중국 정부는 장쩌민 국가주석이 직접 미국 정부에게 애도 성명과 테러집단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내긴 했지만 당시 반미 감정이 앙등해있던 터라,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속보를 듣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2010년대 이후로는 중국도 극단 이슬람 세력의 테러질을 당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 거 없고 미국과 함께 연합하여 극단 이슬람 세력을 제대로 조지고 있다.
  • 북한: 심심하면 미국을 욕하던 반미국가인 천하의 북한마저도 눈치 빠르게 반미 프로파간다를 일시 중단하고 비인도적인 테러공격에 대한 강력한 비판성명을 조선중앙TV를 통해 내보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이전에 미국을 도발했다가 아예 멸망할 뻔한 전적도 있기에 "분노한 미국을 적으로 돌려서는 득볼 것이 없다"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에 지금 개기면 진짜 뒤진다고 직감하고 자기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아주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그 뒤부터 미국이 테러를 당할 때는 언제나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 가지 불쌍한 점은, 후세인은 텔레비전을 통해선 큰소리를 쳐놓고는, 부총리이자 외무장관인 타리크 아지즈를 시켜서 미국에게 알 카에다 소탕을 돕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우리도 테러리즘에 시달리는데 공조합시다."라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조지고 부시는 천조국 대빵 앞에서는 기만책으로밖에 안 보였다. 사실, 이 따위 짓거리에 전미(全美)가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니, 사담 후세인이 한심한 선택을 한 것이 맞다. 위의 내용을 다시 읽어보자. 북한과 당시 미국과 양국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중국까지 테러집단에 대한 비판과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내용을 담은 성명을 냈는데 가뜩이나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해 무고한 국민들이 희생당하는 참사를 겪어 눈이 돌아있는 상태였던 미국을 국가가, 그것도 이슬람권 국가가 공식적, 공개적으로 도발하는 짓을 한 것이다. 외교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60] 어리석고 잘못된 선택이었다. 상술되어 있다시피 후세인의 이 선택이 죄없는 자기 나라 민간인들까지 희생시킨 이라크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61] 다만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매달리며 막대한 경제적 손해를 보았고 이후 다에시라는 희대의 또라이들이 나오면서 미국이 이라크에서 10년 넘게 현지인에게 피해주고 미군도 피해주고 돈버리며 뭘했냐 비난을 받아야 했다.
  • 팔레스타인: 사건 초기에 이들이 일으킨 일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알려지자, 즉시 부정하며 '테러에 대한 애도의 뜻을 밝혔다. 신문에서는 "우리의 피는 싸구려가 아니다!"라는 기사를 썼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 죽어나는데도 무관심하면서, 미국인이 죽는 것은 대서특필을 하는 것에 항의한 것이다.
  • 아프가니스탄: 알 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으라는 미국의 요구에, 탈레반은 거절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은 전혀 상관없다고 발뺌을 했다.[62]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탈레반의 현대문물 탄압으로 미국에 테러가 있는지도 몰랐던 수많은 아프간 주민들은 뜬금없이 갑자기 미국과 전쟁이 났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멘붕을 해야 했다.
  • 파키스탄: 탈레반 정권의 후원자였으나, 당장 길을 비키라는 미국의 요구에 잔뜩 쫄아서 냅다 길을 비켜야 했다. 파키스탄은 처음에는 영공통과를 거부했으나, 미국의 리처드 리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의 "영공 열어줄래? 아니면 석기시대로 돌아갈래?"라는 말 한마디에 깨갱. [63] 사실, 이것은 엄청난 외교적 결례인 동시에 영공침입이다. 하지만 복수심에 눈이 미쳐 돌아가 버린 미국이 만일 파키스탄이 영공통과를 거부했다간 국제법이고 뭐고 전부 씹어버리고 파키스탄부터 먼저 박살을 낸 다음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나아갈 의지가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테러세력은 물론이고 테러세력을 지원하는 놈들도 싸그리 다 모아서 족치겠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알 카에다를 숨겨주는 아프가니스탄은 당연히 공격 목표였고, 그 아프가니스탄을 감싸는 파키스탄도 연쇄적인 공격 목표로 들어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미국의 외교압력에 굴복한 무샤라프 대통령은 대신 영공통과에 대한 최소한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파키스탄이 지고 있는 300억 달러 정도의 부채를 미국이 갚는 것을 도와주면서, UN의 지지를 얻고 인도 이스라엘을 전쟁에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돈으로 경제 재건을 해서 간신히 살아났다. 사실 파키스탄이 세계 최빈국에서 그나마 먹고사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빈국으로 바뀐 때가 역설적으로 9.11 테러 이후였다.
  • 유럽
    •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유럽: 서방세계의 대표적인 나라들인만큼 전반적으로 미국과 입장이 같았다. 토니 블레어, 자크 시라크,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영프독 삼국 정부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미국 정부에게 애도 성명과 테러집단에 대한 비판 성명을 냈다.
    • 러시아: 러시아 정부는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애도 성명과 테러집단에 대한 비판 성명을 냈으며. 국제연합에 테러 대책 기구 신설을 제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까지의 푸틴 대통령은 친미, 친서방파로 평가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반미로 돌아선 뒤에도 9.11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다. 오히려 푸틴은 중동 지역의 안정화를 위해 바샤르 알 아사드를 도와야 하고, 그래야 9.11의 원수인 알카에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
9.11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러시아도 체첸을 필두로 한 캅카스 지역의 이슬람 반군에 시달리고 있으며 매년 특수부대와 계약병[64] 부대들을 보내 매년 수천 명씩 반군을 소탕하며 심지어 테러단원의 시신을 헬기에 갈고리에 매달고 순회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 곳 반군은 참수가 일상이다 보니 러시아도 테러에는 학을 뗀다.

무슨 테러만 일어나면, 서로 자기들이 했다고 주장하기 바빴던 대부분의 테러조직들이 9.11 테러 직후에는 그야말로 잔뜩 쫄아버렸다. 일제히 미국군 및 미국의 정보기관들에게 우리가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서 우리를 제외한 다른 놈들이 전부 의심스럽다고 앞다투어 밀고하고 다녔다. 처음에 1순위로 지목을 당한 알 카에다 역시 자기들이 한 게 절대로 아니라고 극구 부정했다. 오사마 빈 라덴 본인도 미국이 자기뿐만 아니라 탈레반을 통째로 회치겠다고 덤벼들자 겁을 먹었는지, "난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결국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이외에도 냉전 이후, 한동안 국제사회는 세계가 멸망한다는 위기감에서 벗어난 것과 미국의 국제문제 개입도 많이 줄어들면서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매우 낙관적이고 낙천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러시아나 중국이 다시 힘을 추스르고 미국이 이에 제동을 걸려 하면서 잠깐의 충돌이나 위기감이 돌긴 하였으나 미국이 워낙 초강대국이었고 러시아는 냉전 시절만큼의 정치적, 군사적 무력을 가지지 못했으며 중국 역시 아직은 미국을 따라잡은 상태가 아니라 이 분위기를 깨지는 못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10여 년간 미국이 다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휘두르면서, 이러한 낙관적인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사라졌다. 당장 9.11 이전에 나온 90년대 세계 국가들과 역사, 미래를 전망한 책들과 9.11 이후를 포함하는 세계와 역사, 미래를 예측하는 내용을 다룬 책들만 봐도 분위기가 일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2010년대 이후에는 다시 영향력을 줄이지만 이미 세계는 헬게이트.

이탈리아의 기자인 오리아나 팔라치는 9.11 테러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펜을 들어, 9.11을 '이슬람이 미국을 침공한 역 십자군 전쟁'이라고 부르면서 알 카에다와 이슬람 세력을 맹비난해서, 만년에 파시스트란 오명을 얻었다. 이슬람 단체들의 고소에도 팔라치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후속편까지 썼다. 물론 그녀가 미국이나 유럽, 기독교도 엄청 비난했던 걸 보면 이건 섣부른 오명이다.

4.4. 건축


당시 용융된 금속이 밖으로 흘러내리는 모습. 이는 비행기 동체의 알루미늄이 녹은 것으로 추정된다.

디스커버리의 특집에 따르면, 건설업계 사람들은 이미 몇 십 년 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행기가 들이받은 전적이 있었기에[65] 쌍둥이 빌딩을 지을 당시에 비행기 충돌(사고)도 고려하여 지었기에,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도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고 봤다.[66] 또한 내진 설계도 적용되어있어서 비행기와 충돌할때 층과 층이 서로 밀리면서 충격을 완화하여 빌딩이 넘어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 외에 대규모 피해는 상상하지 못했으며 기껏해야 몇 층이 부서질 거라 본 듯. 하지만 현실은 완전한 붕괴였다. 두 사례간의 차이는 근본적으로는 충돌한 항공기[67]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쌍둥이 빌딩의 건축공법상의 특징도 컸다. 쌍둥이 빌딩이 충돌 직후가 아닌 한참 불타고 있던 와중에 무너져 버린 이유이기도 한데, 쌍둥이 빌딩은 내부공간의 극대화를 위해 철골튜브구조로 건설되었다. 즉 대부분의 건물 하중을 건물 최심부의 엘리베이터 코어와 건물의 철제 외벽으로 지탱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하중을 지탱하는 기둥과 내력벽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간 확보에는 유용했다. 그리고 항공기 충돌시의 충격 자체도 쌍둥이 빌딩이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문제는 9.11의 경우에는 여객기에 적재되어 있던 4만 리터에 달하는 항공유가 발화하면서 고열이 발생, 철골이 약해졌다는 것.[68] 비행기가 충돌할 때 각도를 틀어 비스듬하게 부딪쳐 최대한의 외벽 손상을 일으킨 점은 이러한 건물의 특징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중의 상당 부분을 지탱하던 외벽이 충돌로 인해 크게 찢어져버린데다가 고열로 인해 힘을 더욱 잃어버렸고, 코어 또한 충격으로 손상된 상태였기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오히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경우는 오래 전에 지어 당시 방법으로 철근에 콘크리트를 그냥 들이붓는 방식으로 지었기에 피해가 적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건물의 최상층이 아닌 중간 지점에 비행기가 충돌했고 파괴된 구조물 위에 간신히 지탱되던 위층들의 무게 역시 어마어마했던 것. 이것이 중력에 의해 추락하면서 아래층들과 충돌하자, 말 그대로 아래층의 콘크리트와 철골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며 지상까지 내려왔다. 만약 비행기가 건물의 최상층에 충돌했다면, 남은 위층의 무게가 적어서 전체 건물이 붕괴되지 않았거나, 붕괴의 정도는 훨씬 덜 했을지도 모른다.[69] MIT의 에드워드 카운셀 교수에 따르면, WTC는 강철기둥 여러 개를 높이 세우고, 각 층에서 그것을 가로로 연결하여 지탱하는 구조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충돌의 화재로 인해 한 층의 바닥 충진재가 다 타버리면서 그 층의 바닥이 무너져, 수직 기둥들을 지탱하는 힘이 약해지면서, 위에서부터 차례로 붕괴되었다고 설명했다. 훗날 빈라덴과 알 카에다는 자신들도 건물이 무너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며, 기대 이상이었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결국 충돌층이 붕괴 → 멀쩡한 아래층에 충돌층~최상층의 위치에너지 작렬 → 연쇄 붕괴로 인한 완전 붕괴

사건 이후, 미 건축계에서 화재로 인한 고열만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깬 붕괴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약해지는 철골에 결정타를 넣은 것은 중력이었음을 확인하였고, 이후 '화재와 중력의 합작품'이라고 알려지게 된다. 또한 세계무역센터에서 사용된 공법은 이후 건축계에서 상당한 기피대상이 되었다.[70]

4.5. 항공

이 사건 이후, 전 세계 항공업계는 공황 상태에 빠져버린다. 대형 여객기를 뉴욕 한복판의 랜드마크에 들이박는 초유의 사건이 났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 비행기에 대한 공포가 퍼지고 승객 수가 급감하면서 여러 항공사들이 도산하였는데, 대표적인 회사들이 사베나(SABENA) 벨기에 항공,[71], 스위스에어[72], 안셋 오스트레일리아 항공 등이다. 그리고 미국의 메이저 항공사들도 결국 2000년대, 차례차례 파산 보호 신청을 하게 되어 본의 아니게 2015년 현재 델타, 유나이티드, 아메리칸, 사우스웨스트의 대형 4개사로 반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상태다.

한편, 이 사건을 계기로 현재 전 세계의 민항기들은 반드시 조종실 문을 철저히 잠가야 하며,[73] 조종석 승무원들의 용무나 일부 허용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문을 열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것이 의무가 아니어서 쉽게 조종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국내선의 경우, 커튼 한 장으로 조종실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고, 설령 잠겨있어도 문을 두드리면 열어주는 경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74] 심지어 러시아에서는 조종실을 구경한다고 기장의 아들이 들어왔다가 비행기를 추락하게 만든 적도 있는데, 이 사건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도 방영되었다. Aeroflot Flight 593기 추락사고를 참고할 것. 하지만 무조건 조종실 문을 잠가야 한다는 규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저먼윙스 9525편 추락 사고라는 또 다른 비극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테러범들이 납치에 쓴 무기는 금속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플라스틱 나이프[75]였다고 한다. 플라이트 93에서는 칼과 더불어 가짜 폭탄을 장비해서 협박하는데 승객들이 진짜 폭탄이라면 검색대에서 안걸릴 리가 없다는 추리를 하여 어차피 죽을 건데 진짜 폭탄이라 터지더라도 저항하고 죽자고 도박을 걸기로 하고 기내식에 쓰이는 포크와 나이프로 무장하고 다구리로 테러리스트들을 조지고 폭탄이 가짜라는 걸 밝혀낸다. 이후 카트로 문을 부수고 조종석까지 장악하지만 조종석을 맡았던 테러리스트가 동귀어진을 선택하는 바람에...

이후로 미국 항공기에서는 보안검색이 매우 엄격해져서, 손톱깎이 하나도 휴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기내식에도 칼로 썰어먹는 요리가 사라지고 미리 잘게 잘라 칼을 사용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또한, 기장과 부기장이 동시에 사망하는 독극물 음식 테러를 막기 위해서 액체류 반입도 엄격하게 제한하여 물도 함부로 마시지 못하게 했으며, 기장과 부기장이 식사를 하는 시간도 서로 다르게 설정하고 기장과 부기장에게 제공하는 식사 메뉴도 따로 제공한다.[76]

또한, 공군과 민간항공의 항공 관제 용어 차이가 초동대응에 혼선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후 군과 민간의 항공용어가 통일되었다. 기존의 공군과 항공국의 대응 체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것 이외에도 공항 내의 안전수칙과 보안이 강화되었으나 여전히 내부평가에서 많은 평가요원들이 칼을 비롯한 흉기는 물론 총까지 들키지 않고 통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로도 비행기 폭탄 테러 시도가 계속 일어나는 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국 교통보안청[77]은 늘 새로운 수칙을 도입하고 보안강화를 한다 하지만, TSA직원의 불법 무기 및 마약 밀수 [78], 신체 스캐너 실험 과정 중 흉기를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등 사건이 자꾸 터지는 바람에 미국 언론에서 심심할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까는 부서가 되어버렸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로 항공 보안을 강화했으며[79] 각종 논문과 전문가들이 CAPPS II나 SecureFlight의 실용성과 그 성능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미국이 끝끝내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CAPPS I과 같은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유효성은 9/11 테러 이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9/11 테러로 인해 제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9/11 테러 직후나 지금이나 그 효과가 의심받는건 여전하다. 그러나 몇몇 입장은 달리 말하는데 이런 시스템이 테러 시도를 어렵게 할 수 있고 항공기 테러를 단념시키는데에도 한몫 할것이다 라는 주장이 있다. 문제는 CAPPS나 SecureFlight 같은 시스템의 효과를 어떻게 알기가 힘들다는것. 이유는 간단하다. 이 시스템을 거쳐가는 승객들 중 몇명이 범죄자나 잠재적 범죄자인지 우린 모른다는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인권 단체들은 사람들을 대놓고 프로파일링 하고 특정 인종 [80]을 주시하는 시스템은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다는 헌법을 위반하는 위헌적 시스템이며 이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사법계에서는 이것이 위헌은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고 TSA에서도 특정 인종을 목표로 프로파일링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되었듯 TSA의 정확도가 의심 받고[81]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정확도가 의심받으며 이를 없애라는 주장은 여전히 나오는게 현실이다.

공항의 보안이 한층 상승하면서 미국 국적의 항공기에도 보안 요원이 탑승하게 되었다. 이를 Federal Air Marshal [82]이라 하는데 여긴 아예 총을 소지하고 승객으로 위장하여 항공기에 탑승한다. 요지는 테러리스트가 날뛰면 요원이 나서서 테러리스트를 제압한다는것. 그러나 TSA와 프로파일링 시스템처럼 매맞는건 여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근무를 하기보단 잠을 자는건 워낙에 잘 알려진 사실이고 2001년에는 아예 항공기 화장실에 .357 칼리버 권총을 놓고 자리로 돌아와 이후 화장실에 들어온 십대 소년이 이를 발견, 승무원에게 이를 건내주는 사건도 있었다. 동료 보안 요원은 그 소년과 승무원이 대화하는게 조금 심각해보여 끼어들었다가 별거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비슷하게 2004년에는 공항 화장실에 권총을 두고 나오는 사례도 있었다고. 그리고 항공 보안 요원의 정확도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83]

항공 업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하자면 당시 안 좋은 방면에서 포화상태였던 [84] 미국의 항공업계를 리셋시킨 것도 9.11 테러가 한몫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항공 업계는 인프라가 포화 상태라 모든 게 뻑뻑하게 돌아갔는데, 9.11 테러가 일어나 모든 항공기가 착륙한데다 며칠간은 항공기 운항이 금지된 바람에 포화 상태의 업계에 한숨 돌리고 모든 것을 재정비 할 시간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외 당시 민항 산업의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각종 시위를 벌이던 항공사들의 노동조합들은 9/11 테러 이후 항공사와 회유하려는 자세로 돌입하고 승객들은 서비스의 질 보다는 안전을 우선시 하며 항공 산업의 새로운 판도를 짜기도 했다는 주장이 있다[85]. 한마디로 9/11 테러 이후 항공 업계가 침체된것을 9/11 테러에서만 그 이유를 찾을게 아니라는 뜻. 다만 전 세계 항공기 승객 수는 2004년 중순이 돼서야 9/11 테러 이전의 수와 엇비슷해진건 사실이다.

여담으로 9.11 테러가 일어난 지 정확히 두 달 하고도 하루가 지난 2001년 11월 12일, 뉴욕 상공에서 존 F. 케네디 공항을 이륙한 AA587편이 뉴욕 퀸즈 주택가에 추락하는 대형참사가 터졌다. 원인은 잘못된 비행 규정으로 밝혀졌으나,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9.11 테러 당시처럼 모든 항공기가 강제로 착륙하고 출입이 통제되는 등 큰 혼란에 빠졌다.

4.6. 대중매체

세계무역센터가 들어가는 미디어 매체가 대부분 수정되었다. 영화 《 스파이더맨》에서 스파이더맨이 세계무역센터에서 적과 싸우면서 거미줄을 무역센터 사이에 치는 장면이 있었으나, 장면을 수정했고 개봉도 늦어졌다.[86] 또한 《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 유리의 복수》에서 연합군 해리어 전투기 유리군 핵발전소에 부딪치는 장면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오리지널에서는 소련군이 파괴할 수 있다 덤으로 세계무역센터 관련 캠페인을 제거했다고 한다. 《 메탈기어 솔리드 2》에서도 아스널 기어가 맨하탄을 들이받는 장면이 수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GTA 3》에서는 LCPD의 패트롤카의 디자인이 NYPD에 가까운 디자인에서 LAPD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고, 비행기가 고층 빌딩 근처로 날지 않도록 비행경로도 수정되었다.[87] 결정적으로 북미판 박스 아트가 변경되었는데[88] 지금까지 이 박스 아트의 전통을 물려받고 있다.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드림 시어터의 뉴욕 공연을 수록한 5집 라이브 앨범불타는 세계 무역 센터가 그려진 앨범 커버로 9월 11일 발매되었으나, 테러로 인해 급히 물량을 회수하고 수정된 커버를 사용해야 했다.

게임 《 데이어스 엑스》에서는 시스템 자원 사용의 한계와 최적화 문제로, 뉴욕의 거대한 건물이었던 세계무역센터를 게임 배경으로 집어넣을 수 없게 되었다. 뉴욕 시의 상징과도 같았던 세계무역센터가 사양 문제로 게임에서 등장할 수 없게 되는 바람에, 게임 제작자들은 이를 보완할 게임 설정을 추가했는데, 그 설정의 내용이 세계무역센터는 테러로 붕괴되었다. 그리고 게임이 출시된 지 1년 뒤 실제로 일어났다. 말이 씨가 된다.

SNK가 2008년에 출시한 KOF 98 UM의 미국 스테이지에서도 세계무역센터가 삭제 되었다. 1998년에 출시된 KOF 98땐 있었으나 리메이크 버전인 98UM을 내면서 그 사이에 사라진 세계무역센터를 지웠다.

노토리어스 B.I.G.의 1집 앨범 Ready to Die의 10번 트랙 Juicy에는 blow up like the World Trade라는 가사가 나오는데[89] 이를 따온 JAY Z의 The Blueprint 2[90]의 A Dream에서는 묵음처리가 되어서 나온다.

북미에서 기동전사 건담, 즉 우주세기 건담이 크게 흥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히기도 하다.사실 북미에서 건담, 특히 우주세기 건담이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토미노 특유의 작품 분위기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것도 있고 79년도 작품인데 2001년라는 뒤늦은 세월에 방영한것도 컸지만 건담을 비롯한 전쟁 관련 프로그램이 전부 방영 중단 크리를 맞으면서 결과적으로 이전 방영작인 신기동전기 건담 W만큼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세계무역센터와는 관계없지만, 비행기가 건물을 들이받거나 고층건물에 구멍이 난다거나 하는 관련의 연출조차 NG. 이 때문에 건블레이드 NY의 Wii이식판에서는 이지 코스 3스테이지에서 건물이 뻥 터지는 연출이 아예 안 나오게 되었고, 아예 대놓고 건물에 구멍내면서 진행하는 구성이 일본면 2스테이지에 있는 캐리어 에어 윙은 절대 캡콤 클래식 시리즈로 이식해주지 못하고 있는것.

5. 현재

9.11 테러 당시 미국은 냉전도 끝나서 딱히 외부적인 위협세력도 없었기 때문에, 대외정책에 대한 명분과 필요성, 그리고 예산의 부족으로 슬슬 해외 문제에 대한 개입을 줄이려던 시기였지만, 테러 이후 약 10여 년간 분위기가 반전되어 아프간,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는 등 개입정책에 나섰다가 경제위기와 함께 다시 개입이 줄어든 상태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는 그라운드 제로라고 불리고 있으며, 건물 붕괴 후에 쌍둥이 빌딩의 철골 구조물 중 일부가 십자가 형태로 남아있어, '굴하지 않는 미국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현재 여기에는 9.11 메모리얼 파크가 조성되었고 신세계무역센터가 지어졌다. 현장 옆의 빌딩에는 소방관 추모비도 걸려있다.

현재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미국민들이 들끓고 있는 중.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무너진 건물 주변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한다는 건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라는 반대의견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찬성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지지를 천명한 상태. 덕분에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91]

파일:attachment/adfadfasdf.jpg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에 있는 Pool 근방에는 Tribute in light라는 서치라이트 설비가 설치되어, 해마다 9월 11일이 되면 위와 같은 조명을 밝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또한,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같은 항공기 시뮬레이션들은 과거에는 표기되었던 장소[92]들이 사라진다든가 하는 경우들이 생겼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테러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테러리스트에게는 인권 따위 없다 수준의 무자비하고 가장 잔혹한 처벌도 불사하고 있다. 미국 본토에 관해 무력 도전을 하거나 테러로 장난친다면, 정말이지 지구 끝까지 찾아내어 응징하고야 만다. 게다가 징역 100년 정도는 쉽게 내리는 곳이 미국이다. 실제로 한국인이 한국 땅에서 인터넷 장난전화로 테러 협박을 했다가, FBI에서 한국 경찰에 수사 요청을 한 사례도 있다.[93]

구글社도 미국 회사인데, 지메일로 이희호의 방북 이스타항공편 여객기 폭파 협박을 한 사건에 대해 수사자료를 한국 경찰에 제공한 적이 있다. 미국 회사다운 反테러리즘 대처방식이며, 역시 이 9.11 테러가 남긴 정책이다. 지메일 문서 참고.

사건 당시 CNN을 비롯한 주요 보도 채널에서 순간마다 쏟아지는 관련 보도들을 소화하기 위해, 뉴스 내용을 실시간 자막 스크롤 형식으로 내보내야 했다. 이후 세계의 여러 보도 채널들이 자막 뉴스 보도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건축 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현재 미국에서 건물에 관한 규제가 강화되어서, 설계를 할 때에는 그 건물이 테러에도 견딜 수 있는지 고려를 해야 된다고 한다.

5.1. 끝나지 않은 피해

9.11 테러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천 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PTSD)에 시달리고 있다. TV로 비행기가 충돌하여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이 생방송 되었으니, 이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그걸 지켜본 모든 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될 수밖에. 이로 인해 보안시장이 급격히 규모가 커졌다. #

9.11 테러 이후 1년간, 미국의 무슬림 400명 이상이 애꿏게 증오범죄를 당했고, 그 뒤로도 매년 100명 가량이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 이슬람이랑 아무 관련 없는 시크교도들까지 터번을 쓴다며[94] 공격당했다.

피해자가 워낙 많다보니 무슬림의 피해 사례도 있는데, 특히 미 의회에서도 언급된 사례로, 파키스탄계 미국 귀화인으로 뉴욕 경찰[95]이 된 이슬람 신도 모하메드 함다니의 사례도 있다. 초기에는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이후 그라운드 제로에서 의료가방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되어 영웅으로 명예회복이 되었다. #

5.2. 후속 테러

9.11 테러의 재현을 노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인 공조를 통해서 많은 테러시도가 저지되었지만, 일부는 실제 실행에 옮겨졌다. 굵직한 것만 해도 2002년 발리 폭탄 테러,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 2015년 튀니지 수스 테러, 파리 테러 등등. 이외에도 자잘한 사건들이 많다.

6. 음모론

관련 문서: 9.11 테러와 관련된 미스터리

대표적인 게 《루스 체인지(Loose Change)》 다큐멘터리다. 이들이 주장하는 음모론은 다음과 같다.
  • 비행기와 상관없이 세계무역센터 7번 건물은 왜 무너졌나?
  • 철골로 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어떻게 비행기 충돌 하나만으로 자유낙하속도로 무너졌나?
  • 붕괴된 층보다 20~30층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편들은 대체 무엇인가?
  • 왜 세계무역센터의 건물주는 9.11이 발생하기 6주 전에 35억 달러짜리 테러보험과 함께 건물을 샀을까?
  • 9.11 이전 몇 주 동안 예고에 없던 대피훈련은 무엇인가?
  • 건물 내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면, 또 다른 폭발음을 들었다는데? 특히 소방관들은 건물 안 밝은 섬광을 보았다는데?
  • 왜 펜타곤 충돌 현장에서는 보잉 757기 파편이 없는가?
  • 비행기가 스쳤다는 펜타곤 잔디밭에는 왜 아무 흔적이 없나?
  • 펜타곤에서 엔진이 들이받았을 자리는 왜 멀쩡한가?
  • 펜타곤 직원들은 사고 당시 군용 화약 냄새를 맡았다고 하는데?
  • 미국 정부는 왜 사고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나?
  • 흔적 없이 사라진 UA93편은 어디로 갔을까?
  • 미국 정부는 9.11 테러 당일 주요 각료들의 비행탑승을 왜 금지시켰는가? 미 공군은 왜 비행기가 납치된 시각으로부터 2시간동안 늦장을 부렸나?
  • 거짓 전화통화 // 거짓 빈라덴 비디오 // 거짓 납치범
  • WTC 지하에 숨겨져 있던 1600억 달러의 금괴 중 2억 달러어치만 발견한 점.

한때 유명세를 얻은 음모론들 중 하나였으나, screw loose change 같은 반박 영상도 나왔고 다른 반박의견들도 나와서 《루스 체인지》를 제작한 딜런 에이버리는 그 의견들에 대해 반박하면서 논쟁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건축 전문가들이 건물의 붕괴원인을 설명한 판에 이런 음모론이 발붙일 자리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10년대 들어서 미국 인터넷에서는 Jet fuel can't melt steel beams(제트 연료의 연소로는 쌍둥이 빌딩의 철제 골조를 녹일 수 없다)가 화 되면서 각종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그 뜻이 와전되어 음모론자들이 즐겨쓰는 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9.11 테러 직전 찍은 사진'이라며 한 남자가 쌍둥이 빌딩 옥상 위에 올라가 있고, 그 뒤로 비행기가 날아오는 사진이 떠돌아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어났다. 나중에 합성으로 밝혀졌다. . 덕택에 이 사진은 Tourist guy라는 이름으로 필수요소가 되어버렸다.(...)

아프가니스탄의 년도별 양귀비 재배 면적 출처

이외에도 마약과 관련된 루머도 역시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아편 공급량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대마 역시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UN에서도 당해년도 마약 시세를 알아보는데, 일단 아프가니스탄부터 언급을 할 정도로 마약 생산 대국이다. 만일, 아프가니스탄에 문제가 생기면, 전 세계의 뒷세계 경제가 초비상에 돌입한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런데 매우 엄격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탈레반[96]이 아프간을 장악한 이후, 이슬람법에 어긋난다고 마약 생산을 금지했던 것이다. 물론 금한다고 쉽게 걸려들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큰 타격은 받지 않고 있었지만, 탈레반은 완전 근절을 위해 UN과 협력하여, 아편 생산을 무려 90% 이상 줄여버린다. 이는 안티드럭 캠페인 역사상 가장 큰 쾌거라고 모두가 기뻐했는데… 이게 바로 2001년이다. 그리고 이 일이 있고 미국에서 9.11 테러가 일어났으며, 미국은 아프간을 지목해 탈레반을 몰아냈는데, 미국이 점령하고 나서 아편 생산량은 순식간에 원상복구되어 지금까지도 왕성히 아편 생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한국에는 아직도 9.11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근거자료.

사우스 파크》 시즌 10 에피소드 9 'Mystery of the Urinal Deuce'에서는 9.11 테러 음모론을 주제로 하기도 했다. 여기서는 미국 정부가 미국 시민들 4분의 1은 음모론 따위를 믿을 정도로 멍청하니, 직접 음모론을 만들어 사람들이 자신들을 공포하게 하려는 일종의 프로파간다라고. 그리고 나머지 4분의 3에게는 진실을 말한다고 했다.(...)

사실 부시가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 영상이 있다 카더라

7. 9.11 테러를 다룬 대중매체

7.1. 게임

  • 08:46: 오큘러스 리프트 전용으로 나온 게임으로 9.11 테러를 추모를 위해 제작된 게임으로써 9.11 당시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게임이다. # 하지만 이 게임의 엔딩이 탈출을 하는게 불가능하고 질식사해 죽거나 떨어져 자살하는 선택지밖에 없어서 영 좋지 못한 평을 듣고 있다. 이렇게 선택지가 없는 이유도 존재하는데, 9.11 당시가 얼마나 비참하고 살인적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선택지가 없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7.2. 서적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97][98]: 아버지를 9. 11테러로 잃은 9살 소년이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 페이지가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다든지, 한 장에 한 문장만 있거나 아예 빈 종이라든지, 텍스트가 겹쳐 알아볼 수 없다든지, 특히 결말부의 사진—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찍은 것—을 리와인딩하는 기법 등이 특이점이다.
  • 《102분》 [99]: 세계 무역 센터에서 항공기가 충돌한 후 북쪽 타워가 붕괴되기까지 102분간 벌어진 일을 그린 논픽션이다.

7.3. 영화

  • 《2001년 9월 11일[100][101]: 각각 11분, 9초, 1프레임의 단편 11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에피소드 순서대로 사미라 마흐말마프, 끌로드 를르슈, 유세프 샤힌, 다니스 타노비치, 이드리사 오에드라오고, 켄 로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아모스 지타이, 미라 네이어, 숀 펜, 이마무라 쇼헤이 연출.
  • 《화씨 911[102][103] -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 《루즈 체인지 제2판[104][105]
  • 《유나이티드 93[106][107]: 국내엔 《플라이트 93》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 《월드트레이드센터[108][109]
  • 시대정신[110][111]
  • 내 이름은 칸[112][113]
  • 《주저하는 근본주의자[114][115]: 모신 하미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116][117]: 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스토리는 훈훈하지만 보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산만한 영화라서 호불호가 좀 갈렸다.
  • 제로 다크 서티[118][119]: 9.11 테러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주인공 '마야'가 10여 년간 추적하는 과정을 다루며, 촬영 직전에 빈 라덴이 넵튠 스피어 작전을 통해 실제로 사살되어 스토리가 변경되었다. 영화 초반부에는 9.11 테러 당시 무전, 통화 음성들이 나와, 영화 시작부터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 《9/11》: 테러 직후 무역센터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버린 5명의 인물들을 다루는 이야기. 찰리 쉰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2017년 9월 개봉 예정.

7.4. 드라마

  • CSI: NY》 시즌 1 1회: 주인공인 맥 테일러 반장의 아내인 클레어가 9.11 테러의 희생자다.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은 맥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아내를 찾는 모습으로 끝난다. 이후에도 클레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조금씩 언급된다.
  • 뉴스룸》 시즌 1 7회
  • 웨스트 윙》 시즌 3, 0회(특별편) "Isaac and Ishmael" - 9.11 테러로 인해 추가된 특별편. 에피소드 내용에서는 9.11 테러와 직접적 연관성은 나타나지 않고, 극단적 종교주의자들에 의한 테러와 그에 대처하는 자세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에피소드 시작 전 9.11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관련 단체의 후원을 독려하는 부분이 나온다.
  • 본즈》 시즌 8 6회

7.5. 음악

  • Yellowcard - Believe[120]: 생존자와 희생된 소방관의 관점에서 쓰인 노래인데, 간주 부분엔 전 뉴욕 주지사 조지 퍼타키, 마지막 부분엔 전 뉴욕 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의 연설이 들어가 있다.
  • Dream Theater - Sacrificed Sons[121]: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에서 죽어나간 이들에 대한 곡.초반부에 전세계의 뉴스 보도가 흘러 나온다.
  • 조성모 5집 《내 것이라면》 뮤직비디오: 9.11 테러 때 사망한 소방관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 Lily Allen - Him [122], 2009
  • anti-flag - 911 for peace
  • My Chemical Romance[123] - Skylines and Turnstiles, Sleep, The Only Hope for Me is You
  • John Mayer - Covered In Rain
  • Velvet Revolver - Messages

[1] 미국 내 9.11 위령비, 기념관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문구다. 경우에 따라 '기억하라'로 번역되기도 한다. [2] 2001년 한국의 한 뉴스기사에서 언급된 부분. [3] 셰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셰흐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4] Computer-Assisted Passenger Prescreening System Version 1, 컴퓨터 보조 승객 판별 시스템 [5] Barnett, A. (2004). CAPPS II: The foundation of aviation security?. Risk Analysis, 24(4), 909-916. [6] AA11 [7] B767-200ER, N334AA [8] B767-200, N612UA [9] 당시 Fox News TV 중계 앵커의 말. "This seems to be on purpose(고의인 것처럼 보입니다)." [10] 이는 대부분 폭발로 인한 열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것으로 결론났다. [11] 참관수업에 들어가기 직전 첫번째 비행기의 충돌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이때는 부시는 물론 보좌진들 모두가 '사고'로 취급하고 있었다. [12] 메리어트 호텔 [13] 붕괴 직전인 10:28:24에 촬영. http://www.billbiggart.com/911_18.html [14] 417M, 110층 [15] 417M, 110층 [16] 22층 [17] 전부 9층 [18] 47층, 1번~ 6번 건물과 조금 떨어져 있음 [19] "Oral Histories From Sept. 11 – Interview with Chief Daniel Nigro". The New York Times. October 24, 2001. Retrieved June 28, 2007. [20] B757-200, N644AA [21] 사건 이전에 설치된 펜타곤 CCTV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었다. [22] 다른 4개의 편은 붕괴되지 않고 서쪽 편만 붕괴. [23] 8시 46분, 9시 03분 [24] 이 때문에 벤 슬라이니는 9.11을 다룬 다큐에서 단골로 등장한다.《플라이트 93》이라는 영화에도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25] B757-200, N591UA [26] 다른 비행기들은 테러리스트들이 목적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승객들이 자살 테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저항하지 않았다. [27] 해당 기체로 사건 2개월 전 캘리포니아에서 찍힌 사진이다. [28] 테러범 5명 포함 [29] 해당 기체로 사건 6개월 전 뉴욕 국제공항에서 촬영되었다. [30] 테러범 5명 포함 [31] AA11편과 출발지, 목적지가 같다. [32] 해당 기체로 사건 7개월 전 플로리다에서 찍힌 사진이다. [33] 테러범 5명 포함 [34] 해당 기체로 사건 3일 전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촬영되었다. [35] 테러범 4명 포함 [36] 해당 기체로 사건 12년 뒤 하네다 공항에서 촬영되었다. [37] 해당 기체로 사건 8년 뒤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촬영되었다. [38] 원제는 "United 93" [39]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만들었는데, 로튼 토마토 신선도 91%를 찍는 기염을 토했으니 시간이 나면 한 번 보자. [40] 한마디로 카미카제식 자폭공격을 하려 했다는 뜻이다. 물론 미리 여객기에 충돌하도록 사전에 설정하고 충돌 전에 조종사가 탈출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조종사들도 이 방법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경우 진짜로 카미카제를 할 의향은 있었다고. [41] 사실 우리나라 민항기는 이미 9.11 테러 이전부터 조종석의 문을 잠근다는 방침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유는 북한 하이재킹이나 테러 가능성이 높았기에. [42] Security Control of Air Traffic and Air Navigation Aids [43]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전쟁이었던 ' 인디언 전쟁'은 카운트를 하지 않는다. 사실 원주민과의 싸움은 영국령 식민지 시기와 미국 건국 초기에 툭하면 산발적으로 일어난 전투였기 때문에 몇 번을 싸웠는지 정확하게 카운트하기가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인디언 전쟁은 원래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백인들이 약탈하고 침략한 싸움이라서 외부에서 미국을 공격한 것과는 사정이 다른 면도 있다. [44] 참고로 왜 본토 침공이 네 번째냐 하면 1812년, 지금의 캐나다에 해당하는 영국령 북아메리카 주둔 영국군에게 미국이 공격받아서 백악관까지 홀랑 태워먹었고 판초 비야가 이끈 멕시코 북부 혁명군에 의한 뉴멕시코 침공의 경우 제대로 된 침공이라기보단 멕시코 정부군과의 전쟁 도중 멕시코 군이 미국 국경을 넘어 근처 마을을 공격한 정도였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침공이 맞긴 하다. 이 일로 인해, 판초 비야는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20세기에 미국의 '본토'를 침공하고서 살아나온 유일한 사람"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또한 일본군은 잠수항모 I-25에서 내보낸 요코스카 E14Y를 이용하여 오리건주를 소이탄으로 폭격하였고 일본 본토에서 풍선폭탄을 날려 공격을 한 적도 있지만 둘 다 심리적인 부분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45] New York Police Department, 뉴욕 경찰국. [46] The Lone Gunmen. [47] 국내발매명 《적과 동지》. 9.11 이전에 집필되었다. [48] World Trade Center, 일명 쌍둥이 빌딩. [49] 초기 알 카에다가 계획한 공격 목표물은 펜실베니아주의 원자력 발전소였다. 사실 원자로 쉘터의 경우 각종 폭탄테러는 물론 항공기 충돌까지 상정하고 만들어진다. F-4팬텀을 이용한 초음속 충돌에도 완전방호되므로 원자력 발전소 공격은 큰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50] 정식명칭은 Uniting and Strengthening America by Providing Appropriate Tools Required to Intercept and Obstruct Terrorism Act. 하지만 약자가 USA PATRIOT Act인지라 그냥 '애국자법'으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51] 테러가 일어난 지역이 바로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시장이 있는 월 스트리트를 비롯한 온갖 금융거래사들이 모여 있는 금융행정구(Financial District)였던 이유도 있었다.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시민들을 대피시키느라 주식 시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 [52] 591개.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53] 646개. 7년 뒤에 하락종목 최다 기록은 무려 941개라는 기록으로 깨졌다. [54] 당시 뉴스 [55] 다만 당시 풋옵션은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했다. [56] 대체로 전쟁은 자국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조건 하에 주식시장에서는 호재로 분류된다. [57] US가 '우리'라는 뜻도 되지만, 미국(United States)라는 뜻도 된다. 이걸 보고도 이해가 잘 안 되는 위키러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정의 겸 미국의 상징인 Eagle(수리)과 함께 싸우든가, 아니면 열 받을 대로 받은 Vulture(대머리 수리)에게 맞서 싸우다가 물어 뜯기는 신세가 되든가 선택하라는 뜻이다.(위의 3컷은 독수리의 모습, 아래 3컷은 대머리 수리의 모습) [58] 외국 상사 주재원. 그 외에도 항공기 승객으로 탑승했던 재미교포 1명도 사망했다. [59] 중국 영공에 근접하여 초계비행하던 미국 해군 전자첩보기 EP-3C가, 요격을 위해 출동한 중국 F-8 전투기와 충돌해 하이난 섬에 비상착륙한 사건. 사고 경위와 기체, 승무원 반환을 놓고 양국 간에 감정싸움이 벌어졌으나, 일단 승무원과 기체는 무사히 미국으로 송환됐다. [60] 신의 응징 운운하는 것부터가 테러로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고인능욕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걸 국가 공식 입장이랍시고 내놨으니… 참모진들은 뭐 하고 있었던 건가 싶을 정도다. [61] 안 그래도 뿔난 미국의 입장에서 자국이 당했는데 되려 테러를 옹호하는 입장을 내놓는다는 얘기는, 한마디로 후세인이 테러범들과 관련이 있다고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예를 들자면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것이 본인들이 말레이시아와 같은 나라들을 건드릴 의도는 없는데도 말레이시아 정부는 규탄 성명을 내곤 한다. 이유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우리는 북한과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만약에 어느 나라가, 그것도 정부 명의로 핵실험을 환영하는 성명을 내놓는다면, 되려 북한의 핵실험 지원 의혹을 받으면서 같이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후세인의 망언이 얼마나 바보같은 자살행위였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62] 테러 2일 전, 탈레반의 숙적이자 북부 동맹의 리더였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를 알 카에다가 암살해주는 대가로, 알 카에다를 아프가니스탄에 숨겨주기로 되어 있었다. 탈레반은 내부적으로는 9.11을 저지른 걸 알고 분개했지만 그래도 빈라덴을 숨겨주자고 했다가 결국 미국의 분노로 탈탈 털렸다. 그나마 9.11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는 게 밝혀져서 알카에다처럼 아예 말살 대상 수준으로 분류되지는 않고 협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63] 정확히는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협력하지 않겠다면 (영공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폭격으로 석기시대로 돌아갈 각오를 하시오." [64] 높은 급료를 받는 대신 고위험지역에 투입된다 [65] 당시 훈련 중이던 B-25 중(형)폭격기 1대가 안개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빌딩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승무원을 비롯한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고 92층과 93층이 박살났으나, 건물이 무너지는 정도의 큰 피해는 없었다. [66] 그런데 애초에 이 둘을 비교할 수 없는 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사고는 단순 사고였던 반면, 9.11 테러는 테러리스트들이 작정하고 비행기를 충돌시켰다는 명백한 테러라는 것이다. 길 잃어서 허우적대다 실수로 박은 거작정하고 최고속력을 내서 꼬라박은 거랑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67] 전자는 B-25, 후자는 광동체 여객기… 체급이 다르다. B-25는 최대 이륙중량 16t, 최대속도 438km/h, 순항속도 370km/h. 무역센터에 충돌한 B767의 경우는 공중량만 80t(최대이륙중량 기준으로 하면 180t까지 불어난다.)에 순항속도 850km/h이다. 대략 100t으로 잡고 700km/h로 부딪혔다고 치고 계산해도, B-25가 가질 수 있는 최대 운동에너지의 거의 20배다. 실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사고의 경우와 비교하면, 25~30배 가량 차이나는 셈. [68] MIT의 토마스 이에가 교수에 의하면, 녹아내렸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한다. 항공유가 탑재된 항공기의 충돌로 빌딩 한 층 전체에 연료가 퍼져, 동시에 가열됨으로써 층 전체의 강철이 원래 강도의 절반을 잃은 것이지 절대 녹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붕괴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분석을 했다. 실제 철의 녹는 점은 1,500도가 넘으나, 강철의 특성이 변하여 물러지기 시작하는 온도는 900도 언저리밖에 안 된다. 대장장이가 쇠를 불에 달궈서 모양을 내는것과 대형 제철소의 섭씨 수천도에 달하는 용광로를 생각하면 쉽다. [69] 실제로 더 나중에 공격당한 남쪽 타워가 10층정도 더 아래에 맞았기 때문에 더 일찍 무너져내렸다. [70] 우리나라에서 1995년 이후로 무량판 공법이 기피대상이 된 것과 비슷하다. 철골 자체 또는 철골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같은 공법이란 이유로 기피대상이 된 것. [71] 다만 이쪽은 이미 수십 년째 적자를 내고 있었다. [72] 한때는 스위스라는 국가 브랜드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최고의 항공사였으나, 90년대 말, 위의 사베나와 같이 이 회사 저 회사 인수하더니 9.11로 결국 망했어요. 이후 자회사인 크로스에어가 이 파산한 회사를 인수하여 스위스 국제항공이 되었다. [73] 참고로 계속된 북한 계속되는 민항기 납치에 이골이 났던 대한민국 정부는 9.11 테러 이전부터 이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바 있다. [74] 하지만 생각보다 이 조항이 아직 잘 안 지켜지는 경우가 있다. 선진국의 항공사에서는 메이저, 저가항공 할 것없이 칼같이 지켜지나, 개도국의 경우 자국에서 나름 유명한 항공사에서조차 똑똑 두드리면 문을 열어주는 건 예사요, 아예 조종실 문을 열어놓고 운행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75] 일설에는 기내식용으로 주는 나이프였다고. 승무원과 승객들을 마구 찔러 공포심을 유발했기에 가능했으리라 보인다. 그런 걸로 비행기를 납치할 수가 있냐라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90년대 일본에서는 송곳 하나로 비행기를 하이재킹한 사례가 있었다. [76] 다만 그 이전부터 식사를 다르게 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장과 부기장이 둘 다 식중독에 걸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9.11 이후에도 일부 국가에선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77] TSA, 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 [78] 샌프란시스코 공항 TSA 직원들이 마약 밀수를 도운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2015년 3월 [79] 사실 그 이전에도 팬암 103편 폭파 사건 이후로 보안이 나름 강화되긴 했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으로. [80] 아랍계통 인종들 [81] 2004년과 2005년 시행된 실험에서 TSA는 70%의 실패율을 보였다. 다만 기사에 따르면 이후 시정되긴 했다는 모양. [82] 연방 항공 보안 요원 [83] 예를들어 테러리스트가 여러명이고 요원은 한명일 때, 테러리스트 한명이 설쳐서 요원이 정체를 드러내고 나머지 테러리스트들이 요원을 제압한다거나.. 그런 이유로 요원을 2명 태우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84] 예를 들어 공항 크기 대비 취항 항공기 수 [85] 두 주장은 Belobaba, P., Odoni, A., & Barnhart, C. (2015). The global airline industry. John Wiley & Sons. p. 6과 p. 7에서 따왔음 [86] 예고편에는 있었다. [87] 원래 비행기가 있었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지워야 됐고, 남은건 작은 경비행기 하나. 도도 전에 서술되어 있던 것은 항간에 떠돌던 소문일 뿐이고, 실은 GTA 3의 게임 엔진에 비행 메커니즘이 구현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보면 애당초 비행기를 추가할 계획이 없었으며, 도도는 개발진 측에서 재미로 넣어놓은 것이고 실제로 날리라고 만든 비행기가 아니라고 한다. [88] 오리지널 박스 아트에는 고층 빌딩이 그려져 있었다. [89] 1997년 차량 폭탄 테러를 다룬 가사. [90] 9.11 테러 이후인 2002년 발매 [91] 2011년에 Park51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슬림 센터가 근처에 생겼다. [92] 예를 들면, 과거엔 있던 미군기지 같은 곳이나, 항공기로 자폭 테러하기 적절한 것으로 취급되는 장소. [93] 한국 언론에서는 복자 처리되었지만, 미국 언론에서는 용의자의 사진과 실명이 공개되었다. [94] 무슬림과 시크교도는 서로 다른 터번을 쓴다. [95] 정확히는 견습생 [96] 탈레반의 시작은 종교 학교였다. [97]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98] 2005, 조너선 사프란 포어 [99] 2005, 짐 드와이어 [100] 11'9''01 September 11 [101] 2002, 사미라 마흐말마프 외 [102] Ferenheit 9/11 [103] 2004,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 [104] Loose Change 2nd Edition [105] 2006, 딜런 애버리, 다큐멘터리 [106] United 93 [107] 2006, 폴 그린그래스 [108] World Trade Center [109] 2006, 올리버 스톤 [110] Zeitgeist [111] 2007, 피터 조저프, 다큐멘터리 [112] My Name Is Khan [113] 2010, 카란 조하르 [114] The Reluctant Fundamentalist [115] 2012, 미라 네이어 [116]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117] 2012, 스티븐 달드리 [118] Zero Dark Thirty [119] 2012, 캐스린 비글로 [120] Ocean Avenue, 2003 [121] Octavarium, 2005 [122] It's Not Me, It's You [123] 밴드의 결성 계기가 9.11 테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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