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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220호 | |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靑磁 象嵌龍鳳牡丹文 盒 및 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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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청자 |
수량/면적 | 1조 |
지정연도 | 1984년 8월 6일 |
제작시기 | 고려 시대(13세기) |
|
<colbgcolor=#315288>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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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靑磁 象嵌龍鳳牡丹文 盒 및 托.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고려청자 대접 세트로 대접과 뚜껑, 대접 받침, 숟가락까지 해서 한 세트를 이룬다.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이라는 이름은, 상감 기법으로 용과 봉황, 모란 무늬를 새겨 넣은 청자로 된 대접과 그 받침이라는 것이다.삼성 이병철 전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골동품 가운데 국보 등과 같은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대다수 유물들이 그렇듯이,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도 정확한 입수경위나 출토 위치는 현재로선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본 청자 대접 세트는 대접과 대접 뚜껑, 대접 받침에다가 수저까지해서 온전하게 한 세트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대단히 높다. 또한 이 뿐만 아니라, 대접과 뚜껑, 받침의 내부와 외부에 조형된 장식들도 수준이 아주 높고 대단히 호사스럽다는 점에서 고려의 지배층이 사용한 식기구로 보이는데, 화려했던 고려 귀족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유물이기도 하다.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은 전체 세트로 묶여서 국보 제22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은 전체 높이 약 19cm, 대접의 입지름은 18.5cm 크기이다. 문화재명에서 가리키는 합(盒)은 뚜껑이 달린 음식을 담는 그릇을 말하는데, 본 유물은 숟가락까지 세트로 온전히 전해진다는 점에서 실제로도 음식을 담는 그릇 용도로 만들어져 쓰였을 것으로 본다.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세트를 이루는 각 기구들에 새겨진 장식은 상감 기법으로 조형된 것이다. 상감 기법이란 흙으로 도자기를 빗어낸 뒤에 칼로 흙 표면에 홈을 파서 문양을 새기고 이 홈을 백토(하얀 흙)나 흑토(검은 흙)와 같이 색이 있는 흙으로 채우고 유약을 발라 도자기를 구워서 완성시키는 방식의 세공 기술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주로 백토 상감이 쓰였지만 흑토도 간간히 섞어서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상감 장식은 대접, 뚜껑, 받침에 모두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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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 내부 |
대접 외부 표면은 상하로 나눌 수 있는데, 상부에는 띠를 두르고 띠 아래에는 구름 무늬를 새겨넣었고, 하부에는 전체적으로 국화 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두 겹의 원 안에 들어간 모란 문양으로 포인트를 줬는데 이 모란도 백토와 흑토로 상감(흑백상감)하여 또 포인트를 줬다. 외부 표면 역시 모두 상감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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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 뚜껑 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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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 뚜껑 내부 |
이외에도 뚜껑에서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가장자리 한 쪽 구석의 이가 빠져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소실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빠져 있던 것으로 뚜껑을 덮은 상태로도 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넣을 수 있도록 편의성을 살린 것이다. 이를 통해 숟가락 역시 원래의 한 세트임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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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 받침 윗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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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 받침 아랫면 |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에 딸려있는 숟가락은 금속제로 손잡이 부분은 구부러져 있고 그 끝에 꽃봉오리 모양으로 마무리를 해서 포인트를 주었다.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전체 세트 |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은 세트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보존상태가 아주 우수하고, 미적인 아름다움과 고려시대의 높은 청자 제작 공예 수준을 보여주며, 화려한 고려 귀족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 등의 가치를 인정 받아 1984년 8월 6일 국보 제220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 한국 미의 재발견 - 도자공예: 청자 상감 용·봉황·모란문 뚜껑 있는 합
- 두산백과: 청자상감용봉모란문개합
4. 국보 제220호
고려시대 만들어진 뚜껑있는 청자대접으로 높이 19.3㎝, 아가리 지름 18.5㎝, 밑 지름 6.8㎝이다.
뚜껑과 받침, 수저까지 완전하게 갖추어진 유물로서, 뚜껑에 다람쥐 모양의 꼭지를 만들었다. 다람쥐를 중심으로 그 아래에 흑백상감의 겹 연꽃무늬 띠와 물결무늬 띠를 두었고 그 밑으로 봉황과 용을 새겼다.
그릇 안에 수저를 꽂았을 때 뚜껑과 사발의 사이가 뜨지않도록 뚜껑의 한쪽 귀퉁이에 홈을 파 놓았으며, 대접 아가리의 가장자리에는 번개무늬 띠를 두르고 그 아래로 학과 구름무늬를 규칙적으로 새겼다. 표면에는 두 겹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모란을 흑백상감으로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여백은 국화 무늬로 메우고 있다. 유약은 부분적으로 황록색을 띠지만 대체로 맑은 편이다.
뚜껑, 대접, 받침 전면에 걸쳐 상감되어 있는 문양 표현이 돋보이며, 당시의 상감문양이 거의 망라되어 있어 이 유물이 왕족 계층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과 받침, 수저까지 완전하게 갖추어진 유물로서, 뚜껑에 다람쥐 모양의 꼭지를 만들었다. 다람쥐를 중심으로 그 아래에 흑백상감의 겹 연꽃무늬 띠와 물결무늬 띠를 두었고 그 밑으로 봉황과 용을 새겼다.
그릇 안에 수저를 꽂았을 때 뚜껑과 사발의 사이가 뜨지않도록 뚜껑의 한쪽 귀퉁이에 홈을 파 놓았으며, 대접 아가리의 가장자리에는 번개무늬 띠를 두르고 그 아래로 학과 구름무늬를 규칙적으로 새겼다. 표면에는 두 겹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모란을 흑백상감으로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여백은 국화 무늬로 메우고 있다. 유약은 부분적으로 황록색을 띠지만 대체로 맑은 편이다.
뚜껑, 대접, 받침 전면에 걸쳐 상감되어 있는 문양 표현이 돋보이며, 당시의 상감문양이 거의 망라되어 있어 이 유물이 왕족 계층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