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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3호 | |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
|
위치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무위사 (월하리)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
수량/면적 | 1동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조선 세종 12년(1430) |
|
<colbgcolor=#315288>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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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라남도 강진군의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무위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 시대 세종 12년인 1430년에 지어졌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총 9칸의 규모이다.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은 조선 초의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지붕은 맞배지붕 형태로 안정감을 주며 전체적으로 가람이 직선에 간결한 구조를 지녀 조선 초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무위사는 수륙사(水陸寺)로써 물과 육지에서 죽은 혼을 달래는 절이었다. 다른 사찰과 달리 대웅전 대신 극락보전이 있는 이유도 비명에 죽어간 혼들이 극락왕생하길 기원하기 위함이다.
간결한 외부와는 달리 극락을 상징하는 극락보전 내부는 불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데, 후불벽에 앞면에 그려진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보물 제1313호에 지정되어 있다가 2009년 9월 2일에 국보 제313호로 승격지정되었다.
또한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보물 제1312호에, 후불벽 뒷면에 그려진 관음도가 보물 제1314호에, 삼존벽화를 제외한 나머지 벽화들은 보물 제1315호에 지정되어 있다.
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무위사 극락전
-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사진으로보는 한국전통건축) : 극락보전
- 미술대사전(용어편) : 무위사 극락전
- 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 무위사 극락전
-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 조선의 선비 같은 무위사의 극락보전
- 두산백과 :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4. 국보 제13호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