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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258호 | |
백자 청화죽문 각병 白磁 靑畵竹文 角甁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
수량/면적 | 1점 |
지정연도 | 1997년 1월 25일 |
제작시기 | 조선 시대(18세기 전반) |
1. 개요
白磁 靑畵竹文 角甁. 조선 영조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의 청화백자.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가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며, 국보 제258호로 지정되었다.2. 내용
높이 40.6 ㎝, 입지름 7.6 ㎝, 밑지름 11.5 ㎝.조선 영조 시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술병 1점으로, 조선 후기 한국의 도자기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부터 도자기로 유명한 나라였으며, 실제로 조선 중기까지 한국의 도자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뛰어났다. 하지만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기점으로 한국의 도자기는 점차 기술과 정교함 면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뒤쳐졌다. 그 이유는 조선 내 양반들의 취향이 도자기에서 유기로 바뀐 데 기인한다. 따라서 비싼 도자기가 인기가 없었고, 이러한 상황 상 한국의 도자기 기술을 흡수해 더욱 발전해가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은 더 이상 기술이 발전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예술품은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사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백자 청화죽문 각병은 예술성이 높다. 준수한 병모양이나 모깎기 수법, 간결하고 품위 있는 청화 문양의 투명한 백자유 등을 사용했으며, 조선 후기의 청화백자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258호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백자로 몸통 전체를 모깎기 방법을 사용하여 8각의 모를 이룬 병으로, 높이 40.6㎝, 아가리 지름 7.6㎝, 밑 지름 11.5㎝ 이다.
길게 뻗은 목과 도톰한 아가리, 그리고 둥근 몸통과 높고 넓은 굽이 있다. 문양은 밝은 청화 안료를 써서 몸통 아랫부분에 선을 두르고, 대칭되는 양 면 중 한쪽 면에는 조그만 대나무 한 그루를, 다른 면에도 여러 그루의 대나무가 밀집해 있는 모습을 간결한 붓질로 묘사하였다. 굽다리 측면에는 의미를 모르는 ‘井’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모깎기한 모양이나 간결한 청화문양, 그리고 투명에 가까운 백자유로 보아 18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활달하면서 운치있는 대나무 그림이 당시 선비들의 기개를 나타낸 듯한 격조에서 단연 이 무렵의 대표적인 백자 병으로 손꼽힌다.
길게 뻗은 목과 도톰한 아가리, 그리고 둥근 몸통과 높고 넓은 굽이 있다. 문양은 밝은 청화 안료를 써서 몸통 아랫부분에 선을 두르고, 대칭되는 양 면 중 한쪽 면에는 조그만 대나무 한 그루를, 다른 면에도 여러 그루의 대나무가 밀집해 있는 모습을 간결한 붓질로 묘사하였다. 굽다리 측면에는 의미를 모르는 ‘井’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모깎기한 모양이나 간결한 청화문양, 그리고 투명에 가까운 백자유로 보아 18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활달하면서 운치있는 대나무 그림이 당시 선비들의 기개를 나타낸 듯한 격조에서 단연 이 무렵의 대표적인 백자 병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