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틀:대한민국의 국보 1~30호, version=27, uuid=b16ef97f-b363-494a-ab2a-e95ccd5f503f,
title2=틀:대한민국의 국보 31~60호, version2=23, uuid2=979147df-3a26-481f-b049-2bed6c206bdc,
title3=틀:대한민국의 국보 61~90호, version3=18, uuid3=a651288c-6ac5-4be6-aabd-d4ff8ce28b2d,
title4=틀:대한민국의 국보 91~120호, version4=16, uuid4=47b78863-c197-4fb3-8fa6-911be58d2f63,
title5=틀:대한민국의 국보 121~150호, version5=18, uuid5=38233d15-3cf9-4c93-833c-94c06a6fbf8b,
title6=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version6=15, uuid6=edf3cf60-9adb-4a8f-8ee0-0b7fbc07c52f,
title7=틀:대한민국의 국보 181~210호, version7=13, uuid7=dc5f6abf-c5c1-4679-b79e-a752e027eb8b,
title8=틀:대한민국의 국보 211~240호, version8=15, uuid8=0da4ae8e-4b56-4578-9135-01ed7dddf02a,
title9=틀:대한민국의 국보 241~270호, version9=13, uuid9=98999a90-809a-452b-9fd0-6721c558ff35,
title10=틀:대한민국의 국보 271~300호, version10=12, uuid10=d3cf8eb4-7dea-45c4-8db8-f764102672c0,
title11=틀:대한민국의 국보 301~330호, version11=21, uuid11=654db38a-ea8b-426b-a33e-245918ddd995,
title12=틀:대한민국의 국보 331~360호, version12=14, uuid12=6bc2ec27-8f76-40cf-9ef0-c2d80032b65e)]
대한민국 국보 제181호 | |
장양수 홍패 張良守 紅牌 |
|
소재지 | 경상북도 울진군 |
분류 |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
수량/면적 | 1점 |
지정연도 | 1975년 10월 13일 |
제작시기 | 고려 희종 1년(1205) |
1. 개요
張良守 紅牌. 고려 희종 원년인 1205년에 진사시(進士試) 병과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왕이 내린 급제 교지(敎旨). 현재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월계서원의 울진 장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181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가로 88㎝, 세로 44.3㎝.1205년에 실시한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희종이 내린 급제첩(及第牒)이다. 당시 시험관이던 태자소부(太子少傅) 왕규(王珪), 판호부사(判戶部事) 임유(任濡), 판병부어사대사(判兵部御史臺事) 최충헌(崔忠獻), 판예부사(判禮部事) 기홍수(奇洪壽), 판이부사(判吏部事) 최선(崔詵) 등 5명의 관직과 성이 기록되어 있고, 왕의 교지로써 을축년 4월에 내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형적인 고려 중기 홍패 양식을 갖추고 있어 당시 홍패 자료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문건이다. 또한 고려시대 과거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975년 10월 13일 대한민국 국보 제181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81호
이 문서는 고려 희종 원년(1205)에 진사시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내린 교지이다. 크기는 가로 93.5㎝, 세로 45.2㎝로 황색 마지 두루마리에 쓰여져 있다. 장양수는 울진부원군 문성공 장말익(張末翼)의 8세손으로 추밀원부사, 전리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고려 개국공신 장정필의 12세손이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에게 내린 홍패(紅牌), 백패(白牌)와 같은 성격의 교지이다. 앞부분이 없어져 완전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나, 고시에 관여했던 사람의 관직과 성이 기록되어 있다.
문서의 형식은 중국 송나라 제도에서 받아들인 듯하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패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 과거제도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에게 내린 홍패(紅牌), 백패(白牌)와 같은 성격의 교지이다. 앞부분이 없어져 완전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나, 고시에 관여했던 사람의 관직과 성이 기록되어 있다.
문서의 형식은 중국 송나라 제도에서 받아들인 듯하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패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 과거제도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