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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15호 | |
청자 상감당초문 완 靑磁 象嵌唐草文 碗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청자 |
수량/면적 | 1개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고려 시대(12세기) |
|
<colbgcolor=#315288> 청자 상감당초문 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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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시대인 12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청자 대접이다.청자 상감당초문 완이라는 이름을 풀이해 보면, 당초 무늬를 상감 기법으로 표면에 새겨 넣은 청자로 된 대접이라는 뜻이다. 상감(象嵌) 기법이란 흙으로 도자기를 빗어낸 뒤에 칼로 흙표면에 문양을 새기고 이 홈을 백토(하얀 흙)나 흑토(검은 흙)와 같은 색이 있는 흙으로 채우고 유약을 발라 도자기를 구워서 완성시키는 방식의 세공 기술이다. 상감 기법은 고려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도자 장식 기법으로, 고려 후기인 12~13세기에 크게 발달하였다. 당초(唐草)는 덩굴을 뜻하는데 특정한 식물의 덩굴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당초 무늬는 중국 당나라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으로, 일반적인 덩굴이 이리저리 꼬여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무늬를 말한다. 비슷한 것으로는 이슬람 문화권의 아라베스크 무늬가 있다. 완(盌)은 사발이나 대접과 같은 그릇을 뜻한다.
청자 상감당초문 완은 경기도 개풍군[1]에 위치한 문공유[2]의 무덤에서 그의 묘지와 함께 출토되었다고만 전하고 입수 경위 등에 관해 자세히 알려진 정보는 없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현전하는 대다수의 고려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청자 상감당초문 완 역시 일제강점기에 도굴로 유출된 유물일 것으로 보인다.
청자 상감당초문 완은 1962년에 국보 제115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청자 상감당초문 완은 높이 6.05cm, 입지름 16.8cm, 밑지름 4.4cm의 대접으로, 형태는 전형적인 대접의 형태를 하고 있다. 본 대접은 전체적으로 고려청자의 담녹색의 비색이 투명하고 맑게 잘 보존되어 있으며,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안팎이 대조적이라서 상당히 인상적이다. 대접 외부에는 다섯 송이의 국화꽃이 장식된 것과는 달리, 대접 내부는 덩굴 무늬로 가득 메워져서 보는 이의 눈길을 끈다.청자 상감당초문 완의 밑지름이 약 4cm인 반면 입지름은 약 17cm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굽은 작지만 입이 아주 넓게 벌어진 대접이며 이런 대접들은 요즘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본 대접에 새겨진 장식들은 모두 상감 기법으로 그려졌는데, 대접 내부와 외부에 새겨진 장식들 모두 그 수준이 높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접 내부의 덩굴 무늬는 그 제작 방식이 독특한데, 이는 역상감(易象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덩굴 무늬 자체에 상감 기법이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상감 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다시 말하자면 덩굴 무늬의 배경을 파내서 백토 상감을 한 것이다. 또한 대접 내부 바닥의 꽃 형상 장식도 역상감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대접의 테두리에는 풀 무늬 띠[3]를 둘러서 장식해놨다.
대접 외부는 내부의 장식에 비하면 단정한데, 테두리 주변에는 풀무늬 띠와 구름 무늬를 둘러서 장식했지만 외부 면의 중심부에는 국화꽃 다섯 송이만이 새겨져 있다. 국화꽃의 위에는 이파리와 작은 꽃봉오리가, 좌우로는 이파리가, 아래로는 줄기와 잎이 달려 있는데, 국화꽃잎 자체는 백토 상감으로 새겨 넣었고 이파리와 줄기는 흑토 상감으로 만들었다. 비록 유물 이름에 국화꽃에 대한 언급은 들어가진 않았지만 이 국화꽃들은 형태가 단아하여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다.
청자 상감당초문 완에 대해 더 전해지는 자료는 없어 아쉽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어서 고려청자의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데에 도움을 준다. 본 대접은 문공유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문공유가 1159년에 사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리 늦어도 최소한 1159년 경에는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청자 상감당초문 완은 제작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상감청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접의 제작 정도로 미루어보아 12세기 중반 경에 고려청자 제작 기법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자 상감당초문 완은 보존 상태가 좋고 고려청자의 발달 과정 연구에 도움을 주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으며, 고려시대의 세련되고 뛰어난 청자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공예품으로서의 가치 등을 높게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3. 국보 제115호
고려 청자의 전성기때 만들어진 청자대접으로 높이 6.05㎝, 입지름 16.8㎝, 밑지름 4.4㎝이다.
고려 의종 13년(1159)에 죽은 문공유의 묘지(墓誌;죽은 사람에 대한 기록을 적은 글)와 함께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토된 것인데, 연대를 알 수 있는 상감청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굽부분이 좁고 아가리가 위로 벌어진 형태인데, 굽에서 아가리에 이르는 선은 완만한 선을 이루고 있다. 대접의 안쪽 가운데에는 원을 그리고, 그 안에 큰 꽃무늬를 새겼는데, 바탕을 백토(白土)로 상감하는 역상감기법을 쓰고 있다. 아가리 주위를 제외한 그릇 안쪽은 온통 덩굴무늬로 자유롭게 메우고 있다. 대접의 바깥쪽은 안쪽의 아가리 부분과 똑같은 문양으로 장식하였으며 중심부 5곳에 국화 한송이씩을 두고 있는데 꽃은 흰색으로, 잎은 검은색으로 상감하였다. 안쪽면이 모두 백상감된 단색인데 비해 바깥면의 호화스러운 국화꽃무늬가 잘 조화되어 전성기 청자 상감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장식효과를 나타내는 작품이다.
회청색 계열의 비취빛 유약이 매우 맑고 고르게 씌어져 있어서 표면의 색조가 은은하고 상감효과도 한층 돋보인다. 이 대접은 12세기 중엽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 발달하는 과정과 수준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으로서 고려청자 상감사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 의종 13년(1159)에 죽은 문공유의 묘지(墓誌;죽은 사람에 대한 기록을 적은 글)와 함께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토된 것인데, 연대를 알 수 있는 상감청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굽부분이 좁고 아가리가 위로 벌어진 형태인데, 굽에서 아가리에 이르는 선은 완만한 선을 이루고 있다. 대접의 안쪽 가운데에는 원을 그리고, 그 안에 큰 꽃무늬를 새겼는데, 바탕을 백토(白土)로 상감하는 역상감기법을 쓰고 있다. 아가리 주위를 제외한 그릇 안쪽은 온통 덩굴무늬로 자유롭게 메우고 있다. 대접의 바깥쪽은 안쪽의 아가리 부분과 똑같은 문양으로 장식하였으며 중심부 5곳에 국화 한송이씩을 두고 있는데 꽃은 흰색으로, 잎은 검은색으로 상감하였다. 안쪽면이 모두 백상감된 단색인데 비해 바깥면의 호화스러운 국화꽃무늬가 잘 조화되어 전성기 청자 상감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장식효과를 나타내는 작품이다.
회청색 계열의 비취빛 유약이 매우 맑고 고르게 씌어져 있어서 표면의 색조가 은은하고 상감효과도 한층 돋보인다. 이 대접은 12세기 중엽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 발달하는 과정과 수준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으로서 고려청자 상감사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료이다.
4.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청자 상감당초문 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청자 상감당초문 완
-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국화당초문 대접
- e뮤지엄: 청자 상감 국화 넝쿨 무늬 완
- 두산백과: 청자상감당초문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