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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70호 | |
<colbgcolor=#315288>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 白磁 靑畵梅鳥竹文 有蓋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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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
수량/면적 | 1개 |
지정연도 | 1974년 7월 9일 |
제작시기 | 조선 시대(15세기) |
1. 개요
白磁 靑畵梅鳥竹文 有蓋壺. 15세기 말 조선 세조~ 성종 시기에 경기도 광주 일대의 분원요(分院窯)에서 만들어진 청화백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고 국보 제170호로 지정되었다.2. 내용
높이 16.8 cm, 입지름 6.1 cm, 밑지름 8.8 cm.15세기 말, 조선 세조 및 성종 재위 시기에 (1467년 세조가 창설한) 경기도 광주 왕실관요에서 건립 초창기에 제작한 도마리 계통 백자유개호이다.
도자기에 그려진 새 두 마리와 매화가지 일부는 거의 흑색에 가까운 청화발색인데, 연구 결과 조선 세조가 직접 발명한 토청을 사용하여 그린 것이었다. # 우리나라에서 청화백자가 처음 만들기 시작한 세조조, 혹은 연대를 약간 미루어 잡아 성종조에 제작했다고 추정한다. 만약 성종대에 만들었다면 1470년대 중반부터 왕의 명으로 한국산 토청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전량 수입하도록 정했으므로 성종 즉위 초년에 만들었을 것이다.
그림 속에 농담의 변화가 보이므로 당시 매우 높은 직위에 있던 전문 화가가 그린 듯하다. 1400년대 중후반에 만든 한국의 청화백자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70호
조선시대 만들어진 높이 16.8㎝, 입지름 6.1㎝, 밑지름 8.8㎝의 뚜껑있는 백자 항아리이다.
뚜껑의 손잡이는 연꽃봉오리 모양이며, 어깨는 벌어졌고 잘록한 허리의 선은 바닥에서 약간 도드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굽의 접지면 바깥둘레는 약간 경사지게 깎아내렸다. 뚜껑의 손잡이에 꽃잎 4장을 그리고 그 주위에 매화와 대나무를 그린것이, 조선 전기 회화에서 보이는 수지법(樹枝法)과 비슷하다. 아가리 가장자리에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덩굴무늬를 그리고, 몸체의 한 면에는 한 쌍의 새가 앉아있는 매화와 들국화를, 다른 한 면에는 V자형으로 뻗어나간 대나무를 그렸다.
그림 속에 농담의 변화가 보이는 것이 전문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항아리는 조선 초기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무렵 백자 항아리의 형태와 문양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뚜껑의 손잡이는 연꽃봉오리 모양이며, 어깨는 벌어졌고 잘록한 허리의 선은 바닥에서 약간 도드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굽의 접지면 바깥둘레는 약간 경사지게 깎아내렸다. 뚜껑의 손잡이에 꽃잎 4장을 그리고 그 주위에 매화와 대나무를 그린것이, 조선 전기 회화에서 보이는 수지법(樹枝法)과 비슷하다. 아가리 가장자리에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덩굴무늬를 그리고, 몸체의 한 면에는 한 쌍의 새가 앉아있는 매화와 들국화를, 다른 한 면에는 V자형으로 뻗어나간 대나무를 그렸다.
그림 속에 농담의 변화가 보이는 것이 전문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항아리는 조선 초기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무렵 백자 항아리의 형태와 문양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