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17:08:47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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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숭례문
  1.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2.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3. 여주 고달사지 승탑
  4.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5.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6.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7.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8.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9.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10. 익산 미륵사지 석탑
  11.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12.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13. 영천 거조사 영산전
  14. 안동 봉정사 극락전
  15.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16.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17.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18. 영주 부석사 조사당
  19. 경주 불국사 다보탑
  20.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21.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22.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23. 경주 석굴암 석굴
  24.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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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5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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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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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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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1~2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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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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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1.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37
  2.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
  3.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4. 충주 고구려비
  5.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6.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7.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8. 보협인석탑
  9. 감지은니불공견삭신변진언경 권13
  10.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11.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12. 금동탑
  13. 흥왕사명 청동 은입사 향완
  14.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 31
  15. 정선필 인왕제색도
  16. 정선필 금강전도
  17. 아미타삼존도
  18.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19.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20.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21.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
  22. 경복궁 근정전
  23. 경복궁 경회루
  24. 창덕궁 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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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51~300호]
{{{#!wiki style="margin:-10px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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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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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301~3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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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104호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傳 原州 興法寺址 廉居和尙塔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통일신라 문성왕6년(845)
파일:k20220611_172448.jpg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1. 개요2. 수난사3. 내용4. 외부 링크5. 국보 제104호

1. 개요

통일신라 문성왕 6년(844)년 또는 문성왕 17년(855)에 제작된 승탑[1]으로, 염거화상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2] 본 승탑의 내부에서 동제염거화상탑지[3]가 발견되었는데, 이 덕분에 염거화상탑의 제작시기뿐만 아니라 염거화상탑이 한반도에 현전하는 승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는 염거화상탑은 한반도 승탑들의 효시이자, 후대에 승탑 양식에서 일종의 모범이 되어 영향을 크게 미쳤으리라 추측한다.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은 본래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위치한 흥법사지에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없어서 문화재명에 전()이라는 글자가 붙었다. 흥법사(興法寺)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신라 때라고 전한다. 조선지대까지도 명맥이 이어졌으나 14세기 말 임진왜란 때 폐사됐다고 추정된다. 흥법사와 관련된 유물로는 본 승탑을 비롯하여, 보물 제365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보물 제463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보물 제464호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등이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수난을 겪는 바람에 염거화상탑과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였고 진공대사탑비과 삼층석탑만이 겨우 제자리를 지켰다.[4][5]

본 승탑의 주인인 염거화상은 통일신라의 승려로, 출생시기는 불명확하지만 동제염거화상탑지에 의하면 844년에 입적했다. 그는 진전사(陳田寺)[6] 도의선사(道義禪師)의 제자이자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 804∼880)[7]의 스승이자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迦智山門)의 2대 조사였다.[8]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은 1962년에 국보 제104호로 지정됐고, 2021년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 중이다.

2. 수난사[9]

파일:k20220611_172611.jpg 파일:국보104호전원주흥법사지염거화상탑01.jpg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염거화상탑 경복궁 야외에 전시되어 있었을 때 찍힌 사진으로 보인다.[10]

염거화상탑은 일제강점기 이후 원위치를 떠나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야 했다. 우선 원위치에서 일본인들이 불법적으로 반출하려다가 딱 걸리는 바람에 1914년 경에 서울 탑골공원으로 옮겨졌고,[11] 이후 불명확한 시기에 경복궁 경내로 옮겼다가,[12]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에 들어간 국립중앙박물관 앞뜰로 1986년에 다시 옮겨졌고, 2005년에는 용산에 새롭게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따라간 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문제는 염거화상탑을 탑골공원으로 옮기기 전의 본래 위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관련 기록에는 "탑동공원내(塔洞公園內)로 옮겼다."[13]라고 쓰고는 원위치를 강원도 원주시 흥법사지라고만 기록해서, 그냥 원위치가 흥법사지인갑다 하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여러차례의 답사와 조사를 통해 현지 주민들은 염거화상탑이 옮겨진 바를 전혀 모르며, 흥법사지에 염거화상탑이 서 있던 흔적도 딱히 없어서 이 기록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됐다.[14] 따라서 일제강점기 때 염거화상탑의 원위치를 흥법사지라고 한 것은 근거 없는 조작이거나 착오하여 오기했다고 추정한다. 이에 따라 염거화상탑의 원래 위치가 흥법사지인지 불명확하기에, 이름에 '전(傳)'이라는 딱지가 붙게 됐다.
파일:염거화상탑일제시대01.jpg 파일:염거화상탑일제시대02.jpg
또 다른 문제는 지붕돌 위의 상륜부(相輪部)[15]가 아예 증발해 버린 채로 상당히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경복궁으로 옮기기 이전에 촬영한 사진에는 3단으로 된 상륜부가 명확하게 확인되나, 2018년까지 행방이 묘연했었다.

염거화상탑을 탑골공원에서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승탑 내부에서 동제염거화상탑지를 발견했는데, 옮기기 위해 승탑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상륜부 장식들이 관리 미흡으로 분실됐다거나 몰래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었고, 염겨화상탑은 이렇게 상륜부가 없어진 채로 2018년까지 계속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런데 2018년 7월 9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수장고에 정리도 안 된 상태로 잠들어 있는 유물들의 조사 과정에서 염거화상탑의 상륜부를 찾아냈다고 밝혔고, 복원을 진행하여 현재는 상륜부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상태다.[16]

3. 내용

파일:k20220611_172440.jpg
국립중앙박물관 염거화상탑 설명판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은 높이 1.7 m인 화강암제 승탑이다. 본 승탑은 기단부터 몸돌과[17] 지붕돌[18]까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라고 칭한다.[19] 다만 기단 밑의 바닥돌은 사라진 것으로 보이나,[20] 전체적으로는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 여전히 아름다운 석탑이다.

몸돌 아래의 기단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윗돌, 가운데돌, 밑돌로 구분한다.[21] 다만 염거화상탑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것은 아니라서, 기단의 밑돌 아래에 또 바닥돌이 있어서 사실 이것이 밑돌이었고, 본 승탑을 원위치에서 옮기던 중 소실되었다고 보기도 한다.[22] 현재는 밑돌 아래에 정사각형의 바닥돌을 새로 깔아놓았다.
파일:국보104호전원주흥법사지염거화상탑02.jpg
염거화상탑 기단부
기단 맨 아래 밑돌 부분(혹은 중대받침)의 측면 8개에는 각각 사자상이 새겨져 있으며,[23] 그 위에는 3개로 이루어진 작은 계단형 단을 마련했다. 이 3단 위에는 팔각형으로 만들어 향로와 꽃무늬 등으로 장식한 가운데돌(중대석)이 있다. 윗돌[24]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윗돌의 아랫부분 중 가운데돌과 닿는 지점에는 3개로 된 역계단형 단을 새겼다. 특히 윗돌의 아랫부분은 전체적으로 두 줄로 된 둥글넓적한 연꽃 무늬가 뚜렷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연꽃 무늬는 위아래로 각각 16개씩 새겨셔 측면을 원형으로 빙 둘렀다. 또한 연꽃 무늬의 위로는 2단의 계단형 단이 만들어져서 윗돌의 윗부분과 만난다. 윗돌의 윗부분은 가운데돌처럼 8개 면에 장식되었는데, 여기에는 천부상(天部像)들을 조각했다.[25] 윗돌 윗부분과 몸돌이 만나는 곳에는 역시 아래 부분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2단으로 된 계단형 단을 만들었다.
파일:국보104호전원주흥법사지염거화상탑03.jpg
염거화상탑 몸돌과 지붕돌
염거화상의 사리가 모셔졌던 몸돌은 역시 팔각형인데, 각 면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기둥 장식[26]을 새겨 서로 구분하였다. 또한 몸돌의 앞뒤로 문을 하나씩 새겨서 문이 모두 2개가 있다.[27] 그 문의 양옆에는 사천왕을 배치했다.[28] 문과 사천왕 모두 돋을새김으로 아주 섬세하게 조각되었는데, 문에는 자물쇠와 문고리뿐만 아니라 문 위에 꽃 무늬가 새겨진 굴곡이 있는 아치형 장식까지 만들었다. 사천왕들은 대좌 위에 올라가 각기 상징하는 무기를 쥐었는데 형상이 아주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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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거화상탑 지붕돌 처마 부분의 비천상
비천상 아래에는 문과 자물쇠, 문고리, 꽃 무늬가 새겨진 아치형 장식이 있다.
몸돌 위에는 역시 팔각으로 된 지붕돌이 올라가 있다. 이 지붕돌 역시 그 묘사 정도가 상당히 섬세한데, 기와 사이의 기왓골도 하나하나 표현해 놨으며 기와의 끝에는 막새기와도 하나하나 만들었다. 또한 지붕 위에 잡상을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29][30] 지붕의 기와 묘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붕 밑에는 처마까지 만들어놨는데 여기에는 비천상 조각들이 숨겨져 있다.[31] 이와 같이 실제 목조 건축의 여러 디테일들을 사실적이며 충실하게 표현해놔서, 본 승탑은 신라시대 건축물의 지붕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는 자료이기도 하다.

다만,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지붕돌 위에 있던 상륜부를 분실했다가 다행히도 2018년도에 다시 찾아 복원했는데, 문제는 일제강점기 때 찍힌 사진에 있는 모습과 현재 복원한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상륜부를 분실 하기 전에 이를 찍은 사진이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보면, 상륜부는 3단(보륜[寶輪]-복발[覆鉢]-보륜)으로 구성되고 가운데 공 모양 복발을 돌기가 돌출된 보륜들이 위아래로 감싸는 형태이다. 하지만 현재 복원해 놓은 모습은 보륜-보륜-복발인데, 어째서 이렇게 다르게 복원했는지 그 이유는 불명확하다. 어쨌든 잃어버렸던 상륜부를 찾아서 세부적인 모습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는 불행 중 다행으로, 다른 승탑들의 상륜부 형태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기도 하다.[32]

이외에도 염거화상탑은 제작시기와 탑에 모셔진 사리의 주인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귀중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탑골공원에서 경복궁으로 염거화상탑을 옮기면서 승탑 내부에서 동제염거화상탑지가 발견되어 본 승탑의 제작시기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동제염거화상탑지는 동판에 염거화상탑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새긴 것이다.
會昌四秊歲次甲子季秋之月兩旬九日遷化廉巨和尙塔去𥼶迦牟𡰱佛入𣵀槃一千八百四年矣
회창사년세차갑자계추지월양순구일천화염거화상탑거석가모니불입열반일천팔백사년의

當此囯慶膺大王之時
당차국경응대왕지시
회창會昌 4년 간지가 갑자이던 해 9월 29일에 천화한(돌아간) 염거화상의 탑으로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지 1804년이 지나서인데, 이 나라 경응 대왕(문성왕)의 때이다.

동제염거화상탑지 명문[33]

명문에 염거화상탑이라고 명확하게 표기되어 본 승탑에 모셨던 사리가 염거화상의 것이 분명하다. 이와 함께 이미 이 시기부터 승탑을 탑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회창(會昌)은 당나라 무종의 연호로 염거화상의 입적 시기를 회창 4년 갑자(甲子)로 적었는데, 회창 4년은 서기 844년으로 간지는 갑자이며,[34] 또한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응(慶膺)은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이름이므로 문성왕 6년임이 분명하다.

2014년에 국립춘천박물관이 발간한 조사보고서 <선림원종·염거화상탑지>에 실린 논문 "염거화상탑지와 탑에 대한 고찰"의 저자 강삼혜 학예연구사는 논문에서 염거화상이 844년에 입적했고 화상의 승탑을 855년에 완성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후로는 염거화상탑/탑지를 조성한 때를 855년으로 본다. 자세한 내용은 동제염거화상탑지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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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은 20세기에 들어서 이리저리 떠도는 수난을 겪으면서 본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게 됐으며 일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어 안타깝지만, 전반적으로 보존상태가 아주 좋고 승탑 그 자체의 우아한 기품과 섬세한 형태 그리고 청아한 조각 솜씨를 잘 간직하고 있다.[35] 또한 승탑 내부에 동제염거화상탑지라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 전해져서 승탑의 주인과 제작 연대가 명확하고, 현전하는 승탑 중에 건립 연도가 명확한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절대 연도도 확실하여 한반도 불교 미술 연구에 중요한 기준 중 하나를 제공한다. 또한 염거화상탑은 승탑 제작에 있어서 팔각원당형이라는 일종의 표준형이자 프로토타입을 제시해서, 이후에 만들어진 신라 승탑들[36] 뿐만 아니라 한반도 승탑 형식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평가되는 귀중한 작품이다.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은 이와 같은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 받아 일찍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4. 외부 링크

5. 국보 제104호

통일신라 말의 승려 염거화상의 사리탑이다. 염거화상(?∼844)은 도의선사의 제자로, 선(禪)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던 당시 주로 설악산 억성사에 머물며 선을 널리 알리는데 힘썼다. 체징에게 그 맥을 전하여 터전을 마련한 뒤 문성왕 6년(844)에 입적하였다.

이 탑은 원래 강원도 흥법사터에 서 있었다 하나,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탑이름 앞에 ‘전(傳:∼라 전하다)’자를 붙이게 되었고, 원래 위치에서 서울로 옮겨진 후에도 탑골공원 등 여러 곳에 옮겨졌다가 경복궁에 세워졌으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탑은 아래위 각 부분이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기단(基壇)은 밑돌·가운데돌·윗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면마다 소박한 조각이 멋스럽게 펼쳐져 있다. 밑돌에는 사자를 도드라지게 새겼고, 가운데돌에는 움푹 새긴 안상(眼象)안에 향로를 새겨 두었다. 2단으로 마련된 윗돌은 아래단에는 연꽃을 두 줄로 돌려 우아함을 살리고 윗단에는 둥그스름한 안상(眼象) 안에 여러 조각을 두어 장식하였다.

사리를 모셔둔 탑신(塔身)의 몸돌은 면마다 문짝모양, 4천왕상(四天王像)을 번갈아 가며 배치하였는데, 입체감을 잘 살려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당시의 목조건축양식을 특히 잘 따르고 있어서 경사면에 깊게 패인 기왓골, 기와의 끝마다 새겨진 막새기와모양, 밑면의 서까래표현 등은 거의 실제 건물의 기와지붕을 보고 있는 듯하다.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은 탑을 옮기기 전까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탑을 옮겨 세울 때 그 안에서 금동탑지(金銅塔誌)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통일신라 문성왕 6년(844)에 이 탑을 세웠음을 알게 되었다. 사리탑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단아한 기품과 깨끗한 솜씨가 잘 어우러져 있다. 이후 대부분의 사리탑이 이 양식을 따르고 있어 그 최초의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다.


[1] 승탑은 불교 승려의 묘탑을 지칭하는 말이다. [2]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염거화상의 사리는 사라지고 없다. [3] 보물 제1871호로 지정되었다. [4] 흥법사지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5호로 지정되었다. [5]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흥법사지 [6] 진전사는 강원도 양양군에 있던 사찰로 조선 시대에 폐사가 되었다가 2005년에 재건되었다. 진전사지는 강원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절터에는 국보 제122호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등이 남아 있다. [7] 장흥 보림사를 창건한 개산조이기도 하다. [8]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9] 본 단락은 전적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항목을 주 텍스트로 삼아 작성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10] 상륜부가 없는 상태다. [11] 출처: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염거화상탑 [12] 이때 옮기면서 승탑 내부에서 동제염거화상탑지가 발견됐다고 한다. [13] 탑동공원은 탑골공원의 별칭이다. [14] 현지답사 때 현지 주민들로부터 확인한 바에 의하면, 여기서 옮겨진 것은 앞서 언급된 '진공대사탑 및 석관'인 듯하다. [15] 이를 머리장식이라고도 한다. [16] 출처: 경향신문 2018년 7월 9일 기사 - 홍법국사탑 등 국보와 보물 고려 승탑들, 제 모습 찾는다...중앙박물관, 상륜부 찾아내 복원 예정 [17] 이를 탑신(塔身)이라고도 한다. [18] 이를 옥개석(屋蓋石)이라고도 한다. [19] 각 기단, 몸돌, 지붕돌 등을 바닥과 평행하게 자른다고 쳤을 때, 그 단면이 8각형의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참조: 두산백과 - 팔각원당형 승탑 [20] 출처: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염거화상탑, e뮤지엄 -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21] 혹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선 기단을 상대석, 중대석, 중대받침으로 보기도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22] 염거화상탑과 쌍봉사 철감선사탑을 비교해 살펴보면, 염거화상탑에도 본래는 밑돌(바닥돌)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에 힘이 실린다. 물론 원래부터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23] 풍화에 의해 사자들의 형태가 그다지 뚜렷하지는 않다. [24] 가운데돌 위부터 몸돌 아래 까지를 윗돌이라 하는데, 참고 문헌에 따라 이 부분을 '2단으로 된 윗돌' 혹은 '상대석과 탑신굄돌'로 상이하게 구분한다. 본 문서에서는 전자의 시각을 따르도록 한다. [25] 참고문헌에 따라서는 비천상으로 보기도 한다. 참조: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염거화상탑 [26] 이를 우주(隅柱)이라고 한다. [27] 이렇게 새긴 문 장식을 문비(門扉)라고 한다. [28] 따라서 총 8개의 면 중에 6면에 문과 사천왕 등의 장식이 있고 나머지 2면에는 장식이 없다. [29]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30] 다만 잡상은 고려시대 건축에 들어서야 그 존재가 확실하게 확인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잡상의 흔적이 아닐 수도 있다. [31] 비천상은 처마의 모든 면은 아니고 한 면 씩 건너 뛰어서 총 4면에 배치되어 있다. [3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33] 해독한 명문과 번역문의 출처: <국립춘천박물관 소장품 조사연구보고서 I: 선림원종·염거화상탑지>, 2014, 국립춘천박물관, 150쪽 [34]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갑자 [35]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서울 - 전흥법사 염거화상탑, 두산백과 -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36]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구례 연곡사 동 승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