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KIA 타이거즈/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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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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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IA 타이거즈의 역대 선수 및 인물을 정리한 문서.2. 역대 선수 및 인물
2.1.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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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역대 영구 결번 | |||
등번호 | 이름 | 소속 기간 | |
18 | 선동열 | 1985~1995(해태) | |
7 | 이종범 | 1993~1997(해태), 2001~2012(K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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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영구 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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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1996.01.16.) |
이종범 (2012.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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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명 하단 일자는 영구 결번 지정일이다. | }}}}}}}}} |
선동열의 18번과 이종범의 7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다만 타이거즈는 KBO 리그 최다인 11번의 우승과 다수의 전국구적인 활약을 한 레전드들을 보유하고 있고, 리그 내에서 최상위의 팬층을 보유한 명문 구단이며, 특히 해태 타이거즈 시절엔 20세기 최강팀이라는 호칭에 부족함이 없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15년간 9번의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프라임 타임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영구 결번의 수가 너무나도 적다. 이에 김응용[1], 김봉연[2], 김성한[3], 이강철[4], 한대화[5], 이순철[6], 홍현우[7], 장성호[8], 조계현[9], 이대진[10] 등 뛰어난 성적과 상징성을 가진, 팀의 최전성기를 함께한 레전드들을 영구 결번하자는 여론이 많다. 그 대상이 될만한 레전드를 많이 보유한 만큼 이들을 모두 영구 결번을 하고, 앞으로도 이런 추세로 영구 결번을 하게 되면 현역 선수들의 번호가 없다는 우려섞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역 선수 중 영구 결번이 확정적인 선수는 54번의 양현종뿐이며, 범위를 넓혀도 22번째 시즌에도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후보로 급부상한 KBO 리그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한명인 34번의 최형우가 언급될 뿐이다. 또한 앞서 언급된 레전드들은 15년간 9번의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프라임 타임의 결과물이기에 이와 같은 영구 결번 추세를 예상하는 건 쉽지 않으며, 무엇보다 현역 선수들의 번호가 없을게 우려된다는 이유로 기려야할 레전드를 기리지 않는 건 결코 마땅치 않다.
더불어 타 리그인 MLB와 NPB를 보면, 각 리그의 최다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모두 소속 리그에서 가장 많은 영구 결번을 가진 구단이기도 하다. 뉴욕 양키스는 한 자리수 등번호가 모두 영구 결번 되어 사용할 수 없고, 20명이 넘는 레전드가 영구 결번 되었다. 순혈주의가 강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영구 결번을 잘 하지 않는 분위기의 리그에 속해 있음에도 영구 결번에 순혈을 따지지 않았다.
과거에 비해 해태색 지우기의 경향도 없다시피 하고, 레전드에 대한 대우와 팬들을 생각하는 면에 있어 KIA 타이거즈가 훌륭하게 나아가고 있기에 레전드들의 영구 결번이 머지 않아 진행될 거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존재한다. 레전드들에 대한 영구 결번이 진행된다면, 현역 선수들이 팀의 압도적이었던 과거와 팀에 훌륭히 기여한 선배들을 기리고 명문 구단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보다 와닿게 느끼게 되어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에 영구 결번의 진행이 되도록이면 빠른 시일에 되었으면 하는 팬들이 많다.[11]
2.1.1. No.18 선동열
자세한 내용은 선동열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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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18 | |
선동열 宣銅烈 | Sun Dong-Y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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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 1985년 1차 지명 |
역대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 (1985~1995 / 11시즌 / KBO) |
주니치 드래곤즈 (1996~1999 / 4시즌 / NP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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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지정일자 | 1996년 1월 16일 |
역대 기록 | ||||||||||||||||
경기 | 이닝 | 승리 | 패배 | 세이브 | 홀드 | 승률 | ERA | FIP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WHIP | WAR | ||
367 | 1647 |
146 (5위) |
40 | 132 | 0 |
.785 (1위) |
1.20 (1위) |
1.37 (1위) |
968 | 28 | 404 |
1698 (3위) |
0.80 (1위) |
101.29 (1위) |
선동열의 18번은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곤즈 이적을 확정짓자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현재까지 KBO에서 은퇴 전에 영구 결번이 지정된 최초의 케이스.[12] 1996년 당시 기사
하지만 해태가 KIA에 매각되면서 눈치 없는 KIA 프런트가 해태색 없애기의 일환으로 영구 결번을 무효화하고 신인 최고액 계약금을 받았던 김진우에게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18번을 잠깐 받았던 김진우도 구단이 주니까 받기는 했지만 부담이 되었던 눈치라 KIA에서도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선동열 본인이 KIA 감독으로 복귀할 때 이 번호를 되살리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영구 결번의 취지를 살리고자 감독으로서의 선동열에겐 90번이 갔다.
2.1.2. No.7 이종범
자세한 내용은 이종범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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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7 | |
이종범 李鍾範 | Lee Jong-Be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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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 1993년 1차 지명 |
역대 소속팀 |
해태-
KIA 타이거즈 (1993~1997, 2001~2012 / 16시즌 / KBO) |
주니치 드래곤즈 (1998~2001 / 4시즌 / NPB) |
|
영구 결번 지정일 | 2012년 5월 26일 |
역대 기록 | ||||||||||||||||
경기 | 타수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wRC+ | WAR |
1706 | 6060 | .297 | .370 | .458 | .828 | 1797 | 340 | 29 | 194 | 730 | 1100 |
510 (2위) |
634 | 622 | 126.1 | 67.74 |
이종범의 7번은 2012년 3월 31일 본인이 은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같은 해 5월 26일에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이 동시에 거행되면서 타이거즈 역사상 두 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2.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선수단 문서의
레전드 올스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2009. 07.25. 한국야구위원회 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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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2020. 08.26. KIA 타이거즈 공식 어플리케이션 팬 투표 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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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역대 구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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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역대 구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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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2대 | 3대 | |||
박건배 (1982~2001) |
정몽구 (2001~2021) |
송호성 (2022~ ) |
KIA 타이거즈 역대 구단주 | |||
순서 | 이름 | 직책 | 기간 |
초대 | 박건배 | 해태그룹 회장 | 1982~2001 |
2대 | 정몽구 |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 2001~2021 |
3대 | 송호성 | 기아 사장 | 2022~ |
2.4. 역대 사장(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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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역대 대표이사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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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박건배
(1982~1983) |
강남형
(1984~1991) |
노주관
(1992~1995) |
마의웅
(1996~1998) |
정기주
(1999~2001) |
|
<rowcolor=#ffffff> 6대 | 7대 | 8대 | 9대 | 10대 | |
김익환
(2001~2005) |
조남홍
(2006~2008) |
서영종
(2009~2010) |
이삼웅
(2011~2014) |
박한우
(2015~2017) |
|
<rowcolor=#ffffff> 11대 |
12대
|
13대 | |||
허영택
(2018) |
이화원
(2019~2021) |
최준영 (2022~ ) |
KIA 타이거즈 역대 사장 | ||
순서 | 이름 | 기간 |
초대 | 박건배 | 1982~1983[13] |
2대 | 강남형 | 1984~1991 |
3대 | 노주관 | 1992~1995[14] |
4대 | 마의웅 | 1996~1998[15] |
5대 | 정기주 | 1999~2001 |
6대 | 김익환 | 2001~2005 |
7대 | 조남홍[16] | 2006~2008 |
8대 | 서영종[17] | 2009~2010 |
9대 | 이삼웅[18] | 2011~2014 |
10대 | 박한우[19] | 2015~2017 |
11대 | 허영택 | 2018 |
12대 | 이화원[20] | 2019~2021 |
13대 | 최준영[21] | 2021~ |
1982년 창단 이후 박건배 구단주가 사장까지 겸임을 했으나 이후 강남형 사장에게 사장직을 물려주며 구단주로 한 발 물러선다. 강남형 사장[22]이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동시에 노주관 단장[23]을 구단 대표이사로 내부 승진시켰다.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1995 시즌이 끝난 후 선동열의 일본 이적 협상을 문제삼아 경질햤다.
노주관 사장 후임으로 들어온 마의웅 사장은 해태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 출신으로 단장직 없이 1996 시즌을 보내고 1997 시즌부터 사장 - 단장 체제로 다시 환원되는 일을 겪었으며 2번의 우승을 거뒀다. 전반적으로 무난무난하다는 평가였다. 정기주 사장은 해태 원년부터 단장 및 팀 내 여러 보직을 거치며 고생하면서 두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모기업으로 이동하여 일했고 1998년부터 해태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맡다가 타이거즈 사장으로 복귀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무너져 가는 해태 타이거즈를 어떻게 손 쓸 도리도 없이 구단이 무너져 가야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2001 시즌 중반 기아자동차의 타이거즈 인수가 확정되자 인수를 며칠 앞두고 자진 사임했다.
정기주 사장이 모기업이 바뀌면서 용퇴하고 현대그룹 출신[24] 김익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단장 겸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홍보실장(상무이사)이 새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김익환 대표는 야구단 인수를 총괄했고 협상을 했다. 대표이사 선임과 함께 전무이사로 승진했고, 홍보실장을 겸임했다. 이후 2003년에 부사장, 2005년에 사장 승진 및 국내영업판매본부장을 겸임하게 되었지만 KIA 타이거즈 대표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그룹 인사에서 김익환 사장을 1년 만에 경질했고[25] 조남홍 사장이 새롭게 취임했다. 이 시기의 구단 대표는 전무이사 ~ 사장급이었다.
김익환 구단 대표이사가 기아자동차 사장을 겸임하기 시작한 2005년부터 허영택 구단 대표이사가 취임하는 2018년까지, 조남홍, 서영종, 이삼웅, 박한우 사장 시기에는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과 비슷하게 기아자동차 국내 판매부문 사장이 KIA 타이거즈의 사장도 겸했다. 같은 산하 스포츠 구단인 전북 현대 모터스도 현대자동차 국내 판매부문 사장이 구단 대표이사도 겸하고, 나머지 현대자동차그룹 산하의 구단은 계열사 CEO가 구단주를 맡고 있다.
하지만 회사 업무만으로도 업무량이 막중한 회사 대표이사 입장에서 회사 산하 스포츠구단의 운영에 간섭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프로야구 제10구단 관련 논란과 관련해서 이사회에 2번 연속으로 KIA 사장이 불참한 것을 놓고 억측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사실 KBO 윈터미팅 등 오래 전부터 KBO 이사회 관련해서는 한화 이글스 사장에게 결정권을 위임한 상태였다. 따라서 한화 이글스 구단의 의견 곧 KIA 타이거즈의 의견인 셈이었다.
그러다가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전임 구단 대표이사를 두는 것으로 변경되어 KIA 구단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즉 전임 대표이사로서는 초대. 그 첫 타자는 바로 3대 단장이었던 허영택. 그리고 공석이 된 단장에 조계현 전 수석코치를 내정했다. 이후 2018 시즌에는 허영택 단장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구단의 대표이사를 맡아 지휘했다.
하지만 임명한 지 1년 정도가 지난 2019년 3월 말, 그룹 인사에 따라 허영택 대표가 물러나고 신임 대표이사인 이화원 전무이사가 부사장 승진과 함께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성적은 신통치가 않았다. 2021년 11월, 맷 윌리엄스 감독 퇴진과 동시에 이화원 사장, 조계현 단장이 동반 퇴진했다. 그룹에서는 후임으로 최준영 기아 부사장을 내정했다. 사실상 전임대표이사제를 폐지하고 모기업인 기아의 등기 임원이 구단 대표이사를 겸임하는 구조이며 그룹 내에서의 대우는 부사장이다.
2.5. 역대 단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ea0029><tablebg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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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 |
박종세 (1982) |
정기주 (1982~1986) ★ ★ |
노주관 (1987~1991) ★ ★ ★ ★ |
이상국 (1992~1995) ★ |
미운영 (1996) ★ |
|
<rowcolor=#ffffff> 5대 | 6대 |
7대
|
8대 |
9대
|
|
김철규 (1997~1998) ★ |
최윤범 (1999~2001) |
정재공 (2001~2007) |
김조호 (2008~2013) ★ |
허영택 (2014~2017) ★ |
|
10대 | 11대 | 12대 | |||
조계현 (2018~2021) |
장정석 (2022~2023) |
직무 대행 최준영 (2023) |
심재학 (2023~ ) ★ |
KIA 타이거즈 역대 단장 | ||
순서 | 이름 | 기간 |
초대 | 박종세 | 1982 |
2대 | 정기주 | 1982~1986 |
3대 | 노주관 | 1987~1991 |
4대 | 이상국 | 1992~1995[26] |
- | (미운영)[27] | 1996 |
5대 | 김철규 | 1997~1998 |
6대 | 최윤범 | 1999~2001 |
7대 | 정재공 | 2001~2007 |
8대 | 김조호 | 2008~2013 |
9대 | 허영택 | 2014~2017 |
10대 | 조계현 | 2018~2021[28] |
11대 | 장정석 | 2022~2023.03.[29] |
직무 대행 | 최준영 | 2023.03.~2023.04. |
12대 | 심재학 | 2023.04.~ |
초대 단장은 동양방송 아나운서이자 아나운서계의 대부 박종세가 맡았다. 그러나 명예직에 가까운 단장이었으며, 1982년 9월부터는 새로운 단장으로 정기주 단장이 맡게 된다. 그러나 박종세 단장은 해임하지 않아서 팀에 단장이 2명이 있는 신기한 모양새가 됐다.[30]
정기주 단장은 해태의 초석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게, “박건배 구단주가 당신을 원한다”며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응용에게 팀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고, 김응용이 승낙하면서 1983 시즌부터 전설의 김응용 체제의 해태가 시작되었다.[31]
정기주 단장 후임 자리는 노주관 단장이 맡게 되었고, 5년 간의 단장직을 거쳐[32] 1992 시즌부터 이상국 단장이 맡게 된다. 이상국 단장은 1975년 해태제과에 입사하여 바로 판매왕에 오를 만큼 영업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창단과 함께 야구단으로 자리를 옮겼고 여러 요직을 거쳐 단장까지 올랐다. 프로야구 최초 억대 연봉을 시작한 선동열의 1억 5천만 원의 연봉도 그의 작품. 그러나 1995 시즌 종료 후 선동열 일본 진출 관련 협상 문제로 모기업과 마찰 후 노주관 사장과 함께 경질되었다.[33]
이상국 단장을 경질한 이후 1996년은 마의웅 대표이사 혼자 구단을 이끌었다. 결국 1997년부터 김철규 해태 타이거즈 관리본부장이 단장으로 승진하여 새롭게 부임하였다. 김철규 단장이 물러난 1999년부터 최윤범 구단 운영부장이 신임 단장으로 영전했다. 이후 모기업이 교체되면서 정기주 사장과 같이 용퇴를 선언했다. 이후 모기업인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서 신임 단장이 내려오는데 그 사람이 당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부단장이었던 정재공이었다.
정재공 단장은 부산 KIA 엔터프라이즈 시절의 경험을 살려 적극적으로 프런트가 현장에 개입하도록 하는 스타일이었다. 이 시기에 모기업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많이 얻어내고 FA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등 구단 운영에 대한 열정만은 진짜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나친 현장 개입으로 김성한 前 감독이 알력다툼 끝에 옷을 벗는 일이 있었고 FA로 영입한 선수들이 먹튀가 되면서 평가가 급락하기 시작, 2007년에 팬들과의 충돌과 사상 최악의 성적인 구단 창단 이래 최초 꼴찌를 하게 되며 퇴진 압박을 받으면서 경질 당하고 말았다.
김조호 단장의 경우 정재공과는 달리 현장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내부 행정에만 신경쓰는 스타일이라[34] 비난의 목소리가 크지는 않은 편이었다. FA 영입에 소극적인 편이지만 현장에서 꼭 필요로 한다면 과감히 영입했다. 다만 2013년 전라북도 연고지 문제[35]로 많은 욕을 먹기도 했다. 타어강이라는 희대의 사태가 벌어지자 2013년 시즌 종료 후 단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상근 자문직을 맡게 되었다.
기아자동차 슬로바키아 공장 관리직에 있었다가 단장으로 들어온 허영택 기아자동차 상무는 2005년 10월부터 2007년 1월까지 타이거즈 부단장으로 있었던 경력이 있다. 선동열 감독의 2014년 시즌 이후 재신임 관련 인터뷰에서 무책임한 발언으로 KIA 팬들의 미움을 사고 있어서 부단장 시절 정재공 단장에게 안 좋은 것을 배웠다는 반응이 거셌다. 게다가 정재공 단장 밑에서 배웠다면 적극적인 트레이드 시도나 FA 영입을 시도할 만한데,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김조호 단장처럼 조용히 있다가 과감히 한 번씩 데려오는 스타일도 아니라 아무것도 안하는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어서 팬들의 불만이 많았었다. 하지만 현실은 모기업 지원 하에 인프라 개선과 육성시설 강화에 힘을 쓰면서 팀 체질 개선에 힘을 쓰고 구단 비전 목표를 세우는 등 기조를 재건하려는 시도를 했고 2017 시즌 전에는 최형우를 데려오는 등 김조호 단장이 보여준 모습과 비슷한 행보를 걸었다. 그리고 2017 정규 시즌 우승으로 이끈 공로로 시즌 후 구단 대표이사로 영전했다.
전반적으로 프런트의 영향력이 작은 구단으로 좋게 말하면 터치가 적어서 현장과의 트러블이 적은 편이고 현장에서 추구하는 자유로운 구단 운영을 보장한다. 반면 나쁘게 말하면 프런트가 현장에 관심이 없어 현장의 운영 방향이 잘못됐어도 견제를 하지 않는다. 대신 결코 뒤지지 않는 모기업의 자금력에 힘입어 구단 성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한 투자를 하는 편이다. FA 영입이나 인프라 구축(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및 기아 챌린저스 필드 건립, 재활센터 구축) 역시 현장의 강한 요구보다는 성적 및 기량 향상을 목적으로 구단 모기업의 판단에서 추진한 사업이 강하다.
이후 허영택 단장이 대표이사로 영전하면서 조계현 수석코치도 신임 단장으로 영전했다. 그러나 단장 임기 4년간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이며 팬들에게 매우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그룹은 이화원 대표이사, 맷 윌리엄스 감독과 같이 동반 경질했다.
2022 시즌부터 타이거즈를 이끌 신임 단장으로 장정석 前 키움 히어로즈 감독을 내정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 돼서 2022년 말 겨울 이적 시장까지 NC 다이노스 임선남 단장과 최악의 단장 자리를 놓고 자웅을 다퉜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종국 감독과 함께 타이거즈 팬의 신임을 거의 다 잃었다.
장정석 단장이 2023년 3월 박동원 선수와 FA협상관련 비위로 전격 해임 되었다.
2.6.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 {{{-3 {{{#fff ( 해태 시절 포함)}}}}}}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000> 초대 | 2대 | 3대 | ||
김동엽
(1982) |
감독 대행 조창수 (1982) |
김응용
(1983~2000) ★ ★ ★ ★ ★ ★ ★ ★ ★ |
김성한
(2001~2004) |
감독 대행 유남호 (2004) |
|
<rowcolor=#fff> 4대 | 5대 |
6대
|
7대 | ||
유남호
(2005) |
감독 대행 서정환 (2005) |
서정환
(2006~2007) |
조범현
(2007~2011) ★ |
선동열
(2012~2014) |
|
<rowcolor=#fff> 8대 |
9대
|
10대 | 11대 | ||
김기태
(2015~2019) ★ |
감독 대행 박흥식 (2019) |
윌리엄스
(2020~2021) |
김종국
(2022~2023) |
이범호
(2024~) ★ |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 |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성적 | 우승 횟수 |
초대 | 김동엽 | 1982~1982.4.28. | 5승 0무 8패 | - |
감독 대행 | 조창수 | 1982.4.29.~1982 | 33승 0무 34패 | - |
2대 | 김응용 | 1983~2000 | 1164승 49무 934패 | 9회[V1~V9] |
3대 | 김성한 | 2001~2004.7.26.[37] | 257승 18무 212패 | - |
4대 | 유남호 | 2004.7.27.~2005.7.25.[38] | 60승 2무 67패 | - |
5대 | 서정환 | 2005.7.26.~2007 | 130승 4무 159패 | - |
6대 | 조범현[39] | 2008~2011 | 267승 4무 254패 | 1회[V10] |
7대 | 선동열 | 2012~2014 | 167승 9무 213패 | - |
8대 | 김기태 | 2015~2019.5.16.[41] | 307승 3무 310패 | 1회[V11] |
감독 대행 | 박흥식 | 2019.5.17.~2019 | 49승 1무 50패 | - |
9대 | 맷 윌리엄스 | 2020~2021 | 131승 10무 147패 | - |
10대 | 김종국 | 2022~ |
- 감독 대행 체제로 시작해서 정식 감독이 될 때까지 그 사이의 전적도 포함한 기록이다.
김응용 감독의 장기 집권으로 코치나 2군 감독들이 기를 펴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실제로 김응용 감독이 코치와 2군 감독을 꽤나 돌봐줬고 김응용 감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실제로 훗날 쌍방울 레이더스, OB-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감독을 거쳤던 김인식 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제패 당시 김응용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그 경험을 기반으로 그 또한 야구계의 존경받는 명장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아무튼 간에 한 감독이 징하게 오래한 건 사실이다.
몇 경기만에 짤린 김동엽을 제외하곤, 우승을 11번이나 했지만 전부 비(非)타이거즈 출신 감독이 이뤄냈다. 물론 해태 시기에는 김응용의 장기집권이 있었으니 당연히 이 기간동안 해태 출신 선수가 감독이 되는일이 아예 없었기도 했지만. 오히려 해태 출신들은 김성한을 제외하곤 전부 성적이 좋지 않다. 더구나 김성한도 정규시즌 성적은 좋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항상 무기력했고 오히려 훈련하던 선수의 머리를 방망이로 때리는 사건을 일으키거나 야구와 무관한 선수단 단체 행군을 시키는 등[43] 똥군기만 강조하던 구시대적 야구관에서 나온 행동들로 인해 결코 좋은 감독으로 기억되진 않는다.
또한 역대 감독 명단을 보면 타이거즈가 순혈 출신 지도자를 선호한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생각보다 순혈 출신 감독 수는 적은 편이다. 연고지인 호남 출신 감독은 역대 10명의 감독 중 김성한, 선동열, 김기태, 김종국 등 단 4명에 불과하다. 또 타이거즈 선수 출신 감독으로 범위를 좁혀도 김성한, 서정환, 선동열, 김종국 등 4명 뿐이다. 물론 실향민 출신의 김응용 감독이 워낙 오래 부임한 덕분에 다른 전직 감독들의 근속년수가 적어서 그렇기는 하다. 과거 올드 팬들의 성향을 따라 과거에 쌓아 올렸던 타이거즈의 영광을 타이거즈 출신이 다시 세우길 바라는 여론이 있긴 하였으나 타이거즈 순혈 출신 지도자들의 결과물이 그다지 좋지 않게 흘러감에 따라 오히려 타이거즈 출신 지도자를 배척하려는 분위기이다. 선동열 이후 선임된 김기태 감독과 윌리엄스 감독 모두 타이거즈와 연을 맺지 않은 사람들이고, 이종범의 감독 선임 카더라가 나왔을 때 팬들이 정말 극렬하게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2.7. 역대 2군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2군 역대 감독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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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정유복 (1988~1991) |
방수원 (1992~1994) |
김성근 (1995) |
신용균 (1996~1998) |
김봉연 (1999~2000) |
|
<rowcolor=#fff> 6대 | 7대 | 8대 | 9대 | 10대 | |
서정환 (2001) |
서정환 (2003) |
김종윤 (2003) |
유남호 (2004) |
서정환 (2004~2005) |
|
<rowcolor=#fff> 11대 | 12대 | 13대 | 14대 | 15대 [1] | |
장채근 (2005) |
차영화 (2006~2007) |
박승호 (2007) |
차영화 (2008~2009) |
김대진 (2010~2011) |
|
<rowcolor=#fff> 16대 [1] | 17대 [1] | 18대 [1] | 19대 | 20대 | |
박철우 (2012) |
한대화 (2013) |
김용달 (2014) |
정회열 (2015~2017) |
박흥식 (2018~2019) |
|
<rowcolor=#fff> 21대 [1] | 22대 | 23대 [1] | 24대 | 25대 | |
장태수 (2019) |
박흥식 (2020) |
이범호 (2021) |
정명원 (2022) |
손승락 (2023~2024) |
|
<rowcolor=#fff> 26대 | |||||
진갑용 (2024~) |
|||||
[1]: '총괄 코치'라는 명칭을 사용한 경우 ※ 2002년은 공석 |
2.8. 역대 선수단 및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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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보직 |
'''구단주
송호성 · 대표이사
최준영 · 단장
심재학 · 71
이범호 [[감독| ★ ]] '''
|
|
운영팀 | |
1팀[1] 팀장 권윤민 · 2팀[2] 팀장 김동혁 | |
전력기획팀[3] | |
팀장 김잔 데이터 파트 미상 스카우트 파트 팀장 권윤민 백정훈 · 박서준 · 이석현 · 오준형 김성호 전력분석 파트 방석호 · 조승범 · 박규민 · 이진우 신용진 · 이진경 |
|
<colcolor=#fff> [1]: 1군 선수단 지원 및 관리 [2]: 2군 선수단 지원 및 선수 육성 [3]: 스카우트 업무(신인 드래프트, FA, 트레이드, 외국인 선수) 총괄, 데이터 분석 및 중장기 선수단 운영계획 수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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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2025 시즌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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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곽도규 · 4
유지성 · 10
유승철 · 13
윤영철 17 임기영 · 19 윤중현 · 20 이준영 · 21 김사윤 24 김승현 · 28 김민재 · 31 박준표 · 32 김현수 33 이형범 · 36 강이준 · 38 김찬민 · 39 최지민 40 네일 · 41 황동하 · 43 김건국 · 45 김민주 46 장민기 · 48 이의리 · 51 전상현 · 53 김기훈 54 양현종 · 60 김도현 · 62 정해영 · 63 이송찬 65 장재혁 · 66 라우어 · 67 조대현 · 69 김대유 03 박건우 · 014 이승재 · 015 이도현 · 021 홍원빈 022 오규석 · 033 김태윤 · 034 강동훈 · 035 최지웅 039 성영탁 · # 김태형 · # 이호민 · # 양수호 # 김정엽 · # 최건희 · # 나연우 · # 임다온 # 이성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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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주효상 · 26
한승택 · 42
김태군 · 44
이상준 · 55 한준수 · 020 권혁경 · 042 신명승 |
||
최종 편집: 2024년 10월 2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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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찬호 · 3
김선빈 · 5
김도영 · 6
홍종표 · 9 오정환 · 11 윤도현 · 12 김두현 · 14 김규성 · 23 최정용 · 29 변우혁 · 37 박민 · 52 황대인 · 56 오선우 · 58 서건창 · 59 정해원 · 01 장시현 · 05 박상준 · 010 김재현 · 011 이준범 · 038 강민제 · # 엄준현 |
||
최종 편집: 2024년 10월 2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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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창진 · 15
박정우 · 16
최원준 · 25
이우성 · 27 김호령 · 30 소크라테스 · 34 최형우 · 35 김석환 · 47 나성범 [[주장| C ]] · 57
고종욱 · 61
예진원 · 04
김민수· 09 이영재 · # 박헌 · # 박재현''' |
||
최종 편집: 2024년 10월 2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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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군 입대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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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a0029><colcolor=#FFFFFF> 투수 | <colcolor=#ea0029,#fe385b> 김세일 · 김양수 · 강병우 |
포수 | 김선우 | |
내야수 | ||
외야수 | 한승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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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등록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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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a0029><colcolor=#FFFFFF> 투수 |
<colcolor=#ea0029,#fe385b> 0
곽도규 · 4
유지성 · 10
유승철 · 13
윤영철 · 17 임기영 · 19 윤중현 · 20 이준영 · 21 김사윤 · 24 김승현 · 28 김민재 · 31 박준표 · 32 김현수 · 33 이형범 · 36 강이준 · 38 김찬민 · 39 최지민 · 40 네일 · 41 황동하 · 43 김건국 · 45 김민주 · 46 장민기 · 48 이의리 · 51 전상현 · 53 김기훈 · 54 양현종 · 60 김도현 · 62 정해영 · 65 장재혁 · 66 라우어 · 67 조대현 · 69 김대유 |
포수 |
22
주효상 · 26
한승택 · 42
김태군 · 44
이상준 · 55 한준수 |
|
내야수 |
1
박찬호 · 3
김선빈 · 5
김도영 · 6
홍종표 · 11 윤도현 · 12 김두현 · 14 김규성 · 23 최정용 · 29 변우혁 · 37 박민 · 52 황대인 · 56 오선우 · 58 서건창 · 59 정해원 |
|
외야수 |
8
이창진 · 15
박정우 · 16
최원준 · 25
이우성 · 27 김호령 · 30 소크라테스 · 34 최형우 · 35 김석환 · 47 나성범 · 57 고종욱 · 61 예진원 |
|
프런트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등록 선수 | ||
타 KBO 리그 구단 명단 보기 |
KIA 타이거즈 2025 시즌 1군 엔트리 현황 (2025년 3월 22일 기준)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코칭스태프 | |
71
이범호 [[감독| M ]]68 손승락 · 72 김상훈 · 73 정재훈 · 75 조재영 · 76 박기남 · 77 홍세완 · 80 이현곤 · 83 타케시 · 85 이동걸 |
||
투수 | ||
0 곽도규 · 4 유지성 · 10 유승철 · 13 윤영철 · 17 임기영 · 20 이준영 · 24 김승현 · 28 김민재 · 31 박준표 · 39 최지민 · 41 황동하 · 45 김민주 · 50 장현식 · 51 전상현 · 53 김기훈 · 54 양현종 · 60 김도현 · 62 정해영 · 66 라우어 · 69 김대유 | ||
포수 | ||
26 한승택 · 42 김태군 · 55 한준수 | ||
내야수 | ||
1 박찬호 · 5 김도영 · 11 윤도현 · 14 김규성 · 23 최정용 · 29 변우혁 · 56 오선우 · 58 서건창 | ||
외야수 | ||
'''8
이창진 · 15
박정우 · 16
최원준 · 25
이우성 · 30 소크라테스 · 47 나성범 [[주장| C ]] · 57
고종욱'''
|
||
오늘 등록 | 오늘 말소 | |
부상자 명단 | ||
<colcolor=#373a3c,#ddd> - | ||
<colbgcolor=#ddcba4,#5b4822>● 편집일 기준 1군 엔트리 등록 선수만 작성한다. ● 등번호 순으로 배열한다. |
||
출처: 한국야구위원회 | }}}}}}}}} |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등번호 문서 참고하십시오.
2.8.1. 역대 외국인 선수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선수단 문서의
역대 외국인 선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외국인 선수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fff>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2002년 |
숀헤어 |
브릭스
샌더스 |
피어슨
(1)
배스 (3) (2) 미첼 (3) 말레브 (1) 포조 (3) (2) 타바레스 (3) |
산토스
타바레스 (2) 젠슨 (3) (2) 리치 (3) 루이스 (2) 레스 (3) |
리오스
키퍼 뉴선 (2) 펨버튼 (3) |
|
<rowcolor=#ffffff>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
리오스
키퍼 (2) 존슨 (3) |
리오스
마뇽 |
리오스
(2)
그레이싱어 (3) 존슨 (2) 블랭크 (3) |
그레이싱어
서브넥 (2) 스캇 (3) |
서튼
(2)
스코비 (3) 에터톤 (2) 로드리게스 (3) |
|
<rowcolor=#ffffff>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
리마
(2)
데이비스 (3) 발데스 (2) 디아즈 (3) |
로페즈
구톰슨 |
로페즈
로드리게스 (1) 라이트 (3) (2) 콜론 (3) |
로페즈
트레비스 |
알렉스
(1)
라미레즈 (3) (2) 소사 (3) 앤서니 |
|
<rowcolor=#ffffff>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
소사
앤서니 (2) 빌로우 (3) |
필
어센시오 홀튼 (2) 토마스 (3) |
필
험버 (2) 에반 (3) 스틴슨 |
필
헥터 지크 |
버나디나
헥터 팻딘 |
|
<rowcolor=#ffffff>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2022년 | |
버나디나
헥터 팻딘 |
해즐베이커
(2)
터커 (3) 터너 윌랜드 |
브룩스
가뇽 터커 |
브룩스
(2)
다카하시 (3) 멩덴 터커 |
로니
(2)
파노니 (3) 놀린 소크라테스 |
|
<rowcolor=#ffffff> 2023년 | 2024년 | 2025년 | 2026년 | 2027년 | |
앤더슨
(2)
파노니 (3) 메디나 (2) 산체스 (3) 소크라테스 |
크로우
(2)
알드레드 (4) 라우어 (3) 네일 스타우트 (4) 소크라테스 |
||||
(1) 시즌 전 방출/계약 취소 (2) 시즌 중 이적/방출 (3) 대체 영입 (4) 일시 대체 영입 * 등록명을 우선적으로 기재했다. |
2.9. 역대 주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 display: inline-table; max-width: 330px" | <tableborder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000> 1982~1983 | 1984 | 1985 | 1986~1988 | 1989 |
김봉연 ★ |
김준환 |
김일권 |
주장직 폐지[1] ★ ★ ★ |
김성한 ★ |
|
<rowcolor=#000> 1990 | 1991 | 1992~1994 | 1995 | 1996 | |
김종모 |
한대화 ★ |
이순철 ★ |
선동열 |
김정수 ★ |
|
<rowcolor=#000> 1997 | 1998 | 1999 | 2000~2001 | 2002~2004 | |
이건열 이순철 (임시 주장) ★ |
이강철 |
이강철 → |
|
이종범 | |
<rowcolor=#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2010 | |
김종국 | 이종범 | 이종범 → 장성호[2] | 장성호 → 김상훈[3] |
김상훈 ★ |
|
<rowcolor=#fff> 2011 | 2012 | 2013 | 2014~2016 | 2017~2018 | |
최희섭 → 김상훈[4] | 차일목 | 김상훈 | 이범호 |
김주찬 ★ |
|
<rowcolor=#fff> 2019 | 2020 | 2021 | 2022~2023 | 2024~ | |
김주찬 → 안치홍[5] | 양현종 | 나지완 | 김선빈 |
나성범 ★ |
|
[1]: 김일권 이후 장기간 주장직 폐지
출처 [2]: 이종범의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3]: 마무리 캠프 직전 조범현 감독의 지시로 인한 주장 교체 [4]: 스프링 캠프 후 주장 교체 [5]: 2019년 5월 15일, 김주찬의 재활과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
}}}}}}}}} |
해태 시절 주장에 대한 역사는 특이한 역사가 있다. 원년부터 이어진 김봉연(1982~1983)- 김준환(1984)[44]- 김일권(1985) 이후 주장직이 폐지되었던 것.
다만, 1989년 김성한을 시작으로 1990년 김종모, 1991년 한대화, 1992년 이순철, 1995년 선동열, 1996년 김정수, 1997년 이건열[45], 1998년 이강철로 이어지는 상조회장이라는 직함이 있었으며 사실상의 주장 역할을 하였다.
또한, 군기반장이라는 비공식적으로 선수단의 규율을 잡는 역할의 선수가 있어 왔는데, 흔히 그 계보는 김일권- 김성한- 이순철- 송유석- 이호성으로 여겨진다.[46] 이들 중 김성한과 이순철이 대표적인 해태의 군기 반장으로 유명했다.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4년 간 주장 교체가 많이 이루어졌다. 우선 2007 시즌은 이종범이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시즌 중 극도의 부진으로 인해 6월 19일 장성호로 교체되었다.[47] 장성호는 2008 시즌까지 주장직을 이어갔으나, 조범현 감독의 지시로 2008년 10월 마무리 캠프를 앞두고 김상훈으로 교체되었다. 김상훈은 2010 시즌까지 주장직을 수행하였고, 2011 시즌에는 최희섭이 주장직을 이어받았으나 당해 3월에 다시 김상훈이 주장직을 맡게 된다.
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종범이 주장을 가장 오래 했으며[48][49], 김상훈도 주장을 길게 했다[50]. 그 외에도 이적생 출신 최초로 주장을 맡은 이범호도 주장을 오래 한 편[51].
2020 시즌에는 양현종이 주장을 맡게 됐다. 투수가 주장을 맡게 된 것은 1998 시즌 이강철 이후 22년 만이다.
2021 시즌에는 팀의 레전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나지완이 주장직을 맡게 되었다.
2022 시즌에는 선수단 투표로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선빈이 주장으로 선임됐다.
2.10. 역대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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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역대 지명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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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199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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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 2023년 | ||||
* 2021년 문서부터 존재한다. |
2.10.1. 역대 1차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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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역대 1차 지명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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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1986년 |
김용만 (2) |
장진범 조종규 |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1991년 | |
백인호 박철우 김만후 |
송영복
(1) 조계현 한경수 (1) |
이광우 이강철 장호익 |
정회열 |
오희주 |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6년 | |
박재홍 | 이종범 | 최재영 | 김동호 |
김종국 |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
오철민 |
최희섭
(1) |
정성훈
|
김성호 | 정원 |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
김진우 | 고우석 | 김주형 | 곽정철 | 한기주 |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
정영일
(1) 오준형 |
전태현 | 정성철 | 심동섭 (2) | 한승혁 (2) |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박지훈 (2) | 손동욱 (2) | 차명진 | 이민우 | 김현준 |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
유승철 | 한준수 | 김기훈 | 정해영 | 이의리 | |
2022년 | 2023년 | 2024년 | 2025년 | ||
김도영 | 윤영철 (2) | 조대현 (2) | 김태형 (2) | ||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연도 (1라운드 지명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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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9번, 70번. 18년간 9번의 우승이라는 성적을 남긴 KBO리그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리그 최초의 양번호 결번도 납득이 갈 정도의 역사를 남겼다.
[2]
27번. 프로 출범 당시 최고 연봉의 기준이 된 실업리그의 슈퍼스타이자 KBO 리그 원년 홈런왕으로 팀 최초의 전국구 스타이다.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 이미 30대의 나이로 당시로서 노장의 나이에 프로에 입단하게 되어 7년이라는 기간 밖에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며, 프로에선 눈에 띄는 누적 기록을 만들진 못했다. 다만 타이거즈라는 강팀의 초석을 다진 선수로 성적을 기반으로 영구 결번을 받을 만한 선수들 외에 상징성으로 영구 결번이 주어진다면 단연코 김봉연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3]
11번. 김봉연의 뒤를 이은 해태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전국구 스타로 리그 최초의 30홈런과 20홈런-20도루, 이도류 활약, 특유의 카리스마와 오리궁둥이 타법으로 유명하다. 은퇴 선수 중 이강철과 더불어 가장 영구 결번의 가능성이 높은 선수이다. KBO 리그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
[4]
19번. 오랜 기간 꾸준히 팀내 투수 2인자의 위치로 팀에 기여한 선수로 리그 최초의 10년 연속 10승, 100탈삼진 기록으로 유명하다. KBO 리그 투수 중 손에 꼽히는 누적 기록을 남겼기에 김성한과 더불어 은퇴 선수 중 가장 영구 결번의 가능성이 높은 선수. KBO 리그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
[5]
8번. 20세기 최고의 3루수로 해태 시절 KBO 리그의 전국구 타자로 활약하며 8년간 7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고, 선동열, 김성한과 함께 타이거즈의 최전성기인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4년 연속 우승의 주역이었다. 누적 기록은 부족해 보일 수 있으나 팀 소속 당시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기에 삼성의 장효조나 쌍방울의 김기태의 영구 결번이 당연해 보이는 것과 같이 그의 영구 결번을 당연히 여기는 여론이 많다. KBO 리그 30주년,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
[6]
14번. 20세기 최고의 외야수 중 한명으로 당대 최고의 외야 수비를 선보였으며, 이종범 등장 이전 리그 최고의 호타준족 선수였다. KBO 리그 30주년,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
[7]
5번. 90년대 최고의 야수로 손꼽히는 선수로 해태 타이거즈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이종범과 함께 전국구적인 활약을 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뛰어난 출루 능력과 리그 내 몇 없는 내야수 30홈런-30도루 기록 등으로 유명하며 타이거즈에서 50이 넘는 WAR을 기여한 레전드 선수로 영구 결번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이다.
[8]
1번. 9년 연속 3할 기록과 뛰어난 출루 능력으로 유명하며, 언급되는 은퇴한 레전드 선수 중 유일하게 KIA 타이거즈 시절에 더 많은 활약을 한 선수이다. 전국구적인 활약을 하였으며, 타이거즈에서 50이 넘는 WAR을 기여한 레전드 선수로 영구 결번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이다.
[9]
17번. 선동열의 뒤를 이은 선발 에이스 선수로 다양한 투구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로 활약하는 등 타이거즈 야구팬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활약을 남겼다. KBO 리그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
[10]
26번. 90년대 중반 고졸 루키로 혜성 같이 등장해 150km의 강속구와 리그 최고의 커브를 바탕으로 활약하며 이종범, 홍현우와 함께 팀의 후기 전성기를 이끈 선수로 이른 나이에 부상을 입으며 더이상 과거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으나 포기하지 않고 본인이 활약할 수 있는 위치에서 팀을 위해 기여하며 통산 100승을 달성하는 등의 귀감이 되었기에 성적 외의 영구 결번 후보를 꼽을 때 김봉연과 함께 항상 이름을 올리는 선수이다.
[11]
다수의 영구 결번으로 인해 현역 선수들의 등번호 사용 혼란이 예상된다면
마리아노 리베라의 사례처럼 현역 선수의 현 등번호 사용은 유지시키면 된다.
[12]
이승엽도 NPB를 거쳐 다시 삼성으로 복귀한 뒤 복귀 시즌부터 영구 결번 지정이 확실해진 상태에서 은퇴 시즌까지 커리어를 마무리 했다.
[13]
구단주 겸 사장. 1983 시즌이 끝나고서 해태그룹 명예회장 및 구단주로 한 발 물러섰다.
[14]
선동열 일본 진출 관련 협상으로 모기업과 마찰 후
이상국 단장과 같이 경질되었다.
[15]
대표이사 1996년 취임, 사장 취임은 1997년 취임.
[16]
1977년
현대정공 입사,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장(부사장) 역임
[17]
1977년
현대정공 입사, 현대모비스 부사장, 현대파워텍 부사장 역임
[18]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특전사 장교로 복무 후 소령 전역,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노무, 생산, 마케팅 부서를 거쳤다.
[19]
1982년 현대자동차서비스 입사 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현대차 인도법인장, 기아차 재경본부장을 역임했다.
[20]
1988년
기아자동차 입사, 현대기아차그룹 홍보실과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다.
[21]
1990년
현대자동차 입사, 2022년 기준
기아 대표이사 부사장 겸 경영지원본부장
[22]
2009년 별세.
[23]
2018년 별세.
[24]
1977년
한라건설에 입사해 현대그룹과 연을 맺었다. 이어 1986년
현대정공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고려산업개발,
현대산업개발 사업개발·홍보담당 이사 및 상무를 맡다가 2000년에 기아자동차로 자리를 옮겼다.
[25]
이후 2006년에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장으로 복귀했고 2007년 10월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08년 12월을 끝으로 용퇴했다.
[26]
선동열 일본 진출 관련 협상으로 모기업과 마찰 후 노주관 사장과 같이 경질했다.
[27]
단장 없이 시즌을 치렀다.
[28]
2021년 11월,
맷 윌리엄스 감독, 이화원 사장과 동반 퇴진
[29]
2023년 3월,
박동원에게 금전 요구를 한 사건으로 인해 해임
[30]
사실상 고문 정도의 위치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31]
이후 정기주 단장은 물러난 후 모기업에서 일하다가 1999년에 구단 사장으로 복귀하지만 이미 재정난으로 구단이 무너진 상황이어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32]
이 시기 다섯 시즌 중 무려 네 번이나 우승을 했다. 그 공로로 구단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33]
이후 이상국 단장은 경질된 후 2000년부터 6년 간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사무총장을 지낼 정도로 팀을 벗어나서도 여러 곳에서 신임이 두터웠던 사람이다. 타이거즈 OB 모임에서도 여러 선수단과 연락할 정도로 사이가 두터우며 선동열은 일본에 보내준 이상국 단장에게 항상 감사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34]
본래
대우자동차에서 일하다가 2001년 기아자동차로 넘어온 인사로 2005년경에 이사대우 승진, 2007년 11월에 이사승진과 함께 단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2010년에 상무로 승진했다. 모기업에서는 주로 경영, 기획, 마케팅 등의 일을 하던 인물이었다.
[35]
1차 지명이 부활하면서 지역 연고 고교 5개를 선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 타이거즈의 뿌리와도 같은 군산상고가 빠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KIA에서 선정한 고등학교는 광주일고, 광주동성고, 광주진흥고, 순천효천고, 화순고. 프런트 측에서는 어떻게든 군산상고의 지명권을 지키려 했으나 결국 군산상고는
NC 다이노스가 가져갔다.(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1차 지명 권한 행사와
제2 홈구장 홈경기는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KIA는 신생 야구단이 있는 전북 정읍의 인상고를 가져갔다.
[V1~V9]
1983,
1986,
1987,
1988,
1989,
1991,
1993,
1996,
1997 한국시리즈 우승
[37]
2004년 중도 사퇴. 이후
유남호
KIA 타이거즈 2군 감독이 감독 대행.
[38]
2005년 정식 감독으로 2년 계약을 맺었으나 그 해 중도사퇴. 이후
서정환
KIA 타이거즈 2군 감독이 감독 대행.
[39]
김응용 이후로는 처음으로 비(非)해태 출신 감독. 2008년부터 뛰라고 계약을 했으나 2007년 시즌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KIA 감독으로의 데뷔전을 2007년 마지막 경기로 맞이했다. 근데 본의아니게 타이거즈를 우승시킨 감독 3명 모두 비해태 출신이고 해태 출신 감독들은 모두 이렇다할 성적을 못냈다. 그나마 김성한이 2위 두 번으로 선방했다. 자세한 내용은
KBO 슈퍼 한국시리즈 문서 참조.
[V10]
2009 한국시리즈 우승
[41]
2019년 시즌 중 사퇴 후
박흥식 KIA 타이거즈 2군 감독이 감독 대행.
[V11]
2017 한국시리즈 우승
[43]
호남지역 프랜차이즈 팀으로서의 상징성을 높이고 타이거즈 특유의 근성과 정신력을 결집시키겠다는 미명 하에 2004년 초
군산 월명 야구장부터
광주 무등 야구장까지 100km가 넘는 거리를 걷는 '한마음 종주' 행사를 직접 기획해서 진행했다.
의도는 좋았겠으나 결국
이종범,
김진우,
홍세완,
박재홍 등 주축 선수들이 그 해 1년 내내 부상을 달고 살거나 체력 저하로 고생했는데 이 행군과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김성한 본인도 그 해 여름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44]
이 당시
해태 타이거즈 불고기 항명사건이 터졌다.
[45]
이건열이 주로 2군에 머물며
이순철이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46]
주장직이 폐지되었던 시기에 역할을 맡을 만한 사람이 있었느냐고 한다면, 실력으로나 성격으로나
김성한을 1순위로 들 수 있다. 실제로 당시 해태의 군기반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47]
참고로 장성호는 1991년
한대화 이후 16년만의 비(非) 호남 출신 주장이다.
[48]
특유의 리더십으로 국가대표에서도 주장을 여러 번 맡았다.
[49]
2002~2004, 2006~2007 6월. (4시즌 반 역임)
[50]
2009~2010, 2011, 2013. (약 4시즌 역임)
[51]
2014~2016. (3시즌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