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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남편 | 유스티니아노스 2세 |
자녀 | 티베리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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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이라클리오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황후.2. 생애
695년 레온티오스에게 폐위되어 코가 잘린 뒤 케르손으로 유배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케르손에서 지지자들을 규합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장차 도모하려 했다. 702년 또는 703년 초, 케르손 현지 당국은 유스티니아노스 일당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를 눈치챈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자신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가면 처형될 거라고 여기고 몰래 케르손을 빠져나와 하자르의 카간인 이부지르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이부지르는 그를 크게 환대하고 여동생을 시집보냈다. 이 여동생의 원래 이름이 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스티니아노스 2세와 결혼한 뒤 이름을 테오도라로 바꿨다.그러던 중 티베리오스 3세가 보낸 동로마 제국의 사절이 이부지르를 찾아가 상당량의 금은보화를 주며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이부지르는 처음엔 거부했지만 제국의 압력을 받자 마침내 굴복했다. 며칠 후, 한 무리의 병사들이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있는 파나고리아를 찾아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위해 파견된 경호병이라고 밝혔지만,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왔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병사들의 두 지휘관을 따로 자기 집에 초대해 그들이 집 안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달려들어 목을 졸라 죽여버렸다. 그 후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제위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고, 테오도라는 임신한 몸으로 하자르로 돌아갔다.
705년 불가르족의 카간 테르벨의 도움으로 황위를 탈환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레온티오스와 티베리오스 3세를 처단한 뒤, 하자르족에 아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유스티니아노스는 이부지르가 반발할 것을 예상해 상당한 호위 병력을 함선에 태워 파견하였으나, 함대는 폭풍우로 인해 침몰했다. 그러자 이부지르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다음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리석은 자여!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 말고 그대의 아내를 2, 3척의 배에 태울 수 없었는가? 당신은 그녀를 전쟁으로 데려가려 하였는가? 보아라, 당신의 아들이 태어났도다. 사신을 보내 그들을 데려가라."
얼마 후 테오도라와 어린 아들 티베리오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했고, 유스티니아노스는 테오도라를 아우구스타로, 티베리오스를 공동 황제로 임명했다. 이리하여 테오도라는 로마 제국 역사상 최초의 이민족 출신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711년 필리피코스가 반란을 일으켜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참살하면서, 그녀는 황후직을 상실했다. 어린 아들 티베리오스 역시 아나스타시아의 비호에도 불구하고 살해되었다. 하지만 테오도라가 살해되었다는 기록이 없는 걸 볼 때, 그녀는 수녀원으로 쫓겨났거나 하자르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