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 | |
출생 | 1274년경 |
사망 | 1317년 (향년 43세) |
아버지 | 몬페라토 변경백 굴리에모 7세 |
어머니 | 카스티야의 베아트리스 |
남편 | 안드로니코스 2세 |
자녀 | 요안니스 팔레올로고스, 바르톨로마이오스 팔레올로고스, 테오도로스, 시모니스 팔레올로기나, 테오도라 팔레올로기나, 데메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이사키오스 팔레올로고스 |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의 황후.2. 생애
1274년경 몬페라토 변경백 굴리에모 7세(Guglielmo VII del Monferrato)와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10세의 딸 베아트리스 사이에서 출생했다. 초명은 욜란다(Jolanda)이다. 부친 굴리에모는 남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숱한 전쟁에서 활약하였고, 밀라노의 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해서 '대 변경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사보이아 가문의 피에몬테 영주 톰마소 3세[2]에게 밀라노를 빼앗기고 말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카스티야 왕국과 손을 잡고 베아트리스 공주와 결혼해 딸 욜란다를 낳았다. 욜란다가 10살이 되던 해인 1284년, 굴리에모는 동로마 제국의 원조를 받기로 하고 딸을 안드로니코스 2세와 결혼시켰다. 욜란다는 황후가 된 뒤 이리니(Irene)로 개명하였고, 아우구스타 칭호를 수여받았다.안드로니코스와 이리니 부부는 5남 2녀를 낳았는데, 대부분 일찍 죽었고 딸 시모니스 팔레올로기나, 아들 테오도로스,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만 장성했다. 시모니스는 세르비아의 스테판 우로시 2세 밀루틴 왕과 결혼하였고, 테오도로스는 몬페라도 변경백이 되었으며, 데메트리오스는 훗날 마테오스 황제의 황후가 될 이리니 팔레올로기나를 낳았다.
결혼 초기에는 부부관계가 원만한 편이었지만, 헝가리의 언너 황후의 아들 미하일 9세가 황위 계승자인 반면, 자신의 아들들은 별다른 권한을 얻지 못하는 사실에 불만을 품었다. 이리니는 안드로니코스 2세에게 제국의 영토를 나눠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이에 분노한 그녀는 130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나 테살로니키로 이동했고, 거기에 자신만의 궁정을 세우고 국가의 재정과 외교 정책을 주관했다. 안드로니코스는 이에 대해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그녀는 1317년 사망할 때까지 이같은 독단적인 행위를 지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