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7 21:33:41

이사브리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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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브리아 왕조
Δυναστεία των Ισαύρων
717년 ~ 802년
창건자 레온 3세 (717~741)
주요 황제 레온 3세
콘스탄티노스 5세
콘스탄티노스 6세
이리니
로마 제국의 왕조
20년간의 혼란 니키포로스 왕조

1. 개요2. 역사3. 역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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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의 세습왕조. 717년부터 802년까지 85년간 제국을 통치했다. 아랍의 침략을 격퇴하는데 성공했지만 라벤나 총독부를 상실하였고, 이탈리아와 교황청에 대한 영향력이 많이 약해졌다. 또한 창건자인 레온 3세 성상 파괴 운동을 단행하면서, 장장 백여년간 심각한 종교 갈등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왕조에서 로마제국 최초의 여제가 즉위했다.

2. 역사

  • 자세한 내용은 각 황제의 개별 항목 참조

2.1. 레온 3세(717~741)

시리아 게르마니키아 출신으로, 본명은 코논(Konon)이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 황제에 의해 스파라티오스로 기용된 뒤, 아나톨리아 일대에서 아랍군을 상대로 싸웠다. 716년 아르타바스도스와 동맹을 맺고 황제로 추대되어 717년 3월 25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입성하여 테오도시오스 3세를 폐위시켰다. 717년 7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을 치른 끝에 아랍군을 격파했고, 719년 불가르 칸의 지원을 받고 황위 복귀를 꾀한 아나스타시오스 2세를 붙잡아 처형했다. 이후 아랍을 상대로 반격을 가해 성과를 거뒀지만, 아랍군은 곧 회복되어 공세를 개시해 이코니움과 카이사레아를 약탈하였고, 아르메니아로 진군한 동로마군을 격파했다.

726년 테라 화산이 폭발하자 이를 빌미삼아 성상 숭배를 비판하는 칙령을 발표하였고, 730년 궁정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성상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라벤나 총독부에서 727년 반란이 일어나 총독 파울로스가 피살되었고, 이탈리아 투시아에서 티베리오스 페타시오스가 반란을 일으켜 3년간 황제를 자칭했고, 소아시아 남부의 카라비시아노이 테마와 그리스 지역의 헬라스 테마에서도 아갈리아노스 콘토스켈레스 등의 주도로 반란이 일어났다. 레온 3세는 이 반란을 모조리 진압하는 한편, 성상 파괴령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교황청에 대한 보복으로 종전에는 로마 교구에 속했던 일리리쿰과 그리스의 대부분을 콘스탄티노폴리스 교구로 옮겼다.

727년 니케아, 739년 니코폴리에서 아랍군을 격파하였고, 740년 아크로이논 전투에서 아나톨리아 반도로 침입한 아랍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은 수세에서 벗어나 아랍을 상대로 적극적인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741년 3월 법률 개정판인 <에클로가(Ecloga)>를 발표하여 간결한 법률 소책자로서 인기를 끌었다. 741년 6월 18일 콘스탄티노스 4세 이후 동로마 황제로서 처음으로 침상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그는 통치 기간 동안 아랍의 공격을 막아내고 제국의 동방 전선을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으나, 성상 파괴 운동을 단행하면서 안정을 되찾던 제국이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2.2. 콘스탄티노스 5세(741~775)

레온 3세 마리아 황후의 장남. 720년 8월 부친과 함께 공동 황제로 선포되었고, 741년 6월 18일 부친이 사망한 뒤 단독 황제로 즉위했다. 그러나 741년 6월 또는 7월, 우마이야 왕조를 공격하기 위해 출진했던 아르타바스도스가 돌연 행로를 바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했고, 콘스탄티노스 5세는 급히 탈출했다. 아르타바스도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한 뒤 황위에 올라 성상 재건을 선포했으며, 자신을 성상의 수호자로 자처했다. 콘스탄티노스 5세는 아나톨리콘 테마와 트라케시안 테마의 지지를 확보하고 아르타바스도스와 일전을 벌일 태세를 갖췄다.

743년 5월, 콘스탄티노스 5세는 사르데스에서 아르타바스도스와 격돌하여 완승을 거둔 뒤 11월 2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하였다. 아르타바스도스와 그의 아들들은 공개적으로 실명형에 처해지고 콘스탄티노플 외곽의 초라한 수도원으로 유폐되었다. 746년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게르마니키아를 공략하고 주변 도시들을 파괴했으며, 747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진한 아랍 함대를 키프로스 근해에서 그리스의 불로 격파하고 아르메니아에서 더 나아가 메소포타미아까지 습격했다. 그러나 흑사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수많은 인구가 죽어나갔고, 압바스 왕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공략했던 영토를 대부분 다시 뺏겼다. 또한 751년 랑고바르드 왕국의 공세로 라벤나 총독부가 멸망했다.

754년 2월 10일 칼케돈 동남쪽의 도시인 히에리아(Hieria)에서 종교 회의를 열어, 6개월에 걸친 회의 끝에 8월 29일 "그리스도의 본성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으므로 유한한 공간 속의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나 성인들을 묘사한 성상은 우상 숭배와 같은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폐기되어야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성상 숭배론자들을 파문하였고, 수도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개시, 토지를 몰수하고 남녀 수도자들을 박해했다.

755년 불가리아 칸 코르미소쉬가 국경 지대에 요새를 쌓고 아르메니아인과 시리아인들을 트라키아에 정착시키는 건 협약 위반이라고 항의하며 공물을 더 달라고 요구하자 사절을 추방했다. 이에 코르미소쉬는 756년 대군을 일으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40km 떨어진 아나스타시아 성벽까지 진격했다. 콘스탄티노스 5세는 친정하여 대규모 회전을 벌인 끝에 불가리아군을 격멸했다. 코르미소쉬는 패전 직후 궁정 쿠데타로 피살되었다. 이후 콘스탄티노스 5세는 불가리아로 8번이나 원정을 감행해 대부분 성공하였고, 763년에는 800척의 배에 기병 9,600명과 보병대를 태워 안키알로스로 진격했고, 그해 6월 30일 안키알로스 평원에서 불가리아군에게 참패를 안겼다. 이후에도 불가리아에 지속적으로 공격을 가해 타격을 입혔고, 이로 인해 6명에 달하는 불가리아 칸이 잇따라 폐위되었다.

775년 텔레리그 칸이 "제국에 망명하고 싶으니 이를 도와줄 불가리아 내 인사들을 알려달라"라는 서신을 보내자, 정말로 망명할 거라 믿고 그들의 정보를 전달했다. 텔레리그는 즉시 그들을 숙청해 후환의 싹을 잘랐다. 황제는 감히 자신을 속인 그를 응징하고자 775년 8월 친정하였으나, 도중에 폭염으로 다리가 붓자 아르카디오폴리스를 거쳐 회군하다가 9월 14일에 배 위에서 죽었다.

2.3. 레온 4세(775~780)

콘스탄티노스 5세 하자르의 이리니 황후 사이의 장남. 751년 부친과 함께 공동 황제로 즉위했고, 775년 부친이 사망하면서 단독 황제가 되었다. 776년 4월 24일 아들 콘스탄티노스 6세를 공동 황제로 임명했다. 이에 니키포로스[1]와 형제들이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었다. 니키포로스는 카이사르 작위를 박탈당했지만 그 외에 별 처벌은 받지 않았고, 다른 음모자들은 머리를 삭발당한 뒤 크림반도의 체르손으로 추방되어 수도자로 지내야 했다.

부친에게서 성상 파괴주의를 전수받았지만, 성상 옹호론자인 이리니 황후의 권고로 성상 파괴 운동의 강도를 낮췄고, 아버지 밑에서 박해받고 추방당한 수사들이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777년부터 780년까지 매년 아나톨리아로 쳐들어온 아바스 왕조의 공세를 격퇴하였고, 777년 동로마 제국으로 망명한 텔레리그를 받아들여 파트리키오스 칭호를 주고 테오필락토스라는 세례명을 주었으며, 이리니 황후의 사촌과 결혼시켰다. 780년 9월 8일 열병으로 사망했다.

2.4. 콘스탄티노스 6세(780~797)

레온 4세 이리니의 외아들. 776년 부친으로부터 공동 황제로 지명되었고, 780년 9세의 나이에 단독 황제가 되었지만 나이가 어리기에 어머니의 섭정을 받았다. 787년 이리니 황후의 주도로 제2차 니케아 공의회가 개최되어 성상 파괴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성상 공경을 확정지었다. 이 시기 16살이 되었지만 어머니가 권력을 넘겨주지 않자, 어머니를 축출할 음모를 꾸몄지만 790년 봄 발각되어 별궁에 감금되었다. 이리니는 공식적으로 여황제가 되려고 했지만, 콘스탄티노스를 지지하던 성상 파괴주의자들 등의 역공을 받고 유폐되었다.

791년과 792년 불가리아를 상대로 원정에 착수해 할아버지 콘스탄티노스 5세의 영광을 이으려 했지만, 카르담이 이끄는 불가리아군에게 연패했다. 특히 792년 8월 불가르족을 상대로 마르첼라 전투에서 참패한 뒤 공물을 바쳐야 했다. 이에 콘스탄티노스 6세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타그마타 근위연대는 니키포로스를 황제로 추대하려 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스 6세가 신속히 대응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곧바로 실명형에 처했다. 그런데 니키포로스를 실명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니키포로스의 형제 4명의 혀를 뽑아버리는 형벌을 내리면서 민심을 잃기 시작했다.

796년 불가리아에 공물을 바치길 거부하고, 이에 "트라키아 전역을 파괴하고 금문으로 가겠다"라고 위협하는 사절에게 "너희에게 금보다 어울리는 공물을 주겠다"라며 똥물을 보냈다. 이후 호기롭게 불가리아로 쳐들어갔지만, 정작 적군을 보고 겁에 질려 17일간 진영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다가 공물을 더 바치기로 합의하고 귀환했다. 797년 암니아의 마리아 황후를 수녀원에 보내버리고 시녀였던 테오도테를 황후로 삼으면서 신민들과 교회의 지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결국 이리니가 쿠데타를 일으켜 제위를 찬탈하였고, 797년 8월 18일 포르피리 누각에서 아들의 두 눈을 뽑았다.

2.5. 이리니(797~802)

이리니는 여황제를 칭한 뒤 성상 옹호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성상을 공경하되 숭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성상 파괴론자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었다. 또한 테마를 몇 개 더 확립하고, 슬라브인들에게 정교회를 포교해 많은 신자를 양성하였다. 그러던 중 로마 황제를 자처한 샤를마뉴로부터 결혼 제의가 들어오자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프랑크 왕을 로마 황제로 세우고 싶지 않은 귀족과 시민들의 반란으로 802년 10월 31일 폐위되었다. 이후 레즈보스 섬으로 유배되어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1년만에 사망했다. 이리하여 이사브리아 왕조는 무너졌고, 니키포로스 왕조가 역사에 등장했다.

3. 역대 황제

대수 이름 재위 기간
1대 레온 3세 717년 3월 25일 ~ 741년 6월 18일
2대 콘스탄티노스 5세 741년 6월 18일 ~ 741년 6월 또는 7월
3대 아르타바스도스 741년 6월 또는 7월 ~ 743년 11월 2일
복위 콘스탄티노스 5세 743년 11월 2일 ~ 775년 9월 14일
4대 레온 4세 775년 9월 14일 ~ 780년 9월 8일
5대 콘스탄티노스 6세 780년 9월 8일 ~ 797년 8월 18일
6대 이리니 797년 8월 18일 ~ 802년 10월 31일


[1] 콘스탄티노스 5세와 두번째 황후인 에우도키아 황후의 장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