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30 13:28:35

요안니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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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스 테오도로스 1세 요안니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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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로스 2세 요안니스 4세 미하일 8세 }}}}}}}}}}}}
니케아 제국 제4대 황제
로마 제국 제121대 황제
요안니스 4세
Ιωάννης Δ΄
파일:220px-John_IV_Laskaris_miniature[1].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요안니스 두카스 라스카리스
Ἰωάννης Δούκας Λάσκαρις
출생 1250년 12월 25일
니케아 제국
사망 1305년 (향년 55세)
동로마 제국 비티니아 다키비제 요새
재위 기간 니케아 황제
1258년 8월 16일 ~ 1261년 12월 25일 (3년)
전임자 테오도로스 2세
후임자 미하일 8세
부모 아버지 : 테오도로스 2세
어머니 : 불가리아의 엘레나 아세니나
종교 기독교( 정교회)
1. 개요2. 생애
2.1. 부황의 요절과 어린나이 즉위 그리고 섭정2.2. 무잘론 형제의 피살과 미하일의 찬탈2.3. 폐위와 그 이후의 여파
3. 참고4. 대중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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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제121대 황제이자 동로마 제국 잔존국 니케아 제국 라스카리스 왕조의 제4대 황제.

2. 생애

2.1. 부황의 요절과 어린나이 즉위 그리고 섭정

요안니스 3세의 적손이자 테오도로스 2세의 외아들이다. 1250년 12월 25일에 태어났다. 하지만 1258년 8월 18일 테오도로스 2세가 간질로 인하여 요절을 하게 되자 겨우 8세 나이에 즉위를 한다. 모후 불가리아의 엘레나 아세니나는 어린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요르요스 무잘론을 비롯한 무잘론 가문의 인사[1] 섭정에 임명한다.

2.2. 무잘론 형제의 피살과 미하일의 찬탈

하지만 테오도로스 2세가 붕어하고 요안니스 4세가 즉위한지 겨우 9일만에 요르요스 무잘론과 형제들은 의문사를 당하고 만다. 이는 배후에 미하일 팔레올로고스(Michael Palaiolgos, Μιχαήλ Η' Παλαιολόγος, 1224~1282)가 관여하였다. 당시 미하일은 테오도로스 2세 치세 때 황제의 미움을 받아 견제를 받고있었다. 미하일은 요안니스 4세의 섭정단을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하고 만다. 대관식도 못 치렀던 요안니스 4세는 같은 해 12월, 미하일과 공동황제로 대관식을 치렀다. 당연히 실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명약관화. 미하일 8세로 즉위한 미하일 팔레올로고스는 1259년 주변국들인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미하일 2세 콤니노스 두카스 시칠리아 왕국, 아카이아 공국, 아테네 공국, 테살리아의 연합군을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만다. 그 후 1261년 8월 15일에 미하일 8세는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여 라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로마 제국을 부활시킨다. 그 다음에는 이러한 군공을 바탕으로, 미하일 8세는 불편한 동거를 끝내기로 한다.

2.3. 폐위와 그 이후의 여파

정통황제인 요안니스 4세는 결국 1261년 12월 25일에 미하일 8세에 의해서 실명의 형벌을 받고[2][3] 폐위를 당하여 비티니아 마르마라 해 다키비제 요새에 감금되었다. 이후 1290년 미하일 8세의 아들이자 새로운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가 요안니스 4세를 방문하여 미하일 8세가 한짓이 가혹했다고 사과를 한뒤 용서를 빌고 이제라도 자기를 적법한 황제로 인정해줄 수 있냐고 말했다.[4] 그러나 정말인지 일부러 했는지 요안니스 4세가 그에게 어떠한 대답을 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없다. 그 뒤 비록 죽음은 면하였지만 실명당한 채 40여년간을 유폐된 상태로 보낸 요안니스 4세는 안드로니코스 2세의 치세가 한창인 1305년에 사망하고 만다. 이는 미하일 8세에 반발한 기존의 니케아 지역의 민심 이탈과 라스카리스 왕조의 지지자들에게도 반감을 사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요안니스 4세를 참칭한 반란들도 일어났다. 결국 요안니스 4세의 폐위가 미하일 8세의 치세에 큰 결점 중 하나로 남기게 되어 외부적인 혼란뿐 만 아니라 내부적인 갈등이 심화되는 역사적 사건이 된다.

3. 참고

이탈리아 모데나 에스턴스 장서고(위키피디아 영문사전)

4. 대중 매체에서

  • 크루세이더 킹즈 2
    이 게임에선 동로마 황제로서 플레이할 수 있다. 폐위된 뒤 시점에서 플레이할 경우 영지를 빼앗긴 채로 동로마 궁정의 가신으로 있는데 눈을 잃은 것 때문에 시각장애 트레잇이 붙어있어 건강 수치 -1 패널티가 있다. 플레이어의 재량에 따라 다시 동로마 황제로 앉히려면 수도사(Monk) 칭호(Trait)을 치트로 떼고 영지를 분봉한 뒤 요안니스로 바꿔서 플레이하거나, 플레이할 생각은 없어도 다시 황제로 세우고 싶다면 초청이나 콘솔로 궁정에 초대한 뒤에 황위 요구 전쟁을 미하일에게 걸어서 이기면 된다. 싫다면 얌전히 찬탈당하기 이전 시간대로 플레이하자.
  • 동로마의 황제로 회귀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여기서는 미래의 모든 일을 보고 온 요안니스가 다시 8살의 자신에 빙의되어 소산드라 쿠데타를 막아내고 니케아로 천도하며 훗날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오스만 제국의 시초인 부족을 각종 특별 대우를 해주며 제국에 편입시키는 등[5] 제국을 부흥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후 룸술탄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재정비된 제국을 딸과 결혼한 오스만 1세에게 물려주며 사망한다

[1] 요르요스의 형제 [2] 동로마 정계의 ' 자비'란 것은 경쟁자를 죽이는 대신 눈알만 파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미하일 8세가 11살 아이의 두 눈을 파버린 거다. [3] 하필이면 이날은 요안니스 4세의 생일이기도 했다.... [4] 공교롭게도 이 둘은 비슷한 또래다. [5] 이때 오스만 1세는 아직 어린 아이였기에 그 아버지인 에르투으룰을 대호군 직위에 임명하고[6] 그를 통해 유목민들의 정착 사업 및 제국군 입대 사업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