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30-2대 황제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HERENNIVS ETRVSCV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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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 Quintus Herennius Etruscus Messius Decius |
출생 | 227년 |
로마 제국 판노니아 시르미움 | |
사망 | 251년 6월 (향년 24세) |
로마 제국 아브리투스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251년 5월 ~ 251년 6월 (1개월) | |
전임자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후임자 |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호스틸리아누스 |
부모 |
아버지 :
데키우스 어머니 : 헤레니아 에트루킬라 |
종교 | 로마 다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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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제30-2대 황제. 풀네임은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Quintus Herennius Etruscus Messius Decius)이다. 서기 250년 부친 데키우스로부터 카이사르(부황제)로 선임되었고, 251년 5월 공동 황제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251년 6월 트라키아를 침공한 고트족에 맞서 아버지와 함께 출전했다가 아브리투스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헤렌니우스는 227년경 도나우 강 방어선에 인접한 판노니아 시르미움 인근에서 출생했다. 그는 도나우 방어선 주둔 로마군에서 장군으로 활동하던 데키우스와 이탈리아 귀족 가문 출신인 헤레니아 에트루킬라의 장남으로, 남동생으로 가이우스 발렌스 호스틸리아누스 메시우스 퀸투스가 있었다. 헤렌니우스는 데키우스가 장군으로서 활동할 때 종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서기 248년, 데키우스는 모이시아와 판노니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이후 병사들에 의해 황제로 옹립된 그는 249년 봄 로마로 진격하여 249년 9월 필리푸스 아라부스가 이끄는 로마군을 베로에아 전투에서 격파하고 필리푸스를 자살로 몰고 갔다. 원로원은 즉각 데키우스를 황제로 인정하고, 당시 로마에 있던 헤렌니우스에게 '청년의 일인자'라는 뜻의 프린세프 루벤투티스(princeps iuventutis)'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헤렌니우스는 250년 부친 데키우스로부터 카이사르(부황제)에 선임되었고, 251년 5월 아우구스투스(정황제)에 선임되어 부친과 공동 황제가 되었으며, 집정관을 겸임했다. 이 시기 크니바 왕이 이끄는 고트족이 발칸 반도를 침략하자, 그는 부친과 함께 출진했다. 헤렌니우스와 데키우스는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고트족을 기습하여 첫 승리를 거뒀다.
고트족이 하에무스 산맥으로 물러가자, 데키우스와 헤렌니우스는 급히 그들을 추격했다. 그러나 크니바가 돌연 군대를 돌려 맹렬한 기세로 기습했다. 이로 인해 로마군은 베로에아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었고, 데키우스와 헤렌니우스는 모이시아로 후퇴하여 고트족과 다시 맞붙을 준비를 했다. 이윽고 군대를 재정비한 그들은 트라키아로 진군하여 고트족을 상대로 몇 차례 소규모 승리를 거뒀다.
251년 6월, 데키우스와 헤렌니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모이시아의 아브리투스에서 대규모 회전을 벌였다. 고트족은 3개 대열로 이뤄져 있었는데, 제3열의 전면은 습지대의 엄호를 받고 있었다. 이윽고 벌어진 교전 초기, 기병대를 이끌고 고트족 진영을 향해 돌격을 감행한 헤렌니우스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이에 병사들이 동요하자, 데키우스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한 병사의 죽음은 공화국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데키우스는 아들의 죽음에도 흔들림 없이 군대를 지휘했고, 결국 고트족의 제1열과 제2열이 괴멸되었다. 이에 로마군은 제3열마저 섬멸하려 진군했다. 그런데 그들은 에트루스쿠스의 죽음에 분노해 이성을 상실했는지 제3열 전면에 있는 늪지대로 돌진해 버렸다. 그 후 로마군은 늪지대에서 허우적대다 고트족에게 괴멸되었고, 데키우스도 사투를 벌이다 전사했다.
1621년 로마의 산 로렌초 부근에서 발견된 루도비시 대석관. 서기 250년에서 26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로마 대석관이다. 중앙에서 로마군을 지휘하는 인물은 아브리투스 전투에서 전사한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 대석관을 제작한 목적은 남편과 아들을 잃어 비탄에 빠진 데키우스의 미망인 헤레니아 에트루킬라를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로마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