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4 13:19:31

테오도로스 2세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 실반나쿠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프로코피우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 플라비우스 빅토르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발렌티니아누스 3세
비정통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최후의 순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9F0807><tablebgcolor=#9F0807> 테오도로스 2세 관련 틀 ||
[ 펼치기 · 접기 ]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EFA5> 비정통 초대 제2대
콘스탄티노스 테오도로스 1세 요안니스 3세
<rowcolor=#FFEFA5> 제3대 제4대 제4대 (공동)
테오도로스 2세 요안니스 4세 미하일 8세 }}}}}}}}}}}}
니케아 제국 제3대 황제
로마 제국 제120대 황제
테오도로스 2세
Θεόδωρος B΄
파일:테오도로스2세.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테오도로스 두카스 라스카리스
Θεόδωρος Δούκας Λάσκαρις
출생 1221년/1222년
니케아 제국 니케아
사망 1258년 8월 16일 (향년 36세)
니케아 제국 마그네시아
재위 기간 니케아 황제
1254년 11월 3일 ~ 1258년 8월 16일 (4년)
전임자 요안니스 3세
후임자 요안니스 4세
부모 아버지 : 요안니스 3세
어머니 : 이리니 라스카리나
배우자 불가리아의 엘레나 아세니나
자녀 요안니스 4세
이리니 라스카리나
마리아 라스카리나
테오도라 라스카리나
에브도키아 라스카리나[1]
종교 기독교( 정교회)
1. 개요2. 생애
2.1. 즉위 이전2.2. 치세
2.2.1. 내치2.2.2. 외치
2.3. 최후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제120대 황제이자 동로마 제국 잔존국 니케아 제국 라스카리스 왕조 제3대 황제.

2. 생애

2.1. 즉위 이전

테오도로스는 1222년 태어났다. 그는 요안니스 3세의 외아들로, 즉위 이전인 1241년 요안니스 3세에 의해 공동황제로 임명되었다. 그는 부황을 따라 이피로스 전제군주국과의 전쟁, 라틴 제국을 상대로 한 원정에 참전하면서 군사적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던 1254년 12월 3일 부황이 사망하면서 새 황제로 즉위했다.

2.2. 치세

2.2.1. 내치

테오도로스는 당대 최고의 학자인 니키포로스 블렘미데스에게서 교육을 받아 문학, 신학, 과학에 관해 방대한 문헌을 집대성할 만큼 지적인 군주였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서 간질을 물려받아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간질은 그의 판단력을 손상시켰고 힘을 소진시켰으며, 신체적으로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러한 약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최대한 강력하고 무자비하게 나라를 다스렸다. 본능적으로 귀족들을 불신했던 그는 그들을 최대한 무시하고 그 대신 평범한 가문 출신의 소규모 관료 집단에 의지했다. 특히 요르요스 무잘론과 그의 두 동생인 테오도로스와 안드로니코스는 테오도로스 황제에게 큰 힘이 되어줬다. 그러나 테오도로스가 세계 총대주교로 엄격한 금욕주의자인 아르세니오스 아우토리아노스를 임명한 것은 교회의 큰 반발을 샀을뿐더러 서방 교회와의 일치를 꾀하던 아버지의 정책을 허물어버리는 결과를 야기했다.

2.2.2. 외치

테오도로스 집권 시기, 이슬람 세력은 몽골 제국의 침략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니케아 제국을 위협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테오도로스는 이슬람 세력을 걱정할 필요 없이 불가리아 제국 라틴 제국 전선에 집중했다. 먼저 불가리아 제국의 경우, 그는 1255년부터 1256년까지의 원정을 개시해 강화 조약을 유도했다. 1256년 불가리아 차르 미하일 아센이 살해되고 이듬해에 콘스탄틴 티흐라는 귀족이 차르 자리를 계승한 뒤 테오도로스의 딸 이리니와 결혼하자, 두 나라의 관계는 더욱 개선되었다. 또한 요안니스 바타체스의 딸 마리아와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군주 미하일 2세 콤니노스 두카스의 아들 니키포로스 1세 콤니노스 두카스와의 결혼을 성사시켜 이피로스 전제군주국과의 대립을 회피하고자 했다.

그런데 테오도로스는 이피로스와의 결혼 협상 도중 막바지에 결혼 조건으로 두라초와 세르비아를 요구했다. 이에 미하일 2세는 격분하여 테살로니키 공격을 준비했고 그의 선동으로 세르비아인 알바니아인들도 그를 지지하고 나섰으며 마케도니아도 며칠 뒤에 가담했다. 신하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미하일 팔레올로고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테오도로스는 그를 싫어했고 이미 1256년 초에 그에게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도 했다. 이때문에 미하일 팔레올로고스는 룸 술탄국 측으로 피신해서 술탄 기독교도 용병들을 지휘하여 몽골군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마땅한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에, 테오도로스는 그에게 충성을 맹세받고 소수 병력을 맡겼다.

미하일 팔레올로고스는 소규모의 병력으로도 용감히 싸워 두라초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지만, 이피로스의 공세를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미하일은 이피로스군이 테살로니카의 성문에 이르는 걸 허용했다는 이유로 니케아에 소환되어 파문당한 뒤 감옥에 갇혔다.

2.3. 최후

1258년. 테오도로스는 3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간질로 인한 병사로 여겨지지만, 독살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맏아들 요안니스는 아직 어린아이였으므로, 테오도로스는 요르요스 무잘론을 섭정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테오도로스가 죽은 지 불과 아흐레 뒤에 소산드라 수도원에서 열린 황제 추도식 때 귀족들은 무잘론과 그의 형제 한 명을 제단에서 살해하고 그들의 몸을 난도질해버렸다. 곧이어 궁정 혁명이 일어났고, 귀족들은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감옥에서 석방시켜 요르요스가 맡으려 했던 섭정을 대신 맡게 했다.


[1] 벤티밀리아 백작 굴리에모 피에트로 1세 발보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벤티밀리아의 라스카리스 가문이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인 1501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