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8 12:32:56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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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년 보결 120년 120년 보결 120년 보결 121년
가이우스 헤렌니우스 카펠라 루키우스 카틸리우스 세베루스 율리아누스 클라우디우스 레기누스 가이우스 퀸크티우스 케르투스 포블리키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아르미니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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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년 보결 121년 보결 121년 보결 122년 122년 보결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파우스투스 티투스 폼포니우스 안티스티아누스 푸니술라누스 베토니아누스 마르쿠스 스타토리우스 세쿤두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칸디두스 카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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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년 보결 123년 123년 보결 123년 보결 124년
가이우스 트레비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아르티쿨레이우스 파이티누스 티투스 프리페르니우스 게미누스 티투스 살비우스 루피누스 미니키우스 오피미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티투스 칼레스트리우스 티로 오르비우스 스페라투스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아프로니아누스 옥타비우스 프리스쿠스 푸블리우스 메틸리우스 세쿤두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아부르니아누스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플라쿠스 토르콰투스 테바니아누스
124년 보결 124년 보결 125년 125년 보결 126년
아울루스 라르키우스 마케도 가이우스 율리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베티나 베루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푸블리우스 두케니우스 베레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루키우스 티티우스 에피디우스 아퀼리누스 푸블리우스 루키우스 코스코니아누스 가이우스 에기우스 암비불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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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프로핀쿠스 루키우스 쿠스피우스 카메리누스 티투스 아틸리우스 루푸스 티티아누스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바로 퀸투스 티네이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사이니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스퀼라 갈리카누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켈레르 네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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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투스 [플라니우스 사르두스 바리우스 암비불루스]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마르켈루스 퀸투스 율리우스 발부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페르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콰르티누스
131년 131년 보결 132년 132년 보결 133년
세르기우스 옥타비우스 라이나스 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세리우스 아우구리누스 가이우스 아킬리우스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히베루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피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비우스 세르기아누스 아울루스 카시우스 아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뭄미우스 시센나
133년 보결 133년 보결 134년 134년 보결 134년 보결
퀸투스 플라비우스 테르툴루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헤로데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세르비아누스 티투스 하테리우스 네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판사
퀸투스 유니우스 루스티쿠스 푸블리우스 수페나스 베루스 티투스 비비우스 바루스 루키우스 아티우스 마르코
135년 135년 보결 135년 보결 136년 137년
루키우스 투틸리우스 루페르쿠스 폰티아누스 마르쿠스 쿠티우스 프리스쿠스 메시우스 루스티쿠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아리우스 프로쿨루스 율리우스 켈수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파비아누스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콤모두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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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년 138년 보결 138년 보결 139년 139년 보결
카누스 유니우스 니게르 마르쿠스 빈디우스 베루스 푸블리우스 카시우스 세쿤두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피우스 루키우스 미니키우스 나탈리스 콰드로니우스 베루스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카메리누스 푸블리우스 팍투메이우스 클레멘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무키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루키우스 클라우디우스 프로쿨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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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바르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티투스 호에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피시바누스 티투스 카이세르니우스 스타티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율리아누스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스틀로가 프리스키누스 (라르키우스) 레피두스 ignotus ign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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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쿠스피우스 팍투메이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그라니우스 카스투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 루키우스 투시디우스 캄페스테르 [술피키우스] 율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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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켈레르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롱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피우스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프로쿨루스 퀸투스 무스티우스 프리스쿠스
데키무스 벨리우스 피두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포블리콜라 프리스쿠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폰티우스 라일리아누스
145년 보결 145년 보결 146년 146년 보결 146년 보결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파디우스 루푸스 섹스투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퀸투스 리키니우스 모데스티누스 (섹스투스) 아티우스 라베오 푸블리우스 뭄미우스 시센나 루틸리아누스
가이우스 비크리우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비크리우스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아라비아누스 티투스 프리페르니우스 파이투스 로시아누스 노니우스 아그리콜라 가이우스 라베오 테티우스 게미누스
146년 보결 146년 보결 146년 보결 147년 147년 보결
그나이우스 테렌티우스 호물루스 유니오르 퀸투스 보코니우스 삭사 피두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롱구스 가이우스 울피우스 파카투스 프라스티나 메살리누스 아울루스 클라우디우스 카락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안니아누스 베루스 퀸투스 코르넬리우스 프로쿨루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라르구스 퀸투스 푸피키우스 코르누투스
147년 보결 147년 보결 147년 보결 148년 148년 보결
쿠프레세누스 갈루스 섹스투스 코케이우스 세베리아누스 호노리누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코르넬리우스 푸블리우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아이밀리아누스 사티리우스 피르무스
퀸투스 코르넬리우스 콰드라투스 티베리우스 리키니우스 카시우스 카시아누스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카루스 페도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 가이우스 살비우스 카피토
148년 보결 148년 보결 149년 149년 보결 150년
루키우스 코엘리우스 페스투스 가이우스 파비우스 아그리피누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살비디에누스 스키피오 오르피투스 퀸투스 파시에누스 리키누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스퀼라 갈리카누스
푸블리우스 오르피디우스 세네키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제노 퀸투스 폼페이우스 소시우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비투스 섹스투스 카르미니우스 베투스
150년 보결 150년 보결 150년 보결 151년 151년 보결
[…]mus 마르쿠스 카시우스 아폴리나리스 가이우스 쿠르티우스 유스투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콘디아누스 마르쿠스 코미니우스 세쿤두스
가이우스 La[berius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마메르티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리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아티디우스 코르넬리아누스
152년 152년 보결 152년 보결 152년 보결 153년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세베루스 푸블리우스 수페나스 [베루스] 가이우스 노비우스 프리스쿠스 푸블리우스 클루비우스 막시무스 파울리누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호물루스 루키우스 다수미우스 툴리우스 투스쿠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로물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아울루스 유니우스 루피누스
153년 보결 153년 보결 153년 보결 154년 154년 보결
섹스투스 카이킬리우스 막시무스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아페르 가이우스 카티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프리페르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폰티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세다티우스 세베리아누스 울리우스 아케르 메틸리우스 네포스 루피누스 티베리우스 루틸리아누스 켄소르 퀸투스 페티에디우스 갈루스 티투스 섹스티우스 라테라누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마크리누스
154년 보결 154년 보결 154년 보결 155년 155년 보결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에트루스쿠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스타티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윤쿠스] 섹스투스 칼푸르니우스 아그리콜라 티투스 유니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루피누스 사비니아누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
155년 보결 155년 보결 156년 156년 보결 156년 보결
안티우스 폴리오 [데키무스 루필리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케이오니우스 실바누스 아울루스 아빌리우스 우리나티우스 콰드라투스 퀸투스 카누시우스 프라이네스티누스
미니키우스 오피미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세리우스 아우구리누스 스트라보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루시우스 스파르수스
157년 157년 보결 157년 보결 157년 보결 158년
마르쿠스 베툴레누스 키비카 바르바루스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콤모두스 오르피티아누스 퀸투스 빌리우스 프로쿨루스 (또는 퀸투스 비리우스 라르키우스 술피키우스) 섹스투스 술피키우스 테르툴루스
마르쿠스 메틸리우스 아퀼리우스 레굴루스 네포스 볼루시우스 토르콰투스 프론토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아일리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binus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클레멘스
158년 보결 158년 보결 159년 159년 보결 159년 보결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파비아누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포니우스 무사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 마르쿠스 피시바니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덱스테르
퀸투스 얄리우스 바수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유베날리스 마르쿠스 스타티우스 프리스쿠스 리키니우스 이탈리쿠스 루키우스 마투키우스 푸스키누스 ignotus
159년 보결 160년 160년 보결 160년 보결 160년 보결
아울루스 쿠르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아피우스 안니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 아울루스 플라토리우스 네포스 칼푸르니아누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프라스티나 파카투스
ignotus 티투스 클로디우스 비비우스 바루스 마르쿠스 포스투미우스 페스투스 […] 플라부스 마르쿠스 켄소리우스 파울루스
160년 보결 160년 보결 161년 161년 보결 161년 보결
티베리우스 오클라티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율리우스 게미누스 카펠리아누스
[퀸투스] 닌니우스 하스티아누스 [… N]ovius 사비니아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퀸투스 카무리우스 누미시우스 유니오르 티투스 플라비우스 보에투스
162년 162년 보결 162년 보결 162년 보결 163년
퀸투스 유니우스 루스티쿠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폰테이우스 프론티니아누스 루키우스 스테르티니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인스테이우스 비티니쿠스 마르쿠스 폰티우스 라일리아누스
루키우스 티티우스 플라우티우스 아퀼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ignotus ignotus 아울루스 유니우스 파스토르 루키우스 카이센니우스 소스페스
164년 164년 보결 165년 166년 166년 보결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마크리누스 티베리우스 하테리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오르피투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푸덴스 마르쿠스 비비우스 리베랄리스
푸블리우스 유벤티우스 켈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아비투스 루키우스 아리우스 푸덴스 루키우스 푸피디우스 폴리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167년 167년 보결 168년 168년 보결 169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덴틸리아누스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아프로니아누스 옥타비우스 프리스쿠스 퀸투스 툴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세네키오 소시우스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파울루스 ignotus 푸블리우스 코엘리우스 아폴리나리스
170년 170년 보결 171년 172년 172년 보결
가이우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티투스 호에니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세베루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스키피오 오르피투스 가이우스 모디우스 유스투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ignotus 루키우스 알피디우스 헤렌니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막시무스 ignotus
173년 174년 174년 보결 175년 175년 보결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케르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플라쿠스 코르넬리아누스 ignotus 푸블리우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마르쿠스 디디우스 세베루스 율리아누스
176년 177년 178년 179년 179년 보결
티투스 폼포니우스 프로쿨루스 비트라시우스 폴리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카이사르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에누스 오르피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아누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페르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 데키무스 벨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윤쿠스
179년 보결 180년 181년 182년 182년 보결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 (아우렐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프로쿨리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콘디아누스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부루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티디우스) 코르넬리아누스
183년 183년 보결 183년 보결 183년 보결 184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투틸리우스 폰티아누스 겐티아누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세쿤두스 티투스 팍투메이우스 마그누스 루키우스 코소니우스 에기우스 마룰루스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ignotus 마르쿠스 에그나티우스 포스투무스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아일리아누스
184년 보결 185년 186년 186년 보결 186년 보결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빈덱스 트리아리우스 마테르누스 라스키비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노비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사부키우스 마이오르 카이킬리아누스
카시우스 아프로니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쿠스 아피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 레길루스 아티쿠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안니우스 라부스 발레리우스 세네키오
187년 188년 189년 189년 보결 190년
루키우스 브루티우스 퀸티우스 크리스피누스 푸블리우스 세이우스 푸스키아누스 둘리우스 실라누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비텔리우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셉티미아누스
190년 보결 191년 192년 193년 193년 보결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포필리우스 페도 아프로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소시우스 팔코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아풀레이우스 루피누스 (또는 아툴레누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브라두아 마우리쿠스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비비아누스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프리스쿠스
193년 보결 193년 보결 193년 보결 194년 194년 보결
마르쿠스 실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율리우스 메살라 루틸리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가비니우스 바르바루스 폼페이아누스
ignotus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 세베루스 칸타브리누스 데키무스 클로디우스 셉티미우스 알비누스 카이사르 ignotus
195년 196년 197년 198년 198년 보결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테르툴루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티투스 섹스티우스 마기우스 라테라누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세르기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클레멘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또는 가이우스) 쿠스피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ignotus
199년 200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프로쿨루스
마르쿠스 아우피디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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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황제 참칭자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Clodius Albinus
파일:Bust_of_Clodius_Albinus_-_Palazzo_Nuovo_-_Musei_Capitolini_-_Rome_2016_(3).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데키무스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Decimus Clodius Albinus
출생 150년
로마 제국 북아프리카 속주 하드루메툼
사망 197년 2월 19일 (향년 48세)
로마 제국 루그두눔
재위 기간 로마 황제
193년 ~ 197년 2월 19일 (4년)
전임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후임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종교 로마 다신교
1. 소개2. 생애
2.1. 즉위 전까지의 삶2.2. 황제 추대와 세베루스와의 동맹2.3. 루그두눔의 전투와 몰락
3. 사후 여파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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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고대 로마제국의 2세기 내전 시기였던 다섯 황제의 해 당시의 임페라토르 중 한명으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최종 제위 경쟁자. 로마 제국의 원로원 의원, 장군으로 브리타니아 속주 총독 시절,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에 반발하며 휘하 군대의 추대 아래 193년 황제를 자처했다.

페스켄니우스 니게르와 달리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로부터 카이사르 직위를 받고, 원로원에게 인정받았지만, 197년 2월 19일 오늘날의 프랑스 리옹에서 벌어진 루그두눔의 전투에서 세베루스에게 패사해 목숨을 잃고 그 머리가 잘려 로마로 보내졌다.

2. 생애

2.1. 즉위 전까지의 삶

150년경 아프리카 속주의 도시 하드루메툼(Hadrumetum) 태생으로,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난 귀족 태생이다. 알비누스라는 이름은 부친 케이오니우스가 워낙 하얗고 창백한 탓에 붙여진 별명이 클로디우스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친의 이름이 케이오니우스인 것을 볼 때 루키우스 베루스의 친가 케이오니우스 가문 내의 알비누스 집안 태생일 수도 있다고 한다. 대대로 하드루메툼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며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인 집안 출신이었고 귀족이었지만, 또래 귀족 자제들과 달리 어린 시절부터 집안 가업을 돕다가 장교로 군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만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추천 아래 재무관, 안찰관을 거쳐 원로원 의석을 받고 법무관까지 추천받아 젊은 나이에 다누비우스에 주둔 중인 2개 군단을 통솔할 수 있는 모이시아 속주 총독까지 올랐다. 이때 그는 3년동안 모이시아에서 근무하다가 흑해 연안의 비티니아 속주 총독에 파견됐는데, 175년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알비누스는 동쪽에 있던 카파도키아 속주와 함께 동방 내 속주 중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끝까지 지지했으며, 일찍부터 다키아 북쪽에서 장군으로 두각을 나타내 황제에게 큰 신임을 받게 됐다. 따라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필 편지들에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젊은 알비누스가 가진 군사적 경험과 능력, 그 담대한 성격을 칭찬했다. 또 그는 알비누스를 176년 집정관에 직접 추천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후, 뒤를 이은 콤모두스 시대에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콤모두스는 그를 다키아, 레누스 방어선 사령관에 연이어 임명했고, 페르티낙스 이후 비어 있던 브리타니아 속주 총독와 갈리아 벨기카 일대의 군지휘권을 맡겼다. 하지만 콤모두스는 그에게 온전히 신임하지는 않았는지, 재차 집정관에 추천하거나 로마로 부르지 않았다. 따라서 알비누스 역시 세베루스와 마찬가지로 본인 스스로 원로원 의원이자 총독, 장군 신분에서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하던 장군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2.2. 황제 추대와 세베루스와의 동맹

193년 콤모두스와 페르티낙스가 연이어 암살됐고 근위대장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라이투스 프라이토리아니 부하들과 함께 제위를 경매에 부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황제로 인정한다. 이때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스스로 황제를 선언하자, 본인 역시 부하들의 추대 아래 황제를 자처했으며 세베루스처럼 로마로 진군했다.

그런데 먼저 움직인 쪽은 세베루스였고,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수도를 장악하기보다는 루그두눔에 3년 가까이 머물기만 하면서 동맹을 맺었다. 클로디우스 알비누스가 이렇게 한 이유는 그가 멍청했기 때문이 아니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제안을 받을 때부터 공동으로 제위를 나누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끈끈하게 한 가족이 되자고 한 약조를 100%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훗날 그가 패배하는 이유가 됐다. 왜냐하면 세베루스는 알비누스에게 카이사르 직위를 주고 파트너로 삼았음에도, 처음부터 약속을 던진 것은 지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베루스는 니게르를 제거하고 난 이후 그를 손보려고 마음을 먹었고, 관련 준비를 꼼꼼히 준비했다. 그렇지만 디오 카시우스, 헤로디아누스의 지적처럼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세베루스가 교양 넘치고 영리한 법률가로 의리가 있다고 생각해, 세베루스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그리고 이때 세베루스는 자신을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근거지 판노니아 일대를 쉽게 차지할 수 있는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속이면서, 알비누스 쪽 인사들을 포섭했다. 그와 동시에 세베루스는 알비누스의 지원 내지 중립을 바라면서 '카이사르(부황제)'라는 칭호를 주면서 타협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원로원 내 본인 지지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194년 봄, 세베루스는 동쪽으로 진격해 페스켄니우스 니게르를 제거했다. 이후 세베루스는 장남 카라칼라와 함께 스스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안토니누스 가문에 스스로 양자로 입적하겠다고 선언한 다음, 카라칼라에게 '카이사르'를 주며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공동 황제이자 동맹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이어 그는 원로원과 각 군대에게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해달라"고 재차 요구하면서, 원로원의 지지를 받고 있던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제거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2.3. 루그두눔의 전투와 몰락

세베루스 부자의 네르바-안토니누스 계보 참칭 선언 이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원로원과 각 군대에게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해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따라서 싸울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196년 브리타니아 속주에 주둔 중인 4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갈리아로 건너갔다.

갈리아에 상륙한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끝장을 보자는 심정으로 브리타니아 속주 내 병력을 수비대까지 거의 대부분 끌고 온 뒤[1], 전력으로 맞선 터라 세베루스를 지지한 비리우스 루푸스는 패배한다. 이렇게 루푸스를 격파한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브리타니아 3개 군단을 주축으로 스페인에 주둔해 있던 제7군단 '게미나'의 지원도 받았다. 이후 그는 루그두눔(오늘날의 프랑스 리옹)에 기지를 두고 추가 병력을 모았으며, 중요한 요새와 주둔군을 중심으로 지금의 라인란트 일대를 점령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베루스 입장에선 다행하게도, 레누스 전선 내 군대는 클로디우스 측의 합류 요청을 따르지 않아 세베루스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세베루스는 새 법령들을 통과시키고 권력을 확고히 다지면서 그 해에 많은 시간을 로마에서 보냈지만, 원로원이 아닌 군을 이용해 알비누스를 ‘로마의 공적’으로 선포하는 새로운 방식의 권위 확보에 치중했다. 이후 세베루스는 197년 1월이 되어서야 옛 동지인 알비누스와 마지막 대전을 치르기 위해 길을 떠났다. 결정적인 전투는 197년 2월 19일 루그두눔(지금의 리옹) 외곽에서 많이 벌어졌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양군은 총 15만명이었다고 하며 오랫동안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전투는 후반부가 될 수록 세베루스군이 우세해졌는데, 전투 도중 세베루스가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는 세베루스의 생사가 경각에 달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행히 그는 재빨리 황제의 의복을 찢어서 정체를 숨겼고, 때맞춰 기병대가 도착하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알비누스의 군대는 결국 패배하였고 알비누스는 루그두눔으로 달아났지만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베루스는 벌거벗겨진 알비누스의 시신을 땅에 내려놓고 그 위로 말을 달려 시체를 훼손했으며, 알비누스의 시신을 수습해 목을 자르고 머리를 로마로 보냈다. 이때 그는 원로원을 조롱하고, 협박하는 서한을 보내며 원로원 내 배신자들에게 명확히 경고했다.

이렇게 내전에서 최종 승리를 거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알비누스 제거 이후, 상당히 잔혹하고 무례한 행동을 벌여 큰 질타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알비누스의 가족들에게 사면령을 내리고 용서해줬다가 마음을 바꿔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일가를 모조리 살해했기 때문이다. 이때 세베루스는 알비누스의 아내, 아들들의 시신을 알비누스의 몸통과 함께 론 강에 던져버리게 했는데, 더 문제가 된 것은 루그두눔을 무참히 약탈한 행동이었다고 한다.

3. 사후 여파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원로원의 지지를 받았고, 세베루스와 대결을 벌이기 전부터 원로원 내 유력자들과 비밀리에 교류를 했던 터라 그 파장이 상당했다. 따라서 세베루스는 알비누스와 그 가족을 죽인 직후, 루그두눔과 갈리아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정적 숙청에 들어갔다. 이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두 경쟁자 니게르와 알비누스와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의 지지자들이 원로원 안에서 자신과 세베루스 가문을 상대로 벌인 일이 상당히 위험하고 자칫 더 큰 내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알게 됐던 것이 컸다. 그래서 그는 이를 뿌리뽑기 위해 가혹한 보복 조치를 실시하였다.

197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원로원이 동료 의원을 직접 재판할 수 있는 특권을 박탈했다. 이어서 세베루스의 숙청 리스트에 오른 29명의 원로원 의원들에게 ‘반역자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지지했다’는 유죄 판결을 내려 사형시켰다. 여기에는 페르티낙스의 장인으로 제위를 돈으로 살 뻔 했던 티투스 플라비우스 술피키아누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세베루스는 율리아누스와 본인이 연달아 호의를 베풀고 그 지위를 보장해줬음에도 두 황제에게 그 은혜를 역으로 갚은 술피키아누스를 용서하지 않았다[2]. 따라서 세베루스는 197년 정적들을 대거 숙청할 때, 술피키아누스도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의 지지자 중 한 명으로 기소해, 유죄판결을 내린 뒤 곧바로 처형했다[3].

이어서 그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인사들을 새로운 의원들로 임명해 그 자리를 채웠다. 새로 편입된 의원들은 세베루스에게 호의적인 북아프리카 출신이거나 동방 속주 출신들이 많았다. 따라서 본국 이탈리아와 서방 속주 중 상대적으로 우위를 가지고 있던 갈리아, 히스파니아 등 기존 원로원파들은 소수파로 추락했다.[4]

물론,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와 그 지지자들 때문에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인사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위이자 루키우스 베루스의 친조카인 전직집정관 출신의 옛 원로원 의원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5]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과거 그가 자신을 가리켜 "국법을 어겼다"며, 로마 진군 행위를 지지하지 않고 불법행동을 강하게 질타한 일을 이유로, 이미 은퇴해 조용히 시골에서 살고 있던 그를 콕 집은 다음 205년 사형을 언도하고 살해했다.[6][7].

4. 여담

  • 즉위 전까지 문학가, 농업 전문 경영인으로도 명성이 유명했다. 그는 농업 경영에 관한 저서를 남겼다고 하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적은 밀레시안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모음집도 간행했다.
  • 엄청난 부자였고, 전형적인 푸닉 출신 귀족으로, 예의가 바르기로 유명했고, 신의와 위엄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이런 점 때문에 동료 원로원 의원들을 지지자로 많이 거느렸다. 하지만 이런 점은 그가 경쟁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게 결정적으로 승리할 두 번의 기회를 놓친 원인이 됐다. 따라서 이런 장점은 내전이라는 난세 속에서 그가 끝내 찬탈자로 이름이 남게 된 이유가 됐다고 당대의 디오 카시우스, 헤로디아누스 등에게 회자됐다.

[1] 클로디우스 알비누스가 브리타니아 내 거의 대부분 병력을 움직인 행동은 내전 승리 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게 이 일대에 관한 고민을 안겨주게 된다. [2] 세베루스는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에게 대항해 황제를 참칭하고 로마로 진군했지만, 의외로 율리아누스의 시신을 정중히 수습해 유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정식장례 절차를 거치도록 배려했다. [3] 술피키아누스는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지지했던 알비누스파의 핵심 인사였기 때문에, 205년 자살을 강요당한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처럼 세베루스가 어거지로 숙청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래도 세베루스는 예전의 술라처럼 술피키아누스의 아들 티티아누스에게 연좌죄를 적용해 대를 끊거나, 술피키아누스의 아들과 그 가문의 앞길을 막진 않았다. 따라서 티티아누스는 카라칼라 시대동안 황제령 이집트 장관에 올랐다. [4]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는 그리스 애호가였기 때문에 그리스 출신을 원로원 의원으로 많이 채웠다. 즉 황제의 성향에 따라 변하는게 일반적인 원로원 의원들이었다. [5] 어머니는 루키우스 베루스의 누나 케이오니아 파비아인데, 이 여자가 누구냐하면 하드리아누스의 후계자, 양자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카이사르의 장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약혼했던 네르바-안토니누스 가문의 일원이었다. 또 그의 아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 파딜라였고, 철인황제 생전 마르쿠스 황제가 성품과 재능 등을 이유로 총애한 사위 중 한명이었다. [6] 어거지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한 탓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플라우티우스에게는 사형을 언도해 자결하는 방법으로 명예롭게 죽도록 했으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 파딜라와 그녀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고 재산을 몰수하거나 연좌죄로 후손들의 앞길을 막지 않았다. [7] 플라우티우스도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지지자 제거 당시부터 이후 상황과 그 기미를 눈치채고 있어서, 세베루스가 자신만 죽이고 남은 가족들에게 보복하지 않을 것을 예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묵묵히 시골별장에서 사형선고서를 듣고 죽었다고 한다. 이때 그는 세베루스가 보낸 이들이 자결을 명하자 “나는 세르비아누스께서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위해 하셨던 일과 같은 기도를 한다네.”라고 유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