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로마 제국 106-2대 황제 Κωνστάντιος Δούκας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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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060년대 | ||
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 |||
사망 | 1081년 10월 18일 | ||
로마 제국 디라히온 | |||
재위 | 로마 황제 | ||
1060년대 ~ 1078년 3월 3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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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제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Κωνστάντιος Δούκα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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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콘스탄티오스 Κωνστάντιο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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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두카스 ΔΟΎΚΑ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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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콘스탄티노스 10세(아버지)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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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미하일 7세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안나 두케나 테오도라 안나 두케나 조이 두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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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동방 기독교 | ||
왕조 | 두카스 왕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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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두카스 왕조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10세 말년에 형 미하일 7세와 함께 공동 황제가 되었고, 1078년 형이 폐위된 뒤 단독 군주가 되었으나 니키포로스 3세에게 폐위되어 수도원에 보내졌다. 이후 알렉시오스 1세에 의해 장군으로 복귀했으나 디라키움 공방전 때 전사했다.2. 행적
1060년대에 콘스탄티노스 10세와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 사이의 막내로 출생했다. 형제로 미하일 7세,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안나 두케나, 테오도라 안나 두케나, 조이 두케나가 있었다. 형제들과는 달리 아버지가 황위에 오른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포르피로게니투스라는 칭호를 유일하게 받았다. 태어난 직후부터 형 미하일 7세와 함께 하위 황제가 되었으며, 부친 콘스탄티노스 10세가 붕어한 후 미하일 7세, 안드로니코스 두카스와 함께 공동 황제가 된 뒤 어머니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가 섭정을 맡았다. 그녀는 불안정한 시국에 황권을 지키려면 군사 귀족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1068년 로마노스 4세를 공동 황제로 세우고 그와 재혼했다.로마노스 4세는 처음에는 콘스탄티노스 10세의 아들들과 함께 공동 황제로 취급되었지만, 나중에는 선임 황제로서 우선권을 갖고 에브도키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어린 아들 레온 디오예니스와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를 황제 서열에서 콘스탄티노스 10세의 자식들보다 우위로 두었다. 그러나 1071년 8월 26일 만치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에게 참패하고 포로로 잡혀버리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와 갈등을 벌이던 귀족들은 이 때를 틈타 로마노스 4세와 두 아들을 폐위했다. 또한 미하일 7세가 단독으로 통치를 행사했고, 어머니 에브도키아는 수도원에 들어가야 했으며, 안드로니코스와 콘스탄티오스는 황제의 지위는 유지되었지만 권력에서 배제되었다. 이후 콘스탄티오스는 1074년 키예프 루스의 안나 브세볼로도브나와 약혼했다.
1078년 1월 7일, 니키포로스 3세가 동로마 황제를 자칭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군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원로원의 강한 압박을 받은 미하일 7세는 심한 압박감을 느낀 끝에 콘스탄티오스를 후임 황제로 지정하고 퇴위했다. 콘스탄티오스는 어떻게든 지위를 유지하려 했지만 칼라브레 전투에서 니키포로스 3세에게 패배했다. 1078년 3월 31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한 니키포로스 3세는 콘스탄티오스를 폐위했다. 그해 말에 아나톨리아 방면군이 콘스탄티오스를 복위시키고자 반란을 일으켰지만 니키포로스 3세가 파견한 토벌대에게 진압되었다. 그 후 콘스탄티오스는 삭발된 뒤 마르마라 해의 프렌스 섬에 있는 수도원에 보내졌다. 그가 수도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안나 브세볼로도브나와 약혼 역시 파기되었다.
1081년 4월 니키포로스 3세를 폐위하고 황위에 오른 알렉시오스 1세는 이리니 두케나와 결혼한 뒤 콘스탄티오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데려온 후 스트라테고스(군사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1081년 10월 18일 디라키움 공방전 때 중앙군에 배속되었다가 노르만군이 중앙군을 에워싸서 궤멸시킬 때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