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6 10:53:25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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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gnotus: 불명
황제 겸 집정관 }}}
201년 202년 202년 보결 203년 204년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무렌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아리우스 무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레갈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마르쿠스 안니우스 플라비우스 리보
204년 보결 205년 206년 206년 보결 207년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리베랄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마르수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막시무스
ignotus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페트로니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파우스티누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페르
208년 209년 210년 211년 21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테렌티우스 겐티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스페르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퀸투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플라우티우스 아비투스 아울루스 트리아리우스 루피누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밀리우스 아스페르
212년 보결 213년 214년 215년 216년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퀸투스 마이키우스 라이투스 푸블리우스 카티우스 사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데키무스 카일리우스 칼비누스 발비누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217년 218년 218년 보결 219년 22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세베루스 마크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메시우스 엑스트리카투스 마르쿠스 오클라티니우스 아드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코마존
221년 222년 223년 224년 225년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사비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페르페투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티베리우스 마닐리우스 푸스쿠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비텔리우스 셀레우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알렉산데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226년 227년 228년 229년 23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퀸투스 아이아키우스 모데스투스 크레스켄티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아그리콜라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라일리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이키우스 프로부스 카시우스 디오 섹스투스 카티우스 클레멘티누스 프리스킬리아누스
231년 232년 233년 234년 235년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마르쿠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일리그니아누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파테르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우르바누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퀸티아누스
236년 237년 238년 239년 24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피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펠릭스 코르넬리아누스 폰티우스 프로쿨루스 폰티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베누스투스
241년 242년 243년 244년 24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아티쿠스 사비니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아리아누스 티베리우스 폴리에누스 아르메니우스 페레그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레피두스 프라이텍스타투스 가이우스 케르보니우스 파푸스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마이시우스 티티아누스
246년 247년 248년 249년 25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알리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아퀼리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51년 252년 253년 254년 25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발비누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256년 257년 258년 259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투스쿠스 (눔미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덱스테르)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뭄미우스 바수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260년 261년 262년 263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사이쿨라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도나투스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타우루스 볼루시아누스 눔미우스 파우스티아누스 덱스테르 (막시무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마크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퀴에투스 아우구스투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호노라티아누스
264년 265년 266년 26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오비니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리우스 파테르누스
사투르니누스 루킬루스 사비닐루스 아르케실라우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268년 269년 270년 271년
아스파시우스 파테르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에그나티우스 마리니아누스 파테르누스 비리우스 오르피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산크투스
272년 273년 274년 275년
티투스 플라비우스 포스투미우스 퀴에투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타키투스 또는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벨둠니아누스 율리우스 플라키디아누스 카피톨리누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켈리누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노빌리시무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276년 277년 278년 279년 28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노니우스 파테르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81년 282년 283년 284년 28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 루키우스 카이소니우스 오비니우스 루피누스 마닐리우스 바수스 Ⅱ)
285년 286년 287년 288년
티투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불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베티우스 아퀼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폼포니우스 야누아리아누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서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288년 보결 289년 289년 보결 289년 보결
… a 마르쿠스 마그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케이오니우스 프로쿨루스
… ivianus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퀸티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코엘리아누스 헬비우스 클레멘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89년 보결 290년 291년 292년
플라비우스 데키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아프라니우스 한니발리아누스
… ninius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시우스 디오 율리우스 아스클레피오도투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93년 294년 295년 296년 29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눔미우스 투스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안니우스 아눌리누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298년 299년 300년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비리우스 갈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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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고전 라틴어:Appius Claudius Iulianus)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위 원로원 의원, 집정관, 로마시장, 콘실리움 위원
가족 아버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티알리스
아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가 존속한 서기 2세기 후반~3세기 초반에 활동한 원로원 의원, 집정관, 로마시장, 야전 사령관, 콘실리움(황제자문회의) 위원이다.

세베루스 왕조 후기인 엘라가발루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시대 동안 율리아 마이사, 율리아 마마이아를 도운 원로원 의원으로, 디오 카시우스 등과 함께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시대를 대표한 인사다.

2. 생애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클라우디우스 가문 사람이다. 자세한 기록이 없어 확실치 않으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사비누스 레길렌시스와 그 형제들을 시작으로 이어진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진짜 후손인지는 불확실하다. 왜냐하면 당시 몰락귀족이 된 진짜 후손들은 옛 전통에 따라, 클라우디우스/클로디우스를 병기표기했고, 이들의 클리엔테스 후손들이 잘 나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는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에게서 개인이름과 씨족 성씨를 하사받은 것으로 추정한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도 어느 부분까지가 사실인지는 불확실하다.

동시대의 진짜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 후예인 몰락귀족 아피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와 그 자녀들과 달리, 이 사람은 클라우디우스 가의 종가격 이름이자 상징과 같은 '풀케르', '사비누스' 같은 이름을 코그노멘으로 본인, 아들 모두 사용하지 않고 있다.[1] 이는 본인, 장남, 손자, 증손자 등에게 어떻게든 클로디우스[2], 풀케르를 꾸역꾸역 전체 이름에 넣은 푸피에누스 일가와 매우 대비되는 모습이다. 다만, 서유럽 일부, 러시아, 동유럽 학자들의 경우에는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의 후예 내지 방계 친척 정도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배경을 둔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형제가 공동황제인 시절인 161~163년 트라키아에서 전직 법무관 자격으로 이곳 지방관 내지 지방 총독 격의 관직을 담당한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티알리스의 아들이다. 아버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티알리스는 전형적인 몰락귀족 출신 로마 제국의 중하위 공무원이었다. 그는 총독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오늘날 소피아에 있는 조폐소에서 안키알로(오늘날의 불가리아 포모리에) 시 정부의 주화 발행을 도왔다고 알려져 있고, 현재의 불가리아 일대에서 마르키아노플(현재의 불가리아 데브냐)와 현재의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북부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작은 로마시대 도시 니코폴리스 아드 이스투룸에 이름이 적혀 있어, 지방 행정관을 지낸 비문이 확인된 사람이다.

클라우디우스 마르티알리스의 아들인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는, 공화정 후기, 제정 시기의 몰락귀족 출신들의 전형처럼, 신참자 취급 이하를 받으며 성실함, 능력 검증으로 자리를 잡은 것 그대로 경력을 밞고 원로원에 입성한 사람이다. 그가 제대로 원로원에서 이름을 날린 것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모든 경쟁자를 제거하고, 원로원을 재개편하고 확장하면서 몰락귀족 출신 후손들 중 중하급행정, 군대에서 경력을 쌓은 실력 있는 장교, 관료 출신들에게 원로원 재입성 기회를 줄 때부터였다. 그래서 그는 세베루스 시대 말인 서기 210년 무렵에 보결 집정관에 아주 짧게나마 그 이름을 올렸다.

이는 이 사람이 생애 두 번째 집정관이자 첫 정규 집정관에 오른 뒤, 자신의 군 경력과 군 전역을 기념하는 서기 224년 군대 졸업 청동비문에 나온다. 그는 의도적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어서 인지 모르나, 로마 공화정의 상징 중 하나인 이 명문가와 어떤 관계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문구를 단 한 개도 적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하급 행정 실무부터 군 복무 중 성실하고 공손히 살았음을 적으면서, 집정관이 됐다며 감사함을 적어 놓았다. 그래서 전체 이름도 분명하지 않고, 대대로 물려 쓴 코그노멘이 율리우스 씨족명 뒤에 '-anus'를 붙인 '율리우스 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그가 클라우디우스 가문 후예가 맞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오고 있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는 223년 수도장관을 지냈고, 다음해인 224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크리스피누스와 함께 집정관을 지냈다. 그리고 당선 이후 224년 1월 7일자 청동비문인 '군사 졸업장'을 발행해 자신의 경력과 삶을 기념했다.

서기 224년 군대 졸업장 청동비문은, 관례에 따라 그가 집정관을 지내고 율리아 마이사, 율리아 마마이아와 손잡고 권력을 쥔 이후 제작됐다. 따라서 비문을 통해, 그가 두 번에 걸쳐 집정관을 했고, 이중 한 번은 당해년도 집정관에 올랐음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후 세베루스 가문의 카라칼라(또는 엘라가발루스) 치하에서 아시아 속주 총독과 아프리카 속주 총독을 지냈다고 적혀 있다.

여러 정황상 엘라가발루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의 외조모 율리아 마이사,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의 모후 율리아 마마이아와 친분이 깊고 마마이아와는 사이가 돈독했거나, 그들이 그를 추천해 기용할 만큼 불완전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초기 시절에 도움이 될 능력을 검증한 인물임이 확인된 인물이다. 그래서 두 번째 집정관이 된 해부터, 프라이펙투스 우르비가 되어 로마 시장을 맡으면서, 황제자문회의(콘실리움) 위원을 맡았음이 추가로 확인된다.

이런 측면을 생각해보면, 시리아 여제 및 세베루스 알렉산데르와 관계가 좋아 은퇴 직전 집정관이 된 디오 카시우스와 살짝 다를 뿐, 당대 로마 안에서 탄탄한 경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귀족적인 색채가 강하지 않음을 예측해볼 수 있다. 몰락귀족 출신이거나 옛 조상이 몰락한 가문과 클리엔테라 사이인 만큼이나, 그 재산은 디오처럼 넉넉하지 않았던 것도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베루스 왕조가 안정된 뒤부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기조 아래에서 본인 경력과 능력으로 기회를 잡아, 후기에 고위직에 올랐고,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와 울피아누스의 단점을 보완해줄 군대의 신망이 있던 점에서 주목할 인사로 분류된다.

자녀로 확인된 인물은 같은 이름을 가진 아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가 있는데, 그는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고르디아누스 3세가 한 해에 등장한 238년 집정관을 지냈다.


[1] 로마귀족들은 개인 이름, 성씨와 함께, 본인의 출신 가문과 외가가 나온 씨족, 조상 일족 중 역사가 유구한 가문명(코그노멘)을 반드시 넣어 전체이름으로 자신의 위엄을 드러냈다. [2] 클라우디우스 문서 항목에서도 적혀 있듯이, 클라우디우스 가문은 시조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사비누스 레길렌시스가 일족 전체를 데리고 로마와 왔을 때부터 au,o를 병기 표기해 '클라우디우스', '클로디우스'를 병행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