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라틴어: Publius Sempronius Soph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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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조부)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68년 |
전임 |
퀸투스 오굴니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 |
동기 |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루수스 |
후임 |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리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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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플레브스 가문인 셈프로니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는 푸블리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버지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는 기원전 304년 집정관을 역임하고 기원전 300년 최초의 평민 출신 폰티펙스 중 한 명이 되었으며, 기원전 300년 감찰관, 기원전 296년 법무관을 역임했다.기원전 268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루수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두 집정관은 피케니족의 봉기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에우트로피우스와 플로루스에 따르면, 그가 단독으로 반란을 진압했다고 한다. 반면 일부 기록에 따르면 두 집정관이 공동으로 반란을 진압했다고 한다. 파울루스 오로시우스에 따르면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지진이 일어났으며, 전투는 너무나 격렬해서 얼마 안 되는 로마인 만이 승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플로루스에 따르면, 셈프로니우스는 지진이 일어나자 텔루스 여신을 기리기 위한 사원을 짓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같은 해에 아르니움과 베네벤툼 시가 건설되었고, 사비니족이 투표권을 받았다.
기원전 252년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되었다. 두 감찰관은 원로원 의원 16명을 추방했고, 400명의 에퀴테스들이 카르타고와의 전쟁 동안 시칠리아에서 군사 규율을 위반했다고 규탄하고 그들이 소유한 국가 소유 말을 몰수하고 에라리아로 추방했다. 또한 그들은 인구 조사를 실시해 297,797명의 로마 시민을 확인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에 따르면, 그는 아내가 장례 경기를 관람했다는 이유로 이혼할 정도로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