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4 18:14:38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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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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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43년 기원전 435년 기원전 430년 기원전 418년 기원전 40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푸리우스 파쿨루스 푸수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불명)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마르쿠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푸블리우스 피나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마르쿠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기원전 393년 기원전 389년 기원전 380년 기원전 378년 기원전 366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 마르쿠스 푸리우스 푸수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스푸리우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클로엘리우스 시쿨루스 ( 포스투미우스 레길렌시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보결)
기원전 363년 기원전 351년 기원전 340년 기원전 332년 기원전 319년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카우디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불명)
기원전 318년 기원전 312년 기원전 307년 기원전 304년 기원전 300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사베리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기원전 294년 기원전 289년 기원전 283년 기원전 280년 기원전 275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르비나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구르게스) (불명)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카이디키우스 녹투아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기원전 272년 기원전 269년 기원전 265년 기원전 258년 기원전 25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블라시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페라
기원전 252년 기원전 247년 기원전 241년 기원전 236년 기원전 234년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티쿠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부테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루타티우스 케르코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불부스
기원전 231년 기원전 230년 기원전 225년 기원전 220년 기원전 214년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푸블리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기원전 210년 기원전 209년 기원전 204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4년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카투스
기원전 189년 기원전 184년 기원전 179년 기원전 174년 기원전 169년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루스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64년 기원전 159년 기원전 154년 기원전 147년 기원전 142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기원전 136년 기원전 131년 기원전 125년 기원전 120년 기원전 115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또는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기원전 102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2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89년 기원전 86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4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불명)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루키우스 겔리우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기원전 61년 기원전 55년 기원전 50년 기원전 42년 기원전 28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기원전 22년 기원전 8년 14년 46년 73년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라틴어: Gaius Antonius Hybrida
생몰년도 미상 ~ 미상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지위 노빌레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아버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형제)
대 안토니아(장녀)
소 안토니아(차녀)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63년
전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동기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후임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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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감찰관.

2. 생애

헤라클레스의 아들 중 한 명인 안톤을 시조로 삼은 노빌레스 가문인 안토니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는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시빌라 예언서를 관리하고 나라에 긴급한 일이 생길 때 이와 연관된 구절을 찾아본 뒤 원로원에 보고하는 '데켐브리 사크리스 파시운디스(decemviri sacris faciundis: 10명의 신성한 책 관리자)'를 역임한 티투스 안토니우스 메렌다, 기원전 422년 집정 무관을 역임한 퀸투스 안토니우스 메렌다, 기원전 333년 삼니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독재관으로 발탁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 휘하의 기병장관을 맡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1]를 자신의 역사서에 언급했다. 이렇듯 역사가 오래됐지만 기원전 2세기까지 집정관을 단 한 명도 배출하지 않았기에 로마 귀족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다 아버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의 대에 이르러 안토니우스 가문의 가세는 급성장했다. 그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웅변가에 대하여>에서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전 시대 최고의 웅변가로 손꼽힐 정도로 탁월한 웅변술을 갖췄고, 이를 토대로 정계에서 맹활약했다. 기원전 99년 집정관에 올랐고, 기원전 97년 감찰관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가이우스 마리우스간의 내란이 벌어졌을 때 술라를 따랐다가 마리우스가 로마를 장악한 뒤 피살되어 수급이 포로 로마노에 전시되었다.

형제로 법무관과 크레타 총독을 맡았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가 있었고, 조카는 그 유명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다. 아버지가 마리우스파에게 살해당했을 때 형제와 함께 그리스로 피신한 뒤 술라의 군대에 가담했다. 기원전 84년 그리스에서 기병대를 지휘하며 각지의 도시와 성소를 약탈해 군자금을 확보했다. 이후 술라와 함께 로마로 돌아간 후 술라의 내전에 참가해 승리에 일조했고, 숙청 대상자들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뜯어내 부자가 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열린 축제 때 마부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나중에 연설 중 하나에서 그를 마부(quadrigarius) 라고 불렀다.

기원전 76년 정치 경력을 막 시작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그리스에서 심각한 수탈을 벌인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호민관 한 명이 "법정에서 로마 시민이 그리스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불법이다"라고 주장하며 거부권을 행사한 덕분에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70년 감찰관 루키우스 겔리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가 원로원 의원 64명을 제명할 때 함께 제명되었다. 제명 사유는 "속주민을 약탈하고 법원의 판결을 거부했으며, 자신이 짊어진 많은 부채를 다른 사람의 소유로 이전했다"는 것이었다. 키케로는 나중에 이 결정을 "아름답고 정당하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그는 제명 후에도 정치 경력을 이어갔다. 기원전 68년 이전에 조영관을 맡았으며, 기원전 66년 법무관에 선임되면서 원로원에 복귀할 수 있었다. 기원전 64년 집정관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그가 상대한 후보는 퀸투스 코르니피키우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사케르도투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키케로,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그리고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였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와 카틸리나는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인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지원을 받으며 함께 행동했다고 한다. 키케로는 대중 연설에서 안토니우스를 강도, 검투사, 마부, 그리스 강도라고 비난했고, 그는 이에 대응해 키케로가 보잘것없는 신참자라고 조롱했다.

투표 결과, 그는 키케로보다 뒤쳐지고 카틸리나보다 약간 앞선 2위를 차지하면서 키케로와 함께 집정관이 되었다. 기원전 63년 1월 1일에 취임한 그는 선거 때와는 달리 키케로와 협력했다. 그는 연초에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를 배분받았고, 키케로는 마케도니아 속주를 배정받았다. 키케로는 로마에 머물기를 원했고, 그는 부유한 마케도니아를 원했다. 이에 두 사람은 논의 끝에 임지를 교환했고, 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키케로의 모든 사업에 대한 지원과 마케도니아 수입의 일부를 이전하기로 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에 대해 키케로가 안토니우스를 국가를 구원하고 선을 이루도록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배우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이후 카틸리나가 집정관 선거에 재차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음모를 꾸몄다. 당시 그가 카틸리나와 모종의 밀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는 이에 대해 소문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카틸리나에게 전력으로 협력하지도 않았다. 디오 카시우스는 그가 음모에 가담했다고 주장했지만, 학자들은 그저 카틸리나와 키케로 중 누가 이길 지를 가만히 지켜보고 승자의 편에 서려 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기원전 63년 11월, 카틸리나는 지지자 가이우스 만리우스가 군대를 모으고 있던 에트루리아로 도피했다. 카틸리나는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혔고, 그는 만리우스의 반란군을 진압할 군대의 사령관으로 선임되었다. 당시 반란군은 사료에 따라 7,000 ~ 20,000명이었다고 전해지나, 대부분 무장이 빈약했다고 한다. 카틸리나는 토벌대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피하기 위해 북상했지만, 갈리아 키살피나 총독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가 저지하자 피스토리아 인근에서 안토니우스와 결전을 벌이기로 했다.

안토니우스는 동포를 해쳤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는지 전투 전날에 레가투스(Legatus, 군단장)를 맡고 있던 마르쿠스 페트레이우스에게 지휘권을 맡겼다. 이후 기원전 62년 1월에 피스토리아 전투에서 카틸리나 반란군은 궤멸되었고 카틸리나와 만리우스는 전사했다. 안토니우스는 카틸리나의 수급을 베어 로마로 보내 자신이 음모에 가담했다는 소문을 불식시켰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토벌군 역시 큰 손실을 입었고, 로마 시민들은 이 전투를 그다지 영광스럽게 여기지 않았기에 개선식은 열리지 않았다.

기원전 62년 봄 마케도니아 총독으로 부임한 그는 속주민들을 상대로 재산 강탈, 고리 대금업, 세금 체납 징수 등 온갖 방식으로 수탈했다. 또한 트라키아의 다르다니 족과 모이시아 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가 크게 패했다.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루푸스에 따르면, 그는 이민족이 야습을 감행했을 당시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장교들이 그를 마구 흔들고 고함을 질러댔지만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자, 백인대장과 창녀가 그의 양팔을 붙들고 들어올려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마케도니아 총독이 착취를 심하게 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다는 소문이 로마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기원전 62년 가을, 원로원은 그를 소환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키케로가 안토니우스를 옹호한 덕분에, 그는 2년 동안 마케도니아에 머물 수 있었다. 기원전 62년 말에서 기원전 61년 초, 키케로는 친구 아티쿠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안토니우스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고 밝혔다. 안토니우스와 임지를 교환한 밀약이 발각되었고, 안토니우스가 보내주기로 했던 돈은 한 푼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아티쿠스에게 "나는 이 정도로 뻔뻔하고 교활하고 느려터진 인간을 본 적이 없다. 그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모든 걸 느리게 처리한다"고 불평했다.

기원전 60년 말 로마로 돌아온 그는 즉시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고발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의 변호를 맡았다. 그는 안토니우스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와 야합했던 자신 역시 고발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고 있었다. 그는 피고가 카틸리나 추종자들을 토벌한 공적이 있다면서, 그런 그를 공격한 것은 카틸리나 잔당들의 농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원전 59년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카틸리나와 밀담을 나눴다는 소문을 들춰냈다. 카이사르는 이에 대응해 키케로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던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가 호민관이 되기 위해 평민의 양자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키케로는 탁월한 변론가였지만, 안토니우스의 범죄를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안토니우스는 유죄 판결을 받고 시민권을 박탈당한 뒤 로마에서 쫓겨났다. 상당수 로마인은 이에 기뻐했고, 카틸리나의 무덤에 꽃이 쌓였다고 한다. 안토니우스는 카팔로니아 섬에 정착한 뒤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그는 마치 사유재산인 것처럼 섬을 장악하고 새로운 도시를 설립했다고 한다. 키케로는 훗날 히브리다를 변호할 때 썼던 연설문을 출판했는데, 망명지에서 이걸 읽은 히브리다는 "그가 실제로 이렇게 했다면 여기서 물고기나 잡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는 10여 년간 카팔로니아 섬에서 살았다. 카이사르의 2인자로서 이탈리아에서 통치한 조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망명자들을 이탈리아로 불러들였지만, 그를 불러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알려지지 않은 사유로 카이사르에 의해 기원전 44년 1월 이전에 로마로 복귀하는것을 허락받고 원로원 회의에 출석했다. 기원전 42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와 함께 감찰관에 선출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데, 기원전 42년으로부터 몇 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두 딸 대 안토니아 히브리다, 소 안토니아 히브리다를 두었다. 대 안토니아 히브리다는 아버지를 고발한 인사들 중 한 명인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의 아내가 되어 기원전 37년 집정관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를 낳았다. 소 안토니아 히브리다는 사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기원전 47년에 결혼했지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와 간통하고 있다고 의심한 안토니우스에게 이혼 통보를 받았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딸 안토니아는 소 안토니아의 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안토니아는 스미르나의 대부호인 피토도로스와 결혼해 폰토스 왕국의 여왕 피토도리다를 낳았다.
[1] 그러나 종교 의례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두 사람 모두 같은 해에 사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