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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토스 왕국 13대 군주 Πυθοδωρίδα | 피토도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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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피토도리다 |
그리스어 | Πυθοδωρίδα | |
라틴어 | Pythodorida | |
존호 | 바실리사 | |
가족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외조부) 소 안토니아 히브리다(외조모) 트랄레스의 피토도로스(아버지) 안토니아(어머니) 폴레몬 1세(첫째 남편) 아르켈라오스(둘째 남편) 아르탁세스 3세(장남) 폴레몬 2세(차남) 안토니아 트뤼파이나(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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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년도 | 기원전 30/29년 ~ 38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8년 ~ 3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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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폰토스 왕국 제13대 군주. 폰토스 왕국의 유일한 단독 여성 군주이며, 첫번째 결혼으로 폰토스 왕국과 보스포루스 왕국의 왕비를, 두번째 결혼으로 카파도키아 왕국의 왕비를 지내기도 했다.2. 생애
기원전 30/29년 스미르나에서 매우 부유한 그리스인 피토도로스와 안토니아 사이에서 출생했다. 피토도로스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후원자였으며, 제2차 삼두정치의 일원으로 지중해 동방 속주를 맡게 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딸 안토니아와 결혼했다. 안토니우스는 이 결혼을 통해 피토도로스의 재산 일부를 파르티아 원정에 쓸 수 있기를 희망했다. 기원전 13/12년 폰토스 왕국과 보스포로스 왕국의 왕 폴레몬 1세의 후처가 되었다. 두 사람은 아르탁세스 3세, 폴레몬 2세, 안토니아 트뤼파이나를 낳았다.기원전 8년 폴레몬 1세가 전처 뒤나미스를 지지하는 아스푸르기아노이(Aspurgianoi) 족을 공격했지만 크게 패하여 생포된 뒤 피살당했다. 그 후 보스포로스 왕국은 뒤나미스를 거쳐 아스푸르고스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피토도리다는 폰토스 왕국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아들 아르탁세스 3세와 폴레몬 2세가 있었는데도 그녀가 여왕이 된 까닭은 두 아들이 아직 어린데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외손녀인 점이 감안되어 로마 당국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콜키스와 킬리키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지만, 보스포로스 왕국은 끝내 되찾지 못했다.
이후 카파도키아 왕 아르켈라오스와 재혼하여 카파도키아 왕비도 겸했고, 아이들과 함께 카파도키아 궁정에 정착했다. 아르켈라오스와의 사이에선 자식이 없었고, 서기 17년 아르켈라오스가 죽자 자녀들과 같이 폰토스로 다시 돌아왔다. 서기 38년에 사망했고, 차남 폴레몬 2세가 폰토스 왕위에 올랐다. 장남 아르탁세스 3세는 서기 18년 로마 제국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등극했고, 딸 안토니아 트뤼파이나는 훗날 오드뤼사이 왕국의 군주가 되는 코티스 3세와 결혼했고, 서기 12년 로마탈케스 1세가 죽어 왕이 된 코티스 3세의 왕비로 살았다. 서기 18년 코티스 3세과 함께 공동 왕으로 군림하던 레스쿠포리스 2세가 코티스 3세를 유인해 감옥에 가둔 뒤 살해하자, 그녀는 자식들과 함께 키지코스로 망명했다. 서기 19년 티베리우스 황제가 코티스 3세가 사망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자 재판을 열 때 증인으로 출석해 레스쿠포리스 2세의 악행을 고발했다. 레스쿠포리스 2세가 유죄 판결을 받고 폐위된 뒤 장남 로마탈케스 2세와 함께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