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0 01:26:09

뒤나미스(보스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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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왕조 군주
Δύναμις | 뒤나미스
파일:뒤나미스(보스포로스).jpg
제호 한국어 뒤나미스
그리스어 Δύναμις
라틴어 Dynamis
별명 필로로마이오스(Philoromaios: 로마를 사랑하는 자)
생몰 년도 기원전 65년 ~ 서기 8년
부모 파르나케스 2세(아버지)
사르마티아 여인(어머니)
형제자매 다리우스(남자 형제)
아르사케스(남자 형제)
남편 아산드로스(기원전 47년 이전 ~ 기원전 17년)
스크리보니우스(기원전 17년 ~ 기원전 15년)
폴레몬 1세(기원전 14년 ~ 기원전 13년)
아스푸르고스(기원전 8년 ~ 서기 8년)?
자녀 아스푸르고스(아들)?
아산드로스 2세(아들)?
재위 기간 기원전 47년( 아산드로스와 공동 재위)
기원전 44년 ~ 기원전 17년( 아산드로스와 2차 공동 재위)
기원전 17년 ~ 기원전 15년( 스크리보니우스와 공동 재위)
기원전 15년 ~ 기원전 14년(단독 재위)
기원전 14년 ~기원전 13년( 폴레몬 1세와 공동 재위)
기원전 8년 ~ 서기 8년(단독 재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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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왕조 여군주. 아산드로스, 스크리보니우스, 폴레몬 1세 등 여러 남편과 함께 통치하다가 기원전 8년부터 서기 8년까지 단독으로 통치했다.

2. 생애

기원전 65년 폰토스 왕국 제 8대 군주이자 보스포로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왕조 제2대 군주 파르나케스 2세 사르마티아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자 형제로 다리우스, 아르사케스가 있었다. 기원전 47년 이전 아버지의 부하인 아산드로스와 결혼했고, 기원전 47년 남편이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보스포로스 왕을 칭할 때 공동 왕이 되었다. 아산드로스는 젤라 전투 패전 후 보스포로스 왕국으로 피신한 파르나케스 2세를 살해하고 수급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바쳐서 그의 인정을 받길 원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군주를 살해한 신하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그를 찬탈자로 낙인찍고, 알렉산드리아 전쟁 때 자신을 구해준 미트리다테스를 보스포로스 왕으로 선임했다. 미트리다테스가 흑해 연안을 따라 쳐들어오자, 그녀는 남편과 함께 도피하여 어머니의 부족인 사르마티아인들에게 보호받았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이 벌어지자, 사르마티아인들의 도움을 통해 모집한 용병대를 이끌고 보스포로스 왕국으로 진격하여 미트리다테스를 몰아내고 왕위에 복귀했다.

기원전 30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7세를 꺾고 지중해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선 아우구스투스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남편이 필로카이사르 필로로마이오스(Philocaesar Philoromaios: 카이사르를 사랑하고 로마를 사랑하는 자)를 별칭으로 사용할 때 자신은 '필로로마이오스'를 사용했다. 또한 보스포로스 해협의 모든 그리스 폴리스에 자신을 본뜬 대리석 조각상을 세우도록 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 있었다.
뒤나미스, 대 파르나케스의 딸, 왕중왕 미트리다테스 6세 에우파토르의 손녀, 로마인의 친구이자 폰토스 그리스인의 구세주이자 후원자.

기원전 17년, 스크리보니우스가 자신을 미트리다테스 6세의 손자라고 칭하고 아우구스투스로부터 보스포로스 왕으로 인정받았다고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아산드로스는 이를 진압하려 했지만, 신하들이 전부 스크리보니우스의 편을 들자 자살했다. 하지만 보스포로스 귀족들이 그녀를 지지했기 때문에, 스크리보니우스는 그녀를 축출하는 대신 결혼하고 공동 왕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스크리보니우스를 인정하길 거부하고 기원전 15년 폰토스 왕국의 군주 폴레몬 1세에게 찬탈자를 몰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폴레몬 1세가 함대를 이끌고 흑해를 가로질러 쳐들어오자, 보스포로스인들은 강대한 로마 제국과 싸우길 원치 않았기에 스크리보니우스를 살해하고 로마군의 입성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 폴레몬 1세를 보스포로스 왕으로 내세우는 건 받아들이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다.[1] 폴레몬 1세가 구원을 요청하자,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가 기원전 14년 로마 함대를 이끌고 보스포로스로 진군해 반란군을 제압했다. 폴레몬 1세는 주민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녀와 결혼하고 공동 왕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원전 13년,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남편과 불화를 벌인 끝에 자신에게 충성하는 부족들이 있는 크림 반도 내륙으로 도주했다. 이에 폴레몬 1세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외손녀인 피토도리다와 결혼했다. 기원전 8년, 폴레몬 1세는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크림 반도 내륙 부족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원정을 단행했다. 그는 돈 강 어귀에 있는 타나이스시를 파괴한 뒤 아스푸르기아노이(Aspurgianoi)족을 공격했지만 크게 패하여 생포된 뒤 피살당했다. 이에 아우구스투스는 그녀가 보스포로스 여왕으로 복위하는 걸 인정했다. 그녀는 이에 보답하고자 아우구스투스와 리비아 드루실라를 기리는 비문을 세웠다.
α]ύτoκράτoρα Kαίσαpα θεόν | [θ]εού υίόν Σεβαστόν τόν έαυτής | [σ]ωτήρα καί εὐεργέτηv | [β]ασίλισσα] Δύνα]μις φιλορώμαιος.
임페라토르이자 신인 카이사르, 신의 아들이며 여왕 뒤나미스 필로로마이오스의 구세주이자 은인인 아우구스투스.
Λιουίαν τήν τού Σεβαστού γuναίκ[α] | [β]ασίλισσα] Δύνα]μις φιλορώμαιος | [τήν έαυ]τής εὐεργέτηv.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이며 여왕 뒤나미스 필로로마이오스의 후원자인 리비아 드루실라.

그녀의 주화가 서기 8년까지 주조된 것을 볼 때, 그때까지 통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왕위에 오른 아스푸르고스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설과 아들이라는 설이 병립하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는 확실하지 않다.


[1] 이때 '아산드로스 2세'로 알려진 뒤나미스의 아들을 추대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