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파테르쿨루스 라틴어: Gaius Sulpicius Patercul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퀸투스 술피키우스 파테르쿨루스(아버지) |
참전 | 제1차 포에니 전쟁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58년 |
전임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가이우스 아퀼리우스 플로루스 |
동기 |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 |
후임 |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세라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블라시오 |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파트리키 집안인 술피키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퀸투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한다. 기원전 258년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기 이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요안니스 조나라스에 따르면, 동료가 시칠리아에서 작전을 수행할 때 그는 아프리카로 원정을 떠나는 임무를 맡았으나 풍랑 때문에 사르데냐 해안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하지만 폴리비오스는 두 집정관이 처음부터 시칠리아 방면에서 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으며, 현대 학자들은 폴리비오스의 기록이 사실에 근접한다고 본다.그는 사르데냐섬을 약탈하던 중 한니발 기스코가 이끄는 카르타고 함대가 접근해오자 함대를 이끌고 출격해 맞섰지만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쌍방간에 손실을 입히고 철수했다. 이후 카르타고군이 술키 항구에 정박한 사이, 로마군은 안개가 짙게 깔린 틈을 타 안개 속으로 진격해 적 함대를 기습했다.( 술키 해전) 이로 인해 40척의 함대를 속절없이 상실한 한니발 기스코는 본국으로 패주한 뒤 십자가형에 처해졌다.[1]
로마군은 이 승리 덕분에 올비아 요새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르데냐 일대를 복속시켰다. 그러나 올비아에 자리를 잡은 카르타고군이 거세게 저항했기 때문에 올비아 탈환에 실패했다. 이후 로마로 귀환해 개선식을 거행했으나,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1]
일설에 따르면, 한니발 기스코는 함대를 잃고 육지로 도주한 뒤 그의 무능을 성토한 장병들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