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3:02:58

스웨덴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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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과
2.1. 발단2.2. 실제로 존재하는 문화인가?2.3. 주한 스웨덴 대사관의 반응2.4. 스웨덴의 부정적 이미지 확산
3. 구설에 오른 이유
3.1. 인류의 보편적인 관습에 위배되는 특이성3.2. 스웨덴의 기이한 문화에 대한 조소3.3. 정반대의 뉘앙스
4. 문화적 관점에서의 해석
4.1. 고대 노르딕 문화 관점에서4.2. 스웨덴 근현대사의 관점에서
5. 다른 나라와의 비교6. 언론 보도
6.1. 진정세
7. 기타8. 관련 문서

1. 개요

#Swedengate
스웨덴게이트(Swedengate)[1] 2022년 5월 25일경, 미국 커뮤니티 레딧을 통해 " 스웨덴에는 집에 온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 즉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접대의 관습과 완전히 반대되는 접대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 세계인에게 알려지며 구설에 오른 사건이다. 심지어 그 손님이 아동이어도 예외없이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다는 점이 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2. 경과

2.1. 발단

2022년 5월 25일경에 레딧에서 남의 집에서 문화/종교의 차이 때문에 겪었던 이상한 일들을 묻는 글이 올라왔고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영어 댓글로 세계 각국에서 겪은 골때리는 들을 풀었다. 여기서 " 스웨덴인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엄마가 식사 시간이 되었다고 부르자 친구가 자기 밥 먹고 올 때까지 방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그 식구들끼리만 식사를 했다."는 썰의 댓글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일파만파 퍼진 것이 발단이다.

소문이 퍼지며 스웨덴에서는 일반적인 상황임을 현지인들도 인정했다. 트위터에서 '스웨덴게이트(#swedengate)'라는 해시태그까지 붙으며 전 세계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2]

2.2. 실제로 존재하는 문화인가?

인터넷상의 여러 증언들을 교차검증하면, 일부 과도하게 부풀려진 부분이 있지만 문화 자체는 실제로 존재한다. 여러 스웨덴인들의 교차검증 가능한 증언들과 주한스웨덴대사관의 반응을 살펴보면 논란이 일어났던 2022년 시점으로도 살아있는 문화이다. 다만, 스웨덴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지 않은 스웨덴인들도 일부 있다고 한다.
  • 미리 계획되지 않은 당일치기 방문에서 실제로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가?: 사실.
  • 미리 계획되지 않은 당일치기 방문을 한 손님이 아동이어도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가?: 사실.
  • 미리 계획되지 않은 당일치기 방문에서 식사 시간이 되면 손님은 제외하고 가족들만 따로 식사하는가?: 사실.
  • 미리 계획된 방문을 한 손님에게는 식사를 대접하는가?: 사실.
    • 단순히 식사를 줄 뿐만 아니라 손님을 충분히 잘 대접한다고 한다.
  • 미리 계획되지 않은 방문이라면, 하룻밤 이상 묵어가는 손님에게도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가?: 대체로 거짓.
    • 묵어가는 손님 정도 되면 스웨덴인들 입장에서도 친하고 중요한 상대인 경우가 많기에 일반적으로 음식을 대접한다. 다만 단순히 '당일치기는 밥을 안 주고 묵어가면 준다'는 잣대가 아니다. '묵어갈 만한 사람이니까 묵게 하고 밥도 준다' 쪽에 더 가깝다. 다만 레딧에 올라온 글 중에는 하룻밤 묵기로 한 날이었는데도 저녁밥을 주지 않았고, 다음 날 아침밥도 주지 않았다는 사례도 있었다.
  • 친교를 목적으로 남을 식사자리에 초대하지 않는가?: 대체로 사실.
    • 딱히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단순 친교를 위해서 남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한다는 사례도 거의 없고, 문화적으로도 그런 사고방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 화장실 등 집안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가?: 거짓.
  • 식사 대접을 하고 식사비를 요구하는가?: 강제로 요구하지는 않지만 먼저 알아서 약간의 수고비를 챙겨주는 것이 문화적으로 예의라고 한다.
    • 스웨덴인끼리의 식사 대접에서는 초대받은 쪽이 먼저 알아서 식사비 명목의 돈을 주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 정이 없어서 돈을 달라고 무례하게 요구한다는 관점이 아니고, 대접하느라 고생했으므로 당연히 초대 받은 쪽이 약간의 수고비를 건네주는 것을 스웨덴 문화에서는 예의[3]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스웨덴인들은 지인의 집에 놀러갈 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도시락을 챙겨가거나,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외국인에게 초대 받아 식사를 대접받은 스웨덴 손님이 식사비로 돈을 주려고 하더라는 증언도 꽤 있다.

일부 부풀려진 사례가 있다고 해도, 식사 시간에 손님에게 음식을 접대하지 않고 다른 곳에 방치하고 가족끼리만 식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세계인들에겐 충분히 충격적이라 논란이 됐다. 음식을 주지 않는 것도 특이하지만 미리 식사를 할 생각이 있는지 예의상 물어보거나 혹은 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자기 집에 가서 먹으라고 권유하지도 않고 그냥 방치한다는 것도 충격적인 부분이다.

한국 네티즌이 스웨덴인 친구에게 직접 질문하자 "이 논란은 팩트이며, 예정되지 않은 방문이면 손님은 식사를 함께하지 않고 따로 대기해야 하며, 예정된 방문이거나 하룻밤 자고 가는 경우에는 당연히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1997년생 스웨덴 가수 자라 라슨은 스웨덴의 '안 좋은 문화'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친구 가족들이 밥 먹는 동안 친구 방에 앉아 있는 건 흔한 일이고 나는 그것에 대해 슬퍼한 적 없다. 우리(스웨덴)는 원래 그렇다." 라고 답변했다.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스웨덴으로 이민가서 귀화한 베네수엘라계 스웨덴인 가수 오마르 루드베리는 "스웨덴인들이 필사적으로 스웨덴을 옹호하는 걸 보니 웃기다"라면서 스웨덴게이트 같은 관습은 "100%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이후 댓글로 스웨덴인들도 풍족하게 손님을 대접할 줄 아는 천사 같은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인에게 식사 대접을 받은 경우에도 식사비는 따로 낼 것을 요구하더라,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하면 대변 봉투를 준다더라" 괴담 같은 댓글들도 올라왔다. 다만, 이는 루머라고 한다. 한국 남편이 스웨덴 아내와 스웨덴게이트에 대해 나눈 이야기에 따르면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게는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 문화가 있는 것이지, 사전에 초대한 손님까지 박대하거나 식사비를 요구하거나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는 없다고 한다.

스웨덴, 핀란드에 오래 거주한 한국인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인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엄청나게 강하고, 자기가 먹을 음식은 스스로 챙기는 문화이며 타인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자체를 어색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역으로 외국인들이 스웨덴인들에게 단순 친교의 목적으로 음식을 대접하면 당황하고 부담스러워 하며, 그렇지 않은 소수의 북유럽인들은 해외여행 경험이 많거나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거나 등 해외 문화 경험이 많은 케이스라고 한다.

다만 스웨덴게이트 논란에 대한 스웨덴인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70~80년대까지는 흔했지만, 현재는 많이 줄어들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또한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반응이 많이 차이난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에서도 "90년대까지는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식사는 자기 집에서 하는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한 세대 윗줄의 문화이고 현대에는 많이 변했다고 증언한다. JTBC 스웨덴인 인터뷰에 따르면 "80~90년대까지는 스웨덴게이트 관습대로 식사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스웨덴인들도 손님을 왕처럼 대접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오해가 있어서 억울하다"고 한다. 전 세계의 여타 문화들이 그렇듯이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화가 되면서 현재는 상대적으로 안 좋은 접대문화가 희석된 편이라고 한다. SBS 인터뷰

이 논란에 대해서 스웨덴인들의 해명은 "미리 알리지 않고 집에 왔다면 당연히 음식이 부족하지 않겠냐. 그 상황에서 음식을 당당히 요구하는 것 자체가 예의없는 것이다"라고 한다. 반대로 적용해서 "우리가 미리 인원수에 맞춰 음식을 하는 것처럼 너희 집에서도 누군가가 음식을 인원에 맞춰 준비할 텐데, 우리 집에서 먹고 가면 너희 집에서 음식을 준비한 사람은 뭐가 되냐?"라고 한다. 그래서 예정에 없는 손님에게는 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전 세계의 네티즌들은 스웨덴인들의 해명을 전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였다. 트위터 등지에서 스웨덴인이 위에 설명한 해명과 같은 논지의 트윗을 올리자 "칼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걸로 잘라서 나눠먹으면 되잖아", "배달음식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지"라는 답글이나 인용 RT가 줄줄이 달렸다. 또한 겨울이 긴 스웨덴의 기후 특성상 장기간 보관 가능한 식재료를 많이 비축해두고 있는 나라라는 점을 들어서 "식재료가 부족할 일이 거의 없지 않냐?"는 반론도 있었다.[4] 다만 게이트에 대한 스웨덴인들의 댓글에 따르면 스웨덴 가정들은 식구 수에 맞춰서 계획적으로 그날 장을 봐서 그날 먹을 음식을 그날 만들어서 그날 음식을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5] 알뜰

그나마 "니네 가족이 니 먹을 밥 차려놨는데 니가 바깥에서 밥먹고 오면 가족들이 서운하지 않겠냐?"라는 주장이 그럭저럭 제일 명분 있는 주장이라고 한다. 그 외에는 스웨덴 네티즌들의 정말 눈 뜨고 못 봐줄 수준의 억지스러운 변명도 많았다. 이러한 변명들은 매우 가난했었거나 기근이 심했던 개발도상국 & 제3세계 국가들이 더욱 스웨덴게이트에 거세게 반발하는 반응을 보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네티즌들이 영어로 댓글을 다는 레딧의 특성 때문에, 원글 하나만으로는 특이한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었지만 실제 실시간으로 추가되는 여러 스웨덴 사람들의 변명을 보면서 되레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었어?"라고 확증을 키운 것이다. 이렇게 스웨덴인들의 해명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계획된 식사'를 예의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2.3. 주한 스웨덴 대사관의 반응

이 논란이 화두에 오르자, 주한 스웨덴 대사관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스웨덴 사람들과 '피카(fika)'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렇다"는 글을 올렸다. 피카는 스웨덴어로 ' 커피 다과회'라는 뜻으로, 오후에 커피와 간식을 함께 먹으면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티타임과 비슷한 스웨덴의 휴식 문화이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한국 인터넷상에서 스웨덴에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 수 있는 논란이 일어났는데, 스웨덴을 대표하고 옹호해야 하는 대사관이 '그런 관습은 없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무 연관없는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으므로, 2020년대 시점으로도 저 관습이 실존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럽권 국가들뿐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문화권 국가들에는 다과회 문화와 식사 대접 문화가 동시에 존재하니 저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당장 한국의 예를 생각해보자. 꼭 식사 시간이 아니라도 친구나 지인의 집에 방문하면 커피, 음료수, 과자, 과일 등 가벼운 간식거리를 대접받는 경우가 많고, 식사 시간이 겹치면 식사 대접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차 모임이나 술 모임에 나가면 당연히 같이 차와 간식, 또는 술과 안주를 함께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물론 한국이 별다르게 특별해서 손님 대접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원래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스웨덴에서는 평범한 다과회 문화를 특별한 행사라도 되는 양 써놓고 "그 행사에 참여한 손님은 커피, 다과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그럼 그 외 다른 대부분의 손님들은 식사 대접을 못 받는 것이 맞구나!"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2.4. 스웨덴의 부정적 이미지 확산

파일:swedengate-net-01.jpg 파일:swedengate-net-02.jpg

이러한 음식 '비대접' 문화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북유럽 선진국'이라는 이름 하에 조명되지 않았던 스웨덴 사회의 음성적인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 사례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에 처음에는 '스웨덴 사람들 참 별나네.' 정도로의 장난성 으로 시작한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 가는 추세로, 단순 컬처 쇼크로 인한 해프닝 수준에서 끝날 수 있었을 일이 일부 인종차별적 내용과 스웨덴 내 제노포비아[6]가 합쳐지며 진짜 논란으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특히 "밥 대접해 달라고 하지 말고 들여보내주는 것에 고마워해라"라는 내용이 제노포비아와 연결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이것이 논란이 되면서 스웨덴과 스웨덴 국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확산되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스웨덴의 제노포비아뿐만 아니라 노예무역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친나치적인 행보가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물론 인터넷의 모든 밈과 논란이 으레 그렇듯이 이 논란도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다. 논란이 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은 유럽에서도 인구가 적기로 유명한 지역인 데다가 애초부터 적은 인구와 척박한 기후 조건 때문에 작은 사회적 분위기가 강해서 외국인들이 들어가서 살거나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화가 21세기 들어와서야 화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북유럽은 지금도 타국과 교류가 많지 않은 지역이다. 다만 어찌 되었든 이런 인식이 절대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7] 스웨덴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편견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실제로도 논란이 확산되자 폴란드볼 등의 국민성 유머 콘텐츠에 '스웨덴인은 무정하고 야박하다'는 이미지가 반영되고 있다.

이에 더해 스웨덴 기업인 이케아의 가구도 "예전엔 모던하고 심플한 북유럽풍 가구들로 보였는데 요즘은 정이라곤 없이 텅 빈 것처럼 보인다"라든지, " 어쩐지 알아서 조립하라고 하더라"(...) 같은 조롱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이 커졌다. #

3. 구설에 오른 이유

3.1. 인류의 보편적인 관습에 위배되는 특이성

해당 내용이 논란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시대와 지역 막론하고 거의 모든 인류 집단에게 보편적으로 지켜지는 접대의 관습을 완벽하게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가별로 통용되는 문화는 나라마다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서양권[8]에선 숨쉬듯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팁 문화는 대다수의 동양인들이 낯설어 하며 그런 문화를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축의금 같은 문화도 대체적으로 동양인은 다수의 손님을 초대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를 받는 반면 서양권은 일반적으로 진짜 가까운 소수의 인원만 초대하고 많은 액수를 받는 등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고 잣대를 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접대의 관습'이 일부 국가에서만 통용되었다면 단순히 문화가 좀 다른 것으로 보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역사적으로 전세계의 모든 문화권을 통틀어 지켜진 인류의 보편적 관습이 유독 스웨덴을 포함한 노르딕 문화권에서만 안 지켜진다는 것 때문에 전 세계인들이 충격을 먹은 것이다. 하다못해 원초연대기의 기록에 따르면 왕가 시조가 같은 바이킹이라는 옆동네 러시아에서조차 지켜지는 게 접대의 관습인데 말이다.

차라리 '아예 집에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다'고 했다면 그 나름의 이유도 있을 수 있고, 이상하다는 반응은 몰라도 이 정도의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9] 그러나 일단 손님을 집에 받고 나서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그 사람(손님)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는 일이나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손님에게 음식을 먹이는 것은 손님의 물리적인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이유를 포함하여 자신이 사는 거주지에 손님을 맞이한 사람이 손님에게 주인 혹은 일원으로서 음식을 베푸는 '접대의 일환'이다. 쉽게 말해 손님으로 들이고 나서도 일부러 밥을 안주는것은 보통 "난 너를 이만큼이나 증오하고 싫어한다. 그러니 우리 서로 깔끔하게 적이 되자."라는 것과 거의 같은 뜻이다.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진 다른 서구권 사회에서도 집에 놀러 올 정도로[10] 친한 사이라면 식사 때가 되면 집에 온 김에 함께 밥 먹고 가라고 하거나 식사 때가 아니라면 과자나 빵, 차나 커피 등의 간단하게 먹고 마실 간식과 식음료를 제공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심지어 갑자기 방문하게 된 경우라도 피치 못할 사정이라면 적어도 차 한 잔 하시겠냐고 물어는 본다.[11] 괜히 미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스웨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보며 매우 황당해하며 놀리는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다. 이건 서구 문화권의 개인주의를 떠나서 스웨덴 사회의 타인에 대한 배타성과 불친절 문제[12]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스웨덴인들도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며 자신들은 절대 저렇지 않다고 선을 긋는 것이다. 즉 현대 스웨덴인들도 문제점을 인식하고는 있다.[13]

대표적으로 구한말 시절에 해주(海州) 목사가 제임스 게일을 만났는데, 목사는 마치 서양인을 귀신처럼 여기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손님이 접대의 의미로 대접한 식사를 흔쾌히 먹는 것을 보고 '저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해 오해와 편견을 풀었다는 일화가 있다. #[14] 즉 1만 년 인류 문명사에서 이런 접대의 관습은 거의 전 인류의 공통적인 상호 이해와 교류의 장이었다는 것인데 이런 인류 대부분의 관습과는 영 딴판인, 스웨덴의 관습은 다른 인류 집단 입장에서는 흡사 외계인을 본 듯한 충격이라는 것이다. 즉 세계적으로 얼마나 생경한 문화인지 알 수 있다.

또한 접대의 관습은 단순히 일방이 베푸는 것보단 상호 호혜적 성격에 가까운데 결국 접대를 하는 나도 누군가의 손님으로 대접받는 입장이 언제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웨덴인들은 '보편적 접대의 관습을 가진 타국에선 이방인으로서 대접을 받으면서 정작 본인들은 그러한 손님맞이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 타 문화권의 반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선 다른 이의 집에 손님으로서 초대받거나 방문할 경우 음식까지 대접받는 것을 대접의 일환으로 여기며, 비단 대접하는 쪽뿐만 아니라 대접받는 쪽도 이를 기쁘게 받는 것이 묵시적인 예의이다. 이 때문에 대접받는 쪽에서도 음식을 거절하면 대단히 실례인 경우가 많아서, 억지로라도 먹거나 정 거절하고 싶을 때는 '감사하지만 이미 먹고 와서 배가 너무 불러 못 먹을 것 같다'거나 '음식 재료에 하필이면 알레르기가 있어서', '오늘 어쩐지 속이 좀 안 좋아서' 또는 '약을 먹는 중이다' 등 온갖 그럴싸한 구실을 대며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예의이다. 혹은 최소한의 다과나 음료라도 마신다.

물론 식사 때가 아니든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든 주인이 음식을 먹지 않는 상황이라면 손님에게 음식을 내주지 않더라도 크게 이상한 건 아닌 경우도 많고, 주인이 음식을 안/못 먹는 상황에도 손님에게는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역으로 손님이 주인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눈치를 보다가 식사 시간 전에 떠날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즉 종합해보면 현대 사회에서 적용되는 접대의 관습은 비단 음식에만 한정된 '주인은 무조건 음식을 대접하며 손님은 무조건 먹는다'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다.

3.2. 스웨덴의 기이한 문화에 대한 조소

사실 어디까지나 비웃는 정도이지 세계적인 규탄을 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부유한 제1세계+ 북유럽+ 백인 주류의 국가인 스웨덴에서 발생했기에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빈국에 이런 문화가 있다고 하면 이 정도로 전세계인들이 놀라거나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변명해주려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고 애초에 논란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15]

더군다나 문제는 북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각종 국제통계나 진보적 의제 같은 것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스웨덴은 '잘난' 북유럽 내에서도 상위권 지수에 속하는 '살기 좋은' 나라이며 복지 제도는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16] 그래서 국제 사회에서 스웨덴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 충격적인 문화적 결점이 보이게 되었으니 많은 해외 네티즌들이 충격을 받고 더 큰 조롱거리로 삼은 것이다.

매번 자신들의 나라가 이만큼 좋은 나라라고 자랑하던 스웨덴 사람들에게서 다른 나라라면 상상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문화를 발견한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찌 보면 흥미로운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3.3. 정반대의 뉘앙스

현대인의 관계성은 복잡하며 대부분의 경우는 음식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인이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꼭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특정 국가를 짚으며 '걔들도 딱히 적극적으로 음식을 접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수준의 지극히 기계적인 비판에 가깝다. 당연히 상황마다 양상이 다르며, 밑의 다른 국가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비판은 '걔들도 식사 시간에 불쑥 방문하는 걸 기꺼워하진 않는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남의 집 식사 시간에 예고 없이 들어가서 음식을 달라고 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는 어느 나라든 그다지 예의 있는 행동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17]

스웨덴은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가는 상황이 아니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상황에서조차 음식을 나눠 주지 않고 왕따시킨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된 것이다. 이 상황 설정이 담론의 핵심인데, 만약 집주인도 아무것도 먹고 있지 않았다면 손님이 갑자기 음식을 달라고는 안 했을 것이고 이게 인터넷에 올라와 전 세계적으로 스웨덴게이트라는 이름까지 붙어서 조리돌림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음식을 내달라고 한 사람이 박제되어 조리돌림당했을 가능성이 정말 높다. 만약 다른 상황이었더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스웨덴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저 상황만큼은 도저히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접대는 기본적으로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너도 누리게 해 주겠다'는 마인드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음식은 잠자리, 집이라는 공간 그 자체 등과 더불어 집주인이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호의이자 접대이다. 이 때문에 집주인만 음식을 먹고, 손님에게 안 주는 것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대부분 '우리는 너를 환영하지 않으니 꺼져라'라는 극도로 모욕적인 거부감의 표시이다. 거기다 그냥 밥만 안 주는 게 아니라 손님을 다른 공간에 혼자 격리해놓기까지 했으니, 일반적으로는 이건 당장 이 집에서 떠나라는 일종의 경고에 가깝다. 손님에게 허비할 음식도 없고, 손님과 같이 음식을 먹을 시간조차도 아까우니 이제 그만 꺼지고 만약 여기서 더 버티면 우리의 관계가 험악해질 것이라는 뉘앙스를 행동을 통해 풍기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손님이 주인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게 기본적으로 예의인 이유도 음식을 받아먹지 않겠다고 하는 의사표명이 '나는 당신이 주는 호의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 더 나아가면 '나는 당신이 기껍지 않다.' 혹은 '당장 여기서 나가겠다.'까지 확대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괜히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주인이 음식을 권할 때 손님이 온갖 핑계를 들어가며 주인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즉 예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관계 정립의 문제다.[18]

이 때문에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주인이 음식을 먹을 때는 손님에게도 준다는 것만큼은 지켜져야 하는 불문율이며, 이는 '고작 음식을 안 줬다고' 쪼잔하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예시의 일부일 뿐이다. 이를 어기고 주인만 음식을 먹는다면 타 문화권에서는 작게는 타인에게 불친절한 가족으로 구설에 오르거나, 크게는 손님이 그 자리에서 주인에게 대놓고 화를 내며 집을 박차고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이러다 보니 스웨덴 네티즌들이 말하는 '밥은 밥이고 초대는 초대다'는 식으로 별개로 취급하는 것에 대부분 타 문화권 네티즌들은 당황스럽고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시로, 추운 겨울날 남의 집에서 갑자기 자고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주인이 침구류가 하나밖에 없어서 못 준다고 해도 대부분 '어휴, 재워주시는 게 어딥니까'라고 반응할 것이고, 반대로 손님을 맨바닥에 재울 수 없다며 차라리 자기 침구류를 내 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만약 다른 곳은 난방이 빵빵하게 나오는데 손님 방에만 난방이 되지 않는다면 손님은 보통 실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때 주인에게 '제 방에 난방이 안 들어오는데 켜 주실 수 있냐'고 물었는데 '그 방은 데워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당신이 떠날 때나 데워질 테니 어차피 쓸모가 없어서 켤 거다'라고 대꾸했다면 반응이 어떨까? 대부분은 '겉으로는 받아 주는 줄 알았는데 사실 나가라는 뜻이었구나'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면박을 준다며 불쾌해할 사람도 많을 것이고, 주인이 적대적인것을 이해한 만큼 한밤중에 그냥 집에서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4. 문화적 관점에서의 해석


문화적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정작 북유럽 전통문화는 인류 보편적 접대의 관습을 중시한다. 각종 역사 기록에 따르면 진짜 그 고대인 바이킹 시대만 하더라도 다른 문명권과 비슷한 접대의 관습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노르딕 문화의 큰 부분 중 하나였다고 나와있다. 당장 수많은 북유럽 신화 사가에서 나오는 많이 먹고 많이 마시는 축제의 중요성을 생각해보자. 다른 누구도 아니고 오딘[19]의 가르침 중 하나가 손님 접대를 잘 하라는 거였다. 그런데 고대에선 저러지 않았다가 오히려 물질적으론 훨씬 더 풍요로운 현대에 와서 접대의 관습이 사라진 이유가 아리송한 것이다.

북유럽의 기독교는 상대적으로 늦게 전파되었지만 기독교 역시 손님 접대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여겼던 만큼 기독교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없다. 비슷하게 세계적 기준에서 일상 문화가 많이 짠돌이인 걸로 유명한 네덜란드, 종종 매정하고 차가운 사람들이란 스테레오타입이 있는 영국인, 여전히 오리지널 영국계 문화적 영향력이 강한 동북부 미국 백인도 죄다 게르만계 개신교 주류의 이른 산업화를 겪은 북대서양권이다. 종교 개혁도 이유가 될 수 없는 게 개신교는 타 기독교 분파보다 더 성경에 충실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그 성경은 주인이 접대할 능력이 되는데도 발 씻을 물과 음식을 내지 않으면 악한 것으로 본다.

대부분의 관습이 그러하듯 스웨덴 사람들도 현대에 들어서 대부분 문화권에선 찾아보기 힘든 홀대의 관습이 자국에 자리잡은 이유를 콕 집어서 말하지 못한다.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아무리 비합리적이라도 손님을 접대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듯, 스웨덴에선 한낱 방문자인 손님이 원거주자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뜨거운 감자가 된 스웨덴게이트 관습에 대해 해외 네티즌들과 스웨덴인들도 설명하거나 원인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뾰족한 정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인터넷상의 몇몇 스웨덴인의 발언을 바탕으로 20세기에 있었던 개인주의의 확산, 기독교의 쇠퇴, 산업 혁명과 경제 불황 등이 맞물리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문화라고 추측하고 있으나, 그 역시도 개인주의 확산, 종교적 쇠퇴와 대공황을 겪었던 북미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점으로 보아 완전한 설명은 아니다.

4.1. 고대 노르딕 문화 관점에서

스웨덴 사람들이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 것을 과거 문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한 예로, 북유럽 전승에는 부유한 상인에게 값진 무기를 선물받은 전사가, 그 무기에 걸맞은 답례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선물을 준 상인을 그 무기로 죽여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부족 사회의 예의에서 선물이란 상호적(reciprocal)인 것이기에 '동등한 관계라면' 상대에게 선물을 받으면 그에 걸맞은 답례를 해야 하고, 이러한 증여와 답례를 반복함으로써 양자의 우호적 관계를 확인하고 형성해 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관습 속에서 '상대가 답례할 수 없는 선물을 준다'는 것은 그 대상과 동등한 관계가 아닌 상하관계를 맺겠다. 즉, '너는 내가 준 물건을 받았지만 내게 답례하지 못했으니, 내 아랫사람이다'라는 의미인 것이고, 이를 거부하면 상대를 적으로 돌리겠단 소리기에 미리 죽여버린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상대에게 도움을 줬다는 것은 상대에게 신세를 지게 하므로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복속시키려는 의도'라는 생각하에 개인 간에는 사적인 도움을 베풀지 않는 문화가 생겼고, 밥을 먹이지 않는 것도 이 일환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상당히 억지스러운 것으로, 북유럽 신화를 보면 오딘의 가르침 중 하나가 손님 접대를 잘 하라는 것이었다.[20] 심지어 오딘의 이야기 중에선 의심병이 도져서 손님을 추방하고 변장한 오딘을 의심스럽게 여겨 고문하다가 모든 게 밝혀진 뒤에 당황하다 자기 칼에 찔려 죽은 게이로드 이야기도 있다. 고대 역사에서 한 가지 일화 가지고 적어도 확인되는 바로는 현대까지도 상당히 광범위한 풍습을 설명할 수도 없고, 이런 논리에 따르면 상호 증여나 답례 문화가 있는 문화권에는 손님에 대한 환대 문화가 없어야 하는데 정작 대부분의 부족 및 전통 사회에서는 '증여나 답례 문화'와 '환대 문화'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나타난다. 즉, 타인에게 신세를 지게 하는 것을 복속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문화권에서도 손님 대접은 잘만 하고 잘만 받는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심리적인 부담이자 부채의식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은 곧 손님에 대한 환대가 합의되고 대차대조적인 것이 아닌, 선제적 호혜로서 제공되는 것이라는 전제(및 문화)가 공유된다는 의미다.[21] 손님 대접이 과장된 베품이건 교양적 사교 활동이건, 먼저 베푸는 제스처로서의 환대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신세를 지게 할 수 있는 것이지, 미리 협의하거나 대가가 조율된 상태에서 제공하는 것이 당연시된 문화라면 밥을 얻어먹을 경우 (마치 식당의 손님처럼) 오히려 당당한 권리로 인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당장 메이와쿠 문화가 강했던 옛날 일본을 보더라도 함부로 호의를 베풀어 상대를 빚지게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었다지만 손님 대접의 선심은 별개의 문제였다. 상대의 집에 손님으로 갔을 때 대접을 잘 받았다면 반대로 상대가 자신의 집에 왔을 때 대접을 잘 하는 것으로 상대의 호의에 답례함으로써 서로간의 우호적 관계를 확인하고 쌓아올려나가는 것이 전통 사회의 예의이자 사회적인 관계를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건너뛰고 대놓고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족 사회의 논리로 보면 오히려 "너랑 나는 어차피 적이고, 곧 싸울 사이인 것이 뻔한데 서로 위선떨 필요 없지 않으냐?"는 의미로 해석되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바이킹 전승에서 '값진 선물을 주었다가 되레 살해당한 부유한 상인' 일화가 상징하는 것은 본 문단과 같이 '호의를 빙자한 강압을 시도했다가 보복당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상호적인 증여와 답례 문화 아래서 상대에게 선물할 때는 먼저 상대가 자신의 선물을 기꺼이 받을 만큼 호의적인 관계인지 판단하고 또 상대의 입장과 처지에 걸맞은 적절한 선물을 주는 것이 예의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를 악용하여 상대가 답례할 수 없는 큰 선물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으로 상대를 모욕하거나[22] 상대에게 자신에게 굴복할 것을 강요하는[23]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상대는 선물을 거부하는 것은 적대관계를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어차피 적이 될 것이라면 차라리 선수를 쳐서 공격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다른 해석을 원한다면 위와 같은 참사를 피하기 위한 교훈을 주는 일종의 우화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호간의 동등한 선물과 답례로 호의와 신뢰를 쌓아가는 사회적 구조 내에서는 설령 호의로 준 것이라 하여도 과한 선물은 되려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으니 눈치껏 적절한 선물을 주는 것이 예의바른 태도이고 적절한 사회성이라는, 즉 <과공(過恭)은 비례(非禮)이다>라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 현대에도 순수한 호의를 베풀었더니 상대방에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괜히 열폭해 호의를 베푼 사람을 원망하는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고, 이러한 예의에 훨씬 엄격한 부족사회라면 괜한 열폭이 아니라 정말 과한 선물은 받는 사람을 심각하게 난처한 상황에 빠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건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의도적이었건 실수였건) '전사가 답례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선물을 주었다'는 것에 있다. 증여와 답례를 주고 받는 연결고리가 깨져서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것. 이 관계의 연쇄가 깨지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다.[24] 부족 사회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접이나 호의 하나하나를 다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의도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서로 주고받으며 갚아나갈 수 있는 선물과 호의의 교환은 많을수록 친구와 동맹이 많아지기에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부족 사회의 비중이 컸던 민족들을 봐도 척박한 환경 속에 살더라도 접대만큼은 신경써서 하는 기록이 많았다. 성경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구절 중 하나가 유대인들이 유목 시절부터 '손님에게 고기와 빵을 내 주었다'이고, 몽골족이나 여진족 같은 유목 민족들 역시 접대 예절을 무시한 적에게 앙심을 품고 보복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당장 북유럽 바로 옆동네에 기후도 비슷한 러시아에서도 손님 대접 문제로 야박하다는 소리를 듣는 나라는 결코 아니다. 즉 환경이나 민족의 기원의 이유로 스웨덴이 유독 접대에 박한 이유를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

4.2. 스웨덴 근현대사의 관점에서

스웨덴의 근현대사에서 이런 문화가 나온 것이라는 린네 대학교[25] 사라 스벤손(Sara Svensson)이라는 대학생이 학사논문으로 쓴 2019년 # 논문이 존재한다.

안데르스 브렌드스트룀(Anders Brändström)이 쓴 19세기 스웨덴의 사생아와 편부모가정, 1999년 # 논문도 존재한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1차 세계 대전을 비동맹 중립국가로 넘겼지만 그에 따른 정치적 혼란으로 재편된 사회민주노동당이 집권한 1920년대 스웨덴은 공업개발과 도시화를 진행했는데, 이때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하면서 도시로 이주한 하류층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혼인빙자간음으로 인해 발생한 사생아를 스웨덴 사회 그 어디에서도 길러주지 않고 간혹 아이의 친모인 미혼모가 육아를 원해도 강제로 아동과 친모를 분리시킨후 위탁 가정에 불하해 고용인 정도의 일은 시키거나 기업체 위탁수련생 명목으로 노예노동을 시켰다. 이로 인하여 스웨덴에서 한세대를 기점으로 인구분포의 재편과 함께 기존 질서가 붕괴되고 공동체 문화가 단절됐다는 내용이다.

브렌드스트룀의 논문 내용을 일부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아동은 원치않는 임신의 결과물이었다. 둘째, 어미는 자식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혼외자로 인하여 지역사회에서 추방당하고 사회적 질서에 단죄당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교회도 아이를 원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죄악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를 종합하였을 때, 많은 사례에서 입증되듯이 이러한 아동은 실질적으로 자원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아동들(사생아들)은 적법한 아동과 같은 가치로 간주되지 않았으나, 여전히 여러 방법으로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대 다수의 혼외자를 출산한 여성들은 그들의 사회적 계층안에서 혼인에 성공하였다. 이러한 점은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행위가 완전하게 매도당하고 추방당하지 않았으며 용인된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고아의 대량발생은 궁극적으로 빈곤 문제를 유발했다...."
그나마 다른 유럽 국가들이었다면 총력전으로 인하여 그런 인력이라도 강제로 병사나 노동력으로라도 써먹었을 테고 이 과정서 강제로라도 공동체적인 문화를 주입했겠지만 스웨덴은 나치 독일 노르웨이 침공의 경로를 터주는 것으로 전화를 피했으니 저런 사생아들을 그런 식으로 써먹을 필요성도 적었을 테니 더더욱 공동체적 사고관을 함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주장. 여기에 1939년 겨울전쟁으로 유입된 핀란드 난민이나 50~60년대 경제개발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유입한 외국 노동자들과의 융화에 실패하면서 스웨덴의 공동체문화가 급격히 경직된 것이 현세대 스웨덴인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다.

다만 위의 논의가 성립하려면 다음의 요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 (1) 이 시기(트위터와 트게더의 글에서 제안된 기간은 1900~1960이다) 이전까지는 스웨덴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접대의 관습이 있었어야 한다.
  • (2) 이 시기 사생아의 문제나 아동-친모의 분리 문제가 광범위하고 문화 전체에 영향을 줄 정도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어야 한다.

또한 다음의 요건이 충족된다면 논의가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 (3) 접대의 관습이 존재하는 나라 중에는 이와 같은 아동-친모 분리의 문제를 경험한 국가가 없으면 논리를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
  • (4) 당시 스웨덴에 사회복지체제나 경제적 번영이 없었음이 입증된다면 논리가 강화될 것이다.

여기서 각 요건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논의가 나올 수 있다.
  • (1) 19세기까지의 노르딕 지방의 접대 문화를 직접 다룬 사료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19세기 당시 이 지역 극작가, 소설가가 남긴 작품 속 생활상이 정황 증거는 될 수 있고, 1840~1920년 기간에 대규모로 일어난 스웨덴인의 미국행 이민으로 형성된 공동체( 시카고의 경우 20세기 초 기준으로 스톡홀름 다음가는 규모의 스웨덴인 집성촌이었음)의 문화를 확인해봐도 간접적인 정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에서 매일 집에 와서 식사를 하는 손님(랑크 박사)의 식사 여부를 몰라서 걱정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19세기 스웨덴 작가 칼 요나스 로베 알름크비스트(Carl Jonas Love Almqvist)의 "Sara Videbeck"에서도 여건이 어렵다는 이유로 손님인 목사에게 식사 대접을 하지 않는 집주인을 나무라면서 자신이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늙은 선장이 등장한다. 한편 스웨덴계 미국인 이민 공동체에서의 문화적 상황을 다룬 서술들( 예시)에서도 스웨덴 공동체가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주의적 생활을 했다는 묘사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다만 이 시점에도 이미 공동체 외부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다는 증언도 있는데, 이 부분이 개척시대에 흔히 존재하는 외부자 공포인지, 스웨덴인의 특성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미네소타, 위스콘신 등의 스웨덴 이주자 협회 등에 남아있는 음식 유산에 대한 자료를 보면 외부인과 나누는 부분은 대체로 피카를 매개로 하며, 일상 식사를 외부인과 나누는 지적이 없는 점은 논거로서는 미흡하지만 정황으로서는 유념할만 하다고 보인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 대이주시대(1840~1920)에 스웨덴에 남은 사람들은 이주한 사람에 비해 더 집단주의적인 면모가 강한 사람들이라는 지적도 있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집단주의적인 면모를 호혜적인 사회보험체계 등 복지체제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 연구뿐 아니라, 스웨덴인의 개인주의적 면모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서 스웨덴 내부의 연구는 대체로 스웨덴인이 집단주의적/공동체주의적 면모를 갖고 있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보이는데, 메타연구가 정확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므로 정확한 확인은 어려운 부분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볼 때 19세기에는 스웨덴에도 어느 정도 접대의 관습이 남아 있었으나, 이 시점에도 이미 세계 다른 지역에 상응할 정도의 접대의 관습은 없었을 개연성이 있다.
  • (2) 20세기 초엽의 위탁아동이나 사생아 비율에 대한 정확한 사료는 파악하기 어려우나, 스웨덴 위키에서는 19세기 말 약 4만명의 위탁아동이 있었으며 이는 인구 1천명당 8명의 비율 이상임을 지적한다. 출처 아울러 이 항목에서 논거로 자주 언급된 논문의 "Angelmaker"는 위탁아동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연쇄살인범의 사례를 말하는데, 19세기 말 이와 같은 사례를 조사한 결과 160개 가구 중 6건을 확인했다고 한다. 출처

    이 항목에서 또한 주요 논거로 사용되는 "Illegitimacy and Lone-Parenthood in XIXth Century Sweden"에서 19세기 혼외자 비중이 1811년~1820년에는 출생 1000명당 62명, 1851년~1860년에는 출생 1000명당 90명, 1900년에는 출생 1000명당 110명이라 추산하고 있다. 출처 이를 토대로 볼 때 존재했던 문제였던 것은 확실하고, 사회적으로는 상당한 이슈였을 개연성이 있으나, 세대 문화 상실을 야기할 만큼 광범위한 현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있다.
  • (3) 또한 이 항목의 역사에서 자주 반대 논거로 언급된 논문에서도 '이와 같은 아이 위탁은 영국, 미국, 뉴질랜드, 호주, 덴마크, 스웨덴에서 나타난 관행'이었다. 이 문제는 사실 비슷한 시기 서구에 광범위하게 나타난 현상이었고 스웨덴 만의 일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 (4) 스웨덴은 1850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웨덴은 바로 이 시기부터 이륙을 시작했고, 계속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850-1970 기간으로 볼 때 스웨덴보다 평균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는 일본 밖에 없다) 산업화는 이미 1890년대에 상당 궤도에 올랐으며, 1900년이 되었을 때 이미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 지역에 살고 있었다. 1920년대에 급격한 산업혁명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후(1921~1923년) 스웨덴이 심각한 고통을 겪은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것은 전 유럽적인 현상이었다. 1929년 시작된 세계 대공황의 여파도 스웨덴에 상당한 고통을 주었으나, 스웨덴은 환율가치 조정으로 수출이 상당 규모 증가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쉽게 지나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이 시기가 스웨덴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는 계기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스웨덴 경총 서술)

    한편, 1938년 7월 11일자 미국 라이프지의 스웨덴 구스타프 왕 80세 생일 기사에서도 스웨덴이 전쟁(1차대전) 이후 매우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있으며, 아동노동 금지 등 높은 규율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는 기사가 있다. 이 기사에서는 당대 스웨덴에 전기 확산(약 75%의 가구와 60%의 농가) 수준이나, 이미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는 실업자 고용지원제도,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제도 등을 서술하고, 독점방지 등 제도가 운영 중인 점 등을 짚어 생활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서술하고 있다. 특히, 빈민가가 없다시피 한데 그 이유가 스톡홀름의 주택 공급 가격이 세계 최저수준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최소한 스톡홀름에 한해서라도 1938년 시점에는 이미 서민 경제상황이 억압적인 수준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유럽 각국의 역사적 GDP 곡선을 보더라도, 이 시기 스웨덴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결정적인 고통을 겪었다고 볼만한 변화를 찾아보긴 어렵다.

요약하면 근현대사적 관점으로 분석한다고 해도 일부 유럽 지역에서만 접대에 박한 것을 완벽히 설명할 순 없다. 각 나라의 근현대사적 비극에 줄을 세울 순 없겠지만 스웨덴 정도면 현대 국가 기준으로는 선구적인 복지정책과 높은 국민소득, 그러면서도 제국주의적 행보는 보이지 않았던 덕분에 세계적으로 볼 때 매우 양호한 근현대사를 지닌 나라이다.

유럽 기준으로 봐도 구 유고슬라비아권 국가들이나 우크라이나처럼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겪은 나라들은 수두록하고 프랑스와 영국, 독일도 양차 세계 대전으로 수백만이 죽어나갔던 것에 비하면 스웨덴은 박쥐 같다 해도 대규모 인명손실은 겪지는 않았는데[26] 이들 나라에서도 대개 특정 계층에서만 영향이 발생하는 등 접대가 간략해지는 정도로 그쳤다. 따라서 스웨덴의 근현대사적 요소 때문에 접대 관습 자체가 한 세대에서 일제히 증발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단정짓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5. 다른 나라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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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대접 이외의 각국의 접대 문화에 대해서는 접대의 관습 문서 참고.

5.1. 한국

우선 한국에서도 피치 못한 사유가 없는 한 일본, 영국, 미국 등과 마찬가지로 통보도 없이 식사 시간에 불쑥 찾아가는 것은 상당한 결례이며 별다른 이유 없이 찾아간 사람도 예의가 없다고 비판을 받지만, 이런 주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수준의 비난을 듣고는 한다.

당연히 급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거나 중요한 소식을 급히 전하기 위해 지금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등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식사 시간에 방문한 사람들은 식사 시간에 방문했다는 비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이 경우에는 주인이 손님이 거절할 것을 알더라도 일단 식사 초청을 하지 않는 게 더더욱 이상한 일로 여겨진다.

특히, 이런 식사 초청 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집의 주인이 손님에게 당연히 행해야 하는 의식이자 윤리적 도리에 가깝게 받아들여졌다. 예정에 없던 사람이 식사 시간에 방문했을 때에 손님 되는 사람이 자신보다 더 사회적 지위나 관계에서 아래에 있거나 불리한 사람이더라도 일단 식사 권유 정도는 하는 게 예의로 받아 들여지며, 그 사람이 업무차로 방문했을 경우에는 회장님이든 말단 직원이든 당연히 식사 한 끼 정도는 베푸는 게 예의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지사 직원이나 하청/파견 업체 소속 직원이 식사 시간에 본사 사옥으로 업무 차 방문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의 방문을 받아준 본사에서는 최소한 회사 구내 식당이나 근처 식당, 배달 음식 정도는 한 끼 대접하겠다며 같이 식사하자고 요청하는 것이 예의로 여겨진다.

이런 적정한 수준의 선 이상으로 주인이 물어보며 아쉬워 하는 눈치를 남기느냐 마냐에 따라 주인의 식사 초청이 진심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일반적으로는 한국인들도 식사 시간에 갑자기 방문하여 결례를 범한 경우 주인의 식사 초청을 정중히 거절하는 걸 예의에 좀 더 부합한다고 보나, 만약 주인이 진심으로 손님이 식사를 하고 가는 걸 꺼리지 않는 눈치이면 당연히 식사 초청을 수용하든 거절하든 어느 쪽이든 문제 될 게 없다고 보여진다.

오히려 주인이 손님이 식사하고 가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눈치면 손님은 설사 식사를 원치 않더라도 주인의 초청을 받아들여 간단히 한 술 정도는 뜨는 것이 예의로 여겨지며, 정 먹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음료수나 간단한 주전부리 정도라도 받아갈 수 있다. 반대로 주인이 진심으로 식사에 초청한 것은 아니라는 걸 눈치채면 손님은 적당히 빠져주는 게 예의로 여겨진다.[27]

반대로 주인도 손님의 눈치를 봐서 손님이 계속 식사 초청을 강하게 거절하며 진심으로 식사를 함께 하기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진짜로 다른 일이 있어서 꺼리는 눈치이거나 손님이 직접적으로 함께 식사를 못하는 사유를 얘기하며 식사 초청을 거절한다면 적당히 한두 번 정도만 더 물어보고 더 이상 물어보지 않음으로써 손님이 무안하지 않게 하는 게 예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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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갈ᄯᅢ에 직히는례절
사람을 방문할ᄯᅢ 급한일이아닌외에는 아무ᄯᅢ나가면 아니됨니다 그것은 실례에갓가운일입니다 아무ᄯᅢ나 방문하면 곳 식사ᄯᅢ나 취침시간에방문하는것은 큰실례로이외의시간에방문할것이고ᄯᅩ만나는사람이초면으로알게쯤되면 그사람과친한사람의소개를 바더가지고가는것이 례의입니다
[현대어 풀이]
방문 시 지켜야 할 예절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갈 때, 급한 일이 아닌 한 아무 때에나 가면 안 됩니다. 이는 실례되는 행위입니다.

아무 때나, 특히 식사 시간이나 취침 시간에 방문하는 것은 큰 실례로 해당 시간을 피해 방문해야 하며, 만나는 사람이 초면인 경우 그 사람과 친한 사람의 소개를 받아 가는 것이 예의입니다.
1942년 3월 23일자 매일신보 논평 <주부사전>
앞서 언급했듯 기본적으로 손님이 예고도 없이 식사 시간에 불쑥 찾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는 방문 예절과 관련된 기사나 예정에 없었던 방문의 경우 식사 시간을 피하는 것이 예의라는 기사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 # 그리고, 손님들도 미리 약속을 잡고 방문을 하고 식사 중에 갑자기 불쑥 찾아가는 경우는 워낙에 비상 상황이라 급히 방문하러 달려갔더니 하필 식사중이었던 경우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없다.

혹시나 도저히 손님을 대접할 여건이 되지 않을 때는 아예 주인까지 같이 먹지 않는 것이 예의로 여겨졌다. 김삿갓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데, 손님 김삿갓을 맞은 안주인이 집 주인에게 '인량차팔(人良且八) 하오리까?"라고 물었더니 집 주인은 '월월산산(月月山山)하거든.' 하고 응수하여, 김삿갓은 주인이 자신과 밥을 같이 먹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욕설로 시를 짓고 떠난다.[28] 물론 김삿갓은 손님에게 밥을 주지 않은 것 자체를 푸대접으로 인지하고 욕을 하였지만, 그나마 그것이 결례라는 것을 알고 집주인 본인도 손님이 떠날 때까지는 굶겠다고 한 것이다. 문제는 이를 손님에게 들켜버렸다는 것이다.

만화 식객으로 유명한 허영만의 수기에도 비슷한 얘기가 언급된다. 자신의 집이 굶주리진 않았으나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자신의 어릴 적 집에 손님이 와서 머무르면 식사 시간이 되어서도 일부러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들끼리는 이 맥락을 당연하게 이해하기 때문에 행동의 의미를 해설하지 않는데, 손님을 내버려두고 집안 사람끼리만 식사를 하는 것을 극도로 무례하며 집안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방문한 손님에게 식사 초청을 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로 여겨지며, 부모가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자식이 자기 친구를 식사 시간에 예고 없이 데려온다고 해도 스웨덴에서처럼 식사 초청도 없이 자기 자식만 따로 불러서 밥을 먹지는 않는다.

그리고 성인 손님에게도 간단한 간식 정도는 대접하고, 손님이 식사를 거절한 상황이거나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손님이 떠나기 전까지 식사를 참는 것이 한국에서는 기본적인 소양으로 여겨진다.

반대로 손님도 자신 때문에 주인이 식사를 못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과를 한 이후 가급적 빨리 일을 처리하고 자리를 뜨거나 식사 후 다시 방문하겠다고 하며 주인에게 식사할 시간을 주는 것이 예의로 여겨진다. 이런 한국의 문화적 풍토에서 자녀의 친구와 같은 손님에게 식사 제의도 없이 가족끼리만 밥을 먹는 일은 젊은 부부가 사는 가정에서도 사실상 없다. 하다못해 독신으로 살더라도 외식하지 않는 이상 집에서 친구가 오면 대접한다.

주인과 손님 사이의 겸양의 절차를 거치기조차도 곤란할 정도로 식사를 대접하기가 정말 어렵거나 싫다면, 선약이 있다는 식으로 돌려 말하거나 손님 본인의 집이나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와 달라고 직접 표현한다. 부득이하게 같이 식사를 하지 못 할 경우는 최소한의 체면치레라도 하기 위해 손님을 데려온 사람에게 용돈이나 카드를 쥐어주며 둘이서 외식을 하도록 한다. 나이를 떠나 손님을 뻔히 집에 놔 두고 아무렇지 않게 자기들끼리만 식사를 하는 경우는 상식 밖의 일로 취급된다. 즉 대접하기 싫으면 아예 식사 전에 내보내버리거나 갈 때까지 안 먹고 버티지, 손님을 빼고 식사하진 않는다.

반대로 손님 입장에서도 주인이 자기 때문에 밥을 못 먹는 건 큰 결례로 여겨지기 때문에 빨리 자리를 비켜줘서 주인이 편하게 식사를 하게 하거나 주인의 제안을 수용해 함께 식사를 하든 한다. 어느 쪽이든 주인은 손님에게 식사 초청과 같은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이며, 손님이 상황에 맞게 이 성의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고 알맞게 행동하여 주인에게 폐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한국식 예절의 원리이다.

특히 공동체주의에 익숙하고 성장기에 굶주림을 경험한 60년대 이전 생의 중년이나 어르신 세대일수록 식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특히 어르신 세대에서는 손님이 오면 일단 밥상부터 차리고 그 다음 손님에게 식사를 권하는 것이 상식이고 나중에라도 다시 만나서 잊지 않고 답례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시골에는 이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어 멀리서 온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 가난하다는 티를 보이는 것이라며 큰 수치로 여긴다. 황석영 소설 <모랫말아이들>에서도 주인공이 찾아간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 손님을 굶길 수 없어 개떡을 건네는 부분이 나온다.

지금도 시골 어르신들의 경우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많이 대접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골에서 손님이 올 때 어르신들은 밥 많이 먹으라고 고봉밥을 내고 반찬을 많이 내놓고 대접하는 습관이 남아있다. 게다가 맛있는 것을 하면 부족해도 이웃 집에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29]

그리고 1960-80년대를 경험한 세대에게는 '뭘 이런 걸 다 차리십니까?'라는 손님과 '뭐. 이건 차린 밥상에다 수저 하나만 더 올리는 건데요.' 라는 집주인의 응대를 직간접적으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1960년대나 지금이나 "밥 먹었어?"나 " 식사는 하셨습니까?" 같은 표현이 의례적인 인사나 안부를 묻는 표현으로 쓰일 정도로 한국에서는 접대의 관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30]

과거 종가집의 경우도 접대의 관습을 중요하게 여겼고 종부의 기본이자 뼈대있는 전통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했다. 지금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종부는 항상 손님이 올 것을 가정하고 음식을 준비했고, 귀한 손님이 오면 그 지역과 그 가문만이 자랑하는 요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종부들의 경우, 시집오고 난 뒤 음식 배치부터 시부모에게 엄격하게 진행된 교육을 받았으며, 본인들도 그 가문의 전통을 시행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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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에서 취미를 즐기거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존재한 공간인 사랑방(舍廊房)

그리고 음식 접대 외에도 손님이 묵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안주인의 기본 덕목으로 꼽혔다. 예를 들어, 과거시험을 치러 가는 선비나 나그네를 거절하지 않고 받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가옥에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방도 따로 있었다.

물론, 사정상 밥을 주고 싶어도 정말로 준비가 안 된 경우는 있을 수도 있으나, 이런 경우에도 일단 식사 제안 정도는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손님도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식사 대접에 대한 주인의 의지가 강한 상황이라면 함께 배달 음식을 시켜서 먹거나 함께 외식을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한국의 경우 근대화 및 산업화, 도시화등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 사례이기에 이러한 '손님 접대' 문화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로 손꼽을 만 하다. 예를 들어, 21세기 초 기준으로 비교적 고연령층(예컨데 50~6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손님이 찾아오면 식사를 권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오히려 손님이 이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다소 무례하게 여겨지는 일인 경우가 많다. 접대의 관습의 논리에 따라 보면 주인이 식사를 권하는데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곧 '나는 당신에게 식사를 대접받을만큼 (당신과 함께 식사를 할 만큼) 당신과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다, 또는 그런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다'는 뉘앙스가 약간은 느껴지는 일이었던 것. 그래서 이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의 경우 손님이 거절하더라도 "그래도 한술 맛이라도 보시지요" 하고 두번세번 연거푸 권하는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이 세대의 관점에서는 손님이 식사 초대에 얼른 응하기보다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두세번 권유를 받으면 그제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예의바른 행동, 즉 겸양의 예를 보이는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또한 이는 먹을것이 부족하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사고방식에서 함부로 음식을 대접받는 것은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젊은 세대의 경우, 위의 세대에 비하면 '거절은 거절이다'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상대에게 식사를 권하기는 하지만, 상대가 이를 거절하면 그 사람은 지금 식사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니 굳이 두 번 세 번 강권하는 것을 오히려 (상대의 의향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으로 여긴다는 것. 역시 접대의 관습 논리에 따라 보면 이는 호의와 대접의 교환을 반복함으로써 서로의 우호적 관계를 확인하던 부족사회 이래의 관습이 가진 영향력이 약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고, 또 초대와 거절등의 의사표현을 교환하면서 상대가 얼마나 진심인가를 눈치껏 알아차려야 하는 예의범절을 '불필요한 허례허식'으로 느끼고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여하간 이 두 세대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는 종종 일종의 문화적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나이 든 이 입장에서는 "예의상 거절했더니 정말로 안 주냐? 요새 젊은이들은 정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젊은 이 입장에서는 "지금 배가 불러서 더 먹기 싫다는데 자꾸 억지로 먹으라고 하냐? 나이 많은 양반들은 정말 귀찮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왕왕 벌어진다는 것. 그나마 2020년대 정도면 문화적 세대교체가 제법 많이 진행된 상태인 것이고, 90년대~2000년대 초반 무렵에는 이런 충돌이 더 자주 벌어졌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사실 한국의 근대화(또는 도시화나 개인주의화) 이후 세대가 보이는 태도는 이전 시대 공동체주의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충분히 냉정하거나 무례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당장 한국 사회에서도 이로 인한 일종의 세대 간 문화 충돌이 분명 있었고, 한국의 고 연령층보다 더 손님 대접 문화를 중시하는 타 문화권에 속한 이들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더욱 냉혹비정하고 무례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한국의 신세대조차 최소한 손님이 오면 "같이 드실래요?"라고 물어보기라도 하지, 손님을 놔두고 자기들끼리만 식사하지는 않는다. 단지 상대가 거절하면 '거절은 언제나 거절을 의미한다'라고 받아들이고 그 한 번에서 의사교환을 마치는 것뿐이다.[31] 그러니 아예 손님에게 밥을 주지 않는 스웨덴의 문화가 개인주의적 문화의 관점에서도 대단히 특이하게 여겨질 만하다는 것.

5.1.1. 북한

북한에서도 정말 먹을 게 없는 경우에나 손님 대접을 못 하는 것이지 가능하다면 후하게 대접하려고 노력한다. 정말 밥을 줄 생각이 없는 경우에도 손님이 갈 때까지 밥을 안 먹고 있지 객을 두고 자기들끼리 먹는 경우는 없다. 미디어에서 외부인을 꺼리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문화적 특성이 아니라 감시원들에게 책잡히는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다.

감시요원이 한 패가 되거나 간혹 사석에서 만날 환경이 조성되는 등으로 감시에서 벗어나면 외부인에게는 외부세계에 대한 굉장한 호기심을 드러내거나 자신이 가진 것을 건네주기도 한다. 북한 사람끼리는 불법인 한류 콘텐츠를 접하는 수단 중 하나가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이기도 하며, 다른 노는 것으로는 음주가무 등의 것도 있다.

노동신문에는 '선조의 지극한 손님접대'를 예찬하는 보도가 있다. 북한 일부 지역에서는 그냥 지나다니던 거지의 일종인 '꽃제비'를 집에 초대해 먹을 것을 주었다던가[32], 남한에 정착한 경우 탈북민 어르신이 귤을 주었다는 경험담이 있다. # #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북한인 노동자들이 한국인 관광객을 만난 유튜브 영상이 보도되기도 했는데, 관광객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가정사 등을 묻고 나서 감기에 좋다며 생마늘을 주는 내용도 있다. # 여하튼 남한과 비교했을 때 끔찍하리만치 가난한 북한에서조차 손님을 대접하는 것만큼은 정말 어지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최대한 대접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5.2. 일본

일본에서는 애당초 친한 친구이거나 손님이 식사 시간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미리 통보하지 않고 불쑥 방문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금기이므로 그런 일 자체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33] 다만 주인의 초청이 있든 없든 혹은 그 시간대에 방문을 해야만 할 이런 이해할 만한 사유가 있든 없든 일단 식사 시간에 손님이 온다면 일단 손님에게 식사 초청을 하는 게 일본의 문화이다. 그리고 외국인 손님에 대해 대접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은 일본 문화에서 중요한 것이다.

다만, 스웨덴게이트는 갑작스럽게 불쑥 찾아간 게 아니라 '친구네 놀러가서 정신없이 같이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사 시간이 된 상황'에서도 밥 한 끼 안 준다는 것이 여러 국가 사람들을 경악(?)시킨 사안이다. 그리고 일본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손님이 알아서 눈치껏 돌아가거나 주인 쪽에서 눈치줘서 보내는 쪽이다. 즉 일본도 밥을 안 준다 쪽에 가까운 문화인데, 다만 스웨덴만큼 야박하지는 않다.

어쨌든 집안에 들어온 손님에게 식사 초청을 하지 않고 주인만 식사를 하는 것은 대놓고 "당신이 여기에 온 것이 반갑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겨 일단 주인이 식사에 초청하는 게 기본 소양으로 여겨진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상식적인 일본인들끼리라면 집주인이 " 오차즈케 한 그릇 어떠세요?"라거나 "곧 식사를 할 건데 함께 드시겠습니까?"라고 제안을 할 거고, 손님은 대충 사정을 눈치챈 후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든 눈치껏 사양하고 자리를 피해 줄 것이다.[34]

다만 저렇게 자리를 피한 후 집에 돌아가거나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제때 식사를 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먼 지역에서 왔거나 아예 외국인 손님인 경우 등 다른 방법으로 식사를 해결하기 힘든 경우라면, 집에 방문한 이상 한 끼 정도는 대접해서 돌려보내는 걸 예의라고 여기는 경향이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강하게 존재한다. 때문에 손님이 거절한 게 아닌 한, 외지나 외국에서 온 손님에게 식사 대접도 안 하는 것은 일본인 사이에서도 결례로 여겨진다. 이 점이 스웨덴과 다른 점으로서, 스웨덴은 이 상황에서도 밥을 안 주고 그래서 세계 여러나라가 수군거리는 지경까지 오게 된 것.

일본은 다른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에 비해서도 '겸양의 미덕'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주인이 식사를 권했을 때 손님이 이를 곧바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화권 출신이 아닌 이상 결례로 여겨진다. 옛날 한국과 같이 주인의 식사 초청을 두세 번 정도 거절하고 서너 번째 요청에 "정 그렇게 요청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한 술 뜨겠습니다."라며 주인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형태가 일본에서는 식사 초청과 관련한 겸양의 모범으로 꼽힌다.

또한 일본에서도 어쨌든 방문한 손님에게 식사 외에 다과 과일로 이뤄진 간식 상을 내주는 게 손님 대접의 정석으로 여겨진다. 하다 못해 음료 한 잔 정도는 내주는 것이 일본에서도 기본적인 예의로 여겨지며, 방문한 손님에게 간식은커녕 음료 한 잔조차 안 내주는 건 일본 사회에서도 주인으로서 접대의 예절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각잡고 식사하는 건 손님이 먼저 눈치껏 돌아가는 문화지만, 차만큼은 어떤 상황이든 무조건 내주는 게 예의이다.[35] 일본 미디어에서 '들어오면 차 정도는 내주겠다' 라는 식의 대사를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대에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거나 특별히 중대한 사유 없이 방문하는 것이 매우 큰 결례이고 손님이 집주인의 식사 자리에 끼는 상황을 가급적 피하지만, 최소한 대놓고 식사에서 소외시키는 모양새는 피하는 거나, 멀리서 온 손님을 굶기는 건 피하고, 집안에 들인 손님의 입을 심심하게 하는 걸 결례로 여긴다는 점에서 영국과 비슷하다.

표주록과 같은 기록을 보면 지금은 일본에 거의 흡수된 아이누족들 역시 음식을 내 줬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요약하자면 영국과 비슷하게 대접을 하는 국가와 안 하는 국가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3. 중화권 화교

요리 문화가 발달한 중화권 화교 사회에서도 음식을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준비해야 예의있다고 여기고, 손님이 접시를 다 비울 정도로 음식을 다 먹으면 주인 입장에서는 '대접을 넉넉히 못해줬구나.'라고 미안해하기 때문에 손님이 식사를 한 숟가락 정도 남기는 문화가 있다.

5.3.1. 중국

현대 중국에서 최악의 시기였던 대약진 운동 시기에 공산당 간부가 방문하자 집에 딱 한 줌 있던 국수를 삶아 대접하려 한 케이스가 있었다. # 당 간부가 "지금 그걸 삶으면 내일 여러분이 먹을 것이 없을 테니 물에 소금만 쳐달라"고 해서 소금 끓인 물만 내긴 했지만, 내일 굶게 될 것을 알면서도 오늘 손님을 대접하려 했으니 먹을 게 부족해서 접대를 못한다는 주장에 훌륭한 반례가 되어준다.

심지어 1840년 영국군이 쳐들어와 중국인들을 상대로 살육을 저질렀던 아편전쟁 무렵에도 중국 청나라 관리들은 영국군한테 푸짐한 양의 식사를 대접했고, 그래서 영국군 병사들은 고향에 보내는 편지에다 "중국인들이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내주어서 그것들을 다 먹느라 힘들다."라고 토로할 정도였다.[36] 다만 이는 청나라 관리들이 영국군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외국인을 굶기면 자신들의 체면이 깎인다고 여겨서였다. 비슷한 예로 신미양요 무렵에도 조선 관리가 미군들한테 "비록 당신들이 침략자이기는 하지만, 먼 곳에서 오느라 무척이나 배가 고플 테니 우리가 성대하게 음식을 대접하겠다."라면서 소와 돼지와 닭 수백 마리에 달걀 1만 개를 내주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중국인에게 한국인이 초대받았을 때 주인이 대접한 음식을 손님이 남기는 것은 무례한 짓으로 여기는 문화의 한국인은 끝까지 먹으려 하고, 반대로 손님이 음식을 남길 정도로 풍족하게 대접하는 걸 예의로 여기는 문화의 중국인은 음식을 남길 때까지 계속 음식을 퍼주더라는 문화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웃긴 경험담들이 많다.

다만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이 늘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중국에서도 한국처럼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을 예의로 여기는 식으로 점차 인식이 바뀌고 있다.

5.3.2. 대만, 홍콩/ 마카오, 화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양안삼지인 홍콩, 포르투갈 지배로 남부 유럽 영향이 강한 마카오, 및 영국 통치를 받고 화교가 많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일본, 미국의 영향을 받은 대만에서는 중국 대륙과는 약간 차이가 있고 더치 페이를 선호하지만 집에 초대하면 푸짐하게 차려 먹고, 외식하더라도 비싼 음식을 대접하려는 문화가 남아있다.

대만의 경우 중화권 전통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손님이 초대를 받으면 상을 최대한 성대하게 차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중국 대륙과 같이 남기는 것에 대해 풍족하게 접대했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고 일본과 같이 더치 페이로 결제하는 문화가 있지만,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하고 외식하더라도 비싼 음식으로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37]

홍콩 마카오 등 유럽인 통치를 받은 양안삼지 중화권 및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싱가포르인 등 영국 통치 영향을 받은 동남아 화예들의 경우도 대만이나 영국, 포르투갈과 비슷하다. 이들은 손님이 특별한 이유 없이 식사하는 것을 곱게 보지는 않고 식사 전에 손님이 나가야 하는 것은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사 시간에 자기 가족만 먹지는 않는다. 마카오는 되려 남부 유럽의 영향으로 요리가 집안의 얼굴이라 여기는지라 푸짐하게 접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애초 집에서 식사하지 못할 상황이면 외식하는 것을 선호한다.

5.4. 아랍권 및 이스라엘

아랍권은 유목문화, 그리고 부족주의 문화의 특성이 짙게 남아있고 아라비아 반도 유목 부족들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슬람도 전통적으로 손님 대접을 중시한 바 있다.

이슬람의 6대 의무 중에는 빈자와 외지인에게 베푸는 희사가 포함되어 있고 특히 라마단에 아랍 및 이슬람 지역을 방문한다면 낮에는 쫄쫄 굶을지언정 저녁에는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대접받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 사막을 유랑하던 유목민들은 일족 단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립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런 유목민족들 입장에서 부족에 찾아오는 손님의 존재는 다른 지방이나 근방의 정세를 알려줄 수 있는 훌륭한 정보원이었다. 그러니 이들을 맞이하는 유목민들은 이들에게 호의를 사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정보원들이 다른 정보원들에게 자신이 어디서 융숭하게 대접받았다는 입소문을 통해 일족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손님에게 대접을 후하게 해줘야 했다.

이러한 전통은 유목민족 문화가 많이 사라진 현재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어 아랍 지역 시골에서는 손님이 방문하면 일단 집에서 키우던 양이나 염소 한 마리 잡고 양고기나 염소고기 요리를 대접하는 집들도 더러 존재한다. 아랍권은 '손님이 음식을 남길 정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손님을 굶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 안건에 대해서 아랍 및 무슬림, 혹은 해당 지역을 방문했던 네티즌들이 썰을 신나게 푸는 중이다. 여기서는 심지어 인구 조사원에게도 대접을 하려는 경우가 많아서 자제를 요구하는 공익광고까지 나왔을 정도이다.

이게 단순히 뇌물수수 같은 게 문제인 게 아니고 조사원들 입장에서도 직접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인구 조사를 해야 하는 조사원 입장으로서는 가는 곳마다 일일이 대접을 받을 수 없는 노릇인데, 조사원을 들이는 집에서야 조사원 한 명에게만 대접을 하면 되는 일이지만, 조사원 입장에서는 가는 집마다 계속 음식을 받아먹다간 위장이 못 버티는데 예의상 딱 잘라 거절하기도 껄끄럽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도 인구조사나 도시가스 검침, 에어컨 설치나 유선 수리 등으로 집을 찾는 이에게 의례상 커피 한 잔 정도는 권하는 것이 예의로 여겨지지만, 아랍권은 그걸 넘어 식사를 푸짐하게 차려주는 게 문제. 당연히 가는 집마다 이렇게 대접받다 보면 식고문이 따로 없다.

아랍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이슬람의 영향이 강한 이란 등지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같은 셈족인 유대인 또한 '노랭이'라는 소리를 듣긴 해도 접대할 때도 노랭이처럼 굴지는 않는다. 당장 구약 성경만 보더라도 주인이 접대의 관습을 철저히 지켜 손님을 대접하는 장면이 여러 군데에서 등장한다. 특히 손님을 내놓으라는 폭도들에게 자신의 두 딸을 내줘서라도 손님을 지키려고 했던 롯의 소돔 고모라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점은 현대도 유효하다.

스웨덴게이트 관련 레딧 코멘트를 보면, 팔레스타인 출신 무슬림 수리 기사가 하레디 일가가 사는 집에 가구 수리를 위해 찾아오자 하레디들이 눈으로는 욕하면서도 차와 다과를 제공하고 나중에는 한 끼 식사도 하고 가라고 권유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수리 기사 또한 이들이 고까운 것은 매한가지라 정중히 거절하긴 했지만, 그 극단적인 꼴통 근본주의자인 하레디들이 앙숙인 무슬림에게 저런 말을 했다는 점에서 중동 문화에서 접대의 관습이 얼마나 중요시되는지 알 수 있다.

5.5. 몽골, 중앙아시아

아랍권과 마찬가지로 유목민족의 후손인 이 쪽 나라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손님은 당연히 배불리 먹이고 보내야 한다는 문화가 기본 전제로 깔려있다.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여행자의 유튜브나 블로그들을 보면 수많은 경험담이 나타난다. 특히 몽골에서는 게르에 살고 있는 유목민을 방문했을 때 좀 나이 든 현지분들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마유주를 엄청나게 권한다.

5.6. 기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접대를 안 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가난하다고 해도 일단 사람이 살아가는 이상 당장 먹을 밥은 있다는 이야기고, 손님에게 그 일부를 떼어 대접하는 건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할 도리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조차 못 하는 상황이라면 심한 재난으로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지경에 떨어졌을 때 정도다.

아시아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네팔에도 이 밈의 출처가 되는 글에서는 접대란 당연하며, 아시아 전체가 이럴 것이라는 댓글이 있다.

심지어는 전쟁 중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사람조차도 "구 소련과 전쟁 중일 때도 나지불라 정부군, 탈레반과 내전 중일 때도 집에 먹을 것이 오래된 빵과 요거트밖에 없을 때에도, 손님 접대는 제대로 했다."라면서 "스웨덴은 척박하고 가난했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생겼을 거다."라는 스웨덴 사람의 주장에 대한 반박 댓글을 올려서 더욱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기서 "오래된 빵과 요거트밖에 없다"는 말은 한국식으로 치환하면 "쉰 밥에 김치밖에 없다"와 거의 동급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고 치안이 위험하기로 소문난 소말리아, 말라위[38], 부룬디, 그래도 가난하지만 위 세 나라들보다 국가 사정이 훨씬 좋은 르완다 등지에서도 접대의 관습이 있다고 안내되거나 실제 접대에 대한 자국민 및 외국인 관광객들의 경험담이 존재한다.

부룬디는 2022년 IMF 통계 기준 세계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나라인데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친밀함을 중시하는 관념에서 우갈리 염소고기 등으로 접대를 하며, 동아프리카 전체에서 이런 관습이 있다고 한다.

5.7. 영어권

기본적으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연방 국가들이나 미국, 아일랜드에서도 특별한 이유 없이 미리 통보하지 않고 식사 시간에 오는 것을 큰 결례로 여긴다.

그렇지만 그렇게 방문한 손님에게도 일단 식사 제의를 하는 것이 영연방 국가들이나 미국, 아일랜드에서도 예의라고 여겨진다. 물론 식사 제안을 받은 손님이 주인과 가족이거나 정말 친하지 않는 이상 바쁘다는 핑계로 빨리 자리를 떠나는 것이 예의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같이 식사하는 것도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영어권도 최소한의 식사 대접 문화는 존재하고, 더 나아가 최대한의 환대로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지역도 존재하기 때문에 손님에게 아예 식사 제안조차 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주류다.

5.7.1. 영국, 영연방[39]

영국인, 캐나다인, 호주인, 뉴질랜드인들에게는 홍차를 대접하는 것은 손님 대접의 기본이며 일단 손님이 방문하면 그 손님이 목적 없이 방문한 손님이라도 아예 모르지 않는 한 금방 떠날 사람이라도 홍차 한 잔에 비스킷 한 조각 정도는 차려내는 것을 예의로 여긴다.[40]

그리고 영국인, 캐나다인, 호주인, 뉴질랜드인들은 약속을 잡은 손님에 대해서는 최대한 대접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애프터눈 티 로스트 디너 등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요리를 하거나 하다못해 외식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5.7.2.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경우 손님에 대해 환대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대도시는 덜하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손님에게 적어도 정도는 대접하는 문화가 있고 약속을 잡은 손님에게는 최대한 대접하려는 문화를 갖고 있다.

아일랜드식 가톨릭 문화에 따르면 손님들은 예수님의 다른 모습이며 손님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것은 주님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며 종교적인 원죄로 여기는 문화가 있었고, 서구 사회에서도 공동체주의적인 특성이 강했다.[41]

그리고 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대기근 전에도 그랬지만 농촌에서는 굶주리는 시기가 많았고, 한국과 비슷하게 배가 고픈 손님이 있으면 대접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가족 구성원이 형편이 나쁜 친척을 도와주는 것이 당연했었다.

심지어 아일랜드 대기근 시기에도 손님들이 오면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물론 그 때는 아일랜드인들이 견딜 수 없이 굶주리다보니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형편이 좋아지자 다시 전통적인 풍습이 복원되었다.

5.7.3. 미국

미국은 지역마다 다른데, 북동부와 중부 그리고 서부의 경우 홍차가 커피로 바뀌고 손님을 위해 좀 더 풍성하게 상을 차려내는 정도를 제외하면 영국 영연방 국가들, 아일랜드와 대체로 비슷하다. 딱히 환대를 하지는 않지만, 식사나 간식 제안조차 않는 건 예의에 어긋난 수준의 푸대접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남부의 경우 특유의 복음주의 개신교 문화와 대단위 농경 문화가 결합하여 손님에 대한 환대를 중요한 미덕[42]으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남부의 환대(Southern hospitality)라 칭해지는 이 정서 아래 일단 손님이 온다면 무조건 맛있는 가정 요리들을 식탁 가득 풍성하게 차려내야 하며 주인으로서 손님이 심심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43]

그래서 "손님[44]으로서'' 혹은 "이웃으로서", "친구"나 "지인"으로써 미국 남부의 가정을 방문한다면 배고플 일과 할 게 없어서 어색할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결론적으로 최소한 자식 친구 정도 되는 손님이 미국 남부의 가정에서 먹을 거로 푸대접 받았다고 생각할 일은 거의 없다.

결국 공통점으로 미국도 지역불문 서로 누군지 아는 지인들, 친한 친구, 자식의 친구가 초대받을 경우 사정이 없는 이상 간식이나 식사 등을 당연히 준비하여 대접한다. 미국, 캐나다 북미권 할로윈 사탕 등 간식을 나누기,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나 자선 행사 봉사활동 등이 빈번하게 있을 정도로 선행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먹을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애초에 접대 문화뿐만 아니라 식문화, 놀고 춤추고 음악 같은 향락 문화 자체가 전반적으로 남부가 많이 두드러진 지방이지 나머지 미국이라고 딱히 손님 박대하는 건 아니다. 어딜 가나 손님을 박대하는 것은 미국에서도 비판받을 행동들이다.

애초 스웨덴의 이러한 관습에 이상하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스웨덴게이트라는 온라인 반응이 크게 확산되는 발단을 제공한 주체는 미국인들이었다. ' 레딧(Reddit)'이 발단이 되어 퍼진 것이다. 특히 집에 놀러온 아이에게조차도 먹을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에 미국인들이 경악했다. #

5.8. 유럽

5.8.1. 서유럽[45], 남유럽

어느 정도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같은 유럽권인 서유럽, 남유럽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관습이라 오죽했으면 '옛날 로마 제국 영역 밖 외지에서는 저랬느냐'는 비판까지도 나올 정도다.[46]

벨기에,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도 식사 시간대에 상대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결례로 여기며,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걸 아주 반기지는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식 친구 되는 사람만 빼고 식사하는 일은 없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도이칠란트(독일) 편에서도 '식사 시간에 초대 없이 찾아오는 것 자체를 무례한 행동으로 여기기는 하지만, 집주인 쪽에서 식사를 함께 하자고 제안은 한다'라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유럽인들도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식사 시간대에 방문하더라도 방문에 대해 사과한 뒤 집주인의 식사 초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빨리 볼 일 보고 나가주는 걸 예의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손님이 어쩔 수 없는 사유로 식사를 해야 할 때는 식사 초청을 받아들여 식사를 해도 되며, 이런 식사 초청을 받아들여 갑작스런 식사를 하는 게 유럽인들에게 기본적으로 결례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기 집 밖에서 제때에 적절한 식사를 하기 힘든 먼 외지나 외국에서 온 손님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해하기는 하지만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살짝 차이가 있긴 한데,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 편에 따르면 프랑스 남유럽 국가들에서는 거절 안 하고 덥석 받으면 예의가 아니니 몇 번 거절해야 예의지만,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식사를 거절하면 진짜로 안 먹고 싶은가보다 하고 식사를 안 준다고 한다.

그래도 프랑스 남유럽 국가들에 비해 약간 쌀쌀맞아 보일 수는 있어도 일단 방문한 손님에게 식사 여부를 묻긴 한다. 그리고 식사를 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사람들에게는 식사를 제공하거나 집에서 요리할 환경이 안 되면 외식하러 가서 음식을 대접해주기도 한다.

최소한 식사를 할 것인지의 여부는 물어본다는 뜻이다. 물어보지조차 않는 스웨덴과는 다르다. 스웨덴의 정서는 독일의 정서가 훨씬 강화되어서 식사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면 원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식사를 주지 않아야 예의라고 여기게 된 듯하다. 식사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므로 식사를 주면 실례이고 식사를 안 줘야 예의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때문에 스웨덴의 모습은 이런 유럽권 문화 내에서 보기에도 이상한 문화이다. 물론 이들도 식사 시간대에 방문하는 거나 타인이 자기 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꺼리며, 손님으로서 주인의 식사 초청을 정중히 거절하는 걸 예의로 여기기는 한다.

그런데 이들이 충격을 받은 부분은 '형식상의 식사 초청도 없이 손님을 제외하고 가족들끼리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유럽 국가에서는 식사 전에 미리 손님을 보내기는 하지만 식사하더라도 최소한 같이 먹는다는 점에서 스웨덴과 정반대다. 요컨대 손님에게 최대한 잘해줘야 한다는 인식까진 없지만, 최소한은 해줘야 한다는 인식은 있다.

남유럽 국가[47]들이나 프랑스는 손님 접대 관습이 매우 강한 편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일단 이 지역 나라들에서는 손님 대접을 극진히 하기로 유명하다.

해당 문화권에서는 손님 접대 문화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문화이며, 사전 통보 없이 온 손님이더라도 일단 손님이고, 손님이 만족할 정도로 대접하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과 집안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 손님이 오면 미리 준비하는 문화가 있고 손님이 먹는 음식이 한 가정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리, 주류 등에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손님이 주인의 요리에 대해 칭찬하면 다음에 초대하거나 더 좋은 요리를 대접하려고 한다.
5.8.1.1. 그리스 튀르키예
5.8.1.1.1. 튀르키예
튀르키예의 경우 좀 특이하다. 유목 문화와 손님에게 후한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서구화와 산업화를 거하게 거친 터라 개인주의 문화도 있어서 일단 방문자를 집안에 들여놓은 이상 차이, 커피나 물이라도 한 잔 대접하고 보내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잠깐 지나가는 인연이나 모르는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경우는 시골이 아닌 이상 흔하지 않다.

이스탄불 등 서부 지역과 서부 지역 외의 지역의 관례가 다르다. 이스탄불의 경우 외국인도 많고 유럽식 사고방식이 내재된 반면 튀르키예의 수도인 앙카라를 비롯한 아나톨리아 반도 내륙 지방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문화가 남아있다.

특히 튀르키예는 많이 먹는 것이 남성적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식사 때 음식을 더 받기 원하지 않는다면 '도이둠(doydum, '배가 부릅니다.')' 같은 표현은 배워둬야 할 정도이다. 아다나 가지안테프와 같은 남부 도시나 농촌 지역은 그야말로 우리의 여수시 포지션으로, 주의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지는 차림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거나,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정도의 대접은 한다. 튀르키예에서는 처음 만난 사이라도 금방 친해져서 마음에 들거나하면 잠깐 들르더라도 거하게 대접하는 전통이 남아있다.
5.8.1.1.2. 그리스
오랫동안 부대껴온 그리스도 손님 대접은 튀르키예와 비슷하다. 오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문화가 존재하며, 그리스어와 튀르키예어로 각각 φιλοξενία (필록세니아), misafirperver (미사피르페르베르)는 이방인(ξένος, misafir)을 좋아하다(φίλος, perver)가 합쳐진 표현으로 "환대"를 의미하며 양국 모두에서 중요시되는 미덕이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최고신인 제우스가 이 필록세니아를 관장하는 신이었을 정도.

5.8.2. 동유럽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도 남유럽만큼 살갑진 않아도 기분에 따라 손님을 불시에 예정에 없이 초대하기도 하고, 일단 초대한 손님은 한 상 차려 주는 게 기본이다. 과거 중세부터 손님한테는 '빵과 소금'을 대접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고, 이는 소련 시절에도 철저히 지켜져서 전승절 행사 퍼레이드에서도 전통 복장을 한 소녀들이 커다랗고 둥근 빵에 소금을 쌓아 행진하는 모습은 항상 등장했고, 러시아가 된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심지어 국제우주정거장에서도 이걸 지키고 있을 정도이다.

불가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등 남동유럽 국가들과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와 같은 중동부 유럽 국가들도 동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같이 접대를 해야한다는 관습이 남아있다. 특히 이들 국가는 아무리 가난해도 스프 정도는 길손에게라도 대접해야 한다는 문화가 강하다.[48]
5.8.2.1. 발트 3국
동유럽, 북유럽, 독일 가톨릭 + 루터교[49]의 문화가 혼재된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른데, 여기는 소비에트 연방 시대를 거치면서 동유럽과 러시아에 가까운 접대의 관습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리투아니아의 경우에는 정교회보다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가톨릭이 인구의 대다수이기 때문에, 리투아니아에서 손님으로서 초대를 받게 된다면 정말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1990년 구소련 독립 이후 지어지는 집에는 손님이 묵고 가는 사랑방을 짓는 것이 필수로 여겨지는 수준이다.

5.8.3. 북유럽 & 네덜란드

스웨덴과 가장 가까운 북유럽인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핀란드, 아이슬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네덜란드에도 거의 같은 문화가 존재한다.[50] 사실은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의 보편적인 문화이다. 스웨덴을 포함하여 노르딕 국가들에서는 일반적인 관습임이 알려졌다.

핀란드에 거주하는 한국-핀란드 커플의 영상, 스웨덴&핀란드에 오래 거주한 한국인의 증언으로도 핀란드 역시 사실상 같은 문화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핀란드인들 스스로도 "핀란드 가정에 초대받으면 커피 이상의 것을 바라지 마라"고 자조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트위터에서는 오세요 핀란드 계정이 유명했는데, 한국인 핀란드에 정착했다가 냉담하고 우울한 날씨와 문화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다가 2018년 결국 자신이 시들어져 간다는 얘기만 남긴 채 글 쓰는 걸 중단한 계정이다.[51] 해당 계정을 보면 개인주의가 강하고 타인에게 냉담한 북유럽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네덜란드 역시 노르딕 국가는 아니지만 ' 더치 페이'라는 유명한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에서는 구두쇠들이 많고 접대가 인색한 편이라는 스테레오 타입 이미지가 있다. 벨기에 네티즌이 네덜란드인 직장 동료를 차에 태워주려고 그 집에 들렀다가 커피 한 잔을 대접받았다가 다음날 커피값을 청구당한 일이 있다는 경험담을 남기기도 했다. 네덜란드와 베네룩스로 묶이는 벨기에인조차도 경악한 케이스이다.[52]

6. 언론 보도

6.1. 진정세

시작은 그저 인터넷 유머 정도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이슈가 커지며 각종 언론에서까지 다루고, 나아가 이 문화를 가지고 스웨덴의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너무 심하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특히 인터넷에 퍼진 스웨덴 대접 문화에는 부풀려진 부분이 많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문화인가?' 문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스웨덴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 것은 맞지만 진짜 모든 손님에게 그러는 것은 아니다. 미리 말하고 오는 손님, 하루 이상 묵어가는 손님 등 밥을 줄 만한 상황에서는 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접을 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다소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몇 개의 특수 사례일 뿐이다. 대한민국에도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 가정도 있을 텐데, 이런 사람이 인터넷에 자기네 가정 이야기를 올렸다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식사 대접을 안 했다고 해석할 것인가?

물론 이것만으로도 인류의 보편적인 관습에 위배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스웨덴 내부에서도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어느 정도 변화의 모양새가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스웨덴인들을 마냥 야박하다고 짚고 넘어가기는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인터넷 트렌드와 마찬가지로 주요 관심사에서 벗어났다.

7. 기타

  • 스웨덴게이트 논란에 대해 전세계 네티즌들이 놀라워한 이유 중의 하나는 막상 스웨덴인들은 외국인의 집에서 잘만 얻어먹고 오면서 정작 대접을 안 한다는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스웨덴에서 외국인들에게 음식 대접을 받는 스웨덴인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중적이라고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증언들을 보면 스웨덴인들은 자신이 외국인에게 음식을 대접받는 것을 문화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부담스러워 하며, 만약 음식 대접을 받게 된다면 수고비를 십시일반 모아서 주인에게 줄 정도로 어색해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스웨덴인이 외국인 집에 갈 때는 갑자기 180도 생각을 뒤집어 마음껏 얻어먹고 온다는 해석은 옳지 않다. 외국에 이민했거나 외국인들과 교류 경험이 많은 스웨덴인에 한해서만 음식을 대접받고 대접하는 문화가 익숙하며, 대부분의 스웨덴인들은 익숙하지 않은 문화이기 때문에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 이 논란이 일어난 뒤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공포 영화 미드소마에서 스웨덴인들이 자국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 손님들에게 호화스러운 만찬을 대접하는 장면이 재조명되었다. 다른 나라 관객들은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외국 손님 접대 장면으로 봤지만, 스웨덴인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고 다르게 해석하여 이미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마을이며 복선을 직감했을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올라왔다. 링크 1, 링크 2 실제로 스웨덴인들은 미드소마를 흥미롭게 봤다는 반응이 많았다. 다만 이 영화의 감독인 아리 애스터는 스웨덴과 접점이 없는 유대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복선을 깔아 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엄밀히 따지면 영화 속 스웨덴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9일 연속으로 계속되는 축제 기간 동안 숙식하는 손님이고, 축제 참여를 위해서 비행기까지 타고 가자고 제의할 정도로 스웨덴인 측에서 먼저 초청한 손님들이기에 스웨덴인들의 해명처럼 스웨덴 문화로도 당연히 식사를 대접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스웨덴인들이 흥미롭게 봤다는 것은 단순히 자국을 배경으로 하고 실존하는 명절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라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 팔방이라는 명랑만화에서 새숙이가 아빠가 피자를 사왔다는 전화를 받고 팔방이랑 집으로 갔는데 정작 팔방이는 들여보내주지 않은 에피소드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다만 이 만화도 스웨덴게이트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데, 새숙이가 팔방이를 초대한 것도 아니고 새숙이 아빠가 팔방이를 데려오라고 한 것도 아니며 팔방이가 새숙이 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새숙이는 그냥 아빠가 피자 시켰다는 말을 팔방이한테 말한 것뿐이고, 팔방이가 멋대로 새숙이를 따라간 것뿐이니까. 그러나 이 에피소드도 연재 당시 시점으로 보면 현재와는 관점이 다르다.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저처럼 자녀의 친구가 놀러왔을 경우 돌려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즉 저런 시추에이션 자체가 명랑만화 소재가 될 정도로 비일상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21세기에도 자기 아이 친구가 예고없이 집에 놀러와도 밥먹여 보내는 경우는 한국에서 흔하다.[54]
    파일:attachment/palbang01.jpg
  • 2025학년도 9월 모의평가 사회문화 11번 문제에 <보기> 소재로 나왔다. #

8. 관련 문서



[1] 한국 커뮤니티발 용어가 아닌,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전 세계 네티즌들이 이 논란을 부르는 명칭이다. 해당 논란에 대한 해시태그인데, 워낙 많이 해시태그되다 보니 해당 논란을 대표하게 되었다. [2] 내전 중인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에서도 손님을 대접한다고 디스하고 오월관계 저리가라 할 정도로 국민감정이 최악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이 합심해서 디스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3] 한국인 남자친구가 스웨덴 여자친구네 집에서 아무 조건없이 자유롭게 먹고 잤다는 증언과 한국 남편이 스웨덴 장인장모의 집에서 자유롭게 생활했다는 증언도 올라왔지만, 스웨덴 문화에서는 사귀는 단계에서부터 남이 아니라 사실상 가족으로 여겨지기에 이런 경우는 예외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4] 서구권의 오래 먹을 수 있는 저장 음식으로 , 위스키 등이 있다. [5] 이는 언제나 남길 정도로 넘치게 차리며 냉장고에 반찬을 미리 만들어두고 꺼내먹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반대된다. [6] 스웨덴은 네오나치 문제를 겪고있는 국가다. [7] 상술되었듯 스웨덴인들도 이 논란이 터지자 애써 나서며 변명을 하는 등, 자신들도 이런 문화가 있다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8] 다만 서양권 국가 내에서도 팁문화와 거리가 먼 사회를 이루는 곳들이 있기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로 단정적 귀결은 곤란하다. [9] 당장 홍콩이나 중국 도시권 생활상을 봐도 주택난으로 인해 집이 좁고 요리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외식 및 배달 문화가 발달해 있으며, 집에 스스럼없이 손님을 들이고 뭔가를 대접하는 일이 흔치 않다. 이는 홍콩 같은 곳보단 덜하긴 하지만 서울 등의 한국 도시생활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도 손님이 오면 최소한 주전부리나 배달음식이라도 대접한다. [10] 애초에 계획되지 않은 방문이더라도 서로의 집에 갈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친분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11] 예컨대,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는 갑자기 찾아와 라이오넬 로그네 집 부엌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왕비에게 로그 부인이 "혹시... 전하께서는 저녁 식사를 같이하실까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물론 왕비 측에서 알아서 정중히 거절한다. [12] 미국, 아시아, 중동, 유럽 등 지역을 막론하고 상대방과 친할 마음이 없다면 상대방 집에 가지도 않고 상대방의 집에 오라고 하지도 않는다. [13] 워싱턴포스트에 스웨덴 출신 사람이 "스웨덴 부모들도 미국처럼 다른 집 아이들을 픽업해오고 식사도 함께한다"며 "논란이 된 관습이 지금 일어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계획된 방문(계획되지 않았으면 픽업을 안했을 것이므로)에 해당하는 부분이어서 계획되지 않은 방문에 대한 진술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14] 그리고 이 일화로 아무리 귀신처럼 여겨도 일단 손님에게 밥은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진짜 귀신같은 초자연적 존재들에게도 밥을 주려고 시도했던 흔적들이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게 바로 제사이다. [15] 예를 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손님 대접 안 하고 산다면 당장 들어오는 손님이 서방 민간인인지, 미군 스파이인지, 그냥 지나가던 행인인지, 탈레반인지 어떻게 알 것이며 본인들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대접하냐는 반론이 제기됐을 것이다. 물론 예시는 예시일 뿐이고 아프간도 손님 대접 잘 해주는 나라다. 심지어 미군을 손님으로 받아들여 정중하게 대접한 사례가 있다. [16] 특히 복지 제도가 여전히 부족한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스웨덴의 선진 복지 제도를 동경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스웨덴의 복지는 높은 소득만큼이나 높은 세율의 대가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워하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다과 정도는 대접하거나, 혹은 정중히 말을 돌려서 식사 시간에 예고 없이 방문하는 것은 무례하다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 보편적인 예의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접대의 관습은 주인이 손님에게 행하는 것이다. 손님이 진상이라면 접대에 차별을 둠으로서 거절하는것도 가능하다. [18] 영국 요리에 대한 증언에서도 영국인 가정에 초대받아 음식을 대접받은 일화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영국 요리가 맛이 없다고 깔지언정 그 집에 당사자가 이런 맛 없는 걸 내놓았냐고 화를 내거나 뭐라 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집안의 일원들이 일상적으로 먹던 걸 내놓은, 적어도 손님에게 동등한 대접을 하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19] 당장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은 모든 신들을 통솔하는 최고신이면서도 동시에 방랑자의 신이기 때문에 추레한 거지의 모습을 하고 지상에 나타난다고 묘사된다. 그래서 바이킹들은 손님이 설령 거지꼴의 방랑자더라도 후하게 대접하였다. 이는 바이킹들의 종교와 문화에서 손님을 차별 없이 대우하는 것이 신에게 바치는 공경의 일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20] 사실 접대의 관습은 상당히 중대한 사항이기 때문에, 웬만한 신화에서 접대의 관습을 담당하는 신은 그 신화의 주신이거나 주신의 종속신인 경우가 많다. 여기 나온 오딘의 경우 외에도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 아폴로, 헤르메스 같은 주요 신이 접대의 관습과 관련하여 나오고 성경에서도 소돔과 고모라에서 룻과 천사들의 이야기도 접대의 관습과 관련되어 있다. [21] <대차대조적이 아닌 선제적 호혜>가 무슨 뜻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한국의 부조금 문화를 생각해보면 된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먼저 받은 이가 나중에 상대가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자신이 받은 것에 상응할 만큼 '돌려주지' 않을 경우, 이는 대단한 무례로 여겨져 서로의 관계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뿐 아니라 보답하지 않은 쪽의 사회적 체면 역시 크게 실추시킬만한 일로 여겨진다. 즉 한국의 부조금 문화는 명백히 상호적인 증여-답례 문화이다. 하지만 이것이 대차대조적이지는 않다는 것은, 예를 들어 자식 결혼식에 축의금을 주고받는 지인 사이에서 이쪽은 자식이 하나고 저쪽은 셋이라고 해서 저쪽이 이쪽에 한 번에 세 배의 축의금을 내야 한다거나, 반대로 이쪽은 저쪽에 첫째 자식의 결혼에만 축의하고 그 다음부터는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각각의 당사자 사이에 일일히 계산을 맞추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외에도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된 시점에서 한 쪽은 부모님 중 한 분이 이미 돌아가셨지만 다른 쪽은 두 분이 모두 살아계실 경우와 같이, 부조의 대차대조표가 불균형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즉 사회라는 집단 전체에서 각 구성원들은 부조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내고, 받을 일이 있으면 받는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낸 것보다 많이 받고, 다른 사람은 받은 것보다 많이 낼 수 있지만 이는 복불복일 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 사람이 문화적 규범을 깨트린 것이 아닌 한) 딱히 따질 문제가 아니다. 손님을 환대하는 것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든 손님이 왔을 때는 그 손님을 대접해야 하고, 반대로 자신이 손님으로 갔을 때는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니 지금 만난 집주인과 손님간에 일대일로 대차대조 손익계산이 딱 맞아 합의되어야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22] 즉, 타인이 보기에는 선물을 받았는데 답례를 하지 '않은'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상대의 평판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또는 답례를 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주변에서 뻔히 안다고 해도, 한 쪽은 선물을 줄 수 있는데 다른 쪽은 그에 상응하는 답례를 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준 쪽'이 '받은 쪽'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모욕(깔아뭉개기)로 작용하는 것이다. [23] 한 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선물을 '하사하는' 관계가 되므로, 주는 쪽이 받는 쪽보다 서열상 우위에 있음이 공공연히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받는 쪽이 이 관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상대에게 굴복한다는 의미가 된다. 개인간의 관계에 단순하게 적용해 보자면 '내가 준 무기에 대한 답례를 하지 못했으니 그것을 보수로 받은 셈 치고 내 밑으로 들어와라'라는 식으로 상대를 찍어누를 수 있는 것. 물론 부족 사회 기준으로 보면 좋은 무기 따위를 보수로 받고 상대의 부하( 하우스칼 등)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는 대부분 양자간에 미리 합의학 이루어지는 일인데, 선물과 답례의 관습을 악용하여 강압적으로 찍어누르려 하는 경우를 말한다. [24] 관계를 일부러 깨트리는것은 주인이 손님에게 할 행위가 아니다. 즉 주인으로서 손님에게 대접하는 접대의 관습에 알맞지 않는 사례를 가져다가 설득을 시도하는것이다. [25]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대학교이다. 린네 대학교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카를 폰 린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26] 당장 근대화 도중 중진국 함정에 빠진 국가들에서도 접대의 관습이 뒤틀릴 지언정 남아 있으며, 한국만 하더라도 근현대에 온갖 비극을 다 겪었지만 기성세대들은 심심하면 "못 살고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이 오히려 이웃간에 정이 넘쳤다"라며 한탄하는 경우가 흔하다. [27] 물론 손님이 주인이 진심으로 원한 게 아님에도 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식사를 한다고 해도 많은 경우 "눈치 없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 경우에 따라 눈치 없는 사람이 예의 없는 사람보다 안 좋은 평가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평가의 범주 자체는 다르다. [28] 인량차팔은 '식구(食具)'의 파자, '식사 준비할까요?'란 뜻이고, 월월산산은 '붕출(朋出)'의 파자, '친구 나가거든'이란 뜻이다. '견자화중(犬者禾重) 정구죽요(丁口竹夭)'라고 한 김삿갓의 대응도 걸작인데, 이를 파자로 조합하면 저종가소(猪種可笑), "돼지 새끼들아 가소롭다!"란 뜻이다. [29]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오듯이 반찬이나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 [30] 물론,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말일 수도 있으나, 한국 사회에서는 서로 친한 사이가 되면 식사를 같이 하거나 뭔가를 대접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당장에 친한 친구 집으로 놀러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일단 간단하게 간식부터 먹고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31] 참고로 이렇게 '거절은 거절'로 확실히 한번만 인식하는 경우가 점차 주류가 되어감에 따라 손님으로서 예의차리고 싶으면 "정말 제가 같이 식사해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처럼 다시한번 확인해보는식으로 예의를 차리는것도 좋다. 요점은 자신의 뜻을 명확하게 내비쳐야 한다는 것이다. 갈수록 직관적인 대화법이 중요해져 가고있는 시대이니. [32] 다만 이 정도는 오지랖이 심한 예시라고 원 글의 저자가 언급한다. 이 경우는 집에 먹을 게 풍족하게 있을 때 가능한 케이스다. [33] 특별한 사유 없이 식사 시간에 방문을 한다면 당연히 예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많은 일본인들은 상대를 방문하는 시간대를 결정할 때 식사 시간대는 무조건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일본도 급한 업무 처리 혹은 긴급한 소식 전달 등의 사회상규상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중차대한 사유라면 방문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보통이며 이 경우에는 주인도 이해해주고 넘어간다. [34] 여기서 눈치 없이 오차즈케나 밥을 먹겠다고 하면 주구장창 녹차 내준다. 적당히 눈치채고 돌아가라는 마지막 신호이다. [35] 이런 식으로 격식을 따지는 것을 테지메라고 한다. [36] 출처: 아편전쟁/ 서경호 저/ 일조각 [37] 프랑스나 남유럽 국가들과 비슷하게 요리 = 집안의 얼굴이라고 여긴다. [38] 이쪽은 그런대로 치안은 좋은 편이다. [39]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40] 물론 문 앞에 만난 사람이라도 가족, 친척, 친구일 경우 "들어가서 차 한 잔 할래?"라고 해야 예의로 여겨진다. [41] 이는 영국에 핍박받은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착취 당하는 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치기 위해 생겼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이 이민을 가더라도 서로 협력하는 문화가 강하다.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비주류 집단에서 주류 집단으로 편입된 이유도 공동체주의, 가톨릭이다. [42] 그나마 현대에 와서는 많이 약해진 것이고, 19세기만 해도 남부 대농장들은 손님이 한 달을 머물건 두 달을 머물건 상관하지 않았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보면,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오르다 낙오된 허클베리 핀이 밤길을 헤매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대지주 집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무는 장면이 나온다. 일개 부랑아에 불과한 허클베리가 작중에서 뿌리 깊은 대지주 가문으로 묘사되는 집안의 손님으로 인식되고, 상당히 오래 손님으로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나가라 하지 않고 작중 허클베리 또한 이를 당연하다는 듯 인식한다. 심지어 허클베리가 집을 결국 떠나게 된 것도 대지주 가족이 오랫동안 앙숙으로 싸워 왔던 다른 일가 가족과 총싸움이 붙어 일가의 남자 대다수가 죽어버리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었다. [43] 물론 남부 사람들도 매일 매 끼니를 이렇게 풍성하게 먹는 게 아니다 보니 손님이 갑자기 방문한 경우나 오래 머무르는 경우 어쩔 수 없이 손님에게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방식으로 식탁을 차려주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남부 사람들이 먹는 양이 많고 여기에 양을 더 얹어서 손님에게 주기 때문에 외지나 외국에서 온 손님이 먹는 것으로 푸대접받았다고 생각할 일은 사실상 없다. [44] 당연히 손님이 아닌 지나가는 이방인이라면 미국 남부 사람들도 특별히 환대하지는 않는다. [45] 네덜란드 제외. [46] 그런데 게르만 위주인 영국,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벨기에는 손님을 푸대접하지는 않는다. 물론 스칸디나비아 반도와는 달리 영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의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기는 했다. [47] 포르투갈, 스페인, 안도라, 모나코, 이탈리아, 산마리노, 몰타, 그리스, 키프로스, 튀르키예. [48] 이들 중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는 가톨릭 문화의 영향이 강하다. [49] 리투아니아 폴란드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 우세 국가이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독일, 스웨덴, 핀란드의 영향으로 인해 루터교의 세가 강하다. [50] 그나마 아이슬란드나 덴마크, 노르웨이는 조금 낫다. 여긴 어느 정도 접대의 관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51] 계정 주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52] 다만 두 국가는 같은 저지대 지역 국가여도 문화적으로는 상당히 다르다. 벨기에는 가톨릭을 믿고 로망스어군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전형적인 서유럽 국가인 반면, 네덜란드는 개신교를 믿고 네덜란드어 게르만어파에 속해 문화적으로는 북해를 두고 마주보는 스칸디나비아계 북유럽에 가깝다. [53] 반대의 나라는 종교 같은 것이 중시되어 국가나 그 제도가 중시되는 나라와 다르다. [54] 한국 특유의 정 문화와 인심이 아직 살아있어서 그런것도 있지만, 현실적인 면도 있다. 자기 아이랑 집에 놀러올 정도로 친한 아이라면 다신 안볼 낮선 사람도 아니고, 결국은 같은반 같은동네라 얼굴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사이인데 괜히 푸대접했다가 그 아이 학부모와 얼굴 붉히는일이 생기게 되면 이쪽도 곤란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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