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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자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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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개요
1.1. 용어 논란
2. 역사3. 등장 원인
3.1. 극단적인 교리 해석3.2. 종교로 저발전을 해결하려는 태도3.3. 오일머니를 통한 극단주의 전파3.4. 선민사상과 반서구감정
4. 특징과 문제점
4.1. 종교의 자유 억압4.2. 문화 검열4.3. 성적 억압4.4. 부정부패4.5. 과도한 폭력성4.6. 서구 기독교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4.7. 반유대주의4.8. 비판과 풍자 거부
5. 지역에 따른 극단주의
5.1. 아랍 지역
5.1.1. 아랍 민족주의와의 관계
5.2. 아랍 이외 지역
5.2.1. 동남아시아5.2.2. 서아프리카5.2.3. 남아시아5.2.4. 이란5.2.5. 서방국가5.2.6. 중앙아시아5.2.7. 중남미
6. 인식
6.1. 비이슬람권의 책임이다6.2. 이슬람권의 책임이다6.3. 민주주의6.4. 해결책
7. 관련 인물/단체8. 관련 문서9. 외부 링크

1. 개요

Islamic Fundamentalism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쿠란, 하디스의 구절에 따라 이슬람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키려 하는 일련의 이념들을 지칭한다. 이슬람 교리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공동체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주장하며, 범이슬람의 정치적 연합을 목표로 삼는다. 모든 비이슬람 요소와 자유주의, 세속적 가치 및 사상과 타종교에 대한 불관용과 탄압, 배척을 강조하는 특성으로 인해 서방 세계의 비판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21세기에도 극단주의자가 아닌 일반 무슬림들이 여전히 서구권, 제3세계 비이슬람권 국가에서 백안시당하며 심지어는 잠재적 위험인물 내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고 있다. 이슬람이 현대적 관점에서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이며 반국가적인 종교, 반진보적 사상으로 인류를 퇴보시키는 사상과 사상가로 평가되며, 이슬람공포증이 주류 의견에 편입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 본인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심각성을 부정하고 있는데다가 일반 무슬림들 역시 상당수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슬람 극단주의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슬람에 대한 혐오감을 악화시키고 무슬림들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냉대를 심해지게 만드는 가장 성공적인 팀킬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런 냉대를 통해 무슬림들이 서구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슬람 극단주의로 회두하게 만드는 것이 테러의 목적 중 일부라는 분석도 있다.

1.1. 용어 논란

해당 단어는 2001년 9.11 테러 이슬람공포증이 증대되자 폭력적인 이슬람 세력을 일반 무슬림들과 구분하려는 목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착안해 보급된 단어로, 일종의 신조어이다. 전통적으로 무슬림 학자들은 해당 단어 대신 "타크피르주의자"[2] 같은 어휘를 사용했다.[3] 이원복 교수 등 일각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것 자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기독교 신자들, 서구인들이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비하하고자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라 주장하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다양한 용어가 난립하고 있다. 주로 "이슬람 근본주의[4]"이슬람 극단주의[5]라는 용어가 사용된다.[6] 현재 나무위키에서는 사실상 두 호칭에 대해 엄밀한 구분을 하지 않기에 본 항목에 해당 사상들의 대부분을 정리하고 있다.

한 문서 내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중 급진 과격파를 이슬람 극단주의라 따로 정의해 구분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아무리 이념과 목표가 같더라도 목표 획득 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서로 반목하고 박 터지게 공격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는데, 이는 이슬람 근본주의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9/11 테러에 대한 입장에서 나타나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알 카에다의 차이를 언급할 때, 뭉뚱그려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이라 하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IS 둘 모두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이라고만 정의한다면 'IS를 격퇴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를 붕괴시켜야 한다.'라는 해괴한 결론이 나올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정치학적 분류는 국가 정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당장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기 직전 미국 정부는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명확한 구분 없이 막연히 '아랍인 조직'으로 생각해서 사담 후세인이 알 카에다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담 후세인은 독재자였을 뿐이지 세속주의자이자 아랍 사회주의자로서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물론 아랍 사회주의를 포함한 세속주의자 역시 기본적으로 반미 및 친소 성향을 띠고 있었던 것도 미국의 결정에 큰 이유로 작용했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와 아랍 민족주의의 유구한 대립에 대한 미국의 몰이해는 결국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후 대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온건파와 급진파가 서로 싸우고 있는데 잘 모르는 제3세력이 온건파와 급진파를 구분하지 못하고 온건파도 급진파와 똑같이 탄압하는 바람에 온건파까지 급진파로 대거 돌아서버리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흔히 존재한다.

이렇듯 여러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용어이기에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나무위키에서도 이슬람 원리주의를 검색해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

2. 역사

천 년 넘는 역사를 거치며 이슬람에는 많은 분파들이 발생하였다. 이바디파, 이스마일파 등 일부 분파는 극단주의 성향으로 출발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온건화되었고 반대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하나피파 등 온건파 포지션이었다가 시대와 지역 환경을 이유로 극단주의 성향이 된 경우도 있다. 근세 이슬람계의 ISIS라 할 만큼 폐단이 심각했던 수피 낙슈반디야 교단도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사실상 사멸한 상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후술할 항목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극단주의의 역사 전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 문제가 되는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의 기원과 그 형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2.1. 중세 타크피르

많은 이슬람 학자들과 역사가들은 7세기 중후반에 시작된 카와리지파나 8세기~9세기 한발리파를 이슬람 근본주의의 기원으로 본다. 한발리파는 탄생 이래로 역대 칼리프들에게 탄압받고 한동안 비주류였으나 13세기에 십자군 전쟁과 몽골 제국의 이슬람 침공을 거치면서 이슬람권이 배타적으로 변하고 사변철학이 쇠락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세 십자군과 전쟁 끝에 승리한 맘루크 왕조 몽골 제국에서 갈라져 나온 일 칸국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한발리파 신학자였던 이븐 타이미야는 단순히 샤하다를 하고 무슬림을 자처한다고 무슬림이 될 수 없다는 논지를 펼쳤다. 이븐 타이미야는 그 증거로 일 칸국의 몽골인들이 비록 가잔 칸의 치세 기간(1295~1304년)에 텡그리 신앙을 포함해서 예전에 믿었던 종교들[7][8]을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믿고 따르는 법은 이슬람교의 율법인 샤리아가 아니라 그들의 조상인 칭기즈 칸이 만든 법률인 야사이며, 따라서 일 칸국의 몽골인들은 진정한 이슬람교도가 아니고 잔다까[9]라고 주장했다.[10] 그는 더 나아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일 칸국의 몽골 무슬림들이 자힐리야 상태나 다름없다 주장하며 이들에게 지하드가 정당화된다는 타크피르 이론을 만들었다. 타크피르란, 신앙심이 부족해 보이는 무슬림을 비무슬림으로 간주하여 지하드의 대상으로 삼는 사상을 말한다.

이븐 타이미야는 칼리프의 권위 하에 타크피르를 시행해야 한다고 했으나, 이후 근세에 오스만 제국 술탄이 칼리프를 겸임하자 반 튀르크 성향의 마흐디주의자들과 와하브파가 칼리프의 승인 절차 없이도 무슬림 개인이 멋대로 지하드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타크피르를 악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븐 타이미야의 주장들 중 타 종교인들을 이슬람 정권이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은 빼버리고 아랍 우월주의, 반튀르크, 반 시아 사상만 선택해서 받아들였다.

2.2. 근대 와하비즘 마흐디 사상

오스만 제국의 칼리프는 시아파 사파비 제국의 반 수니파 정책에 맞서 수니파를 보호하여 수니파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의 이븐 압둘 와하브가 주장한 와하브파는 부정부패로 인해 이슬람 종주국 구실을 못하는 오스만 제국의 권위를 부정하고 헤자즈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켜 2차례의 전쟁 끝에 결국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하게 된다.
19세기 말 수단의 바까라족은 마흐디국을 건국하며 마흐디 운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극단적인 반 튀르크 정서를 가지고 오스만 제국을 불신자 정권으로 간주하며 튀르크족을 모조리 타도해야 심판의 날이 시작된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이 이론은 와하브파 중에서도 극단주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수장으로 있던 알 카에다의 타크피르주의에 영향을 주게 된다.
1862년 청나라 말기에 무슬림 소수 민족 후이족의 자흐리야 수피 교단은 감숙성 섬서성에서 대규모로 회민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으로 자흐리야 수피 교단이 전멸하면서 비록 후대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비무슬림을 극단적으로 배척하고, 지하드 무장저항을 위한 지하조직을 운영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과 매우 유사했다.

이슬람 사회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던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서구화 정책 때 구세주 사상을 앞세운 폭력적인 무장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세기 이란 카자르 왕조 시기에 일어난 바비교 반란이다. 이들의 혹세무민은 반외세 운동으로 포장되면서 현대 이슬람 근본주의가 모양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슬람주의가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이전이었던 19세기에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주류가 아니었다. 당시 이슬람 근본주의자였던 야쿱 벡이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무슬림들의 반발로 탈레반식 국가 수립을 실패했던 일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2.3. 현대 이슬람주의

이슬람주의는 이슬람 개혁운동에서 발전한 이슬람 모더니즘 레닌주의와 기독교 원리주의 선교 등의 영향으로 급진화 및 극단주의화된 사상으로, 수니파 시아파를 막론하고 현대 이슬람 근본주의의 근간이 되고 있다.

현대의 이슬람 극단주의가 아랍 전반으로 퍼진 직접적인 계기는 튀르키예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 이슬람 개혁 특히 칼리파 제도 폐지에 충격을 받은 이슬람 개혁가들이 파편화, 극단화된 것에 있다. 당시 쇼크를 받은 이슬람 모더니즘 사상가들 상당수가 근본주의 신학으로 기울고 이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무슬림 형제단으로 이어졌다. 아랍사회주의 아랍 민족주의 성향의 시리아 정부와 이집트 제2대 대통령 나세르는 이들의 극단적인 행보에 위기를 느껴 이 단체 및 이 단체의 일원인 마르완 하디드를 탄압하고 사이드 쿠틉을 처형했는데, 국외로 추방된 이들이 주변 아랍국가로 퍼지면서 아랍~이슬람권 전반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11][12]

당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하나피파가 널리 퍼져 있었으나, 파키스탄에서는 이슬람주의 어용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우민화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반지성주의적인 이슬람 근본주의[13]가 섞여 아프가니스탄으로 흘러들어가면서 탈레반의 사상적 기원이 되었다.

이슬람주의 세력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그리고 미국의 지원 하에 세력을 키웠다. 냉전 당시 반공주의가 팽배했던 미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지원했는데, 알카에다 9.11 테러를 일으키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벌어지는 등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발등을 찍힌 꼴이 되고 만다.

이란에서는 알리 샤리아티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슬람 시아 12 이맘파 신학을 결합하여 이슬람이 지하 투쟁의 종교라고 주장함과 동시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부정하면서 시아파식 이슬람주의를 확립하였고, 이것이 이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이후 세속주의 정책으로 이란의 현대화를 이끌던 팔레비 왕조 이란 혁명으로 인해 몰락하고 호메이니에 의해 시아파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이 수립된다. 이 사건은 이슬람권 전체에 종파를 가리지 않는 수니-시아파 간의 극단 종파주의를 일으킴과 동시에 걸프 아랍 왕정국가들이 제2의 이란 혁명을 막기 위해 보수 율법학자들과 타협하는 정책을 취하면서 근본주의 광풍을 일으킨 역사적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오마르 알 바시르 치하 수단은 19세기 마흐디 운동을 계승한다는 명목으로 남수단을 핍박했으며, 소말리아 역시 시아드 바레 치하의 이슬람 사회주의 정권이 파탄으로 끝나면서 급속히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화가 진행되었다. 1990년대 초에는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국가가 되어버리고 만다. 알제리 내전의 사례처럼 이슬람주의자들이 항상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벌인 항공기 납치 사건으로 에펠탑이 파괴될 뻔 한 일도 있었던 만큼 국제사회에서는 이들의 존재가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21세기에는 아랍의 봄으로 인해 독재 정권이 해체된 후 정치 권력의 공백을 틈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확장하려는 양상을 보였다. 이로 인해, 테러리스트 단체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중동을 피바다로 만드는가 하면, 아랍의 봄 과정에서 생긴 여러 내전으로 무슬림 난민들이 유럽으로 피난을 가면서 아랍권 밖으로도 이슬람 근본주의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3. 등장 원인

3.1. 극단적인 교리 해석

무함마드 초기의 메카 계시에는 타 종교와 공존하는 이슬람 세계를 구상하여 비교적 관용적인 구절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계획이 좌절된 이후로는 무함마드의 사상이 정복전쟁 위주로 과격하게 변질되어 이후의 메디나 계시에는 타 종교인들에게 가혹한 서술이 증가한다. 이로 인해 무함마드의 계시를 기록한 쿠란 역시 평시 상황과 전시 상황이 서로 다른 말들이 수두룩하게 기술되었다.

본래 평시 상황의 해석과 전시 상황의 해석은 각각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하고 이것을 Naskh(نسخ :대체)라고 부른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이슬람이 전 세계를 정복할 때까지 전시 상황이라고 멋대로 규정하고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를 쿠란이나 하디스에서 나온 해석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초창기 그대로의 이슬람을 실천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들이 행하는 자살 폭탄 테러는 스리랑카 내전 당시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에게서 넘어온 관습이고, 지하드나 예배를 과시하거나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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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 이슬람 극단주의[14]


실제 설문조사 결과 1/3 정도의 무슬림 응답자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실현하려는 악습인 명예살인, 샤리아법의 도입, 이교도 탄압 등에 호의적이라고 답하였다. 또한 16-24세의 영국 거주 무슬림들의 36%는 이슬람교를 타 종교로 개종할 시 죽음으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제외한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 무슬림들이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90% 이상까지 샤리아 도입을 지지하였다.

3.2. 종교로 저발전을 해결하려는 태도

이슬람주의 사후 세계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기독교와는 달리 쿠란 하디스에 나온 대로 무함마드가 지상에 건설한 공동체 사회인 움마를 이상향이라 생각하며, 이 공동체 사회는 이슬람 제국으로 실존했던 적이 있다. 따라서 터키 인도네시아등의 몇몇 세속 국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은 개발도상국이 가지는 빈곤 및 저발전 문제에 대해 이슬람교에 의지하여 현실 세계에서 이슬람 공동체 사회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슬람 국가들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저발전 상태에 머물러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산유국의 높은 명목 GDP는 석유 수출에 기인한 것으로, 자원 산업은 그 특성상 일자리 증가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정작 사회 발전은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일부 학자들은 이슬람 정부나 테러로 인해 생겨난 많은 군벌들이 치안이 불안하고 민주적인 정치체제가 전무한 상황에서 분열된 세력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무슬림들의 신앙심을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교는 우민화 정책에 이용되어 국가나 반란의 세력을 결집시키거나, 개혁을 할 명분을 제공해주었으며,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여 정치 권력의 비호를 얻음으로써 세력을 안정화시키고 확장시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온건한 이슬람은 정치 권력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밀려났다. 결국 대부분의 산유국을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 중 선진국으로 분류된 나라가 단 한 나라도 없으며, 인권의식도 상당히 낮다.


국가가 사회의 저발전을 바꿔야 한다는 사상이 소련에서 시작된 공산주의인데, 이슬람은 공산주의를 미국보다도 더 혐오했다. 종교적인 이유로는 이들이 무신론자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본질은 사유재산의 관리 문제로 종교와 야합한 토후들의 지배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7세기 쿠란에서는 많은 재산과 권력을 가졌으면 이를 가족이나 친지들과 나누고 베풀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지배자의 자세였을지언정 21세기 국가가 등장한 현 시점에는 본질적으로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행하는 시혜일 뿐이다. 이는 자기 씨족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지언정 현대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모델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중동 대부분은 유목민들이 대다수로 국가라는 개념도 없고, 한 지역에 정주한다는 개념도 없었다. 이 때문에 이슬람을 믿는 유목민 집단 중 한 지역에 정주라는 것이 가능했던 집단은 일부 생활이 가능한 오아시스 지대를 점거한 몇몇 토후들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유목민들의 재산은 말 그대로 사람과 식량으로 쓸수 있는 가축두수가 전부였고, 부동산 따위를 가질 수 없었다. 토후들 역시 부동산이란 한 지역에 오래 두며 순례객을 받아야 할 이슬람 모스크가 전부였으며,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자연스럽게 종교와 권력이 결탁했다. 애초에 이슬람이 정교분리가 안되어있는 종교체계이기도 하고.

현재 이슬람 절대왕정이 오일머니로 독점한 부를 유지하는 방법 또한 그것이다. 현재 중동의 모든 이슬람 절대왕정은 종파 지도자와 토후의 연합이다. 그들의 이해가 일치해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유지하면서 아버지가 가족의 부를 독점하되 아버지가 가족을 돌보도록 시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정신적 근거를 신학자들이 전파하고, 토후들은 오일머니를 독점해 부자가 된 대신 얼마 되지 않은 국민들에게 마구 돈을 퍼주면서 자기가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이슬람의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다. 즉 현대적 의미의 국가 개념은 중동 왕정에겐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며, 국가가 국민에게 지역의 모든 부를 분배하는 공산주의는 이슬람의 지배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것이라 이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중동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 투표로 뽑힌 이란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를 미국이 CIA를 동원해 날려버린 걸 다른 왕정들이 보고만 있던 것도, 아랍 민족주의를 탄압하기 위해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를 중동 왕정이 그렇게 혐오한 이유도 모사데크나 나세르가 본질적으로는 국가주의자이며,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오일머니를 왕가에서 빼앗아 국민이 세운 정부가 독점하고 수익을 국민에게 분배하는 것을 중동 내에서 실현하고, 팔레비가 실각한 이후에도 신정정치일지언정 원칙적으로 공화제를 부르짖으며 오일머니를 국가가 공유하는 이란을 중동 산유국들이 혐오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소수지만 중동에도 오일머니를 왕족들이 독점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세력은 있으니까 이것이 트리거가 되어 왕정 폐지 운동이 일어나면 그들의 존립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는 넓은 의미의 超 가부장제이다 보니 가난할수록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내세울 것이 과거의 질서에 따른 남성우월주의밖에 없는데 그걸 정당화해주는 유일한 사상이 이슬람 근본주의뿐이니.

어려운 시기에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전세계에 있었던 특성이나, 기독교가 중심이었던 서구권에서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민족국가의 개념이 출현해 국가가 종교를 대신해 국민을 관리하고 유지하며, 이외 문화권에서는 서구 열강들의 영향으로 서구화가 진행되어 세속주의로 변모하며 종교계의 권위가 약화되었다. 그러나 이슬람 사회에서는 오히려 가장 근본주의적인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이 석유 수출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으며, 이들이 현재 무슬림 사회의 여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세계의 혼란 원인을 인간의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신의 분노라고 해석하여 전세계를 이슬람화하고 샤리아를 도입하면 이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실제로 나이지리아 북부에서는 샤리아를 시행하여 에이즈를 막자는 선전을 했으며, 영국 런던에서는 무슬림 난민들이 이슬람 교리에 따라 주류 판매를 금지하자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사회의 다원성을 무시하고 탄압한 채 이슬람의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나오는 것처럼 보이나,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이슬람 국가에 남아 있는 인권 탄압이나 부정부패 등의 사회 혼란은 국가의 회복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15]

또 다른 예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무슬림 형제단이 이집트 국민들 기대속에서 정권을 잡았으나 이슬람 근본주의였던 무슬림 형제단은 모든 요직을 이슬람 성직자가 독점하고 해외기업 추방과 기독교와 세속주의 탄압에만 신경쓰고 이집트 시민혁명의 원인이 되었던 경제난과 식량부족문제를 더 악화키면서 집권한지 1년만에 이집트 국민들 지지와 서구권의 묵인한 군부쿠데타로 몰락하였다. 이는 냉혹해야할 경제와 식량문제를 외면하고 본인들만의 이상향을 만들고자했던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자업자득이다.

3.3. 오일머니를 통한 극단주의 전파

이슬람 근본주의가 짙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일머니로 인해 자원이 풍족하여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다. 이는 원인관계를 착각하기 쉬운데, 이들은 상술한 제국주의자들+극단적인 이슬람 신학자들이 군벌이 되어 서로 죽고 죽이다가 어느날 갑자기 석유라는 잭팟이 터지면서 중동땅을 지배하게 된 토후들이다. 이들이 왕이라는 근거는 오직 싸워서 이긴 것 뿐이다.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칼리파는 오스만 투르크의 멸망으로 사라진지 오래이고, 종교적 권위를 가진 신학자는 토후들의 입맛에 맞는 교리만 반복하지, 경전을 해석하고 설명해줄 능력은 없는 원리주의자들만 남았다. 그들에게 지금의 오일머니 독점의 정당성을 받기 위해 중동은 철저하게 가부장적이고 원리주의적이며 가장이 모든 부를 독점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들은 노동력을 모두 고학력 외국인으로 때워도 대다수의 인구가 북유럽 수준의 복지를 누리며 중산층의 삶을 누린다. 이들이 자칫 오일머니 독점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지 못하게 돈과 권위로 막는 것. 이러고도 돈이 남기 때문에 가진 돈으로 외국에서 오는 이슬람 학자들에게 와하비즘을 주입하고 기부금 형식으로 근본주의 단체나 정권을 육성한다. 종교 연구가 패트릭 수크데오 박사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한 말에 따르면, 20년 동안 천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와하브파의 주도로 모스크 건설, 종교인 양성, 종교 매체 발행에 쓰여 이슬람의 극단화에 기여했다. 이들의 오일머니는 매우 강력해서 타국의 무슬림 협의체가 이슬람 개혁을 위해 벌이는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16]

3.4. 선민사상과 반서구감정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무슬림들은 이교도가 무슬림에게 베푸는 배려, 관용 등은 당연하다고 간주한다. 이슬람주의 역사 교육관에 따라 중세~근세 중동과 동유럽의 기독교 세력이 무슬림들에게 핍박받아 노예나 인신매매로 팔려나간 것을 "해방"이라고 왜곡하여 서술하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또한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가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로 인한 피해 때문에 서구에 대한 피해의식과 반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영국이 맥마흔 선언으로 아랍 국가 건설을 약속하고는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교 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이중 계약 사고를 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간 분쟁의 씨앗을 만들었으며, 냉전 당시 아랍을 지원했던 소련에 대항하여 미국이 아랍 입장에서 이교도 국가인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아랍의 반서구 감정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사례가 오사마 빈 라덴 걸프 전쟁으로 인해 사우디가 지원을 요청하여 미군이 사우디에 주둔하게 된 것을 '이교도의 성지 침범'으로 해석하여 알 카에다를 조직한 것이다. 9.11 테러 역시 비슷한 맥락인데, 1982년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건물이 파괴되자,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발생하였다.

4. 특징과 문제점

수니파 시아파의 보수 율법학자들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절대불변의 진리로 간주하고 신성시한다. 문제는 이 샤리아법이 중세 수준의 가치관에 머물러 있는 데다가 온전한 이슬람 율법도 아니라는 역사학자들의 지적도 여럿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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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서방 국가들과 제 3세계 나라에서도 종교극단주의적인 주장을 내세우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파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4.1. 종교의 자유 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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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로 개종한다면, 죽을 것이다."
극단적 이슬람 / 온건 이슬람
이슬람이 아닌 것은 죄악, 불의, 고토이고, 이슬람의 신성한 가르침에 대한 무지의 세계이다. 비이슬람과 이슬람 사이에 절충과 화해는 있을 수 없고, 오직 한 가지 개념을 제거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그때 진정한 이슬람은 전세계에 널리 전파될 것이다.

지하드는 오직 이슬람만이 전파되도록 전세계를 지속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해석은 전부 다 왜곡이며 배격되어야 한다.
- 사이드 쿠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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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버릴 경우 빨간색 국가들은 사형, 갈색 국가들은 징역 및 결혼권, 양육권 박탈형을 내리며, 주황색 국가는 개종이 불법이다. 색이 칠해진 국가들, 즉 개종이 불법인 국가는 인도네시아[17]를 제외하면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국가밖에 없다.

상당수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비무슬림들에게 강도 높은 박해와 핍박을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동의 토착 기독교 교단, 야지디교, 만다야교, 조로아스터교등 소수종교나 타 종교 신자들이 많은 피해를 받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개종자에게 3번의 기회를 준 후 사형에 처하는데, 이것을 신의 종교를 버린 대죄로 계시에 따라 생명을 거두어 갈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샤리아 법이 시행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41세 압둘 라흐만(Abdul Rahman)이 이슬람을 버렸다는 이유로 2006년 샤리아법에 의해 사형이 선고되었다가 서방의 압력으로 인해 간신히 석방되어 망명한 일도 있었다. 이집트 나이지리아에서는 정부까지 주도적으로 나서서 종교 박해를 한다. 이로 인해 이집트의 소수종교 콥트 정교회는 무슬림들에 의해 심각한 탄압을 받고 있으며, 독일의 칼럼니스트 쿨케는 '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이란에서는 기독교인에게 폭행을 가해도 비신사적인 행위로 간주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수단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한 임산부를 감옥에 가두고 채찍질 100대와 이어서 교수형을 선고해 국제 사회의 분노를 샀다.

이슬람주의 운동가 및 선교사들은 정체성 정치를 이용하여 비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이 박해받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이슬람교의 타 종교 박해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관용을 요구하는 이중잣대를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이나 2013년 말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금주법 시위 등이 있다.

또한 무슬림의 성경이나 기독교 모독 행위는 이슬람 국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슬람권 국가들 중 여론과 별개로 제도적 차원에서 세속주의와 관용,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비이슬람에 대한 극심한 탄압과 공존을 하려 들지 않다 보니 무슬림이 인구 주류인 국가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일방적인 박해와 폭력이 일상처럼 벌어진다. 인도 동남아시아처럼 힌두교 신자와 불교 신자들이 많은 곳이나 필리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륙 같이 기독교 신자 수가 상당한 지역에서는 무슬림 소수자들이 대화와 타협 대신에 무조건 폭력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종교 갈등이 내전 수준으로 커지기도 한다.

케냐 우간다 같이 엄연한 세속 국가에서 일반 무슬림들조차도 교회에 수류탄을 던지거나,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무차별 린치를 가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다종교 공존 국가인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같은 지역에서도 교회 파괴를 저지르고 기독교 성직자들과 외국인 여자 관광객에게 염산을 퍼붓는 등의 행위로 인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수니파 이슬람은 20세기 초반 칼리파 제도가 폐지된 이래 가톨릭 교황청 같은 중앙통제 도구가 없다. 즉, 쿠란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자유가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 자유주의부터 IS같은 극단주의 집단까지 다양한 견해를 지닌 집단이 나오고, 특정 교파의 악행을 다른 교파 신도들이 구체적으로 제재할 방도가 없다. 타크피르 파트와를 내리거나 테러 반대 시위, 캠페인 같은 소극적인 방법이 전부이다. 이슬람 내부에서도 극단주의에 반발하는 집단이나 정당은 많은 편이지만[18] 전 세계에 널리 퍼진 극단주의자들이 세속주의 온건 세력을 주적으로 삼는데다가 오일쇼크 이후 와하브파의 선교 자금이 전세계로 유입되면서 힘을 잃었다. 한국의 무슬림들이 보이는 나몰라라식 태도는 분명 잘못되었지만, 이들이 일부 이단 논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둬야 한다.

수단에서는 내전 기간 동안 무슬림 정부군들이 종교적 광신에 휩싸여 대부분 흑인들인 비이슬람 아프리카 토착 종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의 마을을 무차별로 폭격하고 방화, 약탈, 민간인 살인, 납치, 강간을 저질렀다. 이러한 종교 청소가 대놓고 벌어졌는데도 수단 정부와 이슬람권에서는 "서구 사람들도 '옛날에는' 학살 저질렀으니 쌤쌤이거든?" 식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물타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세속 국가를 표방하는 튀르키예도 예외가 아니라서, 성경을 출판하는 회사에 무슬림들이 쳐들어가 직원들을 고문하고 살해한 잔혹한 사건이 2007년에 일어났다. #

이슬람 국가들에선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아랍 민족주의자이자 온건파 출신의 군부 독재정권이 비무슬림에 대하여 더 관대하다. 정확히는 이슬람 세력이 반정부 운동의 구심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통치 대상을 세분화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토착 기독교를 포함해 대대로 살아온 소수파 종교의 지지를 노리는 것이다. 이라크 역시 후세인이 이런 전략을 썼는데, 미국한테 밉보이는 바람에 이라크 전쟁에서 실컷 털린 다음 파멸하고 미국도 나몰라라 하면서 이라크 내 비무슬림들에겐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려 버렸다. 이라크 내 기독교도의 상당수가 기독교도 비중이 높고 아사드 독재 정권이 이들을 보호하던 시리아로 넘어 갔는데, 지금은 시리아에서도 반 아사드 내전이 벌어졌으니. 이슬람 국가에 거주하던 비무슬림에게는 재앙의 연속이나 다름없다.

4.2. 문화 검열

무슬림들은 성선설을 기반으로 서구의 음란하고 타락한 문화가 무슬림들을 호도한다고 간주하여 영화, 드라마, 음악, 만화, 연극 등 모든 문화나 매체에 대해 샤리아에 입각한 전체주의적 검열을 한다. 이는 무슬림과 비무슬림들이 자유롭게 의견 교환을 하던 중세 압바스 왕조보다 퇴보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란에서는 여성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을 올렸다고 태형을 선고하며, 화장이나 공공장소에서의 노래도 금지한다. 실제로 이슬람의 지나친 영화산업 규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찍은 여배우는 태형 90대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2016년에는 이란 모델들이 인스타그램에 히잡을 안 쓴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170명이 기소 및 체포되고 정부 및 검사 앞에서 공개적으로 참회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9년에는 방송에 나온 여성 축구심판이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축구방송 송출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 사우디에서는 학교에 휴대폰을 가져간 13세 학생이 징역 2개월과 태형 90대를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우상숭배 금지라는 명분 하에 문화 탄압과 유적 파괴를 벌이기도 한다. 유네스코 등재로 유명해진 바미안 석불이 그 대표적인 예. 이집트에서는 국가에서 애지중지하는 스핑크스 피라미드까지도 파괴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 스핑크스 파괴해야 (연합) 물론 이집트 국민 대다수는 반대 입장이며, 이렇게 관광 상품이 주 수입원인 이집트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런 일은 없겠지만, 정부가 힘이 없어 극단주의에 휘둘리는 많은 이슬람권의 나라와 지역들에서는 이러한 문화 유산 파괴가 진짜로 실현되고 있다. 앞서 말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 파괴나, 말리 팀북투 유적 파괴 위기, ISIL에 의해 최근까지도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의 고대 문화유산 파괴 등등. 심지어는 이슬람권도 아닌 서방 유럽에서도 무함마드가 지옥에 가 있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는 이유로 볼로냐 성당의 중세 성화를 파괴하라고 시위하는 극단주의자들까지 있을 정도이다.[19]

단, 이슬람 근본주의에서 하는 문화 검열은 어디까지나 권력과 재산이 없는 대다수 일반 무슬림들에게 적용되고 권력과 재산이 있는 소수의 무슬림들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아래의 부정부패 항목을 참고.

4.3. 성적 억압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슬람/성문화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4. 부정부패

샤리아를 법 체계에 도입한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부정부패로 인해 국가 고위층이 샤리아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인맥이 있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 퓰리쳐상 수상자인 제럴딘 브룩스는 자신의 저서 <믿음에 갇힌 여성들>에서 사우디 왕족들과 부유층들이 인터뷰에서 서방을 비난하면서도 외국인 창녀들과 환락을 즐기는 데는 아무 제재나 비난을 받지 않는 것을 목격했다 저술한다. 또한 카타르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빈민층에게 샤리아가 더욱 가혹하게 적용됨을 보여준다.

한편 이슬람에서 고리대금업이 금지됨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법망을 비틀어서 고리대금업을 하기 때문에 신분 상승 차단 등 양극화가 하늘과 땅 수준으로 벌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비슷한 예로,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이 여성을 폭행하는 이란에서 정작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 후손들이 대놓고 sns에서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사진을 찍고 올려도 처벌은커녕 언론에 언급도 되지 않았다. 이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믿는 나라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슬람 국교를 믿는 나라의 지배층과 이슬람 성직자들은 내로남불이 심각한데 이들은 국민과 이슬람 신도들에게 엄격한 샤리아를 강요하고 이를 어기면 온갖 혹형을 남발하면서도 정작 이들의 집은 크고 화려하고 서양식이며 집에는 해외에서 수입한 첨단 가전기기와 인터넷이 설치되어있고 냉장고에는 할랄에서 금지한 돼지고기나 술이 넘쳐되어 있으며 주기적으로 백인여성 매춘부를 초빙하어 화려한 파티를 즐긴다. 이를 단속해야 할 경찰이나 종교경찰들도 지배층에 소속되어 있거나 뇌물에 눈감아 준다. 심지어 이들이 사는 지역에는 순찰도 안도는 경우도 있다.

4.5. 과도한 폭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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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이슬람교 교리가 아랍 유목민들의 과도한 폭력성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과 달리 현대 이슬람 근본주의는 온건파가 이단 취급을 받으며 폭력과 학살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퇴보했다.

세계사에서 '이슬람은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중시했다'고 기술하기도 하지만, 이슬람에서 말하는 관용은 '이슬람에게 도전을 할 수 없는 선에서의 관용'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거나 타 종교인, 그리고 증오 및 혐오 대상인 외국인에 대해 무차별적인 폭력 행사를 거리낌없이 한다.

서구 사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는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이 있다. 튀니지는 아랍권 국가들 중 정말 몇 안되게 세속주의 세력의 힘이 상당한 온건 이슬람 국가인데, 심지어 여기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사악한 서구인들을 무찔러야 한다."며 자국 내 관광 리조트에서 총기난사를 벌여 사상자가 나오고 잘 나가던 튀니지 관광산업에 크리티컬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극단적인 폭력성이 명백한 문제임이 분명한데도, 많은 무슬림들은 그것을 먼저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고 있다. 주로 무슬림이 사회적 소수자인 서방권에서 침묵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사실상 모든 집단은 자기네들이 사회적으로 소수일 때는 당연히 평화롭다. 소수 집단일 때는 자신들의 공격성을 숨기고 평화적이라고 행세하다가 세력이 불어나 힘을 좀 얻으면 언제 그랬냐는 것 마냥 자신들의 횡포를 과시하는 세력들은 역사를 봐도 차고 넘친다.

4.6. 서구 기독교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

미국은 소말리아에도 (무슬림) 민간인들을 보호한다는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개입했으며, 무정부 상태와 내전, 그리고 잔혹한 군사 독재자들 때문에 고통받은 소말리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군을 파병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중동의 무슬림 지식인들과 저널리스트들,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 등 수많은 자들은 이와 같은 미국의 인도주의적 행위를 가리켜 미국식 제국주의이자 무슬림을 상대로 한 적대 행위라고 비난했다.
중동에 대한 미국 정책의 진실 / 베리 루빈

현대 이슬람권에서는 극단주의자들과 이에 동조하는 무슬림 지도층의 여론주도로 도를 넘는 서구와 기독교/유대교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이나 모욕에 가까운 비방, 흑색선전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주된 레퍼토리는 "서구세계와 전세계에 퍼진 기독교인들은 타락했으며, 불륜 매춘, 퇴폐적인 음주 문화, 동성애 소아성애에 찌들어 있으며 제국주의식 팽창/확장에 환장해 무고한 이슬람을 탄압하는 데 광적으로 앞장서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교육할 때도 근현대 서구 열강들이 이슬람 세계를 침략하고 착취한 것은 반복학습시키지만, 중세와 근세 무슬림들이 기독교 국가들을 침공한 것은 진출, 해방이라고만 가르치며 중동과 동유럽 기독교도들을 상대로 한 노예 납치 무역은 얼버무린다.[20][21]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성직자들이 "이슬람 전통 방식이 아닌 헤어스타일과 서구식 복장은 부도덕과 동성애를 부추긴다." 같은 서구에 대한 광적인 편견을 대놓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한다.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직후에는 악화된 여론을 무마한답시고 "비키니가 성범죄를 부추긴다"라는 주장을 벌이다가[22] 분노한 프랑스 당국에서 부르키니를 금지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일반적인 무슬림들조차도 이러한 편견을 악용하는 사례가 속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키스탄 등지에서는 개인적인 갈등으로 인해 타 종교인을 억울하게 신성모독 이교도로 허위고발하는 사례가 매우 빈번하다. 이내 타 종교인 당사자들은 광신적 포비아에 사로잡혀 앞뒤 정황은 살피지도 않고 무작정 자신들을 죽이려 드는 무슬림과 극단주의 정부의 체포, 처벌에 시달리고 사적 린치로 불태워 죽임당하기까지 한다.

제국주의와 전혀 상관도 없는 비서구 지역과 제3세계의 수많은 이웃 기독교 신자마저 제국주의 끄나풀 내지는 앞잡이로 보고 증오한다. 그러나 애초에 중동의 기독교는 서구와는 별다른 관련 없이 오리엔트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 등의 토착 종파가 대부분이다. 물론 기독교 신자가 서구 국가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지도 않는데다, 소위 "서구"라고 말하는 국가들도 대부분 세속주의를 채택하여 정치적 결단에 종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반지성주의적 곡해와 타 종교 비방에는 어김없이 전 세계의 이슬람화와 폭압적인 샤리아 도입,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해 다스려지는 사회에 대한 주장이 수반된다.[23]

물론 이러한 추세에 넘어가지 않거나 침묵하는 온건 무슬림들도 많지만, 상당수의 일반 무슬림들이 이러한 기독교와 서방세계에 대한 악의적 선전[24]에 세뇌되어 가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넘길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인데, 일반 무슬림들의 자기반성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슬람권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조차도 틀어막게 되며, 이러한 왜곡에 세뇌된 극단주의자들은 도를 넘은 폭력행위나 테러를 저질러도 반성은커녕 자기들을 타락한 서구 악마들에게서 이슬람을 수호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정신승리하는 충격적인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독교 포비아와 일부 이슬람 국가들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결합되면 더욱 심각해진다. 기독교인 한명을 죽이는 것은 잠재적 매국노를 처단하는 것이고, 민족의 일치를 보장하는 행위라는 식의 파시즘적인 가치관을 엄청나게 많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지니고 있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기독교 인구를 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당신네들이 무슬림들을 전부 강제로 개종시켜 인도네시아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 음모를 짜고 있지?" 따위의 증오 편지를 교황에게 보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4.7. 반유대주의

현대의 이슬람 극단주의는 반유대주의와 관련이 매우 깊다. 제2차 세계 대전 무렵에 나치 독일은 대영 제국과 프랑스 식민 제국에 대항할 목적, 그리고 시오니즘에 대한 반발을 이용하여 아랍 국가들에 접근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랍 정치인들과 나치즘은 빠르게 결합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운 바트당이나 나세르주의 역시 조직 측면에서 나치스와 유사함을 보인다. 나의 투쟁이 '"나의 지하드"'라는 제목으로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아랍 세계에서 널리 읽혀졌다. "하늘에는 하나님, 지상에는 히틀러가 다스린다."는 포스터가 시장에 나돌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이슬람 극단주의는 아민 알 후세이니 등 몇몇 주요 인물의 나치 부역으로 인하여 나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무슬림 형제단의 창립자 하산 알 반나는 공개적으로 반유대주의 / 반 시오니즘 사상을 받아들이고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2차대전 연간으로 그쳤어야 했을 나치스의 반유대주의 / 반시오니즘은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 내부로 광범위하게 침투하게 되었다. 관련 내용

이 과정에서 유대인 음모론이 크게 대두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극단주의가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것이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억압받는 것에 대한 반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의 적대 활동은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실제로 서구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 증오범죄나 테러의 상당수가 이슬람 과격 신자들의 소행이며, 일각에서는 서구의 극우파보다 이슬람 이민자들의 반유대주의가 더 심각함을 우려할 정도. 여기에 더해 무함마드는 자신의 정복 지하드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유대인 부족의 자주 갈등을 빚고 전쟁까지 벌였으며, 하디스에서는 심판의 날이 오기 전 유대인들이 적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예언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극도의 반유대주의를 수행할 교리적인 근거도 갖춰진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같은 메이저 이슬람 국가들의 지도부와 지식인 계층까지도 반유대주의에 입각한 음모론이 팽배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말로 나치슬람[25]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근본주의 수니파들은 같은 이슬람인 시아파를 유대인 음모론과 엮어 음해하며 근본주의 성향의 시아파 역시 마찬가지다.

4.8. 비판과 풍자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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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자 : 이슬람평화로운 종교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놈들은 다 죽이겠다!
(교황에게 죽음을!) (사과 아니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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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이슬람에 대한 풍자조차도 신성모독, 이슬람포비아로 치부하거나 폭력적으로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 또한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슬람 극단주의 분파와 성향에 대한 비판이 서방 세계의 일방적인 차별'이라는 고정관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슬람을 감싸는 그들의 주장은 " 이슬람"이 복잡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악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대 이슬람은 문화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철학적, 정치 이데올로기적, 정치 제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복잡성을 이용해 비판을 회피하기 위해서 무조건 "문화"라고 규정짓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상대주의는 '문화는 어떠한 비판도 해서는 안되는 성역'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이슬람 자체를 비판하는 관점은 결코 서구권만의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서구는 엄격한 치안과 선진적인 체계로 인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생각보다 활개를 못치는 형국인데 비해, 이슬람 극단주의가 그야말로 악마같은 만행과 각종 충돌을 거리낌없이 실시간으로 저지르고 다니는 비서구와 제3세계- 주로 이슬람권과 인접한 인도,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필리핀, 나이지리아, 케냐, 남수단,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동티모르 등지의 타종교 국민들인 힌두교 불교 신자들, 소수종교인들, 기독교인들 상당수가 서구보다 강한 반이슬람 성향을 가지고 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정교분리가 되어 있지 않으며, 그 사실은 즉 일반 무슬림조차도 일상생활이나 삶 자체에서 정치화된 이슬람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주위 사회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고, 차별조차 크게 받지 않은 선량한 무슬림들이 뜬금없이 극단주의 세력에 가담하거나 테러를 저지르고,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이슬람권의 선거에서 샤리아법을 지지하며 극단주의 정당에 한표를 던지는 식의 사례를 넘치도록 발견할 수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영향력이 이슬람권을 넘어 전 세계로 갈수록 커지는 현 상황을 볼 때 이슬람권 자체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는 것은 극단주의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인종차별을 배격하되, 이슬람권 자체의 문제점에 대한 엄격한 비판과 함께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극단주의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어떤 가치관으로 보든, 이슬람의 극단주의로 인한 행패는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 설령 이슬람의 문제를 비판하는 시각이 서구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태도라고 단정짓는다 해도, 각종 이슬람 광신자들의 만행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이슬람은 서방에서 가장 비판이 터부시되거나 반대로 비판이 만인에게 공감대를 얻는 종교이기도 하다.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기독교도, 유대교, 몰몬교는 단골로 웃음거리가 되는 소재이며 뿐만 아니라 인종과 성애, 국가와 문화권, 직업 등 다양한 요소들 역시 < 심슨 가족>으로 대표되는 TV 프로그램에서 개그 소재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이슬람에 대해서는 항상 중립적이거나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는 식으로 좋게 표현하는데, 사실 이슬람권을 존중해서라기보단 이슬람권에서 워낙 호전적이고 전투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애초에 문제 될만한건 알아서 삭제하는 식이다.

이슬람에 비판적인 단편영화를 찍은 뒤 무슬림 청년에 의해 살해당한 '테오 반 고흐'[26] 부터 이슬람권의 미진한 여성 인권의 실상을 알리려 노력하는 사람들까지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소말리아 출신의 이슬람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이단자'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한 아얀 히르시 알리도 살해 협박을 받았으며, 그녀를 죽이려는 암살범이 체포되면서 현재 신변 보호를 받고 있다.[27]

2005년에는 덴마크의 인지도가 낮은 신문에서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만평을 하나 그렸다는 것을 빌미로 전 세계의 이슬람권이 들고 일어나며 테러를 계획했다. 관련 기사 비슷한 입장의 불교 기독교 신자들이었다면 혀나 끌끌 차거나 일부 시위로 그치고 말았을, 무슬림의 순진함과 같은 3류 단편 영화 역시 무함마드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악마의 시 사건에서 작가인 살만 루슈디는 수년간 전세계 극단주의자들의 암살협박에 벌벌 떨며 보호를 받으며 도망다녀야 했다. 심지어 혐오자가 아닌, 해당 책의 번역가마저 국가 기관이 나서서 암살해버릴 정도였다. 2002년에 나이지리아에서는 미스 월드 개최를 앞두고 무슬림들이 폭력과 테러까지 저지를 기세로 거세게 반대하자, 이러한 행태를 비난하는 기독교 언론 중 하나가 "무함마드라면 미스 월드 여성들중 하나를 아내로 삼았을지도?"식의 비아냥을 했는데 무슬림들은 즉시 일간지 사무실에 불을 지르고, 기자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200여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일도 있었다. 이 일로 인해 폭력적인 무슬림들의 학살을 피해 기독교인 수천 명이 대피했다.

심지어 베네딕토 16세가 본의 아니게 이슬람을 다소 디스하는 말을 하자,[28] 전 세계의 무슬림들이 분파를 가리지 않고 벌집 쑤시듯이 들고 일어나며 팔레스타인 성당에 방화 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교황의 터키 방문을 맞춰 에페수스의 성모 마리아 성지를 불태우려고 시도하며 불을 지르는[29] 만행을 부리다 베네딕토 16세가 사과하고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니까 그만두기도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현대적 가치관에 따라 이슬람 신성모독죄를 없애야 한다"는 견해를 주장하고, 기독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교수형이 선고된 시민[30]을 응원했던 살만 타시르 펀자브 주 주지사가 무슬림인 자기 경호원에게 살해당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살해범인 경호원은 '이슬람을 수호한 영웅'이 되었고, 90명의 변호사가 찾아왔으며, 수백명의 군중들이 그를 맞이하며 환호했다. 해당 경호원은 2016년 사형을 당했지만, 이후 묘지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성역이 되고 현재도 수많은 극단주의자들이 방문하여 그를 찬양하고 있는 막장 상황. 심지어 살만 주지사의 4주기 추모 행사에도 '이슬람 신학생'[31]들이 쳐들어와 AK-47 총알세례를 퍼부으며 행사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파키스탄의 광기, 신성모독법

2015년에도 그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고소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여러 종교(가톨릭 등)들과 무함마드를 풍자한 세속주의 성향의 프랑스 현지 언론사 샤를리 엡도에 무슬림 폭도들이 쳐들어가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쳐대며 언론인들과 관계자들을 무차별 집단 살해해 수십여명이 죽고 다친 충격적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문서로.[32] 테러 사건 이후에도 샤를리 엡도 최신호에 무함마드가 나오자 또다시 전 세계적으로 들고 일어났으며(…) 니제르 같은 나라에서는 일반 무슬림 주도의 유혈 폭동이 일어났고 프랑스 문화원이 불타기도 했다.

그렇게 이슬람권에 대한 사소한 비판도 서구사회에 있어선 안된다고 보면서 정작 이슬람권인 이집트에서는 여성 작가인 파티마 나웃[33]이 이슬람 종교행사에서 가축이 도살되는 것[34]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35]이라며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광신 이중잣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한 블로거가 정치적·종교적 이슈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블로그를 만들었다는 이유 신성모독으로 체포되어 징역 10년과 태형 1000대(!), 벌금 3억원(…)을 선고받았으며 다른 블로거는 "나는 무함마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그를 친구처럼 대하고 싶다"는 평범한 글을 올렸다가 정부에서 ' 이단'으로 낙인이 찍혀 살해 협박을 받으며 말레이시아로 도망쳤지만 추방되어 신성모독으로 징역형에 처해졌다. 모리타니의 블로거 무함마드 셰이크 울드 음카이티르는 모리타니의 신분 차별 관습을 비판하면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슬람 초기인 7세기 상대 부족과 전쟁했을 당시 신분 차별제도를 용인했다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거론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이라며 총살당했다. 기사1 기사2

그러나 이슬람을 비판하거나 풍자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에 관련된 종교음악을 사용했어도 신성모독형이 선고된 적이 있었다. 파키스탄의 여배우 비나 말리크은 모의 결혼식에 단지 아이샤 빈트 아부 바크르의 결혼식 음악을 사용했을 뿐인데 신성모독형으로 26년형이 선고되었고 두바이로 도망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슬람권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풍자, 비판하는 것 자체가 '전 세계'에서 그야말로 거의 철저하게 봉쇄되어 있는 셈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뭣보다 이러한 풍자나 비판에 대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나 옹호하는 측은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를 존중하라!"라고 하면서 비판하는 측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는데 이는 현대 사회에서 "존중"을 단단히 오해하는 것이다. 누가 됐건 어떠한 의견이던 간에 말할 수 있게하고 그것을 경청하는 것이 "존중"인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존중"은 실제로는 존중이 아니라 이슬람 측에 유리한 " 검열"이다.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와 그 이후에도 계속 발생하는 풍자/비판에 대한 테러, 암살로 인해 전세계 대중에게 '이슬람은 자기들을 건드리면 진짜 행동으로 응징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었으며, 각국 정부가 테러범 당사자들을 처벌하는데에 그칠 뿐 배후에 있을 이들을 근원까지 확실히 응징하지 못하는 모습[36]을 보여줌으로서, 이슬람권에서는 얼마든지 '이슬람 정신에 투철한 자발적 테러범'들을 활용해 일방적으로 세속주의자들을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다. 퇴행적 좌파 행위를 하는 사람들 중 일부 또한 이렇게 공격을 받거나 다른 사람들이 희생될게 두려워 스스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악행을 외면하고 옹호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이런 극단적인 공포 전략은 불행히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이러한 행태가 자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의 패권을 이렇다할 불이익 없이 확실하게 얻어갈수 있는 방법을 마다할 집단은 없기 때문이다. 각국의 효과적인 대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5. 지역에 따른 극단주의

5.1. 아랍 지역

중세 시기까지 아랍에 비해 다방면에서 뒤쳐져있던 기독교의 서유럽은 대항해시대 이후 아랍을 문명적으로 앞서기 시작했고 근대에 이르면 정체되다시피 한 아랍에 비해 넘사벽으로 발전하게 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랍을 침략, 아랍 지역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아랍인들, 더 나아가 무슬림들의 자존심은 깊은 상처를 받는다. 내려다 보던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한국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슬람 모더니즘으로 시작한 아랍인들의 개혁 운동은 2가지 방향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아랍인들이 종교를 떠나서 민족주의를 비롯한 근대 서구의 이데올로기까지 적극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은 아랍 민족주의로 발전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이 너무 많이 왜곡되는 바람에 서구에 대항할 동력 자체를 상실한 것이라고 본 관점이다. 이들은 이른바 순수한 이슬람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후 와하브파 혹은 이슬람주의로 수구화되었다. 이후 걸프 아랍 왕정 국가에서 유전이 터지면서 오히려 서구화를 거부한 이슬람 보수파의 발언권이 더 커졌다. 바로 이점이 똑같이 침략받았지만 서양식 선진 제도나 전통적인 악습 철폐 등 서구의 발전된 요소들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비이슬람권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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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권의 현대적 이슬람 극단주의의 본격적인 촉발점이 된 사이드 쿠틉[37]. 이집트 출신이자 무슬림 형제단에서 활약한 그는 단순히 개인 차원의 신앙으로서의 이슬람이 아니라, 전 세계를 폭력으로 정복하고 모든 이슬람 지역에 샤리아를 강제해야 한다는 과격 정치 이념으로서의 이슬람을 극단적으로 주장했고, 엄청난 지지자를 얻어 이슬람 극단주의를 퍼트려 나가는 이념적 선구자가 되었다. 알 카에다 등의 과격이슬람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탄탄하게 제공해준 악당으로도 유명하며, 지금까지 전 세계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아이돌이기도 하다.

독립 이후에도 아랍인들의 삶은 순탄치 못해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강대국들의 손길이 아랍 지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랍인들의 반미 감정이 그토록 강함에도 정작 대다수의 아랍 국가들이 친미 국가거나 친미 국가였었던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석유 자원의 확보공산주의 확산 저지[38]라는 목적 아래 아랍 국가의 독재자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랍 지역이 독재자들의 장기 집권에 고통받고 그로 인한 발전의 정체 및 삶의 질이 하락하는 원인이 된다. 이렇듯 근대 이후 아랍의 이슬람 문화권은 종교, 역사,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유럽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기독교 문화권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여기에 현재의 이스라엘 문제 등이 더해지면서 자연히 뿌리깊은 반서방 정서를 갖게 된다.

아랍 독재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이슬람주의 세력을 탄압했다. 무슬림 기득권 성직자 등을 견제하다보니 독재 시기에 소수종교는 오히려 더 나은 대우를 받았고, 사회적으로도 발전된 서구 문물을 더 많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독재자들이 국민 억압과 정권 부패 등으로 국민의 지지를 상실하면서 대척점에 서있던 이슬람주의가 그 대안 세력이 되어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된다. 이는 기존 전통의 빠른 붕괴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보수적인 가치관와 결합하여 이슬람 근본주의로 회귀를 주장하는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들 독재자들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력하고 철저하게 탄압했기 때문에 당연히 과격파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이 바로 아랍의 이슬람 극단주의의 시작이다. 거기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권력만을 신경쓸 뿐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이나 국가의 질적 성장을 신경쓰지 않았고 이것은 그 이전의 식민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독재자들은 엄연히 세속주의자이자 아랍사회주의자였으면서도 이슬람주의를 지원하기도 했다. 유럽의 이슬람화 발언을 한 무아마르 카다피부터, 엄청난 양의 모스크를 건설하는데 많은 돈을 투자한 사담 후세인,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이슬람주의를 들고 나온 오마르 알 바시르 같은 자들은 결국에는 몰락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몰락과 함께 이슬람 근본주의까지 엄청나게 확산시키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정작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을 보면 이런 과거사에 대해서는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현재를 생각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같이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조상승계의식이 강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강하게 나타나며,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 현재' 시점에서는 대개 감정대립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민족국가가 완성되면 그것으로 투쟁의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된 것이다. 수십년전 과거의 역사가 '지금 현재' 전쟁, 테러를 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당했고 여기에 많은 한이 맺혀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테러 조직을 만들어서 일본을 공격해야 한다'거나 오직 '복수만을 위해서 일본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이러한 역사 자체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구체적인 역사적 계승성 따위는 별 생각도 하지 않는 모습을 더 많이 보인다.

사실 이들은 초기 이슬람 성립사를 제외하면 과거 이슬람 제국의 역사 자체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이슬람 국가는 십자군 전쟁의 영웅 살라흐 앗 딘의 성채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이 서방을 적대하는 것은 "불신자 이교도는 죽여라."고 책에 써있기 때문이지 "역사적으로 아랍 국가를 많이 괴롭혔기 때문에…"가 아니다. 이들을 반서방 옥시덴탈리즘 정서에 입각해 소위 서구 제국주의 질서에 맞서 싸우는 위대한 독립투사들 마냥 왜곡해서 생각하면 안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을 '민족독립투사'들 마냥 이해하는 것은 그저 '우리 방식대로' 이슬람을 이해하는 왜곡된 관점에 불과하다.

5.1.1. 아랍 민족주의와의 관계

아랍 세계에 존재하는 정치적 사상은 크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아랍 민족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 근본주의다. 아랍 민족주의의 한 갈래가 아랍 사회주의이며, 다른 하나가 이슬람 근본주의다. 이 둘은 현대 아랍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의 발단에 대한 분석부터 해결책까지 아주 상이하며, 결코 하나로 융합될 수 없다. 이 점을 간과하거나 혼동하면 전체적으로 틀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 둘의 차이를 매우 간과하고 혼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관계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비유한다면 이렇게 볼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아무리 공산주의와의 절충안을 낸다고 해야 케인즈식 자본주의, 북유럽형 복지국가 정도이지, 그 이상의 양보 - 즉, 시장 자체의 부정은 힘들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랍 민족주의에서 백 번 양보해서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이슬람 교리에 부합되게 몇몇 법 조항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발전을 위해 필요한 서구 제도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산주의에서 사유 재산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시장경제적 요소를 어느 정도 도입하는 양보를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최종 목적인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한 단계에 불과할 뿐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에서는 아랍 세계의 통일이 이슬람 세계 건설의 단계로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최종 목적이 될 수는 절대 없다. 알 카에다가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아랍인도 아닌 무슬림들이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이들의 목표는 이슬람 낙원을 지상에 건설하는 것이며, 이 이슬람 낙원에서 민족 구분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 제도 및 사상의 수용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 개혁 및 정권 획득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정도를 받아들일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서구 민주주의 제도에 따른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 창당 및 이 정당의 합법적 정치 활동 등. 그러나 이는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슬람 근본주의에서는 서구화 자체가 이슬람 세계를 망쳐놓은 주범으로 본다. 정확히는 순수했던 초기 이슬람에 가해진 모든 종류의 변질을 이슬람 세계를 망쳐놓은 주범으로 본다.

이들이 지목하는 변질 중 오늘날 가장 강력히 아랍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서구화이기 때문에 서구화 자체를 이슬람 세계를 망쳐놓는 주범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랍 국가들 내부에서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손을 잡는다 해도 너무나 쉽고 빠르게 결렬되어 버린다. 그들은 대개 아랍 민족주의자와 손을 잡는 것 자체를 적대행위로 간주해 버리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을 예로 들자면, 파타와 인민전선 등을 비롯한 PLO는 아랍 민족주의 노선[39]이고, 하마스는 이슬람 근본주의 노선이다.[40] 또 다른 예로 시리아에서는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군과 자유 시리아군(FSA) 일부 세력은 아랍 민족주의이고 ISIL과 알 누스라 전선을 비롯해 반정부군 상당수는 이슬람 근본주의 노선이다. 이집트의 경우에도 군부정권은 아랍 민족주의의 이념에 비교적 가깝고 무슬림 형제단[41]을 비롯한 야권세력 상당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쉽게 연합전선을 구축하지 못하고 오히려 중동 전역에서 서로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인 상황인 것이다. 90년대 알제리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 정권과 아랍 민족주의에 가까운 세속주의 군부 사이에 내전이 발생해 나라가 난장판이 된 적이 있고, 현재진행형으로 리비아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세속주의자들이 나라를 헬게이트로 만들며 싸우고 있다.

현대로 한정하여, 아랍 지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의 역사는 아랍 민족주의와의 대결의 역사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이야 알 카에다의 9.11 테러 때문이지만, 이들은 그 이전부터 계속 아랍 사회 내부에 존재해왔고, 아랍 민족주의 세력과 충돌 및 대정부투쟁을 수행해오고 있었다. 이 점을 무시한다면 왜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자헤딘들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아예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집트 2대 대통령인 아랍 민족주의자 안와르 사다트가 무슬림 형제단 이슬람주의자들 손에 사살된 것은 1981년이며, 9.11테러는 2001년이다. 미국 본토에서, 혹은 서방 국가에서 테러를 일으키려 했다면 2001년보다 그 이전(특히 70년대)이 훨씬 쉬웠다.

수많은 하이재킹, 각종 이념을 위해 활동하던 테러단체의 다양한 테러활동이 창궐하던 시대에 아랍인들이 서방 국가에서 테러를 자행하지 않은 것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 목표가 80~90년대를 전후한 어느 순간, 자신들의 국가의 아랍 민족주의 정부에서 자신들을 제외한 전 세계의 세속주의 및 타종교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알 카에다 문서로. 위에 나오는 아랍 국가들의 독재자들은 아랍 민족주의 세력에 들어간다는 점을 잘 기억해두자. 아랍 세계의 독립은 터키인들에 대한 민족적 반감,[42] 영국 및 프랑스로부터의 민족주의에 근간한 저항을 토대로 한 독립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랍 국가들에서 집권 세력은 아랍 민족주의였다.

다만 21세기 시점에서 아랍 민족주의는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웠던 독재자들이 차례 차례 몰락하면서 크게 쇠퇴하였다. 각 국가에서 정권의 중심으로서 어느 정도 기반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데올로기로서의 호소력은 많이 떨어진 상태이며, 현재로서는 아랍 민족주의가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항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43]

5.2. 아랍 이외 지역

파일:DEAC8F07-6EEE-4619-8E4C-33F726AE4DC1.jpg 2021년 9월, 탈레반이 판지시르 아흐마드 마수드가 이끄는 온건파 (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군대와 9월 5~6일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하고 시청에 입성하자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 등지의 근본주의 무슬림들이 탈레반에게 유튜브에 축하 댓글을 남겼다.

벵골어 댓글: 하나님의 사도이신 무함마드(그분께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길)[44]의 이름으로, 온 세상이 이슬람에 귀속되기를.

영어 댓글 1: 이슬람의 깃발이 언제나 세속주의자/국가주의자/이슬람혐오자 위에 나부끼길! 방글라데시에서 탈레반 무자헤딘 여러분께 댓글로 축하를 보냅니다!

영어 댓글 2: 탈레반이 승리를 외치는 걸 보고 싶네요.

영어 댓글 3: 알함두릴라! 세상 무엇보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탈레반 여러분께 함께하길! 인도네시아가 당신들과 함께합니다.

5.2.1.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에서도 아체 지방 같은 곳에서는 중앙정부의 말을 씹고 분리독립 운동을 통해 아체를 샤리아만이 시행되는 자치 지역으로 만들었으며, 아체에서는 종교 경찰이나 타 종교 탄압, 샤리아 율법 강요 등 위에 설명한 지옥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정부는 분리독립은 막으려 하면서도 이러한 극단주의와 무수한 인권탄압이 판치는 아체 내부의 상황에는 손놓고 있는 현실이다.
파일:external/image.newsis.com/NISI20141006_0010214247_web.jpg
인도네시아 사창가 폐지를 요구하는 극단주의 시위대.
IS 깃발이 새겨진 두건에 주목.

사실 사창가 폐지 요구 자체는 합당한 요구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 근본주의가 도입되는 즉시 매춘과 성범죄가 사라지리라고 막연히 생각한다는데 있다.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종종 성범죄자들이 사형을 당하는 사례도 없지 않아 있지만 빽 있는 사람은 성범죄를 저질러도 이슬람 근본주의를 방패삼아 요리조리 처벌을 피하면서 아무 제재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는 엄연한 세속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국민들의 성적 자유를 철저히 금기시하면서, "성적 방종 = 화교 기독교인"같은 공식을 세우며(...) 반기독교 감정을 부채질하고 사실상 이슬람과 상관 없는 미스 월드같은 국제 대회마저도 테러까지 저지를 기세로 폭력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인도네시아 정부도 관광업이 타격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극단주의자들을 조지려고 애쓴다.[45] 하지만 많은 무슬림들이 세속주의 성향이라고 알려졌던 이 국가에서도 2010년대를 지나면서 극단주의자들의 세력과 국민적 지지가 요즘 언론에 계속해서 노출되고 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의 세속 성향이 결코 "비무슬림들의 평등권이 보장되고, 언론에서 자유롭게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고, 터키나 중앙아시아처럼 국민들의 독서율이 유럽만큼은 되는" 긍정적인 세속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인이나 유럽인 관광객 입장에서 롬복 같은 일부 관광지만 둘러보고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이 온건하고 친절하다고 여길 수가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돈많은 비무슬림 관광객들한테만 온건하고 친절하다고 보는 게 맞다. 참고로 한국인 근본주의 선교사들도 젊은 비무슬림 여자한테만 친절하다.

1990년대 술라웨시 등지에서는 제노사이드 수준의 반기독교 사태가 일어나 술라웨시의 기독교 공동체가 큰 타격을 당하기도 했고, 21세기에도 선거에서 인도네시아를 샤리아 국가로 만드려는 정당들이 항상 선거에 나오고, 세속 정당보다 세력은 다소 작아도 대단히 광적인 비이슬람 정치인에 대한 여론몰이, 마녀사냥 선동 등과 함께 이슬람 샤리아를 인도네시아 사회문화 전반에 침투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사회의 수구화를 주도하면서 꾸준히 늘어나는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근본주의자들의 입김 때문에 인도네시아는 혼전성교에 대한 처벌규정이 도입되었으며, 군경에 입대하는 여자들에게 처녀성검사를 하는 막장 정책이 버젓이 도입되었다. 또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기독교도 출신 아혹 전 주지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쿠란의 구절들을 악용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으로 고발[46]당해 2년간 감옥살이를 하다 2019년에야 출소하기도 했다. 조코위 대통령의 새 러닝메이트 역시 이슬람 율법학자 출신으로, 극단주의자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 아체같은 자치 지역에서는 사실상 사우디아라비아나 다름없는 수준의 폭압적인 샤리아 강요와 이슬람 광신 통치가 이뤄지고 있다. 인권 그런 거 없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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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아체 주에서 2015년 12월 28일에 모스크 앞에서 집행된 태형을 받고 쓰러진 무슬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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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아체주에서 간통죄 처벌로 무슬리마에게 공개적으로 채찍형을 가하는 모습
채찍으로 맞는 게 아픈 것은 둘째 치더라도 공개적으로 수모와 망신을 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이런 처벌을 받은 이후 정신이 훨씬 더 피폐해지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극단주의자들은 기독교 신자들이 교회에 가는 길을 가로막고 교회가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거나 교회 밖에서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중부의 술라웨시에서는 극단주의자들이 기독교인 소녀 3명을 참수하여 잘린 목을 교회 앞에 던져놓고 가는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을 지칭할 때 "알라"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법원에 제소했다. 애초에 "알라"라는 단어는 단순히 ‘신’ 또는 ‘하느님’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로, 오래 전부터 말레이시아어 성경 등에서 하느님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했기에, 이를 금지하는 것은 영어로 치자면 교회에서 God이란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법원은 가톨릭 신자들의 손을 들어줬고, 그 즉시 무슬림들이 출동하여 성당을 불태우고 신부들을 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2013년 10월에 항소법원에서 이를 뒤집는 판결이 나왔다. 말레이시아 항소법원, 기독교 '알라' 표현 금지 (미국의 소리)

5.2.2. 서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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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 하람 주요 테러 지역 지도(2009~현재).
보코 하람의 탄생지인 동북부 지역(보르노 주)과 특히 북부 지방에서도 기독교 신자가 많은 카노(Kano) 시가 이들의 주요 공격 타겟이다.

나이지리아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무슬림이 많은 북부 지방에 이슬람 샤리아강요하려 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하였는데, 문제는 나이지리아 세속 국가이며, 무슬림 숫자가 50%에 달하지만 기독교도의 숫자 역시 거의 50%에 달하며 아프리카 토착신앙을 믿는 사람들도 있는 다종교 국가라는 것. 더군다나 중앙정부에서 이슬람주의를 반대하고 있었는데, 연방제 국가라고는 해도 지방정부에 불과한 이슬람 북부 주들이 정부에게 바득바득 개기며 끝내 샤리아를 도입시켰다. 우스운 사실은,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북부지역 국민들에게 샤리아를 강요하면서 내세운 핑계가, "나이지리아의 만연한 부패와 범죄의 유일한 해결책은 샤리아밖에 없다"는 궤변이었는데, 정작 샤리아가 도입된 이후에도 무슬림 기득권층의 부패는 여전한데다 범죄가 줄기는커녕 기독교와의 종교 내전 및 같은 이슬람 광신자들인 보코 하람의 테러와 반란으로 치안마저도 샤리아 도입 이전보다 훨씬 더 개판이 되었다.

당연히 북부지방에 살던 기독교 신자들은 자기 종교도 아닌 이슬람법에 의해 엄청난 제약과 차별을 겪게 되었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만연한 공격과 이에 대한 기독교 신자들의 반격[47]으로 나이지리아는 종교 내전 수준의 이슬람 기독교 간의 폭동과 유혈 폭력갈등사태는 2020년대가 가까운 현재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2001년에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사악한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죄없는 선량한 탈레반을 침공한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핑계[48]를 대며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는 나이지리아의 기독교인들에게 죄를 덮어씌워 교회를 습격하고 신자들을 학살하고 다녔다.

최근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이슬람이 아닌 모든 종교와 사상을 박멸하겠다는 보코 하람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반란군들이 관공서와 경찰, 교회, 성당, 기독교계 미션스쿨을 공격해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 학살을 잔혹하게 저지르고 폭탄 테러를 저지르며, 여학생들을 납치하고 노예로 팔며, 대다수 무슬림들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보코 하람 문서로.

거기다 이들은 나이지리아의 무슬림 형제단들에게까지 자기네들의 기준으로 온건파 무슬림들을(사실 하는 사상이나 행실을 보면 무슬림 형제단조차도 극단주의지만)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테러를 가해, 백수십명의 사상자를 만들기까지 했다. 또 무슬림들은 최근에도 교회에 대한 방화와 예배 미사 중에 떼로 난입해 돌을 던지고 신자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밥먹듯이 저지른다.

5.2.3. 남아시아

인도 무슬림 출신인 아불 알라 마우두디[49]이슬람은 단지 종교가 아니라 삶의 혁명 강령이며, 이슬람 극단주의 정당을 통해 이를 성취하고 나아가 무슬림의 의무인 지하드로 세계적인 이슬람 샤리아 국가 수립 및 샤리아가 개인의 모든 일상 생활을 통제해야 한다는 신정 민주주의 이론을 완성했고, 그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이슬람 국가는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파키스탄에서는 1953년 소수종파 아흐마디야 신도가 외무부 장관에 임명되자 자마아티 이슬라미의 당수 아불 알라 마우두디가 여기에 반발하며 근본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아흐마디야 제노사이드를 일으킬 것을 선동했다. 이로 인해 위협을 느낀 아흐마디야 신도 상당수가 해외로 망명하는데 이들 중에는 파키스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무함마드 압두스 살람도 있었다. 2011년에는 파키스탄 정부의 당시 유일한 기독교도 장관인 셰흐버즈 바티가 탄 차에 파키스탄 탈레반이 총알 수십발을 난사했다. 조카와 함께 있던 바티 장관은 사망하였다. 2011년에는 파키스탄 시골 마을 결혼식에서 하객들이 박수치며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 하나로 해당 마을 이슬람 원로들이 노래하고 박수친 사람들을 명예살인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이를 집행한 참극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를 고발한 피해자의 형제 및 가족들까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당하는 막장 사태가 2019년까지 계속해서 벌어지기도 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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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미국에 테러를 감행하려 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무조건 석방하라고 시위하는 파키스탄 시위대( #).
이런 사람들 다수는 반미 성향의 극단주의를 가진 일반 무슬림이다. 더욱이 파키스탄은 20세기 중후반만 해도 세속 성향이 나름 강했으나 1979년, 군부정권의 우민화 정책에 의해 샤리아에 기반한 여성 인권 침해 악법이 도입되었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이웃한 아프가니스탄으로 퍼져나가 더욱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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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의 반민주주의 시위.
"우리는 민주주의가 필요없다. 오직 이슬람만을 원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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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이슬람 비판 금지법 도입 요구 시위 #
자세히 보면 뒤에 서 있는 인물이 탈레반 깃발을 들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 극단주의 영향은 800년동안 불교와 이슬람이 공존한 스리랑카에도 종교갈등을 부추키고 있다. 남아시아 아랍권에서 이민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횡포로[50] 인하여 갈등이 일어나자 스리랑카 인구 70%를 차지하는 불교 신자들의 분노를 초래해 오랜 세월 공존한 이슬람에 대한 차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사실 스리랑카는 인구 대다수가 불교도인 불교국가이며, 그밖에 힌두교도도 많은데 힌두교도도 스리랑카 내전 때문에 불교도들에게 증오와 반발로 차별을 받는 와중이다. 역사유적을 다짜고짜 파괴하려는[51] 이슬람 극단주의로 인하여 스리랑카 불교도들도 극단적인 사상으로 치달아가며 두 종교 및 나아가 외부 기독교라든지 여러 종교에 대한 반발로 더 이어지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5.2.4. 이란

시아파 버전 이슬람 근본주의의 끝판왕 국가이다. 팔라비 왕조 대에서는 세속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진 않았어도 종교의 자유가 있었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옷차림을 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처럼 이 나라의 당시 사진들과 현 신정체제 하의 사진들을 비교하는 게시글들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란 혁명 이후 팔라비 왕조가 쫓겨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정권을 잡은 호메이니가 이슬람 율법을 기조로 하는 신정 체제를 수립하면서 극도로 억압적인 국가로 탈바꿈하였다. 명목상 아랍 왕정과 달리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었다고는 선전 중이나, 대통령 위에 라흐바르가 있고 대통령은 그저 바지사장일 뿐이다. 이 나라의 헌법 중 하나가 시아파에서 말하는 마흐디가 재림할 때까지 라흐바르가 통치를 대행한다는 것이다. 이 라흐바르의 말에 따라 국가의 정책이나 사람의 생명줄까지 들었다 내렸다 할 수 있다. 악마의 시의 출간 당시 이 소설이 이슬람을 모욕한다는 이유 하나로 라흐바르가 직접 파트와를 내려 작가인 살만 루슈디와 책의 출간에 연관된 사람들에 대한 테러를 조장하고, 마침내 작가가 수십 년 만에 흉기 테러를 당한 이것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샤리아 통치의 기본 사항인 남학교 여학교의 분리, 히잡 착용 의무화, 신체 절단형,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사형 선고 남용 등등 오만가지 폐습은 당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사형수를 인도적으로 고통 없이 처형하는 대부분의 나라의 보편적 관념과 달리 이란에서는 사형수를 크레인으로 목을 매달아 천천히 들어올려 고통스럽게 처형하는 관행이 있으며, 폭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기관총을 갈겨 학살하는 등의 중동 왕정에서도 드문 행위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중이다. 2022년 이란 시위를 기점으로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그간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이란은 아랍 왕정 국가들보다 최소한 훨씬 깨어 있으며 민주주의도 정착되어 있고 여자도 교육받을 권리 등이 보장되어 있다'라던 선전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악의적으로 다른 나라들에게 행해졌는지 알 수 있다.

5.2.5. 서방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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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내전 당시 말리 세속주의 민주정권을 프랑스가 돕지 말고, 말리 세속정부를 붕괴시키고 말리 시민들에게 비인간적인 샤리아 강압 통치를 강요하는 지하드를 응원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모습.[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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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벌어진 샤리아 도입 요구 시위. 이슬람식 베일은 인간이 만든 법에서의 해방(…)이라거나 베일을 안쓰는 사람은 지옥에 가라는 등의 팻말을 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민주주의에 의해서 법의 보호를 받고 그 권리를 누리면서 그 권리를 이용해 샤리아만을 내세워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자유를 말살하는 이슬람만의 세상을 세우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점이다.[53] 이 점이 다른 비이슬람 개도국 이민자들과 완전히 다르며 이러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은 기존 서방국가의 국민들에게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며 이를 통해 이슬람포비아 현상이 생성되는 또 다른 자폭의 운명을 낳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UAE, 쿠웨이트 같은 근본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이 와하브파 신학을 믿고 있음에도 자국 내에서는 테러를 잘 벌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무슬림 국가들의 경우 근본주의 국가 세속주의 국가 할 것 없이 길거리에서 지옥 드립, 사탄 드립을 하면서 선교를 하거나 혹은 다른 무슬림에게 개인적인 불만을 가지고 함부로 타크피르(이를테면 다른 무슬림에게 너는 카피르[54]야 혹은 너는 무나픽[55]이야 라고 삿대질하는 행동)를 하면 이집트 같은 경우 경찰한데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고 터키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경우에는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이런 극단주의적 언행이 2015년 이전에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서구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무슬림들 중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주로 온건파)을 대상으로 멋대로 타크피르를 벌이면서도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이 되자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이들이 테러리스트 공급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물론, 무슬림들도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기에 온건파들의 경우, 비무슬림들이 결코 자신들이 선입견 가졌던 것과는 다르다는 걸 확인한 후에 결국 자신들이 받았던 이슬람 교육과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 비인간적이라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자성운동을 펼치기 매우 어려운 게, 보통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직업이 없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같은 무슬림이라 해도 지들 맘에 안들면 때로 몰려가서 일상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판국이니 개인 혹은 소수집단으로서는 이슬람에 대해 약간의 개혁시도만 해도 극단주의자들에게 시달리다가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지거나 심지어 살해까지 당하기도 하는 등의 결말 밖에 나지가 않는 것이다. 이슬람에 개혁운동이 없다고 무조건 이슬람 온건파들을 비난하기보다는, 무조건 무식한 사람들이 모여서 쪽수로 밀어부치면 장땡인 현대의 부패한 무슬림 사회구조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정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지만, 민주주의를 얌체같이 악용하는데 이들만큼 뛰어난 사람들도 드물다.(...). 최소한 그 나라에서 그 나라 국민으로 산다면 그 나라 국민 행세라도 했어야 했지만, 이런 최소한의 도리를 저버리고 그 나라의 국민성보다 이슬람 율법의 가치를 더 우선적으로 여기기에 그 결과는 당연히 예상가능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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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독일에서 경찰을 공격하는 무슬림들.

샤리아를 법 전체에 적용시킬 수 없다면 자기네들이 많이 사는 구역을 이슬람 자치 지역로 만들어 그 안에선 샤리아를 적용시킬 수 있게 하라는 주장을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기는 무슬림 지역이라며 협박하는 등 행태는 더 심각해져 갔으며, 심지어 2013년 영국 런던에서는 이 샤리아 조폭들이 지나가는 연인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게 이슬람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협박하고 집단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출처 이에 따라 반이슬람 시위도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등 마찰과 대립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장 수백년간 그 땅에 살아온 내국인들도 자기 사는 지방을 독립국으로 만들려 하면 국가적으로 파란이 일어나는 판에, 밖에서 굴러 들어온 외부인이 느닷없이 땅을 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니 과연 이를 허가할 나라가 있을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기존 서구 사회의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굴러 들어온 것들이 자국의 법과 질서를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숭고하고 소중한 민주주의를 웬 버러지 같은 논리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중세 이슬람의 법률만이 진리라는 식으로 나오면 제 아무리 관용과 진보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도, 환멸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 결과 과거에는 크게 호응을 못 얻던 극우정당들이 반이슬람적 가치를 내세워 점차 입석하기 시작했고, 아예 헝가리 같은 나라는 극우 정당이 단독 집권까지 해버렸다. 결국 겉으로만 보면 이슬람주의자들의 세력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극단주의자들의 만행과 횡포로 사실상 고립이 시작되고 있다.

사실, 많아 보이는 서유럽 국가의 무슬림 수는 미국의 아시아계 인구와 비슷한 1천 800만명이다. 이들이 다 이민자인 것은 아니고 일부 개종자도 있다. 사실, 이슬람이 서방 선진국 소수자들에게 '대안 종교'로서 지지받은 것은 상당히 역사가 깊다. 특히 민권 운동 시기, 기독교 백인들에게 강요된 종교라고 보고 회의를 느낀 미국 흑인에게 이슬람은 대안 종교로서 각광을 받았는데, 네이션 오브 이슬람 같은 이슬람계 종교를 조직하거나, 맬컴 엑스처럼 메카를 순례하여 정통 이슬람 교리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무하마드 알리 카림 압둘자바, 마이크 타이슨 등 스포츠 스타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례도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터넷이나 방송이나 출판 등의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슬람주의가 서방 선진국의 이슬람 국가 출신의 이민자 혹은 일반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슬람을 접하면서 이전의 자신을 서구 문명의 쾌락에 물들어 살던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태'로 여기다가, 이슬람 교리에 따른 엄격한 삶을 실천하고, "이슬람 원리주의 가치관에 안따르는 사람들은 모조리 타락한 불신자이고 지옥에 갈 쓰레기이자 창녀들"이라는 극단주의자들의 선동에 세뇌당해 자신들은 세속 정권에 박해받으면서도 하나님의 길을 폭력적으로 따르는 신실한 무슬림/무슬리마라는 뇌내망상으로 소위 '도덕적 성취감'을 얻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그 최종 결말은 당연히 지하드, 테러다. 이민자 자녀들 가운데 사회 하층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사회적 차별을 받으며 고통을 받던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언론의 자유에 따라서 당당하게 출판되어 서점에 내걸린 책 등을 통해 본토박이(?) 이슬람주의자들과 접촉하거나, 그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는 자신의 고통을 궁극적으로 서구 사회와 기독교 문명으로 돌리게 되면서 지하디스트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러한 자생적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에 협력하거나, 조직적 연계도 없이 독자적으로 테러 방법을 습득하여 테러 범죄를 벌이는 '외로운 늑대' 유형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사회에서 이슬람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나 이슬람 자체에 대한 시선이 나빠지고, 그로 인한 차별을 겪은 이민자와 현지 무슬림들은 다시 이슬람 극단주의에 몰입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테러를 저지르는 무슬림 중 상당수는 이슬람은 그냥 간판으로 내걸기만 하고 진짜 이유는 사회 불만에 따른 묻지마 범죄인 경우도 간혹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회 낙오자 형제가 저지른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2015년 2월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와 유대교 회당 테러도 전문가들은 마찬가지 사례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차별 때문이라고 옹호할 여지가 전혀 없는 이유가, 아랍의 기독교도를 비롯한 소수 종교는 유럽의 무슬림보다 훨씬 더 차별받지만 테러를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서구에서는 성공한 테러뿐만 아니라 준비단계에서 발각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은데다가 서구의 군사활동에 대한 복수라는 명목으로 이민온 무슬림이 서구 현지인을 살해하는 경우는 너무나 흔한 나머지 기사거리도 못 된다. 굳이 테러같은 사례가 아니라도 이들 이슬람주의자들은 서방 국가들 내에서 여러가지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명예살인이라든지 여성 감금이랑 폭행, 학대나 일부다처제 같은 서방 선진국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고 심지어는 반국가적인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2005년 프랑스 무슬림 폭동에서는 이슬람권의 청년들과 젊은 이민자들이 주축이 되어서 프랑스 350개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켜 6,400대의 차량을 불태우고 국가를 대혼란에 빠트리는 극심한 폭동을 저질러 무려 1,600명이 구속되었다. 2005년 파리 교외 소요사태 (위키) 유럽의 무슬림 프랑스 폭동 1년 (한겨레) 이 역시 무슬림에 대한 이미지를 악화시켜 갈등을 유발하고 무슬림이 반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 프랑스 폭동이 대표적이다. 물론 서방 국가들도 가만히 있지 않아 폭동을 가차없이 진압하고 극단주의자들은 법에 따라서 처벌한다. 동화정책의 영향으로 유럽 안에서 무슬림이 국가 정체성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42%) 프랑스에서조차 무슬림 정체성이 우선한다는 의견(46%)이 더 높았으니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들 중동 땅에서 이슬람이 저지르는 박해를 피해 스웨덴까지 이민온 중동의 소수 기독교인들 공동체에 개종 안하면 살해한다는 협박을 해대기도 한다. 2016년에는 영국에선 한 무슬림[56] 부활절을 맞은 영국 기독교인들에게 축하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글을 올린지 불과 4시간 뒤 극단주의자에게 추적당해 살해당하기도 했다.[57]

더 큰 문제는 이슬람주의의 영향으로 이민자 2, 3세대 사이에서도 근본주의가 번진다는 점이다. 정확히 살펴보면, 무슬림에 대한 차별 문제도 있지만 서구사회의 이민 2, 3세대가 이렇게 심각하게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이유는 이슬람주의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은 이민 1세대의 책임이 크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소설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사탄의 유혹이라 엄금하며 자녀들에게 게임이나 음란물을 통해 사탄을 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자녀에게 컴퓨터를 쓰지 못하게 막을 것을 요구하지만, 정작 성범죄나 성금 횡령을 하는 선교사들에 대한 비판만은 엄금한다. 이러한 이유로 기초적인 워드나 파워포인트도 활용 못하는 무슬림 아동들이 많다. 이민자 2, 3세들을 학교로 보내지 않고 쿠란 하디스만 공부시키는 경우 오히려 사회 부적응 문제가 더 심각해져서 알콜 의존증이나 성범죄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58] 이슬람주의자들은 무슬림들 중 타 종교나 문화에 개방적인 사람들에게 사적제재를 가해오며 가부장적 문화만을 강요하는 등[59] 2, 3세들이 서구사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것을 방해해왔고, 자연스럽게 이후 세대들이 이슬람 근본주의 가치관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물들이게 만들었다.

이는 90년대 공산주의 블록 붕괴 이후에 유럽 동남부에서 서유럽으로 이민온 보스니아, 알바니아, 코소보발칸 반도의 무슬림들은 적어도 문맹은 없었고 극단주의자도 없었기에, 중동의 이슬람권 난민들도 유고슬라비아 출신 무슬림 난민들하고 똑같으리라고 생각하며 아랍인,남아시아인 난민들의 근본주의 성향을 예상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이민간 레바논계 기독교도 아랍인은 아무런 차별이나 이질감 없이 현지 문화에 잘 융화되었지만, 서유럽의 아랍인 무슬림 이민자들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흑인 난민과 비슷한 수준의 취약계층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흑인에 대한 차별이 이질적인 외모에 대한 거부감에 의한 것이라면, 아랍인 무슬림은 외모가 서구인하고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과 상호 이질감이 크다. 차라리 제 3세계의 비무슬림을 대거 받아들였다면 비록 이민자 고향의 정부가 부패하고 범죄나 치안이 불안한 국가에서 왔다 하더라도 그들의 모국들과는 달리, 비교적 선진적이고 부패하지 않은 서구 국가들의 정책과 사법체계로 인원이 많지 않다는 전제하에서는 큰 문제 없이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이민자들이 치안이 불안한 국가에서 왔다고 해서, 사법체계가 엄격하고 치안이 확실한 선진국에서까지 범죄를 거리낌없이 저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애초에 전근대적인 샤리아만을 내세워 현대적 인간의 기본권 자체를 부정하며 이를 모조리 타락한 서구의 잔재로 몰아 서구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무조건 이슬람적인 가치만을 유럽에 강요하려 하기 때문에 앞으로 골칫덩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 따라 조금이라도 무슬림 신자들을 정당하게 모니터링하면 수많은 일반 무슬림들과 친이슬람 옹호자들이 "다문화주의를 침해하는 인권침해." 라는둥 "역사적으로 착하고 관용적(이었던) 이슬람을 왜 차별하고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거임? 이거 이슬람포비아임!" 같이 답이없는 소리를 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의 동아시아권 국가들은 아직까지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고민하는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동아시아에 유입되려는 무슬림 이민자는 인도네시아, 아니면 중앙아시아 출신들인데, 인도네시아인들 같은 경우에는 아체처럼 보수적인 지역을 제외하면 싱가포르의 말레이인들보다도 오히려 더 세속적이며, 중앙아시아 출신 무슬림들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할 뿐만 아니라 문맹이 거의 없다. 허나 싱가포르의 이웃 국가인 말레이시아가 점점 이슬람 근본주의화되어가고 있고, 남아시아 무슬림 이민자들이 급증하는 추세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약간은 다른 예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 보스니아 같은 경우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보스니아 내전을 겪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로 보스니아인들은 내전을 겪으면서 자신들이 유럽인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 세르비아 민병대가 무력의 우위를 앞세워 자신들을 침탈하고 학살하고 강제추방하고 성폭행하는 동안, 서구와 러시아의 입장은 양편 모두 서로 ’자제‘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균형논리를 앞세워서 철저히 중립적이었다.[60] 내전 이전까지 보스니아 무슬림들은 술도 잘만 마시고, 기독교 교리랑 이슬람 교리를 동시에 다 믿는 나이롱 이슬람 신자로 유명했었다. 서구 유럽이 종교개혁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고 신앙이 개인적으로 내면화되는 과정을 거쳤듯이, 때마침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영향도 한몫했다. 보스니아의 무슬림들은 중동의 무슬림들과는 달리 이슬람으로 개종했던 역사가 오래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샤리아 법의 영향도 적게 받았다.
하지만 내전이 벌어지고, 다른 유럽 국가들이 보스니아 내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걸 보고 오히려 중동의 국가들에 더 가까워지고. 독실하면서도 근본주의적인 무슬림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여성들도 기존 자유로운 복장 대신 히잡을 쓰는 경우가 많이 늘었고. 1970년대까지 많이 세속화돼가던 중동의 이슬람 신앙이 1980년대를 거치면서 보다 더 ‘원리주의적’ '극단주의적'인 모습으로 ‘퇴행’해 간 현상과 너무 유사하다. 이 역시 그 배경엔 미국과 서구세계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무지와 편견, 외면, 그리고 현실세계에서의 탄압이 그 원인으로 작용한 셈. 그리고 그 결과는 이슬람 국가를 제일 많이 지지하는 유럽국가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유럽 국가내 무슬림 이민자 출신을 제외하면 이슬람국가에 참여하는 유럽인 비율이 제일 높은 편이다. 결국 서유럽, 미국 등 선진국들의 자업자득인 셈.[61] 하지만 이는 걸러들을 필요가 있는 게, 보스니아와 코소보(보스니아와 달리 서방의 노골적 비호를 받았다)의 IS에 가담한 자들의 수를 인구 비례로 비교해보면 별 차이가 없다. # 한편 보스니아의 국부인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가 한때 범이슬람주의자였고, 보스니아 내전 당시 사우디, 카타르 등 와하비즘 국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한데다 이로 인해 커져가는 보스니아의 이슬람주의를 서방도 방관하거나 찬양하는(!) 태도를 보인 일면도 있었다. #

알바니아 엔베르 호자 행정부 시절, 무신론국가 정책 때문에 피해를 받은 게 오히려 극단주의로 돌아온 케이스다. 원래 과거 조구 1세 시절에도 세속주의 성향이 강했고[62] 공산주의 국가는 종교를 좋게 취급을 안하지만 호자는 그걸 넘어 알바니아를 세계 최초로 무신론, 무종교국가로 만들어놓았다. 예전에도 탄압은 있었지만 심한건 아니었고, 그냥 종교간섭만 조금 한다던가 무신론 운동을 선전, 지원한다던가 수준이었는데 무종교, 무신론 선언 이후부터 탄압이 그야말로 막장이 되고 말았다. 알바니아는 그 전까지는 비잔틴, 오스만 영향으로 기독교, 알바니아 정교, 이슬람이 잘 섞여있고(사람들이 어떤게 이슬람교 교리고 어떤게 기독교 교리인지 헷갈려서 동시에 다 믿었다 한다...) 별다른 충돌이 없었는데 이 정책으로 종교 자체가 완전히 쑥대밭이 나고만다. 알바니아내 교회, 모스크가 모조리다 철거당하고, 종교인들은 기독교, 알바니아 정교, 이슬람 안가리고 죄다 잡혀가서 온갖 고문, 추방, 노역, 사형을 당하며 1985년 호자가 죽기 직전까지 기독교, 이슬람 안가리고 6천명 처형, 2만 6천여명 장기징역, 3만 2천명정도 강제이주, 7천명이 강제노동을 당하게 된다.[63]

어쨌든 호자가 죽고, 알바니아가 민주화되고 종교의 자유는 얻었지만 이 탄압기간 동안 종교 지도자들이 다 죽고, 건물이나 종교 관련 유적들등 종교 인프라가 다 박살나니 종교 복구과정에서 외국의 지원을 많이 받았는데 타 종교도 그렇지만 특히 이 과정에서 걸프 국가들의 자금 지원을 통해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이 여과없이 들어오며 알바니아의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5.2.6.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구 소련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무슬림이 대다수임에도 이슬람 원리주의 색깔이 약한 세속주의 국가인데 그 이유는 강철의 대원수 스탈린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생길 수 있는 여건 자체를 박살내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도 조금씩 원리주의자들이 음지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극단주의자들을 정부 차원에서 매우 강력히 처벌하기 때문에 그나마 위의 알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비하면 나은 편.

5.2.7. 중남미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의외로 심각했었다. #영어 #

6. 인식

6.1. 비이슬람권의 책임이다

서구의 이슬람 근본주의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되는 방해요인은 사실 비이슬람권 사람들의 이슬람에 대한 일반화이다. 최소한 기독교에 대해서는 가톨릭과 동방정교, 개신교 등으로 나눠서 접근하며, 이들 안에서 다시 여러 분파가 갈라진다는 것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 대해서는 시아파고 수니파고 살라피건 수피건 다 싸잡아서 똑같은 이슬람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고, 설령 이 정도는 구분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 수니파와 시아파 안에서 또 학파가 어떻게 갈리고 살리피즘과 수피즘은 어떻게 서로 다른 샤리아를 따라가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64] 개신교 내에서 사고치는 종파가 나타났다고 가톨릭을 욕하지 않는 것은 상식이지만, 이슬람과 이슬람 극단주의를 보면 이런 거 없다. 시아파가 사고치든 수니파가 사고치든 이슬람을 욕하고, 이슬람 극단주의가 사고치든 아랍 민족주의가 사고치든 다 이슬람 전체를 욕한다.

시아파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순니파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비무슬림이 서로서로 경쟁적인 상황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비무슬림들은 일반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 둘이 힘을 합쳐서 비무슬림을 공격할 것이라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는 거의 언제나 “이교도보다 이단이 더 나쁘다”는 논리로 서로 싸운다.[65][66] 쉬아파와 순니파 무슬림 모두 같은 꾸란을 읽지만 하디스 해석이 꽤 다르다.

당장 이 문서만 봐도 이슬람을 비난하고 싶은 것인지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난하고 싶은 것인지 이슬람 극단주의를 비난하고 싶은 것인지 뒤죽박죽인 상태다. 교리에 대해서는 모르더라도 최소한 이슬람이 그 안에서 어떻게 갈리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이를 모르고 무턱대고 비난하다보니 이슬람 극단주의와 관련된 것들을 보면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무엇을 다루고 비판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뒤죽박죽인 경우가 상당수다. 대체 이슬람 교리를 비판하고 싶은 것인지, 특정 이슬람 분파의 행태를 비판하고 싶은 것인지, 이슬람을 믿는 지역 중 특정 지역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의 악습을 비판하고 싶은 것인지, 진짜 정치사상적인 이슬람 극단주의를 비판하고 싶은 것인지 구분없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역시 사람이 믿는 종교이기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이 변화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양상을 보여왔다. 2022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거의 5명 중 1명~4명 중 1명 (18억)이 무슬림인만큼 현대에서 나타나는 모습도 한 가지 이미지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물결은 근현대에 이슬람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본격화된 현상으로서, 태초부터 존재했거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문화/종교/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가 비판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이 문서만 읽고 이슬람=이슬람 극단주의라는 식의 결론을 너무 쉽게 내리는 것도 잘못이다. 단지 같은 종교라는 이유로 극단주의 사상에 전부 동조적일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현대에는 서구의 기준으로 이상적인 세속주의 & 탈근본주의 성향에 부합하는 이슬람 사회가 여럿 존재한다.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북키프로스 등이 대표 사례이다. 그저 해당 국가들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해당 국가들은 상당수 구 공산권이었던 이유로[67] 국민 소득이 낮다 뿐이지, 동남아 같은 지역보다 훨씬 독서율이 높다. 거기다 공산독재로 인해 근본주의는 있었다 해도 진작에 뿌리가 뽑혔다.

기독교와 불교의 경우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죄중에 가장 큰 죄가 신성모독이나 이단 종교였음을 생각하면, 신성모독은 사형보다 더 큰 사형후에 묻지도 못하게 하고 전재산 몰수였다. 어느 종교든지 비판이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항상 광신이 될 수 있고 이는 이슬람 뿐만 아니다. 조선왕조의 사문난적을 보아도 알 수 있다.[68] 종교는 항상 극단화 될 위험이 있다. 아가 동산. 옴진리교, 인민사원 같이 불교나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신흥종교도 극단적임을 상기해보면 극단주의가 이슬람이어서가 아님을 알수있다. 호메이니 이전(60/70년대)의 이란은 한국이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할 때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유럽이나 북미만큼 개방적인 국가였다.

또한, 이 문서에는 이슬람 자체에 대한 비판인지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인지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슬람의 중요 특징 중 하나가 생활 그 자체이며 정교일치적 종교의 특성도 가지고 있는데다 이슬람권의 사회적 저발전에 따라 이슬람권의 내부의 변화도 매우 더디다 보니, 현대 선진 사회 기준에서 보면 이슬람 자체가 극단주의적이며 인권 침해적으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비판받아 마땅한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 국가들의 이러한 요소들이 앞으로도 영원불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쿠란의 구절들은 변하지 않으나 쿠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이해, 믿음 실천의 방법은 사회 변화에 따라 달라질 여지는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구약성경에는 이러이러할경우 맷돌에 목을 달아 익사시키라는 구절이 있지만 지금의 크리스천 뿐만아니라 유대인도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하레디 정도가 구약성경대로 하자고 주장하지만 딱히 성과는 없다.

또한 본 문서의 맹점 중 하나는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을 신앙심이 약한 무슬림에 비해 테러를 비롯한 극단주의 범죄에 가담할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일반화를 주입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직접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어려운 사람을 직접 돕는 무슬림과, 동정심을 악용하고 술수부려서 기부금을 악용하는 선교사 두 가지의 경우를 비교해보자.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전자가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이고, 후자야말로 문제의 소지가 더 많은 경우이지만 본 문서의 일부 항목에서는 이러한 측면을 어느 정도 놓치고 있다.

한편, 악명높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근원국가중 하나였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으로 탈근본주의 개혁이 아주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근본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 온건 이슬람국으로 달라질까
빈 살만의 새로운 사우디아라비아
32세 사우디 왕세자 "극단주의 끝…온건 이슬람 추구"

그리고 최근 사우디를 통치중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통치를 하자마자 온건 이슬람을 선포하겠다며 사우디 내에서 최초로 여성운전을 허용하고 여성참정권을 허용하는 등 명목상 개혁적인 행보를 연이어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2018년 3월에는 미국의 CBS의 인터뷰에 응하며 보수적인 무슬림 수니파 정권에 맞서 여성에 대한 대대적인 사회변화를 약속하였다. 4월에는 직장에서 남녀가 함께 일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사우디 검찰이 사우디에서 유명하고 인기 있는 와하브파 성직자 3명에 대해 사형을 구형하고자 준비 중이다. 원래 와하비즘이 국교인 사우디는 와하브파 성직자에 대해서 사형까지는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이 관습을 깨고 이슬람 극보수파 율법학자들에게 피의 경고를 함과 동시에 와하브파에 대한 사우디 국가의 우위권을 드러내려 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슬람의 탈근본주의화는 아흐마디야 이스마일파 같은 소수 종파에서는 훨씬 더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이스마일파는 이슬람의 여러 종파 중에서도 가장 극단주의 성향이 강한 종파로, 중세 시대 어세신을 운영하며 여러 폐단을 만든 바 있었다.[69] 오늘날에는 아가 칸 4세를 중심으로 과거 극단주의 교리 상당수를 개혁하고 파키스탄 훈자 지역에서 교육 사업을 중심으로 한 자선 사업을 실시하여, 해당 지역을 낙후된 시골에서 파키스탄 내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

비이슬람권 사람들의 이슬람에 대한 일반화와 무지가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 이에 대해 비겁한 변명이라 치부하고 비판을 가하며 반박하려는 경우를 매우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 매우 심각한 문제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이슬람권 강대국들이 이슬람권 내부의 게임 체인저 수준이 아니라 레짐 체인저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IS만 하더라도 이란 시아파 근본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거의 다 격퇴시키나 했더니 미국이 개입해 미국과 이란 시아파 근본주의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이 틈을 타서 IS는 조직을 추스리고 다시 세를 규합하고 있는 실정이다.

레짐 체인저 역할을 해서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최우선 목표와 차후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시아파 근본주의 세력 정부를 붕괴시키는 것이 우선인지,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 무장단체를 박멸시키는 것이 우선인지 확실히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이슬람권 강대국 정부와 정치인의 이익에 따라, 그리고 인기영합주의식으로 어떤 때는 아동 인권, 어떤 때는 여성 인권, 어떤 때는 세계 평화, 어떤 때는 민주주의, 어떤 때는 자유와 평등, 어떤 때는 서구의 가치 등에 따라 개입하고 힘의 균형을 깨뜨리고 판세를 뒤엎고 심지어는 정부까지 전복시켜버리고 있다. 이러니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이슬람 극단주의가 더욱 창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슬람 내부에 대한 명확한 구분 없이 무원칙적이고 무분별하게 개입해 무슬림 스스로 인권과 자유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 빠뜨리면서 스스로 개선할 의지가 없다고 의지드립 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이슬람 근본주의가 창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슬람권의 저개발, 저발전, 실업문제 등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으면서 말이다.

6.2. 이슬람권의 책임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여러가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레퍼토리나 주장 대다수의 문제점은, 대부분 근본주의 비판에 대하여 이슬람을 어떤 식으로든 무리하게 옹호하려 하거나 이슬람의 극단주의화 문제점에 대한 실제적인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는데 쓰는 변명에 가까운 주장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반론 단락에 나와있는 주장들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슬람 근본주의 문제 해결의 최대 걸림돌은 이슬람을 일반화시키는 소위 '서구'의 일반화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문서에 자세히 설명되어있듯이 진짜 문제해결을 가로막고 악화시키는 주체는 같은 이슬람권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나 이란을 포함한 강성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의 극단주의 자금지원 및 수출, 샤리아 폭정을 비롯한 강압적 정책의 탓이 크고, 또한 이슬람포비아를 핑계로 지적이나 비판 자체를 서구의 논리라는 프레이밍을 씌워 무작정 거부하려드는 엄청나게 많은 무슬림들의 책임이 크다. 되려 서구권의 경우는(많은 무슬림들이 인정하기 싫어하는 부분이지만) 이슬람 신자들에 대한 비교적 선진적인 권리보장이나 내부적 자정작용을 통해 이슬람=무작정 악마화시키려는 가치관을 그나마 걸러내려 노력하고 있는 문화권이다.[70] 실제로 지금 서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테러리즘이나 무슬림들의 극단주의 행패들이 이슬람권 한복판에서 비이슬람 신자에 의해 일어났다면 무슬림들이 여기에 대해서도 이슬람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보다 종교갈등을 자제하려 드는 서구권같은 의식있는 태도를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그런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서구권에다 대고 각종 극단주의 행위나 테러리즘을 통해 제살깎아먹기식 평판저하를 일으키고 있는 주체는 이슬람권에서 온 무슬림 본인들이라는 팩트는 변하지 않는다. 특정 종교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좋아질수도, 나빠질 수도 있지만 이런 인식의 주요 원인은 무엇보다 종교인 당사자의 행실에 달린 문제이다. 예를 들어 당장 같은 서구권의 비주류 종교이면서도 서구권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인식도 나쁘지 않은 불교 등의 종교와 이슬람에 대한 인식, 그리고 두 종교의 서구사회에서의 행각을 비교해 보자. 특정 종교권 사람들(그것이 어떤 이유든간에)의 만행에 어느 정도 동기를 주는 종교를 비판하는 것을 편협한 가치관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비판자들은 이슬람의 교리나 분파행위, 특정지역 악습 등 여러가지 이유를 살피지 않고 뭉뚱그려 이슬람 근본주의 창궐에 대한 모든 이유나 문제를 다 이슬람의 탓으로 돌린다"는 식의 반론도 비판받을 여지가 다분하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 문제는 어느 정도는 사회적 배경이나 역사, 지역관습, 정치의 영향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결국엔 해당 배경과 지역관습의 문제들 절대다수가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고,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세계의 수많은 지역들에서 실제적으로 드러나듯이, 수많은 극단주의 문제와 악습들에 대해 제대로된 자정작용이나 통제장치도 없이 이를 합리화시켜주는 수단으로 쓰인다면 결국 이에 대해서도 이슬람이 철저히 비판받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71]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문서의 전반부 상당수 부분이 이런 다양한 '극단주의 창궐의 비종교적 원인들'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근본주의 문제에서 이슬람권 자체에 대한 비판을 배제할 수 없음을 다양한 근거를 들어 서술하고 있다.

"이슬람은 분파들간에 더 많이 싸운다, 또는 기독교 등 다른종교도 똑같다"는 식의 주장은 논점회피 및 양비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특히 기독교를 들고 나와서 이슬람의 문제를 "기독교도 똑같다. 그러니 이슬람을 비판하지 말라" 같은 양비론 주장으로 퉁치며 넘어가려는 식의 논리를 엄청나게 많은 무슬림들과 친이슬람 옹호자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견지하고 있는데, 문서 본문에도 주구장창 설명하고 있지만 기독교나 다른종교라고 해서 나름의 문제점들을 비판받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며, 그것이 설령 신자 개개인의 일탈이나 사회문화, 정치적 문제였음에도 비판을 피해간 적은 거의 없다. 설명했지만 종교적 동기 역시도 특정 문제의 원인이라면 비판받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타종교의 비슷한 문제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슬람과 이슬람 근본주의가 자신들의 문제를 비판받지 말아야 할 면죄부는 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슬람이 수니파, 시아파로 갈려 악명높은 유혈갈등을 한다는 사실이 그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점이나 이슬람과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오히려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분파적 극단주의를 통제하지 못하는 비판은 될 수 있어도 말이다.

경전의 문제시되는 특정 구절은 다른 종교들에도 있으며, 이를 실천하지 않는 무슬림들도 많다는 사실 또한 비판받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같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이자 무슬림들의 양비론 대상으로 자주 거론되는 기독교는 경전의 현대윤리적으로 문제시되는 구절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확실한 소수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나, 이슬람권은 그렇지 않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신정주의 국가의 영향이든, 지역 커뮤니티의 영향이든 간에 이슬람이 퍼진 거의 대부분의 지역들에서 자생되는 것이 현실이며, 이들이 일으키는 문제의 대다수가 이런 경전의 문제가 되는 구절을 '실천'하려는 것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을 이 경전을 규정한 이슬람 종교에 대한 비판에서 찾는 것은 문제시될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독교 같은 경우에는 물론 이슬람교 못지않게 어두운 역사가 많지만 그 나름대로의 시대적인 흐름에 맞춰 스스로 변화를 거듭해왔다. 반면 이슬람교는 이런 변화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고 배척하였기에 지금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는 이슬람 근본주의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근본주의 탈피 시도 및 개혁을 희망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으나, 그 중 상당수가 별 실용성 없는 보여주기식 개혁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 역시도 지도자 한 사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의지에 따른 전형적인 '위에서부터의 개혁'으로, 지도자의 교체가능성 및 왕족들의 성향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근본주의의 길로 돌아갈 위험성이 여전한 것은 바뀌지 않았다.[72]

무함마드 빈 살만의 개혁은 단지 근본주의 정책 일부를 수정한다 뿐이지, 사우디 아라비아를 가지고 무슨 오늘날의 독일이나 캐나다 같은 선진국을 모델 삼아 총체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빈 살만의 개혁은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 이라크 내 기독교인들의 안전이 보장받았던 정책과 비슷한 이유,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이슬람권 전체가 근본주의화에서 탈피하고 있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해서 낙관적으로 전망하기에는 심각한 무리가 있다. 사우디가 체제 내부 개혁을 한다고 해서 악명높은 해외 와하비즘 수출을 멈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도 카타르에서 보급하는 온라인 이슬람 서적의 상당수는 그 콥트교 제노사이드를 주장했던 사이드 쿠틉을 위대한 개혁가로 소개하는 서문을 싣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무리 와하비즘을 탈피하려 한다고 해도 보코하람이나 알 카에다, 탈레반같은 아니 굳이 테러리스트들이 아니어도 사우디아라비아 이외 지역의 근본주의를 추종하는 무슬림들의 신념에 큰 영향을 미칠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우디 말고도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토착 기득권과 결합하여 개혁이 힘들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도 21세기로 나아가면 갈수록 이슬람 근본주의가 반화교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사회 전체적으로 극심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집트 역시 무슬림형제단의 몰락과 군부집권 이후에도 사회의 계속되는 우민화와 이슬람 근본주의화, 세속주의 혐오 분위기는 여전하다. 소말리아 예멘, 나이지리아 북부의 샤리아 시행 주들 같은 낙후된 지역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유럽의 이슬람 이민자/난민 커뮤니티에서도 이슬람 해방당 같은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사회보장제도를 악용하여 세력을 늘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사우디와는 무관하다. 즉 사우디 하나 변한다고 근본주의의 확신이 멈추거나 하지는 않는다.[73]

물론 반론 단락의 주장대로 이슬람이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고, 항상 고정된 극단주의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슬람 학자들과 종교학자들도 이런 이슬람 전체 = 변화없는 근본주의 극단공동체같은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현재 추세로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이 멈춰가고 있다거나 상황을 낙관적으로 볼 수준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21세기에도 이슬람권 전체를 아우르는 혁명적 변화가 없는 이상, 이슬람권을 끊임없이 잠식해 들어가는 이슬람 근본주의와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위의 옹호론은 이중성을 보여준다. 비이슬람의 이슬람권에 대한 일반화를 비판하지만, 정작 이제 시작하지도 얼마되지 않은 빈 살만의 개혁운동과 소수종파를 어떻게든 소개하면서, 이슬람권 이미지를 좋은 방향으로 일반화하려하고 있다. 또 하나는 일반화를 경계한다고 하지만 "비이슬람권"이라는 식의 용어를 쓰고 있다. 이슬람을 세부적으로 보기를 요구하지만 이슬람 밖의 것은 "비이슬람"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근본주의적인 사상으로 인해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IS와 연루하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다는 사실 https://youtu.be/LgjaTBTVI10 https://youtu.be/nkZsd1FnDGM에도 한거풀 더 벗겨보면 무슬림들과 이슬람권 전체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엄연히 이슬람에서 파생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무슬림들은 건전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타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에게 "모든 일은 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음모"라는 말만 귀 틀어막고 반복하며 사과 한마디도 없다는 점이다. IS도 그렇다. IS가 무슬림들에게도 욕을 먹는다지만 그 이유에는 같은 무슬림에게도 물리적인 피해를 입힌것도 있다. 일례로 IS가 요르단 비행사( 무아트 알 카사스베)를 분살당한 사건 이전만 해도 그의 아버지[74]는 IS에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요르단이 미국과 협력하는 것에 반대했지만 저 사건이 벌어지자 전세계가 협력해저 저 악마들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무슬림들도 근본주의에 대한 문제에서는 공범이다. 그나마 자기 편 아니면 다 적으로 간주할 정도로 미쳐 날뛰는 IS니까 욕하는 거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가 저정도로 욕먹던가? 거기다 그 IS쯤 되니까 겨우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사실 무슬림들도 종교 개혁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 내 소수종파 이스마일파, 아흐마디야 내에서는 이미 온건화를 목표로 서구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성공적인 수준의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로 쿠란에서는 지즈야를 걷고, 도둑질한 자에게 손을 자르라고 하는 구절이 있지만 현재 사우디나 이란에서도 절도했다고 손을 자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지즈야는 아예 있지도 않다. 지즈야를 걷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근본주의라고 해서 100% 따르고 살지는 않는 것을 보면 개혁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에시가 아닌 이상 저 두가지를 시행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슬람권 주류에서 샤리아를 부정하고 소수종파처럼 개혁을 추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슬람이 오늘날의 기독교처럼 세속주의와 타협할 경우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는 수많은 신학생들이나 성직자들은 권위가 급속히 실추될 수밖에 없다. 세속주의 개혁이 활발하던 팔레비 왕조 시절 정부에서 샤리아 법정이 유명무실해지고 이슬람 사원의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자 궁지에 몰린 쉬아 이슬람 성직자들이 죽기살기로 호메이니 혁명을 일으킨 것을 생각해보자.

아무리 인권 운동가들이 이슬람을 비판해도 이슬람 신학자들은 상당수가 생계와 위신 문제 때문에 샤리아의 상당 부분이 조로아스터교 관습법에서 기원했다는 사실 등을 부인하고 샤리아가 순수한 이슬람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주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75] 공교롭게도 이슬람 하디스에는 이슬람 학자 상당수가 신앙인을 사칭하는 위선자로 채워질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76] 오늘날 이란 신정 공화국 등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의 상황을 놓고 본다면 전혀 틀린 예언이 아니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에도 나오지만, 현대 이슬람주의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에서만 갈등이 일어난다. 누리 이을마즈 교수가 이슬람원리주의자에게 쿠란에선 도둑질한 자의 손을 자르라고 하는데 왜 이것에 대해서는 세속주의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데 이건 문제삼지 않냐고 비꼬는 장면등을 보면 명확하다. 히잡을 착용하도록 하고, 음악을 금지하고, 현대문물에 반대하면 결국 자기들에게 더 유리해지고 성직자의 권력이나 권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쿠란에는 명시되어있지만 시행되지 않는 구절들(ex: 도둑질한 자의 손을 자르라, 지즈야를 걷어라)이 있는 것을 볼때 근본주의자들은 자기가 유리한 구절을 골라서 이용하는 취사선택을 하는 위선자들임을 알수가 있다.

6.3.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식이 충분히 성장했을 때에 제대로 기능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단계에서는 오히려 전간기의 바이마르 공화국같이 다수의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져버리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당장 눈 앞의 빵을 포기하고 미래의 더 많은 빵을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내 눈 앞의 금전적/정치적 이익을 다른 사람의 기본적인 인권보다 중요시하면 안된다는 동의가 사회 전반적으로 되어있어야 한다. 이게 안 된다면 민주주의는 쉽게 변질되고 무너져버린다. 나치당이 선거를 통해 집권했듯 말이다. 오히려 '수준 높은 민주주의는 무조건 좋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2000년대 들어와서 더더욱 이슬람 극단주의가 창궐하게 되었다. 이라크,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독재자들이 폭압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를 찍어누르고 있었는데, 이들 독재자들이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이슬람 극단주의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악용하여 창궐해버리게 된 것.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이슬람 극단주의를 키어준 바람막이가 되었던 것이다.[77]

민주주의는 절대선도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그저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정치 제도 중 가장 괜찮은 것일 뿐이다. 민주주의에도 당연히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바로 절반 넘는 사람이 틀린 선택을 하면 틀린 선택이 채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만약 절반 넘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틀린 선택을 한다면 민주주의는 자기파괴적 매커니즘이 작동하게 된다.[78] 어떤 과정을 거치든 마지막 최종 단계에서는 개인의 능력차를 고려치 않고 모두 동등한 인간으로 보아 1인 1표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79]

보다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 한 사회 안에서 최소 51%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으면 항상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전부 똑똑할 필요 없고 51%만 제 정신이면 사회는 제대로 굴러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51%가 항상 잘못된 선택을 고르는 어리석은 인간들이라면? 이때는 사회가 민주주의 때문에 밑도 끝도 없이 퇴보하고 망가지게 된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창궐하는 지역에서 사회 구성원의 역량은 아직 '당장 눈 앞에 있는 빵만을 위한 선택'에서 발전한 수준이라 보기 어렵고, 이슬람 극단주의는 이들 앞에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세금만 잘 내면 최소한 생존권과 재산권은 지켜주었던 이슬람 왕조 시절보다도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유지되는 현대 이슬람 국가들에게 비무슬림들의 권리가 더 취약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걸프 아랍 국가들같은 이슬람 원리주의가 지배하지만 국민 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은 국가들에서는 미세하지만 조금씩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 정도...[80]

'자유와 평등에 대한 내용이 없는데 어떻게 이슬람 극단주의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력을 쉽게 넓힐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슬람이 세계 3대 종교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일단 그 종교 안에서 '자유와 평등'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조삼모사이기는 하지만, 현시창인 상황의 원인을 전부 외부로 돌려버리고 약간의 지원을 제공해주면, 생존 문제에 내몰린 사람들은 쉽게 포섭되기 마련이다. 이를 조금 더 확장시켜서, 단순한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인 '소외감, 박탈감'으로 바꾸어본다면,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고 충분한 민주주의의 헤택을 받고 있는 유럽의 무슬림들 사이에서 왜 이슬람 극단주의가 확산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반드시 테러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무슬림 형제단을 비롯해 많은 이슬람 국가들의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의 정당들은 민주주의를 역이용하여 일단 겉으로는 합법적으로 집권한 다음, 폭발적 인구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부족한 교육 인프라로 인해서 자꾸 늘어나는 극단주의자들과 맹목적인 성향의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점진적인 샤리아 도입을 통해 다원적인 문화와 가치관, 선진적인 서구식 제도 등을 하나하나 없애고 궁극적으로는 이슬람 샤리아법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로 바꿔가겠다는 전술을 취하고 있다.

아예 사이드 쿠틉의 사상 자체가 오늘날의 현대 국가들은 전부 다 불신자 국가이므로 지하조직 운영을 통해 전복시켜야 된다는 사상을 대놓고 천명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집권 절차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그 집권 이후의 최종적인 목표가 자유와 평등과 같은 민주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점에서 나치당과 유사한 정치 전략이다. 그런데 나치즘과는 달리, 종교의 형태를 취함으로서 종교를 방패로 삼고, 아랍인이라는 제3세계 인종임을 이용하여 문화 상대주의, 다원주의를 방패로 삼아 비판을 회피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굳건하게 굳히는 전략을 가지고 있어, 이미 완전한 악으로 드러난 나치스에 비해서 무너뜨리기가 어주 어렵다.[81]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까지도 나온다. 이들이 막 나가는 바람에 이슬람의 실태가 뒤늦게나마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그나마 대책을 세울 여유라도 갖게 됐다는 것.

장기적으로는 교리를 이용하여 여성들을 억압하여 얻어낸 폭발적인 대량출산으로 자신들의 '머릿수'를 불려가면서 다수결의 원칙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를 잠식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어 기간을 길게 보아도 세속주의 세력이 극단주의 세력을 이기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무하마르 알 카다피는 이를 "여성들의 자궁이 최대의 무기다."라고 발언했다. 이는 사회 전반의 저출산 고령화 기조와 맞물려서 극단주의 세력의 성장을 가속화 시킨다. 개인적인 세속주의자들은 늙어죽거나 자식을 많이 낳지 않아서 세력이 약화될 것이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자식을 많이 낳고 밥상머리 교육으로 자신의 파벌을 늘려나가 세력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82] 물론 이는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린 유럽권과 영미권에서는 그다지 가능성이 없는 방안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겉으로 보면 하나로 잘 뭉치는 듯 하지만, 걸프 아랍 국가의 지원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서로간의 갈등도 심하며, 결정적으로 문화적인 힘이 약하기 때문에[83] 극단주의자들은 수를 늘려봤자 모순 때문에 자멸하게 되어있다. 겉으로만 보면 유럽 내 무슬림의 인구 수는 증가 추세이긴 하나 이미 고립과 도태가 시작되고 있다.[84]

이란 이슬람 혁명을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이슬람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포용성을 악용하여 이슬람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극단주의 인권탄압 신정국가를 건설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어적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어떨까? 사실 이러한 집단이 오히려 테러를 이용하는 집단보다 더 위험하다. 자기네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사실 이슬람 극단주의의 승리를 추구하는 목표는 똑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테러리즘을 부정하는 수많은 아랍권 국가들 대부분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기득권층이며, 자기네들도 국민들에게 극단적 이슬람을 강요하면서 자기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니까 괜찮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물론 이들 역시 암암리에 폭력과 테러리즘에 의지하고 있지만, 아랍권 독재국가나 왕정국가에 비하면 겉으로나마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이들이 '야권 민주화 세력'이라고 착각하여, 동정하거나 동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독일에서 나치당이 탄압받는다고 동정해주는 것과 똑같은 무식한 사례이다.

종교적 가치를 덮어쓰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을 파괴하는 것 만으로는 성과가 없다. 이러한 극단주의 단체나 정권이 없어진다고 해도 사회 전반적으로 극단주의 이념을 가진 개인이 늘어나면 비교적 정상적인 '정부'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이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게 된다. 한 번 극단주의가 자리잡으면 뿌리뽑는 일은 소련에서의 사례를 보듯 인권을 무시한 대숙청을 동반하거나[85] 아니면 튀르키예에서처럼 거의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는 불가능해진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탈레반은 일단 몰아냈지만, 탈레반의 통치를 받던 아프가니스탄의 종교적 과격함은 이전과 비교해도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이 그 사례이다.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종교 전술을 사용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잠식으로 인하여 서구의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 역시 위협을 받고 있으면서도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출산장려보조금과 복지 제도를 악용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맞서서 복지 정책을 감축할 경우, 국민 전체의 출산율이 감소하고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만 배제하고 주자니 그건 또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니까 안 된다. 현재 서유럽은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지속적인 감시로 대응하면서 아랍권 무슬림 이민자 대신에 동유럽계 이민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선회중이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정치 세력에 한해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이러한 소수종교-소수인종-정치세력의 혼합체에 대해서는 힘을 쓰기 어렵고, 그나마도 대놓고 테러하지 않는 집단들에게는 더욱 개입하기 어렵다. 그보다 민주주의가 취약한 제3세계 국가에서는 극단주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연유로 아랍의 봄에 의해 촉발된 이슬람권의 소요사태는 해당 국가들 안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세력(대표적으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의 대거 등장을 불러일으켜, 민주화 혁명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갖고 있던 서구권 관측자들을 경악시켰다.[86] 아랍의 봄으로 인해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흥을 억압하던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던 세속주의/아랍민족주의 독재정권들이 대거 몰락했는데, 과거부터 오랜 탄압을 받던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들이 권력을 탈취할 준비가 가장 잘 된 조직이었던인 것은 불문가지.

방어적 민주주의의 일부 요소를 도입,적용하여 민주주의를 악용하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요시찰대상으로 규정하거나 엄벌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 역시 존재한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대다수가 일자리가 없고 시간이 남아도는 관계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악용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극단주의자들의 활동을 완전히 근절시키진 못하더라도 그들의 정치 참여 활동을 위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6.4. 해결책

이론적이고 원론적인 해결 방안은 무슬림들이 "가장 저열한 무슬림도 가장 고귀한 비무슬림보다 우월하다."같은 근거없는 선민사상을 버릴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교육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슬람 교리 상에서도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는 내용들은 스스로 걸러낼 것이고, 반인륜적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에 가담할 일도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산업 및 경제와 무관한 방법론으로 득세하는 기득권들의 영향으로 반지성주의가 창궐하고 이 영향으로 정상적인 교육 인프라 및 사회제도의 생성을 막는 악순환이 반복돼서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일반 민중들에겐 단순히 소설 읽는 일조차도 사탄의 꾀임에 빠졌다고 자기 검열을 하고 있으며, 성직자들도 다른 종교서적과 마찬가지로 인권침해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는 쿠란을 반지성주의로 인해 무슬림들은 쿠란의 가르침 중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배제해야 하는지 혼동을 느낀다. [87]

실제로 구성원들의 주류 종교가 이슬람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의 영향력이 적거나 나름 극복 한 국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 문화적으로 이슬람과 구별된 정체성이 강한 국가: 튀르키예, 튀니지, 모로코, 요르단, 레바논
  • 투르크메니스탄과 같은 구 소련 위성국: 여기는 소련의 영향이 정확히는 스탈린 영향이 클 것이다. 스탈린은 대숙청 당시 종교인 자체를 탄압하였고 이슬람 근본주의 자들이 발생할 토대 자체가 박살났으며 스탈린 사후에도 무신론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영향이 40년이 더 지속되었던 탓이 클 것이다. 국가 무신론을 내세우는 나라에서 근본주의자들은 때려잡아야 할 대상이니...
  • 주요 산유국이 아닌 국가: 석유가 없으니 기술을 배워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제도 및 현대적인 가치관이 새겨질 수밖에 없다.
  • 온대지방 국가: 실제로 이런 곳에선 이슬람과 대립하는 다른 공동체나 문화권의 영향으로 다른 문제가 생기긴 해도, 이슬람 근본주의의 전면적 폭주가 저지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이슬람 전반에서 기독교의 종교개혁 수준의 사건이 일어나거나[88][89] 이슬람권 전체를 아우르는 이슬람 극단주의 강대국들의 근본주의적 정치 체제가 갑자기 붕괴하거나, 극단주의자들을 양성하고 후원하는 오일머니 권력 커넥션이 어떻게든 붕괴하는 든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현 상태로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무력화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90]

전세계를 이슬람화하겠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전략과는 반대로 다에시가 깽판친 이후로는 비무슬림이었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인구가 다에시 창궐 이전에 비해 크게 늘어나지 않았고 다에시가 저지른 만행과 그들과의 전투로 이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이슬람에서 조로아스터로 개종한 쿠르드인처럼 오히려 무슬림이었다가 '배교자는 처형한다'는 쿠란에서 명시된 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서유럽에서는 계속되는 이슬람권의 혼란과 난민 유입을 대놓고 차단하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듣기 때문에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의 입국을 널널하게 해주는 방향으로 우회적으로 무슬림 인구의 유입을 제한하고 있으며,[91] 계속된 테러와 범죄 때문에 유럽인들이 점점 배타적으로 변하면서 무슬림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동양인, 흑인 등 비서구권 출신 이민자들 전체가 이미지가 안 좋아졌다. 과거에는 눈치가 보여서 무슬림 소수자들을 마음대로 탄압 못하던 인도나 미얀마 같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도 요즘은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대놓고 무슬림을 마음놓고 차별하거나 탄압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기독교 및 토착 종교를 믿는 아프리카계 주민들도 과거와는 다르게 이슬람 극단주의에 더 공격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당장 나이지리아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수단 공화국 남수단, 코트디부아르의 이슬람-기독교 분쟁과 내전만 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의 정책도 이슬람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개입하면 득보단 실이 훨씬 많다는 걸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극단주의 세력끼리 서로 최대한 오래 싸우다 자멸하게 만드는 방법만 쓰지[92] 무슬림들의 인권을 위해 직접 개입해서 도와줄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오늘날 이슬람의 상황은 과거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의 다신교 신자들과 투쟁했던 역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오늘날 수많은 비무슬림들이 모두 쿠라이쉬족 정령숭배자들하고 100% 똑같다는 가정 하에서 비무슬림들에게 자신들의 선민사상과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요하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이런 인지부조화를 극복해야만 오늘날 점점 심해져가는 이슬람에 대한 국제사회의 은근한 따돌림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7. 관련 인물/단체

7.1. 시아파 계열

  • 후티 반군 - 시아파의 유일한 군사조직 또는 테러단체. 아덴만에서 친서방 국가들의 화물선을 납치하거나 해적질을 일삼는다.
  • 마흐디 군(Mahdi Army)[93] - 시아파 계열. 이라크의 시아파 광신도이자 성직자, 율법학자, 종교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Muqtada al-Sadr)가 이끄는 시아파 극단주의 민병대. 수니파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과 종파주의, 과도한 반미 행각과 폭력 등으로 이라크의 종파분쟁에 책임이 있는 조직들이다.

7.2. 수니파 계열

  • 이븐 타이미야 - 상당수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자신들은 이븐 타이미야 신학을 계승했다고 주장하지만, 상당수는 외면받고 있다. 이븐 타이미야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븐 타이미야의 논문에 나온 것처럼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는 꾸란의 구절을 변명하지 말고 인정하는 게 맞다.
  • 사이드 쿠틉 - 근현대 이슬람주의 및 이슬람 극단주의의 선구자.
  • 중국 회족의 자흐리야 교단 - 청나라 때 비무슬림 한족들에게 샤리아 율법을 포교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로 한족과 사이가 나빠졌으며, 그 결과 1862년 간쑤성, 산시성 일대에서 한족과 대규모 민란이 발생했다. 한족과 회족 모두 서로에 대해 제노사이드를 벌여 간쑤성과 산시성에서 도합 1~8백만 여명의 회족이 사망했다.
  • 무슬림 형제단 - 카타르의 지원을 받는 이집트 제1의 이슬람주의 정당이자 집권까지 했었지만 무르시 정권 축출 이후부터 테러단체로 지정되는 동시에 원내 정당 자격이 박탈되었고 엘 시시 정권 이후 이집트에서 불법 정치단체 및 범죄조직으로 규정되어 있는 상태다.
  • 아부 사야프 - 필리핀, 말레이시아의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필리핀 남부를 이슬람 신정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수많은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 선교사들과 필리핀 가톨릭 교인들에 대한 납치와 살해[94]뿐만 아니라 일반 외국인들에게까지 위해를 가하기도 했다. 현재는 IS에 충성을 맹세하여 IS 필리핀 지부의 주력이 되었다.
  • 아불 알라 마우두디(Abul A'la Maududi) - 탈레반의 사상적 시조이자 사이드 쿠틉의 절친한 친구.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우민화 정책을 지지하였으며, 원래부터 우민화에 관심이 많았던 파키스탄 군부 정권과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합작품으로 파키스탄은 20세기 후반 문맹률 80%를 달성하고, 오늘날에도 여성 인권 탄압국으로 오명을 쓰게 되었다.[95] 이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기 위해 파키스탄의 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 무함마드 압두스 살람이 이슬람 소수종파인 아흐마디야 신도라는 이유만으로 기록말살형을 주도하기도 했다.
  • 이슬람 해방당 - 간단하게 말해서 영국판 웨스트보로 침례교회. IS에 가입했던 샤미마 베굼의 무조건 송환을 주장하면서, 영국인 중 중동에 봉사활동 하러 갔다가 IS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가족들이 분노를 사기도 했다.
  • 다우드 킴 - 원래는 그냥 한류를 이용하는 동네 양아치 수준이었으나, 다우드 킴 유사 강간 폭로 해명 논란 이후 팬들을 시켜서 폭로자들에게 사적제재를 가하거나 도리어 피해자를 모함하고 있다. 유튜브 코인 때문에 가짜로 개종한 경우이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를 악용한다는 점에서 해당 항목에 예시로 분류 가능.
  • 안젬 쵸우드리(Anjem Choudary) - 영국의 유명 이슬람주의자. 샤리아 도입 시위를 벌이다 결국 IS에 입대할 지하드 전사들을 모으는 등 IS에 공조한 혐의로 기소, 유죄 판결을 받았다. #
  • 하마스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주민들이 최악 대신 차악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다.
  • 이슬람 법정연합(ICU) - 소말리아. 한때는 소말리아에 샤리아 통치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도입하려는 반군이었지만 현재는 반군조직 자체는 붕괴되고 협상을 통해 제도권 정당으로 편입되었다. 이들에게서 갈라져 나온 단체가 위의 알 샤바브이다.
  • 아부 아미나 빌랄 필립스 - 어조나 논조 자체는 온건한 편이지만 사이드 쿠틉의 영향을 받은 신학으로 인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분류된다. 카타르의 지원을 기반으로 온라인 이슬람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8. 관련 문서

9. 외부 링크


[1] 참고로 두 사진 모두 시민들이 ISIL 깃발을 들고 있으며 위의 사진에는 탈레반 깃발도 있다. [2] 신앙심이 부족해 보이는 다른 무슬림을 불신자로 간주하여 폭력과 같은 사적제재를 이슬람 율법으로 정당화하려는 사상 [3] 이외에도 하리지파, 이스마일파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상당수 근본주의 교파들이 현대에는 온건파로 전향한 이유로 오늘날에는 사장되었다. [4] Islamic Fundamentalism [5] Islamic Extremism [6] 다만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이슬람 근본주의"라 표현하는 추세이다. [7] 일 칸국의 창시자인 훌레구 불교를 믿었다. 그래서 초기 일 칸국 각지에 불교 사찰들이 세워졌었다. [8] 초창기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온 네스토리우스교나 그리스 정교회. 특히 일 칸국의 두 번째 군주인 아바카는 맘루크 왕조에 맞서고자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 제국의 공주인 데스피나와 결혼하여 동로마와 결혼 동맹을 맺었고,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하기까지 했다. [9] 원래는 마니교 신도를 일컫는 멸칭이었다. “이단자”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종종 무신론자를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 [10]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게, 일 칸국보다 왕실이 일찍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킵차크 칸국에서조차 많은 귀족들은 여전히 칭기즈 칸 야사를 믿었다. 그래서 킵차크 칸국의 우즈베크 칸이 아직도 이슬람교를 믿지 않고 있었던 몽골 귀족들한테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하자, 그들은 "우리가 당신한테 복종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시오! 왜 우리가 칭기즈 칸의 야사를 버리고 아랍 종교를 믿어야 한단 말이오?"라고 거부하였다. [11] 최재훈. "중동테러리즘과 이슬람원리주의의 상관관계." 한국중동학회논총 27 (2006): 25-55. [12] Rubin, Barry M. Islamic fundamentalism in Egyptian politics. London: Macmillan, 1990 [13] 일례로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진료를 위한 신체노출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하나피파 시조 아부 하니파의 기존 율법 해석을 뒤엎고 남성 의사에 대한 여성 환자의 신체 노출이 불가능하고, 여성이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상식적인 해석을 내리고는 "타락한 서구화와 여성 해방이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라는 미명으로 정당화했다. [14]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을 표방한 채 교리를 왜곡하는 것을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을 위협적으로 바꾸어 풍자했다. [15]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면서 나라를 이끄는 지도층은 교리를 어기는 모습을 보이나, 종교계는 침묵한다. 종교계의 물주가 이들 사회지도층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 발전은 크게 정체된다. [16] 그래서 후술하겠지만 반대로 오일머니가 고갈되면 이러한 근본주의도 수그러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사우디와 비슷한 동네에 있지만 석유는 안 나는 바레인은 사회적으로 개방된 편이다. 개방도 그냥 개방이 아니라 타 아랍권에서 들으면 경악할 만한 동성애가 합법이다. 물론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이슬람 문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만큼 전 국민의 40% 정도가 동성애에 부정적이지만. 반대로 오일머니가 쏠쏠하게 벌리는데도 비교적 개방된 편인 오만 같은 예외는 있긴 하다. [17] 단, 인도네시아에서 개종이 불법인 것은 모든 종교에게 다 해당된다. 애초에 인도네시아는 법적/관습적으로 개인이 무조건 하나의 종교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18] 터키의 공화인민당이나 케말리스트, 바트당, 이슬람 사회주의자 등 [19] Philip Jenkins 저, <신의 미래> 8장에 나온다. [20] 오스만 제국의 보조부대 상당수가 봉급을 약탈로 받았다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자. [21] 그나마 기독교는 초창기에는 하층민들의 믿음으로 퍼졌고, 유대교 역시 유대인의 민족종교선에서만 그쳤지만, 이슬람은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성향이 강한 종교였다. [22] 프랑스 해변에서는 젊은 흑인 남성들이 비키니 혹은 토플리스 차림 여성을 성희롱하는 문제로 선탠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젊은 여자들이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독일이나 스페인 같은 이웃국가에서는 없는 문제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성희롱하는 사람의 저열한 의식 수준이다. [23] 흥미롭게도, 이 방식은 비무슬림 극우파들이 반지성주의적 선동을 통해 이슬람포비아를 조장하며 자신들의 영향력과 권력을 넓히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24] 대표적인 사례로 사이드 쿠틉이 "미국에서는 남녀가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춘다. 그러므로 미국은 사탄의 나라이다."라고 주장했던 단순한 사람들에게 먹히기 쉬운 증오 선동 문구를 들 수 있다. [25] Nazislam [26] 빈센트 반 고흐(독신)의 남동생인 '테오'의 후손이다. [27] 다만 아얀 히르시 알리는 무함마드를 페도필리아, 폭군으로 비난하는 등 편향적인 이슬라모포비아 성향이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28] 물론 베네딕토 16세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전후 문맥의 문제이지, 이슬람에 대한 악의적 비난은 절대 아니었다. [29] 다행히 완전히 타지는 않았다고 한다. [30] 아시아 비비라는 이름의 이 파키스탄 기독교도의 사연도 잘 살펴보면 억울하기가 이를데 없다. 어떤 목마른 일반 무슬림 이웃에게 을 줬는데, 무슬림들이 "더러운 이교도 기독교인이 준 물은 안 먹는다"며 거절하자, 말다툼으로 번졌고 사소한 헤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이걸 본 무슬림 주민들이 엄청난 과장과 이슬람 신성모독을 했다는 날조까지 섞어 모스크에 있는 이맘(성직자)에게 알렸고, 이맘은 광신적 무슬림들과 함께 국민들을 선동했으며, 정부는 무슬림 편을 들어 그에게 자세한 조사도 안하고 교수형을 선고한 것. 이 억울한 피해자인 파키스탄 기독교인 아시아 비비는 2009년에 체포된 이래로 2018년 10월까지 장장 9년간 사형수 신분으로 재심을 치르며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2018년 11월, 이례적으로 파키스탄 사법부로부터 무죄판결이 내려져 거의 10년만에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죄 판결을 선고한 판사는 즉각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살해협박이 내려진 상황이고, 아시아 비비에게도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기 힘든 상황이다. 선고 당일에는 수많은 극단주의자들이 집회를 열어 그녀를 사형에 처하라고 선동을 일삼았다. 사태가 너무 극심해서 임란 칸 현 파키스탄 대통령까지 나서서 극단주의자들에게 그만 설치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31] 마드라사 라고 불리는 세계 각지에 퍼진 전통 이슬람 신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이집트 등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곳에 있는 마드라사는 괜찮지만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의 마드라사는 그야말로 지하디스트 소굴이라 불릴 정도로 극단주의 양성소로 악명이 높다. 문제는 수많은 이슬람 전통지역들의 교육을 여기서 담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 [32] 다만 이 사건 이후 전세계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프랑스 총리는 이슬람 극단주의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33] Fatima Naoot [34] 이슬람식 가축 도살은 서구에서도 이슬람 이민자들과 서구 시민들 사이에 문화적 대립을 불러오는 큰 논란거리 중 하나다. 할랄 푸드 문서로. [35] 심지어 이 여성은 가축 도살의 잔인성만을 비판한 것이지 이슬람 종교 자체를 비판하려는 의도도 아니었다. [36] 이렇게 테러를 자행하는 자들은 대부분 자생적 테러범들임을 표방하기 때문에, 아무리 그 뒤에 있을 배후세력에 대한 심증이 있다해도 물증이 없으므로, 합리적인 세속법으로는 배후세력에게 어떠한 죄를 물을수가 없는 상태이다. [37] Sayyid Qutb, 1906 ~ 1966 [38] 본래 아랍사회주의 성향 국가들은 죄다 열렬한 친소국가였고, 사담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 수단 같은 국가를 제외하면 공산당과 집권 아랍사회주의당이 연정을 하는 일도 흔했다. 1970년대에는 모리타니,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수단, 시리아, 이라크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중동국가 대부분이 친소국가가 되어 버리는, 자유진영 입장에서는 지옥도나 다른없는 사태가 열렸었다. 이후 이집트를 시작으로 엄청난 지원을 퍼붓거나 쿠데타를 사주하며 튀니지, 모리타니 등을 친미국가로 만들고 이라크는 아예 파괴해버렸다. [39] 여기서도 사민주의냐, 마르크스주의냐, 바트주의냐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40] 하마스는 이슬람 사회 건설이 아닌 팔레스타인 독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 요소도 포함되어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요소 때문에 이슬람 국가와도 대립하고 있다. [41] 이들은 기껏 아랍 민주화 운동으로 자유의 빛을 보나 했던 이집트를 다시 암흑시대로 돌려놓은 장본인들이다. 겉으로만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집권한 뒤 이집트의 세속주의자들과 기독교도들을 탄압하고 이집트를 무슨 이란처럼 이슬람 극단주의 신정국가화 시키려다가 결국 이에 반발한 군부의 재쿠데타로 박살이 난뒤 군부정권에게 폭력적인 무력시위로 항거하다 수천명이 사살당하고 대규모로 탄압당했으며자업자득 현재 테러조직으로 지명당한 상태다. [42] 오스만 튀르크 시절, 튀르크인들은 아랍인보다 발칸 반도의 유럽인과 페르시아인들을 중용했고, 아랍인들에 대한 대우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랍 세계에서는 오스만 튀르크 시절을 아예 흑역사 취급해버린다. [43] 그나마 아랍민족주의에 기반한 이집트와 튀니지만이 아직까지 건재하게 살아남고 있으며 시리아는 아랍사회주의 성향인 바트당과 극단주의간의 내전으로 전국토 절반이 유린당하는둥 많이 피폐해진 상태이다. [44] '그분께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길'은 이슬람권에서 무함마드를 포함한 예언자에 대해 언급할 때 붙는 미칭이다( 출처). [45] 비록 인도네시아가 무슬림 인구가 대다수인 국가이긴 하지만 퇴폐적인 유흥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이 만만치 않기 때문. 아체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일단 도시권이기만 하면 히잡 이외에는 이슬람의 느낌을 거의 받을수 없을정도이다. 이는 인도네시아인들도 마찬가지라, 도시권, 특히 자카르타를 비롯한 상위 대도시권 거주자들은 세속주의적인 면이 강하다. 다만 이는 인도네시아가 성장해나가던 20세기 후반에 경제가 발전하며 나타난 세속주의 경향이 도시권에 남아서 내려오는 것 뿐으로, 인도네시아가 중진국 함정의 긴 정체기를 맞고 있는이상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대체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는 나라가 본격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발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21세기 들어서며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수구화는 강해져가고만 있다. [46] 고발사유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데, "이교도인 기독교인 주제에 감히 쿠란 구절을 언급했다"는 이유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가치관이 얼마나 폭압적으로 꽉막히고 오만한 지경에 달해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다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보통은 이교도가 쿠란 구절을 알면 기특하게 여기서 '이미 쿠란 구절을 알고 있으니, 이제 개종하지 않겠냐'는 식으로만 말하기는 한다. 저 경우에는 쿠란 구절을 언급하며 자신들을 비난하는 경우였으니 괘씸죄가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47] 기독교와 이슬람 양측 사상자만 무려 1만여명 수준이다. 종교 내전이 한창일 때는 길거리에서도 하루가 멀다하고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이 폭동과 전투를 벌였으며, 거의 매일 교회/ 성당 모스크가 파괴되고 불타는 지경이었다. 카노, 카두나, 조스 등 주요 도시에서 대형 충돌이 한번 나면 최소 몇십~몇백명식 죽고 다치는 건 예삿일도 아니었다고. 나이지리아 종교 분쟁 일지를 보면 이슬람주의자들의 샤리아 강요 때문에 얼마나 이 나라의 기독교 대 이슬람의 갈등이 극심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이건 뭐 당장 나라가 수단 남수단처럼 2개의 국가로 쪼개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99] 사실 기독교의 반격에도 정당성이 있는 것이, 나이지리아에 샤리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샤리아에 대한 설명에도 나와 있지만 모든 비이슬람 종교와 사상에게는 지옥이 펼쳐지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48] 이러한 헛소리가 먹히는 이유는 위 항목에서 설명한 기독교와 서구에 대한 포비아, 그리고 이중잣대가 무슬림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기 때문이다. [49] Abul ala Maududi, 1903~1979 [50] 이들은 스리랑카 불교 사원에 들어가서 일부 개독들이 절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찬송가 부르고 깽판 치듯이 행동하였다. 참고로 이들은 스리랑카 무슬림들이 아닌 파키스탄이나 아랍에서 이민온 극단주의자들이다. 오히려 스리랑카에서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무슬림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불교시설에 횡포부리지 못하게 막고 있다. 스리랑카 국영방송에 이러한 무슬림들이 나와 지금 테러를 가하는 무슬림들은 외부에서 온 극단주의 테러리스트가 벌이는 짓이라며 대놓고 비난한 적도 있을 지경이며 이러한 극단주의자들 시위현장에 스리랑카 이슬람 시위대가 가서 패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 [51] 참고로 쿠란에서는 다신교 신상을 (지역 공동체와의 합의 없이) 함부로 파괴하면 이교도들이 분노하게 되므로 함부로 반달하지 말라고 나온다. [52] 이 당시 프랑스군까지 파리 시내에 진입해서 치안업무를 분담했는데, 그 다음에 프랑스군이 무장하고 파리에 진입한 사건이 바로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였을만큼 당시 분위기가 흉흉했다. [53] 서방국가에 거주하며 민주주의 법의 보호를 받는 이슬람 이민여성들의 지위랑 이슬람 국가들에 사는 토착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만 해도 천지차이다. 극단주의 이슬람 신자들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여성평등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서구 사회의 정부는 쿠란 하디스에 반하는 모조리 타도해야 할 타락한 불신자 정부인 것이다. [54] 원래는 진리를 은폐하는 거짓된 자라는 뜻인데, 보통 불신자로 번역된다. [55] 무슬림을 사칭하는 위선자 [56] 이 무슬림은 아흐마디야 무슬림인데 이 종파는 무함마드 후의 예언자를 주장하여 이슬람의 주류 마드하브에서 이단시되는 교파이다. 대략 삼위일체를 내세우는 기독교와 반삼위일체를 내세우는 사이언톨로지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57] 단 해당 범죄는 단순히 기독교의 명절을 축하해서가 아니라 이단 소속 종파에 속했다는 이유로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이단이나 사이비라도 해를 끼치지 않은 타인을 죽이는 것은 엄연한 사적제제이며 정교분리 국가에선 명백한 범죄이다. [58] 미국에서 반지성주의가 강한 바이블 벨트 지역의 음란물 중독 문제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심각하다고 한다. 마찬가지다 [59] 한국의 외국인 무슬림들도 이런 경우가 간혹 있어서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60] 보스니아인들은 ’내전‘이란 표현도 무척 싫어한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는데 ‘내전’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내전’이냐는 것. [61] 실제로 세르비아 vs 이슬람 국가 주제로 보스니아 사람들과 얘기할 경우, 압도적으로 이슬람 국가편에 서겠다는 쪽이 많다. 그만큼 세르비아에 대한 악감정이 심한 셈. [62] 조구 1세 왕가는 이슬람교 신자이긴 했다. 현 왕실 수장인 레카 2세는 미지수. [63] 공식적 확인만 이정도고 실제로는 확인도 힘들다. [64] 헌데 또 사실 이는 기독교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서양 사람들이라고 해도 기독교에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가 있으며 정교회에는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으로 나뉘어 있고 개신교 성공회, 장로회, 감리교 등이 있다 정도 까지는 알겠지만 그 안에서도 또 나뉘는 교파에 대해선 잘 모를 것이다. 그나마 일단 서구권은 기독교가 강세인 편이고 오랫동안 자리잡았으니까 더 잘 아는 것 뿐이다. [65] 사파비 왕조는 쉬아 근본주의 성향에 순니 무슬림을 학살하거나 강제 개종시키는 일에 열심히였지만, 아르메니아인 기독교인들은 교회도 지어주고 잘 보호해주었다. [66] 사실 종교가 같다고 무조건 같은 편이라는 건 허무맹랑한 얘기다. 당장에 카를 5세 시기의 유럽만 해도 신성 로마 제국을 견제하겠다고 가톨릭 국가 프랑스가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과 손을 잡은 바 있고 카를 5세는 교황령의 본진인 로마를 털어버린 바 있다. [67] 북키프로스는 제외 [68] 다만 사문난적은 그렇다고 사문난적=너 사형은 아니었다. 사문난적 소리는 말 그대로 그냥 이단이라는 소리지 저걸로 죽이네 마네 하지는 않았다. [69] 이를테면 셀주크 제국의 명재상 니잠 알 물크를 암살해서 중동 전체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던지... [70] 당장에 서구권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을 벗어나면 근본주의, 극단주의 핑계를 대며 대놓고 탄압한다. 이들이 유럽에서 난리를 치는 것도 거기엔 민주주의가 있으니 가능했지 독재 체제였다면 어딜가나 진작에 무자비하게 때려잡았을 것이다. [71] 당장에 종교개혁의 원인이 된 면죄부 판매도 교황청이 돈벌이 수단으로 면죄부라는 관습을 악용한 것이다. 이는 결국 면죄부 판매는 물론 이를 발벗고 나선 가톨릭에 대한 비판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72] 대한민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실 사우디 아라비아는 1979년 이전까지는 같은 와하비즘이라도 그렇게 아주 수구적인 문화까지는 아니었다. 왕족 상당수가 서구 유학을 다녀오며 서구 문화에 심취했기 때문... 그러나 서서히 사이드 쿠틉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주의 성향 인사들을 사회적으로 대거 채용하고, 이란 혁명의 여파로 인한 종파주의 성장과 메카 그랜드 모스크 테러사건 이후 근본주의 와하비즘 세력의 눈치를 보며 80년대 이후 급속도로 수구화가 가속화된 것. 21세기 들어서의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은 냉정하게 말하면 이 수구화의 고삐를 철저히 '개인의 의지와 권력으로' 다소 늦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73] 다만 독일의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의 활동비 상당부분이 기실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가 전담하다시피 한다는 사실은 엄연히 근거가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 시리아 난민이 독일 모스크에 와서 자국의 자이슐 이슬람 모스크에 온 기분이 들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74] 요르단에서 ;셰이크'라는 최고 장로의 자리에 있었다. [75] 거기다가 그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샤리아도 이슬람 초기에서 전혀 변화가 없던 것도 아니다. 순나나 쿠란 역시도 마찬가지로 순나는 이슬람력으로 2세기에나 완성되었고 쿠란 역시도 무함마드 생전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가 죽고도 10여년 뒤에야 완성되었다. 겨우 10여년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하겠지만 놀랍게도 이슬람은 그 10여년 동안 무함마드 시절에 비해 심하게 변질되었다. 일례로 저렇게 쿠란이 완성된 시기의 칼리프는 우스만이었는데 우스만이 칼리프가 된 과정만 봐도 이슬람이 처음에 비해 얼마나 변질되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쿠란의 완성조차 아무런 첨삭없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고 그의 반대파는 쿠란의 완성 도중 기록과 자료의 폐기를 비난했으며 이 때는 쿠란이 완성된 것도 아니었기에 여러 쿠란들이 있어서 자신들의 쿠란이 진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76] 쿠란과 하디스에는 고리대금업을 간음보다 더 사악한 행위로 규정하지만, 정작 샤리아는 시간이 지날수록 율법 학자들의 고리대금 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이슬람에서 성선설은 본래 노예 등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지만, 정작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 성직자들은 외노자들을 대놓고 노예라고 비하하며, 성선설은 근본주의 선교사들의 반지성주의 프로파간다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된다. [77] 이는 민주주의과 관련된 자조적인 밈이 아랍권 한정으로는 꽤 진지하게 작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78] 나치당의 집권과정만 봐도 그렇다. 1932년을 시작으로 하여 나치 체제가 완성된 1934년까지 총선이나 대선, 수권법 등에서 나치는 계속해서 정당한 선거를 통해서 집권의 과정을 밟았다. 만약 어쩌다 한 단계에서만 이겼다면 그 때만 반짝 이기고 끝나고 결정적인 한 구간에서 졌다면 멈출 수 있었겠지만 단 한 단계에서도 지지 않았고 그만큼 점점 민주주의는 망가지다가 결국 무너진 것이다. [79] 민주주의와 관련된 수많은 사상과 학파, 이론, 제도 등이 존재하나 이 대원칙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간접민주주의는 대표자를 뽑아 위임한다는 것에서 달라보일 수 있으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 그리고 대표들끼리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는 역시나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80] 욕구계층이론에 따르면 애초에 생활 수준이 개선되면 자유나 권리같은 것을 바라게 되어 있다. [81] 사실 이것은 나치스도 마찬가지다. 애초 2차대전 전만 해도 나치스가 악이라고 여겨지기는커녕 나치스를 위기돌파의 롤모델처럼 여기는 풍조도 있었을 정도다. 그나마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로 인해 완전히 악으로 낙인찍히니까 또 등장해도 쉽게 밟아버리는 거다. [82] 이런 면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레디랑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83] 소련의 스탈린 대숙청을 벌이며 유능한 군 장성들까지 마구잡이로 총살하던 와중에도, 어째서 작가나 작곡가는 아무리 화가 나도 대놓고 죽이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무력이나 인구수가 우월해도 문화가 부실한 사회는 단합되지 못하고 금방 무너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84] 허나 안심할 수는 없다. 일단 인구수 자체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적어도 이들이 하레디처럼 선거에서만큼은 활발하게 활동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위협이 된다. [85] 알바니아나 중앙아시아의 경우 이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극단주의가 뿌리뽑혔다. [86] 사실 어떻게 보면 안일한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불과 수십년 전 독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까, 물론 너무 옛날이기는 했지만 아랍에 비하면 독일은 그래도 외부와의 교류도 더 많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이해는 더 많았다. 당장에 배후중상설 같은 헛소리가 횡행하는 와중에도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는 일단 등장 후 10여년 동안은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다. 반대로 이들보다 이해도가 없는 아랍에서는 그만큼 붕괴도 빠를 수밖에 없다. [87] 이슬람 교리상으로 쿠란의 내용 자체는 진보적인 입장에서도 고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라, 쿠란 내용을 첨삭하거나 변경하는 건 아예 다른 종교가 되어버린다. [88] 불행하게도 이슬람에 한해서 지금 상태로는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세 말 교회가 타락했을 때 종교개혁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르네상스로 인한 인본주의가 나타나고 마르틴 루터 같은 성직자들이 당시로서는 금기에 가까웠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를 비롯한 자국어로 번역출판하여 기독교를 믿는 대다수 민중들이 성직자의 입이 아닌 성경 그 자체를 직접 접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성직자들이 뭔가 잘못되었다. 라는 여론이 대대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쿠란 같은 경우는 내용 자체의 문제점은 둘째치더라도 쿠란 해석이 순니파에서는 사실상 획일화되어왔고, 쉬아파에서는 일부 기득권 이맘들이 해석권을 독점하고 있다. 쿠란에서는 비무슬림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분명히 쓰여있는데도, 와하브파를 위시한 근본주의 해석에서는 이를 부인하며, 오늘날과 같은 경직된 형태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이슬람권에서 종교개혁이 발생하려면 이슬람권 전체의 낮은 독서율 및 비교적 높은 문맹률 해결과 더불어, 무슬림들이 쿠란을 그냥 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닌 필터링을 하며 이해하도록 허가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이 앞서지 않고소수 진보적 이맘들이 아무리 시도해봤자 종교개혁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 혹은 민간 주도의 교육에 투자가 있어야 할텐데 국가 주도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국가를 주도하는 기득권층이라고 저걸 모를 리 없고 민간 주도 [89] 기독교의 종교개혁은 루터 혼자 한 일이 아니다. 루터보다 150여년 전에 영국의 위클리프가 종교개혁을 주장했고, 체코의 후스가 그 뒤를 이었다. 흔히 루터 전의 종교개혁가들의 업적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루터가 종교개혁을 부르짖었을 때 독일 및 동유럽의 루터교회와 영국의 성공회가 그렇게 빠르게 정착될 수 없었고, 따라서 신교가 구교에 대항할만한 세력이 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루터 전에도 그 지역들에서는 종교개혁의 분위기가 수면 아래서 조성되고 있었던 것. 수니파와 시아파를 막론하고 현재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16세기 유럽에서와 같은 종교개혁의 분위기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루터 이전의 종교개혁가들이 없었다면, 루터도 '미래의 루터를 위한 위클리프'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의 이슬람의 상황은 루터보다 위클리프를 찾아야 할 시기라고 봐야 한다. [90] 하지만 역사를 바꾼 사건 중에 '일어날 것이다" 예측된 뒤에 일어난 사건이 얼마나 많았는가? 1930년에 "10년 안에 독일이 또 세계대전 일으킨다!"라고 말하거나, 1970년에 "25년 안에 소련이 쪼개진다"라고 말한 사람이 얼마나 됐을지를 생각해 보자. 이슬람도 2090년경에는 종교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91] 이렇게 한다고 동유럽도 피해를 보는 건 없는데 동유럽은 이슬람 난민들이 주로 발생하는 지역에서 멀기 때문이다. 또 그들을 받아들일 경제력도 없는 실정이고. [92] 무슬림의 수평적인 구조 때문에 반목을 일으키기도 쉽고, 알아서 반목을 일으켜서 서로 싸우는 경우가 정말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다. 애초에 비이슬람권도 단결한 것이 아닌 만큼 이슬람권도 단결된 것이 아니라서 종파별로 국가별로 갈등이 잔뜩이다. 심지어 저 극단주의 단체들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알카에다가 IS의 수장인 알 바그다디를 상대로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93] 다른 명칭으로는 평화의 여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운다. [94] 필리핀은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가톨릭 우세 국가인데도 [95] 원래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모한디스 간디의 인도 통일와 힌두교와의 화합을 추구했던 온건파였었다. 이 때문에 그가 "여성 해방과 타락한 서구화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식으로 개혁파들을 몰아세우자 개혁파들이 발언권을 상당 부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96] 이슬람교 마이너갤 온건 무슬림 유저와 함께 부매니저 시절 수니파 테러리스트 찬양글을 올렸으며 2024년 6월말 온건 유저가 매니저가 돼서 부매니저에서 일반 유저가 된 후 수니파 마갤로 돌아간후 다른 유저들의 신고로 매니저에서 퇴출된 이후에도 IS와 테러리스트 찬양글, 다른 이슬람 커뮤니티에 온건 무슬림들을 비하하고 있다. 심지어 이주화 이맘이 2024년 6월 가톨릭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말을 아니라고 이주화 이맘이 거짓말 하는 거라고까지 말하면서 타크피르를 시전했다. [97] 2024년 아슈라 오만의 시아파 성원이 IS에 의해 테러당했을 때는 현재 매니저와 부매니저가 없는 시아파 마이너 갤러리에 시아파가 죽어서 행복하다는 글을 올렸다. 참고로 2024년 7월 이슬람교 마이너 갤러리의 새로운 매니저가된 온건 이슬람 유저는(대한민국 무슬림이며 수니파다.) 시아파 마이너 갤러리에 테러로 희생된 시아파 무슬림들은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인도하고 다예쉬들은 지옥으로 인도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98] 이념을 보면 오리엔트 정교회를 포함시키는 것을 볼 때 이슬람만이 최고이며 다른 종교는 악으로 규정하는 막장 테러단체에 비하면 개방된 편이다. 물론 공정한 시각에서 보자면 시리아와 IS 문제로 최근에야 없을뿐 한때 테러 행위를 일삼았던 조직임에는 분명하고 또 같은 편에게는 잘 해주지만 일단 적으로 간주하고 테러의 타겟으로 삼은 상대에게는 무자비하게 대하는 이슬람주의 조직이다. 물론 알카에다와 그 뒤를 이은 ISIL 같은 극단적 수니파 테러리스트에 비할 바는 아니라서 그래도 얘네들이 비교적 낫지라는 의견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