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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1994)

84부작 삼국지에서 넘어옴
삼국연의 (1994~1995)[1]
三国演义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파일:22115E45521762A226.jpeg.jpg
<colbgcolor=#980000><colcolor=#d4cd99> 방송 기간 1994년 10월 23일 ~ 1995년 2월 20일
방송 횟수 84부작
제작
채널
제작진 <colbgcolor=#980000><colcolor=#d4cd99> 제작
총괄
임대혜(任大惠)
총감독 왕부림(王扶林)[2]
연출 심호방(沈好放), 채효청(蔡晓晴), 장중일(张中一), 손광명(孙光明), 장소림(张绍林)
극본 두가복(杜家福), 주효평(朱晓平), 엽식생(叶式生), 주개(周锴), 이일파(李一波), 류수생(刘树生)
원작 나관중 삼국지연의
출연 손언군, 포국안, 육수명, 당국강, 이정비 등
해설 오준전
국내 스트리밍 파일:왓챠 로고.svg | 파일:wavve 로고.svg | 파일:Seezn 로고.svg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영상3. 특징 및 평가4. 등장인물
4.1. 주요 인물4.2. 후한 조정4.3. 군웅4.4. 위4.5. 촉한4.6. 오4.7. 진4.8. 이민족
5. 방영 목록
5.1. 제1부5.2. 제2부5.3. 제3부5.4. 제4부5.5. 제5부
6. 각종 에피소드7. 방영
7.1. 대한민국7.2. 일본
7.2.1. 성우진
7.3. 홍콩
8. 매체 현황9. 여담10. 관련 문서11.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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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CCTV에서 TV 시리즈로 만든 84부작 삼국지 드라마이다.

한 회당 40분씩 총 3360분(56시간) 분량이며 중국 방영시의 원제는 삼국연의(三國演義)이다. 1990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해서 1994년 CCTV에서 방영되었다. 원제는 삼국연의지만 84부작으로 방영돼서 흔히 '84부작 삼국지'라고 부르거나 2010년 방영된 삼국과 구별해서 '구 삼국'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역시 2010년 드라마와 구별하기 위해 라오산궈(老三國, 노삼국)이라고 부른다.

2. 영상

<rowcolor=#d4cd99> 메인 테마[3] 오프닝[4] 원본영상 아카이브
<rowcolor=#d4cd99> 엔딩곡 전체 음악
<rowcolor=#d4cd99> 촬영 현장 1993년 주연 배우들의 기념 파티

3. 특징 및 평가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f6c700><tablebordercolor=#f6c700><tablebgcolor=#fff,#191919><:> [[IMDb|
파일:IMDb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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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6699cc><#edf4ec> 파일:더우반 로고.svg ||
별점 9.6 / 10



원작 삼국지연의를 가장 충실하게 재현한 드라마다. 중화권에서는 삼국지 영상화의 정석이자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영상물이다. 소설의 이야기, 주제, 많은 등장인물들, 장대한 스케일을 잘 담아내면서도 작품성과 역사적 가치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대~1990년대 CCTV가 제작한 중국사대명저 실사화 프로젝트[5] 중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드라마라 할 수 있는데, 회차도 가장 많으며, 3년여에 걸쳐 제작된 장기 프로젝트다. 당시, 삼국지연의를 소재로 한 작품은 많이 있었으나, 그 규모의 크기로 인해 전편의 완전 영상화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1991년 7월부터 국가적 사업으로 제작을 시작했다.

제작비는 당시 중국 드라마 사상 최대 제작비인 1억 7,000만 위안을 쏟아 부었고,[6] 동원된 중국 인민해방군 엑스트라는 연인원 10만 명이 넘는 규모로 중국 영상화 사상 전무후무한 규모로 진행됐다. 중국의 경제사정이 많이 열악했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비슷한 시기 제작된 한국이나 일본의 대하사극과 비교해서 스케일도 압도적이고 볼거리도 다채로운 편이다.[7] 현실감과 박력의 추구를 위해, CG나 미니어처는 사용되지 않고, 조조가 건축한 동작대 적벽대전의 진영 세트는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 적벽대전의 촬영은 세트나 선박을 실제로 태워 진행했다. 무장의 일대일 대결 장면도 무장 배우들이 대역 스턴트맨 없이 소화했다. 그렇게 3년 동안 녹화 등의 작업을 거친 끝에 1994년 10월에 1회가 방송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방송 시간이 되면 중국 번화가에서 사람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아주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비천상 최우수 작품상·최우수 남우상·미술상·금매상·금룡상·중국 정부가 시상한 오일상 등 드라마 시상식을 휩쓸었다.

총감독은 왕부림이며 심호방, 채효청, 장중일, 손광명, 장소림 등 6명의 감독이 연출해서 연출 퀄리티가 제각각인데 고증은 잘된 편. 대체로 삼국지연의를 충실하게 영상화한 편이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 따라 뭔가 깔끔해보이는 신삼국보다 옛날티, 먼지 풀풀 나보이는 84부작 삼국지가 더 그 시대 고증을 잘 한거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사실 적벽대전 시기의 묘사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신삼국보다 복장고증은 좋다. 게다가 적벽대전 시기 고증이 안좋다는 것도, 주유와 조조, 관우 등 주연급 몇명만이 일본풍의 갑옷을 입은 게 전부. 사실 시대 고증에만 안 맞을 뿐, 일본 투구하고 모양이 같지도 않다. 잘 보면 일본 투구와 구조자체도 다르다. 나머지 장수들은 본래의 중국식 갑주를 입고 있고 군졸들도 진시황릉 병마용 갑옷을 입고 과(무기) 극(무기) 등 당대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전체적인 등장인물들의 특징은 삼국지연의에서 흔히 떠올려지는 그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신삼국은 상당히 많은 대사가 창작이나 재해석이지만 84부작 삼국지의 대사는 대체로 원본 삼국지연의의 대사들을 그대로 살린 편이다. 특히 원전을 드라마 대사로 100% 그대로 살린 구절에서는 마치 인용이라도 하듯이 연의의 내용이 그대로 자막이 올라온다. 이정도의 노력을 가했으니, 중국에서는 특히 대사의 억양도 가급적 과거의 그것을 이었다고 선전할 정도였다. 특히 군웅할거 부분에서 여포 관련 부분은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몰락하는 여포를 보여주고 있다.

명배우들의 연기도 볼거리다.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의 역량이 상당히 높은데, 유비로 나온 배우 손언군은 거상 여불위에서 여불위를 맡았고 영화 아편전쟁의 공동 제작자이자 주연인 임칙서를 맡은 배우 포국안이 조조[8], 관우로 나온 배우 육수명(陸樹銘)은 공리가 주연한 진용에서 진시황으로 영화 초반 잠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한무대제에서는 이광으로 출연했다. 특히 제갈량역의 배우 당국강(중국에서 유명한 배우 중 하나)은 초기엔 능글맞은 사기꾼 같다가 늙은 제갈량이 되면 카리스마있는 모습을 보이는 등 굉장한 연기를 보인다.[9][10] 특히 유명한 출사표는 서예가이기도 한 당국강이 직접 붓을 들었다. 1호 조운 역의 배우 장산은 영화 적벽대전에서 황개로 출연했다.[11] 사마의 역으로 나오는 배우는 후에 수호전(1998)에서는 진짜 악역인 고구를 맡았다.

대작은 대작이지만 배우 돌려쓰기나 교체가 좀 잦은 편인데 이를테면 이유로 나온 배우는 후일에 양수로 다시 출연하고 젊은 날의 원소는 후일에 주유로 다시 나온다. 손견의 경우도 같은 배우가 뒤에선 손권을 연기하고 노숙이나 방통[12]도 중간에 바뀌는 바람에 좀 헷갈리는 경향이 있다. 배우 목록 조운 같은 경우는 배우가 세 번 바뀌었는데 위에 장산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잠깐 공손찬역을 맡았던 배우로[13] 바뀌고 다시 장산으로 돌아왔다가, 노년은 전혀 다른 인물이 맡았다. 이런 상황이 생기는 원인은 진도를 다그치기 위해 5개 제작진에서 동시에 찍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동일 인물이 여러 제작진들의 진도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경우, 몇몇 주연들을 제외하면 다른 배우로 교체했던 것.

하지만 연의에 충실한 작품인 만큼 이후 나온 신 삼국에 비하면 주요 사건이 각색, 생략된 면이 매우 적어서, 이에 비하면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시청자들이 내용을 보며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가령 한중 공방전의 경우, 삼국연의에선 조조가 후퇴하다가 입에 화살을 맞는 장면까지 연출해낸 반면[14] 신 삼국에서는 조조와 유비의 신경전과 직후의 교전 극초반부 이후로는 문자 그대로 통째로 잘려나갔다. 그저 배우들의 대사로 퉁치는 정도이다. 배우 돌려쓰기를 제외하면 삼국지 매체로서의 완성도는 삼국연의보다 화수가 더 많은 신 삼국보다 오히려 더 높은 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신 삼국의 문제점 항목을 참고.

그렇다고 생략이 없는 건 아니다. 유비가 황제의 밀서를 받는 부분까지는 생략이 꽤 있다. 손견이 사망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고 은근슬쩍 나레이션으로 퉁친 뒤 손책이 나오고, 조조가 단독으로 장안으로 도망가는 동탁을 추격하다 이유의 매복에 걸려 당하는 장면도 삭제되고 나레이션과 등장인물의 대화로 넘긴다. 조조가 황제를 옹립하는 과정도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 거기다 조운과 유비가 처음 만나는 장면 및 유비가 조운을 흠모하는 장면도 삭제가 되어, 유비가 공손찬에게 군사를 빌려오는 장면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갑툭튀, 그냥 유비 휘하의 장수 A 정도로 존재감없이 나온다. 그래도 중요한 장면은 상당수 묘사하는데다 생략된 부분도 설명을 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신 삼국처럼 내용 연결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별로 없다.

4. 등장인물

4.1. 주요 인물

  • 유비 손언군 // MBC(97) 더빙판 성우 - 박일
  • 관우 육수명[15] // MBC(97) 더빙판 성우 - 김기현
  • 장비:이정비[16] // MBC(97) 더빙판 성우 - 이호인
  • 조조:포국안[17] // MBC(97) 더빙판 성우 - 김규식
  • 손권:오효동[18] // MBC(97) 더빙판 성우 - 김용식
  • 제갈량 당국강 ; 삼고초려 시기 이후 초기에는 다소 능글맞은 이미지 / 입촉 후 수염 양이 늘고 근엄해짐 // MBC(97) 더빙판 성우 - 김도현

4.2. 후한 조정

4.3. 군웅

4.4.

4.5. 촉한

4.6.

4.7.

4.8. 이민족

5. 방영 목록

총 5부 84회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화를 총 지휘한 감독은 왕부림(王扶林)이다.

5.1. 제1부

<rowcolor=#d4cd99,#d4cd99> 군웅축록(群雄逐鹿)
<rowcolor=#d4cd99,#d4cd99> 회차 제목 각본 연출 음악 제작
제1회 도원결의
桃園三結義
두가복
杜家福
채효청
蔡晓晴
이일정
李一丁
우세군
尤世军
제2회 십상시의 난
十常侍亂政
제3회 동탁이 낙양을 장악하다
董卓霸京師
제4회 조조가 칠성보도를 바치다
孟德獻刀
제5회 호로관에서 세 영웅이 여포와 싸우다
三英戰呂布
제6회 연환계
連環計
제7회 봉의정
鳳儀亭
제8회 유비가 서주를 세번 양보하다
三讓徐州
심호방
沈好放
제9회 손책이 강동에서 거병하다
孫策立業
제10회 원문에서 활로 방천화극을 쏘다
轅門射戟
제11회 완성 전투
宛城之戰
제12회 백문루 (상)
白門樓 (上)
제13회 백문루 (하)
白門樓 (下)
제14회 조조가 유비에게 영웅론을 설파하다
煮酒論英雄
주효평
朱晓平
제15회 조조와 원소가 군사를 일으키다
袁曹起兵
제16회 관우가 조조에게 세 조건을 약조하다
關羽約三事
제17회 관인을 걸고 황금을 봉하다
掛印封金
제18회 관우가 두 형수를 모시고 천리길을 달리다
千里走單騎
제19회 삼형제가 고성에서 재회하다
古城相會
제20회 손책의 죽음
孫策之死
제21회 관도 전투 (상)
官渡之戰 (上)
제22회 관도 전투 (하)
官渡之戰 (下)
제23회 조조가 원소를 대파하다
大破袁紹

5.2. 제2부

<rowcolor=#d4cd99,#d4cd99> 적벽진전(赤壁塵戰)
<rowcolor=#d4cd99,#d4cd99> 회차 제목 각본 연출 음악 제작
제24회 유비가 적로마를 타고 단계를 뛰어넘다
躍馬檀溪
주효평
朱晓平
채효청
蔡晓晴
이일정
李一丁
장광전
张光前
제25회 유비가 인재를 구하다
劉備求賢
제26회 서서가 말을 돌려 제갈량을 추천하다
回馬薦諸葛
제27회 삼고초려
三顧茅廬
제28회 조조군을 박망파에서 불태우다
火燒博望坡
제29회 유비가 백성들을 이끌고 장강을 건너다
攜民渡江
刘树生
류수생
제30회 제갈량이 동오의 재사들과 설전을 벌이다
舌戰群儒
제31회 제갈량이 주유를 말로 격분시키다
智激周瑜
제32회 주유가 계략을 쓰나 실패하다
周瑜空設計
제33회 주유가 장간을 군영회로 초대하다
群英會
제34회 조조에게 10만개의 화살을 빌리다
草船借箭
제35회 고육계
苦肉計
제36회 방통이 조조에게 연환계를 제안하다
龐統獻連環
제37회 조조가 시를 읊다
橫槊賦詩
제38회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리다
諸葛祭風
제39회 불타는 적벽
火燒赤壁
제40회 지략으로 남군을 취하다
智取南郡
제41회 유비가 형주 4군을 얻다
力奪四郡
제42회 미인계
美人計
제43회 감로사
甘露寺
제44회 유비가 형주로 돌아가다
回荊州
제45회 주유가 세 번 화내다
三氣周瑜
장중일 (张中一)
학항민 (郝恒民)
단우생 (单雨生)
학항민 (郝恒民)
제46회 제갈량이 주유를 애도하다
臥龍吊孝
장중일
张中一
왕헌
王宪
단우생
单雨生
제47회 조조가 수염을 자르고 도망치다
割須棄袍
이일정
李一丁

5.3. 제3부

<rowcolor=#d4cd99,#d4cd99> 삼족정립(三足鼎立)
<rowcolor=#d4cd99,#d4cd99> 회차 제목 각본 연출 음악 제작
제48회 장송이 유비에게 서촉의 지도를 바치다
張松獻圖
엽식생
叶式生
장중일
张中一
왕헌
王宪
단우생
单雨生
제49회 유비가 서촉으로 들어가다
劉備入川
제50회 방통이 낙봉파에서 명을 다하다
鳳雛落坡
제51회 장비가 엄안을 풀어주다
義釋嚴顏
제52회 유비가 서촉을 정벌하다
奪戰西川
제53회 관우가 무장한 채 노숙의 잔치로 가다
單刀赴會
손광명
孙光明
학항민
郝恒民
제54회 합비 전투
合肥會戰
제55회 조조의 아들들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다
立嗣之爭
제56회 정군산
定軍山
제57회 지략으로 한중을 취하다
巧取漢中
제58회 관우가 칠군을 수장시키다
水淹七軍
제59회 관우가 맥성으로 도주하다
走麥城
제60회 조조의 죽음
曹操之死
주개
周锴
제61회 조비가 한을 찬탈하고 위를 세우다
曹丕篡漢
제62회 유비가 동오 정벌을 위해 출진하다
興兵伐吳
제63회 육손이 촉의 진지를 모두 불사르다
火燒連營
제64회 오로군으로 촉을 치다
安居平五路
이일파
李一波

5.4. 제4부

<rowcolor=#d4cd99,#d4cd99> 남정북전(南征北戰)
<rowcolor=#d4cd99,#d4cd99> 회차 제목 각본 연출 음악 제작
제65회 노수를 건너다
兵渡瀘水
이일파
李一波
장소림
张绍林
왕헌
王宪
장기중
张纪中
제66회 기로에서 길을 묻다
絕路問津
제67회 칠종칠금
七擒孟獲
제68회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고 북쪽으로 출진하다
出師北伐
제69회 제갈량이 강유를 얻다
收姜維
제70회 사마의가 다시 군사권을 얻다
司馬復出
제71회 제갈량이 공성계를 쓰다
空城退敵
제72회 사마의가 조진에게 대도독의 인수를 받다
司馬取印
제73회 제갈량이 사마의와 지혜를 겨루다
祁山斗智
제74회 제갈량이 귀신 분장을 하다
諸葛妝神
제75회 제갈량이 여섯번 기산으로 나아가다
六齣祁山
제76회 상방곡에 불을 붙이다
火熄上方谷
제77회 오장원의 가을바람
秋風五丈原

5.5. 제5부

<rowcolor=#d4cd99,#d4cd99> 삼분귀일(三分歸一)
<rowcolor=#d4cd99,#d4cd99> 회차 제목 각본 연출 음악 제작
제78회 사마의가 꾀병으로 조상을 속이다
詐病賺曹爽
주개
周锴
장중일
张中一
왕헌
王宪
단우생
单雨生
제79회 오 궁궐에서의 정변
吳宮干戈
제80회 철롱산에서의 포위
兵困鐵籠山
제81회 사마소가 황제 조모를 시해하다
司馬昭弒君
제82회 중원으로 아홉번 나아가다
九伐中原
제83회 등애가 음평의 샛길을 이용하여 촉으로 들어가다
偷渡陰平
제84회 삼국이 진으로 통일되다
三分歸晉

6. 각종 에피소드

  • 작중 병졸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인민해방군 소속 군인들인데 한번 촬영에 5천명 정도씩 모두 약 40만명이 동원되었다.
  • 총 1억 7000만위안(약 334억 9천만원)이 투입돼 1억 위안 가까이 촬영장을 만들고 7000만 위안은 직접 촬영에 투입했다. 중국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 2개를 줘저우시에 설치했는데, 각 면적 1200㎡에 2개 스튜디오가 약 4000만 위안, 우시의 '삼국성'과 같은 기간 드라마 '당명황'을 위해 지은 '당성'이 약 2000만 위안, 줘주우시의 '한성벽' '거리' '동작대'가 약 3000만 위안, 의류 1000여종 3만여벌에 약 2000만 위안의 비용이 들었다.
  •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제작되었는데 1990년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어 기본 계획이 수립되고 시나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1991년 7월 촬영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으며 촬영지는 하북, 내몽고, 사천, 영회, 감숙, 청해, 서장(=티벳), 강서, 운남 등지이다.
  • 배우들은 일단 모여들어서 바로 촬영을 하지 않았고, 사학자들에게 강의를 받았는데 모든 배우들의 강의를 들었고, 원작인 삼국연의를 철저하게 이해하기 위해 원작을 연구하고 또 승마와 무술, 예절을 배웠다고 한다. 대본을 작성한 작가들도 대본을 쓰면 일단 전문가에게 개작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 당국강은 당시만 해도 좀 뺀질뺀질한 이미지에, 젊고 잘생긴 청춘스타에 가까운 배우여서 캐스팅에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감독이 어차피 원작 삼국연의의 제갈량 역시 키가 크고 관옥같이 생겼다고 나오는 판이라며 밀어붙였고 막상 촬영을 해보니 그럴듯하게 잘 나와서 그대로 밀고 갔다고. #
  • 극초반 후한의 난세 부분[21]은 의외로 괜찮게 그렸으며 황건적의 난은 중국표기대로 황건기의로 표시한다. 하지만 황건적의 난은 정말 지나가는 수준이고 사실상 도원결의부터 시작한다. 그래도 다 날려버리고 조조의 동탁 암살 시도부터 시작하는 신삼국과는 다른 점.
  • 적벽대전 직전 원래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복이 조조의 단가행을 불길하다고 말했다가 술에 취한 조조에게 창에 찔려 죽지만 여기서는 유복 대신 사욱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해 유복의 역할을 대행한다.
  • 미신이나 도술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중국의 사정으로 인해 좌자 부분은 모두 삭제되었지만, 웬일인지 조조가 낙양에 건시궁을 짓기 위해 쓸 배나무에 칼집 내다 핏물이 튀는 것은 그대로 살렸다.
  • 제갈량이 남만 정벌을 할 때 사구라는 독천을 건널 때 병사들이 알몸으로 건너다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중요 부위(...)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일본, 한국에서 방영될 때는 당연히 삭제되었지만 중국 현지에서 방영되었을 때는 그대로 나왔다.
  • 남만정벌 부분에서 목우유마가 등장하는데 실제 역사에서 목우는 좁은 산길에서도 혼자서 밀고 갈 수 있는 외바퀴 손수레이고 유마는 네 바퀴가 달린 달구지 수레지만, 이 작품에서는 연의의 묘사대로 진짜 소처럼 생긴 나무로 만든 무언가를 등장시켰다. 그야말로 소 모양 4족보행 로봇(...)으로 묘사된다. 그 시절에 실제 로봇을 썼을 리는 없을테고 아마도 엑스트라 두 명이 목우유마 모형 안에 들어가서 움직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연의의 묘사대로 엉덩이를 세 번 때리면 꿈지럭꿈지럭 하며 움직이고, 혀를 비틀면 움직이지 않으며, 배를 따면 곡식이 쏟아진다.
  • 제갈량이 출사표를 쓰는 장면은 대역이 아니라 실제로 서예가이기도 한 배우 당국강이 직접 쓰는 것이다. 글씨가 많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예(漢隸) 특유의 고졸한 맛이 잘 보인다. 당국강은 서예에 능해서 개인전도 여러 번 열었을 정도.
  • 78화에 이스터 에그 비슷한 게 있는데, 조상이 어떤 구리거울을 선물받았는데, 그냥 지나치려는 조상을 환관이 거울에 새겨진 글귀가 가상하다는 말을 듣고 그 글을 보면서 찬사를 하는데 해당 문구는 " 천하가 굴복하고 중국 인민의 부를 축원한다."라는 문구이며 조상은 특히 ' 중국 인민'이라는 글귀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뭔가 현대인이 창작한 문구 같지만[22], 놀랍게도 역사상에 실존한 물품이라고 한다. 후한 때의 물건이라고.
  • 거의 모든 삼국지연의 기반 작품들이 제갈량의 사후 부분은 걍 날리거나 줄이거나 지나가는 식으로만 언급하지만 이 작품은 그래도 제법 상세하고 충실하게 다루었다. 고평릉 사변, 사마사의 조방 폐위, 제갈각의 죽음과 손준의 집권, 강유의 북벌, 사마소의 조모 시해, 손침의 최후, 등애와 종회의 촉한 정벌, 강유의 촉한 부흥운동 시도와 죽음, 유선과 사마소가 연회에서 있었던 일화[23]까지 상세하게 다룬 편이다. 무엇보다 제갈량은 77회에서 사망하는데 7회에 걸쳐서 1회에 40분 짜리니 7회면 거의 5시간에 달하는 분량이다. 다만 사마소의 죽음 이후 사마염의 오나라 정벌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고 사마염이 조환에게 선양받은 다음 오를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했다고 언급으로 나온다. 후에 나온 신삼국은 제갈량의 사후 부분은 마지막 회에서만 다루고 고평릉 사변 외에는 건성건성 나오며 그것도 사마의의 죽음으로 끝난다. 대군사 사마의를 보자
  • 예전 드라마다보니 인물들의 웃는 리액션이 과하다. 와하하하하하하하고 웃어대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건 한중일 공통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연극무대식의 오버하는 연기방식이 유행해서 우리나라도 8, 90년대 초 영화나 드라마, 라디오극을 듣거나 보면 배우, 성우들의 연기가 지나치게 오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삼국에서도 잘 살펴보면 몇몇 노배우들이 84부작 삼국지 스타일의 과장된 연기를 고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리액션은 마지막까지 나와서 유선의 어리석음을 보고 사마소가 낄낄 웃어제끼다가 그대로 쓰러져 죽는다. 또 중국 드라마답게 대부분 전문 성우를 따로 고용해서 더빙을 했다. 그나마 조조 역의 배우와 동탁 역의 배우는(이 사람은 겸 성우 출신이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더빙했다.
  • 파일:유비패왕.gif

    유비 패왕설 드립에서 근거라고 곧잘 써먹히는, 관우와 장비가 싸우는데 둘의 팔을 각각 한 손으로 잡아 억지로 떼어 놓는 힘센 유비가 나오는 게 바로 이 드라마이다. 1화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역재생하여 유비가 관우와 장비에게 강제 악수로 화해하게 만드는 듯한 짤도 있다.
  • 아무래도 중국이 아직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된 작품이라, 지금와서 보면 별에 별 짠내나는 제작과정 에피소드도 많다. #
    • 막대한 돈이 들어간 드라마였지만, 당시 중국 여건상 배우들에게 지급하는 출연료는 매우 낮았고 대우도 형편없었다. 제작진이 배우들의 출연료는 제작비의 5%에 불과하다고 장담했으며, 출연료는 회당 255위안, 총 3만 위안이었다고 한다. 배우들의 숙소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서 야외 촬영중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해야 했으며, 충분한 식사가 지급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엔가는 유비, 관우, 장비 역을 맡은 손언군, 육수명, 이정비가 배가 고파서 밭에 나가 옥수수를 훔치다가 농민들에게 들켰다고 한다. 이때 육수명과 이정비는 도망치고, 손언군만이 남겨져 붙잡혔다는데 결국 조조 역의 포국안이 나중에 돈을 가지고 찾아가 갚는 것으로 해결했으며 그마저도 제작진이 돈을 준게 아니라 손권 역의 오효동에게 빌린 것이었다고 한다.
    • 관우 역의 육수명은 촬영중에 낙마하여 낙상, 다리가 부어서 어쩔 수 없이 큰 파이프를 다리에 박고 어혈을 뽑아야 했다. 피를 빼는 것이 너무 아파서 육수명은 큰 소리를 지르다가 젓가락을 물어서 참아야 했는데, 의사가 그를 보며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란다. "관공은 (태연히) 뼈를 긁어 독을 치료했다던데, 이게 뭐하는 겁니까?"
    • 육수명은 관우의 붉은 얼굴 분장을 하느라 곤혹스러웠는데 항상 연기 중에 눈을 치켜떠야 했고, 라텍스를 붙이고 화장을 해야 했으며 이게 피부에 붙어서 제거하기도 까다로웠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라텍스의 품질이 나빴는지 얼굴에 고름과 흉터가 생기기도 했다.
    • 장비 역의 이정비도 눈을 부릅뜨는 연습을 자주 했고 유비 역의 손언군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자주 울었지만 매번 안약을 쓰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마지막 분량에는 사마의와 제갈량만 남게 됐는데, 사마의 역의 위종만은 제갈량 역의 당국강을 질투하였다. 위종만은 50대 나이에 말을 타고 다녀야 했지만, 당국강은 편하게 수레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숙해져서 "초원의 독수리"라며 자랑스러워했다고.
  • 의도친 않았겠지만 삼국지 창작물 중에서 몇 안되는 당시의 성벽을 고증한 작품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성벽이 흙빛을 띄고 있는데 실제로 삼국시대에 석성은 소수였으며[24] 토성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삼국지 창작물이 저지르는 재현 오류인데[25]삼국연의는 후반부로 가면서 석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오류를 범하긴했지만 그래도 당시의 토성을 어느정도 재현해놓았다.

7. 방영

7.1. 대한민국

한국에서도 서진통상에서 1995년 VHS로 발매되어 상당량이 팔려나갔으며 1996년 무렵 현재 채널CGV의 전신인 현대방송을 통해 더빙을 했는데 유명 성우들을 동원해서 더빙했고 케이블TV 특성상 무한루프 방영이었지만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조조 김규식, 유비 박일, 제갈량 김도현, 손권 김용식, 관우 김기현, 장비 이호인, 젊은 날의 유선 강수진 등이었고 중간에 나오는 노래 부분은 더빙없이 방영되었다. 유명한 부분이 초선이 임무 마치고 떠날때의 주제곡, 장판교에서 조자룡 주제가, 그리고 적벽 전야의 오페라식으로 묘사된 조조의 테마이다.

이후 MBC에서도 수입을 해서 1997년 1월 6일부터 월화수목 주 4일 오전 11시에 방영을 했는데 시간대를 이상하게 잡고 삭제를 많이 해서(...)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10%를 넘어 꽤나 화제가 되었다. #[26] 특히 방학 때 즐겨보던 학생들은 개학 후 방영시간이 바뀌질 않아 좌절하고 나중에 방영시간이 일요일 밤 10시 반에 두 편을 연달아 방송하는것으로 바뀌어 더욱 좌절했다. 또한 제갈량 사후의 분량은 불과 몇 분 남짓한 하일라이트 영상 편집과 나레이션으로 정리했다. 아무리 제갈량 사후 부분이 비중이 적다지만 무려 30년 정도의 시간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짧은 시간 동안에 압축하여[27] 비디오판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씁쓸함을 주었다.[28]

문화방송에서는 매 화가 끝날 때마다 삼국지 관련 문제를 내서 엽서로 정답을 보내는 사람에게 선물을 줬었다. 문제 난이도는 엄청 쉬운 수준. 삼국지 관련 문제답게 상품도 삼국지와 관련되어있는데 1등 상품은 중국 여행권이었다. 이문열 삼국지 전권도 상품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지금은 없어진 무협TV에서도 2005년부터 방영된 바 있는데 여기에서는 84편 전편 자막판으로 방영되었다. 아시아앤에서도 2012년 1월부터 자막판으로 방영했다. 2013년 FX채널에서도 삼국지:황건적의 난이라는 제목으로 방했다.

보기보다 비중없는 엑스트라 처리가 꽤 빠르다.

현재는 Seezn 왓챠, Wavve에서 감상할 수 있다. 티빙에서도 볼수 있다.

7.2. 일본

일본에서는 NHK 위성제2텔레비전에서 1995년 4월 3일부터 9월 29일까지 일본어 더빙으로 방영되었으며 후에 재방송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진통상 VHS가 나오기 앞서 이 NHK 위성채널에서 본 사람들도 많다. 일본 NHK 판에서는 편집된 장면이 없다. 신수이처 되는 장면, 황충의 큰 칼이 하후연의 몸을 정말로 두 동강 내버리는 장면이 여과없이 나온다. 단 하후연의 잘린 몸(특히 팔 부분)은 마네킹 티가 팍 나기는 하지만. 또한 제갈각이 위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한 이후 귀국하여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물어 참수하는 장면도 있는데... 정말 리얼하게 나온다. 2009년 총집편(국제 스탠다드 판)이 일본어 더빙으로 선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다.

일본어 더빙판은 NHKBS판과 지상파U국/비디오판 2가지가 존재한다.

7.2.1. 성우진

성우는 왼쪽이 BS2 완전판, 오른쪽이 국제 스탠더드판이다. 국제 스탠더드판에서 누락된 성우진은 미기재한다.

나레이션은 BS2 완전판에서는 무기히토가, 국제 스탠더드판에서는 스즈키 마사카즈가 각각 맡았다.

촉 진영

유비 - 타나카 히데유키/ 호시노 미츠아키
감부인 - 타키자와 쿠미코/호소노 마사요
미부인 - 카노키 쇼코/이토 아야코
손상향 - 오카모토 마리/ 소우미 요코
유선 - 코바야시 미치타카/ 센다 미츠오
북지왕 유심 - 히라타 히로아키
최부인 - 사사키 유코
관우 - 이시즈카 운쇼/ 오오츠카 아키오
장비 - 아마다 마스오/ 쿠스미 나오미
조운 - 청장년기는 하야미 쇼, 노년기는 타니구치 타카시/ 카세 야스유키
마초 - 시오자와 카네토
황충 - 하라다 카즈오
요화 - 사와키 이쿠야
엄안 - 코바야시 오사무/ 오오키 타미오
관평 - 나리타 켄
위연 - 노지마 아키오/ 하마다 켄지
장익 - 스즈키 카츠미
마대 - 청장년기는 오오타키 히로시, 노년기는 하시 타카야
왕평 - 마츠모토 다이
관흥 - 이노우에 카즈히코
하후패 - 고리 다이스케
강유 - 청년기는 오오타키 히로시, 장년기는 오오츠카 호츄/ 카토 마사유키
강유의 어머니 - 쿄다 히사코
제갈량 - 야스하라 요시토/ 모리타 준페이
제갈균 - 호리우치 켄유
방통 - 타나카 노부오/ 요시노 타카히로
손건 - 이시모리 탓코우
미축 - 츠카다 마사아키
미방 - 타카미야 슌스케
서서 - 사코 마사토/오가타 미츠루
서모 - 타케구치 아키코
법정 - 사카 오사무
마량 - 이케미즈 미치히로/아오키 마코토
양의 - 카지 테츠야
비의 - 나카 요스케
초주 - 마츠오카 후미오

위 진영

조조 - 겐다 텟쇼/ 오오카와 토오루
조비 - 하야시 카즈오/ 사쿠라이 토시하루
조예 - 이시다 케이스케
조방 - 오카노 코스케
폐후 장씨 - 사토 나오코
조모 - 이시다 아키라
사마의 - 노자와 나치/ 나야 로쿠로
사마사 - 오치아이 코지/ 타나카 마사히코
사마소 - 단 토모유키/오오바야시 류스케
조인 - 우에다 요우지
조홍 - 호우키 카츠히사
조식 - 히라이 케이지
하후돈 - 미상/시미즈 토시타카
하후연 - 타치키 후미히코, 사사오카 시게조/미상
하후패 - 고리 다이스케
장료 - 신가키 타루스케
허저 - 쿠시다 야스미치
우금 - 키타카와 카츠히코
최주평 - 오오츠카 호우츄
문빙, 장합 - 츠지 츠토무
포륭 - 오노 히데아키
조범 - 하시 타카야
진태 - 세키네 노부아키
조진 - 우시야마 시게루
등애 - 우치다 미노루
종회 - 후루사와 토오루
등충 - 츠쿠이 쿄세이
곽가 - 야나카 히로시
순욱 - 진나이 타츠유키
유엽 - 타나카 료이치/카가야 준이치
신비 - 미야모토 미츠루
정의 - 나야 로쿠로
환범 - 야다 코지
화흠 - 후지시로 유지
장간 - 이토 카즈아키
조상 - 오가와 신지

오 진영

손견 - 타니구치 타카시
손책 - 타나카 마사히코
손권 - 코스기 쥬로타/ 스즈키 마사카즈
오태부인 - 타니 이쿠코
소교 - 이노우에 키쿠코/ 아사노 루리
오국태 - 코노시마 아이코
주유 - 카나오 테츠오/ 이시다 아키라
황개 - 호우키 카츠히사/ 아키모토 요스케
여몽 - 타나카 마사히코
능통 - 타카기 와타루
정봉 - 후쿠다 노부아키
감녕 - 마츠모토 다이
노숙 - 오쿠다 케이진
제갈각 - 사코 마사토
설종 - 츠카다 마사아키
감택 - 츠다 에이조
엄준 - 이시모리 탓코우

그 외 인물

하진 - 토쿠마루 칸
소제 유변 - 키다 아유미
헌제 유협 - 카메이 요시코(아역), 오카노 코스케(청년), 코바야시 미치타카(장년)
동태후 - 사와다 토시코
하태후 - 다나카 아츠코
장양 - 오가타 켄이치
단규 - 나가시마 유이치
노식 - 키타무라 코이치
독우 - 시오야 코조
동탁 - 시바타 히데카츠/ 호즈미 타카노부
여포 - 오오츠카 아키오/와타나베 히데오
초선 - 시마모토 스미/ 오카무라 아케미
엄씨 - 와타나베 미사
이유 - 에바라 마사시
화웅 - 무라마츠 야스오
이숙 - 우시야마 시게루
왕윤 - 사사키 카츠히코
진궁 - 시마카 유
진규 - 니시카와 이쿠오
진등 - 아즈사 킨페이
조표 - 미네 에켄
장수 - 마츠모토 다이
공손찬 - 미즈토리 테츠오
원소 - 카미야 카즈오/쿠와하라 토시아키
원담 - 오오타키 히로시
심배 - 키요카와 모토무
한맹, 석도 - 미즈노 류지
허유 - 키타가와 타쿠로
진림 - 아소 토모히사
원술 - 나야 로쿠로
기령 - 츠지 츠토무
한윤, 왕자복 - 이토 카즈아키
복완 - 타치키 후미히코
동승 - 이이즈카 쇼조
길평 - 히라타 히로아키
유표 - 미야모토 미츠루
채부인, 유종 - 콘도 타카코
채중 - 시오야 요쿠
괴월 - 코세키 하지메
맹건 - 나카노 유타카
사마휘 - 오오키 타미오
황승언 - 가토 세이조
보정 - 우에다 토시야
우길 - 타키 마사야
마등 - 하즈미 준
마휴 - 시부야 시게루
한수 - 와카모토 노리오
유장 - 모리타 준페이
허공 - 이이 아츠시
가충 - 야마노 후비토

이민족

맹획 - 와타베 타케시/ 반도 나오키
축융부인 - 유야 아츠코
대래동주 - 무기히토
동도나 - 센다 미츠오
아회남 - 호우키 카츠히사
타사대왕 - 이이즈카 쇼조

7.3. 홍콩

1995년 9월에 홍콩 ATV에서 광동어 더빙으로 첫방송, 이후 1996년 9월에 고급판으로 포장한 버전을 超智版이란 제목으로 재방송. 오프닝 곡은 가사는 동일하지만 작곡, 가수는 완전 오리지널. 엔딩 곡은 원본 그대로 사용.

첫방송 당시 시청률이 상당히 높아서 이후 한동안 ATV에서 중국산 드라마를 수입했을 때 삼국연의를 넘느냐 못넘느냐를 항상 논하곤 했다. 물론 대부분은 못 넘었다

8. 매체 현황

파일:attachment/84부작 삼국지/sujin.jpg

상술했지만 한국에서는 서진통상에서 1994년 12월 VHS로 발매하여 많은 이들을 설레게 하였다. 504,000원[29]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출시 1년여만에 8,000여세트가 판매되어 4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고 하니 당시의 높은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30][31] #기사 2005년에는 대주미디어에서 중국 CCTV와 정식 계약을 맺고 디지털 변환된 영상을 28DISC에 담아 DVD 박스 세트로 발매하였다. 화질은 시대를 감안하면 그럭저럭이라는 평. 이 DVD 박스 세트는 초기에는 수십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으나 갈수록 가격이 폭락하여 2012년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20,000원대에 팔리고 있다.그나마도 잘 안팔리는 듯

2012년 현재에는 뉴패키지라고 하여 원가를 절감하여 박스 포장 형태를 달리한 여러 가지의 DVD세트가 판매되고 있다.
파일:attachment/84부작 삼국지/dvd1.jpg 파일:attachment/84부작 삼국지/dvd2.jpg
각종 DVD 세트

DVD 자막 상태는 별로 좋지 않다. 눈에 띄게 심각한 오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축약을 해서 번역한 편이고, 어투 자체가 심하게 경박스러워서 원전의 분위기를 잘 살리지 못한다. 거의 모든 대사를 '~죠' 투로 번역한 탓에 보다 보면 짜증이 날 정도. 사실 오역들도 있다. 조조가 "천하를 어지럽힐 자는 하진이다."라고 탄식하는 장면에서 자막은 "어디 두고보자"라고 어이를 상실하게 만드는 자막이 뜬다.

판권을 가진 CCTV는 2017년에 유튜브에 전편을 공개했다. 아쉽게도 한글이나 영어 자막은 안 붙어 있다. #

9. 여담

  • 여담으로 이곳에서 나온 배우들이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수호전에 카메오 및 주연, 조연으로 많이 등장한다. 몇몇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당국강 : 제갈량 → 소식[32]
    • 양범 : 공손찬 / 조운 → 석수
    • 진지휘 : 포신/태사자/요화 → 왕진 / 양웅
    • 장치중 : 마속 → 조개
    • 이동과 : 맹우 → 완소칠
    • 위종만 : 사마의 → 고구 (노년)
  • 중국판 유튜브 빌리빌리에서 조회수가 무려 3억 7,000만뷰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현세대 중국인들에게도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평점은 10점 만점의 9.9점. #
  • 대한민국 일본[33]에서도 방영했었는데 스폰서가 일본 회사여서 서구 자본도 다소 들어갔다고 한다.
  • 제작 당시 막 중국과 한국이 교류를 시작할 때라 촬영 현장을 월간 시사지 월간중앙에서도 취재할 정도였고 처음 비디오로 나왔을때 상품 추천서문을 이문열이 썼다.[34] 의외로 한국과 일본에서의 이미지가 딱 구현된 작품이며 이희재의 만화삼국지는 아예 갑옷이나 분위기를 이 작품에 맞추었다.
  • 코에이의 게임 삼국지 4에서 이 드라마의 중요 장면을 이벤트 동영상으로 사용했고, 일부 인물들의 얼굴 그래픽 같은 경우에는 드라마판의 얼굴을 빼다박은 듯 똑같다. 조조의 삼국지4 얼굴 그래픽과 84부작의 조조만 비교해봐도... 삼국지 5에서도 오프닝을 비롯하여 각 시나리오 시작시 이 드라마의 장면이 들어가있다. 단 이것은 윈도우즈판과 콘솔판(세가새턴, 플레이스테이션)만 해당.
  • 과거 신 삼국이 나오기 전 이글루스가 활발하던 시절, 이 드라마의 스샷을 이용한 각종 패러디 작품이 많았다. 지금도 가끔 인터넷에 올라오는 자신의 진삼국무쌍 출연 여부를 묻다가 레이저 쏠 수 있냐는 제걀랑의 말에 데꿀멍하는(...) 노숙이라던가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준 걸 빌미로 관우를 죽이려는 시늉을 하다가 유비의 만류로 넘어가는 척 하는 제걀량의 일화를 비틀어 애초부터 조조가 화용도로 안왔다며 역으로 제갈량이 사형당하는(...) 유머들이 전부 이 드라마의 스샷을 이용한 것.
  • 드라마 제작 당시, 식사 조건이 꽤나 열악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관장 역을 맡은 손언군, 육수명, 이정비는 밤중에 근처의 옥수수밭에서 서리를 하다가 주인에게 들켰는데 관우와 장비는 재빨리 도망쳤는데 유비역의 손언군은 잡혔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 제작진이 옥수수값을 대신 지불했다고 한다.
  • 다만 옛날 영화와 드라마가 그래왔듯이 이 드라마도 동물 학대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이 있다. 바로 물소에게 화염방사기를 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CG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화염방사기 자체가 제 아무리 생존하더라도 화상은 기본 부상으로 얻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화염방사기를 맞은 물소의 안전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0. 관련 문서

11. 외부 링크



[1] 국내 OTT에는 삼국지라고 등록되어 있다. [2] 중국 드라마계의 대표적인 명감독 중 한 명이다. 이 드라마의 총괄 프로듀서인 임대혜가 직접 왕부림을 찾아와 총감독으로 맡아달라고 요청하였다. 대표작으로 본작과 1987년작 홍루몽이 있다. [3] 명나라 시인 양신 臨江仙(임강선)을 가사화 했다. [4] 1분 22초에 편집 실수가 있는데 유비의 사진이 다 넘어가지 않고 10초 가량동안 그 자리에 머문다. [5] 1980년대~1990년대 CCTV는 사대명저의 드라마화를 진행했다. 서유기(1986, 25부작), 홍루몽(1987, 36부작), 수호전(1998, 43부작). 홍루몽의 총감독은 이 드라마의 총감독 왕부림이다. [6] 당시 한화로도 100억원에 달한다. [7] 특히 적벽대전이나 남만정벌이 그렇다. [8] 이 배우는 강산풍우정에서 명에서 청으로 투항 한 대신 홍승주, 월왕 구천에서는 오자서를 맡았다. [9] 이 배우는 사극에 꽤 나오는데 진시황, 홍타이지, 관우, 토번왕, 당태종, 주원장 동업자 등등이 있으며 특히 대장정, 팔로군, 건국대업에서 마오쩌둥 연기는 일품이다. [10] 사실 이 제갈량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의 주연들은 중국에서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 공훈배우들이다. [11] 나이가 들긴 했지만 사진을 놓고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이다. [12] 특히 이쪽은 두 배우의 체격까지 달라서 티가 팍 난다. 1호 노숙은 젊은데 2호 노숙은 폭삭 나이가 들었고, 1호 방통은 살집있고 험상궂은데 2호 방통은 삐쩍 마르고 젊다. 대체로 1호 노숙과 방통의 연기가 평이 좋다. [13] 이 배우는 수호전에서 석수로 등장한다. [14] 옥의 티가 있다면, 원작에서 활을 쏜 사람은 위연인데 여기에서는 황충으로 나왔다. [15] 영화 '진용' 에서 진시황 역을 맡은 배우(영화 상에서 광동어 사용), 드라마 한무대제에서는 이광 역을 맡았다. 22년 11월 1일 사망했다. 향년 66세. 장비를 맡은 이정비와 절친한 사이였는데 비슷한 시기에 함께 사망하게 되었다. [16] 2022년 11월 24일 밤에 작고했다. 향년 65세. [17] 오자서, 임칙서, 홍승주 등을 연기한 중국 국민 배우. 이 배우는 동탁 역의 배우와 함께 본인 음성을 직접 북경 표준어로 더빙하기도 했다. [18] 손권의 아버지 손견 역도 맡아 1인 2역이다. 단, 손견 역일 때는 수염 양이 적고 손권 역일 때는 수염이 매우 풍성하다. [19] 초한전기의 소하 역을 맡은 양립신과는 상관없는 동명이인이다. [20] 태평천국에서 증국번의 동생이자 상군의 핵심 장수인 증국전, 강희왕조에서는 왕보신으로 나왔다. [21] 어린 충제, 질제, 환제, 영제가 잇따라 즉위해서 어지러운 시기였다. [22] 사실 '중국'이라는 단어 자체는 서주 시절의 청동기에서도 이미 나왔었다고 한다. [23] 여기서 유선의 띨빵한 소리에 웃다가 죽는 사마소의 소소한 개그가 있다. [24] 기껏해야 손권이 축성한 건업의 석두성 정도가 석성이었다. [25] 신삼국조차 성벽을 석성으로 표현했다. 근래에 토성을 재현한건 영화 적벽대전 정도. [26] 이를테면 동승 사건때 칼로 궁녀의 배를 찌르는 장면이나 관도대전 등에서 목이 날아가는 장면, 하후돈이 눈알을 먹는 장면은 모두 삭제 내지는 정지 동작으로 처리한다. [27] 들리는 말로는 항의하는 시청자들에게 편성 PD가 '어차피 뒤는 재미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제갈량 사후 부분은 기간이 거의 반세기지만 삼국지연의에서도 정말 재미없고 비중이 없는 부분이다. 오죽하면 나관중이 그걸 포기했다고 말할 정도니... [28] 원판은 제갈량 사후 부분이 날라다녀도 적어도 조위 정권의 정치적인 격변이나 강유의 부흥운동 등은 충실히 다루었다. [29] 1990년대 중반에 50만원이면 2018년 기준의 체감 가격으로는 150만원이 넘는다. [30] 다만 이 판매고는 개인이 구매했다기보다는 그 당시 성업중이었던 비디오 대여점들이 들여놓은 것이 컸다. [31] 하지만 정작 서진통상은 이 후 다른 작품을 발매하지 않다가 수호전을 마지막으로 동부미디어로 이름을 바꿨다. 이 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확인되는 건 삼국지 가격인하 광고가 전부(...) [32] 카메오 출연 [33] 1995년 4월 5일~9월 29일. NHK 위성 제2텔레비전에서 방영. [34] 참고로 당시 이문열은 '이문열 삼국지'를 써서 팔아먹던 중이었는데, 한 서울대 수석합격생이 논술 대비로 '삼국지를 15번 읽었다'라고 해서 진짜 불티나게 팔려나가던 시기였다(....) 지금 보면 논술이랑 삼국지랑 무슨 상관이지? 싶지만 당시는 진짜로 그런 마케팅이 먹혔다. 요지는 그만큼 독서를 많이 하란 의미긴 한데 지금 시각으로 보면 진짜 상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