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4:42

사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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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망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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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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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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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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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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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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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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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부군[추존][2] 사마랑 창무정후 하간평왕[3] 의양왕
장무왕
의양성왕[4] 하간평왕[5]
동평왕
고조 선황제[추존] 세종 경황제[추존] 제헌왕[8] 동래왕[9]
북해왕[10]
제무민왕
태조 문황제[추존] 세조 무황제(초) 비릉도왕[12]
효혜황제(2) 민회태자
진헌왕 진왕[13]
효민황제(4)[14][15]
성양회왕
성양상왕
초은왕
동해충왕
시평애왕
회남충장왕 진왕[16]
한왕
신도회왕
청하강왕[17]
장사려왕
성도왕 화용왕[18]
오효왕 효민황제[19]
발해상왕[20]
예장왕효회황제(3)[21]
대애왕
제헌왕[22]
성양애왕 청하강왕[23]
요동도혜왕 동래왕[24] 화용왕[25]
광한상왕 북해왕[26]
낙안평왕
연왕 기[27]
사마영조
낙평왕
여남문성왕[28] 사마수
여남회왕
낭야무왕 낭야공왕 중종 원황제(5)[29]
무릉장왕
동안왕
회릉원왕
연왕 경 연왕 기[30]
부풍무왕 순양왕
신야장왕
평원왕
양효왕
조왕[31]
안평헌왕 안평정왕 남궁현왕[32]
안평왕 돈[33]
의양성왕[34]
태원성왕 하비왕[35]
사마익 남궁현왕 안평왕 우[36]
하비헌왕 하비왕
태원열왕 하간왕
상산왕 안평왕 돈 안평왕 우[37]
패순왕
동무대후 팽성목왕 팽성원왕
고밀문헌왕 동해효헌왕
신채무애왕
고밀효왕
남양왕 진원왕 보[38]
범양왕
사마순 제남왕 중산왕
사마진 초강왕 초정왕 초왕
초민왕
단수현후 안평정후[39]
안성정후 임성왕 릉 임성왕 제
서하무왕
안평정후 안평정후[40][41]
경조부군 이전[추존][43]
정서부군 - 예장부군 - 영천부군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 )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 [3] 친부는 의양성왕 [4] 친부는 안평헌왕 [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 [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 [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 [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 [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 [13] 친부는 회남충장왕 [14] 여기까지 서진 [15] 친부는 오효왕 [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 [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 [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 [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 [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 [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 [23] 친부는 진무제 [24] 친부는 제헌왕 [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 [26] 친부는 제헌왕 [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 [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 [29] 여기부터 동진 [30] 친부는 진문제 [31] 윤통(閏統) [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 [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 [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 [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 [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 [37] 친부는 남궁현왕 [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 [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 [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 [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 [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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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px -10px -5px; min-height: 28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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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서진 종실 27인
<rowcolor=#ece5b6> 이름 출생연도 가족관계 책봉 식읍(호)
사마부(孚) 숙달(叔達) 180 사마팔달 삼남 안평왕(安平王) 40,000
사마망(望) 자초(子初) 205 부(孚)의 차남 의양왕(義陽王) 10,000
사마홍(洪) 공업(孔業) 불명 망(望)의 차남 하간왕(河間王) 없음
사마무(楙) 공위(孔偉) 불명 망(望)의 사남 동평왕(東平王) 3,097
사마보(輔) 불명 불명 부(孚)의 삼남 발해왕(渤海王) 5,379
사마황(晃) 자명(子明) 불명 부(孚)의 오남 하비왕(下邳王) 5,176
사마괴(瓌) 자천(子泉) 불명 부(孚)의 육남 태원왕(太原王) 5,496
사마규(珪) 자장(子璋) 235 부(孚)의 칠남 고양왕(高陽王) 5,570
사마형(衡) 자평(子平) 불명 부(孚)의 팔남 상산왕(常山王) 3,790
사마경(景) 자문(子文) 불명 부(孚)의 구남 패왕(沛王) 3,400
<rowcolor=#ece5b6> 이름 출생연도 가족관계 책봉 식읍(호)
사마권(權) 자여(子輿) 불명 규(馗)의 장남 팽성왕(彭城王) 2,900
사마태(泰) 자서(子舒) 불명 규(馗)의 차남 농서왕(隴西王) 3,200
사마수(綏) 자도(子都) 불명 규(馗)의 삼남 범양왕(范陽王) 없음
사마수(遂) 자백(子伯) 불명 순(恂)의 장남 제남왕(濟南王) 없음
사마손(遂) 자제(子悌) 불명 진(進)의 장남 초왕(譙王) 4,400
사마목(睦) 자우(子友) 불명 진(進)의 차남 중산왕(中山王) 5,200
사마릉(陵) 자산(子山) 불명 통(通)의 장남 북해왕(北海王) 4,700
사마빈(斌) 자정(子政) 불명 통(通)의 차남 진왕(陳王) 1,710
<rowcolor=#ece5b6> 이름 출생연도 가족관계 책봉 식읍(호)
사마량(亮) 자익(子翼) 불명 의(懿)의 삼남 부풍왕(扶風王) 10,000
사마주(伷) 자장(子將) 227 의(懿)의 사남 동완왕(東莞王) 10,600
사마간(幹) 자장(子良) 232 의(懿)의 육남 평원왕(平原王) 11,300
사마준(駿) 자장(子臧) 232 의(懿)의 칠남 여음왕(汝陰王) 10,000
사마융(肜) 자미(子微) 불명 의(懿)의 팔남 양왕(梁王) 5,358
사마륜(倫) 자이(子彛) 불명 의(懿)의 구남 낭야왕(琅邪王) 없음
사마기(機) 태현(太玄) 불명 소(昭)의 칠남 연왕(燕王) 6,663
사마유(攸) 대유(大猷) 248 소(昭)의 차남 제왕(齊王) 없음
사마감(鑒) 대명(大明) 246 소(昭)의 육남 낙안왕(樂安王) 없음
}}}}}} ||
역임한 관직

조위의 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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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ece5b6>1대 2대 3대 3대 대리 4대
가후 종요 화흠 장패 사마의
<rowcolor=#ece5b6>5대 6대 7대 8대 9대
만총 장제 왕릉 사마부 고유
<rowcolor=#ece5b6>10대 11대 추증 추증
등애 왕상 위진 순욱
※ 둘러보기: 한의 대장군 (大將軍) · 후한의 태위 (太尉) · 후한의 대사공 (大司空) · 후한의 대사농 (大司農) · 조위의 사도 (司徒) · 조위의 사공 (司空) · 손오의 승상 (丞相) · 촉한의 재상 (宰相) }}}}}}}}}



조위의 사도(司徒)
{{{#!wiki style="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margin: 0 -10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81818,#e5e5e5
1대 2대 2대 대리 → 3대 4대 5대
화흠 왕랑 동소 진교 한기
6대 7대 8대 9대 10대
위진 고유 정충 종회 하증
11대
사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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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bgcolor=#800080>
서진의 황족
의양성왕(義陽成王)
司馬望 | 사마망
파일:사마망.jpg
시호 의양성왕(義陽成王)
작위 영안정후(永安亭侯) → 안약향후(安樂鄕侯) → 순양후(順陽侯) → 의양왕(義陽王)
최종직위 대사마(大司馬)
성씨 사마(司馬)
(望)
자초(子初)
아버지 친아버지: 사마부
양아버지: 사마랑
생몰기간 205년 ~ 271년
고향 예주(豫州) 진국(陳國) 양하현(陽夏縣)[1]
재임기간 조위의 사도
265년 9월 ~ 265년 12월 13일
재위기간 서진의 의양왕
265년 12월 13일 ~ 271년

[clearfix]

1. 개요

서진의 황족으로 자는 자초(子初). 사마부의 장남이며 아들이 없었던 사마부의 맏형 사마랑의 양자로 입적되었다.[2]

2. 정사 삼국지

본래는 문관직에 종사했으며, 재능이 남다른 인물로 학식있는 사람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조방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른 조모가 시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와 자주 토론하게 되었는데, 궁내에 빠르게 당도할 수 있도록[3] 특별히 빠른 마차까지 지급받았을 만큼 신임을 얻었다. 조모가 그의 일족이던 사마씨 정권과 어떤 관계였는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단한 셈.

물론 사마망도 저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촌동생인 사마소가 점차 권력을 강화하며 찬탈의 기반 구축에 힘쓰는 모습을 보이자, 사마망은 자신이 계속 조모와 가까이 있으면 화를 입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여 자원해 전선으로 종군했다. 255년(혹은 256년) 정서장군 지절 도독으로 임명되어 옹주와 양주 2곳의 군마를 한데 통솔하게 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촉한 강유가 옹주자사 왕경을 크게 무찌르는 등 활발한 공세를 보였으나 사마망이 부임해 등애와 연계하여 전선 방비를 강화시키자 이때부터 강유는 촉한 멸망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북벌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이 방어의 공적으로 도독 재임 8년만에 중앙으로 복귀해 265년에 사도의 자리에 올랐으며, 조카 사마염이 선양으로 진무제(晉武帝)에 등극하자 의양왕에 봉해져 1만 호의 영지를 받았다. 268년 동오의 시적( 주적)이 강하를 공격하자 가절 대도독이 되어 형주자사 호열을 지원했으며, 낙양에 귀환하여 대사마가 되었다.

271년 손호가 수춘을 공격하려 들자 병력 2만 3천을 동원해 공세에 대비했지만 손호가 공격하지 않고 물러나 회군했으며, 그 해에 68세로 병사했다. 여담으로 친아버지인 안평왕 사마부가 1년 뒤에 93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사마부가 당시 얼마나 장수했는지 알 수 있다.

시호를 성왕(成王)이라 해 〈진서 열전〉에는 의양성왕전으로 나오며, 사후 집안에 엄청난 양의 재산을 쌓아뒀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서 빈축을 샀다. 은근히 이분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사마망은 사마혁(司馬弈), 사마홍(司馬洪), 사마정(司馬整), 사마무(司馬楙) 등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사마혁과 사마정은 사마망보다 먼저 사망하였다고 한다.[4]

3. 삼국지연의

강유의 북벌에 대항하는 역할로 몇 번 등장하는데, 최초에는 가상 인물인 수하장수 이붕 왕진을 앞세워 싸웠다가 부첨에게 발려서 달아나다 등애에게 구원받는다. 그 보답인지 등애가 강유와 진법으로 겨루다 장사권지진에 갇혀 갈팡질팡할 때 진을 깨뜨려 등애를 구해주는 역할을 맡았으며, 여기서는 석도 맹건의 친구였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어깨 너머로 진법 공부를 했다고 나온다.[5] 그러나 진법의 변화를 완벽하게 터득한 건 아닌지라 다음날 강유에게 발리고[6] 할 수 없이 이간계를 진언해서 뇌물을 받은 황호가 강유를 헐뜯게 한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332.jpg
삼국지 12, 13, 14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B-급 지휘관형 장수. 짠돌이 성격을 반영한 낮은 매력치 말고는 딱히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능력치를 가졌다. 그나마 삼국지 12편에서 대격변으로 상향되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66/지력 80/정치력 72로 B급 문관이다. 병법으로는 분전, 제사, 투석, 교사, 혼란, 덫, 매도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교사가 유용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0/무력 59/지력 81/정치력 64/매력 9로 특기는 상업, 저지, 유인 명사. 총 4개다.

삼국지 11에서는 지력이 70대로 떨어졌으나 매력이 크게 상향되어 능력치가 통솔력 73/무력 58/지력 78/정치력 65/매력 42다.

삼국지 12에서는 PS3 버전에서 추가되었다. 능력치는 다시 지력 80대로 올라가고 능력치가 통솔력 78/무력 58/지력 83/정치력 71으로 많이 상향되었다. 병종이 기병이고 전법은 도발. 이쯤되면 위가 망할 때까지 쓸 수가 있다. 일러스트는 말을 탄 채 왼손을 거꾸로 올리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상업 2, 농업 4, 언변 3. 중신특성은 농업중시로 전수특기는 농업이고 전법은 위무.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2, 무력 58, 지력 79, 정치 67, 매력 25로 전작과 달리 통솔력이 6, 지력과 정치력이 각각 4 하락했다. 개성은 석병이라는 사기 개성과 인맥, 주의는 명리, 정책은 공법개혁 Lv 3, 진형은 장사, 투석, 전법은 저지, 매성, 친애무장은 배수, 왕침, 조모, 종회, 혐오무장은 없다.

4.2. 삼국전투기

겁쟁이 페달 마키시마 유스케로 패러디 되었다. 다만 원본과는 달리 황토색 머리에 군데군데 붉은색이 섞인 머리색으로 등장했다. 수춘2 전투 (6)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는 서프 포지션의 교과서적인 행보를 보여 줬고 덤으로 부자라고 서술되어 있다.

수춘2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본디 무보다는 문 쪽에 재능이 있었지만 학문을 논하며 가까워졌던 고귀향공이 느닷없이 황제가 되어버린 바람에 황제와 사마 가문 사이에 끼어 입장이 난처해졌고, 해결책으로 이에 본인이 자진해서 최전방직을 자원한다. 황제와 떨어져있겠다는 그의 속뜻을 눈치챈 사마소에 의해 꽃보직인 옹주, 서량으로 가게 되었다고 묘사되었다.

사마망은 낙곡 끝지점인 장성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장성으로 촉군이 들이닥치자 잠깐 당황하지만[7] 사마씨 일족답게 곧이어 침착하게 문을 걸어잠그고 등애가 구원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정했다. 그리고 제갈탄의 난이 진압된 뒤 강유 또한 돌아가면서 수비에 성공했다.

전투외편 8편에서 재등장. 왕조가 교체되며 사도로 임명되었다. 사마망 본인은 자기도 삼공이라며 그때 서량으로 가길 잘했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사마염 석포를 의심하던 당시 석포가 아들을 중앙으로 보내기를 거부하자 사마염의 명을 받아 대군을 이끌고 수춘을 정벌하라는 명을 받았다. 사마망은 석포와 싸우는 건 자신없다며 난감해했지만, 다행히 얼마 안 가 사마염이 석포에 대한 의심을 풀었으니 싸우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1] 허난성 저우커우시의 일부 [2] 원래 사마랑에게 외아들 창무정후(昌武亭侯) 사마유(司馬遺)가 있었으나, 사마유는 자식없이 요절했다. [3] 당시 사마망이 일하던 곳은 중호군부로 궁궐 밖에 있었다. [4] 즉 조부인 사마부에게는 손자도 먼저 떠나보낸 이중참척을 겪은 셈 [5] 제갈량의 친구들과 친했기에, 제갈량의 병법을 전수받은 강유의 진을 깨트릴 수 있었다는 내용. 물론 석도나 맹건은 사마망보다 사실상 1세대 위이고 친부 사마부랑 동세대 인물들이니 창작이다. [6] 모두 365가지 변화가 있는데 사마망은 고작 81가지만 배웠다. [7] 낙곡은 낙곡 전투 편에서도 묘사됐듯 거지같은 지형 때문에 공격해 오기에는 다소 부적합한 루트라 위군 누구도 그쪽으로 공격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낙하산인 사마망이 낙곡의 끝지점 쪽에 배치됐던 것도 같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