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07:12:13

사마수(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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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 )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 [3] 친부는 의양성왕 [4] 친부는 안평헌왕 [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 [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 [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 [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 [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 [13] 친부는 회남충장왕 [14] 여기까지 서진 [15] 친부는 오효왕 [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 [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 [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 [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 [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 [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 [23] 친부는 진무제 [24] 친부는 제헌왕 [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 [26] 친부는 제헌왕 [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 [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 [29] 여기부터 동진 [30] 친부는 진문제 [31] 윤통(閏統) [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 [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 [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 [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 [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 [37] 친부는 남궁현왕 [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 [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 [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 [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 [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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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邃
(?년 ~ ?년)

1. 개요2. 생애

1. 개요

서진의 황족이며 자는 불명,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진의 증손자, 사마손의 손자, 사마수의 아들이다.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작위는 초왕(譙王).

2. 생애

사마수는 아버지 사마수가 죽자 초왕으로 즉위하였다.

영가 5년 (311년), 영가의 난 당시 낙양을 침공한 석륵에 의해 사마수가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다. 후에 낭야왕 사마예가 진왕으로 추대되면서 사마수의 삼촌인 사마승에게 초왕의 작위를 잇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