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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위(하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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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1년 음력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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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서진의 종친이며 자는 경요(景曜)로 아명은 아피(阿皮).[1] 하간평왕(河間平王) 사마홍의 아들. 장무왕(章武王) 혼(混)의 형이다. 친할아버지는 의양성왕 사마망이고 양할아버지는 유(遺)다.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팔왕의 난에서 벌인 행적을 요약하자면 조왕을 믿고 까불다가 지적장애인에게 역관광을 당했다.
2. 생애
276년에 아버지 사마홍이 훙서하자 습작해 하간왕이 되었다가 277년에 장무왕(章武王)으로 전봉되고 288년에 종형(법적으로는 재종형) 사마기(奇)가 부정축재를 일삼다가 세조 무황제 사마염이 사마기를 삼종정후(三縱亭侯)로 강등하면서 위가 친할아버지를 습작했다.의양왕(義陽王) 사마위는 성격이 모질면서 개념이 없었고 조왕 사마륜에게 아첨을 잘해 원강(元康) 말년에 황제의 측근인 산기상시가 되었는데, 이 의도는 결국 찬탈을 적극 도우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는 황제의 옥새와 인수를 빼앗았으며, 사마륜에게 황제의 자리를 선양한다는 조서를 짓게 하니 드디어 사마륜은 301년 1월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사마륜은 폐위된 사마충을 명목상 태상황(太上皇)으로 올렸지만 실제로는 금용성에 유폐하고 감시했으며, 사마위는 이 공으로 중서령에 올랐다. 하지만 두 달 만에 조왕은 제왕 사마경, 장사왕 사마예,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 신야왕 사마흠의 연합군에게 쫓겨났고 뒤이어 살해당했다.
사마륜조차 황족에 한때 황제였으니 죽이는데 며칠의 시간이 걸렸던 만큼 그나마 사마위는 위기를 넘기나 했는데, 놀랍게도 백치황제 사마충이 "아피는 내 손가락을 비틀어 옥새를 탈취했다."면서 사마위를 주살하도록 명령했다. 결국 사마위는 3개월 만인 음력 5월 주살되었으며, 황제가 지적장애인이라고 얕보고 온갖 몹쓸 짓을 하다가 역관광을 당한 전형적인 악당의 최후였다.[2]
여담으로 사마위는 흔히 혜제의 당숙(즉, 삼촌뻘)이라고 나오는데, 아버지가 사마염 세대이므로 혜제의 삼종형제다.
3. 창작물에서
토탈 워: 삼국의 DLC 캠페인 291년 팔왕의 난에서 마이너 세력인 사마위 세력의 지도자로 등장하며, 291년 시점의 나이는 21세. 유형은 선봉장, 칭호는 전사, 특성은 친절함, 유능함, 인자함, 능력치는 최대 200을 기준으로 전문성 37, 결의 46, 책략 36, 본능 88, 권위 70.
[1]
사마충이 사마위의 처형을 명할 때 그를 아명으로 불러 기록이 남았다.
[2]
사마충은 지적장애인인만큼 매우 판단력이 단순한 경향을 보이는데,
혜소가 자기를 지키다가 살해당하자 충신이라고 치켜세워 준 것이다. 이것으로 유추해 보아 사마충에게 가장 기본적인 사기 공작조차 안 쳤던 듯 하며, 그 단순한 판단력으로도 역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면 어지간히 대놓고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