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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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嵇紹(253 ~ 304)
서진의 인물로 자는 연조(延祖). 예주 초국 질현 출신. 혜강의 아들. 조카로는 혜함이 있다.
2. 생애
사람으로 어렸을 때부터 명성이 있었는데 10살 때 아버지 혜강을 여의고 어머니[1]를 효성스럽게 모셨으며, 산기상시에 여러 번 기용되고 산도의 추천으로 비서랑이 되었다. 산도가 혜소에 대해 간소하면서 온화하고 민첩한데다가 문재가 있고 음악에 밝으니 당연히 성취가 있을 사람이라 했는데, 사마염이 이를 듣고는 혜소가 이와 같다면 낭으로 삼는 것은 부족하고 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혜소는 여러 직위를 역임했고 산간, 양회와 친하게 지냈으며, 혜소는 최고로 충정의 감정이 있었다. 302년에 시중을 지내 사마경이 교만하고 사치하면서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자 살았을 때 망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면서 옛 시절을 잊지말라고 상소했으며, 또한 사마경에게 편지로 겸손하라고 했지만 사마경은 이를 무시했다.
304년에 장사왕 사마예가 죽을 때 면직되었다가 추천되어 진준이 지금 상황은 예측하기 어려워 좋은 말이 있냐고 묻자 신하된 사람이 황제를 모시면서 호위할 때 이 일을 가지면서 죽고 사는 것인데 좋은 말로 무엇을 하겠냐고 했으며, 혜제를 따라 사마영에 대한 원정을 했지만 사마월이 사마영에게 탕음에서 패했다. 백관들이 도망가는 상황에서 혜소만 홀로 의연히 의관을 정제하면서 직접 사마충을 호위했다.
칼날이 임금의 가마에 교차되고 날아오는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와중에 병사들이 혜소를 수레에서 끌어내려 찍었으며, 혜제는 그는 충신이라면서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그들은 태재(太宰)의 명령을 받들면서 오직 폐하 한 사람에게만 범접하지 않을 뿐이라고 해 마침내 혜소는 살해되었다. 이 때 혜소의 피가 혜제의 옷에 튀었는데, 이후 시종들이 핏자국을 닦아내려 하자 혜제는 '이는 충신의 피다.'라며 거부했다. 아버지인 혜강 또한 위나라의 신하로서 사마씨 가문에게 저항했던 마지막 인물인 점을 보면, 묘한 인연이기도 하다.
남송의 충신인 문천상은 정기가(正氣歌)라는 제목의 시에서 역사 속 절개를 지킨 충신들의 사례를 열거하며 자신의 충심을 나타냈는데 이 때 이 혜소의 피 이야기 또한 언급하였다.
고사성어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