魏 조위의 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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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8b><colcolor=#fff> 24효(孝)
王祥 | 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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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원공(元公) | ||
작위 |
관내후(關內侯) → 만세정후(萬歲亭侯) → 수릉후(睢陵侯) → 수릉공(睢陵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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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직위 | 태보(太保) | ||
성씨 | 왕(王) | ||
휘 | 상(祥) | ||
자 | 휴징(休徴) | ||
조부 | 왕인(王仁) | ||
아버지 | 왕융(王融) | ||
생몰기간 | 180년 또는 184년 ~ 268년 | ||
고향 | 서주(徐州) 낭야국(琅邪國) 임기현(臨沂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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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사공 재임기간 | |
260년 12월 16일 ~ 264년 3월 17일 | |||
태위 재임기간 | |||
264년 3월 17일 ~ 265년 12월 13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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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휴징(休徴)으로 서주 낭야국 극양현 사람. 그의 본관인 낭야 왕씨는 동시대 태원 왕씨[1]와 같은 계보에서 발원한 씨족이라 한다.2. 정사 삼국지
중국사에서 효심으로 이름난 24효의 일원[2]으로 유명하다. 잉어에 대한 이야기는 진양추, 참새와 오얏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효자전에서 나오며, 《 세설신어》에서 오얏나무와 계모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이야기가 나온다.일찌기 친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왕융(王融)이 후취로 주(朱)씨를 맞았는데, 계모 주씨는 평소 왕융에게 왕상을 참소하고 그럴 때마다 이복동생인 왕람이 왕상과 함께 일했다. 또한 왕상의 처를 심하게 부리면 왕람의 처도 달려가서 함께 일해 주씨는 이를 걱정했으며, 추워서 물이 언 날에 계모가 잉어를 먹고 싶어하자 이를 잡으러 갔다고 나온다. 수시로 외양간 청소 등의 궂은 일을 하루가 멀다하고 시켰지만 아무런 불평없이 시킨 일을 전부 맡아 했으며, 부모가 병들면 옷 갈아입는 시간조차 아까워할 정도로 열심히 간병했다.
겨울에 주씨가 생선이 먹고 싶다 해서 언 호수에 가 몸으로 얼음을 녹여 물고기를 잡으려 하자 호수에서 잉어가 두마리 뛰어나와 그것을 바쳤고, 이로부터 얼음에 누워 잉어를 구할 정도로 지극한 효성을 뜻하는 '와빙구리(臥氷求鯉)' 의 고사가 나왔다. 계모가 또 참새고기를 먹고 싶다 할 때 휘장 안으로 참새 수십마리가 날아드니 마을 사람들이 효성으로 하늘을 감복시킨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집에 오야나무가 있어 주씨가 그 열매를 지키라 명하자 비바람이 몰아치면 나무를 끌어안고 울며 지켰다고 한다.
또한 계모가 그를 죽이려고 했다가 마침 왕상이 소변을 보러 가서 이불만 베고 갔는데, 왕상이 계모가 자신을 못 죽인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계모 앞에 무릎을 꿇고 죽음을 청하자 계모가 감동해 잘못을 깨닫고 자기 자식처럼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지극한 정성으로 후세에 효자의 모범을 남겼다.
군벌들의 발호로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어머니 및 동생과 더불어 여강으로 피신해 30여 년 동안 숨어 살면서 바깥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지 못할만큼 쇠약해졌다고 한다.
서주 자사 여건이 왕상의 명성을 듣고 별가로 초빙해 비로소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니 나이는 60에 가까울 때였으며, 온현령, 대사농 등을 거쳐 조모가 제위에 오를 때 관여한 공적으로 광록훈과 관내후에 올랐다. 태학에서 조모의 사부를 맡아 조모가 피살당했을 때 크게 통곡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으며, 삼공의 직위인 사공, 태위에 오르고 시중을 겸직하면서 수릉후에 봉해졌다.
사마염이 사마소의 작위를 이어 진왕에 오르자 순의, 하증과 더불어 사마염을 알현하게 되었는데, 순의는 '왕은 매우 높은 직위이니 반드시 절하여 예를 표해야 한다' 고 했으나 왕상은 '비록 진왕의 직위는 높지만 조정에서 맡은 관직은 상국이니 삼공과는 고작 한단계 차이가 날 뿐이오. 그처럼 도를 지나친 예를 갖춘다면 나라의 명망을 깎아내리고 진왕의 덕을 손상하는 결과이니 어찌 그리 하겠소이까?' 했다. 사마염을 알현할 때 순의는 땅에 엎드려 절했으나 왕상은 고개숙여 읍하는 것으로 예를 표했는데, 이에 사마염은 왕상더러 '오늘에서야 공이 나를 무겁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라 했다.[3]
서진 개국 후에는 공의 지위에 올라 태보의 자리에서 사마염의 자문을 잠시 맡다가 267년 가을 7월에 노령을 이유로 은퇴할 것을 청해 수릉공의 작위는 유지한 채로 삼공보다 높은 지위와 녹봉을 누리면서 여생을 보냈으며, 268년[4] 4월 2일에 89세[5]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하기 전에 병세가 위독하자 서쪽 망산은 흙이 견고하니 무덤에 벽돌을 쌓지도 말고 봉분을 만들지도 말라고 했다. 장례에는 고관들 없이 친족들과 전에 함께 일했던 관리들만이 모였으며, 죽림칠현의 일원이자 같은 일족인 왕융(王戎)[6]은 그를 맑고 깨끗하다고 평했고 시호는 원공(元公).
3. 삼국지연의
그의 명성을 높여준 효행의 일화는 전혀 나오지 않고 딱 2번 단역으로 등장한다. 둘 다 관직이 태위인 채 등장한다.첫 번째는 등애와 종회가 촉한을 정벌하러 떠날 때 전송하러 나왔다가 참군 유식(劉寔)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는 걸 보고서 그 손을 잡고 '저들 둘이 공을 이룰수 있겠는가?' 라고 묻자 유식이 '공을 이룰 수는 있겠으나 무사히 돌아올지는 모를 일입니다' 라 대답하는 장면이다. 다른 하나는 사마소가 세자 책봉 시 사마염과 사마유를 저울질할 때 맏이를 세우는 게 법도라고 상주하는 장면.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9, 10, 11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9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효행 보정으로 80대 중반쯤인 매력을 제외하면 크게 돋보이는 점은 없는 문관계. 그래도 수명이 길기 때문에 발전의 여지는 있고, 무엇보다 후반부의 인재부족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쓸만은 하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31/28/68/82. 병법으로는 조영, 배반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매 순으로 25/19/65/76/84의 등용 셔틀. 특기가 하나 있는데 하필 통솔 의존인 치안이다. 유독 코에이가 본작에서 존재감이 없는 장수들 특기로 엿먹이는 짓을 많이 했는데 그에 따른 피해자라 할 수 있겠다.
삼국지 12에서는 본편에는 나오지 않았다가 PK에서 복귀했다. 전법은 진정.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23/19/68/78. 특기는 상업 2, 교섭 1. 전수특기는 상업이고 전법이 기방약화였지만 PK에서 단일도발로 변경되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24, 무력 19, 지력 68, 정치 77, 매력 85로 전작과 달리 통솔력이 1 상승한 대신 정치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명성, 위무, 소욕, 인정, PK에서는 자비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예교, 정책은 본초학 Lv 3, 진형은 어린, 전법은 진정, 친애무장은 여건, 혐오무장은 없다.
4.2. 삼국전투기
수염의 모양과 색, 눈썹의 두께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등장인물 할아버지로 패러디된 것으로 추정된다.전투외편 8편에서 처음 등장. 사마소가 진왕이 될 당시 태위에 임명되었다고 묘사되었다. 왕상의 일화 하나가 언급되기도 했는데, 진왕이 된 사마소에게 순의와 하증이 절을 올리던 와중 왕상만이 절을 하지 않았고, 이에 순의가 왜 절을 하지 않냐고 따지자 왕상은 엄연히 황제가 따로 있으니 진왕에게 머리를 굽히는 건 위의 명성을 손상하는 것이며, 나아가 사마소의 이미지까지 나쁘게 할 따름이기에 그렇다고 하였고, 이에 사마소까지 자기를 제대로 존중해 주는 건 역시 왕상이라며[7] 웃어넘긴 일화가 언급되었다. 본작에서는 삼공으로 순의, 하증, 왕상이 임명된 것은 업무 능력치는 뛰어나지만 인격이 헐렁한 순의와 하증을 커버하기 위해 무게와 기개가 있는 왕상을 배치해 중심을 잡은 것으로 묘사했다. 왕조가 위에서 진으로 교체된 후에는 태보로 승진했지만 왕상 본인은 상공(태부, 태재, 태보)은 삼공보다 높다지만 사실 명예직에 가깝다며 덤덤한 태도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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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윤,
왕창,
왕릉 등이 태원 왕씨다.
[2]
같은 삼국시대 24효의 일원으로는 오나라의
육적과
맹종이 있다.
[3]
사마염의 이 말은 '네가 그래도 나를 개무시하지는 않는구나' 정도의 뉘앙스로 해석이 가능하다. 효와 예 같은 덕목으로 명성을 얻은 왕상이고,
조모가 죽었을 때 사마씨의 눈치를 보지않고 슬퍼했던 이라 다소 고깝게 보이기는 했던 것 같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소개되지 않은 일화지만 조모 시해사건 당시 순의의 행적과 견줘보면 좋은 대비가 된다. 자세한 것은
진태 항목 참조하면 된다.
[4]
《
진서》 열전에서는
태시 5년(269년)으로 되어 있으나, 《
진서》 <무제기>나 《
삼국지》 《위서》 <여건전>의 주석에는
태시 4년(268년)으로 되어 있다. 왕상의 죽음 한 달 전 문명왕후(
왕원희)의 죽음(268년 3월)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진서 열전의 오기로 보인다.
[5]
《
삼국지》 《위서》 <여건전> 주석
왕은의 《
진서》에서는 89세, 《
진서》 왕상열전에서는 85세로 기록되었다.
[6]
세설신어에서 왕융이 왕상에 대해 태보는
정시 연간(
240년 ~
249년) 중에 능언가(정시 연간에는 청담의 황금기였다)에 들지 않았지만 그와 담론하면 이치가 청묘하고 심원함에 들어맞아 그의 덕행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의 언변이 가리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7]
순의와 하증이 절을 할 당시 절을 받는 입장이었던 사마소 본인도 식은땀을 흘리며 난감해한 것으로 묘사됐다. 사마소의 내심 또한 왕상과 거의 비슷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