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魏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d9d9fe"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181818,#e5e5e5 |
1권 「무제기(武帝紀)」 | 2권 「문제기(文帝紀)」 | |||||
조조 , 조등 왕준, | 조비 | ||||||
3권 「명제기(明帝紀)」 | 4권 「삼소제기(三少帝紀)」 | ||||||
조예 , 학소 진랑 맹타, | 조방 , 장특, · 조모 · 조환 | ||||||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181818,#e5e5e5 |
5권 「후비전(后妃傳)」 | ||||||
무선황후 · 문소황후 · 문덕황후 · 명도황후 · 명원황후 | |||||||
6권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 | 7권 「여포장홍전(呂布臧洪傳)」 | 8권 「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 | |||||
동탁 ,
이각
곽사
마등
한수, 원소 , 저수 전풍 원담 원희 원상, · 원술 유표 , 유종 부손 괴월 한숭 채모, |
여포 , 장막 진궁 진등, · 장홍 |
공손찬 ,
유우, ·
도겸 ·
장양 공손도 , 공손연, 장연 · 장수 · 장로 |
|||||
9권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 | 10권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傳)」 | ||||||
하후돈 ,
하후무
한호
사환, ·
하후연 ,
하후패, ·
조인 ,
조순, ·
조홍 ·
조휴 ,
조조(肇), 조진 , 조상 이승 환범 하안, · 하후상 , 하후현 이풍 허윤, |
순욱 , 순의 예형, · 순유 · 가후 | ||||||
11권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凉國田王邴管傳)」 | 12권 「최모서하형포사마전(崔毛徐何邢鮑司馬傳)」 | 13권 「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 | |||||
원환 ·
장범 ,
장승, ·
양무 ·
국연 전주 · 왕수 · 병원 · 관녕 , 왕렬 장천 호소, |
최염 ,
공융
허유
누규, ·
모개 ·
서혁 하기 · 형옹 · 포훈 · 사마지 |
종요 , 종육, · 화흠 · 왕랑 , 왕숙, | |||||
14권 「정곽동류장류전(程郭董劉蔣劉傳)」 | 15권 「유사마량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 16권 「임소두정창전(任蘇杜鄭倉傳)」 | |||||
정욱 ,
정효, ·
곽가 ·
동소 유엽 , 유도, · 장제 · 유방 , 손자, |
유복 ,
유정, ·
사마랑 ·
양습 ,
왕사, 장기 , 유초 장집, · 온회 , 맹건, · 가규 , 가충, |
임준 ·
소칙 ·
두기(畿) ,
두서
악상, 정혼 , 정태, · 창자 , 안비 영호소, |
|||||
17권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 | 18권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藏文呂許典二龐閻傳)」 | ||||||
장료 · 악진 · 우금 · 장합 · 서황 , 주령, |
이전 ·
이통 ·
장패 ,
손관, ·
문빙 ·
여건 ,
왕상, 허저 · 전위 · 방덕 · 방육 , 조아, · 염온 |
||||||
19권 「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 20권 「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 ||||||
조창 · 조식 , 양수 정의 정이, · 조웅 | 조앙 · 조삭 · 조충 · 조거 · 조우 · 조림(林) · 조곤 · 조현 · 조간 · 조표 · 조정 · 조림(霖) | ||||||
21권 「왕위이유부전(王衛二劉傳)」 | 22권 「환이진서위노전(桓二陳徐衛盧傳)」 | 23권 「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裴傳)」 | |||||
왕찬 , 진림 완우 유정, · 위기 · 유이 · 유소 · 부하 | 환계 · 진군 , 진태, · 진교 · 서선 · 위진 · 노육 | 화흡 · 상림 , 시묘, · 양준 · 두습 · 조엄 · 배잠 , 배수, | |||||
24권 「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 25권 「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 26권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 |||||
한기 · 최림 · 고유 · 손례 · 왕관 | 신비 , 신헌영, · 양부 , 왕이, · 고당륭 , 잔잠, | 만총 · 전예 · 견초 · 곽회 | |||||
27권 「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 28권 「왕관구제갈등종전(王毌丘諸葛鄧鍾傳)」 | ||||||
서막 · 호질 , 호위, · 왕창 · 왕기 | 왕릉 , 선고 영호우, · 관구검 , 문흠, · 제갈탄 , 당자, · 등애 , 주태, · 종회 , 장창포 왕필, | ||||||
29권 「방기전(方技傳)」 | |||||||
화타 · 두기(夔) , 마균, · 주건평 · 주선 · 관로 | |||||||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 |||||||
오환 · 선비 , 가비능, · 부여 · 고구려 · 왜 · 읍루 · 예맥 · 동옥저 · 마한 · 진한 · 변한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08b><tablebgcolor=#00008b> ||
}}}}}}}}}}}} ||常林
생몰년도 미상
[clearfix]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며 자는 백고(伯槐).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으로 사마의와는 동향이다.2. 생애
2.1. 어릴 때
한 번은 그가 7살 때 아버지 상백선(常伯先)[1]의 친구가 놀러왔는데, 상림을 보고는 상백선의 자를 부르면서 아버지가 어디 있냐고 묻는다. 상림이 대답하지 않자 어째서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저는 비록 머리를 숙여 손님에게 인사해야 하겠지만 아들을 보고 아버지의 자를 말씀하시니 어찌 인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2]
그의 행동에 사람들이 모두 가상히 여겼다.
2.2. 왕광과의 일화
왕광이 반동탁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때 유생들을 소속 현에 파견했다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해당하는 돈과 곡식을 내야 용서해주는 특이한 방법으로 물자를 조달했다. 그런데 왕광은 거기서 자신의 위엄을 세운다면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종족을 없애버린 것이다.이 때 상림의 숙부가 식객의 종아리를 친 죄로 붙잡혔는데, 집안 사람들이 모두 벌벌 떨고 있을 때 상림은 홀로 왕광과 같은 현사람인 호모표를 찾아가 말한다.
왕부군(왕광)께서는 문무로써 높은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희 비루한 군에 오셨습니다. 저희 군은 산하로 둘러싸여 있고, 땅은 넓으면서 백성들은 풍부하고, 또 현명하고 능력을 가진 인재가 많아 선택되어 등용되는 것을 뜻대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상(
헌제)께서는 어리고 심약해 간신들이 조정을 주물러 중원이 두려워 떨고 있으니 영웅호걸이 재능을 떨칠 시기입니다. 만일 천하의 간악한 적을 주살해 미약한 왕실을 부축하려고 하신다면 지혜로운 자는 그 바람을 바라보며 마치 울리는 것처럼 호응할 것입니다. 어지러움을 극복하는 것은 화해로움에 있으니 어떤 위험을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만일 은덕을 베풀지 아니하여 임용함에 있어서 그 사람을 잃게 되면 엎어지고 망하는 것이 장차 이르게 될 텐데, 어느 틈에 조정을 바로잡고 보살필 수 있으며, 공명을 세우는 것을 숭상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는 이 점을 깊이 간직하십시오.
그러면서 자신의 숙부가 억류된 일을 설명하니 호모표가 즉시 글을 올려 왕광을 문책해 숙부의 석방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자마자 왕광의 복수를 피해 상당까지 도망가서 산기슭에다가 밭을 갈고 씨를 뿌렸으며, 하늘이 도왔는지 가뭄과 병충이 있었는데도 상림은 홀로 풍성한 수확을 거둬 이웃들을 불러 되와 마로 곡식들을 나눠준다.
2.3. 특급 승진
한 번은 하간 태수를 지낸 진연의 보루에 의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진씨과 풍씨, 두 성씨는 옛 씨족에서는 최고의 집단이 있었다. 장양이 이 두 집안의 부녀자들을 눈독들이고 재산을 탐했는데, 상림은 그 종족을 이끌고 계획을 세워 60여 일 동안의 포위를 견디고 보루를 지켜내는데 성공한다.그런 그의 명성을 듣고 병주 자사 고간이 표를 올려 기도위로 추천하지만 상림은 이를 거부하며, 한참이 지나 원소가 패망하고 새로운 조조군의 병주자사로 양습이 와서 주의 명사들을 추천할 때 상림은 현의 우두머리가 되어 남화현을 다스리게 된다. 정치, 교화를 훌륭하게 시행하니 파격적으로 박릉 태수와 유주 자사로 승진되었는데, 그 곳에서도 공적을 세운다.
2.4. 전은과 소백의 난
211년에 조비가 오관중랑장으로 임명될 때 상림은 공조로 임명되며, 조조가 마초를 공격하기 위해 출발했을 때 수도에는 조비와 정욱 등이 지키고 있었다. 하간에서 전은과 소백이 모반을 하자 조비는 자신이 직접 적을 치려고 했으나 상림은 여기서 다음과 같이 조비를 말린다.제가 이전에
박릉에서 벼슬을 하고 나중에
유주에서 있을 때 적들의 형세를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북방의 백성들은 안정을 좋아하고 혼란을 싫어하며, 조정의 교화에 복종한 것이 이미 오래되었으며, 국가 기강을 잘 준수하는 자가 많습니다. 전은과 소백이 개와 양처럼 서로 모여들었으나 지혜는 작고 야심만 커 해를 입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대군은 먼 곳에 있고 밖으로는 강한 적이 있으며, 장군께서는 천하의 진지가 되고 있으니 가볍게 행동하여 먼 곳으로 출정하면 설령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무용은 없는 것입니다.
조비는 그 말이 옳다고 여겨 조인을 효기장군으로 임명해 7군을 이끌고 그들을 공격해 완벽하게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그 후 평원 태수와 동부도위에 임명되었다가 213년에 조조가 위공으로 봉해져 위나라가 세워질 때 상서가 처음으로 만들어지면서 상림이 상서로 봉해진다.
2.5. 조비 대 이후
220년에 조비가 즉위하자 소부로 승진하고 악양정후에 봉해졌으며, 대사농으로 전임된다. 226년에 조예가 즉위하자 고양향후로 승진했다가 광록훈 태상으로 옮겨졌으며, 237년에 진교가 죽은 후 노육이 그를 한기와 함께 후임 후보로 추천하지만 하기가 후임이 된다.하지만 그의 절개가 높고 맑기에 그에게 삼공의 직위를 주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상림은 병이 심하다며 이를 거부한다. 광록대부로 제수되었다가 나이 83세에 세상을 떠나 표기장군에 추증되었고 장례는 공의 예에 따라서 했으며, 시호를 정후라고 했다.
3. 일화
그와 같은 고향 출신인 사마의는 상림이 고향의 덕 있는 선배라고 생각해 매번 그에게 인사를 했는데, 이걸 보고 어떤 사람이 상림에게 사마의는 지위가 존귀하니 상림에게 사마의의 이런 행위를 말리라고 했지만 여기에 상림이사마공 스스로 장유[3]의 순서를 돈독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을 위한 법이오. 존귀한 것은 내가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며, 인사하는 것 역시 내가 제지할 수 있는 바가 아니오.
이렇게 말하자 딴지를 걸던 자는 부끄러워하면서 물러났다.
그리고 241년 7월에 사마의의 자제 11명이 모두 열후로 봉해졌는데, 그걸 보고 자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진서에 전해진다.
가득 찬 것은 도가에서 꺼리는 바다. 사시가 변화하는 것을 내가 무슨 덕으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덜어내고 또 덜어내야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으리!
4. 가정
- 상시(常峕): 상림의 아들. 상림이 죽자 그 뒤를 이었으며, 관직은 태산태수에 이르렀다. 제갈탄의 난 당시 병을 핑계로 집에 나오지 않았다가 사마소의 노예움을 사 이광(李廣)[4]과 함께 처형되었다고 한다.
- 상정(常靜): 상림의 아들. 형 상시가 죽은 후 뒤를 이었다고 한다.
5. 평가
진수는 "삼사에 마음을 얽매이지 않고, 대부의 위치로서 노령을 이유로 물러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아름답다!"고 평했다. 또한 한기와 고유를 평할 때 이 점을 높이사 80살이 넘어서 관직에 오른 한기나 높은 직위에 오른 상태로 죽은 고유가 서막이나 상림보다 못하다고 평했다.6. 창작물에서
삼국지 14 일러스트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36, 무력 28, 지력 70, 정치 81, 매력 63이며 일러스트는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개성은 농정, 격분, 주의는 명리, 정책은 삼령오신 Lv 3, 진형은 어린, 투석, 전법은 매성, 투석, 친애무장은 사마의, 혐오무장은 없다.
[1]
백선은 자(字)로 본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2]
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손아래 사람이 부르는 것은 안 된다.
[3]
長幼 :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예를 올리는 것
[4]
장군으로써 제갈탄 군대를 보고도 나아가 싸우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