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魏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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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권 「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 28권 「왕관구제갈등종전(王毌丘諸葛鄧鍾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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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권 「방기전(方技傳)」 | |||||||
화타 · 두기(夔) , 마균, · 주건평 · 주선 · 관로 | |||||||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 |||||||
오환 · 선비 , 가비능, · 부여 · 고구려 · 왜 · 읍루 · 예맥 · 동옥저 · 마한 · 진한 · 변한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08b><tablebgcolor=#00008b> ||
}}}}}}}}}}}} ||鮑勛/鮑勳
? ~ 2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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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이며 자는 숙업(叔業)으로 포신의 아들. 조비가 벌인 기행의 대표적인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연주 태산군 평양현 사람.조조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포신의 아들로 조위의 당당한 충신이었으나 조비의 막장질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2. 생애
212년에 조조는 포신의 공을 기억해 포훈의 형 포소를 신도정후로 임명하면서 포훈을 승상의 연으로 삼았으며, 포훈은 217년에는 중서자로 임명되고 후에 황문시랑으로 전임되었다가 다시 지방으로 나가 위군서부도위가 되었다.이때 조비의 아내 곽여왕(문덕황후)의 동생이 곡주현의 관리로 있으면서 베를 훔치다가 걸렸는데, 포신은 조비가 그를 용서해달라고 간청함에도 불구하고 법도에 따라 목을 베어 시장에 버려버려 조비의 원한을 샀다. 그리고 애초에 동궁에 있을 때부터 공정한 태도를 굽히지 않아서 조비가 싫어했었다. 이에 조비는 군의 경계 중에 있던 병사가 휴가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기한을 어긴 것을 트집을 잡아 그를 면직시켜버렸다.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시어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220년에 조조가 세상을 떠나고 조비가 즉위하자 포훈은 부마도위의 신분으로 시중을 겸임하게 되었는데, 조비가 선양을 받은 뒤에도 포훈은 겁도 없이 조비에게 궁궐을 건축하지 말라고 하거나 수렵을 나가는 것을 멈춰달라는 등 강직한 소리를 해댔다.
특히 수렵을 나갔을 때는 수레를 멈추게 하고 표를 올리면서 말렸는데, 조비는 그 자리에서 바로 표를 찢어버리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가던 도중 갑자기 멈추고는 신하들에게 수렵과 음악 중 어느 것이 더 재밌냐고 하니 유엽은 수렵이 더 낫다고 했는데, 포훈은 이에 즉시 반박하면서 유엽까지 욕먹였다. 이에 조비는 완전히 흥이 깨졌는지 노여워하면서 그대로 멈추고 궁으로 돌아왔고, 곧바로 포훈을 우중랑장으로 이동시켜 버렸다. 우중랑장은 군사에 관계된 일로, 자신의 옆에서 시시건건 간섭하는 시중과는 달리 안 봐도 된다.(…)
223년에 진군과 사마의가 그를 어사중승으로 추천하자 조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기용하나 주위 사람들은 모두 조비가 그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225년에 조비가 오나라 정벌을 하려고 하는데 포훈이 간언하며 말리니 조비는 화가 나 그를 치서집법으로 좌천시켰다.
조비가 진류에 있을 때 진류 태수 손옹은 조비를 본 다음에 포훈을 방문했는데, 이때 정식된 길로 가지 않아 처형당할 것을 포훈이 보루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불문에 삼는다. 그러나 유요가 죄를 지어 포훈이 면직을 주장하자 유요는 손옹의 일을 조비에게 일러바쳤고, 조비는 이 기회에 놓치지 않고 그를 죽이기 위해 정위에게 보냈다. 삼관은 법대로라면 벌금 두 근이면 된다고 하였으나, 정위 고유는 징역 5년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조비는 그걸로는 부족하다며 고유와 삼관이 포훈을 봐준다고 생각해 삼관 이하의 관원을 체포해 하옥하고 고유를 잠시 다른 관직으로 보낸 뒤에 명을 받은 사자를 정위로 임명[1]시켜 포훈을 죽일 것을 명했다. 이에 화흠, 종요, 신비, 고유, 위진, 진군이 공동으로 표를 올려 아버지 포신의 공을 생각해서라도 그를 봐달라고 간언했는데도 조비는 무시하며 결국 포훈을 처형해버렸다.
포훈은 청렴한 생활을 했기에 죽을 때 집에 재산이 없었다. 참고로 조비는 포훈이 죽은지 고작 20일[2] 뒤에 사망했으며, 사람들은 조비가 죽고 나서야 포훈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수 있었다고 한다.[3] 진수는 포훈에 대해 바른 길을 견지해 결점이 없었다고 평했다.
사실 이렇게 원리원칙대로 하는 신하가 당대에도 적은 건 아니었지만, 포훈처럼 강직한 경우는 당연히 드물었다. 하다못해 한 번 조비에게 밉보이고 나서 다시는 거슬리지 않게 최대한 몸을 사렸으면 제아무리 사이코인 조비라도 포훈을 잊고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포훈은 그 조비가 황제가 되고 나서도 계속 당당하게 간언을 하며 제지를 해댔으니 정말 보통 대단한 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4 일러스트 |
삼국지 1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능력치는 통솔 41, 무력 35, 지력 75, 정치 69, 매력 79이며 개성은 동지, 진흥, 소욕, 인정, 주의는 아버지 포신, 숙부 포도와 같은 왕도, 정책은 지역진흥 Lv 3, 진형은 방원, 전법은 대갈, 진정,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3.2. 삼국전투기
석양 전투 편에서 등장. 텔레토비의 뽀로 나와 나나로 분장한 조비에게 죽는다. 등장한 화에서 바로 목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 등장한 화인 석양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했다. 소개컷에서는 하필이면 조비와 엮여서 인생이 꼬였다고 쓰여 있으며, 본편에서는 안 나왔지만 유엽을 싫어한다는 설정도 붙어 있다.3.3.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8에서는 제10장 "패도와 왕도의 미래에서"의 첫 챕터인 조비 위왕 즉위에서 클론무장으로 나오는데, 정의와 함께 조비가 위왕을 즉위하는 것에 조비가 백성을 돌보지 않는다면서 반대한다.[4] 미션인 반대파 설득에서 산적을 토벌하게 하거나 짐승으로부터 백성들의 밭을 보호하면 조비가 위왕에 오르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다.
[1]
이 일이 끝난 뒤에 고유는 바로 복직된다.
[2]
국역본에서 널리 퍼진 2년은 二旬의 오역이다.
[3]
여담으로 조비가 좀 일찍 죽었지만 이 정도면 이미 몸이 안좋았을텐데, 보통 왕이나 황제는 자기가 죽기 전이면 처형당할 사람들을 좀 사면해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조비는 '나 죽기 전에 이놈만은 죽여야겠다'라는 식으로 포훈을 죽인 것 아니냐며 조비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4]
실제로 정의에게 조식을 밀라는 권유를 받은 인물로
위진이 있긴 하지만 위진은 제안을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