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Βαρδαριῶται
Vardariotai
1. 개요
바르다리오타이는 동로마 제국에서 경기병, 기마경찰, 황궁 경비 등으로 복무한 이민족 부대이다. 정확한 민족구성은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이 헝가리 왕국과의 국경인 바르다르 계곡에서 유목을 하던 마자르계, 혹은 페체네그족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역사
2.1. 불확실한 시작
이 부대가 처음 언제 창설됐는지, 이게 부대인지 아니면 그냥 제국에 복무한 인종 구성을 뭉뚱그려 말한건지는 적은 사료 때문에 알기 힘들다. 그렇지만 확실한것은 900년대의 테살로니키의 교구 목록에서 이들을 처음으로 바르다리오타이 혹은 투르코이라고 부른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을 '투르크족'이라고 부른것은 동로마인들이 주변에 사는 동방계 기마민족들을 다 투르크인으로 뭉뚱그려 말했기 때문에 정말 이들이 투르크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시아계 유목민과 비슷했다는 정도로만 이해해야 한다.바르다르 계곡 지대는 10세기 말까지 마자르의 영향을 크게 받은 곳이지만, 마자르족은 금방 토착화되어 그들의 문화를 잃었고, 그 지역에는 11세기 초부터 페체네그족, 쿠만족도 다수 살았기에 정확한 민족구성을 알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것은 이들이 마케도니아 테마의 북부에 살았으며, 10세기 경엽에는 교구장이 관심을 가져야 할 만큼 기독교화되었다는 점이다. 11세기에 '바르다리오타이'라는 명칭은 잘 쓰이지 않았지만 오흐리드에 사는 튀르크계 부대라는 식으로 언급이 되었던 경우는 많았다. 일례로 1차 십자군 당시 동로마군을 이끌었던 타티키오스가 이렇게 불리던 부대를 이끌고 디라히온 공방전에 참전했었다.
10세기 말엽부터 12세기 초까지 다뉴브 강 이북에서 제국을 위협하던 페체네그족은 알렉시오스 1세 시절의 레부니온 전투와 요안니스 2세의 베로이아 전투를 거치면서 더이상 민족으로 존속할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부족 전체를 전장에 끌고 나가던 이 종족의 특성상 대부분이 동로마인들의 포로가 되었고, 그 숫자는 제국군을 상회할 수준이었다. 콤니노스 왕조의 황제들은 만지케르트 전투와 디라히온 전투에서 소멸한 중앙군을 복구하기 위해 이 종족들을 이용했다. 그리고 이 페체네그 병사들은 로마인들의 편의상 대충 뭉뚱그린 '바르다리오타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들을 정말 마케도니아와 테살로니카에 이주시키기도 했다.
2.2. 활용
투르크족과 페체네그족을 잘 구분하지 못한 동로마인들의 특성상 이들은 곧잘 투르코폴레스들과 혼동되었다. 실제로 같은 임무를 수행한 경우도 많았다.알렉시오스 황제 시기에 이들은 정말 다양하게 이용됐는데, 투르코폴레스등과 함께 기마민족의 기동성을 활용하여 민중 십자군과 1차 십자군을 에스코트하거나.[1] 치세 자체가 기나긴 원정이었던 요안니스 2세 시절에도 페체네그족 부대, 헝가리 부대로 불리며 [2] 심심치않게 종군했다.
이러한 바르다리오타이를 정식으로 편입시킨 황제는 마누일 1세였다. 황제는 수도 방위와 황궁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기마경찰대 개념으로 바르다리오타이를 창설했지만, 최소한 팔레올로고스 왕조 전까지는 전투병력으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2.3. 쇠퇴
꾸준하게 동로마인들과 교류를 계속한 튀르크족과는 달리 페체네그인들은 13세기 말을 즈음해서 주체성을 잃고 동로마인들의 나라에 정착해 소멸해버렸다. 바르다리오타이, 혹은 파라모나이라고 불리던 이름은 남아있었지만, 이들은 근위대라기 보다는 비무장한 황궁 경비에 가까웠고, 역사가들도 이들을 다른 알레기온들과 함께 서술하지 않고 황궁 내의 경비직으로 기술했다.이들이 유목민이었다는 사실은 페르시아 풍의 길쭉한 모자와 붉은 여밈옷, 바짓단에 찬 말채찍등의 심볼로 관습화되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