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의 세계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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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
1980년 베니 함마드 요새 도시 قلعة بني حمّاد |
1982년 팀가드 تيمجاد |
1982년 티파사 تيبازة |
1982년 음자브 계곡 وادي مزاب |
1982년 제밀라 جميلة |
1992년 알제의 카스바 قصبة الجزائ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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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유산 |
1982년 타실리 나제르 طاسيلي ناجّر |
우측 하단의 티파사 유적과 시가지
카르도 막시무스 거리
북아프리카 최대의 성당 중 하나였던 서쪽 언덕의 그랑드 바실리카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티파자 |
영어, 프랑스어 | Tipasa | |
국가·위치 | 알제리 티파자 주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82년 | |
등재기준 | (iii)[1], (iv)[2] | |
지정번호 | 193 |
1. 개요
아랍어 تيپازة
베르베르어 ⴱⴰⵣⴰⵔ
영어, 프랑스어 Tipaza
알제리 북부의 도시. 수도 알제에서 서남쪽으로 50km, 블리다에서 서북쪽으로 30km, 셰르셸에서 동쪽으로 17k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다. 인구 3만의 작은 도시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티파사 유적지와 서쪽 와디 나도르 하구에 조성된 셰누와 해변 덕에 많은 방문객이 찾는 알제리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로마 시대 마우레타니아 주도였던 서쪽의 카이사레아 (셰르셸), 동쪽의 이코시움 (알제)과 함께 마우레타니아의 주요 항구 도시 중 하나였고, 기독교 중심지 중 하나였으나 5- 7세기에 걸쳐 파괴되었다. 그러던 1857년 프랑스에 의해 휴양 도시 티파자로 세워져 현재에 이른다. 20세기에는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가 거주하여 알려졌다.티파사 유적지는 2020년 아프리카 난민 문제를 다룬 영화 마타레스의 배경이기도 하다.
2. 역사
로마 시대 신전 유구
고대 카르타고의 무역항으로 세워졌고, 기원전 6세기 무렵에 조성된 묘지가 남아있다. 로마 제국에 들어 서기 3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티파사를 서쪽 마우레타니아 왕국의 정복을 위한 군사기지로 개발하였다. 2세기 하드리아누스의 치세에 식민도시가 된 티파사의 정식 명칭은 콜로니아 아엘리아 티파세네시스였고, 4세기 경에는 2만의 인구가 거주하였다. 로마시대 도시는 해안과 접한 3개의 언덕에 형성되어 있다. 중앙의 언덕에 밀집되어 있던 주택들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고, 서쪽과 동쪽 언덕에 있던 3개의 바실리카 ( 성당) 유적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서쪽 언덕에는 대성당과 알렉산드로스 성당, 동쪽 언덕에는 성 살사 성당이 있다. 그외에 서쪽과 동쪽에 각각 공동묘지가 있으며 목욕탕, 극장, 경기장, 분수 등이 있었다.
이러한 도시는 2.3km의 성벽으로 둘러져 있었는데, 372년 피르무스의 베르베르 반란 당시 인근 카이사레아와 이코시움이 함락당했을 때에도 버텨내어 후일 로마측 반격의 거점이 되었다. 238년부터 흔적이 확인되는 기독교는 4세기 들어 주류가 되었고, 티파사는 북아프리카의 주요 기독교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고, 3개의 바실리카가 지어졌다. 바실리카 주변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석관들이 두르고 있었다. 동쪽 언덕에 위치한 성 살사 성당에 봉헌된 살사는 아직 기독교가 대세가 아니던 3세기에 거주하던 주민으로, 우상이라 여긴 신상의 목을 베어 바다에 던졌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그를 투석형에 처하여 죽이고 역시 바다에 던졌는데, 기적적으로 그 유해를 건져내어 옛 항구 옆의 언덕에 안장한 것을 기념하여 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430년 도시는 반달족의 침공 당시 약탈당하였고, 484년에는 반달 왕국의 왕 후네리크가 티파사의 니케아파 주교를 축출하고 아리우스파 주교로 대체하자 많은 주민들이 아직 서로마 제국령이던 바다 건너 히스파니아로 이주하였다. 6세기 동로마 제국의 재정복 이후 재건되었으나 7세기 말엽 우마이야 왕조의 마그레브 정복 당시 완전히 파괴되어 유적으로 남았다. 아랍인들은 일대의 폐허를 '손상된'이란 의미인 테파세드라 불렀다. 이는 팔미라를 타드무르 '파괴된'이란 의미인 타드무르라 명명한 것과 비슷한 작명이다. 유적으로 남아있던 일대는 1857년 프랑스령 알제리 시기에 다시 도시로 개발되었고, 1890년대에 본격적인 발굴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다만 21세기 들어 티파사는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신고되었다.
3. 갤러리
티파자 전경
셰누와 해변
티파사 동쪽 7km 지점의 유바 2세 영묘. 동부, 서부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구 중 하나이다.
3.1. 티파사 유적
유적지 위성사진
유적지 지도
유적지 주요부
로마 시대 신전
티파사 박물관의 모자이크
3.1.1. 상세
프레스코 빌라 일대
성 살사 바실리카 유적
대성당 (그랑드 바실리카)
극장
경기장
목욕탕
마우레타니아 양식의 무덤
동쪽 언덕의 성벽
3.2. 마우레타니아 유바 2세 영묘
- [티파사 기타 사진들]
-
바다와 유적
극장
신전
모자이크
항구의 페니키아 시기 구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