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3-23 22:03:24

함마드 왕조

알제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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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알제리 함마드 왕조.jpg

아랍어 الحمّاديون‎
영어 Hammadid

1. 개요2. 역사

1. 개요

11-12세기 알제리를 다스린 베르베르계 왕조. 파티마 왕조의 속국인 지리 왕조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후자와 대립하였다. 본래 순니 이슬람을 채택했지만 1048년 지리 조 역시 순니를 채택하자 쉬아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파티마 조와 동맹하였다. 이후 파티마 조가 파견한 베두인들로 지리 조가 쇠퇴하자 권력 공백을 틈타 알제리를 넘어 튀니지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였고, 1062년에는 무라비트 왕조의 흥기를 틈타 모로코의 페스까지 일시 점령하였다. 그 무렵 무역 도시로 건설된 베자이아는 이탈리아와의 교역으로 크게 번영하였으며, 내륙에서 베두인들의 압력이 거세진 1090년 함마드 조의 수도가 되었다. 이때부터 해안 지역으로 축소된 함마드 조는 12세기 들어 틀렘센 튀니스를 점령하며 중흥하였으나, 1136년 제노바에게 수도 베자이아를 습격당하고 1148년 튀니스를 상실하며 쇠퇴하였다. 무와히드 왕조에 맞서 무라비트 조를 지원하던 함마드 조는 1153년 무와히드 칼리파 아브드 알 무민에게 정복되어 멸망하였다. 한때 현 알제리 대부분을 지배한 함마드 조는 한세기 후의 자얀 왕조와 함께 근대 알제리의 모태가 되었다.

2. 역사

파일:알제리 함마드.jpg 파일:알제리 베자이아 1.png
첫 수도인 베니 함마드 성채. 마그레브 최초의 무카르나스가 출토됨 후기 수도인 베자이아의 함마드 시기 성벽

지리 왕조의 2대 군주 알 만수르는 동생 함마드를 왕국의 서부 아쉬르의 총독으로 봉하였다. 995년 알 만수르가 사망하고 즉위한 아들 바디스의 치세에 함마드의 영지는 확장되었고, 1007년 그는 아쉬르 대신 호드나 산지에 베니 함마드 성채를 건설하였다. 꾸준히 세력을 모은 함마드는 1014년 독립을 선포하였고, 기존 쉬아 파티마 칼리파 대신 순니 압바스 칼리파를 정통으로 인정하였다. 바디스는 진압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1016년 사망하였고, 그의 후계자인 알 무이즈는 1017년 함마드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이후 안정적으로 통치하던 함마드는 1028년 사망하였고, 아들 카이드가 계승하였다. 그는 1038년 모로코 북부를 지배하는 마그라와 부족의 침공을 격퇴하였고, 1042년 알 무이즈와 휴전을 체결하였다. 그러던 1048년 알 무이즈가 함마드 조와 마찬가지로 쉬아에서 순니로의 전환을 선포하자 카이드는 역으로 파티마 칼리파 알 무스탄시르를 정통으로 인정, 후자로부터 샤라프 앗 다울라 칭호를 하사받는다. 이로써 34년만에 알제리 북부는 재차 쉬아 이슬람이 주류가 되었다.

파티마 조가 파견한 베두인 바누 힐랄과 바누 술라임이 지리 왕조르 침공해 국토를 유린할 무렵인 1054년 카이드가 사망하였다. 사후 아들 무흐신이 계승하나, 그는 사촌 불루긴 이븐 무함마드에게 암살당한다. 이렇게 집권한 불루긴은 재상과 비스크라 총독 등 반대파를 숙청하였고, 반란을 일으킨 비스크라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정당성 확보를 위해 대외 팽창에 나선 불루긴은 1057년 베두인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요청한 튀니스가 복속하자 총독 압둘 학크 이븐 압둘 아지즐 이븐 쿠라산을 파견한다. 다만 그는 바누 힐랄의 튀니스 공격을 격퇴한 후, 1059년 자립하였다. 그러던 1062년 초엽 불루긴은 무라비트 왕조가 흥기하던 모로코로 원정하였다. 그는 페스의 마그라와 아미르 알 푸투흐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도시를 점령하였고, 현지 유력자들을 포로로 잡아 회군하였다. 다만 도중 또다른 사촌 앗 나시르 이븐 앗 나스가 불루긴을 암살하고 집권하였다. 앗 나시르는 지리 조의 쇠퇴를 틈타 카이로우안, 수스 등 튀니지 남부를 점령하고, 해안을 따라 트리폴리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사하라 깊숙히 와르글라[1]까지 점령하였다.

파일:알제리 함마드 1.jpg 파일:알제리 함마드 2.jpg
1062년 불루긴 치세의 영토 1080년경 앗 나시르 치세의 영토

1067-72년 앗 나시르는 기존 내륙 산지의 베니 함마드 성채 대신 해안에 베자이아를 건설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앗 나시리야로 칭하였다. 또한 앗 나시르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협정을 맺어 이탈리아 상인들과의 무역을 확대하였고, 베자이아는 국제 무역항으로 번영하였다. 동시에 안달루스인 학자들이 강의하는 등 베자이아는 학문적으로도 번영, 이탈리아인 학자 피보나치 등이 유학하여 아라비아 숫자를 서유럽에 보급하게 된다. 1077년 앗 나시르는 지리 조의 타밈과 협정을 체결, 혼인 동맹을 맺는다. 앗 나시르의 치세에 함마드 조는 전성기를 누렸으나, 1088년 그가 사망하고 아들 알 만수르가 즉위할 무렵 위기에 직면하였다. 콩스탕틴 일대에 정착한 바누 힐랄은 수도 베니 함마드 성채를 위협하였고, 이에 알 만수르는 1090년 베자이아로 천도하였다. 기존에 지리 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베두인들과 동맹하였던 함마드 조는 이제 그들의 약탈에 직면, 아틀라스 산지 남쪽의 농경지를 양도하고 교통로 확보를 위해 뇌물을 주어야 했다. 함마드 조는 경제적으로 매우 번영하였지만 알제리 해안 일대로 축소되었다.[2]

1104년 알 만수르가 사망하자 장남 바디스가 계승하였으나, 같은해 후자의 동생 압둘 아지즈가 정변을 일으켜 집권하였다. 그는 쇠퇴하던 무라비트 왕조를 공격해 틀렘센을 점령하였고, 호드나 산지에서 바누 힐랄을 격퇴하고 해군으로 제르바 섬을 점령하였다. 다만 그의 해상 세력화 시도는 시칠리아 왕국의 노르만 인들에게 저지되었다. 12세기 초엽 수도 베자이아의 인구는 10만에 달하였다. 1121년 압둘 아지즈의 사후 계승한 아들 야흐야는 1128년 후라산 조를 일시적으로 멸하고 튀니스를 점령하며 세력을 과시하였다. 다만 십자군 기류를 타고 1136년 제노바 공화국 해군이 베자이아를 습격하는 등 해군의 쇠퇴는 두드러졌고, 이후 노르만 인들이 튀니지 해안을 점령하는 혼란기를 틈타 1148년 튀니스에서는 후라산 조가 재건되었다. 비슷한 무렵 노르만 인들이 지젤을 습격, 함마드 조의 별궁을 파괴하였다. 한편 무와히드 왕조의 성장에 야흐야는 1144년과 1145년 두 차례에 걸쳐 파병하여 무라비트 조의 반격을 도왔다. 그러나 1147년 무라비트 조를 멸한 무와히드 칼리파 아브드 알 무민은 1151년 알제리 원정에 나서 틀렘센을 점령한다.

파일:알제리 콩스탕틴 1.jpg 파일:알제리 함마드 3.jpg
함마드 시기에 세워진 콩스탕틴 대사원 함마드 왕가 계보도

1152년 알제를 점령한 무와히드 군은 베자이아 근교에서 함마드 군을 격파하였고, 도시는 더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였다. 절망한 야흐야는 콩스탕틴으로 피신했다가 이듬해 항복, 이로써 함마드 조는 한세기 반만에 멸망하였다. 모로코의 살레로 유배된 야흐야는 아브드 알 무민과 같은 해인 1163년 사망하였다. 아브드 알 무민은 자신에게 대적한 함마드 왕가의 여인과 아이들을 노예로 삼았지만, 순순히 항복한 베자이아는 약탈하지 않았다. 한편 멸망 후 30여년이 지난 1184년 무라비트 부흥군을 이끌던 알리 이븐 가니야가 베자이아를 점령, 옛 함마드 세력과 알제리 해안을 일시 장악한다. 다만 이듬해 무와히드 칼리파 야쿱 알 만수르가 반격에 나서자 그는 튀니지 방면으로 도주한다.



[1] 오아시스 도시 가르다이아보다도 더 남쪽이다 [2] 다만 베니 함마드 성채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서 베자이아와의 국도로 연결되었고 알 만수르는 몇몇 궁전을 추가로 건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