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20:02:42

WWE 명예의 전당

WWE HALL OF FAME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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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WWE 명예의 전당 멤버
2.1. 역대 헌액자
2.1.1. 1993년 헌액자2.1.2. 1994년 헌액자2.1.3. 1995년 헌액자2.1.4. 1996년 헌액자2.1.5. 2004년 헌액자2.1.6. 2005년 헌액자2.1.7. 2006년 헌액자2.1.8. 2007년 헌액자2.1.9. 2008년 헌액자2.1.10. 2009년 헌액자2.1.11. 2010년 헌액자2.1.12. 2011년 헌액자2.1.13. 2012년 헌액자2.1.14. 2013년 헌액자2.1.15. 2014년 헌액자2.1.16. 2015년 헌액자2.1.17. 2016년 헌액자2.1.18. 2017년 헌액자2.1.19. 2018년 헌액자2.1.20. 2019년 헌액자2.1.21. 2020년 헌액자2.1.22. 2021년 헌액자2.1.23. 2022년 헌액자2.1.24. 2023년 헌액자2.1.25. 2024년 헌액자
3. 워리어 어워드
3.1. 수상자
3.1.1. 2015년 수상자3.1.2. 2016년 수상자3.1.3. 2017년 수상자3.1.4. 2018년 수상자3.1.5. 2019년 수상자3.1.6. 2020년 수상자3.1.7. 2021년 수상자3.1.8. 2022년 수상자3.1.9. 2023년 수상자
4. 레거시 어워드
4.1. 2016년4.2. 2017년4.3. 2018년4.4. 2019년4.5. 2020년4.6. 2021년
5. 매년 유력 입성자로 거론되는 선수들6. 평가7. 사건 사고8.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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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WWE 명예의 전당(WWE Hall of Fame)은 WWE 주최로 1993년부터 개최되었으며 레슬매니아 전야 행사로 개최되고 있다. 공로상 시상 및 헌정같은 의미로 진행된다.

레슬매니아 직전 금요일 혹은 토요일 저녁에 레슬매니아가 개최되는 도시의 경기장에서 기념식을 진행한다. 근래에는 명예의 전당 행사도 인기가 많아져 레슬매니아 액세스 티켓을 가진 팬들도 입장할 수 있다.

소개자는 헌액자와 선수 시절 함께 팀을 이루었거나, 라이벌 관계였거나, 사적으로 친밀한 사람, 가족들이 주로 맡는다. 소개자가 헌액자와의 관계, 에피소드, 과거 추억과 그의 업적을 기리는 소개 연설을 한 후에 헌액자를 자리에 모시면 본격적으로 헌액자의 감사 연설이 시작된다.

입성자들 전원에게 입성을 축하하면서 WWE 로고가 들어간 반지를 선물한다. 행사 전 빈스 맥마흔 회장-입성자-트리플 H 이 구도로 사진을 찍는 것이 관례.[1]

2. WWE 명예의 전당 멤버

따로 문서가 없는 사람들만 행적을 소개한다.

2.1. 역대 헌액자

  • 당시 년도 헤드 라이너는 굵은 글씨 표시

2.1.1. 1993년 헌액자

2.1.2. 1994년 헌액자

  • "네이처 보이" 버디 로저스: 사후 추증. 1940년대에 데뷔해 1960년대까지 활동했다. 초대 WWE 챔피언이자 릭 플레어의 별명인 네이처 보이의 원조로, 실제로 릭 플레어의 기믹은 버디 로저스의 것을 상당수 차용했다. 피겨 포 레그락의 원조이기도 하다. 1992년 71세로 사망했다.
  • 아놀드 사카랜드: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레슬러로 활약하다가 은퇴 후에는 브루노 삼마르티노, 밥 백런드의 매니저를 맡았다. 2007년 82세로 사망했다.
  • 고릴라 몬순: 1960년대에 WWWF에 데뷔한 후 선수 생활 대부분을 WWWF에서 보냈으며 은퇴 후에도 빈스 맥마흔 시니어와의 친분으로 WWWF 임원으로 재직했다. 해설자로도 활동했고, 1993년에는 각본상 WWF 회장을 맡기도 했다. 62세이던 1999년 심부전으로 인해 사망했다.
  • 치프 제이 스트롱보우: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했다. 1970년대 WWWF에 데뷔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 기믹으로 활동했지만 실제로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다. 2012년 83세로 사망했다.
  • 제임스 더들리: 프로레슬러는 아니고 원래 니그로리그 출신 야구선수였다. 은퇴 후 아메리카 흑인으로는 최초로 대규모 경기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빈스 맥마흔 주니어의 조부인 제스 맥마흔에게 경기장을 대절해주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맥마흔 일가와 인연을 맺었는데 빈스 맥마흔 주니어가 WWF를 물려받은 후에도 영구 고용이 보장됐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였다고. 2004년 94세로 사망했다. 더들리 보이즈와는 관계가 없다.
  • "클래시" 프레디 블래시: 193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프로레슬러로 활동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의상으로 유명했으며 이후 더 락이나 크리스 제리코 등의 의상도 블래시의 영향을 받았다. 은퇴 후에는 악명 높은 악역 매니저로 활약했다. 2003년 85세로 사망했다.
  • 보보 브라질: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한 흑인 프로레슬러로, 비공식적인 최초의 흑인 월드 챔피언.[2] 흑인 레슬러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1998년 73세로 사망했다.

2.1.3. 1995년 헌액자

  • 페뷸러스 물라: 최초의 여성 헌액자.
  • "빅 캣" 어니 래드: 원래 미식축구선수로 오프시즌에 짬짬이 프로레슬링을 하다가 1969년부터 아예 프로레슬러로 전향했다. 1980년대까지 NWA, AWA, WWWF, WWA, NWF 등에서 활동했다. 대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대략 3년을 더 살다가 2007년 68세로 사망했다. 여담이지만 부시 가문과 친분이 있어, 200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지 워커 부시를 지지했다.
  • 조지 "디 애니멀" 스틸 :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몬스터 기믹의 원조. 1980년대 중반부터는 선역으로 전환했다. 의외로 프로레슬러가 되기 전에는 교사로 일했었다고. 2017년 타계.
  • 그랜드 위자드: 사후 추증. WWWF와 WWF 시절 프레드 블래시, 캡틴 루 알바노와 함께 악명 높은 악역 매니저였다. 1983년 심장마비로 인해 57세로 사망했다.
  • 페드로 모랄레스
  • 이반 푸스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폴란드 출신 프로레슬러. 프로필상으로도 5피트 8인치(173cm)인 단신이었지만 빌리 그레이엄, 스탄 한센, 브루저 브로디 같이 자신보다 키가 한참이나 더 큰 선수를 상대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키만 작았을 뿐이지 보디빌더를 하면서 체중이 100kg에 육박했던지라 1978년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대회(World's Strongest Man)에 나가기도 했다.
  • 안토니노 로카: 사후 추증. 194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활동했다. 이탈리아 태생의 아르헨티나인으로, 아르헨티나 백브레이커의 원조. 간암으로 투병하다 1977년 49세로 사망했다.

2.1.4. 1996년 헌액자

  • "슈퍼플라이" 지미 스누카: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으며, 현역시절 당시 다른 레슬러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던 공중살법을 구사하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WWE 레전드 대접을 받고 헌액까지 되었으나, 2015년 9월에 제명되었다. 그 이유는 1983년 연인을 살인한 혐의를 받았다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일이 있었는데, 이후 자서전에 해당 사건을 언급한 내용과 과거 법정 증언 내용이 상당 부분 달라서 재수사에 들어갔기 때문. 이후 2016년 다시금 재판이 열렸지만 당시 암과 치매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가 힘들다는 이유로 재판이 중단되었고, 2017년 1월 16일 미국 시간으로는 15일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살인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하긴 했으나, 명예의 전당 헌액이 복구되지 않은데다, 제명 이후로는 게임에도 등장하지 않고, 상품도 출시되지 않는 점을 보아 사실상 영구제명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 빈스 맥마흔 시니어: WWE의 전신인 WWWF의 창설자로, 생전엔 자신의 사업이 그만한 크기를 가지지 못했음에도 전국구 시스템을 고안했고 아들인 빈스 맥마흔이 사업을 물려받아 WWE를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만들었다. 사후 추증.
  • 팻 패터슨
  • "바론" 마이클 시클루나: 1950년대부터 1983년대까지 활동한 몰타 공화국 출신 프로레슬러. 주로 악역으로 활동했으며 WWWF 시절 월드 태그팀 챔피언을 지냈다. 2010년 80세로 사망했다.
  • 조니 로즈: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프로레슬러. 선수로서는 커다란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은퇴 후 20년이 넘도록 수많은 제자를 육성했다.
  • "캡틴" 루 알바노: 1950년대부터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후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WWWF와 WWF에서 악역 매니저를 맡았다. 2009년 76세로 사망했다.
  • 킬러 코왈스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한 폴란드계 캐나다 출신 프로레슬러. 주로 악역을 맡았는데 1952년 경기 중 상대 선수였던 유콘 에릭의 귀를 자른 사건[3]으로 악명이 더욱 높아졌다. WWF에서 활동하던 때에는 브루노 삼마르티노에게 도전하는 입장이었지만 매번 물만 먹었다. 은퇴 후에는 트레이너로서 트리플 H, 차이나 등 수많은 제자를 육성했다. 200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향년 81세
  • 발리언트 브라더스 (지미 & 조니): 1970년대 WWWF에서 활동한 태그팀. 실제 형제는 아니고 각본상 형제였다. 발리언트(Valiant)의 뜻이 "용감한" 이라는 뜻이다 보니, 용감한 형제라는 뜻을 보유하고 있으며, 각자에게 붙은 별명이 "핸섬"(잘생긴) 지미<본명 : James Harold Fanning>, "루시우스"(아름다운) 조니<본명 : John L. Sullivan>라는 별칭이 있었다. 실제로 지미와 조니는 1973년부터 1978년까지 활동했으며, 1978년 지미가 은퇴후, 새로운 멤버로 제리 발리언트<본명 : John Steele Hill>라는 멤버가 대체해서 2년간 활동했었다. 이후, 제리는 2010년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향년 68세로 사망, 조니는 2018년 트럭 교통사고로 향년 71세로 사망했다.

2.1.5. 2004년 헌액자

  • 서전 슬로터
  • 바비 "더 브레인" 히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프로레슬러로 활동했고, 은퇴 후인 1984년부터 수많은 악역 레슬러의 매니저를 맡았다[4]. 히난 패밀리란 말이 나올 정도로 동시에 여러 선수의 매니저를 맡았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 여러 레슬러나 팬들도 역대 최고의 매니저로 히난을 꼽을 정도[5]. 2017년 사망.
  • 돈 무라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다. 전성기이던 1980년대에 WWF에서 헐크 호건, 밥 백런드, 리키 스팀보트 등과 대립했다.
  • 빅 존 스터드: 사후 추증.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다. 2미터가 넘는 키에 큰 체구로 거인 기믹으로 활동했으며 WWF 시절에는 마찬가지로 거인 기믹이었던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대립하기도 했다. WWF 로얄럼블(1989) 우승자. 악성 림프종 때문에 1995년 47세로 사망했다.
  • "슈퍼스타" 빌리 그레이엄: 별명 그대로 1970년대의 슈퍼스타로, 그레이엄의 등장으로 프로레슬링 역사가 바뀌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 이후 등장하는 헐크 호건이나 랜디 새비지처럼 뛰어난 경기력보다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관중을 휘어잡는 스타일의 원조로, 실제로 헐크 호건도 그레이엄의 광팬이었다. 입담이 출중해 릭 플레어도 그레이엄의 입담을 본받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2023년 5월 17일 79세를 일기로 사망.
  • 그렉 "더 해머" 밸런타인: 1970년대에 데뷔한 후 WWF를 비롯해 WCW, NWA 등 여러 단체를 종횡무진하며 40여 개의 챔피언 벨트를 따냈다.
  • 정크야드 독: 사후 추증. 1970년대에 데뷔해 1980년대 WWF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WWF에서 챔피언이 된 적은 없지만 개목걸이나 체인을 두르고 나와 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8년 딸의 졸업식에 참가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45세로 사망했다[6].
  • 제시 "더 바디" 벤추라: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했다. 프로레슬러로서 WWF에서 챔피언 벨트를 따낸 적은 없지만, 언변이 좋았던지라 은퇴 후 해설가를 맡아 1987년부터 1990년까지 4년 연속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에서 선정한 최고의 해설가로 뽑혔다. 이후 정치계에 입문해 미네소타주 브루클린 파크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1998년에는 미네소타 주지사에도 출마해 당선됐다.
  • 티토 산타나: 1970년대에 데뷔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WWF에서 활동하며 잘생긴 외모로 여성 관객의 인기를 끌었다.
  • 피트 로즈
  • 할리 레이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다. NWA에서 활동하던 197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8번의 NWA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지내며 이 시기 NWA의 상징으로 불렸다.

2.1.6. 2005년 헌액자

  • "THE HULKSTER" 헐크 호건[7]
  • "ROWDY" 로디 파이퍼
  • "미스터 원더풀" 폴 온돌프: 1980년대 WWF에서 헐크 호건과 대립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로디 파이퍼와 태그팀을 맺고 헐크 호건과 미스터 T의 태그팀을 상대하며 레슬매니아 1의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다.
  • "카우보이" 밥 오턴 주니어: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NWA와 WWF에서 활동하면서 헤비웨이트 챔피언 감으로 거론될 정도로 기량은 뛰어났으나, 평소 행실이 그리 좋지 않아 헤비웨이트 챔피언과는 거리가 있었다. 랜디 오턴의 아버지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 니콜라이 볼코프: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WWF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 WWF에서는 소련 출신이라서 반미주의자라는 기믹이었지만, 실제로는 크로아티아 출신이다. 2018년 별세했다.
  • 지미 하트: 통칭 공포의 주둥이. 화려한 의상과 메가폰이 상징이었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대표하는 악역 매니저.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기 전인 1960년대에는 '젠트리스'라는 밴드의 보컬이었고, WWF와 WCW에서 활동하면서 몇몇 선수들의 테마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숀 마이클스의 Sexy Boy가 있다. 본명이 제임스 하트이고 한 때 하트 파운데이션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지만, 브렛 하트 등 하트 가문과 혈연 관계는 아니다.
  • 아이언 쉬크: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WWF에서 이란 출신 반미주의자로 활동했던 프로레슬러. 실제로도 이란인으로 프로레슬링을 하기 전에는 아마추어 레슬러였고,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당시 이란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레슬링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가 프로레슬러가 됐다.[8]. 2023년 6월 7일에 사망했다

2.1.7. 2006년 헌액자

  • 브렛 "THE HITMAN" 하트
  • "LATINO HEAT" 에디 게레로 : 사후 추증. 2년 뒤에는 2008년 AAA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면서 미국, 멕시코 등의 북미 단체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 윌리엄 "더 리프리지레이터" 페리: 미식축구 선수. 레슬매니아 2에서 열린 20인 배틀로얄에서 6명의 미식축구 선수가 참가했는데, 그 중 1명이었다.
  • "미스터 USA" 토니 아틀라스: 1970년대 NWA에 데뷔해 한 때 NWA 최초의 흑인 챔피언 감으로 거론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WWF에 진출해 헐크 호건과 대립하기도 하고 1983년 락키 존슨과 함께 태그팀을 이뤄 흑인 최초로 WWF 태그팀 챔피언이 됐다. 1990년대 초반에는 약물에 빠져 노숙자처럼 지내기도 했지만 재기에 성공했다. 별명은 보디빌딩 대회에서 3차례 미스터 USA 칭호를 받은 것에서 유래됐다.
  • 번 가니에: AWA 공동 창립자이자 프로모터로 WWF에서 선수로 활동한 적은 없다. 자신이 사장이었다지만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10차례나 AWA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재임하는 등 프로레슬러로도 기량이 뛰어났다. 그러나 자신처럼 경기력이 탄탄한 선수들만 중용했던 탓에 1980년대부터 대세로 떠오르는 파워하우스 계열을 홀대하며 AWA 몰락에 부채질을 했다[9]. 2015년 89세로 사망했다.
  • 더 블랙잭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AWA와 WWWF 등에서 카우보이 기믹으로 활동한 태그팀.
  • 센세이셔널 셰리
  • "민" 진 오컬런드: 1970년대부터 AWA, WCW, WWF/WWE에서 활동한 아나운서. 원래 AWA의 링아나운서로 커리어를 시작해 인터뷰어도 맡다가 빈스 맥마흔에게 스카우트 돼 1980년대 중반 WWF로 왔다. 1990년대 중반에는 WCW로 이적해 nWo가 결성된 후 헐크 호건과 인터뷰하는 등, 은근히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함께 했다. 2019년 1월 2일 사망.

2.1.8. 2007년 헌액자

  • "THE AMERICAN DREAM" 더스티 로즈: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NWA, WCW, WWF 등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 더스틴 로즈, 코디 로즈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구수한 남부 억양도 빼놓을수 없다 130kg의 거구임에도 날랜 몸놀림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한편으로는 데스매치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터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각본진 등으로 일했다. 위암으로 투병하다 2015년 69세로 사망했다.
  • "MR. PERFECT" 커트 헤닉: 커티스 액슬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사후 추증.
  • 미스터 후지: 1970년대부터 WWWF에서 활동했으며 1980년대 중반 은퇴한 후에는 매니저로 전향해 요코주나 등 악역 레슬러들의 매니저를 맡았다. 하와이 태생으로 양친 모두 일본인이고, WWF에서는 일본인 기믹으로 활동했지만 실제로는 일본어를 거의 못했다고 한다[10]. 2016년 향년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 닉 복윙클: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AWA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로, 릭 플레어에 앞서 버디 로저스의 스타일을 물려받아 비열한 챔피언으로 악명 높았다. 비열한 스타일과 달리 원래 기량은 뛰어났으나 상대의 스타일을 충분히 끌어내는 것이 악역으로서 자신의 역할이라며, "상대가 왈츠를 추면 나도 왈츠를 추고, 스윙댄스를 추면 나도 스윙댄스를 춘다."는 명언을 남겼다. 트리플 H가 한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언급했다. 2015년 80세로 사망했다.
  • 와일드 사모안즈 (시카 & 아파 아노아이):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WWF와 NWA 등의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21차례 태그팀 챔피언을 지냈다. 여러 레슬러를 배출하기로 유명한 아노아이 가 출신으로 분량상 아파와 시카의 아들들만 봐도, 아파의 장남 사물라는 사무(Samu)라는 이름으로 이종사촌 파투와 함께 WWF 헤드슈링커스란 태그팀으로 활동했고, 차남 로이드는 1990년대 중반 WWF에서 잠깐 활동했었고, 삼남 아파 주니어는 마누(Manu)라는 이름으로 2000년대 말 WWE에서 잠시 활동했고, 손자 랜스도 독립단체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고 있다. 시카의 장남 맷은 로지라는 이름으로 WWE에서 활동했고 차남은 바로 그 로만 레인즈다.
  • 제리 롤러
  • 짐 로스: 현대 북미 프로레슬링계를 대표하는 아나운서. 1970년대 중반 프로레슬링 아나운서를 시작해 1993년 WWF에 입사해 20여 년을 함께 했다.
  • 쉬크: 사후 추증.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현역 시절에는 시리아나 요르단 같은 아랍 출신의 부호란 기믹으로 활동했다. 하드코어 레슬링의 선구자로, 일본에서는 조카인 사부와 함께 태그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WWWF 시절에는 브루노 삼마르티노나 안토니오 로카 등과 대립했다. 아이언 쉬크처럼 쉬크를 링네임을 쓰는 프로레슬러들이 많기 때문에 구분을 위해 "디 오리지널 쉬크"로도 불린다. 2003년 76세로 사망했다.

2.1.9. 2008년 헌액자

  • "NATURE BOY" 릭 플레어
  • 매 영
  • 고든 솔리: 사후 추증.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NWA의 주무대였던 플로리다 지역에서 활동한 아나운서. 1981년부터 1983년까지 3년 연속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최고의 아나운서로 선정했다. 1990년대 말 인두암으로 투병하면서 성대를 제거하면서까지 투병 생활을 이어갔으나 2000년 71세로 사망했다.
  • 에디 그레이엄: 사후 추증.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했던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모터. NWA 지역 챔피언을 다수 지내다가 1970년대 초 플로리다 지역 챔피언십(CWF)을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1980년대까지 플로리다는 NWA의 주무대로 자리 매김했고, 그레이엄 본인도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대 말 NWA 회장으로 재임했다. 그러나 투자 실패와 알콜 중독으로 55세이던 1985년에 권총으로 자살했다[11].
  • "소울맨" 락키 존슨: 캐나다 출신 흑인 프로레슬러. 1960년대부터 WWF를 비롯해 미국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선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더 락의 아버지다. 2020년 1월 15일 사망.
  • 브리스코 브라더스 (잭 & 제리): 형인 잭 브리스코는 원래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1965년 NCAA 전미학생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이후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해 1980년대까지 NWA 지역 챔피언 벨트를 다수 획득하면서 NWA의 인기스타로 군림했다. 그러던 1980년대 중반, 잭은 동생과 함께 보유하고 있던 짐 크로켓의 조지아 챔피언 레슬링(GCW) 주식 지분 대다수를 빈스 맥마흔에게 팔아남기면서 WWF로 이적했다. 이를 계기로 WWF는 전미를 주름잡는 단체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NWA는 상대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NWA의 여러 프로모터들은 잭을 비난해 결국 잭은 프로레슬링계를 떠났고, 2010년 68세로 사망했다. 형을 따라 프로레슬러가 된 동생 제리는 주로 형과 태그팀으로 활동했다. 형과 함께 WWF로 이적했는데 비난을 견디다 못해 프로레슬링계를 아예 떠난 형과 달리 제리는 잠깐이나마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애티튜드 시대가 저물면서 일선에서 물러나 로드 에이전트 일에 전념했다.
  • "하이 치프" 피터 마이비아: 사후 추증. 미국령 사모아 출신 프로레슬러. 1970년대 WWF에 데뷔해 치프 제이 스트롱보우와 태그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2년 암으로 인해 45세로 사망했다. 더 락의 외조부로, 아파와 시카 아노아이의 아버지인 아미투아나 아노아이와 의형제를 맺어 아노아이 가문과도 돈독한 사이였다.

2.1.10. 2009년 헌액자

  • "STONE COLD" 스티브 오스틴
  • 리키 "THE DRAGON" 스팀보트
  • 빌 와츠: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모터. 오클라호마 스탬피드의 원조다. 1960년대 중반 WWWF에도 데뷔해 브루노 삼마르티노와 태그팀으로 활동했으나 얼마 못 가 턴힐해 대립했다. 1960년대 말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 등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를 설립해 단체 에이스 겸 각본진 수장으로 재직했다. 1979년 NWA에서 탈퇴해 UWF란 단체를 만들어 WWF와 NWA에 대항하면서 스팅 같은 유망주도 발굴해냈지만 1980년대 말 미국 남부의 불황으로 단체 흥행에도 타격을 입으면서 결국 UWF를 매각했다. 이후 WCW의 부사장을 맡아 일선에 복귀하지만 친아들 에릭 와츠를 대놓고 밀어주는 등의 행동으로 이에 반발한 기존 선수들의 이탈과 시청률 부진으로 인해 1993년 WCW에서 나왔다.
  • 폰 에릭 패밀리 (프리츠 & 케빈 & 데이비드 & 케리 & 마이크 & 크리스): 케빈 제외 사후 추증.
  • 더 펑크스 (도리 Jr. & 테리)
    도리 펑크 주니어는 원래 대학 때까지 미식축구선수였다가 1963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1969년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된 후 4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러로 칭송받기도 했다. 1980년대 말 동생 테리와 함께 카우보이 기믹으로 WWF에 데뷔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 트레이너로서도 많은 제자들을 육성했고, 1970년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했던 것을 계기가 돼 전일본에 외국인 계약을 주선하기도 했다. 클로버리프의 원조다.
    테리 펑크도 형과 마찬가지로 대학 때까지 미식축구를 하다가 1965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1975년 잭 브리스코를 상대로 이기면서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됐는데, 형제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된 건 펑크 형제가 처음이었다. NWA 챔피언이 되면서 이미 실력은 인정받았음에도 하드코어 매치나 데스매치에 도전하거나 50이 넘은 나이에 문설트를 시도하는 등,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보통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베테랑들이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까봐 젊은 선수들을 상대하는 걸 꺼리지만 ECW 시절에는 신진 육성을 위해 젊은 선수들을 상대로 지는 것도 거리낌 없이 했다. 다만 매번 은퇴를 번복하며 일흔이 되고도 경기에 나설 정도로 과하게 몸을 혹사시킨 탓에 진통제를 달고 사는데다, 진통제 남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감정 기복이 심하다고[12]. 근육맨의 등장인물 테리맨의 모티브다. 본인은 테리맨의 존재를 알고 "나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면서 나에겐 1달러도 안주냐."고 투덜댔지만 그래도 좋게 생각했는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 코코 B. 웨어: 1980년대 WWF에 데뷔해 앵무새 프랭키를 데리고 다니며 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챔피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때 오웬 하트와 하이 에너지란 태그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하워드 핑클: WWWF 시절이던 1970년대 중반부터 2002년까지 WWE 링 아나운서를 맡았다. 릴리안 가르시아가 정식으로 RAW 링 아나운서를 맡으면서 이후로는 WWE 홍보부에서 일했다. 2020년 만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11. 2010년 헌액자

  • "THE MILLION DOLLAR MAN" 테드 디비아시 Sr
  • 안토니오 이노키
  • 웬디 릭터
  • 밥 유커: 야구선수 출신 방송인[13]. 레슬매니아 3 당시 메인이벤트였던 헐크 호건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경기 때 링 아나운서를 맡았다. 레슬매니아 4에서도 오프닝 배틀로얄 해설 겸 백스테이지 인터뷰어를 맡았는데, 안드레 더 자이언트가 인터뷰 도중 유커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 유명했다.
  • 고저스 조지: 사후 추증.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 서부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프로레슬러로, 프로레슬링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처음으로 도입해 현대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14].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된 모피 코트나 향수를 뿌리면서 거만한 태도로 관중들을 대하는 등, 당시로서는 전에 없던 파격적인 캐릭터였던지라 악역이었음에도 팬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역대 최고의 악역이란 투표에서 1위로 뽑혔던 로디 파이퍼도 진정한 1위는 고저스 조지라고 말했다. 1963년 심장마비로 인해 48세로 사망했다.
  • 모리스 "매드 독" 버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프랑스계 캐나다인 프로레슬러. 루나 버숀의 삼촌이다. 원래 아마추어 레슬러로, 1948 런던 올림픽에 캐나다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180cm가 안 되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다져진 탄탄한 기본기와 별명 그대로 미친 개처럼 난폭한 스타일로 인해 현역 시절 내내 최고의 악역으로 손꼽혔다. 1987년 교통사고로 다리 한 쪽을 절단했고, 2013년 84세로 사망했다.
  • 스튜 하트: 사후 추증. 캐나다 출신 프로레슬러. 브렛 하트, 오웬 하트 등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다. 2차 대전 종전 후 프로레슬러가 됐고,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는 한편 자택 지하에 마련된 "던전"을 통해 수많은 레슬러들을 육성했다. 1992년 트레이너로서도 은퇴했다. 2003년 88세로 사망했다.

2.1.12. 2011년 헌액자

  • "THE HEARTBREAK KID" 숀 마이클스
  • "핵소우" 짐 더간: 각목과 성조기가 트레이드마크로, 애국자 기믹이었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헐크 호건 못지 않게 인기를 끌었다. WWF 로얄럼블(1988) 우승자지만 로얄럼블 우승 외에 WWF 시절 챔피언이 된 적은 없었다.
  • "불릿" 밥 암스트롱: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조지아와 앨라배마 등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 아들 4명도 모두 레슬러가 됐지만, 아버지의 링네임인 암스트롱을 그대로 쓴 3명은 묻혔고 실제 성인 제임스를 유지한 브라이언만 성공했다. 장남 조셉은 스캇 암스트롱이란 이름을 썼고 2006년부터 WWE 심판으로 일하고 있다.
  • 써니
  • 드류 케리: 코미디언. WWF 로얄럼블(2001)에 출전했는데 바로 뒷순번인 케인에게 겁먹고 자진 탈락했었다. 한국에는 잘 안알려진 미국 연예인인데, 드라마에도 출연하곤 했었다.
  • 압둘라 더 부처: 1960년대부터 활동한 프로레슬러. 기믹상 수단 출신이라 영어는 못한다는 설정이 있어 늘상 매니저를 대동해 다녔지만 실제로 아버지는 아메리카 원주민이고 어머니는 아메리카 흑인인 캐나다인이다. 유혈이 낭자한 경기를 주로 펼친, 하드코어 레슬링의 전설. 수단 출신이라는 기믹과 육중한 체구, 하드코어 매치로 인해 생긴 머리 여기저기에 생긴 상처들로 험악한 인상이었던지라 주로 악역으로 활동했다. 하드코어 레슬링을 주로 했던 탓에 WWE 명예의 전당 헌액을 두고 빌리 그레이엄은 반대를 표명했었다. [15]
  • 더 로드 워리어즈 (로드 워리어 호크 & 로드 워리어 애니멀 & 폴 엘러링): 로드 워리어 호크만 사후 추증. 1980년대 중반부터 GCW, AWA, NWA, WCW, WWF, 전일본, 신일본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한 태그팀. WWF 시절에는 리전 오브 둠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폴 엘러링은 AWA, NWA, WWF, 전일본 시절 매니저를 맡았었고, 현재 NXT에서 괴물 태그팀인 어서즈 오브 페인의 매니저를 맡고 있다. 로드 워리어 호크는 2003년 심장마비로 인해 46세로 사망했다. 이후 로드 워리어 애니멀도 2020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향년 60세) 이제 로드 워리어즈는 추억의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2.1.13. 2012년 헌액자

  • "THE RATED R SUPERSTAR" 에지
  • 마이크 타이슨: 스티브 오스틴에게 쌍법규를 먹은것으로 유명한 그 사건의 주인공. 활약한 시간이 많진 않았지만, WWF 레슬매니아 14당시 디 제네레이션 X를 배신하고 스티브 오스틴이 레슬매니아에서 처음 WWF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게 하여 오스틴의 시대를 열게 된 그 순간의 주역이었다. 타이슨이라는 인물의 당대 복서로서 스타성은 엄청났고[16], TV쇼를 통해 레슬러와 복서의 대립구도가 매주 방송되었다는 점이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때문에 타이슨이 레슬러는 아니지만 애티튜드 시대에 큰 공헌이 있었고 스포츠 분야에서의 영향력도 인정하여 헌액되었다.
  • 밀 마스카라스: 엘 산토, 블루 데몬과 함께 루차도르계의 전설로 손꼽힌다. 밀 마스카라스는 스페인어로 천 개의 마스크라는 뜻으로, 매 경기마다 다른 디자인의 마스크를 꼈다. 일본에서는 입장시 두 개의 마스크를 끼고 등장해 마스크 1개는 관중을 위해 객석에 던지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참고로 알베르토 델 리오의 큰아버지이기도 하다.
  • 포 호스맨: 릭 플레어는 이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상태였는데, 포 호스맨 헌액을 통해 다시 한번 헌액하게 된다. 이후 릭 플레어에게는 "2-Times Hall of Famer"라는 명예로운 별명이 붙는다.
  • 요코주나: 사후 추증. 1980년대 말 원래 신일본에서 데뷔했다가 1992년 WWF와 계약했다. 250kg이 넘는 육중한 체구로 인해 스모선수 출신인 일본인 기믹으로 일본계 출신인 미스터 후지를 대동하고 다녔다.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도 1차례 지냈고 헐크 호건, 언더테이커, 숀 마이클스와 대립하며 탑힐로 활동했지만 체중 관리에 실패해[17] 1997년 초 WWF에서 해고됐다. 이후 독립단체에서 활동하다가 2000년 협심증으로 인해 34세로 사망했다. 실제로는 일본인이 아니라 사모아계 미국인으로, 그 유명한 아노아이 가문 출신이다. 아파와 시카의 조카고, 로지 로만 레인즈의 사촌형이고, 리키시의 외사촌동생[18]이며 우마가의 외사촌형이다.
  • 론 시몬스

2.1.14. 2013년 헌액자

2.1.15. 2014년 헌액자

  • 디 얼티밋 워리어: 이 날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 후 다음날 레슬매니아, 그 다음날 RAW까지 3일 연속으로 출장한 뒤 다음날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인물 항목 참조.
  • 제이크 "THE SNAKE" 로버츠
  • "THE BAD GUY" 레이저 라몬: 본명인 '스캇 홀'이 아닌 WWF 당시 활동명인 레이저 라몬의 이름으로 헌액되었는데, 이는 훗날 nWo의 WWE 명예의 전당을 위해 스캇 홀의 자리를 비운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근데 정작 같은 멤버인 케빈 내시는 디젤이 아닌 본명이다.
  • 리타
  • 폴 베어러: 사후 추증. 언더테이커의 매니저로 유명했다. 2013년 심장마비로 인해 58세로 사망했다. 케인의 소개 및 그의 아들들이 연설한 후 디 언더테이커가 깜짝 출연해 그를 추모했다. 안타깝게도 폴 베어러의 장남 마이클 무디도 2014년 9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 미스터 T
  • 카를로스 콜론 시니어: 푸에르토 리코 출신의 전설의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모터. 자신이 사장으로 있었다지만 WWC 유니버설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무려 26차례나 지냈다. 칼리토, 프리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2.1.16. 2015년 헌액자

2.1.17. 2016년 헌액자

  • "THE ICON" 스팅[23]
  • 빅 보스 맨: 사후 추증.
  • 갓파더[24]
  • 재클린
  • 스탠 핸슨: 미국보다는 일본에서 유명한 레슬러로, 현재도 널리 쓰이는 기술인 래리어트의 창시자. 그의 피니쉬인 웨스턴 래리어트로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등등 수 많은 강자들을 쓰러뜨렸다. 참고로 WWE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WWWF시절에 참전한적이 있고 브루노 삼마르티노와는 철창매치로 챔피언전을 한적이 있다.[25]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옛날기믹이었던 빅 쟈니 확카우보이의 원조, 사실 거의 똑같다. 복장에 거친 경기운영과 피니쉬가 래리어트까지. 다른점이라면 래리어트를 한센은 왼팔로 쓰고 JBL은 오른팔로 쓴다는 정도. 일본의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쓰러트리던 그에게 주어진 별명이 바로 '불침함 카우보이' 워낙 일본에서 거대한 족적을 남겨서 한국 커뮤니티에서 미국식 발음이 아닌 일본 가타카나 발음인 '스턴 한센', '스탄 한센' '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 페뷸러스 프리버즈( 마이클 헤이즈, 테리 고디[26], 버디 로버츠[27], 지미 가빈): 1980년대 텍사스의 WCCW에서 맹활약한 전설의 스테이블이다. 3명 이상의 팀원 혹은 스테이블 멤버 전원을 태그팀 챔피언으로 인정하는 프리버드 룰의 시초다. 브렛 하트는 이들이 WWE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페뷸러스 프리버즈의 헌액을 비판했다.
  • 스눕 독: 래퍼. 그는 두차례 WWE RAW에 출연한 적 있고 사촌인 사샤 뱅크스 WWE에서 활동 중이다.[28]

2.1.18. 2017년 헌액자

2.1.19. 2018년 헌액자


원래 이 해에 뱀뱀 비겔로우도 헌액될 예정이었으나 보류되었다고 한다.

2.1.20. 2019년 헌액자


개인이 아닌 태그 팀/스테이블 단위의 헌액이 많았던 탓에 유난히 2회 헌액자가 많이 나온 해이며 또 그만큼 개인 헌액이 유독 적은 해이기도 했다.

2.1.21. 2020년 헌액자


전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레슬매니아 전야제로 열리던 명예의 전당 행사가 서머슬램으로 연기되었다가 오는 2021년 4월 6일, 2021년 헌액자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

본래 데이브 바티스타가 헤드 라이너로서 헌액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관중이 있는 행사 즉, 코로나19 종식 이후에 헌액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며 이를 정중히 거절했고 WWE 측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바티스타의 헌액은 차후로 연기되었다. # 한편 이때 이후로 바티스타는 헌액되기 전까지 매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헤드 라이너로 헌액될만한 선수들중 빠른 시일내에 헌액될만한 선수들인 더 락, 사이코 시드 등과 비교하며 바티스타보다 먼저 헌액될지, 아니면 바티스타 이후에 헌액될지에 대한 떡밥도 나오곤 한다.

2.1.22. 2021년 헌액자


헌액식은 2020년 헌액자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2.1.23. 2022년 헌액자

2.1.24. 2023년 헌액자

2.1.25. 2024년 헌액자

3. 워리어 어워드

2015년부터 시행된 어워드로 2014년 얼티밋 워리어가 WWE 명예의 전당 헌액 당시 행사장에서 이 사회의 숨은 영웅들을 위한 헌액 부분이 마련 되었으면 좋겠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는데, WWE가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워리어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을 기려서 '워리어 상'(Warrior Award)을 만들었다.

3.1. 수상자

3.1.1. 2015년 수상자

  • 코너 "더 크러셔" 미할렉 - 소아암을 앓던 소년으로 레슬링을 좋아했는데, 메이크어위시 재단을 통해 WWE에서 그를 위해 2012년에 '더 크러셔'란 링네임으로 데뷔하게 만들어 줬다.[48] 특히 WWE의 스타들과 만나서 경기를 갖는 영상으로 사람들을 훈훈하게 해줬으며, 그를 위해 소아암에 걸린 어린아이들을 돕는 기금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스테파니 맥마흔은 미할렉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며 이는 워리어의 정신과도 부합하기 때문에 수상자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4년 4월 25일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WWE에서 미할렉의 이름을 따서 Connor's CURE라는 별도의 재단을 만들었고 WWE 샵에서 관련 상품을 판매 하고 있으며 수익금은 소아암 환자들을 지원하는데에 사용되어진다고 한다. 수상 확정 발표 영상 수상 소감 발표 영상[49]] Conor's Cure 뱃지는 2023년 기준으로도 선수들 및 백스테이지 링 아나운서들이 차고 나오고 있다.

3.1.2. 2016년 수상자

  • 조안 룬덴 - 미국의 티비쇼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방암을 극복하신 분으로 WWE가 유방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고 워리어 어워드와의 취지와도 맞기 때문에 2016년 워리어 어워드에 선정 되었다. 수상 확정 발표 영상

3.1.3. 2017년 수상자

  • 에릭 르그랑 - 미국 뉴저지 출신의 前 미식축구선수로, 2010년 대학 선수 시절 경기도중 척추 손상으로 생명에 위험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호흡기 없이는 호흡이 불가능하고, 앞으로 스스로 걸을 확률이 5%도 채 안될것이라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스스로 호흡기를 띄고 호흡하고, 몸에 감각을 되찾아가는 등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래서 ESPY상[50] 중 지미 V 상[51]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상 확정 발표 영상

3.1.4. 2018년 수상자

  • 자리우스 JJ 로버트슨 - 14세의 나이로 간 이식 수술을 무려 2차례나 받으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으나 무사히 살아남은 소년. 수상 확정 발표 영상

3.1.5. 2019년 수상자

  • 수 애치슨 - 메이크어위시 재단을 포함한 많은 WWE 자선프로그램을 주도한 WWE 임원.

3.1.6. 2020년 수상자

  • 타이터스 오닐 - 본업은 WWE 소속 레슬러로, 코로나 19 때문에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자선행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기부도 많이하는 등의 선행이 높게 평가되어 헌액되었다. 현재 선수 생활보다는 WWE의 글로벌 앰버서더로서 홍보 활동 및 자선 활동을 하고 있다. 레슬링 빼고 다 잘하는 신닐

3.1.7. 2021년 수상자

  • 리치 헤링 - WWE 직원으로, 빈스 맥마흔 시니어 시절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근속중인 베테랑 직원이다.

3.1.8. 2022년 수상자

  • 섀드 개스퍼드(1981-2020) - WWE의 과거 태그팀이었던 크라임 타임(Cryme Tyme)의 멤버. 2020년 아들과 해수욕을 하다가 이안류에 휩싸였는데, 구조하러 온 라이프가드에게 아들을 먼저 구해 달라고 부탁한 채 실종되었고, 사흘 후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3.1.9. 2023년 수상자

  • 팀 화이트(1954-2022) -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1985년 WWF에 입사해 파트타임 심판으로 근무하다 1993년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사망 이후 풀타임 심판으로 전환하여 2004년 레슬매니아 20에서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찬의 싱글 매치를 끝으로 심판을 그만두었고 2009년에 WWE에서 방출되었지만 WWE랑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다 2022년 사망하였다.

4. 레거시 어워드

2016년부터 시행된 어워드로 20세기에 활동했었던 레슬러들 혹은 레슬링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레거시 어워드'(Legacy Award)를 만들었다. 대부분은 사후 추증의 방식으로 수여되지만, 예외적으로 후술할 2019년 수상자 중 두 명은 수상 시점에서 생존 중임에도 수여 받았다.

별도의 시상은 하지 않고 WWE 명예의 전당 행사때 영상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 WWE 홈페이지에 헌액자들의 커리어를 돌아보는 글을 올린다.

20세기에 활동했던 레슬러들은 대부분 레거시 어워드로 헌액될것으로 보면된다. 특히 헌액되기전 이미 고인이 되었다면 더욱 그러하며, 생존중이더라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엔 커리어가 부족하거나 애매할 경우 사후 레거시 어워드로 헌액될 확률이 높다.

2021년을 끝으로 더 이상 진행하고 있지 않다.

4.1. 2016년


WWE 홈페이지에 게재된 관련 글
  • 루 테즈 - 북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전설의 선수로 주요 경력으로는 월드 헤비웨이트 레슬링 챔피언 3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5회가 있다. 철인 루테즈라는 별명으로도 유명.
  • "세일러" 아트 토마스(1924 - 2003) - 최초의 흑인 프로레슬러 슈퍼스타.
  • 프랭크 곳치(1877 - 1917) - 루 테즈 보다 더 전 1800년대 말부터 시작해 1900년대 초에 활동했던 전설의 레슬러로 주요 경력으로는 월드 헤비웨이트 레슬링 챔피언 1회 및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가 있다.
  • 밀드리드 버크(1915 - 1989) - 여성 최초의 프로레슬링 슈퍼스타로 NWA 월드 위민스 챔피언을 지낸 적이 있다. 또한 당시 여성 레슬러들의 프로모터인 빌 울프와 결혼, 남편과 같이 다양한 여성 레슬러들을 양성하는데 힘쓴 바 있었다.
  • 에드 "스트랭글러" 루이스(1891 - 1966) - AWA와 NWA에서 맹활약한 레슬러로 주요 경력으로는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등 총 4번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지냈다.
  • 팻 오코너(1924 - 1990) - AWA와 NWA에서 맹활약한 레슬러로 주요 경력으로는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U.S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A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경력이 있다.
  • 조지 헤켄슈미트(1877 - 1968) - 유럽 프로레슬링 초창기 슈퍼스타. 거기다가, 상당히 외모도 출중하며, 지식도 풍부해서 은퇴 후 작가, 철학가, 연설가 등으로도 활동했다. 실제로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도 "내가 미국 대통령이 안되었다면, 조지 헤켄슈미트처럼 살고 싶다."라고 했을 정도로 그에 대한 경외와 존경심을 드러냈을 정도였다.

4.2. 2017년


WWE 홈페이지에 게재된 관련 글
  • 루터 린드세이 (1924 - 1972) - 최초의 메이저 스타가 된 아프리카계 미국 레슬러로, 그가 있었기에, 후술할 베어캣 라이트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프로레슬러가 양성될 수 있었을 정도의 인기를 누렸고, 전년도 수상자인 루 테즈와의 최초 인종간 레슬링 경기는 명경기로 회자되고 있다.
  • 마틴 "파머" 번즈(1861 - 1937) - 전년도 레거시 수상자였던 <프랭크 곳치>, <에드 "스트랭글러" 루이스>를 길러낸 前 그래플러형 레슬러 이자, 레슬러 교사.
  • 베어캣 라이트(1932 - 1982) - 50년, 60년대 활동했던 복서 출신 흑인 레슬러로, 당시 사회 분위기 상 흑인 인종 차별이 심했던 때였기에, 인종 차별을 하던 복싱, 레슬링 경기에 대해 비난하며, 경기를 거부하는 등의 사회 운동적인 면을 보여 왔었다.
  • Dr. 제리 그레이엄(1928 - 1997) - 50년, 60년대 유명했던 태그 팀 The Golden Grahams(그레이엄 가족들)라는 태그 팀의 수장으로, 통산 챔피언쉽 6회에 빛나는 거물 급 레슬러였다.
  • 조셉 "툿스" 몬트(1894 - 1976) - 前 레슬러이자, WWE의 전신인 WWWF의 최초 발기인으로, 사실 빈스 맥마흔 시니어보다도 이 사람이 먼저 WWWF의 프로모터로서 활동했다. 브루노 삼마르티노에 대해 WWWF의 미래가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던 바 있었다.
  • 역도산
  • 주디 그레이블(1935 - 2008) - 50년, 60년대 활동했던 금발의 여성 레슬러로, 주로 맨발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에 "맨발의 콘테사" 혹은 레슬러 데뷔 전 곡예사로 활동했던 경력을 이용한 아크로바틱한 기술을 많이 사용했었기 때문에 "교양있는 발을 가진 금발 곡예사"라는 애칭으로 불려왔었다. 어떻게 보면 애티튜드 시대 디바들의 원조격이라 봐도 될 듯 싶다.
  • 준 바이어스(1922 - 1998) - 전년도 수상자 밀드레드 버크와 더불어 여성 프로레슬러의 부흥을 이끌었던 여성 프로레슬러로, 상술한 주디와는 다르게 이쪽은 나름대로 여성 챔피언쉽 3번 정도 차치했던 만큼 여성 슈퍼스타의 선구자로 볼 수 있었다.
  • 헤이스택스 칼훈(1934 - 1989) - 70년대에 WWWF에서 활동했던 선수로 태그팀 챔피언 경력이 있으며, 요코주나랑 비슷한 덩치를 가졌었다. 게다가 체중이 가장 많이 나갔을땐 350kg를 넘기도 했었다.

4.3. 2018년


WWE 홈페이지에 게재된 관련 글
  • 스탠 "더 맨" 스테이시악(1937 - 1997) - 숀 스테이시악의 아버지이자 1973년 WWWF 챔피언중 한명, 무엇보다 그는 1958년부터 1984년까지 무려 17군데의 레슬링 메이저 및 아마추어 단체들을 거쳐왔다. 워낙 그의 행보가 아득히 뛰어났던지라, 아들 숀[52]도 레슬러로 활동은 했지만,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다.
  • 로드 알프레드 헤이즈(1928 - 2005) - 영국 출신의 레슬러로, NWA에서 태크팀 챔피언을 수상했던 경력이 있다. 사실, 레슬러로서의 경력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후 1982년부터 WWF에서 빈스 맥마흔의 적극적인 푸쉬하에 당시 WWF 주관 토크쇼 진행자를 시작으로, 경기 해설자, 백스테이지 해설자 등으로 활동하면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영국식 발음을 구사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었다. 1995년 사무국으로부터 급여 삭감을 받고, 은퇴를 선언했는데, 이 때 빈스 맥마흔이 사무국의 조치에 대해 크게 노했을 정도[53]였다고 한다.
  • 다라 싱(1928 - 2012) - 현재는 그레이트 칼리가 인도에서 사랑받는 레슬러가 되었지만, 그보다 먼저 인도 출신 메이저급으로 성공했던 프로레슬러로, 1968년 루 테즈를 꺾고 WW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했던 선수였다. 레슬러를 겸하면서, 인도에서 영화배우로도 크게 성공해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었으며, 2003년에는 인도 상원 정치인으로 6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 코라 콤즈(1927 - 2015) - 前 컨트리 가수 출신의 여성 레슬러로, 당대 여성 레슬러 전문 프로모터였던 빌 울프[54] 사단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이 쪽도 가수 출신이라는 성분답게 글래머 스타일의 섹스어필을 많이 강조했던 여성 프로레슬러였지만, NWA 여성 프로레슬러 챔피언 4회를 차지했을 정도로 레슬러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던 선수였다.
  • 엘 산토(1917 - 1984) - 루차도르의 선구자이자, 더 락같이 영화 배우로도 성공한 최초의 레슬러. 멕시코 출신으로 멕시코인들에게 프로레슬링 인기 몰이하는데 한 몫 했으며, 전술했듯 영화 배우, 특히 만화책 및 만화 영화 등을 통해 자주 등장한 덕에 당시 멕시코인들의 국민적 스타 겸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 "더 골든그릭" 짐 론도스(1894 - 1975) -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1930년대와 1940년대 가장 인기 있는 레슬러였고, 은퇴 후에도 그리스의 전쟁 고아들을 돕는 자선 활동에 매진했던 레슬러였기에 그리스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 루퍼스 R. 존스(1933 - 1993) - NWA, AWA, 전일본 프로레슬링 등에서 활동했던 레슬러. 큰 덩치를 이용한 파워형 레슬러로, 주특기는 헤드벗이었다.
  • 스푸트니크 먼로(1928 - 2006) - 1950,60년대 대표적인 악역 기믹의 레슬러. 이른바 "뒤틀린 강철, 섹스어필러" 등으로 백인들에게 멸시는 받았지만, 그는 당시 만연하던 인종 차별에 항거해 흑인 후원자들에게 자신의 경기 티켓을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등의 흑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고, 법정 분쟁이 생겼을 때도 일부러 흑인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흑인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실제로 그는 백인 임에도 흑인 팬들이 월등히 많았던 레슬러 였다.
  • 보리스 말렌코(1933 - 1994) - 現 AEW의 수석 프로듀서인 딘 말렌코의 아버지로, 유대인 출신이며, 활동 당시인 1960,70년대 러시아 출신 악역 기믹 레슬러로 활동하였다.
  • 히로 마츠다(1937 - 1999) - 일본 출신 프로레슬러 겸 트레이너. NWA 챔피언십을 차지한 최초의 일본 선수이기도 하다. 이후 그는 레슬러 트레이너로도 유명세를 떭쳤는데, 그의 제자 중 가장 성공한 레슬러가 바로 헐크 호건이었다.

4.4. 2019년


WWE 홈페이지에 게제된 관련 글
  • 브루저 브로디
  • 와후 맥다니엘 (1938 - 2002) - 前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레슬러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와후 추장 원주민[55] 기믹을 사용했었다. 실제로 다양한 레슬링 단체를 다니면서 굵직하게 챔피언십을 1회씩은 꼭 따내는 꾸준함과 익살스러운 경기 매너 등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 루나 버숀
  • 프로페서 토루 타나카 (1930 - 2000) - 미스터 후지와 마찬가지로 하와이 출신의 일본계 미국인[56]으로, 어린 시절 유도를 배워서 단련된 기술로 레슬링 계에 입문했던 레슬러이다. 그는 주로 못된 일본인 악당 레슬러 기믹을 맡아서 방심하는 상대 선수나 레프리의 눈에 소금을 뿌리는 반칙성 기술을 많이 사용했었다.
  • "스페셜 딜리버리" 존스 (1945 - 2008) - 과거 NWA 시절 태그팀 챔피언 3회를 기록했던 레슬러였지만, WWF에서는 이렇다할 기록을 남기지는 못한 그저 자버였는데, 무려 타이거 청 리한테도 지는 자버였다. 하지만, WWF 시절 그는 1년에 평균 240 경기를 출장했고, 심지어 1978년과 1984년에는 무려 300 경기 이상 출장의 기록을 가지고 있어서 그 성실성을 인정받았고, 그 덕분에 많은 팬들의 사랑[57]을 받았던 선수였다.
  • 프리모 카네라 (1906 - 1967) - 이탈리아 출신 복서, 레슬러로 복서 시절에도 거의 모든 상대를 KO승을 거두었고, 공식 전적만 103전 89승 14패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보유했었고, 세계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도 1년이나 유지했을 정도였다. 복서 은퇴 후 레슬러로 전향해 당시 최강자였던 루 테즈를 상대로만 143승 1무 1패라는 정신 나간 듯한 전적을 과시하기도 했다.
  • 신마 히사시 (1935 - ) - 1978년부터 1984년까지 WWF 스크린 권위자라는 명목으로 활동했고, 이후 신일본 프로레슬링 회장직도 역임했었다. 2019년 시점으로 생존 중(당시 84세)임에도 수상했다.
  • 조셉 코헨 (1948 - ) - "MSG네트워크"라는 미국 지역 스포츠 채널의 창시자로, 스포츠 채널을 통한 레슬링 인기 몰이에 공헌하셨다는 명목으로 수상되었는데, 신마 히사시와 더불어 2019년 시점으로 생존 중(당시 73세)임에도 수상했다.
  • "플레이 보이" 버디 로즈 (1952 - 2009) - 전년도 수상자 스탠 "더 맨" 스테이시악 못지 않게 이 분도 다양한 레슬링 단체를 거치면서 선수 생활을 한 레슬러로, AWA와 PNW(퍼시픽 노스웨스트 레슬링) 등에서 플레이 보이라는 링네임을 사용했고, 간간이 WWF에도 참여해 뛴 바 있었던 거구 레슬러였다.
  • 짐 버넷(1924 - 2004) - 前 프로레슬링 프로모터 이자, 연방 공무원으로,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당시 WWE의 전신인 Titan Sports의 부사장직을 역임했으며, 1988년부터 2001년까지는 WCW의 선임 고문으로 근무하는 등 WWE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

4.5. 2020년


WWE 홈페이지에 게제된 관련 글
  • 배런 미셸 리온 (1909 - 1988) - 이탈리아 출신 레슬러로, 악역 기믹이지만, 굉장히 귀여운 외모와 깔끔한 매너로 사랑받았던 선수였다. 1952년 루 테즈와의 NWA 헤비급 챔피언십 매치는 레슬링 경기 사상 최초로 10만 달러 이상의 티켓 판매고를 기록한 최초의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은퇴 후 그는 산타 모니카에 정착해 여생을 보내다가, 1988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평생을 그와 함께한 아내 빌리 리온은 상술한 루 테즈와의 경기를 추모하는 의미로 2000년 산타 모니카 역사/사회 박물관에 10만달러를 기부하였고, 지금도 이 박물관에는 배런 미셸 리온의 주요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상설 박물관으로 계속 운영중이라고 한다.
  • 브릭하우스 브라운 (1960 - 2018) - WWE와는 딱히 인연이 없었지만, NWA, AWA 등 여타 다른 레슬링 단체에서 활약하던 악역 기믹의 흑인 레슬러였다. 그나마 1995년 WWE 인재 양성을 위한 매치에서 트리플 H[58]와 경기를 치렀던게 WWE와의 유일한 인연이라면 인연. 그는 실제로 2017년 전립선암 판정을 그 날까지 레슬링 활동을 이어갔고, 그 암으로 인해 그 다음 해에 사망하였다.
  • "닥터 데스" 스티브 윌리엄스
  • 게리 하트 (1942 - 2008) - 프로레슬링 매니저로, 1960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매니저로 전직하면서, 그가 돌봐왔던 레슬러들을 다양한 반칙 등을 통해 챔피언의 자리로 올려주는 등의 전형적인 WWE 매니저의 역할을 정립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 레이 "더 크리플러" 스티븐스 (1935 - 1996) - AWA, NWA에서 주로 활약했던 레슬러로,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7회를 비롯해 팻 패터슨과 함께 태그팀을 이뤄 태그팀 챔피언십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다만, WWWF로 이적해서는 페드로 모랄레스, 지미 스누카등과의 대결 구도로 전개하려 했으나, 잦은 부상과 당대 레슬러들의 인기가 근육질 레슬러들이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그는 갖은 신체적 학대를 당해왔었고, 결국 별다른 활약 없이 WWWF를 떠나야 했던 아픔이 있었다.

4.6. 2021년

WWE 홈페이지에 게제된 관련 글
  • 딕 더 브루저 (1929~1991) -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강한 공격성과 특유의 사나움, 미식축구 선수 출신다운 막강한 신체능력를 앞세워 과격한 경기를 가지는 등 브루저 브로디와 함께 현대의 브롤러 타입의 원조라고 볼수 있는 선수다. 1991년 자택에서 아들과 함께 운동을 하던 도중 식도의 혈관이 파열, 내출혈이 발생하는 바람에 사망한다.
  • 에델 존슨 (1935~2018) - 최초의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 레슬러 4인[59]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6세에 데뷔해서 최초의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던 인물이다. 미국 사회에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당시[60]에도 최초로 드롭킥을 구사한 여성 레슬러였을 만큼 오늘날 실력파 여성 레슬러들의 귀감이 되는 레슬러로 남아있다.
  • 폴 보쉬 (1912~1989) - 전 휴스턴 레슬링(걸프 애슬래틱 클럽)의 레슬러, 해설자, 프로모터로서, 1932년부터 선수생활을 이어가다가, 1947년 교통사고를 당하며 레슬러로서 은퇴를 했지만, 이후 휴스턴 레슬링의 첫 해설자로 재데뷔하면서, 휴스턴 레슬링의 상징으로 근속해오다가, 1967년부터 해당 단체의 프로모터로 승진, 이후 <폴 보쉬의 시대>를 열어가며, 휴스턴 레슬링 단체를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레슬링 단체로 성장시키는 프로모터로 남게 되었다. 그 후 그는 1987년 은퇴를 선언했고, 그의 은퇴와 함께 휴스턴 레슬링 단체도 해산하면서 운명을 함께 했고, 이후 새롭게 성장해 가던 지금의 WWE가 그의 발자취를 이어가게 된다.
  • 페즈 와틀리 (1951~2005) - 전 NWA 미드 아메리카에서 활동하던 레슬링 선수. 레슬러로서 전미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2회, ICW 헤비웨이트, 태크팀 챔피언 등의 굵직한 타이틀들을 차지한 바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은퇴[61] WCW에 백스테이지 직원 및 보조 트레이너 등을 지낸 바 있었다.
  • 매드 독 버즈 소여 (1959~1992) -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미친개라는 별명에 걸맞게 과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전에 술집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거나 마약을 남용하는 등 링 밖의 삶에서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마약 남용의 문제가 컸는데 1992년 사망할 당시 사인 또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부전이였다. 또한 언더테이커가 프로레슬링에 입문할 당시 그의 첫 스승이였는데 수강료의 명목으로 수차례 돈을 뜯어내고선 관절기 몇개만 가르쳐주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말만 스승이지 사실상 사기꾼 그 자체였다.[62] 도대체 이런 인간 쓰레기에 실력도 영 아닌 자가 왜 수상자가 되었는지가 의심이 된다.

5. 매년 유력 입성자로 거론되는 선수들

진작 헌액이 되었을만 한데도 의외로 아직 헌액이 안된 선수들도 있고, 또한 특히 활동시기가 오래된 선수일수록 유력 헌액자로 거론되곤 한다.

현재 유력 입성자로 거론되는 선수들은 다음과 같으며, 해당 선수가 헌액된 후엔 이 문단에서 삭제하도록 한다.

헤드 라이너로 헌액될만한 선수들은 볼드체로 표기한다.
  • 이전에 WWE에서 활동했던 선수들[63]
  • 현재 WWE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

6. 평가

WWE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레슬러들이 많이 헌액됐지만, 종종 전업 레슬러가 아닌 유명인사들이 홍보목적으로 헌액되고 있다. 방송인 밥 유커, 드류 캐리,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 등 WWE에 출연해 이슈가 된 이들은 대부분 이름이 올라가는 편. 이들 중 갑은 레슬매니아에 3번 등장 그리고 툼스톤-툼스톤-초크슬램-스팅크 페이스 콤보 했던 메이저리그 안타왕 피트 로즈.[66]

반면 WWE에서 큰 족적을 남긴 레슬러라도 수뇌부와 사이가 안 좋으면 헌액해 주지 않는다. 애초에 이벤트성이고 레슬매니아 전날 헌액식에 참가해야 하는 만큼 WWE와 사이가 좋고 앙금이 풀려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전제 조건인 셈이다. 프로레슬링 해설위원 성민수씨는 "이벤트성이고 공신력은 없으며 레슬매니아 홍보를 위한 명예의 전당"이라고 평했다.[67] 칼럼 기사

대표적으로 헌액이 늦어진 인물이 마초맨 랜디 새비지로, 본인이 WWE측과의 교섭을 완강히 거부해 계속 미뤄지다 2015년에 사후 헌액되었다. 얼티밋 워리어 역시 오랜기간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다 트리플 H가 직접 찾아가 설득한 끝에 2014년 극적으로 헌액되었다.[68] 하지만 오히려 이런 면이 WWE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과거의 스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레슬매니아 홍보를 극대화하는 면이 있다.[69] 그리고 적어도 WWE는 관계가 나쁜 레슬러들도 출석을 위해 설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70] 꼭 WWE를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은퇴 레슬러중 헌액이 불투명한 대표적인 예로는 차이나가 있다. 여성 프로레슬러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남성 프로레슬러 못지 않은 맹활약을 해 큰 인기를 얻었고, 전설의 스테이블 DX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지만, WWE를 떠난 후 사생활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기에[71] 트리플 H도 어린이 시청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WWE는 약물 부작용으로 급사한 차이나의 추모 영상을 송출했고, 트리플 H와 스테파니가 그녀의 업적이 대단하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요건은 충분하다는 언급을 했으며, 마침내 2019년에 DX의 멤버 6인 중 1명으로 헌액이 되면서, 하늘나라에서 그나마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다만, 차이나가 비참한 생애를 보내게 만든 장본인이었던 엑스-팍이 같이 헌액[72] 되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또한 애티튜드 시대의 레슬링이 지금의 PG등급 WWE와 맞지 않아 그때 대활약을 보였던 레슬러들중 헌액이 안되는 이들도 더러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그 시대 여성 레슬러 아이콘인 세이블이 헌액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직전에 활약한 써니와 그 직후의 리타[73] & 트리쉬만 헌액된 상태였다. 다만 세이블의 경우 딱히 헌액에 문제가 될만한 사고를 친 적은 없기 때문에 안 한다기보다는 순서가 오지 않았다는 편[74]이 더 정확할 듯하다. 실제로 애티튜드 시대의 대표적인 아이캔디형 여성 레슬러인 토리 윌슨이 2019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선정된 적 있었으니, 애티튜드 시대의 레슬러들이 헌액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볼 수만은 없다. 반면 게일 킴의 경우는 WWE 재입성 후 푸대접을 받고 방출당한 일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생겨 다시는 WWE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선을 긋고, WWE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대상으로 포함시킬려고 했지만 게일 킴은 자신의 WWE 활동할 당시를 거론하며 거부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루나 버숀의 경우만은 레거시 부문으로 헌액되는 일도 있다.

헌액된 인물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선수도 많다. 30개 구단이 1년에 40명 로스터를 운영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1년에 3~4명 입성하는게 명예의 전당인데,[75] WWE는 매년 10명 가까운 인원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심지어 레거시 어워드로 입성하는 경우까지 합치면 매년 20명 정도가 헌액되는 셈. 지금 추세로 명예의 전당을 운영한다면 중간급 타이틀 홀더들은 죄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도 있다.[76] 또한 그렇다할 경력이 없는 로스터들도 태그팀 헌액이나 스테이블 헌액으로 헌액되거나 혹은 사후 레거시 어워드로 헌액될 것으로 보면 된다. 사실 앞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선수들은 대부분 사후 레거시 어워드로 헌액될 것이다.

크리스 벤와, 잭 갤러허 등과 같이 영구제명되는 경우를 제외하면[77]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할만한 선수는 없다고 보면 된다.

특히 디바들의 경우는 2013년 부터는 매년 최소 한명 이상씩 헌액되는 상황이라 현재 추세대로면 중범죄를 저질러서 영구제명이라도 되지 않는한 대부분은 한명한명이 전부 언젠가는 개인 헌액이 될 상황이며, 개인 헌액이 아니더라도 스테이블 헌액으로 헌액되거나 사후 레거시 어워드로 헌액 되는 것 정도는 누구나 가능할만한 상황이다.

WWE에서의 명예의 전당은 입성자들의 대부분은 메이저리그 같았으면 헌액 후보로 거론도 안되었을 상황인데 "비록 아무리 활약이 크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이런 선수가 WWE에 있었다라는 것을 잊지 말자" 정도의 의미가 큰 걸로 보면 될 것 같다. WWE측에서 나름대로 리스펙트를 해주는 셈인데, 사실 WWE를 거쳐갈 정도면 자버들 조차도 극히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면[78] 하나같이 어지간한 타 단체들에선 메인이벤터급들이라 적어도 레슬러로써는 어디가서 무시받을 수준은 아니긴 하다.

스팅, 커트 앵글, 더들리 보이즈, 제프 제럿처럼 WWE와 TNA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양대 단체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7. 사건 사고

2019년 명예의 전당 하트 파운데이션을 소개한 본인 브렛 하트와 짐 나이트하트의 딸 나탈리아였다. 연설하는 도중 어떤 관중이 나타나 브렛을 링에 올라 습격한다.

2019년 WWE 명예의 전당 하트 파운데이션이 헌액되어 연설하던중 갑자기 정신나간 남자 한명이 브렛을 공격했다...(?)

또한 실제로 우측에 어떤 회색 입은 관중이 계단쪽으로 재빠르게 내려가 링 쪽으로 달려 가는 장면도 있었다.

용의자는 재커리 메이슨(Zachary Madsen)(26세)으로, 브렛 하트가 봉변을 당하자 셰인 맥마흔, 뉴 데이, 드레이크 매버릭, 히스 슬레이터, 잭 라이더 드류 맥킨타이어 등이 달려들어 메이슨을 떼어 내었다. 해당 용의자는 폭행과 무단침입 혐의로 기소될 전망이다. 다행히도 브렛에게는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멀쩡히 연설을 계속해 나갔다.[79] 기사

8. 같이보기


[1] 2024년 빈스가 이런저런 논란으로 인해 WWE 내에서 완전히 나갔기 때문에 2024 HoF부턴 이게 깨질 가능성이 크다. [2] 당시 챔피언 버디 로저스에게 승리하지만 보보 브라질이 버디 로저스가 사타구니에 부상이 있다고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의사가 당시 버디 로저스는 부상이 없었다고 보보 브라질이 챔피언이 됐음을 통보하나 NWA가 인정하지 않았다. [3] 1965년 유콘 에릭이 자살하면서 이 사건이 원인이 돼 자살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실제로는 코왈스키의 신발끈이 에릭의 귀에 걸리면서 일어난 사고였던지라 경기 후 코왈스키가 병원에 문병을 갔을 때도 서로 웃으며 대화했다고 한다. 에릭이 자살한 건 금전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4] 게다가 이들도 하나같이 좋은 경기력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다. [5] 게다가 찌질이 연기력 역시 출중해 WWF시절 주간 쇼였던 Prime Time Wrestling에서 또다른 헌액자인 고릴라 몬순과 공동진행도 맡았었다. 선역이었던 고릴라 몬순과 좋은 궁합을 보여 쇼의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한몫했다. [6] 불행하게도 딸도 2011년 사고로 인해 31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7] 인종 차별 발언으로 명예의 전당을 제외 한 모든 기록 삭제되었으나 2018년 7월 익스트림 룰즈 이후로 복권. [8] 특히 1984년 1월 23일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벌어졌던 챔피언전에서 바로 그 분의 새 챔피언 등극의 제물(?)이었다. [9] WWF가 AWA에서 홀대받은 선수들을 스카우트 해갔는데, 대표적으로 헐크 호건과 더 로드 워리어스가 있다. [10]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들은 거의 대부분 현지에 적응화된 상태라 일본말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11] 아들 마이크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는데, 2012년 마이크도 권총 자살하며 아버지와 똑같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12] 그의 현역시절 경기를 보면 알수 있지만 대단히 위험천만한 경기들이 많다. 특히 ECW는 온갖 흉기들이나 상당히 과격한 경기로 악명높은 프로모션이라 믹 폴리만큼이나 혹사와 학대가 엄청났다. [13] 지금도 밀워키 브루어스 경기 라디오 중계를 담당 중. [14] 무하마드 알리, 제임스 브라운, 밥 딜런 등도 고저스 조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밥 딜런은 자서전에 고저스 조지와의 만남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적었다. [15] 참고로 트리플 H가 슬렛지 해머를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듯이 압둘라 더 부처는 포크를 주로 사용하였고 그를 상징하는 무기가 되었다. 각종 창작물에서 거구의 험상궂은 인상의 캐릭터가 포크를 사용한 비열한 공격을 하는 것은 거의 다 이분의 오마주라 봐도 될 정도. [16] 실제로 오스틴이 타이슨에게 쌍법규를 날린 장면은 당대 복싱의 위상과 맞물려 타이슨을 조금이라도 아는 모든 국가의 스포츠 신문 1면에 실렸다. [17] 최대로 나갔을 때는 무려 700파운드(약 320kg)에 육박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 [18] WWE에서 활동한 시기는 요코주나가 더 빨랐지만 실제로는 리키시가 1살 더 많다. [19]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정적이나 그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이 레슬매니아 경력을 가지고 그를 끌어내리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읽어보면 알 수 있듯 그가 실제로 레슬링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대중에게 알려진 본인의 졸부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해 진행자 역할로 참여한 것에 가깝다. 사실 이 명예의 전당 등극은 캐릭터로서의 등극이 아닌 WWE와 깊은 관계를 가진 유명인사에 대한 보답, 공로상 개념에 가깝다. [20] 단 직접 경기를 한 것은 아니고 두 사람 모두 대타 선수를 지목해 진행하였는데, 트럼프는 바비 래쉴리를 빈스 맥마흔은 우마가를 지정해 패하는 쪽이 삭발을 하는 조건을 걸고 경기를 가졌다. 그래도 아예 들러리로 온 것은 아니고 경기 중에 특별 심판이었던 스티브 오스틴에게 뭐라고 하던 맥마흔에게 스턴을 먹여버리는 인상깊은 장외 싸움이나 경기 종료 후 스티브 오스틴의 스터너를 접수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21] 트럼프와의 친분 이전부터 빈스는 사비로 기부금을 납부하는 등 공화당 지지 활동을 해 왔고, WWE에서 활동한 케인이 공화당 의원으로 활동하거나 헐크 호건, 언더테이커도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는 등 WWE는 공화당의 영원한 동맹으로도 유명하다. [22] 랜디 새비지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테파니 맥마흔과의 스캔들 루머로 인해 사후까지 명예의 전당 헌액이 늦추어졌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23] 2012년 TNA 명예의 전당에 이어 헌액되면서 미국 서열 1,2위 단체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24] 특이하게도 갓파더 이전 기믹인 파파 샹고, 칼리 무스타파 기믹이 아닌 갓파더만으로 헌액되었다. 현재 PG정책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창녀들을 떼거지로 몰고 다니는 유쾌한 포주' 기믹으로 헌액된 건 그의 기믹들 중 가장 호응이 좋았던 기믹임과 동시에 애티튜드 시대의 방향성을 잘 드러낸 선수 중 한 명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25] 미국에서는 서전 슬로터처럼 주로 AWA에서 활동했다. [26] 레이 고디 & 미란다 고디의 아버지. 2001년에 사망. [27] 2012년에 사망 [28] 스눕 독의 명예의 전당 현액에 대해 팬들 중 일부는 작년에 사망한 모터헤드의 보컬 레미 킬미스터를 줘야했다라는 의견이 있는데, 모터헤드는 트리플 H의 "King of kings"와 "The Game" 테마곡과 에볼루션의 테마곡인 "Line In the Sand"을 불렀다. 레슬매니아 무대에서 라이브 무대를 가진 적도 있다. WWE와 트러블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트리플 H 본인이 모터헤드의 굉장한 팬이기도 하니 추후에 헌액될 수도 있다. [29] 참고로 헌액자가 존 시나였는데, 시나가 WWE에 데뷔 당시 첫 상대가 바로 커트 앵글이였다. [30] 제이크 로버츠와는 그의 아내를 두고 싸운 적이 있으며 얼티밋 워리어의 최고의 맞수 중 한 명이다. 릭 루드는 대립 중에 제이크 로버츠의 아내, 그리고 워리어의 얼굴이 그려진 타이츠를 각각 입고 등장했던 적이 있다. [31] 사실 전설적인 태그 팀이긴 하지만 WWF보다는 SMW(스모키 마운틴 레슬링) 등에서 더 활약한 선수들이다. [32] 스팅, 커트앵글에 이은 세번째 WWE, TNA 동시 헌액자. [33] 스팅, 커트앵글, 더들리 보이즈에 이은 네번째 WWE, TNA 동시 헌액자. [34] 영어로 'Hillbilly'라고 하는데 시골 촌뜨기라는 뜻. 국내 팬들에겐 생소한 편인 농부 기믹의 클래식 선수. 국내 팬들에겐 스맥다운5에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나왔던 선수로 그나마 알려져 있다. [35] 본인의 고향인 텍사스에서 열린 2018년 3월 19일 방송분 RAW에서 발표되었다. [36] 다른 선수들 같은 경우 은퇴 → 헌액 → 복귀 이지만 레이는 은퇴도 하기 전에 헌액되었다. 헌액되는 그 레슬매니아에서 갖는 경기가 은퇴 경기라는 추측도 있었으나 경기에서 승리하며 완벽히 현역인 상태로 헌액되게 되었다. [37] WWE에는 한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고 당시 신일본과 제휴했던 WCW에서만 활동했다. 다만 위의 신박한특유의 무빙이나 기술 외에도 북미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캐릭터의 전형을 완성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캐릭터가 바로 그레이트 무타이다. [38] 북미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프로레슬러의 특징인 동양적인 페이스 페인팅, 느릿느릿하면서도 기술 구사시에만 빠른 고유의 동작, 메치기나 서브미션보다는 타격기를 위주로 하는 경기, 그리고 무엇보다 그린 미스트 등을 정립한 게 바로 그레이트 무타이다. 참고로 헌액식에서 그린 미스트를 뿜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퇴장했다. 박수치면서 좋아하는 아스카는 덤 [39] 기존에 헌액된 드류 캐리랑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잘 안알려진 미국 배우이기도 하다. [40] 헌액 소개는 로만 레인즈가 한다. [41] WWF 여성 챔피언 등극 경력과 일본 및 글로벌 무대에서의 활약으로 선정, 소개는 WWF 시절 같이 경기를 가지기도 했던 얼룬드라 블레이즈가 헌액 소개를 맡는다. [42] 헌액 소개는 보 댈러스와 그의 여동생 마이카 로툰다가 맡았으며, 보 댈러스는 본명인 테일러 로툰다로 소개되었다. [43] 브레이 와이어트 보 댈러스의 아버지이다. [44] 마이크 로툰다의 처남으로 2012년에 포 호스맨 멤버로 헌액된 것에 이어 12년 만에 US 익스프레스의 멤버로 다시 헌액되었다. [45] 안토니오 이노키와의 최초의 이종 격투기 경기인 '격투기 세계 제일 결정전'을 치르고, 1984년 레슬매니아 1에서 헐크 호건 & 미스터 T VS "로우디" 로디 파이퍼 & 폴 온돌프 희대의 망경기에 특별 심판을 담당했던 공로로 헌액되었으며 헌액 소개는 언더테이커가 한다. [46] 헌액식 소개는 더 뉴데이(코피 킹스턴, 빅 E, 재비어 우즈)가 한다. [47] 드웨인 존슨의 할아버지인 피터 마이비아의 아내로 북미 프로레슬링 여성 프로모터 선구자로 알려져있으며 드웨인 존슨이 헌액 소개를 한다. [48] 다만 방송에서 직접적으로 데뷔한것은 아니고 방송 외적인 시간을 통해 WWE 선수들과 시간을 가졌다. [49] 안타깝게도 미할렉이 이미 사망하고 난 후여서 미할렉의 아버지인 스티브 미할렉이 대신해서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50] 프리미어리그 경기로 워낙 유명한 ESPN 주최의 스포츠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상 [51] 불굴의 의지와 투지로 스스로 장애를 극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상이다. [52] 현재는 레슬링 시절의 경험을 살려 척추 지압사 제2의 화타 선생?로 전업했고, 간간이 강연을 나가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53] 안타깝게도 이후 로드 알프레드 헤이즈는 은퇴를 선언한 그 해에 교통사고를 당해 괴저로 인해 다리 일부를 절단해야 했고, 그 후 죽을 때까지 휠체어에 의존하고,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되어서, 빈스 맥마흔이 그의 복귀를 지시했어도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54] (1896 - 1963) 1930,40년대 프로레슬러 프로모터로, 2016년 레거시 수상자인 밀드레드 버크의 남편이기도 했다. 실제로 페뷸러스 물라와 더불어 레거시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1950년대, 60년대에 활동했던 여성 레슬러(밀드레드 버크, 주디 그레이블, 준 바이어스, 코라 콤즈)들은 다 이 사람이 키웠다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여성 프로레슬러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여성 프로레슬러들에 대한 성희롱, 성추행을 일상처럼 해댔다는 당대 여성 레슬러들의 자서전 내용이 있는 만큼 윤리성 및 도덕성 결여가 심각했던 프로모터라는 양면성도 가지고 있었다. [55] 1994년 명예의 전당 수상자였던 치프 제이 스트롱보우도 같은 원주민 기믹을 사용하긴 했지만, 이쪽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지만, 와후 맥다니엘은 실제 정식적으로 인정받은 원주민계 아메리카인이었다. [56] 실제로 미스터 후지와는 고등학교 시절 친분이 있었고, 선수 시절에도 그와 함께 태그팀을 이뤄 태그팀 챔피언 자리도 차지하는 등의 콤비네이션을 보여줬다. [57] 그 쓰레기같은 똥 게임을 만들던 LJN에서도 당시 WWF 인기 스타들의 피규어를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SD존스의 피규어도 출시했었다. 자버이고, 이렇다할 전적이 없는 레슬러이지만, 그도 나름대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58] 당시에는 헌터 하스트 햄슬리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었다. [59] 나머지 3명은 밥스 윙고(Babs Wingo), 마르바 스콧(Marva Scott), 케이틀린 윔블리(Kathleen Wimbley)로, 이들은 당대 최고의 여성 프로레슬러 프로모터였던 빌리 울프와 그의 아내이자, 당대 최고의 여성 레슬러였던 밀드레드 버크 사단에 발탁된 것이었다. 가장 먼저 발탁된 사람은 밥스 윙고이며, 에델 존슨이 그 뒤를 이어 2번째로 발탁된 흑인 여성 레슬러였다. [60] 실제로 남부 지역으로 이동 중에는 트렁크에 숨어서 다녀야 했을 정도였다고 하며, 흑인 여성레슬러를 레슬러라기보다는 아이캔디형 눈요기 거리로 보는 시선들이 압도적이었다. [61] 1990년대 후반부터 심부전 판정을 받아 당시에도 무려 두 번이나 시한부 판정을 받은바 있었다고 하며, 그가 결국 2005년 사망하게 된 원인도 심장마비였었다. [62] 심지어 언더테이커가 수련을 받으러 간 첫날, 이전에 언더테이커와 만났음에도 ''너 누구냐?'' 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63] 활동 중 부상이나 사망, 은퇴, 이적, 방출 등등 포함. [64] 이 때문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하는 걸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2023년 하반기에 WWE의 지주회사인 TKO 그룹 홀딩스 수뇌부의 명령에 의해 각본 개입 원천적으로 봉쇄 + TKO의 지분 34.6% 전량 매각하며 회사 내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결국 2024년 1월 말에 추가 폭로 및 증거가 드러나며 그나마 맡고 있던 직함인 TKO 이사회 의장에서도 사임해 현재 WWE에 그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게 된 상태다. [65] 덤으로 이 사태엔 브록 레스너도 연관되어 있는 정황이 발견되었다. [66] 케인배 케인의 별명 빅 레드 머신이 피트 로즈가 포함된 신시내티 강타선의 별명 빅 레드 머신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케인을 띄워주기 위해 등장했다. [67] 사실 2004년에 헌액을 다시 시작한 것도 레슬매니아 홍보 차원에서 한 건데 이게 의외로 반응을 얻자 가치가 높아진 것. 그래서 04-05년에 주요 인물들을 너무 많이 헌액해서 뒤로 갈수록 홍보 효과가 좀 떨어져서 아쉬워했다는 후문이 존재한다. [68] 정말 극적이었던 게 명예의 전당에 이어 레슬매니아 그리고 다음날 RAW까지 3일을 연속 출연해 팬들을 열광케 한 바로 다음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69]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겠다고 했는데 살아있는 본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이보다 뻘줌할 수 없기 때문. 마초맨 랜디 새비지도 WWE 측에선 헌액을 계속 타진했지만, 본인이 거절해 계속 미뤄진 케이스다. [70] 대표적으로 얼티밋 워리어, 스팅, 브루노 삼마르티노 등. 스팅은 WWE와 관계가 안좋았던 건 아닌데 본인이 WWE에 등장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협상이 잘 진행돼서 등장도 하고 헌액도 돼서 나름 잘 된 경우고 다른 두 사람도 오랜 원한도 푸는 등 잘 되긴 마찬가지다. [71] 사실 이미 명전에 헌액됐지만 포르노 계약에, 한참 어린 후배들과 트위터로 설전을 벌이는 등 엉망진창의 삶을 보내고 있는 써니도 아직 제명되지 않았다. 심지어 인종차별 발언으로 크게 물의를 빚어서 제명되었던 헐크 호건조차도 2018년 복권되었다. [72] 상술했듯이 엑스팍은 그와중에 그 다음해에는 nWo 멤버로서 다시 한번 명예의 전당 멤버로 헌액되며, 명예의 전당 최초로 2년 연속 헤드 라이너 헌액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물론, 엑스팍은 차이나에게는 일생 일대의 큰 흠을 안겨준 인물이긴 했지만, 의외로 다른 동료 레슬러들에게는 평판이 좋은 축에 속하는 대단한 아이러니함을 보여주는 인물이긴 하다. [73] 헌액 당시 소개 및 소감을 발표하는 순간에도 에지와 불륜 관계였던 Rated-X 시절의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74] 다만, 팬들이 추측하는 숨겨진 다른 이유들도 거론되는데, 우선 남편인 브록 레스너의 반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브록 레스너는 WWE에 복귀해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나, 아내인 세이블은 이벤트성으로라도 아예 등장하지 않고, 대외 활동도 하지 않는 철저히 야인으로서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는 남편 브록 레스너가 세이블이 굳이 WWE와 엮이는 모습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또 다른 사유로는 상술했듯이 세이블이 워낙 다른 동료들과 마찰이 잦았기 때문에 그녀를 명예의 전당 멤버로 추대하려는 동료, 선후배 레슬러가 전혀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후술하겠지만, 토리 윌슨의 경우, 세이블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아이캔디형 스타였기에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헌액하기 위해 소개자로 나온 사람이 같은 아이캔디형 스타 스테이시 키블러였고, 알려져 있다시피 토리와 스테이시는 현역 시절이나 지금도 서로가 굉장히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75] 사실 메이저리그의 연간 로스터 숫자가 2021년 기준으로 WWE, ECW, WCW중 한곳에라도 로스터로 있어본 모든 레슬러들과 매니저들, 인터뷰어들, 아나운서들을 다 합친거 보다도 많긴하다. [76] 다만 아무래도 프로레슬링 역사도 야구 못잖게 길고 사망했다고는 해도 헌액될 레전드들이 많이 있는 건 사실이다. 당장 에이브러헴 링컨부터 헌액되어야 할 지도. 또, 사실 프로레슬링은 비교적 명예의 전당을 운용한 것이 다른 종목에 비해 늦은 것도 있어서 많은 레전드들을 살아생전에 헌액하려 한 것도 있다고 할 수 있다. [77] 전자는 가족과 어린아이를 중요시하는 북미지역에서 최악의 살인사건을 일으켜서, 후자는 스피킹 아웃 때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사실이 밝혀져 2020년 6월 20일자로 WWE에서 방출되었으며 WWE 동창생 로스터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등 WWE에서의 기록이 완전히 말소되었다. [78] 여기서 말하는 레슬러들은 인디단체에서도 자버 역할을 맡은 경력이 많은 콜린 댈러니, 눈지오, 셰넌 무어, 디바리 등을 의미한다. [79] 난입한 재커리를 퇴장한 후, 드레이크가 마이크에 대고 "저 사람을 신경쓰지 마시고 계속 연설을 이어갑시다!"라고 말해 관중들은 점점 환호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