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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 | National Wrestling Allia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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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ational Wrestling Association와 National Wrestling Alliance 두 단체를 가리키는 말.전자의 NWA는 NBA(National Boxing Association)의 레슬링 부문으로, 1930년에 NBA에서 독립하였다. 명목상은 각 주의 체육협회에 의해서 운영되었으며 1960년대 까지 존속하였다. 흔히 프로레슬링계에서 NWA라고 하면 후자를 가리킨다.
한때 미국 프로레슬링을 대표하는 메이저 단체였으나[1] NWA-WCW 이후에는 그저 마이너 단체 중 하나란 인식이다. 애초에 WWE, AWA 모두 NWA의 가맹 단체로 있다가 독립하였고 WCW는 NWA의 대표를 지낸 짐 크로켓의 단체를 흡수하며 창단하였다. TNA도 자신들의 월드 챔피언이 아닌 NWA 챔피언십을 내세워서 창단하였다.사실상 현대 미국 프로레슬링의 모태와도 같으며 협의체,단체,프로모션,단체 식으로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 역사
2.1. 1940년대
NWA가 탄생한 1948년 이전까지 미국에는 수 많은 프로모터들과 단체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자기 단체에 각각 "세계" 챔피언을 지정한 채로 상호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다만 그래도 서로의 지역구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암묵의 룰은 지키는 중이었는데, 이런 상황속에서 1948년 중서부의 프로모터였던 폴 '핑켈' 조지의 주장과 여러 유명 프로모터들의 동조로 NWA 체제를 출범하고, 유일하게 허용되는 세계 챔피언으로 그 자리에 오늘날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 테즈를 앉힌다.[2][3][4]2대 NWA 월드 챔피언 루 테즈
새로 태어난 NWA의 규칙은 간단했는데 상호 상업지역을 존중하고, 만약 체제에 가입하지 않은 새로운 프로모터가 끼어들면 담합을 통해 묻어버리고, 해당 프로모션의 흥행과 방영은 오직 그 지역에서만 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월드 챔피언인 선수는 소속 단체를 넘어서 NWA에 가입된 모든 단체를 돌며 경기를 가져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또한 단체들간에 상호 선수를 빌려주면서 왕래를 하도록 하였다.[5]
2.2. 1950~1960년대
새롭게 만들어진 NWA의 중심은 월드 챔피언인 루 테즈가 속한 샘 머치닉의 세인트 루이스 레슬링 클럽이었다. 그의 주도 아래 NWA가 움직였는데, 샘 머치닉은 최대한 루 테즈를 장기 집권 시켜 자신의 힘을 더욱 키워나갔다. 하지만 루 테즈가 7년 째 장기 집권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목소리들이 터져나오자, 캐나다의 휘퍼 빌리 왓슨이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올랐지만 반년만에 다시 루 테즈가 타이틀을 탈환한다.루 테즈의 장기 집권에 불만을 가진 미네소타의 번 가니에는 당시 루 테즈와 함께 전국구적인 인기를 누리던 선수였고, 그러므로 자신이 월드 챔피언에 오르기 좋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정치 싸움에 패배해 실패한다. 이런 불만 속에서 캐나다의 프로모터인 에디 퀸은 자기 단체의 에이스인 에두아르도 카펜티어가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게 하는데, 이를 기회로 NWA 탈퇴 선언을 하게 된다. NWA는 이에 당황해 바로 카펜티어의 기록을 취소하고 루 테즈를 다시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앉혔지만 에디 퀸은 이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NWA에 불만을 갖고 있던 여러 프로모터들과 챔피언전을 벌이며 모두 패배해 그들의 단체 에이스를 각각 챔피언에 오르게 한다.
AWA의 번 가니에와 WWWF의 빈스 맥마흔[6] 등 NWA에 불만을 느낀 프로모터들은 NWA를 탈퇴했지만 당장은 NWA를 이길 수 없어서 한동안 NWA와 관계를 유지하며 선수 왕래를 하고, 자신들의 지역구를 존중받았다.
2.3. 1980년대
당대 최고의 레슬러 NWA 소속 월드 챔피언인 릭 플레어와 할리 레이스, 그리고 WWWF/WWF 챔피언인 밥 백런드. 당시에 아나운서이자 향후 단체의 회장이 되는 빈스 맥마흔이 NWA 선수를 인터뷰하는 게 인상깊다.
1980년대 들어서 방송 산업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고, 그만큼 규모는 더욱 커지게 되었지만 재능있는 로스터는 NWA가 많았으며 전국구로 가맹점이 있었다. 영상의 보는 것 같이 우호관계였으나 빈스 맥마흔 시니어 사후 이런 상황에서 빈스 맥마흔은 헐크 호건을 앞세워 엔터테인먼트한 모습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시작한다. 또한 방송 시스템이 발전함에 따라 월드 챔피언이라고 해서 굳히 세계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됬었고 NWA 가맹점의 프로모터들은 자신만의 월드 챔피언을 갖고 싶어서 탈퇴 수순을 계속 밟는 시점까지 오게 된다.
위기를 느낀 NWA와 AWA의 프로모터들은 프로레슬링 USA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대항을 시도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고, 결국 WWF의 힘 앞에 무릎꿇고 말았다.[7] 그리고 빈스 맥마흔은 당시 TBS에서 방영 중이던 GCW를 매입해 방송 영역을 더욱 확장하려 시도했는데, 당시 시청자들의 반발과 다른 프로모터들의 견제 등으로 인해 잠시 주춤하게 된다. WWF가 잠시 주춤하던 사이 프로모터들은 노스 캐롤라이나의 짐 크로켓 프로모션을 통해 대항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하고 사실상 NWA가 붕괴하기 직전에 다다른다.
그러나 이후 1988년 TBS의 사장인 테드 터너가 직접 나섰고 짐 크로켓 프로모션을 인수해 WCW로 개명한 다음 NWA를 흡수해 숨을 돌리게 된다. 한편 WCW의 탄생에 반발하던 프로모터들은 프리츠 폰 에릭의 WCCW로 뭉치게 된다.[8]
2.4. 1990년대
WCW에 자리잡게 된 NWA는 WCW에서 NWA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의 결정을 다루게 되었고, 당시 WWF에서 발생한 스테로이드 파동과 프로레슬러들의 성추문 스캔들로 대량의 WWE 출신 선수들이 유입되면서 힘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결국 1993년에 WCW도 NWA에서 탈퇴한다.
WCW에게서 버림받고 새롭게 눈독을 들이게 된 새로운 단체는 필라델피아의 이스턴 챔피언십 레슬링, ECW였다. ECW는 폴 헤이먼의 주도로, 소수지만 충직하고 열광적인 매니아들을 위한 단체였다. NWA는 하드코어 레슬링을 구사하는 그들을 무시했지만,[9] WCW가 떠난 이래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방송사와 계약 중인 단체라는 점을 높이 사 제휴한다. 1994년 8월 27일에 ECW의 주도로 개최된 이벤트에서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결정 토너먼트전을 개최하는데, 결승전에서 셰인 더글라스가 승리한 후 대뜸 NWA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바닥에 던지고는 "NWA는 죽은 조직이며 오직 ECW 타이틀만이 진정한 월드 챔피언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동안 무시받던 ECW의 폴 헤이먼, 토드 고든, 셰인 더글라스가 짜고친 스크류잡으로, NWA는 또다시 버림받는다. 이스턴 챔피언십 레슬링은 이 사건과 동시에 단체이름을 익스트림 챔피언십 레슬링으로 바꾼다. ECW 전성기의 시작이었다.
1998년에는 WWF와 제휴를 하여 짐 코넷을 주축으로 NWA 북미 헤비급 챔피언십과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 벨트가 등장하였으나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 경기는 열리지는 않았다.
2.5. 2000년대
힘을 잃은 채로 지내던 NWA는 제프 제럿의 단체인 TNA를 주목하고 제휴한다. 2002년에 탄생한 TNA는 기존 WWE에서 보지 못했던 실력자들을 불러모으며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TNA가 새로운 주력 프로모션으로 낙점된 후 비록 말이 많았지만 사장인 제프 제럿이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장기 집권한다. 하지만 2006년 이후 본격적인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TNA도 NWA가 필요없어졌고, 크리스챤 케이지를 마지막 챔피언으로 하여 NWA를 탈퇴하게 된다.
WWE RAW에서 릭 플레어가 숀 마이클스와 대립시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을 매고 등장. WWE가 NWA와 다시 제휴를 맺고 현 챔피언이 릭 플레어인가 잠시 혼동을 주었지만 단순 전 챔피언십이라는 소개일 뿐 다시 제휴로 이어지진 않았다.
2천년대 후반에는 ROH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2018년 현재 WWE 프로듀서인 애덤 피어스가 챔피언으로서 장기 집권을 했다.
2.6. 2010년대~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신일본 프로레슬링 덕분에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데, 미국의 NWA 가맹 단체는 대부분 몰락했기에 신일본이 사실상 가장 강하고 자금력 있는 단체라서 그 입김이 강한 편이었다.[10] 브루스 샤프는 본래 NWA의 변호사였으나 막장 상황인데도 여전히 NWA 내부에서 권력 싸움으로 삽질만 일삼자 자신이 직접 인수해서 회장직을 맡았다. 브루스 샤프 회장 체제 하에서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협력하고, 라이브러리 네트워크도 출범하는 등 나름 예전에 비해서는 좋아졌다.
2017년 5월 1일에 락그룹 스매싱 펌킨스의 멤버인 빌리 코건이 NWA를 인수하여 2017년 10월 1일부터 가맹 단체와의 계약을 모두 해지하고 신체제 확립을 선언했다. 이와함께 기존의 수많은 벨트들을 모두 폐지시키고 새로운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닉 앨디스[11]를 내세우며 기반 다지기에 전념하고 있다. 동시에 NWA 공식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닉 앨디스가 전세계를 순회하며 챔피언 벨트를 방어하는 모습과 그런 닉에게 도전장을 던진 레슬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 나름의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있다. 2018년에는 콜트 카바나, 플립 고든, 코디와 같은 ROH 소속 선수들과의 경기를 주선하며 ROH와 연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영 벅스와 코디가 주최하는 ALL-IN 흥행에도 참가했다. 기존에 WWE에서 시원치 않은 대접을 받다가 방출당한 WWE출신 레슬러들도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며 커리어를 만들기도 한다.
2018년 10월 21일 출범 70주년 흥행을 PPV로 개최하게 되었으며, 이날 NWA 내셔널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부활시킨다.
2019년 10월 18일, PPV인 Into the Fire가 3시간만에 매진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2020년에 들어서도 TV계약이 성사되지 못해 전문가와 팬들의 우려가 나오던 중에 2020년 6월, 부사장인 데이브 라가나가 "스피킹 아웃"캠페인으로 고발되자 사임되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가 장기화된 이유로 테이핑 제작이 무기한 중단되면서 고위 스태프들과 계약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에 2020년 7월, 레이븐은 한니발 TV와의 인터뷰에서 빌리 코건이 인수 초기와 다르게 의욕을 잃었다는 얘길 단체 내 선수들에게 들었다면서, 그가 NWA를 운영하는데 환멸을 느끼는 중이며 단체운영을 끝내고 싶어한다고 저격을 하게 되자, 이에 빌리 코건이 공개적으로 그럴 생각이 없다고 반박하는 일이 생긴다.
3. 위클리쇼
3.1. NWA 파워
2019년 10월 8일 NWA의 새로운 위클리쇼인 NWA Powerrr의 첫 에피소드가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고전적인 스튜디오 레슬링 형태로 방영되었다. 방송 시간은 1시간이며 유튜브에서 무료 시청이 가능하다. 공개 초기에는 괜찮다는 평가가 많다. 고전적인 올드스쿨형 쇼이기도 한데 경기 퀄리티도 괜찮은 편이며 1시간 방송이라 보기에 부담되지도 않는다. 더불어 Powerrr가 끝나자 마자 유튜브에 AEW 다크가 공개되기 때문에 매주 화요일마다 괜찮은 퀄리티의 레슬링 쇼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셈이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2021년 2월말 FITE TV측과 스트리밍 계약을 맺으면서 유튜브에 올라온 에피소드가 모두 삭제되었고, 2021년 3월 23일부터는 FITE TV를 통해 시즌3로 다시 방송이 시작된다.
2023년 11월 말부터는 유튜브가 아닌 The CW 어플을 통해 중계된다.
3.2. NWA USA
2022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방영되는 NWA의 두번째 위클리쇼로, 주로 주니어 헤비웨이트 디비젼 경기 위주로 구성된다.
4. 과거의 프로그램
4.1. NWA 쇼크 웨이브
2020년 12월 1일부터 프라임타임 라이브 주간 PPV 하이라이트 NWA Shockwave가 유튜브를 통해서 방송된다.
5. 자체 방송국 설립
WWE 네트워크, 신일본 월드, 임팩트 플러스와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의 명경기 영상들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가능한 자체 인터넷 방송국 NWA 클래식스를 2015년 7월에 개국했다. 그러나 경영권이 빌리 코건으로 넘어가는 와중에 영상 저작권 이전에 합의가 안되었는지 2017년 9월 30일 부로 폐쇄되었다.2018년 2월, 당시 챔피언 닉 알디스를 통해 NWA 네트워크 창설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확한 개국 일시에 대해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6. 기타
시스템 상으로는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본부를 정점으로, 각 지역 프로모터의 개인 가맹에 의해서 구성되어있었다. 가맹을 인정받으려면 심사를 받아야 하고, 연 1회 총회 외에도 필요에 따라서 임시 총회나 임원회가 열린다.대한민국에서는 김일이 프로모터로서 가맹하고 있었다.
역도산의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는 1960년 후반에 가맹하여 붕괴할 때까지 멤버였다. 자이언트 바바는 미국 원정 때부터 NWA와 관계가 강하여[12] 전일본 프로레슬링 창립 직후에 이미 일본대표로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가 가맹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맹이 인정되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도 가맹은 인정되었지만 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실행할 수 없는 등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비해서 대우가 낮았다. 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에는 NWA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경기가 여러번 열리면서 이 시기에 신일본 소속인 텐잔 히로요시 및 코지마 사토시가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또 NWA 월드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인 체이스 오웬스가 참전하며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인 수신 선더 라이거 및 타이거 마스크 IV가 NWA 월드 주니어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차지한 적 있다.
NWA에 가맹하면 NWA에서 인정하는 챔피언을 초빙할 수 있으며, NWA에 가맹한 다른 프로모터로부터 외국인 레슬러를 초빙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기본적으로 1지구 1프로모터에 한정되어 1지구에 2명의 프로모터는 가맹할 수 없다. 또한 가맹 프로모터가 소속한 단체의 챔피언 타이틀에 '세계(World)'를 넣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빌리 코건이 NWA를 사들인 이후에는 기존의 가맹 시스템을 폐지하였으며 WWE, TNA, ROH에서 각본가를 맡았던 데이비드 라가나,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닉 앨디스와 함께 'Ten Pounds of Gold'라는 이름의 소규모 흥행을 진행하고 있다. 주로 중소규모 인디 단체흥행에 끼어 경기를 갖는 방식으로 중국에서도 경기를 갖는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7. 챔피언십
NWA는 각 단체들의 가맹으로 만들어진 연합으로 NWA 가맹단체는 단체 챔피언 벨트에 NWA란 이름을 넣을 수 있었다. 때문에 각 국가, 지방마다 굉장히 많은 수의 NWA 챔피언 타이틀이 만들어졌으나 NWA 사무국은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는 타이틀만에 "월드"란 이름을 붙이며 NWA 내 최고 위상의 월드 타이틀로 인정했다. 2017년 빌리 코건이 NWA를 인수한 이후에는 모든 제휴 단체와 NWA 제휴를 해지하여 과거의 NWA 타이틀들은 전부 폐지되었으며 공식 타이틀 역시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제외하곤 모두 공석처리했다. 여기에는 NWA 공식 타이틀만 표기한다.출범 70주년 PPV에서 NWA 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NWA 위민스 챔피언의 주인공이 가려진다.
2019 크로켓컵 PPV에서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도 부활된다.
7.1. 현행 타이틀
- NWA 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14] - 밈스
- NWA 월드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 알렉스 테일러
- NWA 월드 위민스 텔레비전 챔피언 - 빅 마마
8. 현재 SLE [17]
- 패러노이야 2024
- 하드 타임스 2024
9. 과거 PPV
- 스타케이드 - WWE의 레슬매니아와 동급의 초대형 PPV로 NWA를 거쳐 WCW의 PPV가 되었으며, WCW 파산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가, 2017년 WWE 스맥다운 브랜드 하우스 쇼로 부활.
-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 - NWA와 WCW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의 PPV였으며 WCW 파산과 함께 사라졌다가 2004년 WWE PPV로 부활하여 2009년까지 진행.
- NWA 70주년 흥행
- 크로켓 컵 2019
- 인 투 더 파이어 2019
- 하드 타임스 2020
- 프라임 타임 라이브 - 과거 임팩트 레슬링이 2002년 6월부터 2004년 9월에 하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주간 PPV이다.
- 백 포 더 어택 2021
- 웬 아우어 쉐도우즈 폴 2021
- 엠파워 2021 - WWE의 에볼루션 PPV와 똑같은 여성 선수만 출전하는 PPV
- NWA 73 - NWA 창설 73주년 기념 PPV
- 어웨이즈 레디 2022
- NWA 74 - NWA 창설 74주년 기념 PPV
- NWA 75 - NWA 창설 75주년 기념 PPV
10. 역대 별점 5성 이상 경기
레슬링 옵저버 선정 5성 경기 | ||
1986년 |
2월 14일 배틀 오브 더 벨트 II |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배리 윈덤 vs 릭 플레어 |
1986년 |
4월 19일 짐 크로켓 시니어 메모리얼 컵 1986 |
케이지 매치 바디 풀턴 & 타미 로저스 vs 시퍼더 버치 & 시퍼더 루크 |
1987년 |
1월 20일 MACW |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배리 윈덤 vs 릭 플레어 |
[1]
사실 엄밀히 말하면 단체가 아니라 프로모터 간의 협의체였지만.
[2]
사실
루 테즈(Lou Thesz)는 2대 챔피언이고, 초대 챔피언은 오빌 브라운(Orville Brown)이다. 하지만 오빌 브라운이 심각한 부상으로 은퇴를 하면서 대신 챔피언이 되었다.
[3]
WWE도 비슷하게 당대 가장 인기높던 레슬러
버디 로저스를 초대
WWE 챔피언으로 앉혔으나 그 또한 부상으로 물러나고
브루노 삼마르티노가 2대 챔피언으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4]
다만 오빌 브라운은 상당 기간 동안 챔피언 벨트를 갖고 있어서 바지 챔피언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부상 은퇴만 아니었으면 그리 쉽게 이름이 잊혀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버디 로저스는 WWWF(현 WWE) 초대 챔피언이긴 해도 거의 일주일 정도밖에 벨트를 보유하지 않았고 그것도 그냥 벨트를 수여받은 것에 불과했다. 즉, 버디 로저스는 이전의 명성만으로 벨트를 수여받은 확고한 바지 챔피언이었던 것.
[5]
물론 신규 단체가 NWA에 가입하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자이언트 바바가 NWA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인맥을 쌓고 프로모터 자격도 따내면서, 이로 인해 당시의
전일본은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들을 가장 잘 데려오는 단체가 되었다.
[6]
우리가 아는 빈스 맥마흔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빈스 맥마흔이 빈스 맥마흔 시니어로부터 WWE를 물려받은 것은 1982년부터였다.
[7]
당시 WWF는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을 중심으로 북부 미국과 캐나다를 아우르던 단체였다.
[8]
다만 프리츠 폰 에릭은 빈스 맥마흔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악덕 프로모터였다보니 나중에는 결국 망하게 된다.
[9]
다만, 이 당시 ECW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하드코어 노선만을 강조하진 않았다. 루차 리브레와 하이 플라잉 레슬링 등 다양한 스타일의 경기를 다루었는데, 후에 WWF와 WCW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테크니션들을 모조리 빼가자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하드코어 스타일이었다. 다소 부족한 기술로도 관중들을 열광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기 때문.
[10]
다만, 신일본이 NWA의 가맹단체였던 건 2010년까지로, 2013~2015년은 가맹단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일본의 이벤트에서 타이틀전이 치러질 정도로 NWA의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았다.
[11]
TNA에서 매그너스로 활동했었다.
[12]
세 번이나 NWA 챔피언에 올랐으며, 전일본의 메인 타이틀로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벨트를 사용하였다. 해당 벨트는 나중에 삼관 챔피언의 일부가 되었다.
[13]
한때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었던 타이틀로,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인 채로 릭 플레어가
WWF로 이적할 때 WWF는 진짜배기 월드 챔피언이 이적해온다고 홍보할 정도였다. 이전에
할리 레이스가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인 채 WWF로 오게 하려고 빈스 맥맨이 물밑 작업을 했으나, 할리 레이스는 도의에 어긋난다며 타이틀을 잃고 WWF로 왔다. 90년대 이후로 그 가치가 상당히 하락했지만 어지간한 인디 타이틀보단 높은 위상을 가진다.
[14]
1986년에 NWA US 챔피언십과 통합되어 사라졌는데, 해당 벨트는 현재
WWE U.S 챔피언십으로 이어지고 있다. 1997년에 한번 부활하였으나 2017년 빌리 코건 체제에 들어서며 다시 봉인되었다. 2018년에 다시 부활하였다.
[15]
WWE 위민스 챔피언십의 시초다.
[16]
NWA 미드 애틀란틱 텔레비전 챔피언십, W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십으로 불린 적이 있으며, NWA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십이라는 명칭은 35년만에 다시 사용하게 된다. 2020년 1월 부활 확정. 맥스 더 임페일러가 남성 & 여성 챔피언을 통합하면서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도전 및 차지할 수 있는 타이틀이 되었다..
[17]
시그니처 라이브 이벤트의 약칭으로,2024년부터 PPV 대신 사용하는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