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13:36:38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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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문서
핵심 인물 구단주 정용진대표이사 김재섭단장 김재현감독 이숭용2군 감독주장 김광현
구단 세부정보 SK 와이번스 (2000~2021) SSG 랜더스 (2021~)
경기장 1군 인천 SSG 랜더스필드2군 강화 SSG 퓨처스필드
이전 경기장 숭의야구장 SK 드림파크 송도LNG야구장
건설 예정 경기장 청라 돔 야구장 (가칭)
주요 문서 신세계그룹 역사 선수단 등번호 유니폼 응원가 2군 사건·사고 관련 기록/SK 관련 기록/SSG 가을슼 흥참동 스타 플레이어 쓱나쌩 · 쓱상바 클럽 벌떼야구 불타는 그라운드
웨시퍼 서태훈 응원단 최신맥주 쓱튜브 SSG 랜더스 갤러리
라이벌전 경인 시리즈 항구 시리즈 수인선 시리즈
우승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2007년 2008년 2010년 2018년 2022년
2024 시즌 2024년 스토브리그 시범경기 3~4월 5월 6월 7월 8월 9~10월
2025 시즌 2025년 스토브리그 시범경기 3~4월 5월 6월 7월 8월 9~10월
틀 문서
역대 시즌 단장 감독 주장 응원단장 장내 아나운서 프런트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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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LIMITS, AMAZING LANDERS
세상에 없던 프로야구단의 시작! SSG 랜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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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svg
<colbgcolor=#ea002c><colcolor=white> SK 와이번스
SK Wyverns
창단 2000년 3월 31일([age(2000-03-31)]주년)
법인 설립 2000년 3월 22일([age(2000-03-22)]주년)
법인 매각 2021년 3월 5일[1]
법인명 에스케이와이번스㈜[2]
상장 유무 비상장기업
기업 규모 대기업
구단 사무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618 ( 문학동)[3]
구단명 변천 SK 와이번스 (2000~2020)
SSG 랜더스 (2021~ )
모기업 SK텔레콤
연고지 인천광역시 (2000~2020)
영구결번 26 박경완
홈구장 숭의야구장 (2000~2001)
인천SK행복드림구장 (2002~2020)[4]
2군 구장 숭의야구장 (2000, 2007~2008)
SK 드림파크 (2001~2006)
송도LNG야구장 (2009~2014)
SK 퓨처스파크 (2015~2020)
첫 경기 2000년 4월 5일 vs 삼성 라이온즈 ( 시민)
마지막 경기 2020년 10월 30일 VS LG 트윈스 ( 문학)
마스코트 아테나와울
키트 스폰서 다이나핏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X Corp 아이콘(화이트).svg
매각 당시의 구단 경영진 (2021년)
구단주 최창원
사장 민경삼
단장 류선규
감독 김원형
주장 이재원
KBO 한국시리즈 우승 (4회)
2007년, 2008년, 2010년, 2018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3회)
2007년, 2008년, 2010년
한대 클럽 챔피언십 2010년
포스트시즌 진출 (12회)
한국시리즈 2003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8년
플레이오프 2003년, 2009년, 2011년, 2012년, 2018년,
2019년
준플레이오프 2003년, 2005년, 2011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2015년, 2017년
프랜차이즈 구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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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47725><colcolor=white> 최고 승률 <colbgcolor=white,#191919><colcolor=black,white> 0.659
2008년 126경기 83승 43패
최저 승률 0.338
2000년 133경기 44승 3무 86패
최다 승 88승
2019년 144경기 88승 1무 55패
최다 패 92패
2020년 144경기 51승 1무 92패
최다 관중 1,069,929명
2012년[5]
최소 관중 84,563명
2020년[6][코로나19]
최고 FA 계약 6년 106억원
2019년 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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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내용
2.1. 색상 일람2.2. 역대 구단 BI2.3. 역대 마스코트
3. 팀 특징4. 팀의 역사5. 신세계그룹으로의 매각 (2021)6. 주요 기록
6.1. 역대 감독6.2. 시즌별 일람6.3. 역대 개인 성적
6.3.1. 통산 성적6.3.2. 단일 시즌
6.4. 역대 유니폼6.5. 관련 기록
7. 선수단
7.1. 영구결번7.2. 임시결번7.3. 프랜차이즈 스타7.4. 은퇴식
8. 홈구장9. 논란 및 사건 사고
9.1. 인천 야구 정통성 논란9.2. 프런트와의 갈등9.3. 사건 사고
10. 기타11. 매각 당시 지역 연고 학교12. 응원
12.1. 응원단12.2. 응원가12.3. 응원문화
12.3.1. 연고지 지명 강조 응원구호의 원조12.3.2. 적극적인 응원유도
13. 네임드 팬14. 같이 보기1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 ★ ★ ★
패기의 SK! 승리의 와이번스!
2000년 창단 당시부터 유지해 온 구단 공식 슬로건

SK텔레콤이 운영하고 2020 시즌까지 존재했던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으로 SSG 랜더스의 전신.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홈구장은 미추홀구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SK행복드림구장이다.

2000년 3월에 창단했으며 2020년 기준 창단 20주년을 맞이했었다. 2018년에 창단 19년차에 접어들면서 1982년부터 1999년까지 18년간 인천에 있었던 삼청태현을 제치고 인천에 가장 오래 연고를 둔 프로야구단이 되었다.[8] 모기업은 SK, 구단주는 최창원.[9]

21년의 역사 중에 12번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8번의 한국시리즈 진출,[10]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KBO 리그의 신흥 강호 구단으로 역대 한국시리즈 승률 3위와 KBO 포스트시즌 승률 2위 및 6년 연속 KBO 한국시리즈 진출 등[11] 가을 야구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와이번(wyvern)은 서양 문화에 등장하는 비룡으로 몸에 날개가 달려 있고 화살촉 모양의 꼬리가 달렸다고 한다. 과거 MBC 청룡의 마스코트였던 동양 문화 속의 상상 동물 과는 다소 다르다. 여기저기서 상징으로 널리 쓰이는 드래곤, 용에 비해 판타지 장르가 아니면 잘 등장하지 않아서 인지도는 낮은 편. 미국인 중에도 이 단어를 모르는 이들이 꽤 많았는데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으로 인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개막이 지연되고 그에 대한 대체재로 KBO 리그가 미국으로 생중계될 때 '와이번스'라는 구단 이름이 알려지자 저 단어는 생소해서 무슨 뜻이냐고 묻는 반응이 많았다.

2021년 신세계 그룹 이마트에 매각되어 SSG 랜더스가 되었다. 이후 역사는 해당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2. 상세 내용

창단 순서로 따졌을 때 KBO 리그의 아홉 번째 구단이다. 2021년 기준 감독은 김원형으로, 역대 감독 계보는 강병철(2000~2002)[12] - 조범현(2003~2006) - 김성근(2007~2011)[13][14] - 이만수(2012~2014) - 김용희(2015~2016) - 트레이 힐만(2017~2018)[15] - 염경엽(2019~2020)[16][17] - 김원형(2021) 이다.

사실 영어 발음으로는 '와이번'가 맞지만, 구단은 '와이번'라고 불러줄 것을 권하고 있다. 따라서 'SK 와이번즈'라고 쓰면 틀린 표현이다. 다만 외래어 표기법은 와이번스다. /z/로 발음되어도 s로 끝나면 '스'로 쓰게 되어 있으니까. 같은 맥락으로 KIA 타이거즈도 '기아'라고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치 않으며[18] 타이거스가 아닌 타이거즈가 정식 명칭이다.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는 '타이거즈'라 불리는 걸 원치 않고 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역시 타이거즈라고 밝히지 않고 타이거스라고 한다. 즉, 각 팀의 영문 표기와 상관없이 자국에서 사용하는 발음을 정식 명칭대로 불러줘야한다.

상징 마스코트는 ' 비룡\ Wyverns]'. 대표 응원가는 ' 연안부두'. '비룡'이 된 이유는 연고지인 인천에 '비룡'의 이름을 딴 것이 많기 때문. 옛 용정리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말이 있어 '비룡리'로 불렸다가 이게 '독정리'와 합쳐서 '용정리'가 되었고, 광복 후에는 현재의 ' 용현동'이 되었다. 인하대학교 캠퍼스에 비룡탑이 있고 인하대역 인근에 비룡삼거리가 있는 것도 이 지역의 원래 이름이 비룡리였기 때문이다.[19]

과거 야구 갤러리에서는 구단을 부를때 슼,[20]슼튜브가 붙은 것이 대표적 사례.] 스크, 주유소[21] 정도의 단어를 썼다. 2008년 이후에는 성적이 좋을 때만 생기는 전형적인 양산팬들 때문에 개념팬들까지 [22]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2015년까지의 삼성, 두산과 함께 한국시리즈 우승후보로 빠지지 않는 팀이고 플레이오프 진출은 2016년과 2017년을 제외하곤 늘 해왔던 팀이라 가을 야구 전문 구단다운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2000년 팀 창단 이후 2020년까지 21번의 시즌 동안 SK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던 해는 2000, 2001, 2002, 2004, 2006, 2013, 2014, 2016, 2020년 등 총 9번이다. 그나마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던 꼴찌팀을 새로운 팀으로 다져가던 과정이었기에 가을야구에 나가지 못했던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4번( 2007년, 2008년, 2010년, 2018년) 하였는데 준우승은 4번( 2003년, 2009년, 2011년, 2012년)이나 하였다. 특히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KBO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SK와 삼성, 두산이 세운[23][24]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은 현재까지 KBO 리그 단일 구단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출전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25] 하지만 두산이 2021년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단일 구단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출전 기록은 두산 단독으로 가져갔다.[26]

2007년 2008년에 한국시리즈를 연이어 우승하며 역대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룬 4번째 구단이 됐다.[27] 또한 2008년에는 126경기 체제 기준 페넌트레이스 시즌 최다승[28] 기록을 수립했고 2009년 8월 25일 문학 두산전부터 2010년 4월 2일 문학 한화전까지 무려 22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현재까지 KBO 리그는 물론 아시아 프로야구 리그 사상 단일 구단 최다 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29] 국내 최다 프로 연승 기록도 이거다.

올스타전에서는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kt wiz와 더불어 드림팀에 속했으며 이는 후신인 SSG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2015 시즌 이전까지는 '동군'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연고지가 한반도 서쪽에 자리잡은 인천광역시임에도 동군으로 분류된 까닭은 빙그레 이글스 창단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의 성적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에 빙그레를 서군에 넣었고[30] 쌍방울이 창단될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동군에 넣은 게 쌍방울 해체 후에도 바뀌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이후 창단된 NC 다이노스도 지역균형 문제로 연고지 위치와는 맞지 않는 서군에 배치되었는데[31] 이런 사례가 자꾸 쌓이면서 오해가 많았는지 2014년 시즌을 끝으로 사라지고 2015년부터 드림 올스타(구 동군)와 나눔 올스타(구 서군)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소속 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kt의 경우 2015년부터 리그에 참여했기에 명칭과 연고지 위치의 괴리 문제는 전혀 겪지 않았다.

2.1. 색상 일람

  • 2006년 CI 변경 이후로는 SK스포츠 소속팀들의 상징색은 모두 동일한 빨강-주황 컬러를 사용한다. 즉 여기 있는 색상값은 SK스포츠 산하 팀들이 모두 공유하는 색상이라는 뜻이 된다.
파일:skwyverns_top_emblem.png SK 와이번스의 색상 일람
상징색 Pantone CMYK RGB
( 헥스 코드)
Red Pantone 186c C0 M100 Y81 K4 R234 G0 B44
(#ea002c)
Orange Pantone 158c C0 M61 Y97 K0 R255 G122 B0
(#ff7a00)
Pantone 137c M45 Y97 K4 R255 G140 B10
(#ff8c0a)
Black Pantone Black 6c K100 R0 G0 B0
(#000000)
Gray Pantone Cool Gray 6c K35 R166 G166 B166
(#a6a6a6)
Pantone Cool Gray 2c K10 R230 G230 B230
(#e6e6e6)
Gold Pantone 873c (Alternate Color)
( Pantone값만 있음)
Silver Pantone 877c
Beige Pantone 468c

2.2. 역대 구단 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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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워드마크/심볼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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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상징색은 파란색[32](2000년~2005년) - 빨간색(2006년~2019년) 순이다. 팀의 상징색이 이렇게 바뀐 것은 팀의 모기업인 SK의 역사와 연관이 깊다. 창단 첫 해인 2000년부터 2005년까지 SK의 CI 색상은 파랑색이었고 자연스럽게 야구단의 상징색도 파랑색이었다. 여담이지만 SK의 구단 새 CI가 처음 공개되어 새 로고와 유니폼이 적용된 날은 2005년이 아닌 2006년 3월 17일이다. # 3월 17일 이전인 2006년 2월달에 실시됐던 사이판 전지훈련때만 해도 와이번스 선수들은 바뀌기 전 유니폼을 착용하고 훈련에 임했다. 당시 전지훈련 영상, 당시 사진[33] 또, 2006년 3월까지는 이전 유니폼을 걸친 마스코트 '비룡'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 와이번스와 더불어 SKT가 함께 운영하던 서울 SK 나이츠 농구단도 창단 첫 시즌부터 2005~2006 시즌까지는 파랑색을 상징색으로 썼다. 그러다가 SK의 모든 계열사가 빨강색을 CI 상징색으로 바꾸면서 야구단과 농구단의 상징색이 모두 빨강색으로 바뀌었다.

창단 당시부터 2005 시즌까지 썼던 푸른색 원형 구단 로고에는 야구공이 그려져 있었으나, 2006년 변경된 BI는 특이하게도 원형 로고를 가진 구단들 중 유일하게 야구공이 그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다른 국내 프로야구팀들과는 다르게 워드마크가 아닌 모자 로고만 들어가 있다.

2019년 11월 12일 2020 시즌 팀 창단 2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위해 구단 로고를 변경한다고 한다. 2020년 1월 8일 구단 로고가 유출됐고 1월 20일 공식으로 공개됐는데 바뀐 BI에 대해서는 혹평이 난무한다. 특히 2015년에 공개된 2군 구장인 강화 SK 퓨처스파크의 공식로고와 배색, 이미지등 거의 똑같다는 점에서 20주년 기념 CI라면서 디자인 돌려막기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파일:external/s20.postimg.org/SK_futures_park_logo.png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svg
SK 퓨처스 파크 로고 SK WYVERNS 로고

2021년 1월 19일자 류선규 단장 인터뷰에 따르면, SK 퓨처스 파크 로고 결정 이전에 이미 구단의 현 BI가 결정되어 있었고, 퓨처스 파크가 그 로고를 따라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만, 그 때 당시 구단 성적이 좋지 않아서 미루고 있었을 뿐이라고. 또한, BI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을 인지를 하고 있으며, 로고 변경 가능성을 언급했다. 단,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확답은 줄 수 없다고 한다. 만약 변경되더라도 22 시즌부터 적용 할 수 있다고. 스포티비 인터뷰 선수단 유니폼부터 문학구장 전광판 등등 교체비용이 상당하기에 구단 BI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음에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팀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1년밖에 안 된 로고를 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교체하기에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2021년 야구단이 매각되며 진짜 1년밖에 안 쓰게 되었다.

SSG 랜더스가 된지 4년이란 시간이 흐른 현재도 2020년에 사용했던 로고는 팬들에게 팀을 말아먹은 암흑기 취급받고 있다.

2.3. 역대 마스코트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ce0e2d><tablebgcolor=#ce0e2d>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svg SSG 랜더스
역대 마스코트
}}} ||
{{{#!wiki style=""
{{{#000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50403
<rowcolor=#fff> 초대 2대 3대 4대 5대
비룡이
(2000~2006)
와우, 윙키
(2007~2015)
팬토
(2007~2008)
윙고
(2012~2015)
아테나, 와울
(2016~2020)
랜디
(2021~ )
}}}}}}}}}}}}}}}}}}
파일:SK 와이번스 마스코트(2000~2005).svg
창단부터 2005년까지 사용한 비룡[34]
파일:SK 와이번스 마스코트(와우&팬토).svg
2007 시즌부터 사용된 와우 & 팬토
파일:external/static-a-timetree.zumst.com/?http%3A%2F%2Ftimetree.zumst.com%2F2014%2F06%2F02%2F03%2F4bd69fcc90984eacbdb0d769c89cf57b.png
2009년 팬페스트 행사에서 공개된 와우 & 윙키
파일:/image/edaily/2012/04/10/1334022970.015847_PP12041000014.jpg 파일:attachment/Wingo.png
2012 시즌 전 공개한 윙고
2012년을 앞두고 새 마스코트를 발표했다. 그런데 부산 kt 소닉붐의 우주복 마스코트[35] 못지않은 최악의 마스코트가 등장했다. 비룡은 어디 가고 웬 개미핥기냐라고 하면서 까이고 있다.
파일:external/philadelphia.phillies.mlb.com/phanatic_1024x768c.jpg 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마스코트(슬라이리).svg
더 큰 문제는 이게 MLB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스코트 필리 패나틱(Philly Phanatic)과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마스코트인 슬라이리를 그대로 가져다 베낀 수준이라는 것이다. 위의 그림에서 털 색깔만 초록색으로 바꾸고 유니폼만 갈아입히면 필리와 일치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저 색상을 바꾼 이미지로 구글 유사 이미지 검색을 돌리면 자동으로 Phillie Phanatic으로 인식해서 검색을 수행해 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원래 이름인 '윙고' 대신 모두들 솩우튀김으로 부르게 되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필리 패나틱과 슬라이리는 모두 세서미 스트리트의 제작사에서 만든 마스코트이기 때문에 형제이지만 윙고의 경우 연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외관만 비슷한 거지 완전히 남이다.

결국 좋은 소리 못 듣는 걸 구단 쪽에서도 인지한 건지, 어정쩡한 타협안으로 여캐인 윙키는 내버려두고 와우만 짜르는 걸로 결정되었으나 그냥 셋 다 마스코트로 쓰기로 한 모양.
파일:SK 와이번스 아테나와 와울.svg
2016년 공개한 마스코트 아테나와울
2016년 새로운 마스코트를 공개했다. 그리스 신화의 그 아테나가 맞다. 연고지 및 구단명과 아무 상관 없으면서 동시에 표절 논란까지 있었던 윙고보다는 낫지만, 이쪽도 연고지와 구단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똑같다. 새로운 마스코트의 시구

3. 팀 특징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팀 특징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팀의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신세계그룹으로의 매각 (2021)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신세계의 SK 와이번스 인수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SG 랜더스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주요 기록

6.1.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a002c><tablebgcolor=#ea002c> 파일:skwyverns_top_emblem.png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초대 2대 3대 감독대행 / 4대 5대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209042323135089_3494.jpg 파일:sk조범현.jpg 파일:김성근sk.jpg 파일:이만수sk.jpg 파일:sk김용희.jpg
강병철 조범현 / ★ 김성근 / ★★★ 이만수 / ★★ 김용희
6대 7대 감독대행 8대
파일:sk힐만.jpg 파일:염경엽 2020.jpg 파일:박경완2020.jpg 파일:김원형감독.jpg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svg
트레이 힐만 / ★ 염경엽 박경완 김원형
}}} ||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순서 이름 재임기간 전적 승률 비고
초대 강병철 2000년 ~ 2002년 399전 165승 8무 226패 0.422
2대 조범현 2003년 ~ 2006년 518전 257승 18무 243패 0.514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 & 한국시리즈 진출
3대 김성근 2007년 ~ 2011년[36] 611전 372승 13무 232패 0.622 인천 연고팀[A] 출신 첫 감독
2007 KBO 리그 통합우승 V1
2008 KBO 리그 통합우승 V2
2010 KBO 리그 통합우승 V3

KBO 역대 정규시즌 최다연승 (2009~2010, 22연승)
SK 감독 최고 승률
감독대행 / 4대 이만수 2011년 ~ 2014년[38] 429전 213승 11무 205패 0.510 KBO 역대 최초 감독대행 한국시리즈 진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5대 김용희 2015년 ~ 2016년 288전 138승 2무 148패 0.483
6대 트레이 힐만 2017년 ~ 2018년 288전 153승 2무 133패 0.535 창단 첫 외국인 감독
2018 한국시리즈 우승 V4
7대 염경엽 2019년 ~ 2020년[39] 191전 100승 1무 91패 0.510 인천 연고팀[A] 선수 출신 첫 정식감독
SK의 정규시즌을 치른 마지막 감독
구단 단장 출신 감독
SK 최후의 감독
감독대행 박경완 2020년 96전 39승 1무 56패 0.411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염경엽 감독 공백(투병)에 따른 지휘
8대 김원형 2021년 -[41]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SSG 초대 감독 [42]
  • SK의 역대 감독으로는 초대 강병철부터 매각 당시 감독인 김원형까지 총 9명의 감독들이 있다. 굵은 글씨는 우승 감독.
  • 감독 대행 체제로 시작해서 정식 감독이 될 때까지 그 사이의 전적도 포함.
  • 신기하게도 쌍방울 시절 마지막 감독으로 선임된 김준환 감독도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SK의 수석코치가 됐는데, 김원형 감독 역시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새로운 팀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6.2. 시즌별 일람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ea002c><tablebgcolor=#ea002c> 파일:skwyverns_top_emblem.png SK 와이번스
역대 시즌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2000 2001 2002 2003 2004
8위 7위 6위 2위 5위
초대 강병철 제2대 조범현
2005 2006 2007 2008 2009
3위 6위 '''1위
[[2007년 한국시리즈|
]]'''
'''1위
[[2008년 한국시리즈|
]]'''
2위
제2대 조범현 제2대 조범현 제3대 김성근
2010 2011 2012 2013 2014
'''1위
[[2010년 한국시리즈|
]]'''
2위 2위 6위 5위
제3대 김성근 제4대 이만수
2015 2016 2017 2018 2019
5위 6위 5위 '''1위
[[2018년 한국시리즈|
]]'''
3위
제5대 김용희 제6대 트레이 힐만 제7대 염경엽
2020 이후
9위 SSG 랜더스
제7대 염경엽
}}}}}}}}}}}} ||

6.3. 역대 개인 성적

팀 역사상 최고의 통산 성적과 단일 시즌 최고의 기록을 정리한 문단이다. SK 와이번스 매각 이전인 2020년까지만 기재되어 있으며 이후의 기록을 포함한 성적은 SSG 랜더스 문서의 9.2 문단 참고.

6.3.1. 통산 성적

SK 와이번스 역대 개인 성적(통산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SK 와이번스 투수 기록
부문 이름 기록 팀 소속 시즌
등판경기 정우람 600경기 2004~2015
선발등판 김광현 276경기 2007~2019
완투 이승호 11완투 2000~2011
2016
완봉 김광현 3완봉 2007~2019
이승호 2000~2011
2016
평균자책점[43] 김광현 3.27 2007~2019
승리 김광현 136승 2007~2019
패전 김광현 77패 2007~2019
세이브 정대현 99세이브 2001~2011
홀드 정우람 128홀드 2004~2015
이닝 김광현 1673.2이닝 2007~2019
탈삼진 김광현 1456개 2007~2019
실점 김광현 691실점 2007~2019
자책점 채병용 625자책점 2002~2019
피안타 김광현 1577개 2007~2019
피홈런 채병용 161개 2001~2019
볼넷 김광현 646개 2007~2019
사구 박종훈 124개 2010~2020

SK 와이번스 타자 기록
부문 이름 기록 팀 소속 시즌
출장경기 최정 1781경기 2005~2020
타율[B] 이진영 0.304 2000~2008
출루율[B] 최정 0.389 2005~2020
장타율[B] 최정 0.525 2005~2020
타석 최정 7276타석 2005~2020
타수 최정 6103타수 2005~2020
안타 최정 1762안타 2005~2020
2루타 최정 325개 2005~2020
3루타 조동화 30개 2000~2018
홈런 최정 368개 2005~2020
타점 최정 1180타점 2005~2020
득점 최정 1102득점 2005~2020
도루 정근우 269도루 2005~2013
볼넷 최정 773볼넷 2005~2020
사구 최정[47] 272개 2005~2020
삼진 최정 1373개 2005~2020
병살타 이재원 129개 2006~2020
}}} ||

6.3.2. 단일 시즌

SK 와이번스 역대 개인 성적(단일 시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SK 와이번스 투수 기록(단일 시즌)
부문 이름 기록 해당 시즌
등판경기 정우람 85경기 2008
선발등판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34경기 2001
완투 이승호 6완투 2001
완봉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2완봉 2001
채병용 2002
이승호 2003
신승현 2005
평균자책점 김광현 2.37 2010
승리 케니 레이번 17승 2007
김광현 2010
2019
앙헬 산체스 2019
패전 리카르도 핀토 15패 2020
세이브 하재훈 36세이브 2019
홀드 박희수 34홀드 2012
이닝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233.2이닝 2001
탈삼진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215개 2001
실점 리카르도 핀토 121실점 2020
자책점 리카르도 핀토 111자책점 2020
피안타 메릴 켈리 205개 2016
피홈런 김기덕 27개 2000
이승호 2001
채병용 2014
볼넷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134개 2001
사구 박종훈 25개 2017

SK 와이번스 타자 기록(단일 시즌)
부문 이름 기록 해당 시즌
출장경기 정의윤 144경기 2016
김성현 2019
타율 정근우 0.350 2009
출루율 김재현 0.445 2005
장타율 최정 0.684 2017
타석 정의윤 616타석 2016
제이미 로맥 2018
타수 정의윤 576타수 2016
안타 정의윤 179안타 2016
2루타 최정 33개 2012
박정권 2014
3루타 이진영 8개 2002
노수광 2018
홈런 최정 46개 2017
타점 한유섬 115타점 2018
득점 최정 106득점 2016
도루 정근우 53도루 2009
볼넷 박경완 94개 2004
사구 박경완 27개 2010
삼진 최정 129개 2018
병살타 이재원 22개 2015
}}} ||

6.4. 역대 유니폼

파일:skwyverns2020new1.jpg
2020년 착용한 유니폼. 사진 왼쪽부터 홈, 얼트, 주중 원정, 주말 원정 유니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유니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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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20년의 역사 속에서 유니폼이 꽤 자주 바뀌었다. 마지막 홈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상하의 모두 기존 유니폼의 라인을 없앤 심플한 디자인으로 구단 로고를 부각시켰다. 유니폼 뒷면의 선수 이름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제거했다가 2019년 이후 선수 이름을 다시 붙였다. 원정 유니폼은 2015년부터 사용 중인 회색 상하의와 2020년부터 다시 사용하는 붉은색 상의/흰색 하의가 있다. 주중 경기에서 회색 유니폼을 입고 주말 경기에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다.

얼트 유니폼 중 ‘인천 유니폼’은 매주 일요일 홈 경기마다 입으며[48] 연고지인 인천광역시 지역 팬과의 교감을 위해 인천 유니폼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미색 바탕에 연고지 지명인 인천을 유니폼 전면에 새겼다.[49] 과거 실제 인천 유니폼에는 인천의 로마자 표기를 INCHUN이라고 삽입했으나 2015년부터 입는 인천 유니폼의 로마자 표기는 현행 로마자 표기법에 맞게 ‘'INCHEON’'으로 넣었다.

남색 모자에 흰색, 회색, 그리고 빨간색 상의까지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과 매우 흡사한 색 배치이다. 특히 2006년 버전의 경우 양쪽 목 칼라를 따라서 내려오는 빨간색 선까지 있어서 거의 비슷하다.

부작용으로 그린 스포츠 유니폼은 새마을 유니폼이라고 까이기도 했다.

6.5. 관련 기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관련 기록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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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수단

파일:sk 와이번스 20.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선수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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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등번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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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영구결번

파일:KBO 40주년 특집 박경완 일러스트.jpg
파일:PKW26.jpg
SK 와이번스 영구결번
박경완

현재 SK 와이번스의 영구결번으로는 박경완의 등번호 26번이 유일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 백스크린 뒷쪽에 야구공 모양의 영구결번 기념 조형물이 있다.[50]

일각에서는 인천광역시 야구를 빛낸 슈퍼 스타인 박재홍의 등번호 62번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박재홍은 전성기가 현대 유니콘스 시절[51][52]이었고 은퇴 당시 SK 구단과의 결별 과정이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국 영구결번이 되지는 않았고[53], 이후 한동민이 그의 등번호를 물려받으면서 SK 좌타 거포 외야수의 계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박경완 이후의 영구결번 후보로는 최정 김광현이 유력하다.[54] 둘 다 SK 와이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타자/투수이며, 타 구단의 영구결번급 선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커리어를 보유했고, 20대 초반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4번의 KBO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주역들이기도 하다. 최정은 2차 FA에서 6년 계약을 체결했고, 김광현도 포스팅 제도를 통해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면서 KBO 리그 복귀 시 원 소속 구단인 SK에게 4년간 보유권이 생기기 때문에 두 선수 모두 원클럽맨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최정과 김광현의 영구결번은 별 문제가 없는 한 확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김성근 감독의 38번도 영구결번될 뻔했었다. SK 프런트 측에서 V3의 업적을 기리는 차원에서 먼저 제안해 몇 차례 의견을 나눴으나 재계약 관련한 갈등 끝에 결별한 김성근 감독이 거절해서 성사되지는 않았다.

7.1.1. No.26 박경완

★ ★ ★
포도대장
파일:yms4321201305272026030.jpg
SK 와이번스 No.26
박경완 (朴勍完 / Park Kyung-oan)
<colbgcolor=#ea002c> 프로입단 1991년 신고선수 (쌍방울 레이더스)
역대 소속팀 파일:PKPuIYF.png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7)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1998~2002)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2003~2013)
영구결번식 2014년 4월 5일 문학 한화전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경기 타수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wRC+ WAR[55]
2043[56] 5946 .249 .367 .458 .825 1480 271 15 314[57] 995 913 75 1140[58] 1605
(1위)
122 67.63

2014년 3월 10일, 박경완의 등번호인 26번을 KBO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 SK 와이번스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 박경완은 원클럽맨은 아니지만 창단 초기부터 팀을 이끌면서 2000년대 후반 SK의 V3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구단의 첫 영구결번을 받게 되었다.

7.2. 임시결번

7.2.1. No.29 김광현

★ ★ ★ ★
대한민국 에이스
파일:external/www.sksports.net/20100429115516_1.jpg
SK 와이번스 No.29
김광현 (金廣鉉 / Kim Kwanghyun)
역대 기록
경기 이닝 승리 패배 세이브 홀드 승률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WAR[61]
298 1673.2 136 77 0 2 .638 3.27 4.01 1577 143 685 1456 1.33 46.31

구단 매각 당시의 임시결번인 SK 와이번스의 29번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광현이 2007년 SK에 입단 후 2019년까지 사용했던 등번호이다. 김광현은 KBO에서 뛴 13년동안 1673이닝 136승 77패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하면서 최정과 함께 소속팀인 SK 와이번스를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 총액 800만불의 계약에 합의하며 메이저 리그에 입성했다. SK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선수단 내에서 김광현이 사용했던 29번을 비워두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하며 이후 자연스럽게 임시결번이 되었다. 동시에 후신인 SSG 랜더스에서도 임시결번이 되었다.

이후 2022년 김광현이 후신 SSG 랜더스로 복귀하면서 등번호 29번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7.3. 프랜차이즈 스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SG 랜더스/스타 플레이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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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7.4. 은퇴식

{{{#!wiki style="margin: -10px" <tablebordercolor=#ce0e2d><tablebgcolor=#ce0e2d>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svg SSG 랜더스
역대 은퇴식
(SK 시절 포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순번 이름 활약 기간 날짜 비고
1호 김성래 2000년 2000년 8월 13일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 은퇴식
2호 김경기 2000년 ~ 2001년 2002년 4월 9일 문학 야구장 개장 후 첫 홈 개막전
3호 최태원 2000년 ~ 2003년 2004년 4월 4일
4호 김기태 2002년 ~ 2005년 2006년 4월 8일
5, 6호 조웅천 2001년 ~ 2009년 2010년 3월 28일 합동 은퇴식
정경배 2002년 ~ 2009년
7호 김재현 2005년 ~ 2010년 2011년 10월 1일
8호 김원형 2000년 ~ 2011년 2012년 4월 8일
9호 박재홍 2005년 ~ 2012년 2013년 5월 18일
10호 박경완 2003년 ~ 2013년 2014년 4월 5일 영구 결번
11호 전병두 2008년 ~ 2016년 2016년 10월 8일 구단 최초 은퇴 경기
12호 박재상 2001년 ~ 2017년 2017년 9월 9일 구단 최초 원 클럽 플레이어 은퇴식
SK 와이번스 출신 선수 첫 은퇴식
13호 조동화 2000년 ~ 2018년 2018년 9월 8일
14호 윤희상 2004년 ~ 2020년 2020년 10월 30일 은퇴 경기
SK 와이번스 체제 마지막 은퇴식
15호 박정권 2004년 ~ 2019년 2021년 10월 2일 SSG 랜더스 체제 첫 은퇴식
16호 채병용 2001년 ~ 2019년 2021년 10월 3일
17호
(비공식)
제이미 로맥 2017년 ~ 2021년 2021년 11월 3일 언택트 은퇴 기념 행사로 대체
18호 김태훈 2009년 ~ 2023년 2023년 10월 17일
추신수 2021년 ~ 2024년 2025년 예정
김강민 2001년 ~ 2023년 2025년 예정
}}}}}}}}} ||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svg
SK 와이번스 역대 은퇴식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꺼벙이 김성래
1984년 삼성 라이온즈 데뷔,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 이적, 2000년 8월 13일 은퇴식[62]
미스터 인천 김경기
1990년 태평양 돌핀스 데뷔, 2000년 SK 와이번스 이적, 2002년 4월 9일 은퇴식[63]
철인 최태원
1993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04년 4월 4일 은퇴식[64]
왼손의 신사 김기태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02년 SK 와이번스 이적, 2006년 4월 8일 은퇴식[65]
강철허리 조웅천
1989년 태평양 돌핀스 데뷔, 2001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0년 3월 28일 은퇴식[66]
인천의 아들 정경배
1996년 삼성 라이온즈 데뷔, 2002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0년 3월 28일 은퇴식[67]
캐넌히터 김재현
1993년 LG 트윈스 데뷔, 2005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1년 10월 1일 은퇴식[68]
어린왕자 김원형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12년 4월 8일 은퇴식
리틀쿠바 박재홍
1996년 현대 유니콘스 데뷔, 2004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3년 5월 18일 은퇴식
포도대장 박경완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03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4년 4월 5일 은퇴식[69]
좌완 파이어볼러 전병두
2003년 두산 베어스 데뷔, 2008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6년 10월 8일 은퇴식[70]
아트스윙 박재상
2001년 SK 와이번스 데뷔, 2017년 9월 9일 은퇴식[71]
가을동화 조동화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 멤버, 2018년 9월 8일 은퇴식
Rising Star 윤희상
2004년 SK 와이번스 입단, 2020년 10월 30일 은퇴식[72]
}}}}}} ||
SK 와이번스는 원년 구단이 아닌 2000년에 창단된 구단인 만큼 창단 초기에는 팀에서의 소속 기간이 길지 않더라도 은퇴 직전에 놓여있던 베테랑 선수들의 은퇴식을 많이 열어주는 모습을 보였으나 10년대부터는 팀의 역사를 이어가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에게 은퇴식을 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파일:20170326133643_11.jpg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 은퇴식인 꺼벙이 김성래를 시작으로 SK 와이번스 역사상 마지막 선발 투수인 윤희상까지 총 14명[73]이 SK 와이번스에서 은퇴식을 치렀고, 이 중 일부 선수들은 인천SK행복드림구장 안에 위치한 W 갤러리[74] 레전드 플레이어 존에 현역 시절 사용한 배트나 유니폼 등이 진열되어 전시되고 있다.
파일:2017080902748_0.jpg
파일:2017080903328_0.jpg
인천 고별전에서 SK 와이번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이호준의 모습
여기에 포함시키긴 애매하지만 팀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에 공헌을 하고 최전성기 SK 와이번스의 클린업으로 활약하던 NC 다이노스 소속 내야수 이호준도 마지막 인천 원정 때 구단에서 조촐한 은퇴 기념 행사를 챙겨주기도 했다.[75]

8. 홈구장


2014년부터 인천 문학운동장의 시설에 대한 운영 및 관리를 수행하는 위탁 운영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이 아니라 야구장을 포함한 경기장 전체( 박태환수영장 제외)이다. 경기장 일부에 대한 관리를 위탁한 사례는 있었지만 모든 시설에 대한 관리를 위탁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한다. 덕분에 SK 프론트 입장에서는 경기장 전역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

8.1. 인천SK행복드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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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SK 퓨처스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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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까지는 용현동 SK에너지 저유소 내에 SK 와이번스 2군 연습구장인 " SK 드림파크"를 사용했으나[78] 연습구장이 위치한 용현동 일대가 재개발 지구로 정해진 터라 2007년 철거됐다. 드림파크가 철거된 후에는 2군 경기장을 숭의야구장으로 잠시 옮겼지만 그 숭의야구장마저도 헐리면서 결국 송도 LNG 기지 내에 위치한 열악한 송도LNG야구장 2군 임시 경기장으로 쓰게 되었다.[79] 특히 야구장 바로 옆에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시설이 있는데 이 시설에는 나오는 악취 때문에 경기가 중단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강화군 길상면 길상종합운동장 옆 부지에 새로운 2군 전용 연습구장이 지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으나 인천광역시와의 부지 매매 관련 협의가 잘 안 되었는지 한동안 건축은 커녕 삽질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송도 야구장을 임시 2군 경기장으로 매우 불편하게 사용하고 있다가 드디어 인천시와의 부지 협의가 끝났고 2013년 4월 첫 삽을 떴다. 새 연습구장은 일단 2014년 내에 완공 예정이라고 발표했었으나 결국 2014년을 넘겨서야 완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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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까지 공정률이 30%에 불과해 팬들의 걱정이 많았으나 이후 작업 속도를 내면서 공사를 시작한 지 정확히 2년이 된 2015년 4월 1일 SK 퓨처스 파크 개관식이 거행되었다. SK 퓨처스 파크는 8만6762m²(2만6245평)의 대지에 주경기장, 보조경기장, 수펙스돔(실내훈련장), 패기관(숙소) 등 4가지 주요 시설로 이뤄졌다. 주경기장(2군 훈련과 경기 전용)과 보조경기장(재활·잔류·육성군 전용) 모두 실전을 치를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됐다. 실내훈련장은 투수와 야수 시설을 분할해 건립됐다. 에너지 효율과 친환경,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신경을 썼다. 또 숙소는 37개 객실 모두를 1인 1실로 만들어 어린 선수들 위주로 수용할 계획이다.

9. 논란 및 사건 사고

9.1. 인천 야구 정통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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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꿈★의 이벤트 당시 등판한 채병용
인천을 연고로 팀을 창단한 후 3년째가 된 2002년까지도 연고지 내 인기도가 바닥 수준을 기었던 SK는 인천 연고 팬층을 넓히고 특히 과거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고 있는 인천야구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뜻에서 2002년 8월 24일 8월 25일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날'로 선포하고 이 기간에 열린 문학 두산전에서 과거 삼미의 유니폼 복각판을 입고 경기를 했다.

당초에는 삼미의 1982년 원년 유니폼을 그대로 착용하고 이벤트 명칭에도 삼미 구단명을 삽입하려 했지만 청보식품- 태평양그룹을 이어 해당 팀의 주인이 된 현대그룹의 야구단 현대 유니콘스의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현대는 "SK가 삼미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법적 자격이 없다. 우리 구단 측의 허가를 받고 하라"며 삼미 유니폼 착용과 삼미 구단명의 사용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당시 현대가 반대한 이유는 자신들이 상속한 구단의 자산이 무단으로 침해됐다는 부분 때문이었다. 현대는 2000년 1월 인천 연고권을 버리고 수원시로 떠났지만 여전히 존속하는 법인이었던데다 상법상 삼미의 자산을 공식적으로 인수한 것이 인정됐다. 현대 측의 항의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분노한 일부 인천 팬들은 "인천이 싫다고 스스로 연고지를 버린 주제에 무슨 권한으로 상속 자산 타령을 하느냐"며 현대 구단을 맹비난했다.[80] 일부 팬들은 항의 차원에서 1983~1985년 삼미 유니폼의 복각판을 스스로 제작해서 착용하기도 했다.

SK는 현대 측의 항의를 수용하면서 1982년 삼미 유니폼에서 일부를 개조해서 복각판 유니폼을 만들었다. 모자와 유니폼 상의 전면의 별모양 로고에는 삼미를 뜻하는 'S' 대신 'SK'를 집어넣었다. 이벤트 이름도 꿈★의 이벤트[81]가 되었다.

현대의 반대 등 논란이 있었으나 많은 팬들이 인천 연고 정착을 향한 SK 구단 측의 노력에 칭찬을 보냈고 실제로 이벤트 기간 중에는[82] 많은 팬들이 문학구장을 찾아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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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천 김성근 당시 감독
2002년 현대의 반대로 삼미 이벤트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SK는 2008년 시즌 개막 이후 과거의 아쉬움을 달래고 인천 팬들을 더 많이 야구장으로 불러모으기 위해 역대 인천 연고팀 중 가장 오랫동안 구단이 운영됐고 뚜렷한 성과를 냈던 팀인 태평양 돌핀스에 대한 추억 마케팅을 추진한다.

SK 구단은 1994~1995년 태평양의 홈 유니폼을 그대로 착용한 채 경기를 치르고 구단 차원에서도 같은 유니폼을 제작해서 팬들에게 판매하기로 했다. 해당 이벤트 날짜는 관중들이 많이 올 수 있는 5월 4일 토요일 문학 홈경기로 결정했으며 태평양 돌핀스라는 기업과 구단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과 상의를 마쳤다. 아모레퍼시픽 측에서도 대승적 차원에서 '태평양'이라는 기업명의 사용을 허락했고 KBO 측과도 사전 협의를 하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해석을 받았다. 특히 6년 전 항의를 했던 현대도 2007년 시즌 종료 후 해체됐기에 SK의 이벤트 진행에 반대할 사람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태평양 유니폼을 입기로 한 경기의 상대팀은 우리 히어로즈였고, 이 팀은 현대 유니콘스 법인을 해체하고 프런트 대부분과 선수단이 그대로 이어져 만든 팀이라 논란이 되었다.[83] 당시 SK는 아모레퍼시픽과 KBO에만 행사 추진에 대한 사전 협의를 하고 히어로즈 측에는 통보하지 않았다. 히어로즈가 태평양 구단과 법적으로 다른 팀이기에 통보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2002년의 현대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권리를 그대로 상속한 것이 맞지만 2008년의 히어로즈는 2007년 시즌 후 해체된 현대의 자산을 상속하지 않고 해체 후 재창단이라는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히어로즈 구단은 태평양과 같은 구단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다. 다만 이 주장에도 심각한 모순이 있는데, SK 구단은 히어로즈의 참가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6년간의 수원 야구장 무단 사용에 대한 배상금을 히어로즈에게 청구한 바 있고, 실제로 히어로즈로부터 배상금을 받아갔다. 이때 SK는 돈을 받기 위한 논리로 히어로즈가 유니콘스의 권리를 다 가져간 후신 구단이니 책임도 같이 가져간다는 주장을 펼쳤고, 장순일 본부장은 다른 인터뷰에서도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같은 구단으로 간주해 돈은 받아가놓고 또 과거사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다른 구단이니 상관 없다는 전혀 반대의 논리를 주창하며 체리피킹을 하는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옛 현대 선수단과 팬들은 히어로즈에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이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나 태평양 시절부터 팀의 부침을 지켜봐 왔던 주장 이숭용과 베테랑 투수 전준호 등은 자신들의 과거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며[84] 씁쓸해했다. 아울러 SK 구단 역시 태평양과 법적 연계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옛 구단의 이름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음에도 해당 법인이 사라진 상태이고 리그 관계자의 허락만 받았다는 이유로 이벤트를 추진한 점에 대해 히어로즈 팬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 이벤트는 과거 같은 팀을 응원했으나 지금은 서로 갈라진 SK 팬과 우리 팬 간의 뿌리깊은 갈등과 대립의 씨앗이 되고 만다.

2008년 태평양 데이 같이 연고팀을 떠나보낸 팬을 위해 정착팀이 옛 연고팀의 유니폼을 입는 행사가 다른 리그에서도 종종 있었는데, 그 중 태평양 데이와 가장 유사한 사례는 시애틀 매리너스가 옛 연고팀 시애틀 파이러츠의 유니폼을 입은 행사이다. 시애틀 파이러츠는 밀워키로 연고를 이전하고 밀워키 브루어스로 구단명을 바꾸고 현재도 존재하는 구단이다. 밀워키도 행크 아론을 기념하기 위해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유니폼을 입는데, 이 구단 역시 연고를 이전하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구단명을 바꾸고 현재도 존재하는 상태이다. 또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사라진 옛 니그로리그 연고팀 블랙삭스의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또 과거 브루클린에서 연고를 이전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우처럼 연고지 이전 전의 기록들을 모두 인정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우리의 정당성을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MLB 두 팀과는 달리 연고지 이적 과정에서 벌어진 잡음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삼청태현과 완전히 다른 팀이므로 문제가 있다.

삼청태의 권리를 누가 주장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2009년 조태룡 히어로즈 단장의 부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조태룡 단장은 구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삼청태현의 전통을 이어받으라는 히어로즈 팬들의 의견을 수렴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히어로즈 구단 홈페이지 내 구단 연혁에 삼미-청보-태평양-현대의 역사를 삽입하고 목동 홈경기에는 "서울 히어로즈 프로야구단은 현대 유니콘스-태평양 돌핀스-청보 핀토스-삼미 슈퍼스타즈의 전통을 이어받았습니다"라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전광판에 띄우는가 하면 2009년 9월에는 히어로즈의 전신격 팀인 현대는 물론 삼청태까지 포함한 4개 구단 유니폼 모양의 LED 뱃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히어로즈 측의 삼청태 역사 언급과 LED 뱃지 제작 사건은 SK와 히어로즈의 팬덤 규모가 심각하게 적었던 탓에 언론에서 떠들 정도로 사태가 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양측 팬들간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 인천야구의 역사를 이은 팀 SK와 옛 인천팀에서 뛰던 인적 자산을 이은 팀 히어로즈 간의 싸움에서 과연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가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인천 출신의 유명 유격수 투수는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다만 정민태는 현대가 해체되기 전인 2007년 무렵에 SPORTS 2.0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천 연고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문제는 SK와 히어로즈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이며,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동안 대립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쪽이 양보를 하더라도 골수 팬들은 인정을 안 하는 상황이 분명히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구단 응원 문구가 인천 SK다.[85] 연고지 이름이 들어가는 구단은 SK와 2019년부터 창원 NC 파크의 개장으로 인해 창원 NC를 쓰고 있는 NC 다이노스밖에 없다. 가끔 롯데 자이언츠도 홈경기 한정으로 부산 롯데를 가끔 쓰는 일이 있지만.[86] 또한 1986년 이후 사라졌던 유니폼 상의 전면에 지역명을 표기한 것 역시 SK였다.[87] 그런데 조금 다르게 보면 문제가 생긴다. 비록 인천 연고의 현대가 이사를 갔다고 해도 멀쩡히 존재하고 리그에서 같이 뛰고 있었기에, 신생팀이 인천 야구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시비가 붙는 것만큼은 반드시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2012년 3월, 현대의 모기업이었던 하이닉스(구 현대전자)는 SK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만약 현대 유니콘스가 인수전까지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었다면 SK는 하이닉스 인수를 망설였거나 과거 프로농구 때처럼 두 개의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게 되는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참고. 당연하지만 SK가 현대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하이닉스를 인수한 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

9.2. 프런트와의 갈등

대한민국 최고의 프런트는 아닐지라도 일 괜찮게 하는 프런트인데 김성근 때문에 안 먹어도 될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초대 강병철 감독과 후임 조범현 감독 모두 아주 좋은 성적이 아니었음에도 임기를 채우고 원만하게 물러났으며, 연봉 협상에 대한 잡음이 거의 없고, 심지어 김성근의 깽판질도 4년 넘게 참아줬다. 하지만 김성근 야신거품이 한화에서 벗겨지기 전까진 이런 부분에 대해 인정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성근이 불펜혹사와 비매너, 더러운 야구로 최전성기 내내 악명을 떨쳤는데 팬들은 감독님이 언론과 친밀하지 않아 비난에 가까운 기사가 쏟아지는데 이거 보호 안 해주고 뭐 하냐며 프런트를 깠다. 김성근이 한화 감독이 된 이후 노리타를 제외한 팬들이 모두 실감했듯이 그게 보호하려 한다고 보호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보호해야 될 사안도 아니었지만 그 땐 그랬다. 애초에 김성근이 언론과 친밀하지 않다는 거부터 김성근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라 통했던 헛소리.[88]

2011년 7월 29일에 구단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폐쇄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 페이지로 대체했을때도 엄청나게 욕을 먹었고 동년 8월 17일자로 김성근 감독이 자진 사퇴를 선언했을 때도 분명히 김성근이 구단을 엿먹인 상황이었지만 김성근 비판하는 팬은 한 사람도 없었고 프런트가 모든 욕을 먹었다.

급기야 노리타들은 문학구장 소요 사태를 일으켜 구단에 수천만 원의 손해를 입히고, SK 와이번스 프런트 퇴진 운동까지 벌어는 희대의 깽판을 저질렀다. 박종윤 박희수를 바꿔오려던 트레이드를 저지하고, 김성근이 혹사로 망가뜨린 전병두의 재활을 지원하는 등 유능하고 무능하고를 떠나서 옳은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그게 제대로 평가받는 건 김성근 거품이 꺼지고 난 다음에나 가능했다.

FA에도 기민하게 대처하여 2013년 정근우가 구단의 제시액을 걷어차고 한화로 이적할 무렵엔 정근우가 70억을 걷어찼다라고 발표해 갈팡질팡하던 SK 팬덤의 공격목표를 친히 지정해 주는 한편, 다른 구단이 정근우에게 최소 70억 이상으로 베팅할 수 있도록 밑밥을 깔아주는 역할을 했다. 2014년에는 이만수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최정, 김강민, 조동화를 잔류시킨 다음에 중요도가 떨어진 나주환 이재영을 내놓음으로써 확실하게 매듭지었다. 2015년에는 박정권, 채병용은 잡고 정우람, 정상호, 윤길현은 내보내 비난받았으나 시즌 들어가고 그 선수들 성적 나온 거 보고 나선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89]

계약기간 지켜주는 건 이만수나 김용희도 마찬가지라서 2015 시즌 종료 후 잠시 김용희 감독 경질설이 돌았지만 코칭스태프 개편안에 관해 선을 그으며 임기를 지켜줬다. 결국 김성근 빼곤 다 좋게 좋게 이별했다. 후임 인선도 매끄럽게 해서 2016년말에 감독면접을 거쳐 트레이 힐만 감독을 비롯해 차기 코칭 스태프 조직을 끝내놓고 2017년 1월 염경엽 단장 영입으로 화룡 점정을 찍었다.[90]

용틀임마당 없앴다고 지적받는 소통 부분은 SK 트위터/페이스북이 메시지도 받아주고 더욱 활발한 소통을 하기 시작하고 결정적으로 '플레이 위드'의 등장으로 '이미 용틀임마당의 대체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최소한 소통 안 하는 프런트는 아니다. 그리고 용틀임마당 폐쇄가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인지도 의문이다. 삼성의 사자후나 LG의 I love Twins, 롯데의 갈매기 마당, KIA의 호랑이 사랑방 등 다른 팀의 공홈을 살펴보면 건전하게 돌아가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인신공격성 글이 올라오는 건 기본이고 좆문가질에 연령대 높은 이용자들도 여럿 있다 보니 지역주의에 기반한 글들도 굉장히 많이 올라온다. 엠엘비파크처럼 선비질이란 비아냥을 먹더라도 규제를 통해 과격한 언사를 거르는 것도 아니고(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디시인사이드처럼 처음부터 그런 걸 상정하고 노닥거리는 곳도 아니다 보니 상태가 굉장히 안 좋다. 엠팍같은 곳에서야 우리 용틀임마당은 그냥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고 미화하는 사람들도 나오지만 그럼 김성근 재계약하라고 글 도배한 건 누구 문학 야구장 혼자 불탔단 말인가?

9.3.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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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타

  • 견제 응원이 없기로 유명했었다. 2007년까지는 견제 구호[91]가 있었으나 2008년 윤길현 욕설 사건 이후 김성근 감독의 의견으로 타 팀 선수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없앴다고 한다.[92] 김성근 감독이 기자들과 대화 중 "일본에서는 내야에서는 조용하게 야구보는 사람들이 오고 외야에서 주로 응원을 하는데, 그 이유가 투수들 집중을 깨지 않기 위함이다. 응원하는 건 좋지만 투수 견제구호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투수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말 한마디를 한 이후로 SK 팬들이 자발적으로 견제 응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2011년 8월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이후 김성근 팬덤을 중심으로 한 SK 팬층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견제 응원이 부활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2015년 시즌부터 견제 응원이 부활했다.[93]
  • 타팀팬들이 SK를 비하하는 명칭으론 기본적으로 이 있고[94] 여기게 다양한 접두어,접미어를 붙이는데 접두어로는 대표적으로 10, 접미어론 충(蟲)이 자주 쓰인다. 이중 충이란 명칭이 SK 고유의 별칭(물론 안좋은 쪽으로)이라 이해하면 된다. 벌레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2007 코시의 정근우의 다리잡기, 2008 시즌 윤길현 사건, 이기고 있는 9회말 2아웃에서 투수교체 등등으로 지저분하게 야구한다는 의미. 여기에 야구본지 얼마 안되는 티 팍팍내던 SK팬[95]들을 조롱하는 의미도 있다. 이른바 2008년부터 야구본 놈들, 즉 베이징 뉴비.[96]
  • 충이라 불리는 이유를 몇가지가 더 꼽아볼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다음과 같은 이유는 절대로 아니다. 원문
    각 팀을 가리키는 비하적 표현이 없지는 않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를 중심으로 확산된 별명이기는 하지만 SK 와이번스를 ‘충’, 두산 베어스를 '범죄두', 한화 이글스를 ' 꼴칰', LG 트윈스를 ‘ 헬쥐’ 혹은 '조작쥐'로 일컫는 식이다. ‘충’은 SK의 우리말 발음에서 비롯됐고, (이하 생략)

    SK의 우리말 발음이 어떻게 충으로 연결되는지는 오로지 저 글을 쓴 기자 자신만이 이해할 것이다. 다만 충이 아닌 을 대입하면 맞는 말이긴 하니 슼이 아닌 충으로 잘못 적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 슼충의 어원은 팀이 한창 잘나가던 2007년 김성근 감독 특유의 완벽주의와 승부에 대한 집착이 타 구단 팬들의 반감을 사서 구단의 마스코트인 '비룡'을 비하하며 '이런 쫌생이 야구를 하는 팀은 비룡이 아니라 지렁이 같은 놈들이다'라고 깎아내리는 과정에서 지렁이=미물=벌레=蟲의 과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 언젠가부터 같은 기업 게임단과 같이 구단에서 '슼', '스크'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ㅅㅋ'도 구단 영상에서 쓰였다.
  • SK 프런트가 2014년부터 문학야구장 위탁 관리전권을 인천시로부터 위임받으면서 야구팬들이 미래의 비전으로써 바라던 구단이 직접 야구장을 관리하는 꿈과 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팬들도 프런트를 욕하는 와중에 이 일만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점점 더 발전하고 프런트에서 말해오던 볼파크로써 달라지는 문학야구장을 기대해보자. 그리고 실제로 2015 시즌 개장을 앞두고 엄청난 개보수가 이루어 졌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 문서 참조.
  • 위탁관리전권과 관련해서 사건이 하나 있었다. 2014년 2월 6일 기사에 따르면 구단 사무실이 위의 위탁 전권과 관련해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구단측과 인천시 공무원간의 유착 혐의를 수사한다고 한다. 그리고 4월 8일 수사결과로 인천시 당국과 SK 구단 사이의 유착혐의는 없는 것으로 최종결론이 났고 유착혐의와는 별도로 구단 전직 임원 A와 응원대행업체 사장 B의 횡령 사실이 드러나 입건되었다.
  • 유튜브에 투수들의 불펜피칭 영상을 많이 올린다. 쑈께이라고 소리지르는 불펜포수 아재(가 아니라 포수 겸 코치 허웅)의 고함이 일품.
  • 현재 KBO 역대 구단 중 삼성 라이온즈 상대 승률이 가장 높은 구단이다. 2020년까지 370전 179승 183패 8무로 승패마진이 불과 -4.[97] 현대의 기록은 공식적으로 한 팀인 삼청태현의 기록을 합산할 시 삼성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결국 삼성 상대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은 SK가 된다.
  • 반면 2013년 1군에 합류한 NC를 상대로는 2017년까지 5년 내내 우위를 점해보지 못했다. 2013년 6승 10패로 밀렸고, 2014년에는 8승 8패로 동률을 맞췄으나 2015년 5승 1무 10패, 2016년 6승 10패로 털렸고 2017년 전반기까지 6승 3패로 선방하다가 후반기 마산 3연전에서 역스윕을 당했다. 그리고 9월 마산 2연전 시리즈를 모두 내주면서 7승 9패로 열세로 마감했다. 그리고 양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처음 붙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SK가 5:10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NC 감독 김경문이 두산 시절 SK에 깨져 번번히 우승을 놓쳤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어쩌면 통쾌한 복수일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우승 경험이 없기에 완벽한 복수라고 하긴 좀 뭐하다. 하지만 2018년에는 창단 첫 10위를 기록한 NC 상대로 11승 5패로 우위를 점했다. 2019년에도 9승 7패를 기록했으나 2020년에는 2승 14패로 처참하게 깨졌다.
  • KBO 리그에서 유일하게 사이클링 히트와 인연이 없는 팀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선수도 없고, 허용한 기록도 없는 유일한 팀이다.
  • 모자 로고가 청주 우암초등학교 야구부의 모자랑 똑같다. 색만 다르고 글자만 그대로 똑같은 셈.
  • 신인 선발에서 인천팜 출신들을 놓치기도 하는데, 2011년에 열린 드래프트에서는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이현호를 놓치고 정보가 없었던 서진용을 뽑아서 까인 적도 있으며 2016년에 열린 드래프트에서는 김혜성을 거르고 KT와 가까운 곳 학교 이원준을 뽑아서 김혜성이 '동산고 홀대의 희생양'으로 불리는 계기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서진용이 2017, 2018년부터 불펜 핵심으로 활약하며 까임이 줄어든 편.[100]
  • 여타 수도권 구단과는 달리 아이돌 시구를 잘 안 하는 편인데[101], 설현이 2015년 시구할 때[102] 그 SK가 웬일이냐고 야구팬들이 놀라기도 했다. 후술될 유명인 팬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SK는 막내구단인 KT를 제외하면 국내 모든 구단 통틀어 유달리 유명인사나 연예인 팬이 없기로 유명하다. 그래도 뜻 깊은 시구는 자주 하기 때문에 팬들이 시구로 불만을 갖거나 하진 않는다.
  • 게임에서 은근 취급이 안 좋은 팀이기도 하다. 마구마구 초창기 오프닝에서는 당시 현존 팀 중 유일하게 등장하지 않았으며 게임빌 2012 프로야구에서도 라이선스는 못 땄을 지언정 다른 팀들이 실제 모델이 된 팀의 엠블럼이나 유니폼을 어느정도 본뜬 것에 비해 sk가 모티브가 된 인천 돌핀스는 혼자만 생뚱맞은 유니폼과 엠블럼으로 등장했다. 한국 프로야구 2002라는 게임 오프닝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SK빠라면 조금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어째선지 이 중 단 하나도 이슈화되지 못했다.
  • 구단 공식 유튜브의 영상 퀄리티가 좋은 편인데, 특히 썸네일 및 자막의 퀄리티가 호평을 받고 있다. 경기 하이라이트는 방송사 하이라이트를 편집하여 Wmoment로 올라오고, 직캠은 '슼케치'라는 제목으로 올라온다. 또한 선수 인터뷰도 충실히 올라오고, 행복드림구장 시설, 이벤트 및 먹거리도 상세히 소개해주는 편.
  • 2020년 9월 21일, 2021 KBO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 지명을 코로나19로 인해 사무실에서 화상으로 진행했는데 SK 와이번스만 화질이 깨지고 연결 자체도 심하게 불안정해서 SK브로드밴드 인터넷의 품질이 처참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LG 트윈스 kt wiz는 문제가 없었다. 과거 T1에서도 SK브로드밴드 인터넷을 사용했으나 경기 도중 장애가 발생해서[104] KT로 변경하였다. 페이커도 거르는 SKB
  • 1990년대 후반부터 SK의 회장은 최태원이었지만 본인이 직접 구단주를 맡은 적은 없으며, 창단 초창기부터 구단주를 맡았던 사람은 SK 회장과 SKT 명예회장을 지낸 손길승 씨였다. 이후에는 구단주 대행 체제로 이어졌는데 SKT 조정남 전 부회장과 SKT 사장 출신인 정만원 부회장도 구단주 대행을 맡았던 적이 있다.
  • 그래서 SK 와이번스 최후의 구단주 자리도 최창원 SK가스 및 SK케미칼 부회장이 맡았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막내 아들이다. 그래도 학창시절부터 야구에 심취한 열혈 야구팬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야구와 관련되어 있지 않은 구단주는 아니다. 이와는 별개로 최태원 회장은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야구장을 찾아 일반석에서 임원들과 팀을 응원했으며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는 헹가래도 받았다. 참고로 최태원 회장은 SK스포츠 팀 중 여자 핸드볼팀을 제외한 어느 구단에서도 구단주를 맡지 않고 있다. 축구단 SK에너지 대표이사, 농구단 게임단은 SKT 대표이사, 남자 핸드볼팀 SK하이닉스 대표이사가 구단주다.

11. 매각 당시 지역 연고 학교

과거에는 인천+ 경기+ 강원 이란 프로야구 최대 팜을 보유하는 것에 비하면 스카우트 능력은 극악이란 평가가 다수였다.[105][106][107] 허나 2010년 시즌부터 전면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어 지역연고제를 활용하기가 힘들어졌다. 당장 전면 드래프트 도입 후 시행된 세 차례의 드래프트에서 인천 출신 선수는 고졸, 대졸을 막론하고 단 1명만 지명되었으며 그마저도 입단 1년 만에 방출되었다. 그래도 2010년 드래프트에선 좋은 투수들을 잘 뽑았다는 평.[108]

12. 응원

12.1. 응원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ce0e2d><tablebgcolor=#ce0e2d>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svg SSG 랜더스
역대 응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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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2c,#d3dade
<rowcolor=#ffffff> 초대 2대 3대 4대
최기연
(2000)
박상돈
(2001)
김용문
(2002~2005)
원명호
(2006~2007)
<rowcolor=#ffffff> 5대 6대
7대
8대
홍창화
(2008)
박홍구
(2009~2013)
정영석
(2014~2021)
박민수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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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ce0e2d><tablebgcolor=#ce0e2d>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svg SSG 랜더스
역대 장내 아나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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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2c,#d3dade
장내 아나운서
초대
2대 3대
4대
5대
박종민
(2002~2009)
전성현
(2010~2012)
김우중
(2013~2018)
곽수산
(2019~2024)
이대현
(2024~)
탑 아나운서
1대
김지훈
(2000~)
}}}}}}}}}}}}}}} ||

파일:2020년 SK 와이번스 치어리더.jpg
2020 시즌 SK 와이번스 응원단
응원단장 정영석
아나운서 곽수산(장내), 김지훈(탑)
치어리더 이미래(팀장), 김도아[110], 김맑음, 박한솔, 박현영, 배수현, 안이랑[111],
오지연, 오채현, 유보영, 이다연, 이지현

12.2. 응원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응원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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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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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응원문화

12.3.1. 연고지 지명 강조 응원구호의 원조

다른 구단이 '최강OO'[112] 형태로 구단의 응원구호를 오랫동안 밀어왔던 것과 달리 SK는 창단 초창기부터 " 인천광역시 연고 야구단 = SK 와이번스" 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응원구호로 "인천 SK"[113]를 꾸준히 강조하고 밀어왔다. 물론 여기에는 어쩔 수 없었던 사연이 있었다. 창단 초창기 인천 연고에 대한 SK의 기반이나 인지도가 워낙 빈약했고[114] 기존 인천 연고팀 상처뿐인 야반도주 이후 인천 야구의 새로운 정통성을 잇는 확실한 인천시 연고팀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하는 처지였기에 "인천 SK" 구호를 유독 밀었다.[115]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SK 외에도 구단의 응원구호나 응원가에 지역명을 넣어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롯데는 부산 홈경기에 한해 "부산 롯데"라는 구호를 응원가에 넣고 있고 신생구단인 NC는 2019년 이범형 응원단장 부임 이후 "창원 NC" 응원구호를 사용하고 있다. 수원의 KT는 "수원 KT" 같은 별도의 응원 구호는 없지만 평소 구단명을 언급할 때 수원을 강조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잦다.[116] 여기에 창단 이후 "무적 LG"를 고수하던 LG도 "서울 LG"[117]라는 구호를 넣기 시작했고 "최강 두산"을 쓰던 두산도 일부 응원가에서 "서울 두산"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KBO 리그 내에서 지역명을 강조하는 응원구호로는 SK가 확실히 원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SK도 2010년대 초부터 "인천 SK" 외에 "투혼 SK"라는 응원구호를 선보인 적이 있었지만[118]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결국 응원구호가 등장하는 모든 샘플링 음원에 "인천 SK"라는 구호가 들어갔다. "투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불꽃투혼 인천 SK"로 사용한다.

그리고 2021년부터 SK의 역사를 이어받은 SSG도 "인천 SSG"라는 응원 구호를 쓰고 있다.

12.3.2. 적극적인 응원유도

2007년 스포테인먼트를 내세우면서 기존에 없었던 응원 문화를 많이 만들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결정적인 찬스가 아닌 이상 경기 초중반에는 응원석 관중들도 앉아서 응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일어서서 관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뒷 사람 시야를 가리는 비매너 행위'로 치부하기 일쑤였는데, SK는 2007년부터 내야 응원단상을 내야석 최하단로 내리면서 1루 내야석 전체를 응원석으로 만들었고,[119] 공격 시에는 모든 내야석 관중들이 일어서서 응원을 해주도록 유도했다. 또한 경기 초중반에는 응원단장 혼자 응원을 주도하고, 7, 8회부터 치어리더들을 단상에 세우던 타 구단들과 달리, SK는 1회부터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들을 함께 응원단상에 세우면서 치어리더들의 이미지를 '이닝 교대시간의 눈요깃거리'가 아닌 '팬들과 함께 하는 또 다른 팬', '진정한 응원의 리더'로 각인시켰다.[120] 이러한 문화가 2010년대 중반부터 타 구단으로 퍼지면서 지금은 전 구단에 1회부터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함께 응원을 유도하고 응원석 관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응원하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사실상 SK 와이번스라는 구단이 KBO 리그에 남긴 하나의 유산인셈.

13. 네임드 팬

SK 구단이 2000년에 창단하여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기존 인천지역 팬들도 원래 있던 삼청태현의 팬이라서 SK로 이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은 인천광역시 출신이거나 인천광역시에 거주 중인 인사들이 SK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13.1. 인천광역시 출신

  • 염경환
    - 이 사람도 삼청태현 시절부터 골수 야구팬이다. 2010년에는 SK 편파방송 캐스터를 맡기도 했다.
  • 힙합 그룹 리듬파워( 보이비, 행주, 지구인)
    - 그룹 멤버가 모두 인하부고 출신이다. 방사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같은 인천 출신인 라임어택의 피쳐링을 받은 "인천 상륙 작전"이라는 곡을 내기도 했다. 특히 행주의 가사 내용은 야구와 관련한 내용으로 빗댄 것이 많고[121], 앨범 커버 자체가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누구하나 빠짐없이 잘생겼다 리듬파워' 라는 앨범에서는 대놓고 SK 모자도 나온다. 또 다이나믹 듀오의 "만루홈런"을 리믹스한 "만루홈런 인천 Remix"에는 씨잼이 참여했으며, 원래 가사인 "I'm feeling like 이대호"에서 이대호 대신 김경기를 넣었고, 가사 내용도 인천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2016년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초청돼 시구와 특별 공연을 했다. 여러모로 덕력도 비범하고 성공한 덕후도 되었고, 아마 최근 시점에서 제일 잘 알려진 SK팬이 아닐까 싶다. 2018년 KBO리그 홈 개막 2연전 마지막 날인 3월 25일 리듬파워가 만들어 공식적으로 쓰이는 응원가를 직접 선보였으며, 세 멤버가 시구를 동시에 하는 코믹한 상황도 연출했다. 1회초가 끝났을 때 SK 응원단상에서 공연도 했었다.
  • 홍인규
    -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들과의 문학 직관 사진을 종종 게시한다. 다만 생계형 개그맨인지라 다른 팀 시구도 거절하지는 못하는 듯.
  • 정인영
    - 연수여고 출신. '야구여신'이라 불리며 야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중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응원팀을 밝히지 않았지만 야구 프로그램을 그만 둔 후에는 고향팀 SK를 응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배수현
    치어리더. 어릴 때부터 동인천역 인근에서 자라난 인천 토박이로 숭의야구장과 가까운 지역에 거주했으며 아버지가 열렬한 야구 팬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치어리더 중에서 최고참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다. 선수는 김강민 송은범의 팬이다.
  • 유승호
    -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고양시로 이사를 갔다. SK가 파란색 유니폼을 입던 2006년 이전에도 2002년 어린이날에 한 번 시구한 경력이 있으며, 2008년 어린이날에도 시구를 했었다. 여담으로 이 날은 SK 도그 미르가 처음으로 문학구장에 등장한 날.
  • 2012 런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김장미
    - 최정의 열렬한 팬임을 자부했고 SK 시구도 하고 싶다고 인터뷰 한 바 있다. 실제로 2012년 8월 경 성사될 수 있었으나 일정의 충돌로 현재까지 보류가 되고 있는 듯.
  • 은서
    - 팬싸인회에서 자신이 SK의 팬임을 밝힌듯 하다. 인천광역시 출신이라 연고지를 따라서 팬이 된 듯 하다. 링크1 링크2
  • 케이(러블리즈)
    - 러블리즈 멤버, 2019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축하 무대 후 시상자로 나와서 인천의 딸이라서 SK에서 시구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 꿈은 SSG로 바뀐 이후인 2021년 4월 17일 이루어졌다.

13.2. 인천광역시 출신

  • 이채영
    - '와이번스 걸' 출신 답게 SK팬이다. 그는 와이번스 걸 활동이 종료된 후, 두산의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이에 두산으로 응원 팀을 바꾼 게 아니냐는 의혹이 생겼고, 이채영은 "팀과 상관없이 야구 자체를 좋아해서 보러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 배구선수 이재영
    - 전라북도 익산시 출신. 2018-2019 V리그 MVP 수상과 인천 연고팀 우승 기념으로 2019년 4월 13일 KIA 전에서 시구를 했다. 이후 SK의 경기를 수차례 직관하며 응원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더구나 자신의 시구 경기 때 서진용을 시구 코치로서 만났는데 이 때의 인연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사이가 깊어져 결국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됐다. 여담으로 쌍둥이 동생 이다영은 KIA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 만화가,스트리머 이말년
    - 본래 전주 출신이고 원래는 쌍방울의 팬이라 SK를 응원한다
  • LG 트윈스 투수 손주영
    - 가장 좋아했던 선수로 김광현을 뽑으며 과거 SK 팬이었다고 했다. 11살 때부터 김광현과의 선발 맞대결을 꿈꾸고 있었다고. 그래서 등번호도 29번을 사용 중이다. [124]

14. 같이 보기

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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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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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1988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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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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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1993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7회
1994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2회
1995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2회
1996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해태 타이거즈

9회
1997
1998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1회
1999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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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2003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4회
2004
2005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 삼성 라이온즈

4회
2006
2007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2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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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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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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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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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2018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4회
2019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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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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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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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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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2024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KIA 타이거즈

12회
}}}}}}}}} ||



[1] 2021년 2월 23일 본계약 체결 이후 구단 운영 주체는 SK에서 신세계로 전환되었으나 # 회계 처리는 3월 5일 완료되었다. # [2] SK 산하 스포츠단 브랜드인 SK스포츠의 프로팀은 SK 와이번스와 제주 유나이티드, T1만 법인으로 설립되어 있다. 나머지 프로팀인 서울 SK 나이츠는 별도 법인이 아닌 SK텔레콤 내에서 관리되며 SKT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었다. 2021년 3월 5일 이마트로 매각되면서 법인도 이마트로 넘어가 법인명이 ㈜신세계야구단으로 변경되었다. [3]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 2층,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구단 사무실이 홈구장 밖에 있다. 다만 주소상으로는 주경기장과 야구장이 같은 곳이다. 이에 대한 에피소드로 2021년 1월 새로 이적한 최주환이 시무식 참석 차 사무실을 방문하였는데 워낙 멀어서 직원들과 인사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날짜를 물어서 방문하였다고 한다. # [4] 구 문학야구장, 현 인천 SSG 랜더스필드. 2015년 3월 31일자로 해당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5] KBO 포스트시즌을 제외한 정규 시즌 기준. 경기당 평균 16,211명 [6] 포스트시즌을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경기당 평균 1,281명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경기들은 제외 [8] 해체 후 재창단이라는 방식으로 야구단을 만들었다. 2000년 1월 당시 법정 퇴출된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하지 않고 순수 신생팀 형식으로 창단했다. 따라서 쌍방울의 역사를 SK가 계승하지 않는다. 쌍방울의 선수들은 SK가 쌍방울이 자동 퇴출될 때까지 기다린 결과 전원 웨이버 공시되었으나, 이미 1999년 연말부터 SK그룹이 쌍방울 레이더스를 대체하여 참가한다는 것이 정부에 의해 기정사실로 밝혀진 상황이라 타 7개 구단이 웨이버 공시된 쌍방울 선수들을 채가지는 못했고, 해당 선수들은 신생팀 SK에서 뛸 수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2000년에 창단하자마자 바로 1군 리그에 참가하는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신생팀 드래프트를 통해 기존 구단에서 각 2명의 선수를 지원받았고, 외국인 선수도 3명을 영입해 출전시키는 혜택도 받았다. [9]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은 SK 내에서도 지배구조가 사실상 분리되어 있는 SK가스를 지배하고 있다. 다만 구단 지분은 SK의 핵심 계열사인 SKT가 모두 보유하고 있다. [10] 원년 이후에 창단한 팀 중에서는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 기록을 갖고 있다. SK보다 한국시리즈에 더 많이 진출한 삼성 라이온즈(18회), 두산 베어스(14회), KIA 타이거즈(11회)는 모두 원년 구단이다. [11] SK 외에 삼성(2010~2015), 두산(2015~2021) 등 세 팀만 세운 기록이다. [12] 2002 시즌 페넌트 레이스 종료 후 자진 사임. [13] 2007, 2008, 2010 KBO 한국시리즈 우승 [14] 2011 페넌트 레이스 도중 경질. 당시 이만수 2군 감독이 감독 대행으로서 2011 시즌 잔여 경기를 지휘했다. [15] 2018 KBO 한국시리즈 우승 [16] 2020 시즌 페넌트 레이스 종료 후 자진 사임. [17] 2020 시즌은 염경엽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인해 감독 수행이 불가능해지자 6월 25일부터 8월 31일까지 박경완 감독대행 체재로 시즌 운영을 했다가 염경엽 감독이 복귀했지만 9월 6일 또 다시 건강이 악화돼 응급실로 이송됐고 결국 남은 시즌도 박경완 수석 코치가 지휘하게 되었다. [18] 이 쪽은 '기아'라는 단어가 굶주림을 뜻해 과거 해태 시절의 가난한 이미지가 연상된다고 해서 영문 표기를 쓰고 있다. [19] 인하대역 비룡삼거리 서쪽 지역에는 SK에너지의 저유소가 있었고 이 저유소 부지 내에 와이번스 2군 연습구장이었던 SK 드림파크가 있었다. 정말 우연하게도 비룡리라고 불렸던 동네에 비룡을 마스코트로 삼은 야구단의 연습장이 있었던 셈. 드림파크는 2007년 철거됐고 현재는 그 자리에 인천 SK 스카이뷰 아파트가 들어섰다. 참고로 SK 드림파크 철거 이후 와이번스 2군 숭의야구장 송도LNG야구장을 전전해야 했고 2015년 4월이 되어서야 강화군 번듯한 연습구장을 갖게 됐다. [20] 슼이라는 표현은 구단에서도 써먹고 있다. 별다른 애칭이 없던 구단의 공식 유튜브 계정 명칭에 팬들이 즐겨부르던 [21] 모기업이 정유사업을 관할하는 SK에너지가 아니라 SK텔레콤임에도 주유소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모기업 SK의 이미지와 과거 유니폼이 주유소 알바생들이 입는 유니폼 같다고 해서 입은 오명이다. # 진짜 주유소로 볼 수 있는 쪽은 제주 유나이티드. [22] 두산이 최악이다를 줄여서 돡이라 불렀는데 그것을 응용한 것. [23] 삼성은 2010년 한국시리즈부터 2015년 한국시리즈까지 6년 연속 KS 무대를 밟았다. 이 기간 중 4회 우승, 2회 준우승. SK는 3회 우승, 3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24] 두산은 2020년을 기준으로 2015년 한국시리즈 부터 2020년 한국시리즈 까지 6년 연속 KS 무대를 밟았다. 3회 우승, 3회 준우승을 기록. [25] 4위 기록은 해태 타이거즈( 1986년~ 1989년)의 4연속 진출. [26] 두산은 2015년 한국시리즈부터 2021년 한국시리즈 까지 7년 연속 KS 무대를 밟았다. 3회 우승, 4회 준우승을 기록. [27] 역대 한국시리즈 2년 이상 연속 우승 사례는 해태(1986-89년, 1996-97년), 현대(2003-04), 삼성(2005-06년, 2011-14년), 두산(2015-16년) 등 총 5개 구단만이 이룬 업적이다. [28] KBO 리그 단일 시즌 순수 최다승은 2016년 두산 베어스의 93승. [29] 아시아 프로야구 리그 사상 단일 시즌 단일 구단 최다 연승 기록도 SK가 보유하고 있다. 2009년 8월 25일 문학 두산전부터 9월 26일 문학 두산전까지 19연승. [30] 원년 충청도 연고팀이던 OB 베어스는 동군이었다. [31] 이미 동군에 롯데와 삼성이 있는데 NC까지 넣으면 영남권 팀은 모두 동군에만 있는 문제가 생긴다. [32] 파란색이지만 삼성의 상징 색 파랑보다는 조금 짙은 남색에 가까운 색상이다. 주니치 드래곤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파란색과 비슷한 파랑. [33] 이미지가 깨진 원본기사 링크 [34] 2000년대 중반 용돌이, 용순이로 이름이 바뀐 적이 있다. [35] 파일:/image/065/2009/10/15/091015m01_0.jpg [36] 2011 시즌 중 경질. 잔여 경기는 이만수 감독대행 [A] 태평양 돌핀스 [38] 2011 시즌 중 감독대행 포함 [39] 2020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자진사퇴 [A] 태평양 돌핀스 [41] 감독 선임은 SK 시절에 완료됐지만 SK 와이번스의 이름으로는 실제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신세계그룹에서 창단할 신생팀에서부터 전적이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42] SK가 신세계그룹 SSG에 매각하면서 SK 역대 감독으로 승계하지 않는다. [43] 1000이닝 이상 [B] 1000경기 이상 [B] [B] [47] KBO 리그 통산 역대 1위 [48]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키움 히어로즈, NC 다이노스와 함께 선데이 유니폼을 보유한 팀 중 하나다. 과거에는 롯데 자이언츠도 선데이 유니폼을 활용했으나 2018년 유니폼을 변경하면서 선데이 유니폼을 없앴으나 2020년부터 부산 광안대교 유니폼을 매주 일요일 홈 경기마다 입으면서 사실상 선데이 유니폼을 다시 부활시킨 샘이된다. [49] 팀의 연고지 지명이 전면에 삽입된 유니폼을 정기적으로 입고 뛰는 구단은 SK 외에도 일요일마다 '서울 유니폼'을 입는 LG가 있다. 아울러 삼성이 비정기적으로 착용하는 1982년 후기리그 버전 올드 유니폼에도 대구라는 이름이 삽입돼 있고 롯데가 팬사랑 페스티벌 때 착용하는 유니폼에는 부산(울산 홈경기 때는 울산)이라는 지역명이 써 있으며 KT가 화성문화제 즈음마다 입는 '정조대왕 유니폼'에도 수원이라는 이름이 써 있다. [50] 야간 경기에는 조명이 들어온다. [51] SK에서는 2009년부터 쭉 하향세 [52] 사실 KT가 현대를 해체 후 재창단 방식으로 인수하기 직전이었을 때 박재홍을 영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박재홍이 현대의 상징이었기 때문인데, 만약 KT가 야구단을 창단해서 박재홍을 영입했다면 그 팀에서 영구결번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KT는 야구단 창단을 철회했고 센테니얼이 현대의 선수단과 프런트를 승계해서 히어로즈를 창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뒤 KT는 2013년에 수원을 연고로 한 KT 위즈를 창단하며 정식으로 KBO 리그에 합류한다. [53] 그래도 은퇴식은 SK 프런트가 배려를 해준 덕에 나름 화려하게 진행됐다. [54]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함에 따라 그의 등번호였던 29번은 2020년 현재 임시결번 상태로 사실상 영구결번의 수순을 밟고 있다고 봐도 좋다. [55] 스탯티즈 기준 [56] 은퇴 당시 통산 4위. [57] 은퇴 당시 통산 8위. [58] 은퇴 당시 통산 3위. [59] SK 와이번스 소속 기간. 전체 커리어 경력은 1991 - 2013 [60]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61] 스탯티즈 기준. [62]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 은퇴식 [63] 문학 야구장 개장 후 첫 페넌트레이스 홈 개막전 [64] 2004 시즌 페넌트레이스 홈 개막전 [65] 2006 시즌 페넌트레이스 홈 개막전 [66] 정경배 코치와 합동 은퇴식 [67] 조웅천 코치와 합동 은퇴식 [68] 2005년 SK 와이번스로의 이적 전까지 LG 트윈스의 상징적인 선수였던 점을 감안해 본래 2011년 6월 25일 문학 LG전에서 은퇴식을 성대하게 치르려 했다. 그러나 이때 인천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경기를 치르지 못했고 결국 10월로 은퇴식이 미뤄졌다. [69] SK 와이번스 구단 역사상 첫 영구결번이며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 영구 결번 [70] 구단 최초의 은퇴 경기로 전병두의 은퇴경기 답게 전병두가 선발투수로 나와 딱 한 타자만 상대하고 실질적인 선발투수인 윤희상으로 교체되었다 [71] 구단 최초의 원 클럽 플레이어 은퇴식이자 SK 와이번스 출신 선수 첫 은퇴식 [72] 전병두의 은퇴 경기와 비슷한 형식으로 1타자만 상대하고 실질적인 선발투수인 박종훈과 교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경기 종료 이후 감사 인사등 몇가지 행사만 간소하게 치러졌다. 또, LG 트윈스 소속 외야수 박용택의 은퇴행사도 경기전에 치렀다. [73] 커리어 내내 SK 와이번스에서 뛰고 은퇴한 박정권, 채병용은 후신팀 SSG 랜더스 출범 이후 은퇴식이 치러졌다. 원래는 불펜 에이스로 활약했던 박희수도 21시즌에 은퇴식을 치를 예정이었으나 상무 피닉스 야구단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취소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74] SK 와이번스의 구단 역사관으로 인천 야구의 변천사와 SK 와이번스 히스토리, 레전드 플레이어존 및 우승 트로피 등이 전시되어 있다. [75] 같은 해 은퇴를 선언한 이승엽이 은퇴투어를 진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호준에 대해서도 마지막 원정 방문경기 후 은퇴를 기념하는 이벤트를 소소하게 해줬는데 SK 구단 주최의 이벤트 규모가 가장 컸다. [76] 인천·경기 지역 연고팀인 SK 와이번스는 과거 인천 야구팀이었던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 이어서 제 2구장으로 수원 야구장을 두게 되었지만, 현대 유니콘스가 SK에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수원 야구장을 사용하게 되면서 2008년까지 사용하지 못했었다. 이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면서 창단 8년만에 제 2구장을 돌려받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SK가 수원 야구장에서 1년에 9경기 정도의 홈 경기를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기존 현대 팬과의 갈등을 생각한 수원시시설관리공단이 허락을 하지 않았던데다가 인천 연고를 강조하는 구단의 성격상 수원에서 홈 경기를 치르겠다면서 '인천 SK'를 외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77] 현재는 폐장됐고, 그 자리에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홈구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지어졌다. [78] 드림파크 시절에 성장했던 선수들이 훗날 최전성기의 주축이 되는 조동화, 박재상, 김강민 등이다. 現 인천광역시수산기술지원센터 부지가 당시 연습구장의 중견수 위치다. [79] 송도LNG야구장이 얼마나 낙후됐던 곳인지는 2011년 5월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 방송 당시 SK 선수였던 신인 투수 임정우가 야구장 안팎으로 날아드는 파울볼을 잡는 볼보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80] 이는 매우 옳지 않은 헛된 비난으로, 연고지를 옮겼고 주인이 바뀌었을 뿐 상대가 그 팀 자체인데 고작 연고지 연관성과 추억을 근거로 해당 팀의 과거 유니폼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것은 현대적 비즈니스 마인드가 결여된 아전인수격 해석일 뿐이다. [81] 별이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2002 월드컵 4강전 당시 붉은악마의 카드섹션 문구였던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 [82] 삼미 관련 이벤트 외에도 최태원의 1000경기 연속출장 기념 이벤트도 함께 열렸다. [83] 후술되어있듯 SK는 히어로즈를 현대의 후신으로 간주한 바가 여러 차례 있으므로, 타 7개 구단 중 굳이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태평양 유니폼을 입고 나온 것은 SK의 해명처럼 우연이라기보다는 6년전과 달리 공식적으로 법인을 잇지 못한 히어로즈에게 복수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84] 이 말을 한 전준호는 공교롭게도 2010년부터 2년간 SK 유니폼을 입고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숭용도 나중에 SSG의 감독으로 오게 된다. [85] 참고로 이것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의 전신인 SK 빅스 농구단의 과거 공식 약칭이기도 했다. 반면 야구단 공식 약칭은 지역명 없이 그냥 SK. [86] LG 트윈스는 무적 LG, 키움 히어로즈는 히어로즈, 현대 유니콘스는 막강 현대, 확실한 응원 문구를 정하지 않은 kt wiz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최강 OO를 쓴다. [87] 여담으로 과거에는 여러 구단들이 연고지역명을 유니폼의 어깨 부분에 광고와 같이 달았다. 마지막까지 유지했던 건 유니폼에 대구를 새겨 넣었던 삼성이었는데, 2013년부터 대구 마크를 제외시켰다. 대신 들어간 건 삼성화재. [88] 이 당시 SK 팬들이 원수 취급했던 사람들이 민훈기, 스포츠동아 김영준, 최민규 기자 등이다. [89] 정우람은 마무리가 81이닝을 던지는 혹사를 당한 탓도 크다만, 아무래도 이별 과정이 좋지 못하여 팬덤 내에서도 ' 그 XX' 정도로만 언급되는 편이며, SK와 한화 경기가 있을 때 나오면 팬들이 욕하는 정도. [90] 다만 염경엽은 평가가 2019년 시즌을 거치고 포스트시즌 조차도 말아먹으면서 평가가 크게 떨어졌다. 애초 감독이 존경하는 사람처럼 혹사를 한 것도 있고... [91] 구체적으로 "야! 그러면 안되지이~" 라는 구호를 외쳤다. [92]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견제구가 들어오면 투수가 아닌 자기팀 주자에게 뛰어! 라고 외친다. [93] (삐빅!) 쩔어! x3 '쩔어'는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인천 방언 중 하나다. [94] 두산베어스의 비칭인 '돡'과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졌다. 즉, "스크(SK)가 최악이다" = '스악' = '솩'. [95] 이 이미지는 최근 여성팬들이 급증한 두산에 넘어갔다. 이른바 얼빠천국 [96] 2008년부터 야구 봤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한국야구사로 보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전승 금메달을 달성하면서 야구 보기 시작했다는 것, SK로 한정하면 그해 SK가 한국 야구사에 남을 강팀의 족적을 남기면서 유입된 쪽이란 것. 어느 쪽으로든 기본적인 규칙도 모르는, 한마디로 양산형 팬이란 의미. 그 뒤 시간이 오래 지나 이들도 2020년 기준 13년차 팬이 되었다. [97] 현대와 키움의 경우처럼 쌍방울과 SK는 공식적으로 다른 구단이기 때문에 전적을 별개로 계산한다. [98] 이건욱은 KT 우선지명에서도 노릴 정도로 2014년 드래프트 대상자 중에서도 최상급의 유망주였다. 이건욱 외의 인천팜 1차 지명 유력후보는 인하대의 박민호와 야탑고의 이승진이었다. 김하성은 안중에도 없었단 소리. 키움 히어로즈가 육성을 잘 한 케이스로 봐야 올바르다. [99] 그나마 저건 1차 지명이었기 때문에 2차 지명에서 김하성을 데려올 기회가 있었지만, 정작 2차에서는 김하성을 거르고 박규민 유서준을 골랐다. 그러나 박규민은 고질적인 부상으로 2018년을 마지막으로 방출됐고, 유서준과 이건욱도 각자의 자리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SK가 놓친 김하성은 키움의 핵심 내야수로 맹활약하고 있으니 SK 팬들의 속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으로 망가져가고 있다. [100] 인천팜은 최근 두산 베어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치국. [101] 사실 2018년부터는 프로스포츠 리그 최초로 구단 자체 보이그룹 레드몬스터도 두는데, 이 때문에 서진용이 경기에서 삽질하면 야구 때려치고 레드몬스터 신멤버로 가입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102] 시구지도를 이례적으로 투수가 아닌 야수 박정권이 맡았다. [103] 그래서 페이커가 시구를 하기도 했다. [104] 하필이면 그날 비가 왔다고 한다. [105] 이 지역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투수천국"으로 널리 불렸다. 프로 초창기 임호균 최계훈을 비롯해 박정현, 정민태, 김홍집, 위재영, 김수경 등 인천 연고팀에서 에이스 노릇을 해온 투수들이 여럿 등장했다. 요 근래에는 국가대표 에이스급 투수인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등이 배출됐다. [106] 현재 강원도 영서 지방은 춘천시( 춘천고 해체, 강원고), 원주시( 원주고) 한화 팜으로, 영동 지방은 강릉시( 강릉고), 속초시( 설악고) 삼성 팜으로 편입되었다. [107] 여담으로 SK는 신인 지명이 아닌 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2차 드래프트에서도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다. [108] 대표적으로 1픽인 문광은과 2픽인 박종훈이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다. 문광은은 2015년 전반기에 터지나 싶더니... 결국엔 2018년 LG로 이적했고, 박종훈은 처음에는 웨시퍼라 불리며 SK 스카우터들의 영 좋지 않은 능력을 보여주는 예시로 쓰이다가 제구력이 안정된 후에는 SK의 주축 선발 투수로 발돋움했다. 2018년에는 국가대표로 차출되기도 했다! [109] 다만 부천고등학교 kt wiz의 팜으로 넘어갔다. [110] 김경아에서 개명 [111] 안주연에서 개명 [112] 최강OO의 형태가 아닌 경우로는 "무적 LG"를 쓰는LG나 "막강 현대"를 썼던 현대 정도가 있다. [113] 단, 종목 연맹이나 언론에서는 인천 SK 하면 인천 SK 빅스라는 농구단만 해당되었다. 야구는 지역명 없이 SK로만 불렀다. [114] 앞서 서술된 것처럼 창단 첫 해인 2000년의 경우 SK를 새로 창단된 인천 연고팀이 아니라 해체된 전북 연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유산 정도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115] 다만 한계도 있었는데 "인천 SK" 구호를 유독 강조한 탓에 인천 이외 지역으로 외연 확장에 다소 실패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116] 이쪽 역시 과거 현대가 수원시민들에게 제대로 외면받은 것을 반면교사로 연고지 밀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17] 다만 LG의 경우엔 두산과 달리 예전부터 응원가에 서울 LG라는 표현을 자주 썼고, 부르기도 했었다. [118] 연고지 외 팬을 끌어들이자라는 취지로 비인천 팬이 건의했었다. [119] 이 같은 응원단상 배치는 2010년대에 새로 지어진 야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120] 메인 응원단상이 커버하기 어려운 구역에는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미니 응원단상을 만들어 치어리더들을 배치했다. [121] 예를 들면 "86 Tiger, No KIA Just 와이번스, 치고 또 달려 이 분위기를 달궈, 잔챙이들 긴장해둬 바짝, 발빠른 근성 내 flow는 언제나 두발짝, 다시 또 들어선 타석 터지는 문학 함성, 홈런보다 더 값진 번트로 흐름을 탔어" 같은 가사 [122] 한국시리즈의 시구자는 KBO에서 직접 선정. [123] 9회말 2아웃, 고등어, 해피송, 슈퍼맨의 '오늘도 달리고달리고달리고달리고' 부분에서 따온 도루 응원가 등. 의외겠지만, "왼쪽~ 오른쪽~ 워어어~ 투! 혼! S! K!" 이 응원가도 노라조의 '꿀 한 통 설탕 한 스푼' 이란 노래에서 따왔다. [124] 여담으로 김광현은 LG의 이상훈 선수를 가장 좋아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