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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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장르 | 대체역사, 정치, 전쟁 |
저자 | 박대성 |
출판사 | 자음과 모음 |
단행본 권수 | 9권 (2005. 01. 31.) |
연재 기간 |
1부: 2003. 08. 31. ~ 2004. 06. 03. 2부: 2004. 06. 10. ~ 2004. 12.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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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소설. 저자는 박대성.2. 발매 현황
1904 대한민국은 2003년 8월 31일 조아라에서 '시노부'라는 필명으로 연재했다. 조아라에서 연재했을 때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1, 2부 합쳐 조회수 150만 회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지금도 조아라에서 볼 수 있지만 단행본 출간 이후 작가가 단행본에 실린 분량을 모두 삭제하거나 짤막한 줄거리만 적어두었고 그마저도 최후반부는 다음 카페에서[1] 연재했기 때문에 조아라에서 볼 수 있는 화는 2부 62회 부터 75회까지다. 본래 계획은 5부 25권 구성으로 대한민국의 여섯 황제를 다루는 것이었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2부도 완결하지 못하고 연재가 중단되었다.연재가 시작되고 3개월쯤 뒤 출판사 자음과 모음을 통해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단행본 뒷장에는 1904 대한민국 카페에서 팬들이 "정말 한국이 1904년으로 날아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주제로 쓴 가상 기사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2부에는 배달연합의 지도와 등장하는 실존인물에 대한 짤막한 소개도 덧붙였다. 인터넷 연재가 중단되면서 단행본도 9권까지만 나오고 발매 중단되었다. 지금은 모두 절판되었기에 볼려면 중고로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수 밖에 없다.
- 1부( 광무황제편)
- 1권(2003. 11. 18.)
- 2권(2003. 11. 21.)
- 3권(2003. 12. 01.)
- 4권(2004. 01. 13.)
- 5권(2004. 06. 24.)
- 2부( 융희황제편)
- 1권(2004. 08. 25.)
- 2권(2004. 09. 30.)
- 3권(2004. 11. 05.)
- 4권(2005. 01. 31.)
3. 줄거리
2004년 5월, 통일한국에 계속되는 지진과 이상 현상들. 그러던 어느 날 대한민국은 100년을 거슬러 1904년으로 돌아가게 된다. 서구 열강에 대한 대한민국의 입장은 하루아침에 바뀌게 되는데……. 막강한 군사력과 기술력, 그리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정보력을 무장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격동의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21세기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교보문고 책 소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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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개
4.1. 광무황제편
4.1.1. 1권
2003년,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갑자기 암살당하자 권력계승을 두고 김정남과 김정철이 대립했지만 원산선 이남에 있던 북한군 10여개 군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평양을 점령, 두 사람을 구금했다. 한국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보고 전군에 비상령을 하달했지만 정권을 장악한 군단장들은 한국에 통일을 제의했다. 북한군 일부 지방군단이 쿠데타에 반발했지만 이미 북한군 주력부대 대다수가 쿠데타에 동참한 상황이라 이들의 반항은 순식간에 진압되고, 북한은 2004년 1월 29일 부로 한국에 흡수통일된다.하지만 2003년부터 시작된 불경기에 휘청이던 한국 경제는 갑작스러운 통일 때문에 더더욱 곤란을 겪게 되고, 많은 국방비를 지출해야 되었기 때문에 국민의 부담은 더 늘었다. 정치는 북한 군단장과 남한 정치인들의 대립으로 혼란스럽고 서울로 몰려든 북한군 퇴역병들 때문에 밤마다 총성이 들릴 정도로 치안이 악화되었으며 지역감정 역시 악화되었다. 이러던 중 지진마저 시작되어 통일한국에서는 세기말적인 정서가 널리 퍼졌고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100년 전인 1904년, 피폐해져만 가는 대한제국의 현실에 좌절하여 명성황후의 묘로 찾아가 눈물을 흘리던 고종은 명성황후의 혼을 만나게 된다. 혼을 만난 것도 평범한 일은 아닌데 그녀는 자신과 선대왕들이 죄값을 치르는 조건으로 강한 나라인 대한민국 국민들이 온다고 주장한다. 물론 고종은 이를 믿지 않았다.
통일이 이뤄지고 얼마 뒤인 2004년, 원인불명의 대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어느날 5.0리히터 규모의 대규모 지진이 하루동안 한반도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공포스러운 하룻밤이 지나가는 동안 다행히도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서서히 발견되는 이상한 징후들.[2] 확인 결과 1904년 당시 덕수궁 부지를 제외한 2004년의 한국은 통째로 1904년으로 이동한 것이었다.[3] 이후 한국이 세계를 어떻게 바꿔 나가는가에 대해 기술한 소설이 바로 이 <1904 대한민국>이다.
상황을 파악한 대한민국 대통령은[4] 한국이 미래에서 타임슬립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군을 동원하여 외국인들의[5] 입국을 엄금하고 국내에 체류하던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관광객, 한국에 거주하지만 귀화하지 않은 이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격리수용소에 감금한다.[6] 한국으로 관광 온 자위대원 이테와 CIA 요원 롭 등은 비밀리에 한국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파견하여 국외로 탈출한 외국인들을 모조리 없애려고 한다. 그리고 개헌 없이 고종을 황제로 옹립하여 국가체제를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고,[7] 석유, 식량 등 부족한 자원을 위해 일본과 만주 등지로 진출을 시도한다.
아직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뀐 것을 모르는 일본 제국은 제3함대를 진해만으로, 뤼순에 있는 일본 제1, 2군과 본토에 있는 7개 사단을 한양으로 진격시킨다. 하지만 북상하는 제3함대는 하푼 대함 미사일에 모조리 갈려나가고, 압록강에서 들어오는 일본군도 한국군의 압도적인 포병화력에 섬멸당한다. 일본 본토에서 7개 사단을 싣고 한국으로 오던 일본 수송함대 역시 F-4 25대와 Su-25 25대에[8] 섬멸당하고, 한국 시민들은 국군의 승전에 들떠 "황제폐하 만세!"를 연호했다.[9]
초전에서 장병 13만 명을 잃은 일본 제국은 뒤이어 고종이 보낸 최후통첩문을 받는다. 그 내용은 을미사변의 관련자를 한국으로 압송할 것, 국왕의 호칭을 천황에서 일왕으로 바꿀 것, 앞으로 파견할 한국 외무장관을 국빈으로 대우할 것, 전쟁배상금을 지불할 것, 한국으로 와서 자신 앞에 삼궤구고두례를 올릴 것이었다. 당연히 일본 제국은 전쟁을 준비하고, 이노우에 가오루를 한국에 파견하여 을미사변에 연관된 친일 조선인을 송환하는 것과 외무장관을 귀빈으로 모시는 것[10] 외에는 모조리 받아들일 수 없다는 메이지 덴노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고종은 일본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알겠다며 그 자리에서 선전포고한다.
연합함대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지휘 아래 본국에 있던 군함과 러일전쟁에 투입되었던 주력함을 모조리 소집해 한국과의 결전을 준비한다. 한편 뤼순에 고립되어 있던 러시아 제국군은 일본군이 갑자기 사라지자 의아해하면서도 조선을 손에 넣기 위해 남하하지만, 남하 도중 국군에게 갈린 일본군 잔해를 보면서 잠시 주춤하다가 3천 명을 선발대로 보내어 다시 진격한다. 그러나 계곡에서 일본군으로 위장한 국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7만 명이 전사하고 2만 명이 포로가 되는 대패를 겪고 물러난다.
한국 정부도 일본을 손에 넣기 위해 SR-71 블랙버드를[11] 동원하여 일본을 정찰하고, 민항기를 징발하며 흑우(黑雨) 작전에 투입될 공수부대원 3만 5천 명을 소집했다. 여기에는 황태자 이척 역시 신분을 숨기고 1명의 공수부대원으로써 훈련을 받고 있었다.
모두 모인 일본 연합함대는 쓰시마 섬에서 대기하다가 한국 해군을 격멸하고 진해만을 점령하여 대한해협의 제해권을 확보하라는 천황의 명령을 받고 북진한다. 한국 해군 역시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동해급 초계함, 참수리급 고속정, 장보고급 잠수함 등을 동원하여 일본 해군을 요격할 준비를 마쳤지만,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을 존경하는 해군참모총장 도일균 대장의 지시로 연합함대 기함 미카사와 연합함대 사령부는 UDT를 동원하여 모두 생포하기로 결정한다.
1904년 5월 30일, 동해급 초계함 1척이 일본군 초계함을 격침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고속정과 초계함대가 빠르게 돌진하여 연합함대 함렬 깊숙이 침입, 우월한 기동성과 아군 오사를 우려한 연합함대의 소극적인 포격 덕분에 일방적으로 연합함대를 농락한다. 연합함대가 공격을 위해 산개하자 고속정들은 일제히 공격하여 가스가급 장갑순양함 가스가를 엑조세로 대파시켰다. 그때 UDT 대원들을 실은 링스 헬기가 전장에 도착하자 미카사 나포에 투입되기로 되어 있던 고속정들은 일제히 미카사로 돌진하고, 연막탄을 살포하여 적의 공격을 차단했다. 일본 해군 수병들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UDT 대원들에게 패배하고, 미카사는 그대로 국군에게 나포되어 아군을 공격하다가 제주도로 끌려간다.
기함이 나포당하자 쩔쩔매던 연합함대는 그대로 한국 해군의 공격에 노출당했다. Mk.46 경어뢰와 엑조세, 하푼, 76mm 컴팩트포가 일제히 일본군을 공격했고 연합함대는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단 30여분 만에 궤멸당한다. 납치당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을 대신하여 함대를 지휘한 가미무라 중장은 간신히 후퇴하고 전력을 점검해 보니 출항할 때의 20%만 남아 있었으며, 성한 함정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 매복해 있던 장보고급 잠수함 5척이 후퇴하는 연합함대를 공격하고, 가미무라와 참모진들은 도망치지도 못한다는 걸 깨달으며 모두 자결했다. 그와 함께 임시기함을 맡았던 이즈모급 장갑순양함 이즈모도 바다에 가라앉았다. 연합함대는 단 1척을 제외하면 모두 전멸당하는 처참한 패배를 겪었다. 한편 도일균 대장은 포로가 된 도고 제독에게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교섭을 중재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도고 제독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대참패를 겪은 일본 제국 정부는 주전파를 대표하는 노기 마레스케 육군 대장과 강화파를 대표하는 이토 히로부미로 나뉘어 대립했다. 그러나 메이지 천황은 전의가 꺾이기는 커녕 흑우를 직접 맞아보이겠다며 전쟁을 결의한다. 하지만 고토쿠 슈스이가 운영하는 마이니치 신문을 비롯해 사회주의 성향의 신문들이 천황 체제 전복을 위해 한국에서 뿌린 삐라를 근거로 언론통제를 뚫고 연합함대의 패전 소식을 전했으며 일본 전역에서는 노동자들이 봉기하기 시작한다.
한편 한국을 탈출한 이테를 비롯한 외국인 일행은 한국 정부의 마수로부터 어린 마오쩌둥을 보호하려고 했고, 중간에 황비홍을 만나 한국 국정원 요원들의 추격을 뿌리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과거 덕수궁을 경비했던 무사 박형국을 파견했고, 일행 중 한 명이던 사티아가 배신하면서 싱가포르에서 국정원 요원들에게 위치가 발각당하고 롭은 항전하다가 국정원 요원들에게 죽는다.
4.1.2. 2권
황궁으로 강하한 한국 공수부대원의 공격에 황궁을 지키는 호위병들은 순식간에 패배하고, 메이지 천황은 한밤중에 몰려온 공수부대원들에게 포로가 되어 항복,[12] 황태자 이척에게 삼배구고두례를 올려 항복의 뜻을 표한다. 천황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한국 국민들은 열광하고, 극우파들은 천황 일가를 모두 처형하고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하라고 시위를 벌인다. 일본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주요 관공서, 군부대, 신문사들이 모두 공수부대원들에게 점거당하여 패배하고, 국군은 일단 보도규제를 통해 전날의 소란은 그저 군부대의 비상훈련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배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메이지 천황은 스스로 칭호를 천황에서 일왕으로 낮추고, 한국을 형님의 나라로 모시겠다는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몇몇 사람들이 천황의 결정에 반발하여 황궁을 찾았지만 이미 황궁은 국군 병사들로 가득찬 뒤였다.대국민담화문 이후 한국과 일본은 '도쿄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은 문자 그대로 을사조약의 주어와 목적어만 바꾼 것으로 일본을 한국의 보호국으로 만드는 조약이었다. 패배한 메이지 일왕은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다가 자결하고, 강경파의 거두 노기 마레스케 대장도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왕위에는 한국에 가서 동생의 예를 갖추고 귀국한 일왕의 아들 요시히토가 다이쇼 일왕으로 즉위했으며, 고종은 일본 왕실에게 '부여'라는 성씨를 하사했다. 그런데 원호 사용을 금지하자 일본 내에서는 반발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한국은 한국과의 친밀감을 높이는 영화를 찍어서 일본에 수출하여 일본의 반한감정을 가라앉혔다.
국군에게 패한 러시아 극동총독 유리 프리루코프는 극동함대를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 일본군과 다시 한번 싸우기 위해 분주했다. 그런데 본국으로부터 크로파트킹 장군이 장병 15만 명과 함께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공명심에 사로잡힌 유리 총독은 크로파트킹이 오기 전에 전공을 쌓을 생각으로 출항을 서둘렀다. 하지만 러시아군 기지에 잠입한 HID 요원들에게 출항 정보가 새어나가고, 국군은 주력이 된 일본군에게 한-1 소총과[13] 배달-50을[14] 빌려주고 국군의 막강한 화기를 시연하면서 러시아를 막아낼 준비를 했다.
한편 한국과 일본은 청나라에 사신을 보낸다. 한국 사신으로 온 외무부장관 송영재는 배달민족의 옛 영토를 모두 회복하고자 하니 만주국과 몽골국을 독립시킬 것을 요구했다. 서태후가 반발하자 이번에는 일본 사신 고토쿠 슈스이와 이토 히로부미가 나서 반박하고, 여기에 광서제까지 나서면서 궁궐이 시끄러워진다. 결국 서태후가 만주든 몽고이든 마음대로 빼앗아보라며 말을 자르자 사신단들은 더 이상 대화할 가치를 못 느껴 서태후를 달래기 위해 준비한 선물을 주고 귀국해버렸다.
1904년 7월 23일 러시아 극동함대는 해가 지자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출항하고, 뤼순에 있던 20만 병력은 참모장 보리스의 지휘 아래 똑같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하지만 극동함대는 국군에 편입된 전함 미카사와 미사일 어뢰정 전대들에 농락당하다가 아까운 군함만 잃은 채로 뤼순으로 돌아가고, 보리스는 라오양 부근에서 일본군과 조우하여 전투에 돌입한다.
러시아군 기병대가 돌진하자 국군은 플레쳇탄을 탑재한 로켓포를 2.5톤 트럭에 설치하여 일방적으로 러시아 기병대를 학살하고 여기에 구룡 다연장로켓과 K-9 자주곡사포가 불을 뿜으며 러시아군을 학살했다. 5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도 돌진하여 러시아군과 맞붙고 일부 러시아군이 후퇴하여 트럭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자 국군 트럭은 일단 빠졌다가 러시아의 측면을 친다. 전방에는 신형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이 몰려오고 측면에서는 국군이 플레쳇탄을 쏘자 러시아군은 80%에 달하는 사상률을 기록한 채로 뤼순으로 후퇴했다.
패배한 러시아군은 후퇴하면서 한-1 소총을 노획했는데 러시아 정부는 총에 MADE IN USA라고 적힌 걸 보고 미국이 일본에게 신무기를 제공했다고 판단하여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일본에 제공한 무기들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항의 서한을 보냈다.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는 미국 정부는 스페인과 일본을 의심했지만 일본 공사는 러시아의 모함이라고만 주장했다. 의심이 거세질 걸 우려한 미국 정부는 적당한 때에 일본과 러시아를 화해시키려고 한다.
한편 1904년 8월 11일 모항 리바우에서 출발한 러시아 발틱함대는 8월 16일 도거뱅크 해협에서 영국 어선단을 일본군 수뢰정대로 착각하여 모조리 학살하는 사고를 쳤다. 분노한 영국 정부는 배상금 65,000 파운드를 요구하고 러시아를 향한 유럽의 여론이 악화된다. 발틱함대 사령관 엔스키 중장은 이미 사고를 친 이상 공적을 세우면 무마할 수 있다고 일본으로 가는 길을 서둘렀다.
1904년 8월 20일, 후쿠시마현에서는 마쓰리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제9사단 2연대 1대대도 마쓰리에 참여하는데,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 잠입해 있던 일본의 비밀결사 신백호대 소속 무사들이 칼을 빼 들고 무방비 상태였던 국군 병사들 수십 명들과 대대장을 살해했다. 급히 5분대기조가 출동했지만 무사들의 빠른 움직임에 3명 밖에 죽이지 못하고 애꿎은 민간인 70명이 사망했다. 그러자 한국은 일본정부를 움직여 야간통행금지 및 무기소지자 처벌 등 비상대책을 시행한다.
기습에 성공한 신백호대의 대장 오카 토모카츠는 검은 정장을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국군으로부터 빼돌린 M1 개런드를 지급받고 사회민주당 당사를 공격할 것을 부탁받는다. 이들은 9월 2일 소총훈려을 받은 무사 100여명을 이글고 사회민주당 청사를 습격했지만 이는 사회민주당 총재 고토쿠가 짠 함정이었다. 총의 개머리판에는 소형 폭탄에 설치되어 있었고 총을 든 무사들은 폭발에 히말려 중상을 입었다가 숨어있던 HID 요원들에게 전멸당한다.
8월 26일 한일연합군은 뤼순을 공격하여 유리 총독을 비롯한 러시아 극동총독부 지휘부를 포로로 잡았다. 서쪽에서 진군하던 크로파트킹은 뤼순 함락 소식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군을 재정비했다. 50만 대군이 집결하자 크로파트킹은 일부 병력만 블라디보스토크에 남겨두고 뤼순을 탈환하려고 했지만 한국은 고구려가 수나라와 싸울 때 중국 민중들이 부른 노래를 퍼트려 러시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몽골에 사신단을 파견하여 몽골 지도자들에게 한국, 일본, 몽골, 만주가 하나되는 배달연합을 건설하자고 제안했고 그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까지 제시하자 오이도프와 타알라트를 비롯한 몽골 지도자들은 배달연합 건설 계획에 찬동한다.
그러는 사이 일본 제3군은 한국의 명에 따라 긴 참호를 파서 러시아의 돌진을 저지한다. 같이 1904년으로 넘어온 러시아 학자들을 써먹기 위해서는 그들의 최대한 달래야 했기에 한국은 최소한의 사상자로 러시아군을 패퇴할 계획을 짠다. 우선 러시아군에게 더 이상 전진하면 1시간마다 4명씩 죽을 거라고 경고한 뒤, 오토바이를 탄 저격조를 편성하여 포병을 주 타겟으로 삼아 1시간마다 4명씩 저격했다. 러시아군의 사기는 눈에 띌 정도로 떨어졌지만 크로파트킹은 꾸역꾸역 봉천까지 내려왔고, 일본군이 참호를 파서 숨어있다는 보고를 받자 병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방어선을 뚫으려고 했다. 하지만 국군의 압도적인 포병 화력과 철조망으로 무장한 방어선 앞에서 러시아군은 몇 차례나 패배하여 5만 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물러났다.
한편 발트 함대는 전쟁에 협조하는 영국과 독일 덕분에[15] 예정보다 빠르게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발트 함대는 예상보다 순조로운 항해의 의문을 가지면서도 빨리 크로파트킹을 돕기 위해 대한해협을 지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 밑에는 한국 잠수함들이 미행하고 있었고 때가 되자 UDT 요원들이 일제히 발트 함대의 스크류를 파괴했다. 전함 미카사를 발견하고 전투에 돌입하려던 발트 함대는 갑자기 모든 배의 스크루가 고장나자 당황하고, 그 사이 주포를 겨누는 전함 미카사와 함께 한국 해군 고속정들이 발트 함대를 향해 돌진한다.
4.1.3. 3권
발트 함대에 돌입한 한국 고속정 전대는 40mm 기관포와 유도탄으로 함교와 함포를 잇따라 파괴한다. 황금을 가득 실은 나히모프를 제외한 발트 함대는 고속정들에게 농락당하다가 한국군의 최후통첩문을 받게 된다. 엔스키 중장이 항복을 거부하자 국군 해군은 잠수함으로 러시아군 군함들을 하나하나 격침시키고, 엔스키 중장은 항복한다.연거푸 패배한 러시아는 미국의 중재 하에 포츠머스에서 일본과 강화회담에 나선다. 일본 외상이라는 명목 하에 대표로 나선 한국 외무부장관 송영재는 러시아 외상 비테에게 한국, 만주, 몽골에서 물러날 것, 현재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과 사할린 섬 전부를 할양할 것, 전투에서 사로잡은 군함과 포로를 송환하는 대신 동시베리아를 할양할 것을 요구했다. 비테가 격분하자 송영재는 만약 응하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하바롭스크를 공격할 뿐이라고 응수했고, 해당 지역의 역사적 연고를 근거로 할양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비테는 일본측이 준 시간 내에 답을 하지 못했고, 포츠머스 회담은 결렬된다.
하지만 어려운 국내 사정과 국제사회에 고립된 러시아는 한국의 중재 하에 다시 한 번 회담장에 나오고, 일본과 간도협약을 맺어 동시베리아와 만주를 한일 양국에 할양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불만은 폭발 일보 직전이었고, 여기에 한국과 볼셰비키당의 공작까지 겹쳐 1905년 1월 22일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난다.
한편 일본에서는 신상제가 열려 사회민주당 총재 고토쿠 슈스이와 이토 히로부미 등 여러 명사들이 모였다. 그런데 고도쿠가 연설하던 중 숨어있던 신백호대 무사들이 고토쿠를 공격했다가 특수 훈련을 받은 광무부대원(구 HID)들에게 여럿 사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안 그래도 수상 가쓰라와 대립 중이던 고토쿠는 가쓰라를 신백호대의 배후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일본 정부는 분열된다. 그 와중에 광무부대원 박형국과 김학현은 일본 대학생을 을미사변에 동참한 야쿠자라고 착각해 일본인 20명을 살해하는 '긴자사건'을 일으킨다. 가쓰라는 의혹을 벗기 위해 신백호대 대원들이 있다는 아사마산을 비밀리에 키운 사병으로 공격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사병들은 똑같이 첩보를 듣고 아시마산에 오른 국군에게 궤멸당한다. 가쓰라는 수상에서 대역죄인이 되어 온갖 고문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만주를 장악한 한국은 예정대로 몽골의 부족들을 만나 독립을 부추긴다. 몇몇 부족을 제외한 대다수 몽골인들이 독립에 찬성하면서 한일 연합군 5만 명이 몽골에 진입하고, 몽골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군은 양군의 협공에 밀려 몽골에서 쫓겨난다. 청나라는 직례총독 원세개와 신건군 15만 명을 파병해 몽골의 독립을 저지하려 하지만 만리장성 쪽에 있던 선견대는 일-몽 연합군과 한국군이 설치한 전기철조망에 걸려 궤멸당한다. 거기에다 한국이 흑사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벼룩을 청군 진영에 뿌리면서 다퉁에 주둔한 신건군은 흑사병에 시달려 3만 명이 병사한다.
그렇게 오도가도 못하게 된 원새개에게 한국에서 보낸 사람이 비밀리에 접근했다. 의사로 위장한 특사 윤덕경은 몽골의 독립을 승인해주면 흑사병을 치료해주겠다고 제안했고, 더 나아가 원새개가 황제가 될 수 있도록 한국이 돕겠다고 제안했다. 그 제안에 넘어간 원새개는 몽골의 독립을 승인하고, 몽골 초원에 있던 한국 고구려부대는 오이도프 등 원새개가 오면 내응하도록 밀통한 몽골 부족장들을 숙청한다. 서태후는 원새개에게 패전 책임을 물으려 하지만 능수능란한 원새개의 언변에 설득되어 그를 다시 한 번 믿어본다.
그런데 한일 공동통치령이 된 만주로 퉁구스계 종족들이 대거 이주하고, 이들이 만주국이라는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나라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만주를 공격하려고 한다. 하지만 원새개는 직책까지 내던지며 출병을 반대하고, 서태후와 광서제는 원새개를 퇴출시키면서까지 출병을 결행한다. 그러나 이미 청군은 원새개의 부하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이들은 원새개의 밀명이 떨어지자 총사령관 임발천을 암살하고 공개적으로 청 조정에 반기를 든다.
자신의 집에서 사태를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조장한 원새개는 이쯤 되자 행동에 나선다. 그는 요동에 집결한 청군 주둔지로 가서 반란을 지휘하고, 북방과 남경에 있는 신건군 더러 북경을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남경에 집결한 신건군은 한국과 일본, 중국을 오가며 한국과 증국영의 협조를 받은 손문의 공격을 받는다.
한편, 한국 내부에 남아 있던 구 친일파 가문들은 일본을 부흥시키기 위해 '긴자사건'을 배후조종하고 손문을 후원하는 등 분주했다. 그러나 이들의 꼬리가 정보부대 '치우'에 포착당했고, 한국 정부는 비밀리에 이들을 모두 숙청시키려 든다. 그리고 영국으로 도망친 이테 일행은 국정원 요원들에 의해 모조리 납치당하고, 유일하게 잡히지 않은 이테는 바이츠만 박사의 호의 아래 미국으로 가다가 토마스 에디슨을 만나 그의 조수가 된다.
4.1.4. 4권
난징에 상륙한 국군 해병대는 AAV-7A1 상륙장갑차를 타고 왕하녕이 지휘하는 20만 신건군을 공격, 구식 무기로 무장한 청군을 도륙한다. 상군 5천 명이 공세에 가담하자 신건군은 패퇴하고, 왕하녕은 투항을 권고하는 한국군의 방송을 제대로 못 들었다가 전사한다. 국군과 상군은 난징을 점령하고 손문은 강남 지역들을 규합하여 중화민국을 건국한다. 강남을 장악한 손문은 더 나아가 원새개가 장악한 화북도 손에 넣으려고 하지만 한국의 반응은 미온적이었고, '치우'의 요원 심기영은 손문이 고토쿠와 접선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한국을 배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한편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나이는 신백호대의 대장 야부나카에게 우에노역에서 열리는 공연에 참석한 귀빈들을 모두 죽이라는 마지막 명령을 했다. 야부나카는 신백호대를 이끌고 공연장에 잠입하는데, 문득 귀빈석을 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자나 일본 사회민주당 총재 고토쿠 슈스이임을 깨달았다. 야부나카는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함정이든 아니든 다 죽인다는 심정으로 귀빈석을 급습, 한국 황태자 이척에 부상을 입히지만 박형국에게 패배하여 죽는다. 고토쿠는 한국에 혼란을 일으키고 신백호대도 처리했으니 만족하면서 사회민주당 당원들과 비밀리에 접선하지만 뒤늦게 달려온 '치우'의 요원 명진수에게 암살당한다.
1905년 4월 원새개가 이끄는 몽골정벌군과 만주정벌군이 회군하여 40만 대군으로 북경을 포위했다. 원새개는 중국 전토에 전문을 보내 신건군 아니면 청 조정을 선택하라고 압박했고, 지방관들은 신건군을 택하거나 중립을 지켜 청 조정을 버린다. 거기에 서구의 대사관들도 난징으로 내려가거나 문을 걸어잠그는 등 청 조정과 연을 끊고 손문이나 원새개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분노한 서태후는 금군 1만 명으로 하여금 반도를 제압하라고 지시했지만 금군은 처참하게 패배한다. 원새개는 북경을 점령하여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광서제와 서태후는 신건군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돌입한 한국군에 납치당한다.
납치당한 광서제는 한국의 제안에 따라 만주국의 왕위에 오르고, 고종에게 삼궤구고두례를 갖춘다. 북중국과 신장, 티베트, 사천성은 원새개가 건국한 황(黃)나라가 되고, 강남은 손문이 이끄는 중화민국이 되며 만주는 배달연합의 일원인 만주국이 들어선다. 열강들은 성향에 따라 세 나라 중 하나를 승인했고, 상하이는 어느 나라도 소유하지 않고 배달연합군이 관리하는 도시가 되었다.
이후 3년 동안 한국은 수도를 집안으로 옮기고 경제, 기술, 군사 부문을 모두 발전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비밀리에 필리핀, 인도네시아, 시암 등 동남아 국가들과 접촉하여 서구 열강을 반대하는 동남아시아 연합군을 창설, 가장 먼저 네덜란드가 지배하는 인도네시아를 공격한다. 허약한 네덜란드군은 배달연합이 대놓고 지원하는 독립군을 이길 수 없었고, 미국이 지배하는 필리핀 역시 독립의 열기가 거세진다. 하지만 미국은 멕시코를 30년간 통치해온 포르피리오 디아스 독재정권이 붕괴한 여파로 남부가 위태로워 필리핀 독립전쟁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고, 필리핀 주둔군은 독립군 대부분이 인도네시아로 빠진 틈을 타 공세를 시작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배달연합군이 개입하여 패배한다. 동남아 국가 중 인도네시아는 독립군과 배달연합이 반분하지만 현지에서는 민족주의 기류에 의해 배달연합군의 철군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한국에서도 동남아 전쟁에 대한 반전여론이 득제한다.
한편 이테는 1905년 에디슨의 조수가 된 뒤로 3년 동안 일했지만 에디스는 월급은 물론이요 일본으로 가는 티켓조차 주지 않았다. 분노한 이테는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갈 생각으로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개발한 소켓을 알려준 대가로 일본으로 가는 티켓을 받아 일본으로 떠난다. 그런데 3년 만에 온 일본은 이미 한국화가 상당부분 진행되어 있었고, 이테는 몰락한 조국에 분노하여 사고를 쳤다가 '메두사'가 이끄는 한국의 조폭과 접촉, 그들로부터 아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인들을 모조리 죽이겠다며 원자력 발전소 테러를 계획한다.
4.1.5. 5권
필리핀에 상륙한 동남아시아 연합군은 필리핀 곳곳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미군의 요충지 인트라무로스를 포위, 수문을 폭파시켜 함락시키는 데 성공한다. 뒤이어 프랑스가 지배하는 베트남, 라오스가 해방되고 프랑스는 동남아시아에서 물러나고 미국은 필리핀을 재탈환하려고 하지만 독일과 일본의 제지와 후임 대통령 태프트의 성향 때문에 필리핀에서 물러난다. 그런데 영국령 버마는 동남아시아 해방물결 속에서 해방되지 않았고, 영일동맹을 깰 수 없던 배달연합은 은근슬쩍 지원하던 버마의 독립운동가들을 배신하고 전부 배달연합의 영토로 납치한다.한국에 도착한 이테 이치로는 신백호대의 잔존 대원들과 함께 폭약을 들고 영일 원자력발전소를 공격하려 하지만,[16]그를 알아본 박형국과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교전 중 박형국은 테러범의 손에 죽고 이테는 은검을 인질로 삼다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은검이 단검을 찔러 죽는다. 지지부진한 동남아 전쟁의 전황과 측근 비리사건, 원자력발전소 테러 건으로 노우현 정권을 위기에 몰리고, 궁지에 몰린 노우현 수상은 고종에게 공개석상에서 지지해줄 것을 요청한다. 고종이 노우현을 지지한다고 연설하자 제1야당 한국당에서 황제폐지를 발의하고, 한국의 국론을 둘로 쪼개진다. 격론 속에서 국민투표가 시행되었고 황제위 폐지는 국민들의 70%가 반대하면서 무산된다.
한편 '어르신'은 비밀리에 엘리 박사를 죽음으로 위장해 러시아로 빼돌려 라스푸틴과 접촉시킨다. 그리고 한국의 치우조는 라스푸틴이 한국인들과 자주 접촉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러시아에 잠입하여 라스푸틴을 제거하려고 한다. 하지만 라스푸틴은 독을 먹어도 죽지 않고, 총에 머리가 뚫려도 죽지 않는 괴물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 모습에 치우조는 깜짝 놀라지만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야 모든 행적이 라스푸틴의 속임수였다는 걸 깨닫는다.
황실폐지 법안은 국민의 과반수가 반대하여 무효가 되었지만, 이제 쉬고 싶은 고종은 황제위를 태자 이척에게 넘겨준다. 1910년 1월 1일 고종은 정식으로 이척에게 양위하고 이척은 융희황제로 즉위한다.
4.2. 융희황제편
4.2.1. 1권
1912년, 그리스,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 발칸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면서 제1차 발칸전쟁이 발발한다. 용맹한 투르크 전사들은 각지에서 쳐들어오는 발칸동맹군에 맞서지만 모조리 패배하고, 오스만 제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다. 불가리아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되었지만 참전국들은 영토 분할을 두고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오스만 제국 내부에서는 세르비아와 밀약을 맺은 청년 튀르크당의 리더 엔베르 파샤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한편 세르비아와 독일은 전투를 위해 신시로 유학간 전투기 조종사들을 급히 귀국시킨다.유럽이 발칸전쟁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중국에서도 전운이 감돈다. 중화민국 총통이 된 손문은 장족, 묘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에게 남녕 땅을 떼어주어 독립시켜 국제사회에 중화민국의 도덕성을 과시했다. 그리고 원새개가 다스리는 황국에게 황국이 다스리고 있는 신장위구르를 독립시키라고 청원했다. 분노한 황제 원세개는 중화민국의 2인자 송교인을 암살하자는 단기서의 제안을 받아들여 송교인을 상하이역에서 암살한다. 분노한 손문은 20만 대군을 일으켜 전쟁을 선포하고, 원새개 역시 위홍을 사령관으로 삼아 병력을 국경에 집결시킨다. 하지만 개전 직전 배달연합이 2개 전차사단을 투입시켜 강제로 전쟁을 중단시켜버렸다.
제국의 정권을 장악한 엔베르 파샤는 신시를 방문하여 한국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의 속셈을 다 꿰뚫어보고 있던 융희황제는 도리어 엔베르 파샤가 세르비아와 밀통하여[17] 쿠데타를 일으킨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노우현의 뒤를 이어 집권한 오재용 수상은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에 영토를 일정 부분 넘겨준 다음 항복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항복하면 상황이 바뀔 것이며, 만약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한다면 그때는 배달연합이 오스만 편에 서서 참전하겠다고 약속한다.
유럽 각국과 접촉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의 불씨를 지피는 한국은 스위스로 '치우조' 요원들을 파견하여 블라디미르 레닌을 신시로 모셔오고, 대선에서 흑역사대로 우드로 윌슨이 승리하자 루스벨트 암살을 위해 파견한 요원들을 철수시킨다. 또한 라스푸틴을 암살하기 위해 다시 러시아로 요원들을 보냈지만 이미 '어르신'과 엘리 박사의 수작으로 라스푸틴이 암살당하고, 러시아 황제의 조카사위 유스포프 후작마저 암살당한다. 상황이 꼬인 걸 눈치챈 요원들은 급히 철수하지만 기차 안에서 러시아군에게 체포당하고,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크게 악화된다. 그러나 한국은 요원들을 파견해 황후 앞에서 황후가 라스푸틴과 불륜을 저지르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협박했고, 거기에 응할 수 밖에 없었던 황후는 니콜라이 2세에게 라스푸틴을 암살한 범인은 유스포프라고 거짓 진술한다.
한편 발칸 각국은 여전히 영토문제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몇 번이나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오스만은 불가리아에게 접근하여 동트라키아를 제외한 모든 발칸 영토를 불가리아에 양도할 테니 동맹을 맺자고 제안한다. 엔베르 파샤는 여기에 루마니아 역시 불가리아를 돕겠다고 했으며 불가리아 대표 마르코프에게 거액의 금전을 주었고, 여기에 넘어간 불가리아는 3만 명에 달하는 전군을 둘로 나누어 세르비아와 그리스를 단시간 내에 정복하려고 한다. 하지만 불가리아의 배신을 이미 파악했던 세르비아와 그리스는 불가리아 침공군의 두 배에 달하는 전력으로 불가리아의 침략을 막아냈고, 더 나아가 불가리아를 침공한다.
숫적 열세에 밀린 불가리아는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여 수도 소피아를 보호하는 최종 방어선마저 무너질 위기에 놓이지만, 독일 제국이 공군을 지원하여 세르비아군을 폭격하면서 겨우 한숨 돌린다. 하지만 협조를 약속했던 오스만과 루마니아가 배신하자 불가리아는 전의를 잃고 평화조약을 맺어 영토를 잃었다. 전쟁이 끝나자 은밀히 불가리아를 지원했던 독일은 불가리아에게 손을 내밀고,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전쟁을 조장하려고 한다.
4.2.2. 2권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일명 '유럽대전'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자 한국 정부는 유럽 전역에 사실상 여행금지를 선포한다.[18] 그리고 한국 정부는 영국, 러시아와 밀약을 맺고 위구르의 이권을 두 나라와 갈라먹기 위해 위구르 독립운동을 지원하고,[19] '어르신' 역시 신시에서 군사 훈련을 받던 호불청(모택동)에게 황국의 지도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비밀리에 위구르에 파견, 한국과 함께 위구르 독립운동에 나서게 한다. 위구르 지역이 시끄러워지자 황제 원새개는 청해성장 장작림에게 신건육군 7만 명을 주어 위구르 독립운동을 진압하도록 한다.호불청과 한국 요원들이 위구르 독립운동을 지원할 무렵 위구르의 전력은 구식 화기 또는 냉병기로 무장한 위구르 독립군 1만 명, 티베트에서 온 티베트군 1만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한국은 이번 위구르 분쟁에서 무관해야 했기 때문에 대놓고 무기 지원을 할 수 없었는데, 치우조 요원 김예진은 한국군 중령으로 위장하여 장작림이 있는 신건군 기지를 방문, 충고하는 척 하며 장작림의 군대를 한 곳으로 모으고, 넉 달 동안 땅을 파서 신건군 기지 지하에 C4 폭약을 매설한다. 때가 되자 위구르군은 폭약을 터뜨려 신건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아내 장해영을 잃은 장작림은 황급히 도주하다가 호불청이 이끄는 기병대 300명에게 붙잡힌다.
신건군이 대패하면서 황국은 육군의 절반을 잃고, 위구르 독립군은 장작림이 관할하던 창해시까지 점령한다. 독립군들은 1914년 8월 23일 우루무치시에서 위구르 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하고 한국더러 위임통치를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여기에 한국이 응하여 몽골에 있는 보병사단 2개를 위구르로 이동시키면서 황국은 위구르를 공격하기는 커녕 남은 영토도 지키기 급급한 처지가 되었다.
한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흑역사대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사라예보를 방문한다. 그런데 오재용 수상은 여기에 언제든지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명분을 얻기 위해 의왕 이강도 참석하라고 제안했고, 의왕은 고민 끝에 사라예보로 가기로 결정했다. 오재용 수상은 의왕의 안전을 위해 경력과 실력 모두 검증된 엘리트 요원들을 의왕의 경호원으로 배치했다.그러는 사이 세르비아에서는 가브릴로 프린치프를 비롯한 세르비아 강성 민족주의자들이 ' 검은 손'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다.
흑역사대로 ' 사라예보 사건'이 벌어질 1914년 6월 28일. 당초 한국은 전쟁을 통해 이익을 볼 생각으로 국내 평화주의자들의 시위를 무시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도록 뒤에서 불을 지폈으며, 흑역사대로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암살을 방관할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이자 평화단체 '만민회'의 회원 홍성호는 세르비아로 파견된 명진수와 만나 한국 정부의 속셈을 깨닫고 자신이 먼저 암살범들을 죽여 1차대전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명진수는 어차피 대공 부부 암살은 전쟁의 트리거에 불과하며 그들이 죽지 않는다 해도 전쟁은 일어난다고 차갑게 반박한다. 결국 홍성호는 자신이 용써봤자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그저 가까이에서 사라예보 사건을 취재하는데 집중한다. 한편 구 오종흡7연대 소속이었던 북한 출신 정예요원들은 한국당 조창희 의원에게 거두어진 사람들이어서 비밀리에 조창희 의원과 내통하고 있었고, 의왕은 보호하되 대공 부부와 그들을 죽인 자를 죽이라는 비밀 지시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암살 당일, 예정과 달리 의왕이 행사에 참석했다는 걸 알게 된 홍성호는 의왕까지 죽으면 전쟁이 더 확대된다고 여겨 검은 손 단원들을 모두 죽이려 하고, 건물 옥상에서 대공 부부를 조준하던 명진수를 비롯한 치우조 요원들도 의왕의 등장에 당황한다. 홍성호는 하루 전 검은 손 단원들로부터 훔친 권총을 난사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경찰들은 일제히 대공 부부를 보호하기 위해 몰려든다. 당황한 검은 손 단원 네델코 차브리노비치는 들고 있던 폭탄을 상대적으로 경호가 허술한 의왕이 탄 차량에 던지고, 경호원 엄신철이 쏜 총알에 죽는다. 의왕을 향해 날아간 폭탄은 다른 경호원 이상현이 대신 희생하여 막는 데 성공한다.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프란체프는 대공 부부가 탄 차량을 향해 돌진하며 총을 쏘려 했지만 그 전에 홍성호가 먼저 총을 쏴 프란체프를 죽였다. 그 직후 홍성호 역시 오스트리아 기병대가 쏜 총에 맞아 죽고, 치우조는 이렇게 된 이상 대공 부부를 저격해서 죽여버린다. 의왕은 무사했지만 암살 현장에 의왕이 있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국민들은 격분하여 연일 항의 시위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와 전쟁을 준비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선전포고에 이어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영국이 뒤이어 전쟁에 뛰어드면서 유럽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이 시작되자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로 쳐들어가고 독일은 슐리펜 계획에 의거하여 서부전선에 전력을 집중한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개전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독일이 러시아를 향해 선전포고했고 국내에서도 주전론이 거세지자 참전한다. 그러나 타넨베르크로 진군한 러시아 제1군 25만 명은 한국의 첩보를 듣고 반격에 착수한 독일군 3만 명에 의해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궤멸당한다. 한편 한국은 전쟁이 발발하자 중립을 선언하며 다른 비유럽권 국가들도 참전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에 따라 미국 역시 중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에서 할양받은 대마도에서 훈련받던 동남아시아의 독립군들을 다시 인도차이나 반도로 보내 영국령 동남아 식민지를 공격한다.
독일군은 전진에 전진을 거쳐 마른 강 유역까지 진군한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엘리 박사의 조언에 따라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고, 한국은 연합국과 동맹국을 넘나들며 참호전이 일어나도록 유도한다. 그와 동시에 한국은 스페인으로부터 마요르카 섬에 한국군이 주둔하는 것을 허락받아 유럽대전을 관찰하고, 독일을 지원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영국 해군과 충돌하도록 한다. 한편 미국령 하와이에서는 여전히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KKK가 나타나 현지에 사는 한인 50여 가구를 학살한다.
4.2.3. 3권
독일은 잠수함 U보트를 이용하여 무수히 많은 영국 군함들을 격침하여 연합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도 뮬러 함장이 지휘하는 순양함 엠덴호가 연합국 함정들을 나포, 격침하고 캘커타와 말레이시아를 타격하여 연합국의 군함과 유류고를 박살내는 성과를 거둔다. 영국은 동아프리카 식민지로부터 독일령 아프리카를 공격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시키고, 한국은 비밀리에 광무부대 1개 소대를 아프리카로 보내 독일을 지원한다. 인도원정군 1개 중대는 아무것도 모르고 독일령 마을을 공격했다가 광무부대에 패해 쫓겨난다.KKK단이 하와이 현지 한인들을 학살하자 한국은 임시 항공모함 3척, 순양함 6척, LPX 상륙함 3척 및 다수의 공기부양정을 동원하여 하와이 점령을 준비한다. 현지 해군 사령관 걸비스 준장은 협상에 나섰지만 한국은 선 점령 후 협상이라는 완강한 태도로 나섰다. 걸비스는 하와이의 지형을 믿고 항전에 나서지만 폭격기로 개조한 KT-1 웅비의 폭격에 포대들이 모두 박살나고 한국 해병 3연대가 공기부양정을 타고 상륙하면서 패배한다. 걸비스는 하나우마항으로 피신하여 하와이를 탈출하려고 했지만 하와이 원정군 사령관 홍지훈 소장이 탄 상륙지휘헬기에 의해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추태를 보이며 포로가 되었다.
하와이가 함락되자 윌슨은 전 대통령 태프트와 양당의 의원, 그리고 해군차관보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하와이로 보내 교섭에 나섰다. 그러나 윌슨은 회담보다 50만 대군을 양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화당에 회담을 떠넘겨버렸다. 한국 측에서는 권규 외무통상부 장관이 대표로 나왔는데 권규 장관은 미국의 하와이 점령의 부당성을 설파하며 역사적 연원을 근거로[20]원주민에게 땅을 돌려줄 테니 하와이는 물론 알래스카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알래스카에 뭍힌 자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미국은 720만 달러를 주고 알래스카를 한국에 팔아넘기며 KKK단 색출을 위해 한미 공동조사팀을 창설했다. 비밀리에 KKK단을 움직여 오재용 정권에 타격을 주려고 했던 한국당 이정우 총재는 오 수상이 위기를 이용해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얻어내자 속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독일 해외운용함대는 동아시아에서 출발해 페낭, 서사모아, 이스터섬을 거쳐 남아메리카까지 진군하며 연합국 항구를 모두 공격해 초토화시켰다. 특히 1914년 11월 1일 코로넬 해전에서 영국군 장갑순양함 2척을 격침시켜 함대 사령관 그라프 스페 제독의 자존심은 하늘 끝까지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그라프 스페 제독은 한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포클랜드 해전을 벌였다가 영국의 기만 전술에 낚여 성급하게 후퇴했고, 태세를 정비한 영국 함대의 맹공에 함대가 궤멸당한다.
독일의 유보트 공격에 시달리든 영국은 한국의 조언을 받아 해안에 어망과 기뢰를 살포하는 한편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의 주도 하에 오스만 제국이 차지하고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공략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국과 독일이 오스만을 도와 다르다넬스 해협 방어에 나섰고, 영국은 함대를 동원하여 오스만군의 방어선에 큰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했지만 해협을 뚫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영국은 육군까지 동원하여 공세에 나섰지만 오스만과 독일은 한국에서 얻은 정보로 영국 해군의 포격이 멈출 시간을 정확히 쟀고, 시계가 늦어 제때 돌입하지 못한 안잭군을 기관총으로 학살했다.
연합국과 독일을 오가며 전쟁을 조종하는 한국은 의왕 이강과 치우조 요원 명진수를 이집트로 파견하여 아랍인을 선동하려고 한다. 그들은 영국군 중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와 만난 뒤 그를 밀어내고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데 소극적이던 아랍 부족들을 질타하여 그들이 한국과 손을 잡도록 만든다. 한국과 손을 잡은 아랍 부족들은 오스만군의 열차를 털어먹는가 하면 아카바를 공격한다.
한편 서부전선에서는 끝없는 참호전 속에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독일은 비행선 재플린으로 영국을 폭격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영국군의 반격으로 재플린 1대를 잃었다. 그리고 연합군과 독일은 '메두사'라는 한국인으로부터 포스겐 독가스를 전달받는데,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처음으로 독가스를 써서 어느 정도 전과를 얻는 데 성공하지만 한국의 반발 때문에 더 이상 적극적으로 독가스를 쓰지 못한다. 그리고 유보트 함대는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배를 격침시켜 성과를 얻지만 독일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
동부전선에서 독일은 승승장구하여 러시아를 폴란드 쪽으로 쫓아내고, 내친김에 아예 국경까지 밀어붙일 작정으로 전진했다. 러시아군은 전사자만 10만에 포로가 3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했고 러시아는 혼란에 빠진다. 알렉산드라 황후는 군 총사령관 니콜라이 대공에게 패전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니콜라이 2세에게 직접 전투를 지휘하라고 조언했지만 내무장관 사핀은 국내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황제가 자리를 비우면 라스푸틴 같은 자들이 창궐할 거라고 반박했다. 황후와 내무장관이 언쟁을 벌이자 니콜라이 2세는 내무장관을 퇴실시키고 융희황제의 협조를 얻기 위해 신시를 방문하려 한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한창 벌어지던 1914년 5월 윌슨 대통령의 친구 알프레드 벤더빌드는 미국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루시타니아호가 독일군에게 공격받도록 연출하여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루시타니아호에는 갈리폴리 반도에서 철수한 한국 치우조 요원들이 타고 있었고 벤더빌드 일당이 꾸미는 음모는 모조리 도청당했다. 느리게 움직이는 루시타니아호를 발견한 유보트 U-20은 영국 어선이 던진 어망에 걸려 나포당하고, 벤더빌드는 예정되어있던 공격이 오지 않자 직접 배에 실은 폭약을 터트리려고 했지만 치우조 요원들에 의해 저지당한다. 치우조 요원들에게 잡힌 벤더빌드는 이번 음모에 미국 대통령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항변하며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전황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연합국과 독일은 이탈리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연합국은 쥐트티롤, 달마티아, 이스트리아, 바로나를 주겠다고 제안했고 여기에 미국과 한국도 연합국 측에서 전쟁에 참여할 거라고 하자 이탈리아 총리 손니노는 연합국 편에 서서 참전한다.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하자 독일은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 전 세계 식민지들에게 독일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연설에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독일의 식민지들에게 자치를 허용하며 중동의 영향력을 포기하고, 해외에 나가 있는 독일군도 전쟁이 끝나면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한국 융희황제는 다음 날 빌헬름 2세의 선택을 지지한다고 선언한다.
세계가 시끄러운 가운데 황국 역시 누구 편에 들어 참전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직례총독 풍국장을 따르는 직례파는 독일 편에 서서 참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총리 단기서가 이끄는 안휘파는 주변국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황국은 연합국과 손을 잡아 한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이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포로에서 풀려나 다시 정계의 거물로 부상한 장작림은 전쟁보다 내정에 힘쓰라는 융희황제의 말을 상기하며 지금은 힘을 기를 때라고 주장했다. 논쟁이 끝나자 장작림은 참모가 된 호불청과 함께 휘하 세력인 봉천파를 움직이려 한다.
4.2.4. 4권
갈리폴리 반도를 공격하는 영국군은 제9군단을 선봉으로 다시 점령을 시도하지만 한국군 광무부대 3개 대대에 막혀 사흘간 진격하지 못했고, 그 사이 한국군의 지원을 받은 무스타파 케말 대령의 19사단이 방어에 나서 영국군을 도륙했다. 결국 오스만군의 방어선을 뚫지 못한 영국군은 갈리폴리 반도에서 철수한다.황국에서는 호불청의 독약에 의해 황제 원새개는 점점 병들어간다. 호불청은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설파하는 한편 장작림에게 향후 중국을 통일하고 한국을 타도할 계책을 논의하지만 한국 국정원에게 감청당해 제거 대상에 오른다. 죽어가는 원새개는 부하들을 불러 나라를 대통령제로 전환하고 퇴위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그러면서 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를 지정하는데 모두 봉천파가 접근하기 좋은 자들 뿐이었고 직례파와 안휘파 쪽 인사들이 배제되어 두 파벌이 불만을 품는다. 하지만 원새개는 퇴위하지 못한 채 1916년 숨을 거두고, 조문을 온 권규 장관은 단기서, 장작림, 풍국장 등 황국의 중신들에게 아직 직접 선거는 시기상조라며 간선제를 도입하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장작림에게는 호불청을 숙청하지 않으면 우리가 숙청하겠다고 간접적으로 경고한다.
한국은 비밀리에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와 접촉,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조종한다. 또한 아랍에 파견한 명진수는 파이잘 왕자와 손잡고 거병하여 투르크군을 기습 공격, 첫 승리를 거두고 아카바를 포위한다. 파이잘 왕자는 스스로 옷을 벗고 아카바로 가 현지 사령관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투르크군 사령관은 거기에 넘어가 아카바를 아랍 독립군에게 넘겨준다.
한편 유럽에서는 동부와 서부, 남부 전선 모두 긴박하게 돌아갔다. 서부전선에서는 한국에서 수입한 최신 전투기를 이용한 공중전이 펼쳐지고, 발칸 반도에서는 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군의 진격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공작으로 1915년부터 세르비아군 진영에 티푸스가 돌아 전력이 약화되었고, 오스트리아는 허약해진 세르비아군을 격파하고 수도 베오그라드를 점령한다. 연합군은 그리스를 통해 세르비아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불가리아가 동맹군에 참전하면서 세르비아군은 철수하고, 동맹군은 내친김에 그리스, 몬테네그로, 알바니아를 병합하려고 한다.
그런데 루마니아가 연합국에 가담하자 독일은 당혹해하고, 한국 고문관 서재영 소장은 독일에게 가용 병력을 모두 루마니아 전선에 쏟아부어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를 점령하라고 조언했다. 러시아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한국의 호언장담에 독일은 즉시 각 전선에서 병력을 빼서 루마니아를 침공한다. 영국은 독일군의 전력이 약화된 사이 한국에서 도입한 전차까지 동원하여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려고 하지만, 전차들은 모종의 이유로 2km를 못 가고 퍼져버렸다.
한편 독일과 영국은 북해에서 대규모 함대결전을 시도한다. 우월한 전력을 가진 영국 대함대는 유틀란트 해전에서 한국의 도움으로 사정거리와 정확도가 더 높아진 주포로 무장한 독일 대양함대에 패배하여 해군력의 7할을 잃어버린다. 승리한 독일군은 북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영국은 수세로 전환하며 무역로가 위협받게 된 미국은 참전을 고려한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과 중립을 지키기로 약조한 상태였는데, 국무장관 루이스는 황국이 만주국을 치도록 하여 한국이 유럽대전에 신경쓰지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의 음모는 황국 주재 대사관에 보낸 전문이 한국에 유출당하면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한국은 보복으로 은거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을 재건된 일본 연합함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하와이 침공을 준비한다. 카가급 전함, 이세급 전함, 나가토급 전함 등 일본이 거대 전함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미국 정부는 혼란에 빠진다. 이때 식량장관 허버트 후버가 나서 일단 일본군과 싸워 지고 당장 하와이를 넘겨주되, 이전에 한번 한국과 교섭한 적이 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한국에 보내서 협상을 잘 마무리짓고, 동맹국에 가담하여 한국의 고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버를 손가락질 했지만 윌슨은 고뇌에 빠진다.
한편 니콜라이 2세는 한국 수도 신시의 대한궁을 방문하고, 한국당 이정우 총재를 만난다. 이정우 총재는 만찬 자리에서 나빠지는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황제가 직접 전선에 나서라고 조언한다. 융희황제와 독대한 니콜라이 2세는 결심을 굳히고, 러시아로 돌아오자 마자 백마를 타고 전선으로 향한다. 동생 미카엘 대공은 친정을 끝내고 돌아오면 러시아의 정체를 입헌군주제로 바꾸자고 제안하지만 니콜라이 2세는 묵살한다. 그리고 황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한국에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는 노동당 당수 케렌스키는 러시아를 뒤엎을 음모를 꾸민다.
다시 수십만 병사를 동부전선에 투입한 러시아는 독일군 주력이 루마니아를 치기 위해 발칸 반도로 빠진 틈을 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서서히 내부가 무너져가고 있었다. 특히 한국에 유학가 있던 아나스타샤 공주가 영왕 이은과 결혼하면서 러시아는 막대한 혼수비를 지출했는데, 이는 민중들의 분노를 초래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시에 있는 레닌은 이오시프 스탈린에 밀서를 보내 혁명을 준비히라고 지시하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외무장관 밀류코프는 황제를 대신해 수도 페트로그라드를 지키고 있는 미카엘 대공에게 만약 군부,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면 중신들로서도 니콜라이 2세의 폐위를 막지 못한다며 로마노프 왕조를 살리기 위해서는 니콜라이 2세가 황위를 미카엘 대공에게 넘길 때 제위를 사양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빵을 달라고 요구하는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러시아 혁명의 불길이 붙기 시작한다.
5. 등장인물
5.1. 배달연합
5.1.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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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희황제
본명은 이척. 대한제국의 초대 황태자이자 2대 황제. 황태자 시절 흑우 작전에 참가하여 메이지 천황을 굴복시키는 등 여러 활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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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국
덕수궁을 지키는 수문장. 매우 강한 무사로 싱가포르에서 황비홍을 꺾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이 1904년으로 타임슬립한 이후 신백호대에 대응하기 위해 HID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이테 일행을 쫓는 등 크게 활약한다. 하지만 영일 원자력발전소 테러를 계획한 이테 패거리와 싸우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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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한국의 계몽운동가. 몇 안 되는 1904년 인물로, 해외에 있다가 한국이 타임슬립하자 귀국한 뒤 신민당 창당, 정계의 거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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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한국의 독립운동가. 안창호처럼 조국이 뒤바뀌자 한국에 들어와 창당하려고 했지만 독립협회의 초대 의장이 이완용이었다는 점, 서재필이 독립신문에서 이완용을 칭찬하는 기사를 쓴 점 때문에 민심을 잃었다. 사람들의 지지가 안창호에게 쏠리자 서재필은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한국 정부는 귀국 인사들이 해외로 나가는 걸 엄중히 금지했고, 결국 서재필은 국가유공자 자격을 인정받는 대신 정치인으로써 은퇴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재필은 '애국협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무수한 우익인사를 자기 휘하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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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용
노우현의 뒤를 이어 집권한 대한민국 2대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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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수
치우조의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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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한국당의 총재이자 '어르신'의 하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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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독일의 과학자. 이테 일행으로부터 한국이 타임슬립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겁먹거나 무시하기는 커녕 오히려 한국에 흥미를 느꼈다. 엘리 박사가 국정원에 납치당하자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계략으로 엘리 박사를 구출했지만 자신은 이테 일행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국정원 요원들과 접선하여 한국으로 귀화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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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
미국의 전기공학자. 엘리 박사의 요청을 받은 한국의 공작으로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한국으로 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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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이 작품의 흑막. 옛 친일파의 후손으로, 지금도 정재계 곳곳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권력가이다. 과거로 타임슬립한 한국이 부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러시아의 라스푸틴, 일본의 고토쿠 등을 이용하여 한국의 발전을 최대한 막으려고 한다.
5.1.2. 일본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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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천황
일본 121대 천황.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변하자 한국 공격을 명하지만 도리어 육해군 모두 역사에 남을 대패를 겪는다. 그럼에도 항전 의지를 꺾지 않았지만 상공에서 강하한 한국 공수부대원들에게 제압당하고, 황태자 이척에게 삼궤구고두례를 올린다. 전쟁에서 패배한 뒤 일왕으로 격하되었고, 독약을 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병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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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일왕
메이지 천황이 자살한 다음 즉위한 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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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 마레스케
일본 육군대장. 주전론의 선봉이었지만 흑우 작전에 패배한 이후 자살을 결심하는 메이지 일왕의 모습을 본 뒤 신하된 도리로 천황보다 오래 살 수는 없다며 일왕이 입원한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을 거두었다. 메이지 일왕과 마친가지로 이쪽도 사인이 조작되어 메이지 일왕이 병사하자 순사(殉死)했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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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일본 귀족원의장. 한국과의 전쟁에서 화평론자들의 선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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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 다로
일본 수상. 패전 이후 정계의 거물로 성장한 고토쿠와 대립하는 사이였지만 고토쿠가 신백호대 뒤에 가쓰라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결국 자신의 사병을 이끌고 신백호대를 직접 처단하겠다고 나섰지만 고토쿠의 함정에 걸려 수상에서 고문받는 범죄자로 추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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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쿠 슈스이
일본 사회민주당 총재. 일본의 패전을 기회로 천황 체제 전복과 사회주의 일본을 꿈꾸고 있다. 일본의 패배 이후 신 정권의 주요 인사로 등극했으며, 뒤에서는 신백호대를 조종하여 정적 가쓰라 수상을 몰락시키고 한국 구 친일파 그룹과 손잡고 한국 황태자를 암살하여 한국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한국 정보요원 명진수에게 암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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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 헤이하치로
일본 해군사령장관. 쓰시마 해전에서 포로로 잡힌 이후 군에서 퇴역, 낙향했다.
5.1.3. 몽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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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알리투
몽골 응그투부의 족장. 한국의 지원을 받아 몽골 독립전쟁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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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프
몽골의 부족장. 독립선언에 적극 찬성했고 한일연합군과 연합하여 독립선언에 동참하지 않은 오윤블레그를 치려고 하지만 어째선지 대치만 했다. 알고보니 청나라와 내통하여 청나라군과 싸우기 위해 한일연합군 대부분이 남하하면 오윤블레그를 치는 척 하면서 잔존 연합군을 제압하고 코큐수부와 함께 연합군의 후방을 치기로 밀약을 맺어두었다. 하지만 청나라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패배하고 흑사병에 걸려 영 맥을 못 추고, 오이도프는 정말 연합군을 이길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국군 정보부대인 고구려부대에 걸려 살해당하고, 목은 오윤블레그가 볼 수 있도록 높이 효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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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블레그
몽골 코큐수부의 지도자. 어렸을 때 청나라에서 자랐으며, 나중에 한국에서 몽골 독립선언을 주도할 때 불참했다. 오이도프와 마찬가지로 원새개와 밀통한 상태였지만 원새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오이도프가 살해당했고, 한국과 거래한 원새개는 몽골의 독립을 허가하며 오윤블레그와 맺은 모든 약속을 없던 것으로 했다. 망연자실한 오윤블레그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이후 "고큐수부와 연합군의 충돌은 오직 오이도프와 오윤블레그의 목숨만이 희생된 채 사라진 것이다"라고 서술되는 걸 보면 역시 죽은 듯하다.
5.2. 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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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2세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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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러시아 제국의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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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레닌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가. 정부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했다가 한국의 제의를 받고 신시로 망명한다. 이후 유럽대전이 터져 러시아 국내가 흔들리자 스탈린에게 밀서를 보내 혁명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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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케렌스키
노동당 당수. 한국과 비밀리에 손을 잡고 러시아를 뒤엎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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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
볼셰비키당의 당원. 레닌의 밀서를 받고 혁명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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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아폴로노비치 가폰
러시아의 신부이자 노동자들의 지도자. 그와 동시에 비밀경찰의 스파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불만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볼셰비키가 투쟁을 선동하자 겨울궁전 앞 평화 행진을 주도했다. 그러나 레닌의 밀명을 받은 볼셰비키들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람들을 선동하고, 잠입한 한국 국정원 요원들의 공작으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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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리 라스푸틴
러시아 제국의 대승정(大僧正). 황후의 총애를 받고 있으며, 언젠가 로마노프 황가를 뒤엎을 야심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인물임에도 묘청을 아는 등 기이한 모습을 보이며 청산가리를 복용하거나 머리에 총이 맞아도 죽지 않는 사람을 초월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방한 때 진실이 밝혀지는데 사실 청산가리는 처음부터 먹지 않았고,[21] 치우조가 저격한 라스푸틴은 누구도 모르는 그의 쌍둥이 동생이었다. 오래 전부터 '어르신'이 이끄는 한국의 구 친일파 가문들과 밀통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버림받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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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파트킹
러시아의 장군. 유리 총독을 지원하기 위해 극동에 대군을 이끌고 오지만 이미 유리 총독은 포로가 된 뒤였고, 혼자서 일본을 공격하지만 일본군의 견고한 방어선에 밀려 블라디보스토크로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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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베레조프스키
유리 총독의 참모. 육군을 이끌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다가 한국의 신식 무기로 무장한 한일연합군에 걸려 전사했다.
5.3. 중국
원 역사대로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원새개와 손문의 반란 이후 황국과 중화민국으로 쪼개진다.5.3.1.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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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
청나라의 황태후이자 실권자. 광서제를 밀어내고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지만 무능하고 욕심 많은 노파로 묘사된다. 실책에 실책만 연발하여 제국이 산산이 쪼개지고 원새개에 배신당해 북경이 반란군에게 함락당할 위기에 놓인다. 서태후는 상황 판단 못하고 금군 1만 명을 40만 반란군 앞에 돌진시키지만 금군은 전멸, 지방관들도 원새개를 지지하거나 중립을 취했기에 원군조차 없어서 북경 함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북경이 함락당하는 순간 광서제와 함께 한국에 의해 구출되어 만주로 오는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쯤 미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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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제(광왕)
청나라 황제. 흑역사에서는 죽은 뒤 선통제가 즉위해서 마지막 황제가 아니지만 청나라가 흑역사보다 빨리 망했기 때문에 졸지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회군한 신건군에 의해 북경에 갇혀버리지만 북경이 함락당하기 직전 한국에 의해 구출되어 만주국으로 온다. 한국은 광서제를 만주국 왕에 임명하지만 광무황제에게 삼궤구고두례를 갖추라고 지시하고, 광서제는 광무황제 아래 머리를 아홉 번 찧는다. 이후 흑역사보다 4년 더 오래 살아 1912년 관상동맥 심장병으로 사망하며, 한국 황실에 의해 덕종이라는 묘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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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친왕
선왕의 아버지. 융희황제로부터 감국섭정왕(監國攝政王) 칭호를 받아 어린 선왕을 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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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발천
청나라 만주원정군 사령관. 다른 이들과 달리 원새개보다 일찍 관직에 오른 데다가 중도를 지키고 있어서 원새개 파벌이 아니었다. 몽골원정군을 지휘하지만 한국과 연합한 몽골 군에 대패한다. 이후 만주를 정벌하러 준비를 하던 중 원새개의 심복 홍유생으로부터 북경을 포위하라는 원새개의 밀서를 받는데, 임발천은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그러자 홍유생은 권총으로 임발천의 머리를 쏴버렸고 임발천은 그대로 죽었다. 임발천의 부하 대부분이 원새개의 수하였기 때문에 암살을 방관하는 것도 모자라 적극적으로 반란에 찬동하여 깃발을 거꾸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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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문
청나라의 내무대신. 서태후의 금군을 출동시켜 북경의 포위를 풀려 하자 숫자와 무장 모두 신건군에 밀리는 금군을 출격시키기 보다는 서태후가 직접 나서 원새개를 달래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가 분노한 서태후에 의해 처형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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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산양
청나라의 금군대장. 서태후의 명에 따라 송지문을 죽인 뒤 금군 1만 명을 이끌고 북경의 포위를 풀기 위해 출정한다. 하지만 송지문 말대로 숫자와 무장 모두 뒤떨어지는 금군이 신건군을 격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곽산양과 금군 1만 명은 원새개의 명을 받고 출동한 진계립과 기병 3만 명에 의해 짖밟힌다. 원새개 측은 곽산양의 능력을 아까워하여 가능하면 투항을 받으려고 했지만 곽산양은 끝까지 싸우다가 무수한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죽으면서 300년을 이어온 대청국이 제때에 죽지 않은 늙은 노파 때문에 망한다고 한탄했다. 그가 죽고 세 시간 뒤 북경이 함락되면서 청나라는 종말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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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
홍가권을 익힌 무술가. 상하이에서 이테 일행을 만나 하루꼬의 병을 치료해주고 국정원 요원들을 때려눕혔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박형국에게 패배하고, 그대로 이테 일행과 헤어지지만 그들이 맡긴 모택동에게 홍가권을 가르쳐주었다.
5.3.2. 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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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새개(
위안스카이)
청나라 북양대신 겸 직례총독. 독립을 선언한 몽골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황제가 되게 해주겠다는 한국의 꼬임에 넘어가 도중에 배신, 만주국을 치기 위해 출병한 병력을 이끌고 역으로 북경을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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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서(
돤치루이)
황국의 총리이자 안휘파의 거두. 손문이 남중국의 소수민족을 독립시키며 위구르 독립을 요구하자 원새개에게 중화민국의 2인자 송교인을 암살하자고 건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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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림(
장쭤린)
황국 청해성장이자 봉천파의 리더. 위구르가 독립하려 하자 7만에 달하는 황국군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진압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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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국장(
펑궈장)
황국의 직례총독이자 직례파의 리더. 단기서와는 대립하는 사이로 유럽대전이 터지자 연합국 편에 서서 참전하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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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호불청(
마오쩌둥)
원래 역사에서는 장개석을 몰아내고 중국의 지배자가 되지만 여기서는 아직 11세 밖에 안된 소년. 하지만 한국에 대항하기 위해 엘리 박사가 황비홍에게 맡겨 지(智)와 무(武)를 갈고닦도록 했다. 이후 호불청이라는 가명으로 신분을 숨기고 장중정과 함께 신시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어르신'의 도움으로 위구르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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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계립
청나라의 산둥순무. 서태후가 만주 원정을 반대하는 원새개를 파직하고 후임 직례총독으로 임명했다. 서태후는 그동한 자신에게 충성한 진계립이 충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계립은 이미 오래 전 원새개의 충신이 된 지 오래였다.[22] 만주국을 토벌하러 출병하는 척 하며 때가 되자 원새개와 합류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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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녕
청나라의 남경순무. 진계립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원새개의 부하다. 원새개의 반란에 호응하려고 했지만 손문과 증국영이 일으킨 군사들이 길을 막았다. 이후 한국군과 연합한 상군에게 처절하게 패배해 죽는다.
5.3.3. 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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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
쑨원)
멸만흥한(滅滿興漢)을 외치는 중국의 혁명가. 누구보다 빨리 조선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한국, 일본, 중국을 오가며 협력을 얻어내 거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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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교인(
쑹자오런)
손문의 측근이자 중국국민당 당수. 손문이 신뢰하던 인물이었지만 단기서의 계략에 의해 상하이역에서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손문은 황국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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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정(
장제스)
중화민국 출신 청년. 신분을 숨긴 모택동과 만나 같이 신시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다.
5.4. 대영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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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대영제국 해군장관. 배달연합에서 신형 항공기를 수입한 뒤 더블린에 있는 비밀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연구하려고 했지만 배달연합의 공작으로 연구소가 홀랑 타버렸다. 이후 갈리폴리 전투를 주도하지만 전투는 오스만군의 저항과 오스만을 돕는 독일과 한국 때문에 실패하여 실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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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영국군 정보부 소령. 중동 전선에서 아랍인들과 접촉하여 오스만 제국을 흔들려고 했지만 신통치 않았고 미래 역사를 아는 의왕 이강과 명진수가 선수를 쳐 파이살 1세와 접촉, 아랍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반기를 들도록 유도했다. 아랍인 족장들이 한국에 붙으려고 하자 로렌스는 권총으로 의왕을 해하려고 했지만 같이 온 정보 요원 윤찬혁과 김성찬이 이미 로렌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5.5. 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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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2세
독일 제국 황제(카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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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독일 제국 해군장관. 언젠가 있을 대영제국과의 결전에 대비해 배달연합의 도움을 받아 해군력 증강에 매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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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루덴도르프
독일 제국군 참모본부 작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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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롬멜
독일 제국군 소속 소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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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붉은 남작'이라 불린 독일 제국의 에이스 파일럿. 오스발트 뵐케, 로터 폰 리히트호펜과 함께 신시로 유학가서 조종술을 배웠으며, 유럽 대전이 벌어지자 귀국하여 서부전선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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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 폰 리히트호펜
독일 제국의 에이스 파일럿이자 만프레트의 동생. 만프레트와 함께 신시로 유학가서 조종술을 배웠고, 이후 서부 전선에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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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발트 뵐케
독일 제국의 에이스 파일럿. 로터, 만프레트와 함께 신시에서 조종술을 배웠고 서부 전선에서 활약했지만 전투 도중 아군기와 충돌하여 비행기의 날개가 박살나버렸고, 그대로 추락해서 전사했다. 그의 죽음은 만프레트가 '붉은 남작'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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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포스
독일 제국의 에이스 파일럿. 신시 유학생 출신으로 리히토펜 형제와 가까운 사이였다. 유럽 대전 도중 정찰에 나섰다가 영국 전투기를 잡겠다고 너무 나간 나머지 알버트 볼이 이끄는 전투기 편대가 난입하여 7:1로 싸웠다. 포스는 알버트 볼이 쏜 기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최후의 발악으로 알버트 볼의 전투기와 충돌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그대로 지상에 추락해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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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괴링
독일 제국의 파일럿. 신시 유학생으로 만프레트의 후배였다. 다른 이들보다 늦게 합류했지만 전투기 네 대를 격추시키는 등 촉망받는 인재였다.
5.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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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제프 1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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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페르디난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사라예보에서 그를 죽여 1차대전을 일으키려는 한국의 공작에 따라 '치우조'에게 저격당해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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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오스트리아에서 신시로 온 유학생. 어느 정도 반유대주의, 반슬라브주의, 게르만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원 역사에서 보여준 광기는 아직 없다. 신시에서 공부하면서 특기인 미술로 그림을 팔던 중 안창호를 만나 친분을 쌓았다.
5.7.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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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베르 파샤
청년 튀르크당의 리더이자 제국의 실세. 세르비아와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지만 세르비아에게 통수맞고 발칸 전쟁에서 패배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오재용 수상의 조언대로 불가리아를 도와주는 척 하면서 루마니아와 함께 불가리아를 배신하여 불가리아가 점유한 동트라키아를 되찾는다.
5.8. 미합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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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26대 대통령. 원 역사대로 패배한 러시아와 일본의 협상을 포츠머스에서 중재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강경한 요구 때문에 실패했다. 이후 필리핀 독립운동가를 선동한 배달연합에 의해 필리핀 식민지를 빼앗기고, 함대를 보내 탈환하려고 했지만 임기가 끝물인데다가 후임 대통령 태프트는 딱히 필리핀 식민지를 탈환할 의사가 없었고 독일과 일본이 미국 함대를 저지하면서 실패한다. 대선에서 태프트를 후보로 민 공화당에 반발해서 진보당을 창당, 독자 출마하지만 우드로 윌슨에게 2백만 표 차로 패배한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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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국 27대 대통령. 필리핀 식민지 탈환에 적극적이었던 루스벨트와 달리 탈환에 부정적이었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자 필리핀의 자치를 인정한다는 명목으로 필리핀에서 손을 뗀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물러난 것과 멕시코의 도발을 억제하지 못한 것 때문에 국민들에게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히고, 루스벨트와의 불화까지 겹쳐 대선에서 3위로 낙선했다. 이후 한국이 하와이를 점령하자 협상단의 일원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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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 윌슨
미국 28대 대통령. 태프트와 루스벨트의 대립 덕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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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해군차관보. 하와이를 점령한 한국과 교섭하기 위한 협상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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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후버
미국 식량장관. 강대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하와이를 침공하는 일본에게 한번 져서 하와이를 넘겨주고 동맹국 측에 서서 참전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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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에디슨
발명왕으로 유명한 미국의 발명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이테를 만나 그를 거둬주었고, 그가 가르쳐준 미래의 지식으로 이익을 챙겼다. 그러나 냉혹한 고용주로 돈이 될 법한 발명만 관심을 가지며 이익이 안 되면 부하직원들을 가차없이 내쫓는 모습을 보이고, 이테 덕에 막대한 이익을 챙겼음에도 3년 동안 월급조차 주지 않고 착취했다. 결국 이테는 마지막 아이디어와 일본행 티켓을 교환하는 조건으로 에디슨의 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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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
비행기의 발명가. 그러나 미래에서 온 한국이 더 좋은 성능을 가진 항공기를 특허 등록하자 실의에 빠져 폐인이 되었다. 근데 실제 역사 속 라이트 형제도 특허와 또 최초 발명자라는 타이틀을 두고 여러 동시기 발명가들과 학자들과 충돌하고 다투었기에 과연 저 정도로 실의에 빠질지는 의문이긴 하다.
5.9. 이테 일행
1904년으로 타임슬립한 뒤 외국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는 한국 군경을 피해 외국으로 탈출한 21세기 외국인들. 과거로 돌아가 강대국이 된 한국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1904년에 있는 세계의 위인들과 접촉하려고 하지만, 끈질기게 달라붙는 국정원 요원들과 배신한 사티아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롭이 죽고, 영국에서 이테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모두 국정원에 체포되어 한국으로 압송당한다. 그리고 혼자 남은 이테마저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돌아오고, 원자력 발전소에 테러를 저지르려는 테러리스트가 되었다가 사살당하면서 일행이 완전히 와해되었다.-
이테 이치로
일본 자위대 일등육위(대위). 나이는 1904년 기준 32세. 자위대 내 무기개발부서에서 일하다가 아내를 위해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제대로 여행을 하지도 못하다가 한국이 1904년으로 타임슬립했다는 노우현 대통령의 국민담화문을 듣고 급히 중국으로 도망친다.[24] 이후 엘리 박사, 롭 등과 만나 계속 도망치지만 한국 국정원에 의해 모든 동지를 잃고[25] 미국으로 망명, 배에서 만난 토마스 에디슨의 부하직원이 되었다. 하지만 에디슨은 이테의 단물만 빨아먹기만 했고,[26] 분노한 이테는 한국에 끌려간 아내를 찾기 위해 에디슨에게 후일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개발한 소켓 아이디어를 전수하는 대가로 일본행 티켓을 얻어 일본으로 떠난다.[27] 하지만 일본은 한국 정부의 동화정책 때문에 상당 부분 한국과 동화되어 있었고, 이테는 민족 정체성을 잃어가는 일본의 현실에 격분하여 난동을 부리다가 '오노 히테키'라는 사람이 이끄는 비밀결사와 접촉, 아내의 죽음을 알고 한국인을 죽이기 위해 테러리스트가 된다.
작중서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 극우 일본인의 클리셰들을 보여주는데 일제시대가 있었기에 한국이 발전할 수 있었다느니, 태평양 전쟁은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일본의 희생이었다느니 그런 말을 내뱉는다. 근데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미국인 둘에 유태인까지 있는 곳에서 저리 말하는 용감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8] 때문에 당시 독자들 중에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조선족이라지만 한국계와 결혼을 한 건지 의문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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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꼬
이테의 아내. 조선족으로, 일본 유학 중에 이태를 만났으며 2년이나 구애하던 이테를 받아들여 결혼했다. 고국인 한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동안 이테의 사정이 바빠 가지 못했는데, 기껏 갔더니 도망자 신세가 되어 남편과 같이 중국으로 도망쳤다. 이후 남편을 따라 중국, 싱가포르를 거쳐 영국까지 가지만 국정원 요원들에게 납치당해서 한국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죄책감과 아기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녀가 낳은 아이는 박형국이 입양해 갔다. 다만 성향이 원래 그쪽이었는지 아니면 그래도 남편이고 뱃속 아이의 아빠이며 또 상황이 상황이라 참은 건지 모르겠지만 남편 이테의 행태에 대해 제지하거나 말리기는커녕 그저 따르기만 할 뿐인 모습만을 보였고 또 수용소에서 자신을 회유하기 위해 온 사티아에게 당신 때문에 일을 망쳤다며 화를 냈는데 애초에 그가 배신을 한 이유가 자기 남편 때문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 모습들만 보여주었기에 당시 독자들은 멍청한 여자 취급하며 안 좋게 보며 동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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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그리그
CIA 한국 상주 요원. 35세. 중국으로 도피하던 중 이테 일행과 만나 동행했다. 한국 정부는 정보요원인 만큼 다른 이는 몰라도 롭은 발견 즉시 사살하라고 현장 요원들에게 지시했고, 롭은 싱가포르에서 몰려온 국정원 요원들에게 사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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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아 구수둘
인도인. 컴퓨터 공학 전공자로 경희대학교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엘리 박사와 함께 한국을 빠져나왔고, 이테, 찰리 등과 행동을 함께하지만 도주하던 중 이테 일행과 함께하는 게 진정 인도를 위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어[30] 일행 몰래 국정원과 내통하고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수용소에서 만난 하루꼬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지만 하루꼬는 사티아를 원망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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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카우프 박사
이스라엘 출신 화학교수. 한국인 교수와 공동연구를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상황이 변하자 탈출했다. 한국이 손쓰기 전에 세계의 위인들을 먼저 손을 대려 하지만 영국에서 국정원 요원들에게 납치당한다. 이후 몇 년 동안 외국인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한국의 '어르신'의 도움으로 죽음으로 위장한 채 러시아로 도주한다. 덤으로 작중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무너졌어도 몇 번을 무너질 일들을 겪었으면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라스푸틴을 암살하려던 한국 국정원 요원들의 계획을 방해하고 나름 한국에 물을 먹이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엄청난 강철멘탈의 소유자이다.
6. 설정
6.1.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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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연합
한국이 일본, 몽골국, 만주국과 함께 만든 국가연합. 맹주국은 한국. 그러나 국가연합이라기 보다는 한국을 중심으로 한 연방국가에 가까울 정도로 한국의 힘이 크다.[31] 일본 열도, 한반도, 만주, 요동, 몽골, 대만, 동시베리아 일대를 관할하는 광대한 국가이다. -
대한민국
2004년에서 1904년으로 타임슬립한 통일 한국. 수도는 서울이었지만 도중에 신시로 옮겼다. -
일본 제국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하고 제국주의적 확장정책에 나선 국가. 원 역사대로 러시아 제국과 전쟁 중이었지만 전쟁 도중 과거로 온 한국에게 철저하게 털린다. 이후 천황을 일왕으로 낮추고 사법권, 외교권, 경찰권 등을 모두 한국에게 빼앗기며 고유의 문화를 잃고 한국에 동화되는 등 한국의 속국으로 전락한다. -
만주국
한국이 러시아에게서 빼앗은 만주에 퉁구스계 민족을 이주시켜 건국한 국가. 건국 직후 원새개에 의해 축출된 광서제를 왕으로 옹립하여 나라의 구색을 갖추었지만 일본처럼 한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처지이다. -
몽골국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몽굴 부족들이 건국한 국가. 이쪽도 만주국처럼 한국의 속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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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300년 가까이 중국 대륙을 통치한 국가. 한국에 의해 만주와 몽골을 빼앗겼으며, 원새개와 손문이 난을 일으켜 원 역사보다 6년 일찍 멸망했다. 청나라 황실은 한국의 도움으로 만주국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명맥을 잇게 되지만, 칭호가 왕으로 강등당하고 고종 앞에서 삼궤구고두례를 갖추는 등 굴욕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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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
반란을 일으킨 원새개가 북중국에 새로 새운 황제국. 화북은 물론 티베트와 위구르, 사천성까지 관할하는 광대한 국가로 수도는 북경. 청나라가 쓰던 자금성을 황궁으로 쓰고 있다. 기원이 청나라가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신식 군대 '신건군'이기 때문에 군사력은 민병대가 주축인 중화민국보다 우위로 묘사된다. 하지만 한국의 공작으로 티베트와 위구르가 독립하고 진압하러 간 신건육군이 궤멸당하는 추태를 보인다. 원새개의 유언에 따라 원새개 사후 총통이 다스리는 민주공화제로 체제가 바뀐다.
- 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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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국
신강 지역에 들어선 위구르족의 국가. 역시 황국 소속이었지만 한국의 도움을 받아 장작림이 지휘하는 신건육군을 무찔렀으며, 한국의 개입으로 한국이 5년간 통치하는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입헌군주국으로 국가원수는 카간.
6.2.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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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조
국정원 소속 비밀 첩보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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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백호대
일본 아이즈번에서 등장한 무사조직. 이름의 유래는 보신전쟁 당시 에도 막부 편에 서서 싸운 소년병 부대인 백호대(白虎隊). 일본 사회민주당 총재 고토쿠 슈스이가 신분을 숨기고 비밀리에 일본 전국의 무사들을 모아 만들었다. 구성원 전원이 검술에 능한 무사로, 신속한 행동으로 평범한 한국군의 총격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토쿠의 명에 따라 마츠리에서 놀고 있는 한국군을 집단 학살하고, 사회민주당 청사를 습격하는가 하면 연설하는 고토쿠를 공격했다. 그러나 고토쿠는 그저 정적 가쓰라 수상을 실각시키고 한국을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 신백호대를 이용했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신백호대 대원들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사지로 내모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한국 황태자 암살미수사건에서 신백호대는 한국군에게 거의 전멸당하고, 몇 안되는 잔당도 '어르신'의 뜻에 의해 영일 원자력발전소 테러에 동원되었다가 전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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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나라당 → 한국당
대한민국 제1야당. 보수 정당이며 친일, 매국 성향이 있고 '어르신'을 섬기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름의 유래는 한나라당으로 보이며 나중에 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우연찮게도 한나라당 역시 훗날 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노무현 대통령을 노우현으로 개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 정치세력에 대한 이름 언급을 회피하려는 듯하지만 작가가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을 몹시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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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회
한국의 평화주의자들이 만든 조직. 페르디난트 부부 암살 시도를 저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을 막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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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회
한국당에서 만든 비밀 정보조직.
6.3. 무기
작중에서 등장하는 무기는 현실의 무기에서 이름만 바꾸거나 현실 무기를 모델로 개발되었다.- 한(韓) - 1 소총: M1 개런드
- 배달 - 50: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 참새 - 1: 프랑스의 스파트 S. VII 전투기를 모델로 하여 제작된 단엽기.
- 참새 - 2: 한국이 영국에 수출한 삼엽기.
- 공작 - 1: 한국이 독일에 수출한 삼엽기.
- 땅강아지 1: 영국이 개발한 전차 Mk I의 개량형. 무장에 따라 암컷형과 수컷형으로 구분되는데 암컷형은 기관총 5정, 수컷형은 40mm 6파운드 포 2문과 기관총 4정을 장비하고 있다.
7. 비판
7.1. 자원 문제
소설의 기본적 설정일단 당장 지금의 한국 경제는 수출입으로 이루어진다. 당장 1904년도는 국가간 경제협력이 지금만큼 활발한 시대가 아니고, 국제무역을 위한 기술이나 제도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다못해 2004년도면 이미 5천만을 바라보던 한국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자원, 특히 식량의 경우는 어떻게 수급할지 의문이다.
그러니까 현상유지라도 하려면 내수의 의존도가 매우매우매우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건만, 한국의 내수시장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요구라는 것이 문제다. 물론 한국이 일반 대중들의 생각보다는 내수시장이 탄탄한 나라인 건 맞는데 땅덩어리가 좁아서 쌀을 제외한 식량 자급률은 상당히 낮은 편이고, 으리으리한 21세기 무기를 유지보수하기 위한 원유 및 금속류를 구하기도 힘들다. 통일이 됐으니 북한의 지하자원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매장량이 적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등 전문가들은 북한의 지하자원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니 영 좋은 상황은 아니다. 더구나 북한의 선전처럼 지하자원이 많다 해도 원유는 확실히 없으니... 만일 대한민국이 미국이나 중국, 넉넉잡아 러시아나 일본 수준의 인구/자원/땅덩어리가 된다면 상황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땅덩어리로는 국민들 먹일 식량도 생산하기 빡빡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작중서 만주와 동부 시베리아 사할린까지 손에 넣고 또 동남아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걸 보면 이를 통해 해결하려는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시일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뭐 작중서도 나름 초반부엔 아끼고 줄이고 그런 모습들을 보이긴 하지만.
7.2. 제국주의
그리고 일제의 강제지배를 늘 비판하던 한국이 과거로 가서는 정작 20세기초 제국주의 국가들이 하던 짓을 그대로 반복하고, 세계평화체제 구축은 커녕 철저히 자국 이익에만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난감하다. 만약 한국 땅덩어리 내에서 5천만+α 한국인들을 모두 부양할 수 있는 식량자원과 21세기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원유/금속이 나온다면야 다른 나라 침략 안하고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경찰국가로서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있겠지만, 상술했듯 그러기는 불가능하니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게 되는 거고, 결국 파렴치한 침략자 국가가 된 것이다. 물론 작중에서는 이런 고찰도 없고, 그냥 대한민국 짱짱이다.일본을 제압한 후 을사조약을 상대만 바꾸고 그대로 적용하여 체결하는 장면이라든가, 2004년의 외국인들을 어떤 섬에 설치한 수용소에 가둬놓는다거나, 중국을 전면적 개입과 이간질을 통해 3국으로 분열시키는 것이 대표적. 그 외에도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을 사지로 몰아넣고 이후 대량의 무기를 양측에 팔아넘기며 한국이 그 중간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 이미 언급한 대로 조약 및 공작 추진하는데 동남아시아 일대에 친한 괴뢰 정권을 세워서 동남아를 사실상 한국의 세력권에 집이넣는건 물론이고 동남아의 자원들을 한국이 얻음으로 인하여 거기서 막대한 국익을 도모한다.
7.3. 반영 오류
고증 오류도 있는 편인데, 일본 제국의 국기가 일장기가 아닌 욱일기(극중에서는 욱일승천기라고 나옴)[33]로 묘사된다. 아무래도 작가가 일장기가 등장하는 일제강점기 배경 사극이나 욱일기를 든 자위대의 모습을 전혀 못 본 듯(...). 정정하자면 일본 제국의 국기는 일장기, 군기는 욱일기였고 지금도 해상자위대는 욱일기를 사용한다. 욱일기는 일본제국만의 깃발, 일장기는 전후 일본국만의 깃발이 아니라는 얘기다.[34]그리고, 1부 청나라의 20세기 무역상이 인천항에 들어올때 한국 해경과의 대화에서 해경이 '마지막 황제가 푸이라고 했던가?'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어서 청나라 선장은 "감히 우리 선통제 폐하를 모욕하는게냐!'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때는 타입슬립이 되지 얼마 안된 때, 1904년으로 선통제가 태어나기도 2년이나 전이다. 이 이후에 중국에 대해 다룰 때는 광서제가 나온다. 단행본판에서는 선통제가 광서제로 수정되었다.
불과 2개월 후 한일 사신단이 북경을 방문했을 때에는 반대로 이미 몇십 년 전에 사망한 동치제가 사신단을 접견한다. 온라인 연재라 지적을 받고 바로 바꾸었던 모양인데 실수로 이번에는 훨씬 앞쪽으로 넘어가 버린 것.[35] 결국 정상적으로 광서제가 등장한 것은 1904년 12월 부분 서술부터가 처음이고, 그 이전 부분은 다른 임금에 관한 잘못된 서술을 놓아둔 채 단행본에서 제호만 수정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우수한 무기체계에 학살당하는 적들의 묘사에도 문제가 있다. 참호는 이미 남북 전쟁에서부터 축성진지 형태로 쓰이기 시작해서 수십년 간 연구가 되었는데[36] 생전 처음 보는 대단한 것처럼 묘사했고, 기병 전술이 충격력보다 기동력 중시로 변화된 지 몇십 년 이상 지났는데 50년 전에 이미 실패한, 기병을 전부 모아다가 상대 방어선 전면에 닥돌하는 짓을 한다.
2부 4장에서 과거 설명을 하면서, 7주간 벌어진 보오전쟁을 7년 전쟁으로 잘못 기술하였다.
8. 기타
또한 5편에서는 구 대한제국 황제의 보좌관들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지 못해 2004년 대한민국에서 온 현대인에게 인터넷을 통해 한국도로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과거와 현재가 만났을 때의 모습도 잘 드러난다.시대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반미정서와 함께 미국을 까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은 문보살이 되어버린 문희준을 문 모씨라고 까는 장면도 나온다. 심지어는 퍼포먼스로 펼쳐진 가수들의 낙하산 공수에서 혼자 안 뛰어내리는 장면도 나오기도. 다만 소설이 나올 당시에는 문희준이 군 입대를 하기 이전이고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으로 대표되는 유명 연예인들의 병역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던 만큼 지금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대한제국 황손인 이석이 황제 즉위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청년 시절의 아버지 의친왕을 만나기도 하며 국민들에게 정왕이라는 호칭을 받는 내용도 나온다.
친일파 후손의 전재산을 몰수하고 만주로 강제이주시켰는데,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한 자기 증조할아버지 때문에[37] 강제이주되었음에도 그것을 마땅히 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11살짜리 어린이[38]가 등장하는 등, 국수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세뇌
이글루스의 정호찬씨가 이 책에 대한 비평을 올렸는데... 작가 자신이 댓글을 달았다.' 글 쓸 당시에는 일본에 있었고, 쓰다가 독자들의 의견을 받아서 이야기를 자꾸 늘린 것이고[41] 이제 더 이상 집필은 안 하고 작가는 그만두고 게임업계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차원이동은 미국 대체역사에서도 자주 나오는 설정이다. 미국은 아니지만 호주 소설 추축의 시간 3부작이 좋은 예. 물론 나라 전체가 넘어가는 무리수는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일단 이 소설 자체가 대체역사소설들이 대개 그렇듯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볼만한 물건은 아니다. 2003년 당시 중국 관변 학계의 동북공정이 본격화되고 90년대 말에만 해도 심증만 있었던 북한의 핵 탄두 보유가 기정사실화 되는 등 혼란스러운 사회상 때문에 이런 괴작이 탄생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실제로 이 분야의 할아버지 격인 김진명이 거의 매일같이 언론의 주목을 받던 시기였다.
그리고 2017년 일본의 포니케논 북스에서 일본국소환이라는 이것과 비슷한 라노벨이 나왔다. 1904 대한민국이 과거로 돌아가 깽판을 친다면 이쪽은 일본 전체가 이세계로 가서 깽판을 치는 쪽.
8.1. 1904년의 대한제국은?
작품 내에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있는데 1904년에 있던 대한제국은 사라진 게 아니라 2004년으로 넘어가버렸다. 작중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고종의 독백과 작가의 댓글을 보면 대한제국은 2004년으로 넘어간 것이 확실하다. 작가는 조아라에 연재한 1부 4화에서 2004년으로 넘어간 조상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 독자의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스토리를 짜 두었으며 1부가 끝나면 2004년으로 넘어간 한국을 주제로 외전을 쓰겠다고 했지만[42] 정작 1부가 끝나자 바로 2부를 연재했고, 2부가 끝나기 전에 연재가 중단되면서 외전 연재 계획도 백지화되었다.그러니까 2004년 대한제국. 1904년에 남은 덕수궁을 제외하면 모든 나라가 100년 뒤로 넘어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 그리고 미국 세력까지 진을 치고 있는 마당에 19세기 문명 수준의 한반도가 2004년에 떡 하니 차원 이동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명백하다.
대한제국이 2004년으로 넘어갔다면 이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이미 100년이가 기술이 뒤쳐진 상황인데 이때 대한제국은 광무개혁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 해 근대화조차 완전히 되지 않은 약소국가였다. 여기에 나라의 중심이 되어야 할 대한제국 황가는 1904년에 남았기에 막대한 정치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고, 그 사이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이 대한제국에 개입할 것이다. 특히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명분으로 대한제국에 군대를 주둔시켜 두었기에, 현대 일본은 이들을 통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대로 망하는 것은 아니고 외국에 파병되어 있던 병력을 모으고[43] 파견 외교관들과 재외국민 중 고급인력을 긁어 모아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주변국간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유엔 신탁통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재외공관 공직자들을 주축으로 임시정부를 수립할 수도 있다.
또한 졸지에 본사가 날아간 삼성, 현대 같은 한국 대기업의 해외 지점들도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고 한국이 생산량의 큰 부분을 담담하는 생산품들(메모리 반도체, 조선업, 디스플레이 등)의 세계 시장도 요동을 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현지 기업으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회사를 세워 문제를 해결해 나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인재와 자본이라는 게 본사가 없어진다고 그대로 박살나는 것은 아니니까. 실제로 본사가 날아간 대우에 비춰 볼 때 따른 회사에 인수되거나 현지 기업으로 재탄생하면서 그룹은 공중 분해 될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라는 나라의 경제력이 사실상 모두 없어졌으므로, 세계는 경제 대공황에 빠질것이다. 1997년 외환 위기도 태국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했을때, 이때보다 훨씬 심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한국인 or 1904년 대한제국에 머물던 외국인은 감격적인 조상-후손 상봉을 하게 될 것이다.이것도 역시 일본인이 가장 많을듯하고 러시아인도 많을 것이다.
그리하여 21세기 개화기를 여는데 성공하는 한편, 대외 채권, 지적 재산권, 해외 한국은행 예치금 같은 한국의 재외 자산을 경제 개발에 투자하면 수십년 후에 개발도상국 수준까지, 그리고 세계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제대로 된 통치권력이 장기간에 걸쳐 국가 전반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이루는 데 성공한다면 현대 한국만큼은 아니라도 중진국 급으로 끌어 올릴 가능성은 있다. 한반도는 그 특성상 한번 터지면 엄청난 대신 어지간해서는 터지지 않는 화약고이며 주변에 시장이 넘쳐나기 때문에 기본적인 발전 자체는 가능하니까.
문제는 나라의 발전을 이끌 인재도 없고, 외세의 침공을 막을 무력도 없다는 것이다. 1904년에도 서양의 학문을 배운 사람은 극소수였는데 2004년으로 넘어갔으니 그 몇 안되는 엘리트들도 재교육해야 나라를 이끌 수 있다. 해외로 나간 인재를 불러온다 해도 졸지에 세계 최악의 후진국으로 전락한 조국을 보고 얼마나 돌아올 지 의문이다. 그리고 대한제국과 현대 대한민국 사람의 가치관은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돌아온 한국인과 대한제국인들이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거기에다 1904년 대한제국의 인재 중에는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들도 있었기에, 자칫하면 이들이 외세와 결탁하여 나라를 산산조각 낼 수도 있다.
무력 역시 마찬가지. 1904년 당시 대한제국군에 소속되어 있던 장병은 약 2만 8천 명 수준이었는데, 이는 2004년 당시 수십만 대군을 유지하고 있던 대한민국 국군의 10%도 안 되는 숫자다. 그 2만 8천 명도 100년 전 화기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전에서 아무것도 못한다. 해외에 파병한 병력을 데려온다 해도 자이툰 부대, 동의부대, 다산부대 합쳐 1만도 안 되고, 이들 모두 전투부대가 아니라 이라크와 아프간 주민들을 돕기 위해 파병한 지원부대이기 때문에 전차나 장갑차 같은 중장비는 없다. 그리고 육군은 해외에서 끌어모을 수도 있지, 해공군은 그것도 못한다.
결국 1904년 대한제국이 살아남으려면 대한민국이 겪었던 한강의 기적보다 더한 기적을 일궈내야 한다. 그런데 국가의 수장은 갑자기 사라졌고, 믿을 만한 동맹국도 없고, 인재도 부족하고, 자금도 부족하고, 군대도 없는 상황에서 대한제국이 그만한 기적을 이루어낼 가능성은 적다. 현실 역사에서만 봐도 대한제국은 근대화에 실패하여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가. 결국 대한제국는 웬만한 개발도상국만도 못한 후진국으로 순식간에 추락하여 외세에 농락당할 가능성이 높다.
8.2. 시대별 지도자 비교
타임슬립이 이루어진 시점인 도착 시점 1904년 5월과 출발 시점 2004년 5월의 각국 지도자들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2004년 5월의 지도자들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2004년으로 이동한 대한제국이 마주하게 될 국제정세이기도 하다.1904년은 제국주의 시대, 2004년은 탈냉전 시대로 이해하면 된다.
[1]
해당 카페 링크. 현재 비공개 카페라서 외부인은 볼 수 없다.
[2]
갑자기
덕수궁이 3배 이상 확장되고 대기 오염물질이 급격히 감소하는가 하면 영해 밖에 있던 배와 비행기가 모조리 사라지고 국외 통신과 위성통신 역시 모두 끊어저버렸다.
[3]
경찰들은 덕수궁 밖으로 나온 고종 황제와 신하들을 보고 문화재를 불법으로 점거한 광대인 줄 알고 대치하나
전주 이씨 종친회 회장이 황제를 알아보고 절을 하면서 갈등이 해소되었다.
[4]
대통령의 이름이 '노우현'인데, 본인이 광주 노씨라는 점을 고종 앞에서 밝히는 것을 보아 사실상 이름만 다른
노무현인 듯(...). 이때 고종 황제는 개국공신인 노숭 대감의 후예라며 크게 기뻐하였다.
[5]
만주나
청나라 등지에 나가있던 조선인 포함. 만주 쪽에서 조선인 1명이 저지선을 뚫고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자 한국 군인들이 사살하는 장면도 나온다.
[6]
여기에는 주한 미국 대사 등 각국 공사관들도 포함되었다.
주한미군은 한국이 통일된 이후 대부분 본토로 철수하고 몇몇 부대가
김해에서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한국은 특전사를 보내 한국에 체류하던 주한미군 병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7]
황제국이 되었지만 국호는 여전히 대한민국이다.
[8]
러시아의 전투기인데, 흡수통일 후 북한의 것을 그대로 소유하게 된 모양이다.
[9]
참고로 이 때는 고종이 대한민국 황제로 즉위하고, 대통령이 대한민국 수상으로 취임하는 날이었다. 이후 입헌군주제 헌법을 공개하는데, 황제의 역할을 규정한 내용인 1조부터 7조까지
일본국 헌법과 판박이다(...).
일본국 헌법 참조.
[10]
이노우에가 '귀빈'이라고 하자 고종이 '국빈'으로 모시라고 딴지를 건다.
[11]
본래 미국 정찰기인데, 본래 북한군의 동향을 살피는 임무에 투입되었지만 미국이 한국의 반미감정을 달래기 위해 통일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무상으로 넘겨주었다.
[12]
항복하기 직전에 권총으로 황태자 이척을 공격하지만 방탄복 때문에 안 먹히는 걸 보고 항복했다.
[13]
M1 개런드 소총을 이름만 바꾼 것.
[14]
마찬가지로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을 이름만 바꾼 것이다.
[15]
영국은
수에즈 운하 통과를 허락했고 독일은 발트 함대가 들른 항구마다 최우선적으로 석탄을 보급해 주었다.
[16]
그런데 '어르신' 쪽에서 준 폭약은 원전을 파괴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위력이었다. 어르신의 목적은 원전 파괴가 아니라 노우현 정권을 흔들기 위함이었고, 이테와 신백호대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당한 것.
[17]
튀르크당의 쿠데타를 빌미로 전쟁이 재개되면 세르비아와 오스만이 손을 잡아 다른 국가를 침략하자는 것. 여기에 막대한 돈까지 받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세르비아는 엔베르 파샤를 배신하고 더 가혹한 공격을 가했다.
[18]
이 소설이 발간되었을 때는
여행금지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여행금지라고 나온다.
[19]
물론 최종적으로는 러시아와 영국도 몰아내고 위구르를 장악할 생각이었다.
[20]
알래스카는 원래 아시아 원주민의 땅이니 한국이 그들을 대신해 미국으로부터 아시아의 땅을 되찾으리라는 것.
[21]
치우조에 매수된 줄 알았던 황실 주방장이 사실은 라스푸틴의 이중 스파이라서 음식에 청산가리가 안 들어갔다.
[22]
과거 진계립이 텐진의 한 기생에 빠져 산 적이 있었는데, 원새개는 다른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진계립을 나무랐다. 충격을 받은 진계립은 집안에서 괴로워했는데 원새개는 기생을 사서 진계립에게 보내주었고, 진계립은 이 일로 원새개를 유일한 상전으로 모시게 되었다.
[23]
이게 본인에게 있어 좋은 결과였는데, 만약 루스벨트가 재선하면
제1차 세계 대전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전할 거라고 생각한 배달연합 측에서 루스벨트를 암살하려고 국정원 요원들을 잔뜩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24]
이 와중에 평양 식당서 뉴스로 한국 해군이 일본 해군을 박살내는 장면을 보고 분노하였다가 들켜 잡힐 뻔했다.
[25]
사티아는 중간에 배신, 롭은 국정원 요원에게 피살당하고 하루꼬, 찰리, 엘리 박사는 영국에서 국정원에 납치당했다.
[26]
다만 이테도 에디슨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자기가 미래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테슬라와 대립 중이던 직류 교류 문제서 미래엔 교류 전기를 쓰니 교류로 가야한다고 주장하기만 했다.
[27]
이러면서 속으로 위인전에 묘사된 에디슨과 너무 다르다며 세상서 제일가는 사기꾼이 위인전 작가라고 욕한다. 근데 어린 나이면 몰라도 30대가 되어서도 위인전 내용을 그대로 믿는 건 너무 순진하다거나 혹은 바보로밖에 보이지가 않는다.
[28]
사실 작중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장교, 그것도 무기개발 연구에 관여하고 참여한 장교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고 또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한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 행태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위에 말한 그거 외에도 자신과 일본이 당한 것만 생각하고 불평불만만 터트릴 뿐 동료들과 협력하거나 협조하려는 태도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나마 엘리 카우프가 어느 정도 달래주어서 망정이었지 아니었음 한참 전에 이 일행이 공중분해가 되었다. 거기다 테러를 한답시고 하필 원자력 발전소를 골랐는데 일단 원자력 발전소가 얼마나 철통 보안이고 진입하기 힘든 곳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고작 개인이 운반할 폭탄으로 터트리려고 했고 또 설령 성공했다고 해도 방사능 낙진이 일본까지 갈 수도 있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29]
미국 출신 귀화인, 한국인 여성과 결혼, 변호사, TV 출연, 이름 등 고루고루 따왔다. 단 하일은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찰리는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30]
필리핀에서 식민지인들의 설움과 고통을 언급하자 이테가
일본 제국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망언을 내뱉고 성질을 냈다.
[31]
일본 국왕과 만주국 국왕을 임명하는 권한이 한국 황실에 있으며, 모든 최신 병기는 한국이 독점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 한국에 반대하는 파벌들이 모두 한국에 의해 숙청당했으며 강력한 동화정책 때문에 민족 정체성도 잃어가고 있다. 만주와 몽골은 사실상 한국이 세워준 국가니 말할 것도 없고.
[32]
현대 한국의 유류소비량 저장량과 당시 세계 원유생산량 정제량을 생각해보면 답이 안 나온다. 소설 내에서처럼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33]
욱일승천기란 명칭도 사실상 한국 쪽에서 창작된 잘못된 명칭이다. 일본인, 특히 일본 우익들이 보면 놀림감으로 딱인 셈.
[34]
컨트리볼에서는 일본 제국이 욱일기로 묘사되지만 어디까지나 패전 후 일본과 구별을 하기 위해서지, 일제의 정식 국기를 욱일기라고 생각하는것은 큰 오산이다.
[35]
역시 단행본에서는 시기에 맞게 수정되었지만, 서태후와의 관계와 제호 부분만 수정했기 때문에, 향락에 빠졌다고 서술한 부분은 그냥 남아서 뜬금없이
광서제가 전임자인
동치제의 방탕한 삶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36]
물론 1차대전 초반까지도 지휘관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교리는 아니었는데, 전쟁이라는 것이 장기전으로 가면 양국 모두 망하는 것이니까 작계를 만들 때부터 기본교리로 쓸 수는 없었던 것.
[37]
정작 저 증조할아버지는 그냥 경찰관이었을 뿐이고 물려준 재산도 없었다.
[38]
18세 이하 청소년은 강제이주대상이 아니지만, 부모를 보내고 아이만 남으면 고아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대부분은 같이 가는 것을 선택했다.
[39]
사실 100년 격차를 몇 년도 아니고 세대를 넘어 수십년 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체주의적 국가운영 외에 다른 방법을 딱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작중에서는 밖으로 국정원의 온갖 비밀첩보작전으로 다른 나라들을 이간질해대면서, 한편으로 100% 쇄국정책으로 우리나라의 발전 실상을 외국에 완벽하게 숨기고 있는 듯 하지만, 극히 일부의 매국노를 제외하고 전국민이 완벽하게 비밀을 지키면서, 그 비밀이 유지되고 있는 국내에 한하여 자기들끼리만 선거 등 민주주의는 또 그대로 정상 작동하고 있는 작중 설정은, 그 자체가 오히려 넌센스에 가깝다. 실제로 타임슬립 이후 여당은 정권을 잃지 않는데, 대외적인 비밀 유지라는 명목 하에 각종 전체주의적 통제가 만연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거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결국 저 상황이 계속되면 야당은
구색정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런데 작중에서 반대파들은 음모를 꾸미는 짓만 할 뿐, 그러한 각종 통제들 때문에 제대로 된 공정한 선거가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에 관하여는 이를 정면으로 내세울 생각도 하지 못한다.
[40]
3대쯤 지나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증조부 세대의 조상이 일제시대에 공무원 등으로 한발이라도 걸친 사람은 꽤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뿌리뽑는다고 강제이주까지 해버리면 비밀유지는커녕 그들의 충성심 자체를 소멸시켜 국가 자체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고, 그 불평분자들 전원을 국가의 적으로 돌리는 일이니 그냥 국가막장테크가 된다.
[41]
그래서 책 뒷쪽에 보면 ID로 된 이름들이 타임슬립한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상상으로 써 올린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애초에
웹에서 연재되던 소설이었던 것이다.
[42]
출처
[43]
현실에서 2004년 5월 당시
이라크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동의부대와 다산부대가 해외에 있었다.
[44]
작중에서는 '노우현'이라 불린다. 북한의 지도자는
김정일이나 작중에서는 암살당하고 통일한국이 만들어졌다는 설정.
[45]
다만 군사권을 가진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아직
장쩌민이 맡고 있었다.
[46]
이 시절의 국호는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47]
웨스트민스터 헌장 비준 이전의 자치령 시절이다.
[48]
1907년 자치령으로 독립.
[49]
프랑스 제3공화국은 의원내각제지만 제5공화국은 이원집정부제라 의회가 선출하는 총리가 있지만 대통령의 권한이 더 강하다.
[50]
엄밀히 말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구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