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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金正男 | Kim Jong Nam |
|
<colbgcolor=#878787> 가명 | 김철[1] |
출생 | 1971년 5월 10일 |
평양시 | |
사망 | 2017년 2월 13일 (향년 45세) |
말레이시아 슬랑오르 세팡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 |
국적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전주 김씨[2] |
학력 | 제네바 대학교 ( 정치학 / 학사) |
가족 |
할아버지
김일성 할머니 김정숙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성혜림 배우자 신정희 자녀 김한솔, 김금솔, 김솔희, 김이순[3] 이부누나 리옥돌[4] 이복동생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제수 리설주 조카 김주애 숙부 김만일, 김평일, 김영일 고모 김경희, 김경숙, 김경진, 김백연 고모부 장성택 이모 성혜랑 사촌 김인강, 김은송, 장금송, 이한영, 이남옥 |
[clearfix]
1. 개요
김일성의 장손이자 김정일의 장남, 사생아.김정일과 유부녀였던 성혜림[5] 사이에서 태어났다.
2. 생애
2.1. 출생
* 1975년 1월 김정남과 외할머니 김원주의 모습.
* 김정남은
봉화진료소에서 '몰래' 태어났다. 김정일은 성혜림과 김일성 몰래 동거하여 아이가 생겼는데 바로 이 아이가 김정남이다.[6] 사진은 1981년에 찍힌 김정남의 모습.
김정일 오른쪽에 앉아 있는 아이가 바로 김정남이다.[7]
- 어린 시절에 상당히 권위주의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개차반. 김일성과 김정일 밑에서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 이루면서 살았기에 애가 성격이 망가지지 않을 리 없다. 오히려 다 크고 나서 김한솔에게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철이 들은 것이 신기할 수준. 김정일이 자식 교육에 아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밀리에 낳은 아들이라 초창기에는 숨겨서 키웠기에[8] 관리와 교육은 관저 내 부관들에게 맡겼다고 한다. 넓은 집에 갖고 싶은 것 다 가지고 살았지만 사실상 창살없는 감옥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2.2. 유년기
- 누구에게나 반말을 썼다. 11살 많은 사촌형 이한영에게도 처음 보자마자 '일남이 왔네'라고 했다고.[9] 관저에 살고 있는 부관들에게도 반말을 했고, 부관들은 김정남에게 깍듯이 '대장 동지'라 호칭하며 존대말을 썼다고 한다.
- 어린 김정남이 모스크바에 갔을 때 여러 나라 외교관들의 자녀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걸 보고 북한에서 하던 대로 "쟤네들 다 오라고 해봐."라며 명령을 했고, 동행했던 이한영이 여긴 다른 나라라서 함부로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하자 잔뜩 삐친 채로 "그래도 오라면 와야 될 거 아냐"라며 툴툴댔다고.
- 평양 가는 고려항공 비행기 안에서 입을 벌리고 졸고 있던 북한 아저씨 한 명을 김정남이 다짜고짜 머리를 때리면서 "그렇게 추하게 입벌리면서 자면서 공화국 망신은 다 시키는구만?"이라고 시비를 걸었는데, 웬 꼬맹이가 시비 거는 것에 열받은 아저씨가 '누구 아들이냐'고 따지니 어린 김정남은 그 자리에서 ' 김정일이다!'라고 답했고, 김정남 뒤에 서있는 보위부 간부들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기겁해서 그냥 '잘못했습니다'하고 깨갱했다고 한다.
- 값비싼 각종 선물과 산해진미는 물론이고 보고 남한 예능과 동화도 마음대로 즐길 수 있었다. 김정남은 '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같은 문학작품도 읽었는데 하루는 그걸 읽더니 윤복이가 불쌍하다면서 잠도 못 이루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돈이랑 음식을 보내주고 싶다고 하면서 부관들에게 남조선에 사는 이윤복이가 얼마나 불쌍하게 사는지 아냐고 걸핏하면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냐면, 이한영도 성혜림과 김정남이 옆에 없으면 남한 TV나 영화를 볼 권한이 없었다.
- 개그맨 이주일을 아주 좋아해 김정일에게 이주일을 데려와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다고 한다. 곤란해진 김정일은 관저 책임자에게 적당히 처리하라고 했고 이에 북한 전역을 뒤져서 이주일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일주일만에 비슷하게 생긴 한 농민을 찾아 이주일 성대모사를 일주일 훈련시켜 김정남에게 보여줬는데 문제는 김정남이 안 속았다. 20분 정도 가짜 이주일의 공연을 보고 김정남은 '수고했다', '연극 꾸미는데 고생했다'며 조금 실망한 듯. 참고로 이주일의 도플갱어에게는 대충 인삼주 같은 것을 쥐어 주고 비밀 서약을 받은 뒤 돌려보냈다고 한다.
- 북한으로 납치되었던 최은희가 김정일 생일잔치에 초대받아서 김정남을 소개받고는 김정남에게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자, 자기 이름 묻는 사람을 처음 본 김정남이 놀라서 '남의 이름을 다 물어?"라고 중얼거리면서 김정일 뒤에 숨어 버렸다고 한다. 최은희 회고록을 보면 김정남이 대단히 부끄러워했다는데 딱히 악의가 있던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당시 김정남은 김씨 가문의 장남으로 엄연한 백두혈통이었고 그런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거는, 나아가 이름을 묻는 대담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10] 이에 곧바로 김정일이 김정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정남아, 어른이 말씀하시면 '예 저는 누구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거야."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 30이 넘어 결혼 압박을 받은 김정일이 결국 1975년 즈음에 김일성에게 사실 이미 아이가 있다고 털어놓자 김일성은 처음에는 극대노했지만 나중에는 김일성이 그렇게나 좋아했다고 한다.[11] 김정일은 첫 아들 김정남을 엄청나게 아꼈는데 밥을 먹을 때는 언제나 식탁 위에 올려놓고 먹일 정도로 이뻐했고 밥 먹다 말고 우유통에 오줌까지 받아줄 정도였다. 김일성도 유일한 손자가 귀여워서 어쩔줄 몰라 외국 국가원수와 대화하다가도 김정남이 땡깡을 부리자 국가원수를 돌려보내고 김정남을 달래러 갈 정도였다고 한다.[12] 김정일은 종종 회의실에 김정남을 데리고 가 "정남아, 네가 커서 이 다음에 큰 소리 칠 자리다. 빠빠 자리에 앉아서 마이크에다 빠빠 이름을 불러봐라"라고 했다고. 김정남은 이에 맞춰 "김정일 동무, 일어서시오" 라고 하니 "예, 김정일 일어섰습니다"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13]
- 보통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생일 선물을 매년 받았다고 한다. 5월 10일 김정남 생일에 맞추어 매년 4월 중순쯤에 선물 구매단이 출발하는데 일본, 홍콩, 싱가포르,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를 돌며 총 100만달러어치를 매년 사왔다고 한다. 생일 선물에는 옷, 신발, 놀이기구, 게임기,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 금 도금 장난감 권총 등 성인이 보기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의 선물을 매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이 장난감을 보관할 공간도 당연히 필요한데 이 방 규모가 3백 평 쯤 되었다고 한다. 이 방은 매년 생일을 기준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고 한다.
2.3. 그 이후
- 이복동생들이 태어나고 어머니인 성혜림이 김정일과 멀어지면서 총애를 잃은 것으로 보이며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도 아버지의 눈 밖에 나는 데 한몫했다는 얘기가 있다.[14] 이 시기의 김정남에 대해 증언해줄 사람은 사실상 리수용이 탈북하지 않는 한 없으므로 청소년기~유성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 스위스 제네바 대학[15]에서 정치학 학사를 받았으며 오랜 기간 유럽에 체류하며 자유와 자본주의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는 백두혈통의 특권이며 보통의 외교관 및 고위층 자녀들이 유학을 희망하면 동구권에 한정되었고, 서구권 유학은 김정일이 무조건 기각시켰다.
- 1990년부터는 귀국하여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는 등 IT 분야 및 군사분야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정일과 북한 전국의 경제 개발 상황을 시찰했는데, 그 과정에서 유럽에서 보고 배운 방식과 북한의 실상이 달라서 김정일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관해 증언을 해줄 주변인들이 탈북하지 않아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으나, 대략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이러한 일을 계기로 최종적으로 북한을 떠나 생활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 성혜랑의 증언을 보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이뻐하던 일은 과거의 일이고 90년대에는 숨어 지내라는 김정일 말 듣지 않고 친구들을 특각에 불러 놀다가 김정일에게 들켜서 죽도록 혼나는 등 슬슬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2.4. 2001년 일본 추방 사태
* 김정남은 이한영을 통한 유년기의 증언, 유년기 사진 몇 장, 고위 탈북자의 단편적인 증언 등으로밖에 증명되지 않는, 존재 자체가 비밀에 부쳐졌던 인물이었다. 이 와중 김정남이 북한의 후계자로서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가지게 된 것은 2001년 일본 밀입국 사태이다.
- 김정남은 2001년 5월 1일 동행 3명과 함께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국인 사업가를 자칭하여 일본 입국을 시도했는데 이 때 불법 입국자로 분류되어 구류당한 적이 있다. 후에 동행자 3명은 배우자 신영희, 신영희의 사촌 리경희, 아들 김금솔로 밝혀졌다. 그러나 김정남은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못했는데다가 돈이 너무 많아 의심을 사게 됐는데, 지갑 속 100달러와 일만엔짜리 고액지폐 두께만 3c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추방 당시 손목시계는 롤렉스에, 동행했던 리경희는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있었다고. 일화로 구류 당시 일본 출입국 관리소에서 도시락을 시켜다 김정남에게 주었더니, 김정남은 고맙다며 일만엔짜리를 하나 주었는데 이에 거스름돈을 거슬러주니 팁이라고 안 받았다고 한다.
- 일본 나리타 출입국사무소가 이 '한국인 사업가'가 누군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한국인 남성'은 '나는 김정남'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어느 누구도 김정남이라는 이름을 사칭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일단 보통 사람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본 언론에 노출되어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으며 당시 서방권으로 망명하였던 이한영의 어머니 성혜랑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어렸을 때와 똑같다'고 확인해주었다. #
- 외교 문제로 비화될까 걱정한 일본 정부는 3일 뒤인 5월 4일, 김정남을 추방해 버렸는데 당시 김정남은 비행기 1등석을 모조리 사 버리는 미친 짓을 통해 비행기까지 쫓아온 기자들을 따돌리고 베이징으로 가 버렸다. 당시까지 김정남은 일본에 빈번하게 입국해왔는데 하필이면 그 날 걸린 것이다. 참고로 위조 여권을 사용하여 여행하는 것은 북한 내에서는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것들이었으며 그 김정은도 브라질 위조 여권을 사용하여 일본에 놀러간 적이 있다고 한다. 태영호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장성택도 위조 여권을 쓰다가 구류되어 있는 것을 외교관이 꺼내줬다고 하니 확실히 일상적인 것은 맞는 듯.
- 결국 해당 밀입국의 목적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사실 중동 지역 미사일 판매 대금을 받으려 한 것이었다, CIA 개입,[16] 국정원 개입[17] 등 카더라가 많았지만 억울하게도 도쿄 디즈니랜드에 아들을 데리고 놀러 가는 게 목적이었다고 밝혀졌다. 현지 공항에서 김정남의 아내와 리경희는 어두운 표정으로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김정남의 아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18] 링크
- 일본 쪽에서 김정남 일본 추방을 몹시 크게 다루었으며 김정남 이름 석자가 연일 헤드라인에 대서특필되는 상황이었으나 북한 쪽에서는 무응답으로 일관하였다. 참고로 당시 김정일과 스웨덴 총리 사이 정상 회담이 진행 중이었는데 불 같은 김정일 성격상 화를 크게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
- 이 사건 때문에 김정일의 눈 밖에 나서 외국을 떠돈다는 설이 있었으나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발 벗고 달려가 프랑스측 의료진을 섭외해서 평양으로 왕진 오게 했다고 한다.[19] 실제로 김정남은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연초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1년에 한 번 꼴로는 평양에 들어갔다고 한다.
2.5. 후계자 탈락
- 이한영은 '북한의 후계자는 김정남이다' 라는 말을 항상 했다. 적어도 이한영 탈북 전에는 그렇게 절대적이었다는 뜻. 그와 맞물려 김정일의 첫째 아들인 점과 북한의 후계자로써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 알려져 여러 인터뷰와 언론에 노출되었다. 후계자로서 국방부는 김정남 승계설을, 국정원은 고용희의 아들 승계설을 각각 지지했다. 결국 국정원이 옳았다.
- 김정남은 결국 후계자 구도에서 탈락하였고 00년대 후반 김정은이 단독 부상하게 된다. 참고로 김정은은 당시 '고영희가 삼남매를 낳았다' 정도로 알려져 있었는데다가 2000년대 대외적으로는 초중반까지는 김정남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후지모토 겐지의 '김정은' 후계자 설은 여러모로 비주류였다.
- 첫째 아들이라고 김정일의 묵인 아래 자유롭게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주로 마카오,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프랑스 등지를 돌아니며 그에 따른 목격담도 많다. 2014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한국 언론에 포착됐다. 또 2014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목격됐다. 2007년 당시 뉴스데스크 보도에서는 연예인을 방불케하는 취재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 월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김정남이 이한영 암살을 주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한영의 '로열 패밀리' 출간 후 이것을 구해다 읽은 김정남이 본인의 이야기가 새어 나온 것에 대해 극대노하여 이한영 암살을 지시했다는 이야기이다. 본인의 어머니와 이모, 사촌누나 모두가 탈북했고 사촌형은 '남조선'에 망명하여 '할아버지', '아버지', '기쁨조' 등에 대한 자극적인 증언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본인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암살을 지시했다는 '투서'를 베이징에서 받았다는 이야기[20]인데,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법. 확실한 것은 이한영 암살을 주도한 암살범 왕문성[21]은 검거하지 못했고 왕문성은 북한으로 귀환하여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아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없는 것만이 확실한 팩트이다.
- 왜 후계자 경쟁에서 패배하였는지는 현재까지는 추측만 할 뿐이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을 밝힌다. 후지모토 겐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초대받아서 참석한 파티나 고위급 모임에서 김정남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오히려 김정은이 늘 왔다고 증언했다. 그렇기에 후지모토는 '김정은이 북한의 후계자'라고 직감했으나 대세였던 김정남 후계자설에 헛소리로 묻혔다.
-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상기한 2001년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이 그렇지 않아도 이복 동생들에게 상당 부분 밀려나 있던 그가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신뢰를 잃어버린 사건이라고 평하고 있다.
- 성혜림의 성격이 더더욱 불안해져 이에 질려버린 김정일이 고용희에 마음을 더 주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김정남보다는 김정은에게 마음이 더 가기 시작했다는 분석. 게다가 이한영이 1996년부터 공개활동을 시작하며 이한영과 성혜랑의 통화까지도 언론이 공개해버렸는데 이로 인해서 성혜림/성혜랑의 입지가 더더욱 줄어들었고 그로 인하여 김정일의 마음이 자연스레 김정남에게서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분석. 그러나 취재에 따르면 김정일은 '나에게만 충성하면 일 없다(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하는데,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본인만이 아는 법.
-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정남의 언행이 문제가 되었다는 분석. 아주 주간 #은,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정남이 1996년 8월 시장경제를 토론하는 집회에 참석해 중국식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경제를 다시 세우려면 중국식 개혁/개방을 빼고는 방법이 없으며 먼저 기업을 세우고 그 자회사를 늘려가는 방법으로 발전시키면 자본주의로 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당연히 북한에서는 숙청감이다.
2.6. 후계 탈락 이후
- 2009년 3월 말 북한의 미사일 파동 당시 " 북한의 공격에 일본이 자위 수단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는 본국 송환 뒤 즉결 숙청감인 소리를 대담하게 하여 '지 아비와는 뭔가 다르구나.'라는 인상을 많은 한국인들에게 심어 주기도 했다. 김정남이 북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이유에 대해서도 과거 자신이 지도자가 되면 개혁, 개방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아들인 김한솔에게 '언제나 고통받는 인민들을 생각하라'는 말도 했으며 2010년 9월경 "바통 터치하러 북한에 가야 하지 않는가?"하는 기자의 질문에 "어차피 곧 망할 나라인데 가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란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
- 김정은 임명 전 고미 요지 인터뷰를 보면 김정남은 김정은이 정식 후계자가 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면서도 "3대 세습을 한데는 북한 나름대로 내부적 요인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내부적 요인이 있었으면 그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즉, 3대 세습에 개인적 반대는 하였으되 이에 대해서 북한 나름의 내부적 요인으로 결정된거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완전한 비판이라고도 볼 수 없는 발언이다. 이 시기에는 동생 김정은이 수령으로 결정된 후고 권력에 밀린 김정남이 동생에게 섭섭한 감정을 토로했을 수도 있지만 저 발언 때문인지 몰라도 김정남은 아버지인 김정일 사후 북한으로부터 생활비 지원이 끊겼다고 한다. 김정일 생존 시 회당 20~50만 달러 정도 생활비를 받았다고 하며 김정일 사후 생활비가 끊기자 장성택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가지고 있는 BMW도 팔았다'며 돈 좀 달라고 한 적도 있다.
- 장성택은 김정남이 북한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에 따라 장성택은 '외화 벌이'를 통하여 모은 돈을 김정남 생활비로 자주 송금해주었다. 무려 총합 700만 달러를 보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장성택은 김정남의 후견인이었는데,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정권을 잡고 장성택을 처형하자 더 이상의 지원은 없었고 모아놓은 돈도 떨어져가는 와중에 본인에게 걸린 암살 명령도 알게 되어 수 차례에 걸쳐 자신에게 내려진 암살 명령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
- 여러 설들이 있지만 김정일과 장성택이 죽은 후에는 지원도 싹 끊기고 팔 수 있는 정보의 수준도 아주 낮아져서 비교적 고생을 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2.7. 대한민국 망명 시도?
- 2012년 말쯤부터 '김정남이 한국에 망명을 시도했다', '이미 했다', '국정원이 망명시키기 위해 공작 중이다.' 같은 소문이 떠돌았는데 2012년 11월 12일 원세훈 국정원장이 공식적으로 부인했고 김정남 본인도 강하게 부인하였다. 이는 당시 '나는 꼼수다'에서 제기한 설이었는데 #, 이 가설과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이 맞물리며 김정남이 엮여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생성된 루머로 보인다.
- 백번 양보해서 설사 국정원이 망명 공작을 했다고 하더라도 김정남의 확보는 절대 확인해줄 수 없는 것이 국정원의 입장이다. 이미 이한영 암살이나 황장엽, 박상학, 고영환 등에게 늘 도사렸던 암살 시도만 보더라도 한국은 고위급 탈북자들에게 안전 지대가 되기 힘들다.[22] 더구나 김정남은 북한 정권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김씨 일가의 직계 가족이라는 점을 들어서라도 반드시 제거당할 것이므로 엄청난 경호 인력과 보호 체계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 권장할 만한 곳이 아니며 김정남 자신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선호할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 후일 밝혀진 이야기로는“한국 국정원이 김정남을 데려오려고 했는데, 정작 김정남은 한국보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유럽은 대북 정보에 목말라 하지 않았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김정남이 김정일의 아들인 것은 맞지만 다른 고위급 인사들보다 정보 가치는 크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며 “특별한 대우를 원했던 김정남과 미국 측의 협상이 결렬됐고, 한국의 경우도 김정남이 요구하는 것과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의 갭이 워낙 커서 결국 그 정도까지 비용을 지불하면서 데려오는 것은 막판에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단순 내부 검토 수준의 이야기로 밝혀졌다. #
2.8. 박근혜 편지 사태
- 2017년 박근혜가 이사로 있었던 유럽코리아재단을 통하여 박근혜-김정남-장성택-김정일이라는 불법 루트로 박근혜-김정일간 내통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김정남과 유럽코리아재단 간부가 22건 이상 메일을 주고 받은 것으로 전해진 것으로 확인 되었다. '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 비선은 김정남이었다' 참고로 이 뉴스가 나온지 3일만에 김정남은 피살되었다.
- 메일 내용에 따르면 2005년 유럽코리아재단이 김정남을 통해 장성택에게 한복, 부적 등을 한국에서 만들어 제공해줬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복은 전주에서 맞출 경우 2,400달러였고 서울 디자이너의 경우 5,000달러가 필요하다고까지 전해 주기도 했다. 한국의 역술인들을 통해 사주풀이도 전해 주었다고 알려졌는데 장성택의 사주를 “아주 어려운 시기는 지났다”고 풀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박근혜 편지 사태 참조. [23]
2.9. 사망
자세한 내용은 김정남 피살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3. 가족관계
- 신정희와 결혼하여 김금솔을 두었다. 본처인 신정희 외에 사실혼 관계(동거)를 거친 동거녀로 리혜경, 장길선, 서영라[24] 등 3명이 있다고 한다. 자식으로는 본처에게 얻은 아들인 차남 김금솔과, 동거녀인 리혜경에게서 얻은 장남 김한솔, 장녀 김솔희, 다른 동거녀인 장길선에게 얻은 3남 김이순이 있다.
- 김정남의 아들 중엔 장남인 김한솔이 유명한데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UWCiM)'을 졸업하고 2013년 가을 프랑스의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에 입학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나만 좋은 음식을 먹는 게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비교적 개념 탑재된 모습을 보였다. 2012년 10월 19일 김한솔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통일을 꿈꾸는 김정일의 손자
- 김일성의 사생아 '작은 아버지'인 김현과는 같은 1971년생이라 나이가 동갑이다.
- 이종 사촌형으로 이한영이 있다.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의 언니, 즉 김정남의 이모인 성혜랑의 아들로 동구권에 유학 중 1982년에 대한민국으로 홀로 망명하였다. 최고위급 귀순자로 계속 은둔생활을 하다가 책을 출판하고 공개활동을 시작한 후인 1997년 2월 15일에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이한영이 암살당한 지 정확히 20년을 하루 앞둔 2017년 2월 14일 김정남도 암살당한 것이다.
- 사촌 누나로 이남옥이 있다. 이한영의 여동생이다. 이남옥은 92년에 서방으로 망명하였다. 즉 김정남 입장에서 사촌형, 사촌누나, 이모, 엄마 모두가 서방으로 탈북하였던 것. # 이남옥은 망명 후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여 살림을 차렸고 호텔 사업을 한다고 한다. 이남옥도 자서전을 썼으나 글재주가 없었는지 출간하지 않는 것을 택했는데, 나중에 인터뷰를 통하여 이남옥씨의 이야기가 마지막 계승자라는 책으로 간접적으로 출간되었다.
===# 가계도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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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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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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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대 |
제
2 대 |
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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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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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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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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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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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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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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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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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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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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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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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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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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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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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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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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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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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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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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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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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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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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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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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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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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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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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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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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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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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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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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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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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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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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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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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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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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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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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타
- 김정남은 김정은을 실제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 제네바 국제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참고로 여기 대학의 학사과정은 프랑스어로 진행되며 여기를 입학하고 졸업하려면 DELF B2 이상이 필요한 점을 볼 때 김정남의 프랑스어는 당연히 유창하다. 영어도 여기서 배웠다고 한다. 일본어와 중국어도 식사 주문 할 수 있을 정도. 아마 광동어일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에서도 유학 생활을 한 적도 있어서 간단한 러시아어도 할 수 있다. #
- 한국어로 인터뷰를 할 때 거의 서울말에 가까운 말투를 썼다. 본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교류해왔기 때문에 자연히 말투가 서울말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사실 그의 어머니 성혜림과 이모 성혜랑이 서울 토박이였다는 점, 그리고 출생할 때부터 엄마와 이모,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던 것을 고려해 보면 그가 평양식보다는 서울식 억양을 가진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몇 개의 사용 단어에서 서울말과 거리가 먼 단어를 선택하기도 하여 문화어의 영향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김정남이 일부러 배우지 않았더라도 '서울말'을 쓰는 데는 별다른 무리는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 해외에 쌓아 둔 인맥이 많았는데 특히 중국에서의 인맥이 막강하다. 김정은의 측근이 김정남을 제거하려고 하자 중국이 막았다는 설도 있을 정도다. # 실제로 김정남은 상당 기간 동안 중국 마카오에서 생활했으며 아들 김한솔이 김정남의 암살 후 인터넷에 올린 영상에서 아들인 자신과 김정남의 가족들을 도와준 정부로 네덜란드, 미국과 더불어 중국 정부를 언급한 것을 보아 실제로 김정남은 중국 정부와 큰 접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김정남이 살아 있을 때는 중국의 지원을 뒤에 업고 북한 내 장성택 라인과 친중파 장성들과 같이 동생과의 내전을 벌일 거라는 예측도 나왔고, 김정남이 암살당한 이유가 중국의 개입이나 북한내 김정남파의 봉기를 두려워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 김정남이 친중파였다는 것에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아마 중국에서는 북한 정변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로 고려했을 개연성은 있다.[25] 김정남은 베이징,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면서 중국과 연락하기도 했으며 # 김정남의 사후 중국의 반응을 살펴보면 김정남의 죽음이 과거 중국이 김정일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 김정남을 지지했고 이후 김정은이 이에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김정남은 친중파이거나 친중파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판단된다. #
- 두 번의 입국 금지 전력이 있다. 첫 번째는 상기한 일본 추방이고 두 번째는 2007년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들어오려다 홍콩 입경처가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입국을 거부한 것이다. #[26]
- 김정남 피살후에 그에 대한 북한 여론은 냉정한 평가를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증언에 따르면 "김정남은 식당에서 술에 취한 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총을 마구 쏜 적이 있으며[27] 전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을 때도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 김정일 위원장도 말리지 못한 ‘깡패’ 그 자체였다"는 평도 있고 1990년대의 어려운 시기에 외국에 나가 여기저기에서 여자에 둘러싸여 있던 김정남이 아니냐며 그 김씨 일가 중 한 명이 사라졌다는 것은 잘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김정은을 의식해 표면 상의 여론이 그리 흘러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아니더라도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 외국에 나가 사치스런 생활을 했던 김정남에게 좋은 소리를 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김정남과 학창시절 어울려 지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또 다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그림을 잘 그리고 유머가 있으며, 겸손하면서 허풍을 전혀 떨지 않고 독재자의 손자, 아들인걸 불편하게 여겼다면서 신사적이고 평범하며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있다. # 또 김정남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아들인 김한솔이 개념찬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에 아버지인 김정남의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 결론은 최측근 당사자가 탈북하여 이한영같이 고백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문제이다.
- 비록 성인이 되어가면서 자의반 타의반의 여러가지 일로 차츰 아버지의 눈밖에 날 수밖에 없었던 김정남은 유력한 후계자 지위에서는 점점 멀어졌지만 어쨌든 김정남에 대한 김정일의 부성애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그 덕에 김정남은 적어도 김정일이 죽기 전까지는 해외를 자유롭게 유랑하면서, 때때로 평양에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부족한 것 없이 살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김정일의 유언이 김정남은 나쁜 아이가 아니니 그의 애로를 덜어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 2010년 일본 방송 출연 모습을 보면 "북한"이라는 명칭을 썼는데 이게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다. 남한 정치인이 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다. 그나마 김정남이 김정일의 장남이니까 당장 화를 안 입었지 만약 단순한 북한 고위층이었다면 얼마 못 가 죽었을 것이다.
- 고미 요지(五味洋治)라는 일본 신문 기자와 친했다. 여기서 나오는 정보 거의가 이한영의 수기 '로열 패밀리'와 고미 요지의 140통의 메일 인터뷰를 엮은 '父、金正日と私:金正男独占告白'[28], 옛날 월간 조선에서 나왔던 내용을 간략하게 추린 것이다. 고미 요지와 꽤 친해져 마카오, 싱가포르 등지에서 실제로 만나서 술도 먹고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등 몇 년간 친구 사이를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김정남은 서로가 나누는 이야기에 대해 기사화하는 것을 동의하여 일본 신문에 인터뷰 형식으로 김정남의 의견을 게시하였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김정남은 평양에서 '엄중 경고'를 받고 정치 관련 내용은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고미 요지가 이것을 모아 책을 출판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정일이 사망하게 되고, 이에 김정남은 거듭하여 출판 중지를 요청하였으나 결국 출판되자 김정남은 고미 요지와 절연하게 되었다.
- 한국 야후 이메일 주소가 있었다고 한다. 야후 초창기에는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 김정일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할아버지를 대면한 적이 있다. 참고로 이 때문에 김일성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김정은의 열등감이 상당하다.
- 김정남이 입은 티셔츠에 디지캐럿이 합성된 사진이 조선일보 및 MBC 뉴스데스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각종 언론 보도에서 잘못 보도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1 #2 이것은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측에서 합성된 사진을 공식 촬영사진으로 오해하였는지는 몰라도 국내 언론사에 뿌리는 뉴스자료에 포함시켜 발송하며 발생한 해프닝으로, 프레시안 기사에서도 해당 사진의 출처가 연합으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5. 대중매체에서
- 하태경 의원이 정계 입문하기 전인 열린북한방송 대표 시절에 이한영 수기를 바탕으로 2010년 <만화 김정은>을 출간했는데 여기서 김정남 얘기도 상당수 언급된다.[29] 김정일이 장난삼아 3살 때 소장, 4살 때 중장, 5살에 상장, 6살에 대장, 7살에 원수, 8살 때는 대원수 지위를 주고 군복을 입혔다는 것이다. 물론 군대 놀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대장 동지'라 부르며 대우해줬다고 한다.
- <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한 출연자가 김정남이 김정일 시절 주요 후계자로 거론될 때 인민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실시해서 북한에서는 평이 좋았으며 다들 김정남 시대가 되면 살기 좋아질 것이라 기대가 컸다고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오히려 마카오 등지에서 권력에 관심 없다며 도박을 즐기는 등 기행을 일삼는 것도 권력을 장악한 김정은의 견제를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 왕조에서 권력에서 밀린 장남들이 의도적으로 음주가무와 여자를 가까이 하여 일부러 민심을 잃고 왕권에 관심이 없음을 애써 보여준 모습과 비슷하다.
- 김정남 암살 사건과 이후 체포된 두 여성의 법정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암살자들>(Assassins)이 2020년 개봉했다. 한국 정식 개봉은 2021년이다. 영화 완성도 자체는 괜찮은 편이지만 한국어 자막 상태가 좋다고는 하기 어렵다.
6. 외부 링크
[1]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서 생활했을 때 사용한 가명
[2]
34세 혹은 35세손이라는 말이 있다.
[3]
3명의 부인에게서 얻은 자녀들이다.
[4]
어머니 성혜림이 첫 결혼에서 낳은 딸
[5]
김정일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형수였다고 한다.
[6]
이한영 수기 참조
[7]
뒷줄은 왼쪽부터
성혜랑(김정일의 전처이자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의 언니), 성 씨의 자녀 이남옥,
이한영이며, 앞줄에 김정일과 김정남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
신동아
[8]
덕분에 성혜림의 주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게 됐다. 탈북자인 김금혁의 말에 의하면 방계의 사람이 동기에 있어도 학교에서 대화하는 게 한계였고 그 방계의 사람은 학교가 마치면 고급 승용차가 와서 어디론가 말도 없이 가 버렸다고 하는 수준이었다.
[9]
이한영의 원래 이름은 '리일남'이었다.
[10]
당시 최은희는 김정일이 예술에 대해 견해를 물으면 망설임 없이 솔직한 비평을 해주곤 했는데 김정일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북한 간부들은 이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재주가 좋냐고 물었다고 한다.
[11]
이 1975년이란 년도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대외정보조사부 부부장 박병엽은 김정남이 1975년 5월에 태어난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즉 박병엽은 김정남이 김일성에게 인정을 받은 시점과 진짜 생일을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로열 패밀리에 대해서 대단한 지식이 없던 박병엽이 그냥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
[12]
다만 이한영은 정말 정상회담 중이라면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평양에 망명와 있던 노로돔 시아누크와 사적으로 만나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게 아닌가 추정했다.
[13]
이걸 본 김일성이 김정남을 김정일 다음의 후계자로 생각했다는 야사도 존재한다.
[14]
일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원래는 김정남이 후계자였으며 김정은과 김정철은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유는 그들의 유년시절에 있다. 북한 주석이었던 김일성은 김정일을 북한에서 교육시켜서 측근과 인맥을 만들게 하였고 후계자로서 노출시킴으로써 인정받게 만들었던 반면, 김정은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스위스에 유학을 보낸 탓에 측근과 인맥을 만들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 김정일이 급사했다고는 하더라도 후계자로서 나선 지 2년만에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는 점, 그리고 당시 김정남은 이미 사고를 쳐 놓은 후였다는 점이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15]
1990년대에
소련이 무너지고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자
미국이 정말로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김정일은 자식들을 중립국인
스위스로 다 피난시켜 그곳에서 교육시켰다.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모두 스위스에서 학교를 나왔다.
[16]
이를 두고
미국이 김정남의 밀입국 정황을 미리 포착하고
CIA를 통해 일본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는
카더라도 있었을 정도다.
# 이는 해당 링크에서 한 정보기관 관계자에게 부정되었지만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일본이 김정남을 밀입국자 취급한 게 당시에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증거다.
[17]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사실 귀뜸한 것은 국정원이었다고 한다. 이는 김정남을 잘 감시하고 나온 정보를 공유해달라는 국정원의 의사 표시였지만, 내각 조사실에서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항 당국이 그냥 일반 밀입국자 취급을 하는 일본식 관료주의의 병크 폭발로 이 사단이 났다고 한다.
[18]
출처: 아버지, 김정일과 나, 김정남 독점 고백 참조(五味洋治)
[19]
실제로 김정일은 비록 권력의 후계자는 되지 못했으나 장남인 김정남에 대해 강하고 애틋한 부성애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정남이 해외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온갖 반동스러운 발언을 하고 다녀도 딱히 제지하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꾸준히 보장해준 것.
[20]
월간조선 우종창
[21]
가명 최순호.
유투브 링크
[22]
차라리 안전 문제만 놓고 본다면 미국이나 프랑스 쪽이 더 낫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는 이미 예전부터 망명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23]
메일 내용에서 '아주 어려운 시기는 지나갔다'는 언급에 장성택 숙청을 맞추지 못했다고 비웃는 반응이 많았는데 메일이 오간 시점 자체만 따지면 사실 용한 편이긴 하다. 이때는 2004년에 장성택의 3차 혁명화 이후 장성택이 2006년에 제1부부장에 임명되어 다시 권부에 복귀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무속이란 것을 너무 믿을 건 없지만 메일이 오간 시기만 본다면 말이 안 되는 내용은 아닌 셈이다.
[24]
서영라 혹은 서영란.
[25]
중국의 병아리 계획에 경계했을 가능성이 높다.
[26]
홍콩은 대북제재 일환으로 북한인의 취업비자 발급을 엄금하며 단순 관광객도 입국을 까다롭게 한다. 국제사회에서 제재를 받는 불량국가인 데다 빈곤국이라 불법체류 위험도부터 높기 때문이다. 북한 외에는 또 다른 불량국가들인
이란,
시리아,
미얀마,
쿠바,
수단 공화국,
소말리아,
리비아 등이 취업비자 발급 금지 국가이며 중국 본토인은 홍콩이나 영미권에서 대학을 나와야 취업비자가 발급된다.
[27]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던
강명도가 1994년 탈북 이후에 증언한 내용이며 김정남 본인은 교도통신 고미 요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28]
한국어판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
[29]
김정남 본인이 읽고 실제와 비슷하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