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 2013년 11월 27일 (향년 66세)
1. 개요
그의 생전 영상북한의 정치인. 장성택의 측근으로 그의 오른팔로 알려졌지만 덕분에 처참하게 죽었다.
2. 생애
1947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찍이 장성택의 측근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장성택의 특별군사재판을 다룬 2013년 12월 13일자 로동신문은 "놈은 1980년대부터 아첨군(아첨꾼)인 리룡하놈을 제놈이 다른 직무에 조동될 때마다 끌고 다니였으며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는 종파적 행동을 하여 쫓겨났던 그자를 체계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자리에까지 올려놓아 제놈의 심복졸개로 만들어놓았다."라고 가루가 되도록 씹었다. 이를 보면 장성택의 다른 측근들과 마찬가지로 장성택의 혁명화에 휘말려서 역시 쫓겨난 적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2002년 3월 27일, 김일성 탄생 90주년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황해북도 당위원회 비서를 하다가 일부 보도에 따르면 총정치국 조직부장으로 총정치국에서 한가닥 했다고 한다. 2009년 즈음에 행정부 부부장으로 발탁,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1년 10월, 김정일의 대동강 자라공장, 돼지공장, 그물공장 현지지도 수행을 할때 제1부부장 직함으로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나타났다. 정확한 부서는 장성택이 부장으로 있던 행정부가 기정사실로 보인다. 2011년 10월 1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인민생활향상과 경제강국건설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대상들을 훌륭히 일떠세우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2012년 3월에는 김정은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아내와 함께 노래를 부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2]
김정은 승계 이후에도 김정은을 수행하여 여러 행사를 부지런하게 다녔으나 2013년 11월, 상전인 장성택이 반당, 종파분자로 몰리면서 11월 18일에 장수길 부부장과 함께 월권, 분파행위,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거부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11월 27일에 장수길과 함께 고사포 사격으로 공개총살당했고 장성택은 자기 측근의 처참한 죽음을 자기 눈으로 보아야 했다고 전해진다. 장성택이 고사총으로 처형되었다는 언급이 많은데 정확히는 장성택 최측근이 이렇게 고사총으로 처형당한 것이 와전된 것이다. 심지어 이들의 고사총 처형은 찌라시성 날조가 아니라 최소 3명의 목격자의 증언으로 교차검증까지 된 사실이다.
주성하의 말에 따르면 북한 유명 여배우 박미향이 리룡하 며느리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시아버지와 남편과 함께 끔살당했고 이후 박미향이 나온 영화는 상영금지 처분당했다고 한다.
3. 참고문헌
- 정창현, 장성택 사건 숨겨진 이야기(서울: 선인, 2014).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18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