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21:48:32

베르너 포스


베르너 포스(Werner Voß: 1897년 4월 13일~1917년 9월 23일)

1. 개요2. 생애3.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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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제국의 군인, 전투기 조종사로 제1차 세계 대전 최고의 에이스 중 하나였다.

2. 생애

제국 서쪽의 크레펠트(Krefeld)에서 염색공의 아들로 태어난 포스는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친구이자 경쟁자였지만 붉은 남작이라고 불린 리히토펜과는 달리 출신은 미천하였다. 그렇지만 집안은 풍족했고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에 아버지는 자식들의 교육열이 높았으며, 장남이었던 그는 군사학교인 몰트케 김나지움으로 보내져 일찍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다. 김나지움 교육과정을 마친 그는 크레펠트 군사학교에 들어가 하사관 후보생이 되었다.

1914년 기병으로 임관한 그는 베스트팔렌의 제11기병연대에 소속된 제2경기병대(Ersatz Eskadron 2)에 배속되었다. 그렇지만 젊은 베르너 포스 하사는 18세 생일선물로 아버지로부터 반더러(Wanderer Werke) 모터사이클을 선사받았고, 이걸 탄 후부터는 모터스포츠에 홀딱 빠지게 된다. 그는 말 안장에 얹혀 가기 보다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모터사이클에 더욱 깊이 빠져 들게 되었고, 차츰 기병과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15년에 쾰른에 있는 제7비행교육 분견대(Fliegerersatz-Abteilung 7)로 가서 독일 제국 항공대(Luftstreitkräfte)로 군적을 옮긴 그는 1916년부터 고향에서 가까운 에겔스베르크 비행장에서 날으는 법을 배우고 익혔다. 비행 적성이 눈에 띄게 좋았던 그는 얼마 안가 동기와 선임들을 제치고 비행교관으로 선발되었는데, 당시 베르너 포스는 독일군 전체에서 가장 어린 비행교관이었다고 한다.

훈련을 수료하고 제4전투폭격항공단(Kampfgeschwader IV)에서 정찰기를 몰던 베르너 포스는 명지휘관이자 탁월한 에이스로 명성이 높던 오스발트 뵐케가 지휘하는 야스타 2에 배속되어 리히트호펜의 편대 엄호기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1916년 11월 27일에 철십자와 행운의 하트 문양이 그려진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를 몰고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후 38대의 적기를 격추하였다.

그는 야스타 5와 29, 14를 거쳐 리히트호펜의 제1전투비행단 예하 야스타 10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포커 Dr.1 삼엽기의 시제기를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포스는 자신의 자유분방한 비행 스타일이 이 삼엽기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 전투기를 통하여 자신의 격추 기록에 10대를 더 추가할 수 있었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던 베르너 포스는 일본의 연에 그려진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탑승기 엔진 카울링 정면에다 두 눈과 눈썹, 그리고 카이저 수염을 그려넣었다. 포스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였으며, 노력보다는 영감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3. 죽음

포스는 1917년 9월 23일 홀로 비행하던 중에 포엘카펠 상공에서 영국의 제 60, 56 스쿼드론 소속 S.E.5 전투기 8대와 조우하여 교전을 벌이던 중에 격추되어 사망하였다. 당시 제임스 매커던(James McCudden) 대위가 지휘하던 영국 공군 측은 수적으로 우위였을 뿐 아니라 키스 머스프랫(Keith Muspratt: 1897~1918 / 8기 격추) 대위, 27대나 격추시키고 종전까지 살아남은 레지널드 호이지(Reginald Hoidge: 1894~1963 / 27기 격추) 중위, 리처드 메이베리(Richard Maybery: 1895~1917: 21기 격추) 중위, 아서 라이스 데이비즈(Arthur Rhys-Davids: 1897~1917 / 22기 격추) 중위 같은 날고 기는 일류 에이스들이 포진해있었지만, 삼엽기의 뛰어난 상승력과 놀라운 기동성을 십분 발휘한 베르너 포스는 시종일관 영국 전투기들을 압도하며 용감하게 전투를 이끌어나갔다. 결국 데이비즈 중위의 기총 소사에 명중당한 그는 벨기에의 프레젠베르흐 북부 농장 근처에 추락하였으며, 기체 일부만 남아 회수되었다.

그날 교전한 영국의 에이스 매커던 소령은 1918년에 비행사고로 죽기 전 포스와 치른 그 역사적인 공중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그의 비행술은 놀라웠으며 용기 또한 대단했다. 그는 내가 마주친 적 중에서 가장 용감한 조종사였다. 나는 지금도 그 독일 조종사에 대한 존경심을 감출 수가 없다. 비록 그는 적이었지만, 혼자서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우리들을 용감히 상대해냈다. 그는 혼자서 우리 7명과 10분 동안이나 싸웠고 우리의 모든 기체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상승과 하강, 급격한 기동술을 보여준 그의 삼엽기는 마침내 지상으로 곤두박질쳤고 수 천개의 파편으로 조각나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말 그대로 가루가 된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비행술은 신기 그 자체였고, 그의 용기는 공중전에서 빛을 발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는 분명히 가장 용맹한 독일 조종사였고, 또 그와 싸워 볼 수 있었던 기회는 나에게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베르너 포스는 2급, 1급 철십자 훈장과 호엔촐레른 기사단 검십자 훈장(Hausorden von Hohenzollern or Hohenzollernscher Hausorden), 그리고 독일 제국 최고 훈장인 블루맥스 훈장(Pour le Mérite)을 수여받았으며, 44,292명의 1차 대전 유공자들과 함께 벨기에 이프르 6킬로미터 북동쪽에 위치한 랑게마르크 독일군 전쟁 묘지에 안치되었다.

굽시니스트의 만화 본격 공군 옛날 이야기에 간략하게 그의 최후가 그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