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의
해군의 함대가 2개 이상 연합하여 1명의 지휘관에게 통솔되는 형태를 말한다. 말 그대로 함대의 연합으로, 영어로는 Combined Fleet이라고 부르며, 대규모 작전을 위한 임시적인 연합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연합함대를 만들어도 원래 함대는 그대로 존재하며, 목적이 달성되면 연합함대는 바로 해산하고, 각 함대는 원위치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도 전시가 되어 1함대와 2함대가 함선을 합치고 다닌다면 연합함대라고 부를 수 있겠으나, 사실상 역사적으로 대량으로 운용된 연합함대는 일본 제국의 연합함대 뿐이고 대부분 연합함대라고 하면 이를 지칭한다. 사실 북한군 정도를 상대할 때에는 분산전략이 더 유효하기 때문에 함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1] 중국이나 일본과 전쟁이 터진다면 연합함대를 꾸려야겠지만.임진왜란 시기 삼도수군통제사라는 관직이 신설되기 전의 조선 함대도 사실상 연합함대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물론 실질적 지휘자는 이순신. 2차 출전 이후 이순신의 품계가 정2품 정헌대부에 이르러 다른 수사들 대비 품계가 높은 선임 수사임을 인정 받았고, 원균이야 휘하 함대를 죄다 날려먹어서 지휘권을 주장할 만한 근거가 빈약했고 사실상 최대 세력이었던 이억기 함대는 작전 구역이 생소한데다 나이와 연차도 이순신보다 낮아 지휘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는 어려웠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최대 세력이자 주요 작전구역을 관할로 둔 경상우수군이 주도권을 쥐어야 했다. 실제로 이후의 삼도수군통제사는 경상우수사가 겸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여러 함대를 묶었다고 해도 '연합함대'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과거 일본 정도 뿐이다. 미군은 보다 유연하게 '기동부대(Task Force, TF)'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대로 옮기면 임무부대 정도가 되지만 번역 시에는 기동부대로 번역한다. #1, #2, #3 대표적으로 미드웨이 해전의 TF 16과 TF 17이라든지, 필리핀 해 해전 TF 58이 있다. 해당 작전이 끝나면 기동부대는 해산하고 본래의 함대 편제로 돌아가며, 다시 작전에 투입될 때 그 상황에 맞는 기동부대를 다시 편제한다. 연합함대와 같은 상설조직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함대에 소속된 함정들이라도 일단 기동부대를 구성하고 나면 서로 다른 태스크 그룹에 배속될 수도 있었다. 태스크 그룹(Task Group, TG)이란 기동부대 예하의 소규모 전단을 일컫는다.
2. 일본 제국 해군의 연합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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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a284f> 연합함대 [ruby(連合艦隊, ruby=れんごうかんたい)] | Combined Fle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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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 | 1894년 ~ 1945년 |
국가 | 일본 제국 |
소속 | 일본 제국 해군 |
주요 참전 |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중일전쟁 · 태평양 전쟁 |
주요 사령장관 |
이토 스케유키 도고 헤이하치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오자와 지사부로 그외 사령관 |
연합함대는 원래 함대의 연합을 뜻하는 일반명사지만, 일본 제국 해군의 연합함대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그냥 연합함대라고 말하면 대개 이쪽으로 알아듣는 수준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일제의 연합함대는 일반적 연합함대와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차별화되는 독자적 특징이 많아 명칭부터 차이가 있다. 일단 일본 스스로는 連合艦隊(れんごうかんたい 렝고칸타이)라고 부르며, 일본에서 사용했던 옛날 한자 명칭으로는 聯合艦隊 라고 표기한다(발음은 똑같다). 일본군 내부에서 사용한 영어 약칭은 GF(Grand Fleet이나 General Fleet)라고 표기하는데, 일본식 영어를 사용한 것으로, 타국에서는 대체적으로 Combined Fleet라고 표기한다. 영어권에서 Grand Fleet이라고 하면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의 대함대를 지칭한다. 영어 위키피디아 Grand Fleet 영어 위키피디아 Combined Fleet 항목에는 영국군의 연합함대에 대한 내용밖에 없다.
그리고 연합함대의 사령관은 연합함대사령장관 (連合艦隊司令長官, れんごうかんたいしれいちょうかん 렌고칸타이시레쵸칸)이라는 독자적인 명칭을 가진다.
2.1. 개요
일본의 해군은 메이지 유신 3년 후인 1870년 8월 24일에 창설했다. 그 이후 여러가지의 편제 변경을 통해 연합함대 창설 전에는 크게 2종류의 함대로 구성되었다. 일단 상비함대라는 이름으로 주력함 및 신예함을 묶은 함대가 있었으며, 경비함대라는 이름으로 노후함등 2선급 전력과 어뢰정, 잠수함 등으로 구성된 해안 방어를 위한 함대를 보유했다.연함함대라는 명칭은 1884년에 생겼다. 당시 일본 해군성에서는 함대편제령이란 제도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함대의 편성, 함대를 구성하는 함의 능력에 따른 명칭을 규정함과 동시에 2개 함대 이상을 집합하여 연합함대를 구성할 수 있다."라는 항목이 들어가면서 연함함대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때의 연합함대는 일반명사로서의 연합함대로 큰 훈련시나 전쟁 당시에만 임시로 편성한 것이지 정규함대로 존속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동안 제1함대의 사령관이 연합함대사령장관을 겸임했다.
따라서 실제로 연합함대가 결성된 때는 청일전쟁이 개전한 후인 1894년이다. 당시 일본 해군은 주 목표로 상정한 북양함대에 비해 함선의 숫자와 질이 모두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상비함대건 경비함대건 간에 모든 함선을 다 끌어모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경비함대를 굳이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경비함대를 상비함대로 편입시키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이때 군령부 관방주사인 야마모토 곤노효에 대령이 경비함대를 서해함대로 개명한 후, 상비함대와 서해함대를 통합 운영하는 연합함대를 조직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해당 안은 채택되었고, 그 결과 청일전쟁 개전 6일 만에 처음으로 연합함대가 편성되었다.
일단, 이때까지의 연합함대는 아직 일반명사로서의 연합함대였으므로 청일전쟁이 종전된 후에 해산되었으며, 그 이후에 다시 연합함대가 결성된 때는 10년 후인 러일전쟁시기였다. 물론 이 연합함대도 러일전쟁후에 해산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 말에 1번, 1915년부터는 거의 매년 대규모의 연습을 위해 연합함대가 편성된 후 훈련에 임했다. 그래서 1923년경에 이르면 사실상 상설화했다. 임시조직으로 시작해, 전쟁 종전 후 해산됐다가 재창설을 반복했단 점에선 대본영과도 비슷하다.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1933년 5월부터는 연합함대를 정식적인 조직으로 만들었으며, 1937년부터 일본이 완전한 전시체계로 돌입하면서 중국 방면 함대와 더불어 양대 함대가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의 개전으로 일본 해군 그 자체를 상징할 수준으로 위상이 올라갔다. 서열상으로는 중국방면함대와 연합함대가 동등한 등급이지만 태평양 전쟁의 개전이후 중국방면함대에 소속되어있던 3, 4 함대가 연합함대 소속으로 변경되고, 이후에도 점점 규모가 작아지다가 종전 직전에는 아예 사라졌다. 그리하여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해군 그 자체로 활동하였으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1945년 10월에 일본 해군과 함께 해산되었다.
2.2. 해전사
연합함대 기함이 참전한 해전만 표시.- 청일전쟁
- 황해해전 (메이지27년 9월 17일) - 기함: 방호순양함 마쓰시마
- 웨이하이전 (메이지28년 2월 12일) - 기함: 방호순양함 마쓰시마
- 러일전쟁
- 황해해전 (메이지37년 8월 10일) - 기함 : 전함 미카사
- 쓰시마해전 (메이지38년 5월 27일~28일) - 기함 : 전함 미카사
- 태평양전쟁
2.3. 특징
일본의 연합함대는 타국의 연합함대와는 달리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 상설조직이다. 타국의 연합함대와는 달리 상설조직으로 함대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다.
- 통제하는 함대의 수와 양이 많다. 단순히 해군 휘하의 복수의 함대를 결합한 타국의 연합함대와는 달리 사실상 일본제국 해군의 모든 함선을 통제하는 조직이다.
- 위상이 높다. 타국의 연합함대는 아무리 크더라도 해군참모총장 밑에 있는 함대사령관의 위치이고 일본의 경우도 명목상으로는 다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3] 그 인물이 힘이 있는 경우 군령부총장이나 해군대신과 거의 비슷한 위치에 올라선다.[4] 당시 상대편인 영미의 경우 어디까지나 해군참모총장 밑의 함대 조직이므로 국방장관 or 합동참모의장-해군참모총장으로 이어지는 군령권 및 군정권 체계를 준수해야 한다. 2차대전 이전 독일군은 영미와 달리 군령과 군정을 분리하는 병정분리주의를 취했는데 일본이 이것을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연합함대는 형식상으로는 군령은 군령부총장, 군정은 해군대신의 지휘를 받지만, 독자적인 작전수립 및 실행능력을 보유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군령부총장이나 해군대신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군부 입김이 쎈 일본 제국이지만, 위에서 내린 명령을 거역하는 순간 사령장관의 정치적 생명은 그 자리에서 끝난다고 보면 된다.
- 독자적인 지원조직을 보유한다. 타국의 연합함대는 임시 조직이므로 소속 함대 중 가장 전력의 비중이 크거나 혹은 다른 이유들을 근거로 휘하 함대 사령관 중 1명이 연합함대의 수장을 겸임하고, 해당 함대의 참모 및 다른 함대에서 지원나온 참모들로 지원조직을 결성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할 수 있다. 동해에서 대한민국 해군이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나 러시아 태평양 함대와의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해 해역을 관할하는 제1함대와 제7기동전단이 연합해서 가칭 '동해 연합함대'를 결성한다고 해보자. 이 때 실제 전력상으로는 제7기동전단이 우월하므로 작전의 효율성을 위해서 제7기동전단 전단장이 이 연합함대의 수장을 겸임할 수 있다. 하지만 제1함대가 동해 해역을 직접 관할하고, 편제상 해작사 예하의 ' 전단'인 7기동전단에 비해 제1함대는 정규 ' 함대'라는 상징성이 있으므로 이 상징성과 정치성을 일부러 부각시켜 분쟁에 뒤따르는 외교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제1함대 사령관이 이 연합함대의 수장을 겸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연함함대는 연합함대사령장관부터 독자적으로 임명되어서 상시 활동하며, 사령장관을 보좌하기 위해 참모장, 참모부장, 수석참모, 포술참모, 수뢰참모, 항공참모, 통신참모, 항해참모, 기관참모, 전무참모, 정무참모, 주계장, 군의장, 기관장, 암호장, 기상장 및 기타 참모들이 독자적으로 임명된 후 상시 배치된다.
- 연합함대의 지휘자인 연합함대사령장관 직위는 친보직이며 천황에 대한 상주 권한이 있는 핵심 보직이었다. 특히 도고 헤이하치로가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 당시 선두에서 실전을 직접 지휘하는 전통을 만들어 최전선에 최고 지휘자로서 메리트와 명예가 있어 국민들에게도 이 직위가 인기가 높고 친숙했으며, 해군사관이라면 해군대신, 군령부총장보다 인기있고 모두가 꿈꾸는 자리였다. 예시로는 요나이 미쓰마사가 1936년 연합함대사령장관으로 친보되는데 요나이는 늘 사령장관이 되는것을 꿈꿔왔고 나의 마지막 영예라고 하며 굉장히 좋아했다. 하지만 임명된지 2개월만에 명예롭던 직위인 연합함대사령장관에서 내각의 해군대신으로 옮겨가며 자신의 지인인 타카하시 미요시 해군대장에게 직위를 놓친것에 대한 푸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해군차관에서 사령장관으로 임명되고 기함인 나가토에 처음 도착했을때 부관에게 "사령장관이 된 것이 너무 좋네요. 인기가 많군요." 라는 대화를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일본의 연합함대는 일본제국 해군의 하위조직이라기보다는 일본제국 해군 전체와 맞먹는 수준의 위상을 확립했으며, 그 이유로 인해 한참 활동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패전후 해산될 때도 일본제국 해군의 해산일과는 별도로 따로 해산일이 기록되는 등의 대접을 받는다.
2.4. 문제점
하지만, 일본의 연합함대는 위에 열거한 특징으로 인해 아래와 같은 문제점들을 가졌다.-
사령관이 너무 많다.
원래 1개 부대에는 1명의 졸장이 2명의 명장보다 좋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1개 조직내에는 명령 및 통솔자가 1명인 것이 적당하며, 2명 이상이 되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만든다. 현대 민주공화제 국가는 대체적으로 국가 원수가 군 통수권자가 되며 합참의장을 위시한 참모총장은 국가 원수를 보좌하는 참모 역할, 국방부 장관은 국가 원수의 명을 받아 이들을 지휘, 감독하고 군정과 군령을 담당하며, 각 군 사령관들이 실질적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간혹 국방부 장관이나 참모총장이 군의 최고사령관라고 잘못 알거나 혹은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명목상이라고 잘못 생각하기도 하지만, 최고사령관은 언제나, 당연히 선거로 선출된 국가 원수가 겸임한다. 대통령은 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군 통수권자이자 최고사령관이고 국방부 장관이나 참모총장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위이다. 현대 한국의 지방 행정에서도 부구청장/군수/시장/지사 등은 행정을 전문적으로 맡다가 승진해서 올라온 공무원이 맡지만 행정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쥐고 있으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감독하는 역할인 장은 투표로 뽑은 선출직 공무원인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일본군에서는 육군과 해군이 따로 노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육군과 해군 내에서도 육군성-참모본부, 해군성-군령부의 군정과 군령이 각각 따로 나뉘었으며, 3장관은 명목상으로는 동격이고 임무영역이 분리되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복잡하게 얽힌 관료제 특성상 제대로 정리가 되질 않았다. 일본 해군내에서는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이 군령부총장이던 시절 고유권한을 빼앗아온 이후 군정권을 행사해야 하는 해군성은 사실상 군령부의 하위조직으로 전락했고, 이는 전후 해군반성회에서도 극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군령부와 연합함대의 힘싸움에서는 힘있는 인물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졌다. 따라서 3인의 합의가 없으면 큰 일을 하기 어렵고, 이 중 1인이 독자적으로 다른 일을 추진할 경우 다른 지휘관이 막기 어렵다. 원래 작전은 군령부가 수립해야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함대와 군령부의 작전안을 비교한 후 협의에 의해 어느 한쪽을 채택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참고로 육군 역시 육군대신, 참모총장, 교육총감 3인이 육군 3장관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육군 3장관은 서로의 분야가 극명하게 갈렸기에 해군과 같은 혼란은 없었다.
명목상 지휘계통으로는 일단은 장관인 육군대신, 해군대신이 상위직으로 대우받았지만 사실상의 위치로는 군령부총장이나 참모총장이 더 위상이 컸다. 이 자리에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황족이 보임되거나 아니면 원수 칭호를 받은 이들이 보직되었다. 당장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사령장관으로 있을 때 대장이었지만, 군령부총장 나가노 오사미는 원수대장이었다. 군령부가 '해군군령부'가 아닌 그냥 군령부인 이유는 육군과의 자존심 싸움 때문. 도조 히데키가 내각 총리에 취임하면서 육군대신을 겸하고 있을 때에는 육군성과 해군성이 그래도 권한을 가졌을 것이다. 다만 당시 육군대신을 대행했던 육군차관 기무라 헤이타로와 도미나가 교지는 기본적인 업무소양조차 부족한 무능력자들이었고, 미드웨이 해전 이후 도조가 육군참모총장과 군령부총장을 경질하고 참모총장조차 겸임해 버렸기 때문에 별 차이는 없었다.
또한, 태평양전쟁기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는데, 당시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진주만 공습을 통해 일본 내에서 언터쳐블의 지위에 오르고 사후에도 도고 헤이하치로에 준하는 대접을 받을 지경이라, 이런 사람이 총 지휘관으로 있는 연합함대 자체를 건드리기가 뭣한 상황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진주만 공습을 강압적으로 진행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위상이 너무 올라 버린 덕에 실제 계급과는 달리 설사 윗사람인 군령부총장이라 하더라도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건드리기 힘들었다. 그리고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해군 내 비주류파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군인치고 정치력이 만렙을 찍은 사람이라[5] 여차하면 진주만 공습때 처럼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거나 불리하면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식으로 영악하게 굴었으니 더더욱 통제가 어렵다.
사실 위에서 나온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문제점의 절반 이상은 따지고 보면 저 야마모토 이소로쿠 때에 나온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라이벌로 거론되는 체스터 니미츠는 상관인 킹이나 같이 일하기 어려운 맥아더하고 별 불화를 겪지 않았고, 니미츠는 항공모함과 인연 정도는 맺어본 적이 있다지만 그보다는 주로 잠수함 분야가 전공이었다. 도리어 니미츠는 이런 문제는 자신이 일일이 나서지 않고 자신보다 훨씬 이쪽 분야 전공자인 윌리엄 홀시 등의 일선 지휘관들에게 대체로 일임했고 자신은 유럽에서 아이젠하워가 그런 것처럼 부하인 함대사령관들을 통제하는 일종의 CEO 역할에만 충실했다. 미군 역시 맥아더가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비슷한 격이지만, 미국 육군부와 해군부의 적절한 배분으로 니미츠는 중부태평양을, 맥아더는 남서태평양을 담당했기에 니미츠는 맥아더와 마주할 일이 거의 없어 그렇게 충돌할 일도 없었다.
반면 일본은 연공서열과 계파에 따라서 지위를 부여해서 이런 상황이 생길 법도 했다. 당장에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계획에 가장 중요한 부대였던 1항공함대의 지휘관이 그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간섭이 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 무렵부터 관료주의, 파킨슨의 법칙, 보신주의가 맞물려 연합함대는 사실상 실전에 참여하지 않는 조직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군령부총장과 업무영역이 중복되고 정작 현장 최고지휘관에게는 필요한 재량권이 부여되지 못하는 문제가 추가되었다. 또한 국가 최고위 기관을 구성하는 각 하부조직 수뇌부들간 의사소통능력이 급속도로 저하된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 역시 한몫 했다. 니미츠가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아도 돌아가는 조직을 만드는 데 주력한 것과 많이 비교되는데 일본 해군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경우 니미츠의 역할은 군령부총장의 몫이고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역할은 홀시나 스프루언스가 맡았던 역할에 가깝다. 일본군의 경직된 체제하에서 현장의 유연한 판단 재량권이 주어지려면 연합함대 사령장관 정도의 직책/계급빨이 필요했던 것이고, 러일전쟁 시기에는 그나마 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갔었다. 전근대 해전의 전통을 따라 최고지휘관(연합함대 사령장관)이 기함에 좌승해 선두지휘를 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지만 일본 해군은 오히려 최고지휘관이 선두지휘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어 진주만 공습이나 레이테 만 해전 등 굵직한 결전에서도 최고사령부의 의도가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선두지휘시 사령부의 생존성을 위해 기함으로 주어진 가장 크고 튼튼한 전함이 해상 호텔 노릇이나 하는 잉여 신세가 된 것은 덤.
-
특정목표에만 전체 해군이 매달린다.
원래 일본이 연합함대를 결성한 목적은 함대결전사상에 따른 것이며, 타국의 경우도 보통 연합함대를 구성할 경우에는 적의 주력함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사상의 문제점은 크지만 어느 정도 납득은 가는 상태다.
하지만, 일본의 연합함대는 상설조직인데다가 사실상 일본 해군의 모든 함선을 다 통제하므로, 결국 일본 해군은 함대결전사상에만 몰두해 버렸다. 타국의 경우 연합함대를 만들더라도 통상로를 호위하는 조직이나 대잠수함 전력, 연안방어등의 임무를 맡은 함대는 편성에서 제외하여 해당 임무에 전념하도록 함으로서 균형을 잡는데, 일본의 연합함대는 그러지 않기 때문에 순양함이나 구축함 등의 보조함도 함대결전에만 최적화하게 만들었고, 전술도 야간에 어뢰공격을 하는 등 함대결전에만 맞췄기 때문에 실제 전쟁에 돌입한 후에는 통상 호위나 대잠수함전 등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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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서열 중시와 경직성 강화가 심화됐다.
원래 일반명사인 연합함대는 유연한 조직이므로 연합함대의 수장 및 참모를 결성시나 중간에 자유롭게 변경하거나 조합편성해서 인재를 발굴하고, 각 함대 사령관을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지명하거나 순차적으로 임명하여 지휘경험을 쌓게 하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연합함대는 상설조직인데다가 수장 자체가 천황 직속인데다가 따로 임명받고, 휘하 참모들도 다 독자적으로 임명받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유연성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함대 위에 군림하는 상부조직이므로 연합함대 직속의 장교가 된다는 것 자체가 출세의 지름길이다. 따라서 일본 특유의 연공서열 중시가 더 강화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앞서 언급한 함대결전사상 중시에 따라 연합함대의 참모진도 포술이나 수뢰전 위주의 참모가 중시되고, 항공모함 관련의 비행관련 참모나 보급, 정비등의 참모들은 한직으로 무시되거나 원래 전공과 관련없는 참모가 임명되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를 더 키우게 된다.
2.5. 평가
결국,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일본의 연합함대는 매우 비효율적인 조직이 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처럼 일본군 자체가 육군과 해군으로 나뉘어서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일본 해군 안에 거대한 파벌을 만든 것 자체가 문제다. 당장 조직 내부에 수장이 3명이나 생겼는데 해당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기는 어렵다.그리고, 일본이 전쟁을 수행할 때 굳이 연합함대라는 조직을 이렇게 키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당장 군령부가 해야 할 일이 매우 애매해진다. 원래 제대로 된 상태라면 해군대신의 휘하에서 실제 작전은 군령부가 책임지고 만들고, 함대조직도 군령부가 다 장악하며, 연합함대는 대규모 전투시에나 상황에 맞추어서 한시적으로만 조직한 후 목적이 달성되면 해산하면 되는데, 연합함대라는 조직이 상설화되어 활동하기 때문에 군령부의 존재는 부차적인 조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군령부는 제2차 세계 대전동안 실제 운영할 수 있는 전투조직이 해안방어육전부대, 해안포부대, 소형 함선 일부, 항공부대 일부에 불과하여 일본군 입장에서는 부차적인 조직만 운영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며, 군령을 받는 입장인 연합함대사령장관과 협의해야 일본 해군 전체에 제대로 된 군령을 내릴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앞서 말한 함대결전사상 중시 등의 사소한(?) 문제점까지 합쳐지면 그냥 답이 없다(...).
애초에 이런 문제로 인해 타국에서는 연합함대를 비상설조직으로 만든 것이며,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래 명예직에 가까운 미국 해군 총사령관에 어니스트 킹 제독이 임명되자 해군참모총장이 할 일이 애매해지는 것을 바로 발견하고 즉시 해군참모총장을 미국 해군 총사령관이 겸임하도록 해서 문제를 해결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굳이 옥상옥의 조직을 만들고, 해군 내부의 수장을 3명으로 만들며, 군대 전체의 명령권이 혼란에 빠지도록 만든 일본의 연합함대는 비효율적인 조직이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후 일본 해군의 후신격인 해상자위대는 기동함대에 해당하는 자위함대를 편성했는데, 선배들이 저지른 실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해역함대격인
2.6. 유사품
일본 육군에도 비슷한 조직으로 관동군이 있다. 역시 일개 총군 주제에 천황 직속이라 상위조직인 참모본부, 육군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대본영의 명령도 씹어먹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면 일본에서는 이것이 이상할 것이 없는게, 조선주둔군을 생각해보면 이와 비슷하다. 조선총독은 천황 직속에 위치상 수상과 동렬이며 한반도에서 모든 권한을 가지기에, 조선주둔군 운영에 있어서 수상의 하위 기관인 육군성 따위의 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 당장 초대 총독 데라우치가 한국통감 부임 이전에 육군대신이였고, 사이토 마코토를 제외한 역대 총독이 죄다 육군 대장이었으니, 연공서열을 따지는 환경에서 누가 누구에게 명령을 한단 말인가?특히 관동군은 만주사변이나 할힌골 전투를 정부의 허가 없이 제멋대로 일으킨 전력에 인간 대상의 생체실험까지도 시도 한 적이 있어서 막장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오히려 연합함대보다 심각하다.
일본의 소설에는 은하영웅전설에는 연합함대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우주함대라는 조직이 있고 수장의 이름도 사령장관이다. 그러나 이 쪽은 단점이 크게 부각된 점은 없다. 왜냐하면 통합작전본부는 전략을, 우주함대 사령부는 전술을 담당하는 식으로 서로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소하게는 시드니 시톨레 통합작전본부장과 라자르 로보스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대립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국군 3대 장관, 동맹군 3대 장관 참조.
2.7. 변천사
2.7.1. 역대 사령장관
연합함대사령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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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0313f, #b0313f 20%, #b0313f 80%, #b0313f); color: #fff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연합함대사령장관 (1894년~1945년) | ||||
초대 이토 스케유키 |
제2대 아리치 사나노죠 |
제3-4대 도고 헤이하치로 |
제5대 이주인 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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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대 요시마쓰 시게타로 |
제9-10대 야마시타 겐타로 |
제11대 야마야 다닌 |
제12-13대 도치나이 소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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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다케시타 이사무 |
제15대 스즈키 간타로 |
제16대 오카다 게이스케 |
제17대 가토 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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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다니구치 나오미 |
제19대 야마모토 에이스케 |
제20대 고바야시 세이조 |
제21대 스에쓰구 노부마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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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다카하시 산키치 |
제23대 요나이 미쓰마사 |
제24대 나가노 오사미 |
제25대 요시다 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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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7대 야마모토 이소로쿠 |
제28대 고가 미네이치 |
제29-30대 도요다 소에무 |
제31대 오자와 지사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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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 계급 | 이름 | 임기 | 시기 | |
제1대 | 중장 | 이토 스케유키 | 1894년 6월 18일 ~ 1895년 5월 11일 | 청일전쟁 | |
제2대 | 아리치 시나노조 | 1895년 5월 11일 ~ 1895년 11월 16일 | |||
제3대 | 도고 헤이하치로[6] | 1903년 12월 28일 ~ 1905년 6월 14일 | 러일전쟁 | ||
제4대 | 1905년 6월 14일 ~ 1905년 12월 20일 | ||||
제5대 | 이주인 고로 | 1908년 10월 8일 ~ 1908년 11월 20일 | |||
제6대 | 요시마쓰 시게타로 | 1915년 11월 1일 ~ 1915년 12월 13일 | 제1차 세계 대전 | ||
제7대 | 1916년 9월 1일 ~ 1916년 10월 14일 | ||||
제8대 | 대장 | 1917년 10월 1일 ~ 1917년 10월 22일 | |||
제9대 | 야마시타 겐타로 | 1918년 9월 1일 ~ 1918년 10월 15일 | |||
제10대 | 1919년 6월 1일 ~ 1919년 10월 28일 | ||||
제11대 | 야마야 타닌 | 1920년 5월 1일 ~ 1920년 8월 24일 | |||
제12대 | 도치나이 소지로 | 1920년 8월 24일 ~ 1920년 10월 31일 | |||
제13대 | 1921년 5월 1일 ~ 1921년 10월 31일 | ||||
제14대 | 중장 | 다케시타 이사무 | 1922년 12월 1일 ~ 1924년 1월 27일 | ||
제15대 | 대장 | 스즈키 간타로 | 1924년 1월 27일 ~ 1924년 12월 1일 | ||
제16대 | 오카다 게이스케 | 1924년 12월 1일 ~ 1926년 12월 10일 | |||
제17대 | 중장 | 가토 히로하루 | 1926년 12월 10일 ~ 1928년 12월 10일 | ||
제18대 | 대장 | 다니구치 나오미 | 1928년 12월 10일 ~ 1929년 11월 11일 | ||
제19대 | 중장 | 야마모토 에이스케 | 1929년 11월 11일 ~ 1931년 12월 1일 | ||
제20대 | 고바야시 세이조 | 1931년 12월 1일 ~ 1933년 11월 15일 | |||
제21대 | 스에쓰구 노부마사 | 1933년 11월 15일 ~ 1934년 11월 15일 | |||
제22대 | 다카하시 산키치 | 1934년 11월 15일 ~ 1934년 12월 1일 | |||
제23대 | 요나이 미쓰마사 | 1936년 12월 1일 ~ 1937년 2월 2일 | |||
제24대 | 대장 | 나가노 오사미 | 1937년 2월 2일 ~ 1937년 12월 1일 | 중일전쟁 | |
제25대 | 중장 | 요시다 젠고 | 1937년 12월 1일 ~ 1939년 8월 30일 | ||
제26대 | 중장 | 야마모토 이소로쿠 | 1939년 8월 30일 ~ 1941년 8월 11일 | 제2차 세계 대전 | |
제27대 | 대장 | 1941년 8월 11일 ~ 1943년 4월 18일 | |||
제28대 | 대장 | 고가 미네이치 | 1943년 5월 21일 ~ 1944년 3월 31일 | ||
대행 | 중장 | 다카스 시로 | 1944년 3월 31일 ~ 1944년 5월 3일 | ||
제29대 | 대장 | 도요다 소에무 | 1944년 5월 3일 ~ 1945년 5월 1일 | ||
제30대 | 대장 | 1945년 5월 1일 ~ 1945년 5월 29일 | |||
제31대 | 중장 | 오자와 지사부로 | 1945년 5월 29일 ~ 1945년 10월 10일 |
2.7.2. 역대 참모장&참모부장
{{{#!folding [ 일본제국 해군 연함함대 역대 참모장 목록 ] | 순번 | 계급 | 이름 | 임기 | |||
제1대 | 대령 | 사메시마 가스노리 | 1894년 7월 19일 ~ | ||||
제2대 | 대령 | 데와 시게토 | 1894년 12월 17일 ~ | ||||
제3대 | 대령 | 카미무라 히코노조 | 1895년 7월 25일 ~ 1895년 11월 16일 | ||||
제4대 | 대령 | 시마무라 하야오 | 1903년 12월 28일 ~ | ||||
제5대 | 소장 | 가토 도모사부로 | 1905년 1월 12일 ~ 1905년 12월 20일 | ||||
제6대 | 대령 | 야마시타 겐타로(겸) | 1908년 10월 8일 ~ 1908년 11월 19일 | ||||
제7대 | 소장 | 야마나카 시바키치(겸) | 1915년 11월 11일 195년 11월 30일 | ||||
제8대 | 소장 | 호리노치 사부로(겸) | 1916년 9월 1일 ~ 1916년 10월 13일 | ||||
제9대 | 소장 | 호리노치 사부로(겸) | 1917년 10월 1일 ~ 1917년 10월 20일 | ||||
제10대 | 소장 | 사이토 겐로쿠(겸) | 1918년 9월 1일 ~ 1918년 10월 14일 | ||||
제11대 | 소장 | 후나코시 가지시로(겸) | 1919년 6월 1일 ~ 1919년 10월 27일 | ||||
제12대 | 소장 | 요시오카 한사쿠(겸) | 1920년 5월 1일 ~ 1920년 10월 30일 | ||||
제13대 | 소장 | 요시오카 한사쿠(겸) | 1921년 5월 1일 ~ 1921년 10월 30일 | ||||
제14대 | 소장 | 시라네 구마조(겸) | 1921년12월1일 ~ | ||||
제15대 | 소장 | 가바야마 가나리(겸) | 1923년12월1일 ~ | ||||
제16대 | 소장 | 하라 간지로(겸) | 1924년11월10일 ~ 1925년12월1일 | ||||
제17대 | 소장 | 오미나토 나오타로(겸) | 1925년12월1일 ~ | ||||
제18대 | 소장 | 다카하시 산키치(겸) | 1926년11월1일 ~ | ||||
제19대 | 소장 | 하마노 에이지로(겸) | 1927년12월1일 ~ | ||||
제20대 | 소장 | 데라지마 켄(겸) | 1928년12월10일 ~ | ||||
제21대 | 소장 | 시오자와 코이치(겸) | 1929년11월30일 ~ | ||||
제22대 | 소장 | 시마다 시게타로(겸) | 1930년12월1일 ~ | ||||
제23대 | 소장 | 요시다 젠고(겸) | 1931년12월1일 ~ | ||||
제24대 | 소장 | 요시다 젠고 | 1933년5월20일 ~ 1933년9월15일 | ||||
제25대 | 소장 | 도요다 소에무 | 1933년9월15일 ~ | ||||
제26대 | 소장 | 곤도 노부타케 | 1935년3월15일 ~ | ||||
제27대 | 소장 | 노무라 나오쿠니 | 1935년11월15일 ~ | ||||
제28대 | 소장 | 이와시타 야스타로 | 1936년11월16일 ~ | ||||
제29대 | 소장 | 오자와 지사부로 | 1937년2월18일 ~ | ||||
제30대 | 소장 | 타카하시 이보 | 1937년11월15일 ~ | ||||
제31대 | 대령 | 후쿠도메 시게루 | 1939년11월5일 ~ | ||||
제32대 | 소장 | 이토 세이이치 | 1941년4월10일 ~ | ||||
제33대 | 소장 | 우가키 마토메 | 1941년8월11일 ~ | ||||
제34대 | 중장 | 후쿠도메 시게루 | 1943년5월22일 ~ | ||||
제35대 | 소장 | 구사카 류노스케 | 1944년4월6일 ~ | ||||
제36대 | 중장 | 구사카 류노스케(겸) | 1945년5월1일 | ||||
제37대 | 소장 | 야노 시카조(겸) | 1945년6월25일 ~ 1945년 9월25일 | ||||
★1905년 1월 ~ 1933년 5월까지는 제1함대 참모장 겸임(제 6대 ~ 제 23대까지) | }}} |
{{{#!folding [ 일본제국 해군 연합함대 역대 부참모장 목록 ] | 순번 | 계급 | 이름 | 임기 | |||
제1대 | 소장 | 고바야시 겐고 | 1943년 6월 11일 ~ 1944년 9월 10일 | ||||
제2대 | 대령 | 다카다 도시타네 | 1944년 9월 20일 ~ 1945년 5월 10일 | ||||
제3대 | 소장 | 미쓰바라 히로(겸) | 1945년 6월 10일 ~ 1945년 9월 15일 | ||||
제4대 | 소장 | 기쿠치 도모조(겸) | 1945년 6월 25일 ~ 1945년 9월 15일 | }}} |
2.7.3. 역대 함선
연도 | 전대 | 함선 | |
1941년 12월 10일~1942년 7월 14일 | 제1전대 | 나가토, 무츠 | |
제24전대 | 호코쿠마루, 아이코쿠마루, 고코쿠마루[7] | ||
제11항공전대 | 미즈호, 치토세 | ||
제4잠수전대 | 지휘함 | 키누, 나고야마루 | |
제18잠수대 | I-153, I-154, I-155 | ||
제19잠수대 | I-156, I-157, I-158 | ||
제21잠수대 | 로-33, 로-34 | ||
제5잠수전대 | 지휘함 | 유라 | |
제28잠수대 | I-159, I-160 | ||
제29잠수대 | I-162, I-164 | ||
제30잠수대 | I-165, I-166 | ||
제1연합통신대[8] |
도쿄, 타카오 , 치치시마 해군 통신대, 오키나와 통신대 제3통신대, 제4통신대, 제5통신대, 제6통신대 |
||
부속 | 수상기모함 | 치요다 | |
표적함 | 야후, 세츠 | ||
공작함 | 아카시, 아사히 | ||
급탄함 | 무로토 | ||
병원선 | 타카사고 마루, 아사히 마루 | ||
제1초계정대 | |||
1942년 7월 14일~1943년 4월 1일 | 기함 | 야마토 | |
제1연합통신대 | 도쿄 해군 통신대, 오오와 통신대 | ||
부속 | 전함 | 이세, 휴우가 | |
수상기모함 | 치요다, 닛신 | ||
제7구축대 | 아케보노, 우시오, 사자나미 | ||
표적함 | 야후, 세츠 | ||
공작함 | 아카시, 아사히 | ||
급탄함 | 무로토 | ||
특설항공모함 | 카스가마루, 야와타마루[9] | ||
특설순양함 | 호코쿠마루, 아이코쿠마루, 고코쿠마루, 킨류마루 | ||
특설공작함 | 야마비코마루, 우라가미마루 | ||
특설전남부설선박 | 야마바토 마루 | ||
병원선 | 타카사고 마루, 아사히 마루, 히카와 마루 |
2.7.4. 역대 기함
방호순양함 - 마쓰시마전함 - 미카사
전함 - 시키시마
전함 - 나가토(전함)
전함 - 무츠(전함)
전함 - 야마시로
전함 - 이세
전함 - 공고(순양전함)
전함 - 하루나(순양전함)
전함 - 야마토
전함 - 무사시(전함)
경순양함 - 오요도
2.7.5. 시기별 편제
청일 전쟁 개전시기(1894년 7월 19일) | ||
연합함대 | 상비함대 | |
서해함대 | ||
러일전쟁 개전시기(1903년 12월 28일) | ||
연합함대 | 제1함대 | |
제2함대 | ||
제3함대 | ||
제1차 상하이 사변 발생직후(1932년 2월 2일) | ||
연합함대 | 제1함대 | |
제2함대 | ||
제3함대 | ||
중일전쟁 발발시기(1936년 12월 1일) | ||
연합함대 | 제1함대 | |
제2함대 | ||
제3함대 | ||
태평양전쟁 개전시기(1941년 12월 10일) | ||
연합함대 | (연합함대직할부대) | |
제1함대 | ||
제2함대 | ||
제3함대 | ||
제4함대 | ||
제5함대 | ||
제6함대 | ||
제1항공함대 | ||
제11항공함대 | ||
남방함대 | ||
마지막 시기(1945년 6월 1일) | ||
연합함대 | (연합함대직할부대) | |
제1항공함대 | ||
제3항공함대 | ||
제5항공함대 | ||
제10항공함대 | ||
제6함대 | ||
제12항공함대 | ||
제4함대 | ||
제7함대 | ||
제10방면함대 | 방면함대 직할부대 | |
제13항공함대 | ||
제1낭방함대 | ||
제2남방함대 |
2.8. 관련작
도서- 이토 마사노리『 연합 함대의 마지막』& 『 연합 함대의 영광』
- 사카모토 마사츠와 / 후쿠가와 히데키 『 일본해군편제사전』
- 연합함대(도호, 1981년도, 감독: 마츠바야시 슈에)
-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태평양 전쟁 70년째의 진실-(도에이, 2011년도 영화, 감독: 나루시마 이즈루)
[1]
다만, 현행 작계 상 북한과의 전시 상황에서 각 해역 함대는 1, 2함대가 각각 동해와 서해에서 북진하고 3함대가 서해로 진출하여 2함대의 후방을 보호한다. 따라서 서해에선 2, 3함대가 연합함대를 구성할 가능성도 있다.
[2]
쓰시마 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미카사에 좌승하여 해전을 지휘한 이래 이는 전통이 되어 사령부가 지상이 아닌 배 위에 있도록 사실상 강제하게 되었다. 이는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격추당하고 나서 후임 사령관 고가 미네이치가 더한 보신주의로 사령부를 지상으로 옮기고서야 일단락된다.
[3]
사실 현대의 관료제 하에서도 특정 기관 간에 상하위관계가 있음에도 직무상 독립이 이루어지는 영역이 있다. 예를 들어서 지방자치단체의 기초지자체와 광역지자체는 명목상 동급이기도 하지만 기초지자체장과 광역지자체장은 상하위관계기도 하기 때문에 사무영역에 따라 광역지자체장이 기초지자체장을 지휘할 수도 있고 전자가 후자를 간섭하지 못할 수도 있다. 법관 역시 엄연히 상하관계가 있지만 상급법원은 하급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원칙적으로 미칠 수 없다.
[4]
지휘계통상으로는 군령부의 작전에 따라 실전부대를 지휘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의 독자적 작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견 모순으로 보이는 이런 복잡한 체제는 당시 일본군에서 사단장[10]과 함대 사령장관은 천황의 직속으로서 상주 친견권을 가지고 있었다(실질적으로 함대 사령장관의 친견권은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대행했다)는 복잡무쌍한 관료제의 결과물이다.
[5]
사실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주요 역할은 일선 함대 지휘라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의 이력을 보면주로 해군성 관련 보직을 거쳤거나 아니면 항공 분야 육성사업을 주로 수행한 관료형 군인에 가깝다. 실제로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되기 전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해군 차관이었고 원래대로라면 차기 해군대신이었다. 그런데 살기 위해 억지로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된 것이다.
[6]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제1함대의 제독 뿐만 아니라 연합함대의 제독도 동시에 맡았다.
[7]
상선개조 특설순양함이다. 인도양에서 연합군 상선에 대한 공격 즉 통상파괴임무에 투입되었다. 이전에는 통상임무가 가능한 순양함으로 분류한 것을 충격적인 사실인 것처럼 적어두었는데, 영미 연합군과 독일 등의 추축국 모두 원양상선을 징발, 무장시켜 타국 통상로 파괴에 활용했다.
[8]
전대가 아닌, 연합함대의 통신기지가 있는 곳을 말한다.
[9]
이 두 배들은 각각 1942년 8월 1일부터
다이요,
운요로 개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