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 한일안보협력 |
일본어 | 日韓安保障協力 |
영어 | Korea-Japan Security Cooperation |
1. 개요
대한민국과 일본은 안보협력을 의미하는 용어로, 영어로 Korea-Japan Security Cooperation라고 한다.한국과 일본 사이의 안보협력의 공로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대통령은 박정희와 김대중 그리고 노태우도 언급되는 편이다.
2. 주요 시기
2.1. 박정희 정부
1960년대 중반 시점에 대한민국은 국력의 기준 에서 상대적 약소국의 위상에 놓여있었고, 1968년 이후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이 고조됐다. 박정희 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대미외교를 통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과 한국 군사력의 현대화, 나아가 한미 국방장관 회담의 정례화 등을 외교적 어젠다로 추진하였고, 일본에 대해서는 양국간 안보협력 필요성을 공동으로 인식하게 하고, 경제지원 확대, 안보관련 인사 교류 등의 초보적인 안보협력을 추구했다. 이 결과로 한일간 차원에서도 안보적 유대감이 형성되었고, 한미일 안보협력의 원형을 만들었다.본 연구는 1968년 시점에 고조된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이 한국 안보외교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1960년대 중반 시점 국력의 기준 에서 상대적 약소국의 위상에 놓여있던 한국은, 북한의 군사위협 증대에 대응 하여 대미외교를 통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과 한국 군사력의 현대화, 나아가 한미 국방장관 회담의 정례화 등을 외교적 어젠다로 추진하였다. 일본에 대해서는 양국간 안보협력 필요성을 공동으로 인식하고자 하였고, 경제지원 확대, 안보관련 인사 교류 등의 초보적인 안보협력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또한 다자간 차원에서도 아시아 지역의 안보협의기구 창설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 결과 한미동맹 차원에서는 양국간 국방장관 회담이 정례화되었고, 한미 연합훈련이 제도화되었다. 또한 한일간 차원에서도 안보적 유대감이 형성되었 다. 박정희 정부는 1968년을 기해 고조된 북한의 대남군사도발에 직면해 적극적 안보외교를 전개하였고, 이를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박영준. (2021).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 형성의 기원: 냉전기 북한의 무력도발과 한국 안보외교를 중심으로, 1967-68. 한국정치외교사논총, 42(2), 초록
박영준. (2021).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 형성의 기원: 냉전기 북한의 무력도발과 한국 안보외교를 중심으로, 1967-68. 한국정치외교사논총, 42(2), 초록
2.2. 김대중 정부
대한민국은 국민 감정상 일본과의 안보협력이 어려웠다. 하지만 북한이 벌이는 안보 위협은 한일 양국의 안보 관련 정책결정자 및 전문가들에게 한일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전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고, 1998년 발표한 ‘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한일 안보협력 분야를 포함시켰다. 김대중 정부가 포함시킨 안보협력 분야의 가장 큰 특징은 한일 간 안보협력을 위한 ‘신뢰’ 구축과 이에 기반한 한일 협력의 ‘제도화’를 추구했다는 것이다.1998년 성립된 김대중 정부의 새로운 대일 정책은 김대중 대통령 자신의 대일 인식과 북한 핵위기로 촉발된 한반도 정세의 변화, 그리고 탈냉전 이후 미국의 동북아 안보정책의 변화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다. 특히 탈냉전 이후에도 국민 감정상 일본과의 안보협력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북한 위협은 한일 양국의 안보 관련 정책결정자 및 전문가들에게 한일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한일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전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한일 안보협력 분야를 포함시켰다.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안보협력 분야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한일 간 안보협력을 위한 ‘신뢰’ 구축과 이에 기반한 한일 협력의 ‘제도화’ 추구였다. 또한 한일 간 안보분야에서의 다자주의와 비전통 안보, 국제협력은 한일 양국 간에 한국의 대일 감정과 일본의 평화헌법이라는 국내제약 요인을 감안하여 실질적으로 진행 가능한 분야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향후 한국의 대일 안보 협력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한일 안보협력의 신뢰 구축과 제도화가 필요하다. 둘째, 다자주의 안보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셋째, 비전통 안보 분야 등 국제협력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이기태. (2019).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한일 안보협력. 동서연구, 31(4), 초록.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한일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전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한일 안보협력 분야를 포함시켰다.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안보협력 분야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한일 간 안보협력을 위한 ‘신뢰’ 구축과 이에 기반한 한일 협력의 ‘제도화’ 추구였다. 또한 한일 간 안보분야에서의 다자주의와 비전통 안보, 국제협력은 한일 양국 간에 한국의 대일 감정과 일본의 평화헌법이라는 국내제약 요인을 감안하여 실질적으로 진행 가능한 분야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향후 한국의 대일 안보 협력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한일 안보협력의 신뢰 구축과 제도화가 필요하다. 둘째, 다자주의 안보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셋째, 비전통 안보 분야 등 국제협력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이기태. (2019).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한일 안보협력. 동서연구, 31(4), 초록.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과 일본 간에는 동맹 관계는 아니지만, 다양한 안보 관계가 진전되어 왔다. 한일 간 안보 관계는 시기에 따라 협력적 양상이 발전되는 경우도 존재했지만, 다른 경우에는 갈등을 빚는 양상도 나타났다. 한일 간 안보 관계가 이 같은 변화를 보이게 된 요인에 대해 기존 연구들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정책 변화와 연관하여 설명하거나, 아니면 일본의 외교안보정책 변화와 연관하여 설명해 왔다. 이 연구에서는 한국 역대 정부의 국가전략 기조와 그에 따른 외교안보정책 기조 속에서 한일 안보 관계가 어떤 변용을 거쳤는지를 고찰하려 했다.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각각 조국 근대화, 북방정책, 남북 화해협력이라는 국가전략과 외교안보정책 기조 속에 한일 안보 관계도 발전시킨다는 방침이 비교적 일관되게 추진되었다고 여겨진다. 이에 반해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경우에는, 정권 초기에 표방된 국가전략 및 외교안보정책 기조에서는 한일 안보 관계의 발전이 표명되었으나, 실제 정책 시행 과정에서는 일본 정부의 역사 및 영유권 문제에 대한 정책이 계기가 되어 촉발된 국내 내셔널리즘의 고조 속에서 정책이 변경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 같은 요인 때문에 한일 안보 관계는 제도화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낮은 단계의 안보협력에 머물러 있다. 향후에도 중국과의 관계 설정, 북한에 대한 정책 여하, 그리고 일본에 대한 국내 정서 등의 요인이 한일 안보 관계의 진전 여하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박영준. (2015). 한국외교와 한일안보관계의 변용, 1965~2015. 일본비평, 7(1), 초록
박영준. (2015). 한국외교와 한일안보관계의 변용, 1965~2015. 일본비평, 7(1), 초록
집권 이후 김대중의 지역인식은 구체적인 구상과 정책으로 나타난다. 먼저 미국을 동아시아 역내 국가로 인식하여 클린턴 정부와의 협력관계를 구축, 한국문제와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대한 공동보조를 취하였다. 또한 그는 박정희 이래 가장 적극적으로 일본을 포용한 한국 지도자였다. 오부치 총리와 한일 공동 코뮤니케를 발표하고, 일본문화 개방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전후 최초로 일본 해상 자위대와 공동 훈련을 실시하는 등 긴밀한 한일협력관계를 구축하였다. 중국과도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공동노력에 합의하고, 경제협력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구축하였다. 건국 이래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지지를 얻는데도 성공한다. 김대중 시기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아 활성화된 ASEAN+3 논의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동남아시아를 중국과 일본과 함께 동북아의 확고한 협력대상으로 인식하고 활용하였던 것이다.
박명림 and 지상현. (2009). 탈냉전기 한국의 동아시아 인식과 구상 - 김대중 사례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43(4), 초록
민주화 이후
2022년까지 한일안보협력에서 김대중 대통령만큼 적극적인 대통령은 없으며, 민주화 이전 시기까지 포함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비견될만 하다. 또한 한일안보협력은
김대중 대통령의 주요 업적으로 평가되지만 한국 내의 정치진영 사이에서는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박명림 and 지상현. (2009). 탈냉전기 한국의 동아시아 인식과 구상 - 김대중 사례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43(4), 초록
3. 필요성
한일관계는 2018년 10월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악화일로에 접어들었다. 한일 갈등은 양국 간 안보협력을 흔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양국 갈등은 과거사문제 해결을 둘러싼 시각의 차이가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북핵문제, 중국의 공세적 부상 등 국제관계를 둘러싼 시각차도 갈등을 확대하는 원인이다. 한일안보협력을 견지하려면 일본이 한국안보에 있어 중요한 안전판이자 린치핀이라는 인식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국군과 주한 미군의 협력 외에도 유엔사령부를 경유한 주일 미군, 일본자위대의 후방지원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태세를 확보하는 것이 양국 안보협력의 요체이다. 한일 군사협력을 탈정치화하는 바탕위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한일,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철희. "한일 갈등의 심화와 한일안보협력의 미래" 한국국가전략 4, no.2 (2019) : 117-144.doi: 10.46322/KRINSQ.4.2.9
초록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92260
박철희. "한일 갈등의 심화와 한일안보협력의 미래" 한국국가전략 4, no.2 (2019) : 117-144.doi: 10.46322/KRINSQ.4.2.9
초록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92260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이후 기존의 ' 도광양회' 기조에서 공세적 외교안보정책으로 전환해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에서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강화하면서 중국 주도의 세력권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2035년이 되면 중국과 홍콩의 GDP가 미국과 일본의 합계를 초월할 것으로도 전망된다.
동시에 2010년대 후반부터 자유주의 진영의 국제 질서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미국이 ‘트럼프 주의’로 대변되는 미국 우선주의, 동맹 경시, 신고립주의 기조를 내세우는 상황이다. 유럽의 경우 다수의 강대국이 세력 균형을 이룰 수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경제력이 나머지 모든 국가의 합보다 앞서는 압도적 존재가 돼 역외세력인 미국의 개입 없이는 세력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기존의 국제 질서마저 흔들려 역내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여건에 처해 있다.
무엇보다 매우 짧은 시간에 적의 공격 여부를 판단해 즉각 대응해야 하는 현대전에서는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가 필수라는 점에서 한·미·일 간 정보 공유체계의 구축과 긴밀한 안보 협력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
특히 미중갈등이 격화되는 중에 2022년 중국 시진핑 주석은 대만 통일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향후 대만 침공시 미국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다방면에서 군사 도발이 일어나거나, 한반도에서도 같은 시기 무력 도발이 일어나는 등의 여러 시나리오별 대응 준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미중 경쟁구도 및 역내 안보 불안 상황에서 한미동맹과 더불어 한미일 지역안보협력체제도 필요하다는 분석, 그리고 인도주의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을 계속하면서도 한일간의 협력 강화는 중국으로부터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
다만 안보협력과 안보동맹은 질적으로 다르지만 주변국이 인정해줄 지 의문이라는 지적,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한국만 중립을 지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
그리고 민감한 안보 문제를 긴밀하게 논의하려면 양국 국민간 상호 신뢰가 어느 정도 구축돼야 하는데 양국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이견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한일안보협력에 앞서 과거사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