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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República da Coreia |
마카오 澳門特別行政區 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de Maca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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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과 마카오의 관계.대한민국과 마카오의 정식 외교관계는 한국이 포르투갈과 1961년 수교하면서 성립되었다. 이후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면서 지금은 자연스럽게 중국의 일부로서 교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어가 통하는 지역 + 쇼핑 천국 + 대도시 관광이라는 여러 가지 메리트가 있는 홍콩과 달리 한국인들의 마카오에 대한 이미지는 포르투갈 옛날 식민지 + 카지노 정도. 실제로 한국인들이 종종 여기서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하기도 한다.[1] 마카오의 카지노가 그만큼 인지도가 높은 셈이었다. 물론 필리핀처럼 관리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마카오의 치안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편이니, 관광 갈 때 필리핀 같은 주변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들처럼 '원 달러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웬만한 호텔 근처라면 새벽 2~3시에도 돌아다녀도 무방할 정도다. 되려 취업난이 심한 한국에서 마카오로 건너가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카오는 취업비자가 카지노 종사자에 한해 발급되어 카지노 및 카지노에 딸린 호텔 직원으로들 주로 간다.[2]
마카오가 한국인들에게 홍콩에 비해 무관심을 받는 것은 현재도 그럭저럭 강대국인 영국의 지배를 받은 홍콩과는 달리 유럽의 소국인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데다 경제적으로도 딸렸던 것이 크다. 그리고 북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홍콩과 달리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어서 꽤 많이 있는 마카오는 치안 면에서도 충분히 불안을 느낄 만했다.[3][4] 그리고 전술한 비자 이슈도 있다. 방문지로는 인지도 높지만 막상 워킹홀리데이까지 협약이 체결된 홍콩과 달리 마카오는 오락/관광업을 빼면 딱히 할 일이 없어 인지도가 낮은 게 크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마카오는 한국 가톨릭 최초의 신학생인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가 박해를 피해 유학을 와서 공부한 곳이기도 하다. 최방제는 도중에 병으로 사망했지만, 김대건과 최양업은 무사히 성장해 신부가 되었다.2.2. 현대
마카오는 한국에 꽤 적극적이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후원하거나 엠넷의 MAMA 같은 한국 TV 프로그램을 유치하기도 했다. 마카오 정부에서는 마카오로 한국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관광청이 주도하여 활발한 SNS 활동은 물론이고 한국 예술가들을 초빙하여 홍보대사로 만들기까지 했다. 심지어 마카오 내의 대학들마저 한국 유학 박람회에 뛰어들고 있다. 이웃 홍콩에 비하여 저렴한 교육비와 풍부한 재정을 바탕으로 한 발전 가능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거 같다.한국 영화 도둑들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이 나란히 걸어가는 영화 포스터의 배경인 "행복의 거리"를 비롯하여 마카오 항구와 차이나타운, 카지노의 풍경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주연인 김윤석의 극중 이름이 "마카오 박"일 정도.
고위급 인사로서는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인 1985년 바스코 데 알메이다 에 코스타 총독이, 1997년에는 바스코 로차 비에이라 총독이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중국에 반환된 이후인 2002년에는 에드문드 호 행정장관이 방한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등과 면담을 가졌다.
3. 외교공관
주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5]에서 마카오를 관할한다.2001년까지는 명목상으로 주마카오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있었다. 그런데 소재지는 마카오가 아닌 홍콩으로 설정되어 실제로는 주홍콩 총영사관에서 마카오 영사업무까지 겸임했다. 마카오는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에는 영국령 홍콩과 아예 각기 다른 국가의 영토였기 때문에 주홍콩 총영사관에서 마카오를 관할하려면 다른 비상주 겸임 대사관들의 사례처럼 마카오를 관할하는 서류상의 총영사관을 두고 주홍콩 총영사관이 이를 겸임하는 형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6] 마카오가 1999년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마카오와 홍콩은 모두 같은 중국 영토가 되었고 마카오/홍콩 총영사관이 모두 주중 대사관 소속이 되었다. 이렇게 소속이 같아지자 굳이 별도의 겸임 영사관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서류상으로도 홍콩 총영사관으로 통폐합하였다.
4. 교통 교류
한국 국적자는 마카오 입국 시 90일 무비자가 가능하며 홍콩에 다녀오면 자동으로 갱신된다. 출입국 횟수도 선진국 국민이며 중국이 그나마 신뢰할만한 나라인지라 딴지를 걸지 않는다.양국은 자동출입국심사 상호이용 협약에 따라 양국 국민은 상대국 방문 시 사전 등록 후 자동출입국심사 이용이 가능하다. # #
5. 관련 문서
[1]
<세계의 한국인>이라는 책자에서 마카오편을 보면 한국에서 정치인으로 알아주고 부유하게 살던 어느 사람이 마카오에서 도박에 빠진 끝에 알거지가 되어 마카오 길거리에서 쓸쓸히 쓰러져 죽은 적도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 책자를 보면 한국인이 거지처럼 지내다가 한국 관광객을 보고 구걸하여 그 돈으로 도박하는 경우도 있으며,
카지노 내에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구걸한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원정도박와서 가산을 탕진한 폐인들이 카지노 가까운 호텔 쪽에 널려 있으며 가끔 불상사도 벌어진다.
[2]
마카오는 취업비자가 사실상 없다시피한 반면 홍콩은 취업비자 및 영주권 얻기가 쉬운 편이라 홍콩에서 거주권을 갖고 마카오에 거주하는 경우도 꽤 있는데 물론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다. 홍콩-마카오를 오갈 경우 HKID만으로 출입국심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불법체류가 절대 아니다.
[3]
신상옥 감독 납치 역시 마카오에 있던 북한 공작원들이 벌인 짓으로(이들은
조총련계로
일본 국적을 지니고 있어 의심을 받지 않았다) 이후 마카오는 납북당하기 좋다며 불안해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4]
물론 대북제재가 실시된 현재 대부분 북한인은 철수했다.
[5]
주 중국 대한민국 대사관 산하 기관이다.
[6]
홍콩 주재 총영사관은 영국령 시절
주영국 대한민국 대사관 소속이었다가
홍콩 반환 직후 주중국 대사관으로 이관되었다. 마카오 주재 총영사관은 주포르투갈 대한민국 대사관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