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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최동원 Choi Dong-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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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등학교 시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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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야구 시절 | |||
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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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 1984년 · 1985년~1987년 · 1988년 | |||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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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 1990년 | |||
국가대표 경력 |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Baseball T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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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 1978년 · 1980년 · 1981년 · 1978년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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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게임 · 1984 최동원 · 다큐멘터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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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 혹사 · 연봉 문제 ( 90만원 사건) · 최동원 상 · 금테안경 · 최동원 동상 |
최동원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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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 |||||||||||||||||||||||||||||||||||||||||||||||||||||||||||||||||||||||||||||||||||||||||||||||||||||||||||||||||||||||||||||||||||||||||||||||||||||||||||||||||||||||||||||
<colbgcolor=#EF8B01><colcolor=#F8D1A6> 연도 | <colbgcolor=#F8D1A6><colcolor=#EF8B01> 1977년 | |||||||||||||||||||||||||||||||||||||||||||||||||||||||||||||||||||||||||||||||||||||||||||||||||||||||||||||||||||||||||||||||||||||||||||||||||||||||||||||||||||||||||||||
이름 | 최동원 | |||||||||||||||||||||||||||||||||||||||||||||||||||||||||||||||||||||||||||||||||||||||||||||||||||||||||||||||||||||||||||||||||||||||||||||||||||||||||||||||||||||||||||||
분야 | 스포츠 | |||||||||||||||||||||||||||||||||||||||||||||||||||||||||||||||||||||||||||||||||||||||||||||||||||||||||||||||||||||||||||||||||||||||||||||||||||||||||||||||||||||||||||||
체육훈장거상장(3등급) |
최동원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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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1984 |
1977년 대륙간컵 국제야구대회 금메달 |
1977 |
1982년 제 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금메달 |
1982 |
1980년 도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은메달 |
1980 |
1981년 산타클라라 월드 게임 은메달 |
1981 |
1978년 로마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동메달 |
1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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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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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황태환 OB 베어스 |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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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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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정명원 태평양 돌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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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진 해태 타이거즈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임선동 현대 유니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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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송진우 한화 이글스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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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 삼성 라이온즈 |
손승락 넥센 히어로즈 |
밴헤켄 넥센 히어로즈 |
해커 NC 다이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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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 KIA 타이거즈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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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진 키움 히어로즈 |
페디 NC 다이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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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역대 MV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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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박철순 OB 베어스 / 투수 |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포수 |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투수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투수· 내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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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투수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투수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내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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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내야수 |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
김상호 OB 베어스 / 외야수 |
구대성 빙그레 이글스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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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우즈 OB 베어스 / 내야수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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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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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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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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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두산 베어스 / 외야수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투수 |
로하스 kt wiz / 외야수 |
미란다 두산 베어스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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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외야수 |
페디 NC 다이노스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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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역대 다승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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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박철순 OB 베어스 / 24승 |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 30승 |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27승 |
김시진·
김일융 삼성 라이온즈 / 25승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4승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23승 |
윤학길 롯데 자이언츠 / 18승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1승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2승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9승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송진우 빙그레 / 19승 |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7승 |
이상훈 LG 트윈스 / 18승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8승 |
이상훈 LG 트윈스 / 20승 |
구대성 한화 이글스 / 18승 주형광 롯데 자이언츠 / 18승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 20승 |
김용수 LG 트윈스 / 18승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20승 |
김수경·
임선동·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18승 |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15승 신윤호 LG 트윈스 / 15승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키퍼 KIA 타이거즈 / 18승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17승 |
레스 두산 베어스 / 17승 리오스 KIA 타이거즈 / 17승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17승 |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18승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8승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리오스 두산 베어스 / 22승 |
김광현 SK 와이번스 / 16승 |
로페즈 KIA 타이거즈 / 14승 윤성환 삼성 라이온즈 / 14승 조정훈 롯데 자이언츠 / 14승 |
김광현 SK 와이번스 / 17승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17승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장원삼 삼성 라이온즈 / 17승 |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14승 세든 SK 와이번스 / 14승 |
밴헤켄 넥센 히어로즈 / 20승 |
해커 NC 다이노스 / 19승 |
니퍼트 두산 베어스 / 22승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양현종·
헥터 KIA 타이거즈 / 20승 |
후랭코프 두산 베어스 / 18승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20승 |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 20승 |
뷰캐넌 삼성 라이온즈 / 16승 요키시 키움 히어로즈 / 16승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켈리 LG 트윈스 / 16승 |
페디 NC 다이노스 / 20승 |
곽빈 두산 베어스 / 15승 원태인 삼성 라이온즈 / 15승 |
일간스포츠 선정 프로야구 40주년 기념 포지션별 올스타 2022. 01. 03. 일간스포츠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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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40주년 레전드 TOP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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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 |
KIA 타이거즈 이종범 |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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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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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2위 | 3위 | 4위 | ||
선동열 | 최동원 | 이종범 | 이승엽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원년의 스타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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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 12위 | 24위 | 25위 | |
박철순 | 이만수 | 백인천 | 김성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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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위 | 32위 | 33위 | 35위 | |
이상훈 | 박정태 | 니퍼트 | 배영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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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 20위 | 28위 | 31위 | |
장효조 | 김시진 | 한대화 | 김재박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강 선발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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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 13위 | 18위 | 26위 | |
이강철 | 정민철 | 정민태 | 조계현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성실함의 대명사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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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위 | 17위 | 23위 | 36위 | |
김태균 | 박재홍 | 박경완 | 홍성흔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근성의 야수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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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위 | 37위 | 38위 | 39위 | |
전준호 | 이순철 | 정근우 | 박진만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강 좌타자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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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 15위 | 19위 | 22위 | |
양준혁 | 박용택 | 이병규 | 김기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우타 거포 계보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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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 29위 | 30위 | 40위 | |
장종훈 | 김동주 | 심정수 | 우즈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전천후 투수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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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 8위 | 16위 | 21위 | |
송진우 | 구대성 | 김용수 | 임창용 |
득표 순위 |
투수 마일스톤 기록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100승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김시진 (1983~1992) 1987년 / 124승 |
최동원 (1983~1990) 1990년 / 103승 |
선동열 (1985~1995) 1990년 / 146승 |
장호연 (1983~1995) 1993년 / 109승 |
윤학길 (1986~1997) 1994년 / 117승 |
||||
정삼흠 (1985~1996) 1996년 / 106승 |
이강철 (1989~2005) 1996년 / 152승 |
조계현 (1989~2001) 1996년 / 126승 |
송진우 (1989~2009) 1997년 / 210승 |
김용수 (1985~2000) 1998년 / 126승 |
|||||
정민철 (1992~2009) 1999년 / 161승 |
김상진 (1989~2003) 1999년 / 122승 |
이상군 (1986~2001) 2000년 / 100승 |
한용덕 (1987~2004) 2000년 / 120승 |
정민태 (1992~2008) 2000년 / 124승 |
|||||
김원형 (1991~2011) 2005년 / 134승 |
임창용 (1995~2018) 2007년 / 130승 |
김수경 (1998~2012) 2007년 / 112승 |
이상목 (1990~2009) 2008년 / 100승 |
손민한 (1997~2015) 2009년 / 123승 |
|||||
이대진 (1993~2012) 2009년 / 100승 |
박명환 (1996~2015) 2010년 / 103승 |
배영수 (2000~2019) 2012년 / 138승 |
장원삼 (2006~2020) 2015년 / 121승 |
윤성환 (2004~2020) 2016년 / 135승 |
|||||
김광현 (2007~) 2016년 / 170승 |
장원준 (2004~2023) 2016년 / 132승 |
양현종 (2007~) 2017년 / 179승 |
송승준 (2007~2021) 2017년 / 109승 |
니퍼트 (2011~2018) 2018년 / 102승 |
|||||
차우찬 (2006~2023) 2019년 / 112승 |
유희관 (2009~2021) 2021년 / 101승 |
류현진 (2006~) 2024년 / 108승 |
300세이브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오승환 (2005~) 2021년 / 400세이브 |
2000탈삼진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송진우 (1989~2009) 2008년 / 2048탈삼진 |
양현종 (2007~) 2024년 / 2076탈삼진 |
같이 보기: KBO 리그 타자 마일스톤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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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역대 연봉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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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박철순 OB / 2400만원 |
장명부 삼미 / 1억 8000만원 (1) |
장명부 삼미 / 2500만엔 |
장명부 삼미 / 1억 400만원 |
최동원 롯데 / 5800만원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최동원 롯데 / 8910만원 |
최동원 롯데 / 8910만원 (2) |
최동원 삼성 / 9000만원 (3) |
선동열 해태 / 9000만원 |
선동열 해태 / 1억 500만원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선동열 해태 / 1억 2000만원 |
선동열 해태 / 1억원 |
선동열 해태 / 1억 3000만원 |
선동열 해태 / 1억 3000만원 |
김용수 LG / 1억 1000만원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김용수 LG / 1억 2200만원 |
양준혁 삼성 / 1억 4000만원 |
정명원 현대 / 1억 5400만원 |
이승엽 삼성 / 3억원 |
이승엽 삼성 / 3억원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이종범 KIA / 4억 3000만원 |
이승엽 삼성 / 6억 3000만원 |
정민태 현대 / 7억 4000만원 |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
김동주 두산 / 7억원 |
김동주 두산 / 7억원 |
김동주 두산 / 7억원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김태균 한화 / 15억원 |
김태균 한화 / 15억원 |
김태균 한화 / 15억원 |
김태균 한화 / 15억원 |
김태균 한화 / 16억원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이대호 롯데 / 25억원 |
이대호 롯데 / 25억원 |
이대호 롯데 / 25억원 |
이대호 롯데 / 25억원 |
추신수 SSG / 27억원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김광현 SSG / 81억원 |
구자욱 삼성 / 20억원 |
류현진·
박동원 한화· LG / 25억원 |
|||
(1) 당시 언론에 발표된 금액은 계약금 4000만원, 연봉 4000만원을 합쳐 총 8000만원이었다. 실제로는 계약금 1500만엔(약 4500만원), 연봉 2500만엔(약 7500만원), 부대 비용 6000만원을 합쳐 총 1억 8000만원이었다. (2) 실제 연봉 계약은 시즌 중이었던 6월 29일에 이루어져서 실수령액은 35,862,750원이다. 최동원 90만원 사건 참조. (3) 실제 연봉 계약은 시즌 중이었던 6월 23일에 이루어져서 실수령액은 47,400,000원이다. 항목 참조. |
보유 기록 | |
4승[1] |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승 |
최동원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 |||||||||||||||||||||||||||||||||||||||||||||||||||||||
김일환 (1982) |
→ |
최동원 (1983~1988) |
→ |
김청수 (1989~1994)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 ||||||||||||||||||||||||||||||||||||||||||||||||||||||||
홍성연 (1988) |
→ |
최동원 (1989~1990) |
→ |
최일언 (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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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75번 | ||||||||||||||||||||||||||||||||||||||||||||||||||||||||
조대현 | → |
최동원 (2001) |
→ |
이강돈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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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성 (2004) |
→ |
최동원 (2005~2008) |
→ |
백재호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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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 ||||||||||||||||||||||||||||||||||||||||||||||||||||||||
이정민 (2009~2011.9.29.) |
→ | 최동원 | → | 영구 결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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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41e42> 롯데 자이언츠 No.11 | |||
<colcolor=#fff> 최동원 崔東原|Choi Dong-Won |
|||
출생 | 1958년 5월 24일 | ||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면 북변리 (現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2] |
|||
사망 | 2011년 9월 14일 (향년 53세)[3] | ||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 |||
묘소 |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4]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79cm | 95kg[5] | ||
학력 |
부산구덕초등학교 (졸업) 토성중학교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 77 / 학사)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 1983년 1차 지명 ( 롯데) | ||
소속팀 |
롯데 자이언트 (1981) 한국전력 야구단 (1982)[6] 롯데 자이언츠 (1983~1988) 삼성 라이온즈 (1989~1990) |
||
지도자 |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01)[7]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01)[8] 한화 이글스 잔류군 투수코치 (2005)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06)[9][10]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06)[11]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2007~2008) |
||
프런트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원 (2010) | ||
해설위원 |
SBS 야구 해설위원 (1993~1995) 부산MBC 야구 해설위원 (2000)[12]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03~2005) |
||
경력 | KBO 경기운영위원 (2009~2010) | ||
상훈 | 체육훈장 거상장 | ||
병역 | 예술체육요원[13] | ||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041e42><colcolor=#fff> 본관 | 경주 최씨 | |
가족 |
아버지 최윤식[14], 어머니 김정자[15] 동생 최석원, 최수원 |
||
배우자 신현주, 아들 최기호(1990년생)[16] | |||
종교 | 개신교[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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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인. 롯데 자이언츠의 최초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인물이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전국구적인 관심을 받았고, 국가대표팀에도 꾸준히 차출되어 활약했으며, 프로야구 창립 후 여전한 실력과 투혼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기여한 프랜차이즈 선수이다. 특히 1984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따내 팀을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던 시절 자이언츠=최동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롯데 자이언츠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선수였으며, 같은 시기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선동열과의 라이벌 구도로도 유명했다.[18] 더불어 프로 초창기 미약했던 선수 권리의 신장을 위해 당대의 연봉 상한의 기준이기도 했던 고액 연봉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궂은 일을 기꺼이 도맡아 했던 선수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야구계의 귀감이 되어 수많은 야구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시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회자되는 인물이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혹사에 시달린 후[19] 프로에 데뷔했음에도 통산 100승과 2번의 20승 시즌, 80완투를 비롯한 여러 기록들을 세웠다. 특히나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한국시리즈 4승 달성[20][21][22]은 누구나 그를 ' 무쇠팔'이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23]
이외에도 투구 전 송진가루, 신발끈, 겉양말, 안경, 모자챙을 차례로 만지고 공을 던지는 루틴으로도 유명했다.
2. 선수 경력
최동원의 선수 경력 | ||||||
통합 선수 경력: 최동원/선수 경력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983년 | 1984년 | 1985년 | 1986년 |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 | ||
1977년 | 1978년 | 1980년 | ||||
1981년 | 1978년 | 1982년 | ||||
프로 입단 이전 | ||||||
고교 시절 | 대학 시절 | 실업 시절 |
2.1. 수상 내역
수상 |
한국시리즈 우승 (1984)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1984) MVP (1984) 최다승 (1984) |
2.2. 주요 기록
KBO 주요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기록 | 비고 |
1984, 1986년 | 더블200 달성 | [24][25] |
2.2.1. 연속 및 기타 기록
- 5년연속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 2년연속 225이닝-14완투-1점대 ERA-1점대 FIP
- 5년연속 208이닝-14완투-2점대이하 ERA-2점대이하 FIP
- 5년연속 전구단 상대 완투
- 6년연속 선발승 전경기 완투승
- 6년연속 선발등판경기 2/3이상 완투
- 3년 776.2이닝 66승 45완투 1.97ERA 1.86FIP (3년간 연평균 259이닝-22승-15완투)
- 4년 1000.2이닝 80승 60완투 2.16ERA 1.95FIP (4년간 연평균 250이닝-20승-15완투)
- 5년 1209.1이닝 89승 76완투 2.28ERA 2.05FIP (5년간 연평균 242이닝-18승-15완투)
- 1984년 324.2이닝 31승 6세 18완투 258탈삼진, 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시리즈 40이닝 4승 4완투 포함)
- 단일 한국시리즈 8개 부분 1위 (이닝, 다승, 선발등판, 선발승, 완투, 완투승, 완봉승, 탈삼진)
통산 기록은 8시즌(248게임, 1414.2이닝)동안 103승 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 WHIP 1.15, 1019탈삼진을 기록. 커리어하이는 1984년 시즌으로 27승(!)[26] 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 WHIP 1.04, 223탈삼진[27]을 기록했다.
특이한 기록은 1984년 8월 16일 MBC 청룡을 상대로 '4번 타자'로서 1사 만루 상황에 타자로 나선 일이다. 4번타자 1루수였던 김용철이 자신이 친 타구에 부상을 당하여 물러나자, 지명타자였던 김민호가 1루수로 들어오면서 김용철의 타순에 투수였던 최동원이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MBC 청룡의 투수 유종겸은 앞 타자를 고의사구로 보내고 최동원을 상대했으나, 최동원은 2볼 1스트라이크에서 우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터뜨렸다. 이것은 그대로 결승타가 되었으며, 유일한 프로에서의 타격 기록이다. 따라서 그는 통산 타율이 10할, 통산 OPS가 3.000이다.[28][29]
3. 플레이 스타일
특유의 폭포수 커브 | |
역회전 공, 본인은 떨어지는 공이라고 부른다. | |
경남고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투수로서, 주 구종은 패스트볼과 커브였다. 당시 스피드건이 보급되지 않아 최고 구속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현역시절 최고구속에 대한 기사로 80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야구 선수권에서 최고구속 145km이다. 일본언론에서 쾌도난마의 공이라고 표현하며 관심을 가졌다.[30]
정확히 어떤어떤 변화구를 던졌는지 지금와서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주무기는 확실히 커브였다. 각이 크고 예리해 콜롬비아 전에서는 파인타르를 발라 부정투구를 했다는 의심을 사기도 할 정도였다. 당시기사 흔히 그의 커브를 폭포수 커브라고 부른다.[31] 그 외에도 슬라이더, 스크류볼등을 던졌다.
최동원을 지금의 최동원으로 만들어준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연투능력이다. 5선발 체제가 공고한 2020년대 현대야구와 달리 1980년대 투수의 연투는 흔한 일이었으나, 최동원은 그 중에서도 특별할 정도로 괴물 같은 연투능력의 보유자였다. "선발로 등판 → 불펜 등판 → 며칠 뒤 선발 등판"이 비일비재 했었다.
최동원의 투구폼은 용틀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역동적이었고, 그것은 일본의 선진 야구를 배우게 한 아버지의 덕이 컸었다.[32] 부산에서 시청 가능하던 일본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의 투구폼을 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최동원의 전매특허인 드롭[33]이 바로 호리우치의 주무기였다.
최동원은 구위에도 큰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적인 투구를 했다. 이는 인터뷰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홈런을 맞으면 다음 상대 때 다시 똑같은 코스에 던져서 "칠테면 쳐봐라. 이번에도 또 치면 넌 실력이었고 못 치면 운이 좋아서 네가 쳤을 뿐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졌었던 게 나온다. 홈런을 허용하고도 호탕한 웃음을 보여주는 강철멘탈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적인 투구 성향으로 인해 피홈런율은 상당히 높았다. 더불어 통산 고의사구가 15개밖에 안 된다. 1년에 2개도 안 던진 셈. 정말로 공격적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4. 평가 및 위상
그를 불후의 전설로 만든 1984 한국시리즈 |
KBS 스페셜 “무쇠팔 최동원, 인생을 던지다“ (2011) |
롯데 역사에서 최초이자 현재 2개밖에 없는 영구 결번의 주인이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상상을 초월하는[34] 혹사에 시달린 후 프로에 데뷔했음에도 KBO 리그 초창기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한 명으로 남았을 정도의 대활약을 더욱 고평가받는다. 특히나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한국시리즈 4승 1패는 그 누구나 그를 '무쇠팔'이라 불러도 될 정도의 역대급 퍼포먼스라는 평가를 받는다. #[35] 선동열과 함께 1980년대 한국프로야구의 태동기를 대표하는 대투수이자 이대호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상징적인 레전드[36][37]로, 단순히 성적 뿐만 아니라 프런트에 목소리를 내며[38] 선수들의 권리 향상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한국 야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사후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KBO 영구 결번을 받았다.
아마추어 때부터 혹사를 달고 살았던 데다가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프로 입단 당시부터 부상을 달고 살아서 구속이 많이 느려지고 고생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진가가 드러나 몇 년간 선발 중간 마무리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나와 이닝을 소화했다. 덕분에 장명부 다음으로 많은 단일 시즌 284.2이닝을 던졌으며, 역대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 3위 기록인 223K를 기록하는 무지막지한 임팩트를 남긴다. 이 기록은 2021 시즌 두산 베어스의 아리엘 미란다가 경신할 때까지 37시즌 동안이나 깨지지 않은 기록이었으며, 2022년에 안우진이 토종 투수 역대 최다인 224K를 기록하기 전까지 토종 투수 최다 기록이기도 했다. 안우진이 최동원의 기록을 깨기 전까지 최동원의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이는 1996년 221K를 기록한 팀 후배 주형광이었다. 류현진조차도 200K 시즌은 2번(2006년, 2012년)이나 있었지만 끝내 최동원의 기록을 넘지는 못했다.
4.1. 최동원과 선동열
전성기가 약간 지난 시점에서 프로데뷔를 했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크며, 전성기 때의 선동열과 비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일 것이다. 선동열은 최동원을 라이벌이자 존경하는 선배로 인식하였고 최동원 또한 선동열을 라이벌이자 인정하고 존중하는 후배로 인식했다고.
자세한 내용은 선동열 vs 최동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5. 은퇴 후
자세한 내용은 최동원/은퇴 후 문서 참고하십시오.6. 최동원 투수상
한국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투수였던 그를 기리기 위해 한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 프로야구 투수와 고교야구 투수에게 주는 상이다.자세한 내용은 최동원 상 문서 참고하십시오.
7. 어록
별은 하늘에만 떠 있는다고 별이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고, 꿈이 돼줘야 그게 진짜 별이에요.
2011년 7월, 공식 석상에서의 마지막 인터뷰 中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고, 꿈이 돼줘야 그게 진짜 별이에요.
2011년 7월, 공식 석상에서의 마지막 인터뷰 中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젊음을 모두 쏟아부은 그라운드를 떠나 홀로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벽에 기댔을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면 그 선수는 진정 야구를 사랑 했노라고.
'운동선수에게 은퇴란 어떤 의미던가?'라는 인터뷰 질문에 대한 최동원의 답변
'운동선수에게 은퇴란 어떤 의미던가?'라는 인터뷰 질문에 대한 최동원의 답변
어이! 덩치 큰 친구, 공 좋은데.
(감사합니다. 많이 가르쳐 주세요.)
별거 없어. 신인답게 겁 없이 던지면 돼.
2006년,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 시절 신인 투수와의 대화[39]
(감사합니다. 많이 가르쳐 주세요.)
별거 없어. 신인답게 겁 없이 던지면 돼.
2006년,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 시절 신인 투수와의 대화[39]
"누군가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사실 제 생각만 한다면 선수회 만들 일 없습니다. 어려운 동료, 불우한 후배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저같이 연봉 많이 받고 여유있는 선수들이 앞장선 거죠."
1988년 선수협 결성 시도 당시 인터뷰 中
1988년 선수협 결성 시도 당시 인터뷰 中
8. 미디어 믹스
8.1. 영화
8.1.1. 퍼펙트 게임
자세한 내용은 퍼펙트 게임(2011) 문서 참고하십시오.2011년 12월 22일에 개봉한 영화로, 최동원과 선동열의 3번의 선발 맞대결을 그렸다. 조승우·양동근, '퍼펙트게임'서 최동원·선동렬 변신 최동원 역은 조승우가, 선동열 역에는 양동근이 맡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영화 개봉 전 최동원이 세상을 떠나며 두 레전드가 나란히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8.1.2. 1984 최동원
자세한 내용은 1984 최동원 문서 참고하십시오.2021년 11월 1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8.2. 다큐멘터리 & 교양 프로그램
2011년 9월 25일 KBS 스페셜 무쇠팔 최동원 인생을 던지다 편이 방송되었다.[42] 야구팬이라면 무조건 감상하자. 이 방송에 나온 바로는 영화 퍼펙트게임 제작진에게 '내 투구폼이 워낙 와일드하기 때문에 배우가 다칠 수도 있다. 꼭 정확하게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 다큐에서는 민훈기, 박동희[43], 강병철, 유두열, 김시진, 김일융, 한문연, 송승준 등의 인터뷰도 곁들여져 있다. 대본은 스포츠 다큐멘터리 작업을 많이 하는 민혜경 작가가 썼다.MBC 스페셜 [538 회] 불멸의 투수, 최동원
2011년 11월 11일 밤 11시에[44] MBC 스페셜에서 불멸의 투수 최동원편이 방송되었다.[45] 직전에 만들어졌던 KBS보다 양이라든가 자료 면에서 풍부하니[46] 팬이라면 보는 것을 추천. 중간에 보면 은퇴 후에도 팬들이 편지를 보내거나 하면 빠짐없이 답장엽서를 보낸 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에 '롯데 자이언츠 11번 최동원'이라는 문구가 있다. 자신을 그렇게 내팽개치고 조롱했던 구단임에도 그는 끝내 롯데 자이언츠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롯데팬들이 눈물을 흘렸다.
사망 10주기인 2021년에는 KBS부산에서 다큐멘터리 ' 철완 최동원 시대와 승부하다'가 방영됐다.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구성으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영상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
8.3. 가족오락관
- 1995년 1월 13일
- 1995년 4월 6일
- 1996년 6월 5일
- 1996년 9월 11일
- 1996년 12월 25일
- 1997년 7월 30일
- 1997년 11월 26일
- 1998년 2월 4일
- 1998년 7월 8일
9. 여담
자세한 내용은 최동원/여담 문서 참고하십시오.10. 관련 문서
[1]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3차전, 5차전, 7차전에 모두 선발 등판하고 5차전 패배 후 6차전에 구원 등판하여 구원승을 기록했다. 앞으로도 나올 수 없고, 다시는 나오면 안 되는 혹사가 만들어낸 기록.
[2]
출처. 남해면이 읍으로 승격된건
1979년이므로 최동원 출생 당시에는 면이었다. 그 후 국민학교 입학 직전에
부산광역시로 이사했다고 한다.
[3]
지병인 대장암이 재발.
[4]
출처
[5]
KBO 프로필
[6]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선 아마추어 신분이어야 했기에 신분 유지를 위한 임시 이적.
[7]
~6월 9일
[8]
6월 10일~
[9]
~7월 23일
[10]
이 시기 최동원 코치는 스프링캠프에서 KBO와 대한민국 야구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덩치 큰 친구를 발굴해냈다.
#
[11]
7월 24일~
[12]
영상
[13]
1980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준우승
출처
[14]
1930년 ~
2003년 (향년 73세).
[15]
1934년 ~ (90세). 초등학교 교사였으며, 교감으로 정년퇴직하였다.
[16]
MBC에서 방영했던 국군 다큐멘터리 '전투도 과학이다'라는 프로에 1사단 기간장병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영상 2012년에 상병이었으니 현재는 30대로 예비군도 끝났고 이제는 민방위 신분이다.
[17]
부산
경남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불교의 세가 매우 큰 지역으로, 그것을 반영하듯
부산
경남을 연고로 한 팀들인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는 역대 선수들 중
불자가 많기로 유명한데, 최동원은
박정태,
조성환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몇 안 되는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으러 절에 가긴 했다.
[18]
이는 훗날
영화화까지 이루어졌다.
[19]
일례로 실업야구 코리아시리즈 6경기에 모두 등판(선발로 세 번)하여 무려 42.1이닝을 던졌다. 경기당 평균 7이닝을 소화한 셈. 애당초 최동원은
경남고,
연세대, 실업팀
롯데 자이언트에서 뛰는 동안 혹사를 피할 수가 없었다.
[20]
말이 4승이지 1
완봉승, 2 완투승, 1 구원승이다. 하나뿐인 구원승도 5이닝을 던졌고 저 사이에
완투패도 하나 껴 있다. 가히 무식함을 넘어 탈인간적인 혹사이다.
[21]
사실 삼성 김일융도 2차전 9이닝 완투승, 4차전 8이닝 무실점, 5차전 3이닝 무실점으로 그때까지 3승을 거두었다. 7차전 7.1이닝 패배까지 합치면 이쪽도 어마어마한 대혹사. 다만 최동원의 5경기 등판에 40이닝 투구에 비하면 그 혹사 정도가 심하지 않고, 마지막 경기에서 끝내 무너졌기 때문에 조명이 안 되는 케이스. 만약 마지막 경기를 버텨냈다면 단일 시리즈 4승의 전설은 김일융이 됐을 거고, 최동원은 끝내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한 비운의 상징 정도가 됐을 것이다.
[22]
그해 최동원은 무려 284.2이닝을 던지고, 27승 13패 6세이브 방어율 2.40 탈삼진 223개를 기록했다. 지금보다 경기 수가 크게 적었고 전후기리그로 나뉘어 있던 리그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투구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23]
'무쇠팔(철완)'이라는 별명이 제일 유명하지만, '불세출'이라는 별명도 존재하며 '불세출의 최동원'이라는 말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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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⅔이닝-223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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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이닝-208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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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장명부의 30승 다음으로 한국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승 2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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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2020년까지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다가 2021년
두산 베어스
아리엘 미란다에 의해 경신됐으며 2022년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이 깨기 전 까지는 토종 선발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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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루율 1.000 + 장타율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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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wRC+로 계산하면 849.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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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프로야구 직구 평균구속이 130km대 중반 정도였음을 생각하면 대단한 강속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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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선친은 본래 소싯적에 축구에 재능이 있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고, 그 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잃은 아픈 기억을 안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뒤로는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아들의 성장을 위해 헌신했었고, 구설수에 휘말린다 싶으면 "모든 욕은 내가 먹겠다"고 하며 아들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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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차 큰 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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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 6경기에 모두 등판(선발로 세 번)하여 무려 42.1이닝을 던졌다. 경기당 평균 7이닝을 소화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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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팔'이라는 별명이 제일 유명하지만, '불세출'이라는 별명도 존재하며 '불세출의 최동원'이라는 말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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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80년대 중반 롯데 자이언츠는 말 그대로 롯데 자이언츠=최동원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에이스의 상징성과 의존도가 높은 팀이었다. 물론 윤학길 등 다른 프랜차이즈 스타들도 많았으나, 최동원의 임팩트와 인지도가 그들을 전부 누르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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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동원과 이대호 사이에 롯데 팬들의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은
박정태도 있지만, 상습 음주운전에 버스기사 폭행 사실까지 밝혀지며 명예를 많이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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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최동원 90만원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이 과정에는 논란이 존재한다. 그래도 고대야구 특성상 선수의 권리가 극단적으로 제한되던 시절이라 어느 정도 그의 의견을 참작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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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인 투수는 최동원의 강력한 추천으로 데뷔 시즌부터 선발로 기용되었고,
최동원의 눈썰미는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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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전, 1/3/5/7 차전 선발을 준비하라는 강병철 감독의 얘기를 듣고 최동원선수가 "그건 너무 심한거 아니냐"는 얘기에 강병철 감독이 한 대답이다, 1/3 차전은 계획대로 승리투수가 되었으나, 5차전을 패배한 후 우승을 넘겨주게 생기자 6차전에도 등판했다, 결국 4승도 대단한데 1패까지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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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롯데 자이언츠의 2017년 포스트시즌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마 함 해 보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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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처음 최동원의 투구 자세를 재연하는 장면에서 공을 던졌는데 글러브 안에 공이 있다거나 우완투수였던 재연배우가 좌완으로 바뀌어있는 등(이 경우는 다른 영상일 가능성도 있다.)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 최동원의 대사. "승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라운드에 들어와서 야구복을 입고 자기의 모든 것을 즐거워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게임한다 그러면 그보다 더 보람된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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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노리타 전적이 있어서 까이긴 하지만, 원래 이 사람은 최동원을 존경했었다고 한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의 아들 이름을 동원이라고 지은 것이다.
어?? 매년 기일에 참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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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2011년 11월 11일 밤 11시에 MBC의 채널 번호는 11번이다. 등번호 11번의 최동원을 기념하기 위한 너무나도 완벽한 숫자의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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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시간에
부산MBC에서는 자체방송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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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몰라도 MBC의 1980년대 KBO 리그 영상자료 보유량은 타 방송사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회사 산하에
MBC 청룡이라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고 있었고 매주 화요일이나 수요일 저녁 시간대에 지상파 프로야구 생중계를 반고정 편성할 정도로 야구를 자주 보여줬다. 각 구장의 경기 영상을 종합해서 보여주던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MBC가 먼저였다. 그래서 영상자료가 많다. 이 때문에 유독 MBC에서 옛날 야구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그 방대한 영상자료를 인터넷 다시보기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단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