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7 21:49:35

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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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김형운 (1) (2)
(14명)
김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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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김호근
박영태
박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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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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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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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강성우 김경환 강상수 문동환 차명주
(고졸)
손균환
이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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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한
(고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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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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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김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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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욱
(고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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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박정준 장원준 이왕기 손용석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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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김원중 (2) 송주은 (2) 김유영 강동관 박종무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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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2026년
이민석 김민석 (2) 전미르 (2) 김태현 (2) (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년도 (1라운드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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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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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1995~1996 <rowcolor=#000> 1997 1998~200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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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수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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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s-2|{{{#a78329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김정기
( 광주동성고등학교)
강상수
(부산고등학교)
심재학
( 충암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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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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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옥 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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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18
<rowcolor=#fff> 2019 2020 2021~20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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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24
전준우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6번
박동수
(1987~1993)
<colbgcolor=#000><colcolor=#fff> 강상수
(1994~2005)
김동혁
(2006~2007)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장문석
(1997~2005)
강상수
(2006)
최종인
(2007)
LG 트윈스 등번호 79번
다카하시
(2009~2011)
강상수
(2012~2014.5.10.)
양상문
(2014.5.11.~2017)
LG 트윈스 등번호 77번
차명석
(2012~2013)
강상수
(2014.5.11.~2018)
이종범
(2019)
KIA 타이거즈 등번호 79번
김태룡
(2008~2018)
강상수
(2019)
송지만
(20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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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수
姜相洙 | Kang Sangsoo
출생 1971년 6월 22일 ([age(1971-06-22)]세)
부산광역시 영도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천초[1] - 대천중 - 부산고 - 고려대[2]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4년 1차 지명 (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4~2005)
LG 트윈스 (2006)
지도자 LG 트윈스 1군 불펜코치 (2012~2013)[3]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13)[4]
LG 트윈스 1군 불펜코치 (2013)[5]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14~2018)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총괄코치 (2019)[6]
KIA 타이거즈 육성군 투수코치 (2019)[7]
프런트 LG 트윈스 스카우트 (2007~2011)

1. 개요2. 선수 경력3. 불상수4. 피칭 스타일
4.1. 투수 전향 에피소드
5. 프런트 경력6. 지도자 경력7. 여담8. 연도별 주요 성적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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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의 투수이자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

현역 시절 1994년 롯데 자이언츠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해 2005년까지 활약한 프랜차이즈 선수 였고, 2006년 LG 트윈스에 이적하여 1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

별명은 불상수가 유명하지만 이는 애증의 별명으로 통산 75세이브를 기록해 은퇴 시점에서 역대 롯데 자이언츠 소속 투수 중 통산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선수였다. 현 시점에서도 구단 최초로 100세이브[8]를 넘긴 김원중, 94세이브를 기록한 손승락에 이어 3위이다.[9]

2. 선수 경력

강상수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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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강상수/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아마추어 시절 LG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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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상수

현역 시절 구원등판해서 자주 불을 지르는 바람에 '불상수', '화상수', '그는 공 대신 불꽃을 던지는 사나이였다', ' 방화신기의 리더' 등으로 무던히도 까였지만, 실상은 강상수 혼자만 유난히 못했다기 보다는 롯데 자이언츠가 못 하던 시절에 그도 성적이 덩달아 나빴던 쪽에 더 가깝다. 오히려 다른 투수들이 부상 등으로 나자빠질 때 혼자 롯데 자이언츠 마운드에서 꿋꿋이 버티며 버텨줬던 지라 '상수대협' 이라 불리기도 했다. 앞의 비난성 별명 또한 단지 비난만이 아닌 예전에 잘 던지던 강상수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탄, 그리고 애정이 중첩된 별명인 것이다. 그 외의 별명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잘 나가던 프랑스 퀘벡주 출신 마무리 투수 에릭 가니에에 빗대어 '강니에'란 별명도 있었지만 이 별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명한 일화로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연장에 가지 않기 위해 시간 끌기[10]를 하려고 견제구를 던지고 신발끈을 묶었으나 덕분에 투구 리듬이 흐트러져 김재현에게 역전타를 맞고 패전한 이야기가 있다. 이 일화는 실화로 해당 경기는 2002년 4월 25일에 있었으며, 역전타를 맞기 직전엔 스코어 2-2, 2사 만루 상황이었다.

훗날 본인도 현역 시절 '불상수'라고 온갖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성격이 무던한 편이라 악플을 보면 잠깐 욱했다가도 그러려니 하고 바로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어서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4. 피칭 스타일

한창 잘 나가던 때와 불상수이던 시절까지만 해도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140km/h대 중반까지는 나오던 선수였다. 평속은 130km/h대 중후반에서 그쳤으나, 공끝이 묵직하고 코너웍이 좋은 편이라 구위가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강력한 구위와 커맨드를 바탕으로 BABIP을 낮추는 스타일의 정통 마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탈삼진 능력도 떨어져서 인플레이 상황을 자주 발생시키고 그 때문에 마무리에 성공해도 겨우 겨우 성공하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4.1. 투수 전향 에피소드

전술했듯이 대학 4년 내내 대부분 타자로 활약했고 프로 입단도 타자로 했지만 바로 투수로 전향한 선수이기도 하다. 보통 프로에서 전향을 하는 경우 투수든 타자든 한 포지션으로 일정 기간 활약하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전향하는 편인데, 강상수는 타자로 입단한 직후 바로 투수로 전향한 흔치 않은 케이스. 훗날 2010년쯤 가졌던 인터뷰에서 강상수 본인이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막을 들려줬다. #

결론은 당시 주축선수들의 대거 방위복무로 인해 팀 전력 공백이 너무 심한 팀의 니즈도 있었고, 강상수 본인도 프로에서 투수로 활약하길 희망해 바로 전향을 할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사상 초유의 '신인 개막전 선발등판'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뒤늦게 투수로 전향한 만큼 굉장히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투수를 해 온게 아니다보니 신인 시절부터 금방 데드암 증세가 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커리어 내내 보강훈련에 밤낮으로 사력을 다해왔다고. 그 덕분인지 큰 부상에 시달린 적은 없어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또한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프지 않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신인 시절부터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믿어줬던 김용희 감독과 양상문 코치에 정말로 감사하다고 했다.

타자를 계속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는 대학교 4학년때 나무 배트를 사용해서 타격 연습을 해 본 결과 자신의 스윙은 알루미늄 배트에 최적화된 스윙이란 걸 깨달았고, 일찌감치 자신은 프로에서 타자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타자로 입단했을 경우 같은 포지션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 보였던 것도 투수 전향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11] 반면 투수로는 어느 정도 승산이 있겠다는 계산이 있었다고 하며 실제로도 그러했다.

또한 은퇴 직전 SK 와이번스에 부임한 김성근 감독에게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2년만 같이 해보자며 제안을 받았고 만약 따라갔다면 우승도 했겠지만 그 시점에서 경력을 마무리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해 은퇴했고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덤으로 그 말고도 롯데 시절 선배인 가득염도 제의를 받았는데, 강상수는 은퇴, 가득염은 현역 생활을 이어 나갔다.

5. 프런트 경력

은퇴 후에는 코치진에 바로 합류하지 않고, LG 트윈스에서 프런트로 일했다. LG 트윈스 스카우트를 맡았으며, 스카우트 시절에 벤자민 주키치를 그가 추천하여 영입에 성공했다. 이것만으로도 강상수의 능력이 좋은 편임을 알 수 있다.

6.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강상수/지도자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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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 운동은 초등학교 때 태권도로 입문했다고 한다. 나름 실력이 괜찮았던지 부산 지역 태권도 대회에 나갔는데 1라운드를 시작하자마자 상대 여학생의 돌려차기를 얼굴에 얻어맞고 그대로 떡실신 당했다고. 이 충격으로 태권도를 접고 야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야구선수로는 나름 족적을 남겼으니 다행이었다랄까. 현역 시절 강상수 본인도 이 에피소드를 셀프디스로 종종 써먹었다고 한다.
  • 패션센스가 좀 괴악하다. 안 그래도 좀 거한 체구인데 늘 바둑판 무늬 양복을 입고 나온다. 그래서인지 더 살쪄보이는 느낌이다. 2016년 코치상을 받을때도 이 차림으로 나왔다.
  • 트로트 가수 현철과 본명이 같으며, 출신지도 똑같이 부산이다.
  • 코치 시절 모셨던 김기태 감독과는 얼굴이 묘하게 닮았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1994 롯데 18 93⅔ 3.56 7 6 0 0 95 11 32 63
1995 18 102 3.35 7 5 0 0 97 6 26 64
1996 33 176⅔
(9위)
3.97 9 10 1 0 185 10 59 104
1997 36 101⅔ 5.13 3 11 3 0 129 7 52 70
1998 41 111 4.46 4 8 5
(9위)
0 97 16 54 85
1999 55 77⅔ 2.78 5 7 19
(5위)
0 62 7 38 66
2000 50 71 1.77 6 8 23
(4위)
0 48 5 23 66
2001 58 89 4.75 6 7 10 4 81 12 52 62
2002 39 55 4.58 2 7 7 2 63 6 41 33
2003 28 33 5.50 2 3 6 1 54 15 31 47
2004 29 35 4.11 0 0 1 4 41 5 21 17
2005 24 29⅓ 8.28 0 0 0 1 35 4 28 17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06 LG 16 14⅔ 7.98 1 0 0 1 23 2 7 11
KBO 통산
(13시즌)
450 1010⅔ 4.17 52 73 75 12 1010 106 464 705

9. 관련 문서


[1] 부산청학초에서 전학 [2] 체육교육학과(1990학번) [3] ~7월 8일 [4] 7월 9일~7월 22일 [5] 7월 23일~ [6] ~5월 16일 [7] 5월 17일~ [8] 2023년 달성. [9] 4위는 롯데 마무리 최초로 2년 연속 20세이브를 기록한 김사율의 63세이브이고 5위는 고 박동희의 58세이브. [10] 당시는 10시 30분이 넘으면 새로운 회로 넘어가지 않고 무승부로 처리되었다. [11] 당시 강상수의 주 포지션인 1루수는 부동의 4번타자 김민호에, 주전 외야수 김응국이 백업으로 받쳐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1년 후 입단이 내정된 마해영도 1루수 자원이었고.